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자체는 지역을 살리고 주민을 행복하게 하겠다고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성과를 내고 있을까. 나라살림연구소는 최근의 뉴스레터에서 2020년 현재 28조 원을 들여 건립한 전국 지자체 공공시설 882개 가운데 791개(90%)가 적자 운영을 하고 있고, 적자액은 1.2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반면에 운영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자체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전국에 산업단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21년 12월 현재 전국의 산업단지는 1246개에 달한다. 산업단지 건설에는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실제로 지역경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는 미지수다. 반면에 산업단지는 임야뿐 아니라 농지를 파괴하여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환경문제를 발생시켜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충북 괴산군 사리면 일대에 계획된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는 총 54만 평(177만 5937㎡) 부지 가운데 약 37%인 20만 평을 농지로 채울 계획이다. 산업단지의 또 다른 문제는 여기에 산업폐기물처리장이 들어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산업폐기물처리장을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농산어촌 살린다는 마을개발사업, 속 빈 강정
각 지자체는 관광객을 불러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앞다투어 케이블카나 출렁다리를 설치하고 있다. 하나에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관광용 케이블카는 현재 20여 개 운행 중이고, 추진 또는 계획 중인 케이블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50개에 이른다. 수지를 맞추는 케이블카가 적을 뿐 아니라, 환경파괴로 인해 거의 예외 없이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환경파괴로 케이블카에 대한 저항이 강하자 지자체들은 출렁다리 설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0년 63개였던 출렁다리는 현재 200개에 달하고 지금도 계속 건설 중이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출렁'거리고 살아야 이 다리들이 다 수지를 맞출까. 출렁다리가 관광객에게 외면받자, 지자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더 긴 다리'를 건설한다. 드디어 지난해 11월 30일 논산 탑정호에 길이 600m, 폭 2.2m의 동양 최대 출렁다리가 탄생했다.
농산어촌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산촌마을종합개발사업, 어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비롯해 많은 다양한 마을개발사업이 이름을 바꿔 가며 추진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강원도 I군은 접경지역 지원 사업으로 29개의 마을에 마을당 대략 3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도시민 유치를 위한 펜션 등 관광시설을 건설했다. 그 가운데 경상운영비라도 나오는 곳은 한 군데뿐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각종 도로와 철도 등은 농촌지역에서 사람, 돈, 자원을 대도시로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고속열차가 수도권에 돈과 사람을 집중시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하자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라는 성경 말처럼 농촌주민의 것은 농촌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지역균형발전과 농촌 살리기라는 미명 하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각종 지역개발사업 가운데는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 토건자본의 주머니를 채울 뿐, 지역경제와 농촌주민의 삶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고, 주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들이 적지 않다. 이 돈을 정리하여 지역경제와 주민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약칭 농촌주민수당)을 농산어촌주민에게 지급하자. 새로운 예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농촌주민수당에 얼마나 재원이 필요하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나라살림연구소와 오랫동안 공동 연구를 진행해왔다. 농촌주민수당은 명칭으로 인해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지역을 행정구역으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을 도시(동)와 농촌(읍・면)으로 나누는데, 이러한 구분은 변별력이 없고 큰 의미가 없다. 읍·면 가운데서도 읍은 도시적 성격이 강해 면을 농촌지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경남 양산시 물금읍은 인구가 11만 8579명으로 웬만한 도시보다 큰 반면에 영월군 상동읍은 인구가 1114명에 지나지 않는다. 면의 경우에도 전남 순천시 해룡면의 인구는 5만 4056명인 반면에 강원 철원군 근북면은 111명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 면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읍 지역을 모두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농촌주민수당은 소멸위험에 처한 읍・면・동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다. 소멸위험지역을 특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행정안전부는 지역소멸대응기금을 매년 1조 원씩 마련하여 89개 시・군의 인구감소지역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 밀도, 청년 순 이동률 등 8개 지표를 사용하여 지역을 선정했다.
마찬가지로 경기도 농촌기본소득은 인구 수와 소멸위험지수 등 10개 지표를 활용하여 실험 대상지역을 선정했다. 이러한 지표들을 보완하여 인구위험지수를 산정, 대상지역을 선정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인구감소율과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서 대략 추정해보면, 농촌주민수당의 대상 인구는 300~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농촌주민수당 재원 마련, 어렵지 않다
1인당 월 3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 연간 10.8조 원에서 18조 원이 소요될 것이다. 첫해에는 300만 명에 10.8조 원, 둘째 해에는 400만 명에 14.4조 원, 셋째 해에는 500만 명에 18조 원으로 지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수당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해서 지급하는 경우 비율을 6대4 혹은 5대5로 상정하고, 각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해보자.
