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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속 고립도시 ‘폐쇄루프’…2주만에 자유가 간절해졌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2/12 09:30
  • 수정일
    2022/02/12 09: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2-02-12 09:05수정 :2022-02-12 09:14

[한겨레S] 베이징올림픽 D+9
중국식 ‘제로코로나 대회’의 그늘

코로나 막으려 참가자 완전 분리
사흘째 확진자 ‘0명’ 효율은 입증
생필품 제한 공급, 비싼 값도 불만
중국식 통제, 어떤 평가 받게 될까
베이징 겨울올림픽 한 관계자가 지난 6일 폐쇄 루프 내부 유리 칸막이 안에서 여자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이징 겨울올림픽 한 관계자가 지난 6일 폐쇄 루프 내부 유리 칸막이 안에서 여자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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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개막한 지 1주일이 지났다. 팬데믹 속에 열리는 이번 대회는 이른바 ‘폐쇄 루프’라고 불리는 철저한 방역 시스템 속에서 치러진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회 참가자와 일반 중국인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이다. 대회 참가자는 철조망과 베이징 공안으로 둘러싸인 호텔과 경기장만을 오갈 수 있다. 베이징이란 거대한 도시 속에, 올림픽을 위한 또 다른 도시를 만든 셈이다.지금까지 폐쇄 루프는 성공적이다. 특히 베이징은 전염성 강한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의 세계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신규 확진자가 확연히 줄었다. 지난 7일부터 사흘 연속 추가 확진자가 단 1명도 없을 정도다. 올림픽 기간 확진자가 급속하게 늘었던 지난여름 도쿄와는 확연히 다르다. 중국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주려는 중국 체제 효율성이 일견 입증된 셈이다.
사실상 배급제…담배 품귀현상도
문제는 폐쇄가 계속되며 대회 참가자의 고충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회 기간(2월4~20일)은 약 2주 정도이지만, 취재진과 대회 관계자는 대개 지난달 말부터 중국에 오기 시작했다. 기자의 경우 지난달 30일에 입국했으니, 벌써 2주가량 폐쇄 루프에 머문 셈이다. 입국 전만 해도 약 3주 정도의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고, 대회 초기에는 철저한 방역 정책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어설펐던 도쿄올림픽의 방역대책과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회가 진행될수록, 남은 날들에 대한 막막함만 커진다. 자유를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은 셈이다.
지난 9일 ‘폐쇄 루프’ 담장 구실을 하는 문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9일 ‘폐쇄 루프’ 담장 구실을 하는 문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애초 베이징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쪽은 폐쇄 루프 내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음식·생필품도 호텔마다 편의점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호텔에 설치된 편의점은 간이매점 가판대 수준이다. 기자가 묵는 숙소에선 몇종의 컵라면, 과자, 맥주, 음료수 정도만 살 수 있다. 그나마 4~5개 되는 컵라면 중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이 있다는 게 위안이다. 생필품은 세제·세면도구·마스크 등이 배치돼 있는데, 그 종류가 극히 적다. 메인 미디어센터에 있는 유일한 매점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물건이 생겨도 호텔·조직위가 들여오는 물건밖에 선택할 수 없어서, 일종의 배급제에 가깝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건조한 베이징 날씨 때문에 날마다 피부가 갈라지는데, 호텔에서 파는 보디로션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가로 다른 로션 등을 살 방법은 없다. 구형 아이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홈 버튼’이 고장 났지만 수리를 맡길 수도, 새로운 휴대폰을 살 수도 없다. 폐쇄 루프 내 사람들끼리 ‘당근’(직접 거래)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지난 도쿄 대회 땐 참가자들에게 ‘15분 편의점 외출’이 허용됐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별다른 여가 생활이 없으니 먹는 일이 중요해지는데, 메뉴 선택마저도 극도로 제한된다. 전용 버스에 올라 바라보는 광고판의 치킨과 피자 등은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치킨’이다. 급기야 대회 참가자들 사이에선 담배 품귀현상도 일어난다. 일반적인 편의점을 생각하고 왔지만, 막상 폐쇄 루프 내에선 담배를 파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원초적인 자유마저 박탈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치 “논산훈련소에 다시 온 것 같다”는 씁쓸한 우스개가 나온다.중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베이징 시내 경기장에서 일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벌써 한달 넘게 폐쇄 루프에 갇혀 생활하고 있다. 폐쇄 루프 속 자원봉사자만 해도 1만9천명에 달한다. 국가적 행사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100만명 넘는 지원자를 뚫고 선정된 이들마저도 긴 격리 생활 속에 고통을 호소한다. 폐쇄 루프 안에 갇힌 대회 관계자는 호텔 직원이나 공안 등을 포함해 약 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마저 폐쇄 루프 안에서 보냈는데, 심지어 대회가 끝난 뒤에도 다시 격리될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기간 일부 호텔은 햄볶음밥을 109위안(약 2만원)에 판다. 이준희 기자
