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의구현사제단, 22일 오후 7시 ‘유신 40주년 전국시국기도회’ 개최

 

김인국 신부 “유신체제 뿌리깊은 ‘악’ 직면하라”
 
정의구현사제단, 22일 오후 7시 ‘유신 40주년 전국시국기도회’ 개최
 
편집부 | 등록:2012-10-16 10:00:00 | 최종:2012-10-16 10:01: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월이다. 여름내 뜨거운 열기 속에 짙어졌던 푸르름이 자기 색을 찾아가고 서늘한 공기에 실린 가을 기운이 마음을 침잠시키는 계절. 문득 밀려드는 외로움으로 가슴 한 구석이 스산해지기도, 추억 한 조각에 그리움이 찾아들기도 하는 그런 계절이다. 그러나 이 계절에 찾아오는 추억 속에는 오랜 시간 묻어놓았던 상처도 있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차마 상처라 말하기도 낯선, 그러나 아물지 않았고 오히려 안으로 점점 곪아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모두의 상처다.

군사쿠데타 이후 연이은 헌법개정으로 12년 간 권좌를 지키던 대한민국의 3선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아주 특별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10월 유신선언’은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며 연임제한을 철폐하는 등 헌법을 무력화 시키고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과 정치활동을 중지시키는 등 민주주의의 기본장치를 무력화하고 모든 권한을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시켰다.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던 많은 이들이 감옥에 끌려가 무참히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40년이 지나도 2012년 10월 대한민국에는 그날의 눈물이 멎지 않고 있다.

 

   
▲ 김인국 신부 ⓒ문양효숙 기자
이제 40년 묵은 악의 고름을 터뜨려 말끔히 치유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외치는 사제들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10월 유신 40주년에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하는 전국시국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다. 10월 22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월요일 용산참사, 강정 구럼비,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거리미사를 마친 늦은 시간, 대한문 앞에서 사제단 총무인 김인국 신부(청주교구 옥천성당 주임)를 만났다.

 

그는 “오늘까지 유신체제는 한 순간도 숨이 멎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유신의 독버섯은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은밀하고 억척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찬란하게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이렇다 할 문제의식도 없이 말이다. 박근혜 보다 박근혜에 마음을 빼앗긴 민심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때문에 대통령 선거 정국을 앞둔 2012년 10월은 ‘유신체제를 발본색원할 것인지, 부활시킬 것인지를 성찰해야 하는 중요한 때’이며 이는 ‘교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오늘 10월 22일 유신헌법공포 40주년을 맞아 시국기도회를 연다. 이는 잊고 지냈던 유신체제의 악(惡)을 직면하기 위해서다. 상처와 고통은 여전한데 우리는 서둘러 잊고 있었다. 유신체제는 매우 악질적인 통치였다. 악에 대한 성찰은 교회의 일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누가 이를 알려주어야겠는가. 교회가 아니면 또 누가 할 수 있는가.”

그는 박근혜에 향한 지독한 성원과 열광을 뒤집어 보면 사람들의 어리석은 탐욕과 저만 아는 이기심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천민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천민자본주의란 대다수의 희생으로 소수를 살찌우는 시스템을 말한다. 당장 우리 사회의 자본의 횡포를 보라. 중산층까지 몰락시키고 공공재인 강, 바다, 갯벌까지 죄다 팔아먹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자손만대까지 물려줘야 할 공동의 유산을 빼앗기고도 박수를 친다. 참 환장할 노릇이다.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을 어떻게 했는지, 평택 쌍용차 공장 옥상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어떻게 때려잡았는지 멀쩡히 보면서도 어떻게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형제를 패고, 직장에서 쫓아내고, 제 고향을 없애고, 할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한 논 위에 고압 철탑을 세워도 좋다고 하는 백성이다. 이게 어리석은, 혹은 ‘얼이 썩은’ 백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대한문 앞 거리미사에서 발언 중이다. ⓒ문양효숙 기자

 

김인국 신부는 이것이 유신체제의 학습효과가 뼈 속 깊이 스며든 때문이며, 그래서 유신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일부의 열광은 과거 히틀러에 대한 독일사회의 열광과 비슷한 면이 있다. 독일도 1950년대까지는 국민들이 히틀러를 최고로 여겼다. 하지만 복지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극소수 극우파에서만 그를 흠모하고 있다. 한국도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나면 낡은 미신과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요즘 너도나도 경제민주화를 주창한다. 심지어 한나라당도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로고를 ‘적색’으로 바꾸고는 경제민주화를 천명하고 있다. 이런 액션에 속지 말아야 하는데 ‘새누리’가 대체 무슨 뜻인가? 신천지라는 말이 아닌가. 신흥이단 신천지처럼 새누리도 수상하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열광하는 것은 가히 악의 신비라 할만하다. 무엇이 경제민주화일까? 통치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국민들이 정하는 게 정치민주화라면, 경영권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노동자들이 정하면 그게 경제민주화가 아닐까. 최근 전남대 김상봉 교수(<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상봉, 꾸리에북스, 2012)가 소개한 한 구상인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고, 노동자에게 경영권을 주는 사회. 그런 상태라야 경제의 민주화다. 이런 민주주의가 아니면 사람 맘대로 뽑고, 멋대로 해고시키는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번번이 골목상권을 울리고 대형마트를 편드는 구 한나라당 세력이 경제를 민주화한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이어서 그는 유신체제를 직접 겪지 않은, 혹은 ‘옛날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하며 “잘 보라! 그리고 아파하라!”고 말했다.

