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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물동에서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다

[개벽예감 479] 7호 물동에서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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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창시에서 완성으로 가는 길

2. 7호 물동에서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다 

3. 4년 동안 계속된 철학적 사유 

4. 세계철학사의 최고발전단계

 

 

1. 창시에서 완성으로 가는 길

 

2022년 2월 10일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0년 2월 9일 평양에 있는 인민문화궁전에서 중앙연구토론회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번 중앙연구토론회는 조선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일로 기념하는 2월 16일 광명성절에 즈음하여 진행된 행사다. 조선의 언론보도를 보면, 요즈음 조선에서는 광명성절 80주년을 경축하는 다종다양한 행사, 집회, 예술축전, 전람회, 도서출판 등이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광명성절 80주년 경축사업에서 조선인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생애를 기념하고, 혁명업적을 칭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위에 인용한 <로동신문> 보도기사에 따르면, 2월 9일에 진행된 중앙연구토론회는 광명성절 80주년에 즈음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업적을 깊이 체득하기 위한 중앙연구토론회”였다고 한다. 그 보도기사를 읽어보면, 이번 중앙연구토론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업적을 제1업적으로 논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논문발표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고,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발전풍부화시켜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정립”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문발표자들은 김일성주의를 정식화하고, 김일성주의를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정립한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1업적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로동신문>에는 이번 중앙연구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내용이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지만, 보도기사에서 간략하게 서술된 내용을 읽어보면, 논문발표자들은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업적을 논증하고 칭송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조선의 내부사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했기 때문에 ‘김일성주의 정식화’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보안법’의 폭압 아래서는 김일성주의 정식화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마저 ‘고무찬양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고무찬양’을 피하고, 학술적 견지에서 개관적 사실을 고찰, 서술하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했다는 사실이다. 학술적 견지에서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인식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1) 조선말대사전을 찾아보면, 정식화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론리적 규칙에 맞게 일정한 명제나 정의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했다는 말은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정립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했다는 것은, 김일성주의가 정식화되기 전에도 주체사상이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이 김일성주의로 정식화되기 이전 시기에 존재했던 주체사상은 오늘의 주체사상과 어떻게 다른가?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5년 12월 28일 김일성 주석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주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1962년 12월 19일 <로동신문>에 실린 ‘1962년 당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의 력사적 의의’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1963년 4월 18일 김일성 주석은 ‘대학의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처음으로 ‘우리 당의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66년 조선로동당출판사가 펴낸 도서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에서 “주체사상의 혁명적 진수”가 “자주, 자립의 사상과 창조적 정신”이라고 서술되었다. 1970년 11월 2일부터 11월 13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확정하였다. 1972년 9월 17일 김일성 주석은 일본 언론매체 <마이니찌신붕>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주체사상이란 한 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

 

위에 서술한 사실들을 보면, 1956년부터 1972년에 이르는 기간에 주체사상이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주체사상은 사상리론적으로 완성된 오늘의 주체사상이 아니라,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이었다. 지난 시기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은 독창적으로 완성된 혁명사상이 아니라, 맑스-레닌주의를 조선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혁명사상이었다. 이를테면, 1972년 12월 27일에 제정된 조선의 ‘사회주의헌법’ 제4조를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명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초 창시단계에 있었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체계화하여, 독창적이고 완성된 혁명사상으로 정립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30대 초반의 청년 사상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2. 7호 물동에서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선명한 기억이 조선의 역사에 수록되어 있다. 그날은 1971년 9월 4일 토요일이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두만강 상류에 어느덧 가을빛이 무르익고 있었다. 량강도 각지를 현지지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토요일을 맞아 휴식을 권유하는 수행원들의 청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두만강 상류에 있는 무포에 갔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무포에 산천어가 노니는 낚시터가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는 7호 물동에 그 낚시터가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냇물이 흘러내려가지 않고 고여 있도록 막아놓은 곳을 물동이라고 한다. 7호 물동이라고 했으니, 두만강 상류에 물동이 여러 군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행원들과 함께 무포의 7호 물동에 낚시대를 드리웠다. 이윽고 산천어들이 다가와 낚시미끼를 연방 물어 당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산천어의 입질을 전혀 감촉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수행원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들이 다가오는 인기척을 듣고서야 사색을 멈추었다. 2019년 2월 19일 <로동신문> 기사와 2021년 2월 19일 <조선중앙통신> 기사에 따르면, 그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포의 7호 물동 낚시터에서 수행원들에게 “나직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는 데서 막혔던 생각이 확 트인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어느 고전에도 비기지 못할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기 못하였지만, 가까운 앞날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여 세상에 선포하고 김일성주의기치를 시대의 앞장에서 높이 추켜들고 나가려고 한다.”  

