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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스라엘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6/13 09:07
  • 수정일
    2021/06/13 09: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세계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

21.06.12 19:29최종 업데이트 21.06.12 19:30
이 땅은 나의 것, 하나님이 내게 주셨네<br style="box-sizing: inherit;" />깊은 역사의 멋진 이 땅을<br style="box-sizing: inherit;" />아침 해가 언덕과 평원을 비추니<br style="box-sizing: inherit;" />난 마침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땅을 보노라

긴 투쟁 끝에 얻은 자의 벅찬 가슴이 느껴진다. 이 감성을 중후함과 미성을 동시에 지닌 가수 팻 분(Pat Boone)의 목소리에 얹으니 세기적 명곡이 탄생했다.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의 주제곡으로 쓰인 '이 땅은 나의 것(This Land Is Mine)'의 앞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41년 동안 주말 저녁 영화광들을 잠 못 들게 한 티브이 프로그램 <주말의 명화> 주제곡으로 쓰였다.
 

▲ 영화 <엑소더스>(영광의 탈출, 1960) 포스터 ⓒ 오토 프레밍거

 
아마도 30대 이상의 한국 사람이면 이 곡을 모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영화 <영광의 탈출>을 끝까지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려 3시간 28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도 대단하지만 대부분의 극적인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에 모여 있다. 이 영화 관계자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뒷부분 2시간 정도는 관객에 따라 지루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관리하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몰려온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 섬에 집단 수용소를 설치한 후 모여드는 유대인들을 그 곳으로 이끈다. 수만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온 유대인들은 정작 팔레스타인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수용소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나타난 주인공 아리 벤 캐이넌(Ari Ben Canaan)은 유대인들을 탈출시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끈다.

이 영화의 원작인 같은 제목(Exodus)의 레온 유리스(Leon Uris) 소설처럼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그린다. 역사적 사실 또한 영화나 소설 못지않게 극적이다. 그러니 위 노래의 가사가 이스라엘인들에게 특히 각별하지 않겠는가. 애국심과 공동체 정신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에 경의를 표할 만하다. 다만 한 국가의 건국이 예술의 소재만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분이라면, 건국이라는 사실관계는 역사 자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역사관에 따라 진실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은 누구 것?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역사학자 카(Edward Carr)의 말이 있지만, 동시대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균형 잡힌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복수의 사실관계 주장도 인정해야 한다. 나(또는 우리)의 진실만큼 그(또는 그들)의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진실들은 상호 모순되기도 한다. 그래서 진실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정신을 높이 살 만하지만 '이 땅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한 보증이 '신이 주셨기 때문'만이라면 곤란하다. 왜냐면 그 땅을 거쳐 간, 또는 지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른 민족들도 똑같이 그 땅을 '신이 주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상대로 이중 계약이라도 한 걸까?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 위키커먼스

 
천상의 세계 또는 예술의 세계라면 모를까 세속적 현실에서는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국제문제에서는 국제법이나 국제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과 함께 살기 원한다면 철학을, 인간과 더불어 살기 원한다면 수사학을 가르치라는 금언을 새겼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점유하고 있거나 팔레스타인이 점유하고 있거나 혹은 두 정치세력이 분쟁 중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은 역사 속에서도 가나안,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 영국 등 수많은 세력들이 점유해 왔다. 물론 역사 속의 모든 점유 세력 또는 그들의 후예(있다고 가정하면)들이 모두 해당 지역의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토의 점유권 인정을 위한 합의된 보편적 국제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점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통상 중요하게 고려되는 세 요소는 분쟁자들 가운데 누가 더 먼저 점유를 시작했느냐, 누가 더 긴 시간 지배했느냐, 그리고 현재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다. 보통 실효적 지배라고 부르는 조건의 요소들이다. 그 조건을 통해 현재 점유권 다툼을 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둘의 입장이 비슷하다. 실효적 지배 조건으로도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다.

비교적 근래의 역사만 놓고 봐도 쉽지 않다. 13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연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피지배자 입장이었고, 그나마 다수의 유대인들은 해외를 떠돌았다. 이스라엘은 오스만 지배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해당 지역의 땅을 구매해 왔다며 이를 점유 정당성의 하나로 삼지만 법적 효력은 미약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줄곧 살아왔다.

사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유대인과의 관계가 애매한 점도 있다. 다수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와 유대교를 실천하는 이들은 소수지만 생물학적으로 이들은 아랍인보다 유대인에 가깝다. 이들의 변별적 정체성을 위해 인종적 구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수천 년에 걸친 유대인과의 지역 라이벌 관계가 19세기 이후 전 세계에 들불처럼 번진 민족국가(Nation-State) 이념과 함께 고착화된 결과의 피해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동 분쟁을 낳은 영국의 사기 계약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는 영국은 제국의 피지배자들을 이용해 전 방위적 전선을 펴는 전략을 구사한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들을 일제히 봉기하도록 한 것이다. 치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같지만 실상은 허술하고 치명적 오류를 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전략이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이 패망하면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아랍세계와 밀약을 한다(맥마흔 각서, 1915~16).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프랑스와 만나 지도 위에 줄을 그어가며 전후 함께 나눠먹을 파이를 협상한다(사이크스-피코 협정, 1916). 그리고 이듬해 유대인들에게 역시 같은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벨푸어선언, 1917).

