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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양봉 농민이 말하는 '꿀벌실종사건의 전말'

[내일의 기후] 농민들의 호소... 벌이 사라지지 않는 환경 만들기가 시급하다

22.03.21 05:55l최종 업데이트 22.03.21 05:55l
꿀벌
▲  꿀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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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후 분야의 가장 핫한 이슈는 '꿀벌 실종 사건'이다. 날이 풀려 겨우내 덮어놨던 벌통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 있더라는, 미치고 펄쩍 뛸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언급했다는 '벌이 사라지면 4년내 지구가 멸망한다'는 워딩까지 함께 회자된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내 가슴을 숙연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벌은 절대로 집 안에서 죽지 않는다는 20년 차 양봉 농민의 말이었다.

"벌은 절대로 벌통 안에서 안 죽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서 애벌레와 자기 집단을 지키려고, 병에 걸리면 심지어 날개가 부러져서 기어나가더라도 밖에 나가서 조용히 죽는 거여. 얘들이."

농민은 내게 말했다. 이 사건은 꿀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이대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이 사건을 단순히 기후변화의 징후나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꿀벌실종사건'의 이면에는 기후와 환경 변화 속에서도 국가의 체계적인 관리 없이 농민에게만 맡겨온 곤충 산업 관리의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가 담겨 있다.

농민들의 인터뷰와 농촌진흥청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꿀벌들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003년 부산항

불청객이 입국했다. 등검은말벌, 꿀벌을 잡아먹는 육식곤충으로 주로 벌통 출입구 근처에서 일벌들을 포획한다. 방제가 어렵고 증식은 매우 빨랐다. 농촌진흥청의 말벌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말벌 중 등검은말벌의 비중은 2018년 49%이던 것이 1년 뒤인 2019년에는 72%로 증가했다. 환경부는 2019년 등검은말벌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완전 방제는 어려운 상황.

2009년 '꿀벌 에이즈' 창궐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서 '꿀벌 에이즈'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창궐했다. 이 병은 벌의 애벌레가 번데기로 되기 전에 괴사시켜 벌무리(봉군)를 전멸시킨다. 재래종 꿀벌인 '토종벌'이 무너졌다. 2009년 38만 3418군이던 토종벌은 5년 뒤 1/4 수준인 9만4383군으로 줄었다. 면역력을 갖춘 품종이 개발됐지만 토종벌의 봉군수는 지금도 2009년의 1/3 수준인 13만여군 수준.

늘어나는 폭염에 길어지는 장마

불볕더위가 계속되면 곳곳에서 '벌쏘임' 사고가 많지만, 그건 말벌들 이야기다. 꿀벌은 좁은 벌통 안에서 밀집해 생활하기에, 한여름 무더운 벌통 안에서 열을 식히느라 기진맥진, 폭염엔 알도 잘 낳지 않는다. 그래서 농민들은 차광천막을 치거나 큰 물통을 놓아 열을 식히려 하지만, 한 해 평균 11일이던 폭염일수(32도 이상)는 2018년 35일이었고 2021년은 18일에 달했다. 장마가 길어지면 꿀벌은 활동을 못한 채 벌집 안에 몰려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병은 많은데 약이 없다
 
큰사진보기날이 풀려 겨우내 덮어놨던 벌통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있더라는, 미치고 펄쩍 뛸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날이 풀려 겨우내 덮어놨던 벌통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있더라는, 미치고 펄쩍 뛸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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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꿀벌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꿀벌응애'라 불리는 크기 1㎜ 남짓한 진드기다. 꿀벌 몸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 먹는데 꿀벌들의 체중이 줄고 심하면 불구가 된다. 기형 날개를 만드는 바이러스를 옮긴다. 응애를 예찰하기도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약이 없다는 거다. 국내에서 제대로 생산된...

"병은 많은데 치료약 내지는 구제약이 국내에서 제대로 생산된 약이 단 한 가지도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수입 약을 써요. 중국산. 중국이 양봉강국이라 약이 많이 나오는데, 그게 검증된 것도 아니고 사용법도 잘 모른 채 쓰는 게 많아요. (수입약의 문제는?) 내성이 생기더라구. 계속 쓰다 보면. 처음 쓸 때는 잘 듣고 두 번째 쓰면 조금 덜 듣고 그런 식으로 약을 써도 잘 듣지 않아요." - 오성표 전남 고흥군 양봉협회장

꿀이 안 나온다, 그러다 보니...