 

위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그날 무포의 7호 물동 낚시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깊은 사색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 분명하다. “막혔던 생각이 확 트인다”라는 말은, 오랫동안 탐구하고 사색해오던 중에 진리를 깨달은 극적인 체험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그날 무포의 7호 물동 낚시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깨달은 새로운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역사자료에 따르면,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971년 9월 6일 백두산 정상에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있는 장군봉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하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밝아오는 장엄한 해돋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고 한다. “막혔던 생각이 확 트이는” 체험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장엄한 해돋이의 붉은 노을을 바라본 것은,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리론활동이 어느덧 절정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체험이었다. 

 

2020년 2월 14일 조선의 언론매체 <조선의오늘>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1년부터 4년 동안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던 자신의 사상리론활동에 대한 회고담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었다.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중요저서를 전면적으로 연구분석하는 일은 실로 방대하였습니다....나는 그때 맑스와 엥겔스, 레닌이 쓴 철학 저서와 경제학 저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중요 저서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간단한 표현을 놓고도 며칠 동안 생각하였으며 어떤 표현은 몇 달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눈에 핏발이 서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고 목이 쉬도록 토론하였습니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독학연구기간이였습니다.”

 

맑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가 1837년부터 1895년까지 집필한 저서들을 집대성한 맑스-엥겔스 전집은 50권이고, 레닌(1870~1924)이 1893년부터 1923년까지 집필한 저서들을 집대성한 레닌전집은 16권이고, 레닌선집은 40권이다. 그러므로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하려면, 총 106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집을 독파해야 한다.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기 위해 맑스-레닌주의의 방대한 저작을 “눈에 핏발이 서는 줄도 모르고” 불철주야 독파했으며, “목이 쉬도록 토론하였다”고 한다. 목이 쉬도록 토론하였다는 말은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한 사회과학자들과 학술논쟁을 벌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회고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1년부터 1974년까지 4년 동안 맑스-레닌주의를 독학연구하면서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는 사상리론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였던 것이다.  

 

3. 4년 동안 계속된 철학적 사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1년부터 4년 동안 피타는 노력으로 진행한 사상리론활동에서 제기된 가장 중대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체계화하고 정립하는 자신의 사상리론활동에서 가장 깊이 연구한 것은 세계관의 문제였다.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철학적 세계관 위에 정립해야 그 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 심층적으로 연구했던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철학은 세계의 본질을 해명하고, 세계의 보편적 운동법칙을 해명한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같은 개별과학의 차원을 뛰어넘는 궁극의 학문이다. 세계의 본질을 해명하고, 세계의 보편적 운동법칙을 해명하는 세계관의 문제는 반드시 철학적 사유에 의해서 해명된다. 

 

세계관의 문제를 해명하는 철학적 사유의 대상은 당연히 ‘세계’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세계는 5대양 6대주로 표상되는 지리학적 개념이 아니다.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세계는 여타 개별과학들이 더 이상 다른 개념으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추상화(abstraction)된 최고 개념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한다. 최고 개념으로 추상화된 ‘세계’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그것의 본질과 보편적 운동법칙을 해명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세계관의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이 세계관의 문제를 해명하려면, 철학의 근본문제(fundamental question of philosophy)를 해명해야 한다. 철학의 근본문제를 해명하지 않고,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하는 길은 없다. 철학의 근본문제는 추상적 사유가 도달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철학이 철학의 근본문제를 해명할 때, 여타 개별과학들이 더 이상 다른 개념으로 환원할 수 없는 두 개의 철학개념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물질(matter)과 의식(consciousness)이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에서 논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는 두 개의 궁극적인 철학개념인 물질-의식의 관계에 관한 문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세계철학사에 여러 가지 잡다한 철학사조들이 나타났지만, 모든 철학사조의 근원은 결국 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해명으로 귀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고대철학사에서는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자연(nature)-영혼(spirit)의 관계문제로 이해했고, 근대철학사에서는 그 문제를 존재(being)-사유(thinking)의 관계문제로 이해했다. 엥겔스는 1886년에 출판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와 고전 도이췰란드 철학의 종말(Ludwig Feuerbach and the End of Classical German Philosophy)’이라는 제목의 고전에서 물질-의식 관계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문제, 자연에 대한 영혼의 관계문제 - 철학 전반의 최고문제...에 대한 철학자들의 해명은 그들을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자연에 대한 영혼의 일차성(primacy)을 주장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세계가 어떤 형태로 창조되었다고 추정하는 사람들은...관념론(idealism)의 진영을 이루었고, 자연이 일차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유물론(materialism)의 다양한 학파들에 속했다.”  

