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12일 전북 전주역에서 정책 공약을 홍보하는 '열정열차'에 탑승하기 전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2.02.12. ⓒ뉴시스
전주에서 남원을 거쳐 순천·여수까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2일 '열정 열차'로 명명한 정책 홍보 열차를 타고 호남 지역을 순회했다. 공식 후보 등록 하루 전 자신의 최대 취약지를 찾은 윤 후보는 각종 지역 개발 공약을 제시하며 호남 표심 구애에 나섰다.
윤 후보가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강조한 건 '통합 정신'이었다. 그러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현 집권 세력을 겨냥, '소수가 수십 년간 민주화 대가를 누렸다'고 깎아내렸다. 동시에 그간 호남을 소외시킨 국민의힘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달라질 것이라는 다짐도 함께 밝혔다.
집권세력 성토한 윤석열
"더 이상 속아서 안 돼"
일부 시민 규탄 시위했지만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윤 후보는 전날부터 운행했던 '열정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전주역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지지자들은 일제히 윤 후보의 이름을 일제히 외치며 환호했다.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 등은 '윤석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바람개비를 들고 나란히 시민들 앞에 나섰다.
현장이 정리된 후 발언대 앞에 선 윤 후보가 처음 꺼낸 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토였다.
그는 "지금은 우리나라가, 이 대한민국이 국민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많이 훼손되고 경제와 안보와 국가의 기본 틀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며 "철 지난 이념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오로지 갈라치기로 선거에서 표를 얻는 정책만 남발하다 보니까 나라의 근간과 기본이 무너졌다"고 열을 올렸다.
윤 후보는 또한 "호남은 특정 정당이 수십 년 장악해왔다"며 "그런데 되는 게 한 가지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더불어민주당을 직격했다.
그는 "호남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지역이다. 그런데 민주화는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호남의 민주화 열정이라고 하는 건 대한민국의 번영에 큰 기여를 해왔다. 이제는 호남이 그 과실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차에 탑승해 다음 지역까지 이동하는 중에는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를 통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윤 후보는 호남 지역의 맛집이나 개인적인 인연 등을 언급하는 등 호남과의 거리 좁히기에 주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곧이어 도착한 남원역에서는 한 시민이 '정치보복 망언! 규탄한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윤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 후보가 집권 시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에 나서겠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윤 후보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남원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윤 후보는 이곳에서도 집권세력을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념과 생각을 가진 분들이 동참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갈 만한 철학과 정신과는 거리가 먼 생각을 가진 분도 꽤 있었다"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공학적으로 진정성 없이 아무거나 막 내뱉는 그런 정치는 이제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윤 후보는 "이제 더 이상 민주화를 외치면서 이 지역의 번영과 경제발전이 뒤로 밀릴 수는 없다"며 "저희가 정부를 맡게 되면 정말 영·호남 따로 없이 호남에서도 더 이상 '전북 홀대론'이라는 게 나오지 않도록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신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이후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점심시간을 가진 뒤, 남원 춘향골 공설시장을 방문하고 만인의총 참배 일정을 이어갔다.
만인의총에서 나오던 중, 윤 후보는 자신의 '적폐청산 수사' 관련 발언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 앞에 잠시 멈춰섰다. 그는 당 관계자들에게 "내가 얘기 좀 한마디할까. 정치보복 안 한다고"라고 말했지만 주변 인사들의 만류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정착지인 순천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윤 후보는 "민주화라는 게 거기 기여한 소수가 그 대가를 수십 년 간 누려야 하는 게 아니다"라며 "민주화를 했으면 지금부터는 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아직도 호남의 많은 분들이 보시기에 저나 저희 당이나 미흡하다"면서도 "그러나 기대하고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변할 것이니까 지켜봐 주시고, 누가 더 진정성 있고 정직하며 누가 더 선거공학적이지 않고 여러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잘 판단해서 그날 여러분께서 거사를 벌여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질의응답 과정서 나온 돌발 상황
윤석열 '돌출 발언'에 부랴부랴 수습나선 지도부
각 지역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비교적 순탄하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돌발 상황'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벌어졌다.
윤 후보는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혁 방안'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듯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그동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재갈법'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반대해 온 국민의힘 입장과도 상충되는 부분이라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황급히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윤 후보는 '언론의 공정성'과 관련, "진실하지 않다면 공정성은 얘기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한 책임이 부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언론 인프라로 자리 잡는다면, 공정성 문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며 "그런데 아무렇게나 기사가 나가도 거기에 대해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공정성은 얘기하면 뭐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비슷한 입장이 아니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하지만 윤 후보는 "그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예로 든 '언론사 파산' 발언에 대해선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라며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그 정도로 언론사와 기자가 보도할 때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발뺌했다.
그는 "대형 언론사가 그런 소송 하나 가지고 파산하겠냐만, 무책임한 소형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던졌을 때 언론사는 보도 하나로 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윤 후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서도 "아직 우리나라가 보편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손해배상제를 굳이 언론 소송에서만 집어넣는 것에 대해서는 균형이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윤 후보가 질의응답을 마치고 이동한 뒤, 이준석 대표도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이 대표는 "민주당 주장처럼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거나 제한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강화된 조치에 대해서는 저희 당 차원에서도, 후보 차원에서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혼란이 없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당 선거대책본부 전주혜 대변인도 "윤 후보는 언론중재법에 반대 의견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반대한다"며 "다만 현재의 사법 시스템, 준 사법 시스템에 의해서 허위 보도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윤 후보는 여수EXPO역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여수 폭발사고 희생자를 조문하는 일정으로 이날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 후보는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에 대한 질문을 받자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데 대해서는 이론을 달지 않는다"며 "다만 이 법은 정확한 수사와 진상 규명을 통해서 귀책을 정확하게 가려서 적용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건 진상 규명이고 수사당국의 수사"라고 말했다.
'열정 열차'는 오는 13일 보성과 광주, 무안을 거쳐 목포까지 운행된다. 윤 후보는 13일 일정에는 동행하지 않고, 이준석 대표만 일부 일정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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