최근 2년 간 꿀 생산량이 급감했다. 잦은 비와 이상저온, 꿀이 안 나와도 너무 안 나왔다. 특히 지난 2020년 국내 아카시아 벌꿀 총생산량은 과거 최대 흉작을 기록했던 2014년(2592톤)보다 10.4% 감소한 2322톤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평년의 30%밖에 꿀이 안 나온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보니 일부 농가에서는 꿀벌들에게 꿀 대신 인공 제조한 설탕 성분을 먹이는 사례가 생겼다. 꿀을 먹고 사는 꿀벌들이 설탕 성분으로 연명한 것이다. 면역력 감소...

그리고 지난 겨울

겨울인데 따뜻했다. 이상 고온 현상. 앞서 가을에는 너무 추웠다. 저온 현상. 벌들이 한창 발육해야 할 가을에 온도가 낮아 잘 크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월동에 들어간 11~12월에는 고온현상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했다. 꽃이 피자 월동중이던 일벌들이 벌통에서 나와 화분채집에 나섰다. 바깥활동으로 체력이 소진됐다. 그런 가운데 겨울밤이 찾아왔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힘 빠진 일벌들이 집(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냉혈곤충인 꿀벌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여왕벌을 중심으로 단단한 공 모양으로 뭉쳐 서로의 체온을 유지한다. 월동 봉군(벌무리)이라고 한다. 그 단단한 공이 느슨해질수록 추위를 나기 힘들게 되는데, 가장 바깥에서 추위를 견뎌주던 일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일부는 이미 말벌에게 잡혀먹고, 번데기들은 응애에게 당하고, 그런 식으로 벌무리(봉군)가 느슨해졌다.

"강한 봉군들은 단단하게 밀집해 외부환경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약한 봉군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 농촌진흥청 민관합동 조사결과

"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

이번 참사가 벌어진 후 농식품부, 농촌진흥청 등은 농업경영회생자금 등 종합적인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농민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양봉농가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벌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양봉이 축산업으로 분류돼 있어요. 축산... 양봉하면 벌꿀이나 로열 젤리, 프로폴리스, 이런 것만 떠올리는데 그 전에 꽃가루를 옮기는 화분매개 곤충산업입니다. 벌이 없으면 채소도 과일농사도 힘들어요. 이런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외국처럼 체계적인 연구와 행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게 신호예요. 더 이상은 못 버틴다는..." - 오성표 전남 고흥군 양봉협회장

농민들은 친환경 약제개발과 사용법 보급, 밀원식물 조성과 관리, 과수농가 약제살포시기 조율 등 종합적인 양봉산업 육성시스템을 언급했다. 특히 이번 산불피해지역 중 가장 화재위험에 취약한 곳이 소나무 숲이었던 만큼, 대체 수종으로 아카시 나무 등 꿀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산불화재시 소방수 역할이 가능한 활엽수로 식재하면 꿩먹고 알먹고식 처방이라며 밀원수림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회 입법차원에서는 지난 2020년 8월부터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첫 걸음을 뗀 만큼 '벌이 사라지지 않는 환경' 만들기에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

<참고자료>
- 김경문 등 '아카시아 벌꿀의 연간 생산량 현황과 환경 요인 분석' (Journal of Apiculture, 2021.36(1) : 11-16)
- 농촌진흥청, '전국 양봉농가 월동 꿀벌 피해 민관 합동 조사 결과' (농촌진흥청 보도자료, 2022.3.11)
- 권민지, '꿀벌 에이즈에 폭염, 농약까지… 위기의 꿀벌 세계 [이슈&탐사]' (국민일보 온라인, 2021. 7.21)
- 조홍섭, '꿀벌 진드기는 피 아닌 '간' 빤다, 50년 만에 잡힌 오류' (한겨레 온라인, 2019.1.15)

덧붙이는 글 | 복수의 농민 인터뷰는 오성표 전남 고흥군 양봉협회장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양봉농민으로 2022년 3월9일과 3월10일, 3월17일에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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