 

위의 인용문에 서술된 것처럼, 엥겔스는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자연-영혼의 관계문제 또는 존재-사유의 관계문제라고 서술했지만, 그의 철학적 해명을 이론적으로 더욱 정치하게 다듬은 후대의 맑스-레닌주의 철학자들은 세계철학사를 관통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로 정식화했으며, 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해명에 따라서 철학적 세계관이 대립적인 양대 학파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논증했다. 다시 말해서, 유물론적 세계관과 관념론적 세계관으로 갈라졌고, 변증법적 세계관과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철학사는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과 형이상학적 관념론(metaphysical idealism)이 상호대립해온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해명, 다시 말해서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유물변증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철학명제들이 도출된다.

 

1) 물질은 의식에 앞서 존재한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이것을 물질의 일차성(primacy of matter)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했다. 물질로서의 세계는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무한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물질세계의 일정한 조건들이 충족된 발전단계에 이르러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며, 동시에 물질의 특수한 성질이다. 의식은 고도로 발달한 생명유기체인 인간의 두뇌에서 인체생리학적 작용을 통해 생성된다. 의식은 사회적 의식으로 발생하고, 존재한다. 

 

2) 세계는 물질이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이것을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material unity of the world)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했다.  

 

3) 물질의 존재양식은 운동(movement)이며, 물질이 존재하는 보편적 형태는 시간과 공간이다. 물질의 운동은 변화(change)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물질의 운동형태를 기계적 형태, 물리적 형태, 화학적 형태, 생물학적 형태, 사회적 형태로 분류했다.  

 

4) 의식은 물질세계를 반영(reflection)한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의식이 물질세계를 수동적으로 반영할 뿐 아니라, 물질세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의식은 자연과 사회의 발전법칙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조하고 변혁하는 실천도구로 된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위에 서술한 네 가지 철학명제를 해명함으로써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지성을 지배해온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타파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영구불변의 진리로 확증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세계관의 진리로 확증하고, 물질의 보편적 운동 및 발전의 법칙을 논증한 것은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세계철학사에서 이룩한 거대한 공적이다. 

 

그런데 물질의 일차성과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에 근거한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세계관, 그리고 물질의 보편적 운동 및 발전의 법칙에 근거한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세계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사상가가 있다. 그 누구도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자기완결적인 진리라고 믿었던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세계관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사상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1년부터 1974년까지 4년 동안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체계화하고 정립하기 위해 맑스-레닌주의의 방대한 저작을 눈에 핏발이 서는 줄도 모를 정도로 독파하고, 목이 쉬도록 토론하는 사상리론활동에서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자기완결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도달하지 못한 더 높은 세계관의 진리를 직관했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년 동안의 철학적 사유에서 직관했던 세계관의 진리는 무엇인가?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는 사람의 본성을 해명하고,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는 데서 요구되는 1차적인 문제인데,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그런 1차적인 문제를 해명하는 데서 사유를 멈추었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기한 의문이었다. 철학적 사유가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는 데서 멈춰버리면, 사람의 본성을 해명하지 못하게 되고, 또한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도 해명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기한 중대한 문제의식이었다. 

 

그런 세계관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new fundamental question of philosophy)로 확정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1990년 5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사회주의의 사상적 기초에 관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물론 주체철학은 맑스주의 유물변증법의 필요한 원리를 포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철학은 철학의 근본문제부터 새롭게 제기하고 그 구성체계와 내용도 새롭게 체계화한 독창적인 철학입니다.”

