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두절, 무장군인
아니나 다를까, 오전부터 무장 군인(국가 방위군)들이 들어와 마을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무장을 하고 순찰을 한다 해도, 마을 안에서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짐작하고 있었다. 접전지라면 모를까, 우리 마을은 점령지니까, 단일 조직이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이른 아침 먹통이 된 통신은 정오가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을 받고 8일째 격리 중이었다. 물론 7일이 지나면서 공식 격리는 해제된 상태였지만, 혹시나 싶어 자발적으로 일주일 더 격리를 연장해 둔 상황이었다. 그러니 먹통의 이유를 어디 나가 물을 수도 없었다. 전화와 인터넷이 없으니 소식통의 최전선에 있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물어 확인할 수도 없었다. 완벽한 단절이었다.
유일한 이웃, 옆집 할아버지 댁에 소리쳐 물었다. 할아버지 댁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같은 시기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되었지만 일찍이 당신 스스로 격리를 해제해버린 할아버지가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올라오며 가져온 소식은 마을 전체의 통신 두절이었다.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다. 우리 집만 먹통일 경우,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만 마을 전체가 먹통이라면 시간이 가다 보면 자연히 해결이 되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당일 오후에 약속된 수업이었다. 공식적 격리가 해제되었으니 대면 수업을 해야 했지만, 일주일 더 비대면 수업을 하기로 학과에 보고했고, 학생들과도 협의가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비스가 사라져 버렸으니, 비대면 수업을 할 수가 없다. 그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릴 방도가 없었다. 그 때 퍼뜩, 공항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공항에 간다면, 공항은 연방 소속이니 어쩌면 인터넷이나 전화 신호가 살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항 역시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이 모두 불통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현실이었다. 전화를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듣자 하니, 우리 마을과 학교가 있는 K시 사이에 이미 무장한 군인들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들고 나는 차들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수업 취소를 알릴 방법이 없는 가운데, 아랫마을로 내려가신 옆집 할아버지가 오후에 K시로 나가는 사람을 수소문해 오셨다. 급히 여차저차 하여 오늘 수업이 취소된다는 내용을 글로 적었고 학생 한 명의 전화번호를 적어 전달했다. K시로 나가 어디서든 전화 신호가 잡히거든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밤이 늦도록 통신은 먹통이었다. 마침 오후에 K시로 나갔던 마을 사람이 우리 집으로 와 학생과 무사히 통화가 되었고 종이에 적어 준 내용을 잘 읽어 줬다는 소식과 함께 새로운 뉴스를 전해주었다. 학교의 본 캠퍼스가 있는 K시뿐 아니라 주 내 다섯 개 도시도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 기관의 수업이 전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관련 뉴스는 어디에?
목요일(2월 10일)이 되면서 인터넷과 전화 서비스가 재개되었다. 수시로 끊어지긴 했지만, 대략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색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뉴스가 없었다. 분명히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했는데, 방송과 언론이 다룬 자세한 소식은 없었다. 총격전이 시작된 지 나흘 째였지만 어느 방송사나 신문사도 구체적인 소식을 전하지 못하거나 혹은 전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계속하여 벌어지는 총격전에 대한 주 정부의 공식 발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전 발표된 수업 중단은 주말을 끼고 닷새간 계속될 것이고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에 그 다음 주 수업 개시 여부를 공지할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에겐 수업 중단과 함께 각자 안전한 곳에 머무르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행정직과 노무직은 정상 출퇴근을 하라는 내용이 발표되면서 당장 그들의 불만이 표출되었다. 목숨을 담보로 차별하지 말라는 항의였다. '우리 몸뚱이는 방탄조끼냐?'라는 자조와 원망이 SNS를 타고 빠른 속도로 번졌다.
그 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주 정부가 공식 입장을 냈다. 연방 정부로부터 1300명의 무장 병력을 지원받았고 이들이 주 병력 1700여 명과 함께 당일 오후 K시를 비롯 주요 도시 곳곳에 배치되었으니 조만간 이 상황이 안정화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가 절대 혼자가 아니고 대통령 이하 연방 정부의 든든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지난해 11월에 취임한 주지사는 여당 소속이다).
▲ 총격전을 벌이는 세력과 원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공식 발표도 없었다. ⓒ Milenio 화면
그러나 그뿐, 총격전을 벌이는 세력과 원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공식 발표도 없었다. 어쩌면 너무 뻔한 내용이라 발표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여러 날 총격전이 계속되면서 상이한 버전의 이야기들이 항간에 떠돌았다. 마약 카르텔 조직 간 싸움이라는 설과 조직과 주정부와의 싸움이라는 설이 나뉘었다.