우선 1차 연도에 중앙정부는 융자사업(46조 원)의 약 절반만 이차보전으로 전환하면 20조 원의 재원이 마련되는데 이 가운데 5.4조 원(50% 분담)~6.5조 원(60% 분담)을 농촌주민수당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대상 읍・면이 속하는 시·군의 순 세계잉여금(예산을 초과한 세입과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세출불용액을 합한 금액)을 사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인구가 2015~2020년에 연평균 1% 감소하고 인구 1만 명 이하인 읍(46개)과 면(732개)이 속한 131개 시・군의 2020년 순 세계잉여금은 11.2조 원인데, 이것을 활용한다면 연간 4.3~5.4조 원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차 연도 이후에는 중앙정부가 적극적 지출구조조정 및 재정의 자연증가분을 활용하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2021년 중앙정부 예산 가운데, 지출구조조정이 필요한 농촌 관련 지역개발 및 사회간접자본사업은 612개에 19.8조 원(농림수산분야 예산은 제외. 2021년 국가 예산 558조 원의 3.5%)으로 추산됐다. 이 돈의 40%(7.9조 원) 정도와 재정의 자연증가분 일부(3~4조 원)를 활용하면 7~10조 원의 재원 마련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는 이월을 엄격하게 제한하고(30.3조 원), 재정안정화기금(7.6조 원)을 활용하고, 재정지출 구조조정(3조 원), 지방소멸대응기금(1조 원), 지역상생발전기금(4400억 원), 재정분권에 따른 지방소비세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중앙정부 이상의 재원 마련도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재원 마련 방안은 주로 기존 재정의 조정을 통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 증가율만큼만 증가시킨다면 재원조달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 중앙정부 16대 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 13.68%에 반해 농림수산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은 6.54%에 불과하다. 전 분야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의 연평균 증감률이 전 분야 평균에 준하는 13.68%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2023년의 예산은 지난 3년간의 연평균 증가율을 유지하는 예산액에 비해 7.6조 원이 많다.
농촌주민수당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
농촌주민수당은 농촌기본소득을 농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본소득이 아니라 '지킴이' 역할에 대한 대가로 농촌주민에게 지불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농촌주민은 자기 역할에 대한 자각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농촌주민수당 혹은 농촌기본소득보다 농민기본소득을 먼저 시작하고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다.
나는 농민기본소득을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의문을 갖고 있다. 첫째, 누가 농민인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은 ① 300평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거나 경영하는 사람 혹은 ② 농산물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인 사람 혹은 ③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농업인(농민)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누구라도 쉽게 농업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농민 수가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거주지 제한도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부여읍에서 작은 가게를 하거나 특별한 소득이 없는 사람이 농민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인근 농촌지역에 땅을 사거나 빌려 농사를 짓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둘째, 이처럼 농지를 구입하거나 빌려서 농민이 늘어난다면, 농지가격이 상승하거나 임차료가 상승하여 기존의 농민에게 타격을 줄 것이고, 농업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농민기본소득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읍·면 지역 인구는 970만 명이고 면 지역만으로도 470만 명이다. 반면에 농가인구는 22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여군 외산면은 인구가 2335명인데, 농가인구는 1104명으로 절반이 되지 않는다. 외산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민기본소득에서 제외되는데, 농민기본소득으로 한 동네 사는 사람끼리 우의가 깨지지 않을까.
농촌주민수당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농민에게 지급되겠지만, 도시(대도시)에 사는 농민들이 배제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농촌주민수당을 받는 읍・면의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크고 작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시행하는 게 정책이다. 도시나 인구가 늘어나는 읍・면에 살고 있는 농민이나 주민들은 우리가 대상으로 하는 지역소멸위험 지역에 비하면 자산, 소득, 일자리, 농지가격, 생활여건 등 모든 측면에서 월등하다. 면에서 읍으로 인구가 이동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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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김제시 오정동의 한 고추밭에서 농민이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202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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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있겠지만 농촌주민수당은 지역소멸 위기에 대한 정책이고, 상당 부분이 지역화폐로 지급돼 시・군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여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게 될 테니 양해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집에 사는 비농민(농민보다 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적지 않다)을 설득할 방법이 마땅찮다.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문제점 이외에도 농민기본소득은 지역소멸위험에 대응하지 못하고, 귀촌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 나는 최근 두 개 시・군의 농정 담당자에게 농민기본소득법안이 제시한 1인당 월 30만 원이 지급되는 경우 지역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인가 물었다. 내가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농민기본소득을 1인당 월 10만 원, 농촌기본소득을 월 5만 원 주자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안으로도 농민기본소득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다. 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고, 배제되는 소수의 진짜 농민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고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박진도 기자는 충남대 명예교수로 지역재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글은 한국농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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