 

 

4. 세계철학사의 최고발전단계

 

일찍이 세계철학사가 알지 못했던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 근본문제를 해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리론활동에서 독창적인 철학개념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주체(Juche)’라는 철학개념이다. 주체는 원래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에 나오는 개념이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라는 개념을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는 세계관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세계철학사를 살펴보면, 주체라는 철학개념이 오랜 기간 사용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후 322)가 주체(subjectum)라는 철학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래, 스콜라학파의 철학자들(1100~1700),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조오지 버클리(1685~1753), 데이빗 흄(1711~1776), 에른스트 마흐(1838~1916), 요한 피히테(1762~1814), 아서 쇼펜하우어(1788~1860), 게오르크 헤겔(1770~1831) 등이 주체라는 철학개념을 각각 사용했다. 

 

하지만 지난 시기 세계철학사에 등장했던 주체라는 철학개념은 객관실체를 인지하는 인식주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주관(主觀)이라는 용어와 혼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주체와 객체, 주관과 객관이라는 인식론적 대칭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주체라는 철학개념을 인식영역에서 사회력사영역으로 끌어낸 철학자는 칼 맑스였다. 맑스는 주체라는 철학개념을 사회적 인식의 주체이며 동시에 사회적 실천의 주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그는 주체라는 철학개념을 세계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라는 철학개념을 세계관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새로운 세계관에 나오는 철학개념으로서의 ‘사람’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주체’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주체는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는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철학개념으로 되었다. 

 

세계철학사서 사용되어온 주체(주관)라는 철학개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주체라는 독창적인 철학개념이 혼동될 수 있으므로, 한때 조선의 사회과학계에서는 주체(主體)라는 기존용어 대신에 주자(主自)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라는 철학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하는 철학개념으로 사용되는 주체는 세계철학사에서 사용되어온 주체(주관)와 전혀 다른 개념이므로, 조선에서는 주체를 일반명사인 썹젝트(subject)로 번역하지 않고, 우리말을 음역한 고유명사인 주체(Juche)로 번역한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19세기에 정립한 철학적 세계관은 물질이라는 유물론적 철학개념에 근거한 세계관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세기에 정립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은 주체라는 독창적인 철학개념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주체라는 철학개념에 근거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을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 문제를 주체라는 철학개념으로 해명하는 사상리론활동에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 곧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을 정립했다. 조선에서는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였다. 지난 시기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세계의 본질을 해명하였다면, 새로운 시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였다. 

 

세계철학사를 살펴보면, 지난 시기 여러 철학자들이 사람의 본성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돋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한 세계관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본성을 밝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계관과 무관한 존재로 보면서 사람의 본성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했으니 사람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전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었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설명했을 뿐이다. 그들과 다르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람-세계의 관계문제를 해명한 세계관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본성을 해명하였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지니는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해명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논증한 새로운 철학명제에 따르면,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이 지니는 본질적 특성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였다. 지난 시기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세계의 보편적인 운동법칙을 해명하였다면, 새로운 시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논증한 새로운 철학명제에 따르면, 사람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자기의 본질적 특성으로 지닌 주체로서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며, 사람은 주체의 지위를 가진 것으로 하여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체계화하고 정립하였다. 조선의 역사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2월 4일부터 2월 19일까지 15일 동안 평양에서 진행된 전국 당선전일군강습회를 지도하면서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조선로동당의 최고강령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강습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김일성주의는 주체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위대한 혁명사상입니다. 김일성주의는 한 마디로 말하여 주체의 사상, 리론 및 방법의 체계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관한 리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입니다. 인류사상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위대한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기초하여 혁명리론과 령도방법이 전일적으로 체계화된 여기에 김일성주의가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리론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김일성주의야말로 우리 시대, 주체시대의 혁명의 참다운 지도사상, 지도리론, 지도방법입니다.” 

 

1982년 4월 1일 <로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2년 3월 31일에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장문의 논문에서 창시단계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고, 그 체계와 내용과 원리 및 방법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2년 1월 20일에 발표한 ‘주체문학론’에서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이 세계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을 위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를 세우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에 대하는 관점과 립장을 새롭게 밝힌 주체의 세계관은 세계관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룬다.” 

 

지난 시기 맑스와 엥겔스가 창시한 변증법적 유물론이 레닌에 의해 더욱 심화발전되어 맑스-레닌주의로 정식화되었다면,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주체사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더욱 심화발전되었으므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사상을 아무리 쥐어짜내야 김일성주의밖에 나올 것이 없다고 하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류하였다. 

 

2012년 4월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나가자’에서 주체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하였고,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조선로동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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