시신들, 그리고 메시지
그러거나 말거나, 총격전은 기승을 부렸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어느 집에 수백 발의 총격이 가해지는가 하면, 백주에 시내 한 복판 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대학생 한 명이 오인 사격을 받아 죽으면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뉴스의 초점은 학생의 죽음이었지만, 교통량과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시내 가장 복잡한 도로에서 한 낮에 400여 발에 가까운 총탄이 퍼부어졌다는 소식이 내겐 더 절망적이었다.
금요일(2월 11일)이 되면서 사태는 더 악화하는 듯했다. 날이 밝으면서, 주립대학교 캠퍼스 대로 한복판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총장실과 가까운 의과대학 바로 앞이었다. 승용차 트렁크에 두 구의 시체를 구겨 담고 일부러 트렁크 문을 활짝 열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방치해 둔 방식이었다. 전형적인 나르코들의 수법이었다. 아침 일곱 시쯤 차량과 시체들이 버려졌다고 하니, 누구라도 목격했을 것이지만, 단 한 명의 목격자도 나오지 않았다.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는 '시신의 부분'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시신의 부분이라니, 참 이해가 어렵지만, 토막 시체를 말한다. 가히 몇 명에 해당하는지도 알 수가 없고 신분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시신의 조각들이 커다란 비닐 봉투에 담겨 어느 거리 모퉁이에 태연하게 버려지는 방식이다. 이 또한 마약 카르텔들이 일반 시민들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공권력을 조롱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 pixabay
토막시체들뿐 아니라, '나르코 메시지'라 불리는 대자보들이 시내 곳곳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각 조직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공권력을 조롱함과 동시에 정치인들을 협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인데, 곳곳에 걸린 나르코 메시지에서는 현 정부뿐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호족처럼 지방 정치를 주물렀던,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정치인들의 이름이 선명하게 호명되었다.
'우리가 굳이 입 열어 까발리기 전에 군병력 철수시키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암시적 명령임을, 이곳 멕시코에서는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충분히 알고 있다. 물론, 나르코 메시지에 이름이 호명된 정치인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과연 그 말을 곧이듣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이 또한 흔히 있는 일이라 놀랍지 않았지만, 나르코 메시지가 적힌 대자보가 걸리는 수 분, 혹은 수십 분 시간 동안 그 어떤 공권력도 현장에 도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겐 늘 놀라운 일이다.
총격전, 방화, 사체 유기, 나르코 메시지 등이 주 전체를 휩쓸기 시작한 지 보름 가까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그 사이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숫자가 33명에 이른다. 잠깐, 아주 잠깐 전국 뉴스까지 나오더니, 이젠 지방 뉴스도 심드렁하다. 도통 소식이 없다.
오늘 아침 마침 길에서 만난 촌로에게 왜 뉴스가 나오지 않는가 여쭈었더니, 그들도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나르코 메시지가 무서워 그러지 않았겠냐고, 그런 뻔한 걸 굳이 묻느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한다.
▲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는 '시신의 부분'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시신의 부분이라니, 참 이해가 어렵지만, 토막 시체를 말한다. ⓒ Milenio 화면
해결책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물을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어쩌면 '국가가 보유한 탱크와 전투기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밀어버리거나 쓸어버리면 될 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글을 맺기 전, 나도 수십 번 나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이웃과 동료들에게 실없이 물어본다. 지난 십 수 년 지켜본 나나 수십 년 이곳에서 나고 자라 살아온 이들의 답은 늘 같다. '해결책이 없다!'
작금의 이 폭력은 이미 수십 년 전 라틴아메리카 각 국을 향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패권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이 막장에 중국도 숟가락을 들고 덤비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면에 다시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마약과 무기를 둘러싸고 줄줄이 엮여 있기에, 이 나라 독자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탱크가 와서 밀어 버리고 전투기가 와서 쓸어 버린 들, 속으로 썩어 문드러져 퍼지는 고름을 그대로 둔 채 주구장창 반창고만 붙이는 꼴인 셈이다.
▲ 멕시코 기 ⓒ pixabay
2월 22일, 수업은 재개되었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엊그제 어느 초등학교에 핏빛 붉은 글씨로 쓰인 장문의 나르코 메시지가 걸렸다는데, 간 밤 곳곳에서 차량이 불에 탔다는데, 어느 거리에서 다시 또 시신 조각들이 담긴 비닐봉지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는데, 어제 하루 세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데,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그렇게 일상을 살아간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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