올림픽 기간 일부 호텔은 햄볶음밥을 109위안(약 2만원)에 판다. 이준희 기자
햄볶음밥 2만원, 고물가도 논란
폐쇄 루프 속 물가가 지나치게 비싼 점도 논란이다. 선택권을 제한했으면 가격이라도 저렴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참가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은 메인 미디어센터, 경기장, 호텔에 설치된 식당뿐이다. 메인 미디어센터 식당은 덮밥 하나를 먹더라도 최소 55위안(약 1만원)은 내야 하고, 경기장에서 파는 중국식 도시락은 60위안(약 1만1천원)에 달한다. 그마저도 고기가 포함된 서양식 도시락은 120위안(약 2만2천원)까지 받는다. 일부 취재진이 묵는 호텔은 햄볶음밥을 109위안(약 2만원)에 판다. ‘바가지’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조직위가 제공하는 컵라면과 과자를 챙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다.교통비도 마찬가지다.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할 수 없고, 대회 주최 쪽이 운영하는 버스나 전용 택시를 타야 하는데, 경기장을 바쁘게 옮겨 다녀야 하는 기자들 사이에선 택시비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나온다. 일반 베이징 택시보다 4~5배 비싼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밤늦게 끝나는 경기를 취재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라도 타려면, 8만~10만원이 한번에 깨지는 걸 각오해야 한다. 방역을 위해 협조하는데도, 그 비용을 참가자가 부담하는 모양새다. 도쿄올림픽 때 조직위 쪽이 한장당 1만엔(약 10만원)에 이르는 택시 바우처 10장을 제공한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국외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미국 <시엔엔>(CNN)은 9일(현지시각) 올림픽 메인 미디어센터를 포함해 대회 참가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 음식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시엔엔>은 폐쇄 루프 내 호텔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중국 쪽 매니저 말을 인용해,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 가운데 “역겨운(disgusting) 음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디르크 시멜페니히 독일 선수단장은 미국 <시비에스>(CBS)와 한 인터뷰에서 “선수단 호텔 환경이 불합리하다”며 “선수들은 자유롭게 추가로 외부 음식을 배달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제로 코로나 대회’ 해야 한다지만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시행하는 폐쇄 루프는 사실 중국이 견지해온 ‘제로 코로나’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위드 코로나’ 정책을 비판하며 강력한 방역 기조를 유지해왔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만 발생해도 해당 지역 전체를 봉쇄하고, 핵산 검사로 확진자가 전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봉쇄를 풀지 않는다.실제 중국 시안에선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도시가 전면 봉쇄돼 주민들이 3주 이상 갇혀 지내야 했다.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먹으며 버텼고, 나중에는 생필품 부족으로 게임기와 식량을 교환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외출한 주민들이 방역요원에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올림픽 참가자에겐 약 한달간의 특수한 경험이지만, 중국에선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이다.중국이 이처럼 강력한 방역 정책을 시행하는 건, 중국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당과 정부 중심의 강력한 통제 정책이 자유를 강조하는 서구 체제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은 이번 올림픽 성공을 발판 삼아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3연임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이런 정책 기조가 유지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지만, 기존 방역 정책에서 전환을 꾀하기는 힘들 듯 보인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이번 폐쇄 루프는 단순히 대회를 치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중국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세계의 축소판에 가깝다. 대회가 끝난 뒤 ‘자유세계’로 돌아간 사람들은 과연 폐쇄 루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베이징/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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