“유신권력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평화시장의 전태일과 YH무역의 김경숙은 지금도 똑같이 죽어가고 있다.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4대강, 제주 구럼비를 보고 제발 눈물을 흘리며 아파한 다음 생각해보자. 당장 나에게 닥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상관없다고 여기면 국가와 자본은 더욱 교만해져서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또한 그는 “‘힐링’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난무하는 측면이 있다”며 너나없이 위로를 구하려는 세태에 일침을 가했다.

“힘든 거 알지만 그렇다고 너무들 기가 꺾이면 곤란하다. 특히 젊은이들은 좀 씩씩해야 한다. 유신시대의 젊은이들도 어렵게 살았다.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감옥에 붙들려갔다. 고문도 당했다. 지금보다 그 때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지금 아프다면, 그 아픔을 가지고 다른 이를 봐줘라. 그렇게 해서 이 재미없는 ‘의자놀이’(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다룬 공지영 작가의 르포)를 깨버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마음이 아니면 우리는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현재 사제단은 지난 7월 2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대한문 앞에서 기도와 미사를 드리고 있다. 길 위는 오가는 사람들과 차 소리로 소란스럽고 때로는 살이 익는 듯한 무더위를, 때로는 몰아치는 폭풍우를 피할 길이 없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가을을 넘어 이제는 추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은, 그런 곳이다. 대한문 월요미사가 김 신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거리를 성전으로 삼아 기도하고 있다. 벌써 5년이 넘도록 월요일마다 우리와 함께 많은 수도자들과 교우님들이 이렇게 지내고 있다. 고요한 곳에서 기른 힘을 시끄러운데서 쓰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좋을 때가 아니라서 저마다 길을 나서 여기 모이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무력하다. 그저 얻어맞고 터져서 상처받은 사람들 곁에 있어주려는 것뿐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하느님의 살아계심과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잊지 않도록 한 점의 촛불이 되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와 세상이 엄연히 구별되어 있는데 교회에 속한 이들이 왜 세상일에 그리 나서느냐고 묻기도 한다. 심지어 ‘빨갱이 사제’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참 딱한 일이다. 하지만 돌을 던져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사제들은 목마른 사람에게 그저 한 사발의 냉수를 건네주려는 것뿐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을 퍼주고 싶을 따름이다. 세상과 이웃이 망하든 흥하든 그게 교회와 무슨 상관이냐고 해도 좋다. 그런 믿음을 나무라거나 배척할 생각은 없다. 충분히 존중할 터이니 서로의 생각대로 각자가 아는 신앙의 길을 성실하게 가면 된다. 각자 하느님 앞에서 책임질 일이다.”

다만 그는 피하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지침은 단순하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자.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이를 보고 못 본 체 외면하였다. 왜? 그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봐주고 함께 아파해주라는 것이 복음이 요구하는 사람의 길이다. 오늘날 눈물없이 사는 신앙을 어떤 신앙이라고 해야 할까?”

끝으로 김인국 신부는 “생각의 깊이가 삶의 높이를 결정한다. 깊이 생각하는 만큼 높이 살 수 있다. 더 깊이 생각하고자 하는 분들은 그날, 서울광장에 함께 하자”고 당부했다.

“이번 시국미사는 일종의 회향(回向)의 성격을 갖고 있다. 회향이란 순례를 마치면서 순례자가 길에서 얻는 공덕을 세상과 이웃에 돌리는 일을 말한다. 사제단은 2008년에는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로, 2009년에는 ‘용산천막기도회’로, 2010년에는 ‘단식기도회’로, 2011년에는 ‘여의도 시국기도회’로, 그리고 2012년 올해는 방방곡곡을 순례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미사를 드리다 대한문까지 왔다. 제발 살아있는 목숨들을 죽이지 말라고,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달라는 기도였다. 이제 지난 5년간의 순례와 기도를 모아 다시 하느님께 고하고(天告), 세상과 나누려고(回向)한다. 부디 많은 분들이 오시면 고맙겠다.”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우리 시대의 속으로 곪은 깊은 상처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시대와 개인의 영혼까지 억압하는 악한 실체를 깨달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정신없이 달리느라고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10월 22일 저녁 7시 시청광장에 모여 목청껏 불러 보자. 민주주의, 교회, 그리고 하느님 나라.
 

 

 


[기사제휴-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