이 일련의 사기 계약의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중동 분쟁 문제들이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이번에는 인간계에서 확실한 이중 계약 사기를 당한 셈이다.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에 분노하는 아랍 세계는 영국에 따지는 대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수적 열세인 이스라엘은 그러나 미국의 전폭적 지지와 지원을 등에 업고 첨단무기를 갖춰 수차례의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을 물리친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 건국은 기정사실화됐고 어느 국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서안지구로 내몰렸다. 그나마 이마저도 점점 위태로워졌다.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극단화되어가는 정치지형에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자 이스라엘 정부는 쉴 새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간다.
  

▲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서 6월 4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에 폐허로 변한 주택가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가자지구는 많은 주택과 건물은 물론 전력과 상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마저 망가져 재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연합뉴스

 
인구, 영토, 경제, 군사력, 외교력 등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열세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종말의 위기감 속에서 역시 극단적 저항에만 절망적으로 의지한다. 끝 모를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집권 속에서 팔레스타인 역시 평화적 협상의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국제사회는 '양측의 자제'만 점잖게 타이르는 중이다. 청년과 유년이 싸우는 것을 지나가다 발견한 성인이 양측의 자제를 당부하고 서있는 게 적절할까?

그러던 이 지역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 하나 생겼다. 내각제 체제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근 2년째 과반 의석 연정에 실패하던 중 드디어 '반 네타냐후'를 내건 8개의 야당이 과반 의석의 연정 구상에 합의한 것. 만약 이들의 구상이 의회의 승인을 얻게 되면 12년 연속 (지금까지 모든 임기를 합하면 15년) 집권 중인 네타냐후 총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개인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그로서는 자택이 아닌 '더 큰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변화 조짐, 지푸라기 같은 희망

오는 13일 이스라엘은 새로운 연정 구성을 승인하는 의회 투표를 하게 된다. 과연 새 정부 구성은 가능하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은 변할 것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지만 승인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총리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개인 비리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변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연정 구성 세력의 정치적 폭이 너무 넓다는 것. 이들 가운데에는 보수 정당도 포함돼 있고, 네타냐후에 반감이 없는 국회의원들도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반란세력이 얼마만큼 나오느냐에 새 정부 구성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 네타냐후 총리도 새 연정을 대국민 사기라고 비난하면서 '의원 빼오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만약 새 정부 구성이 실패한다면 최대 의석 정당인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현 총리가 다시 과반 확보를 위한 교섭 주도권을 쥐게 된다.
 

▲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연합뉴스

 
새 정부 구성 가능성 못지않게 만약 구성이 된다면 얼마나 이스라엘 대외 정책이,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가 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새 연정 파트너들의 정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지난 3월 23일 총선 결과 리쿠드(30석)에 이어 제2당이 된 예시 아티드(17석)를 비롯 중도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 수가 23명 정도다. 이들은 주로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건국부터 29년간 7명의 총리를 연거푸 배출하며 장기집권을 하던 노동당은 현재 7석을 보유한 채 과거의 영광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6석의 다른 진보정당 메레츠(Meretz)와 함께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개의 별도 독립국가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좌우 스펙트럼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4석을 보유한 아랍연합명부(United Arab List)도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들, 그리고 남부의 베두인(Bedouin)족의 권익을 주장한다.

이번 연정의 결정적 승부수는 3개의 보수정당 야미나(Yamina, 7석), 이스라엘 베이테누(Israel Beytenou 이스라엘은 우리의 집, 7석), 새희망(Tikva Hadasha, 6석)의 합류다. 보수주의 노선인 이들 3개 정당 중에는 한때 현 집권세력 리쿠드와 연정을 꾸린 세력도 있지만 이번엔 반 네타냐후 전선에 합류했다. '새희망'은 중도에 가까운 우파세력이지만 '야미나'의 경우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이 지역 전체를 이스라엘 영토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당이다. 이들은 네타냐후를 거부하고 새 정부를 꾸리겠다는 공동 목표 외에 다른 연정파트너들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 이유 때문에 연정이 구성된다 해도 조기 붕괴될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많다. 13일 국회에서 새 정부 승인이 결정되면 4년 임기 가운데 전반기 2년은 보수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그리고 후반기 2년은 중도 정당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된다.

과연 이들은 연정 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구성한다면 안정적 집권과 변화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에 더 회의적 전망과 불안감이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는 물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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