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계획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는 뜻을 내비쳤다. 앞서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오는 5월10일 취임식을 마친 직후 용산에서 근무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보다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는 오는 22일 국무회의에서 윤 당선인 쪽이 요청한 496억원의 집무실 이전 예비비를 상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22일자 아침신문들은 1면에 ‘신구 권력의 갈등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신문들은 또 1면에 윤 당선인이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을 만난 소식에 집중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게 정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거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은 재계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일보 “문재인 안보 말할 자격 있나” 한겨레 “윤 경청하라”
청와대 국방부 이전 계획 반대에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안보를 말할 자격이 있냐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당장 만나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두 신문은 20대 대선에서 박빙의 투표율 결과를 보여주며 정치와 통합의 협치를 주문했는데 벌써 갈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NSC 회의 결과를 윤 당선인이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일보는 2면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 인사권에 이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싸고 윤석열 당선인 측과 충돌하면서 신구 권력 간 충돌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며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윤 당선인에게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만나자고 했었던 일을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불과 사흘만인 21일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협조할 뜻이 없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원활한 정권 인수인계를 할 것이냐, 아니면 6월1일 지방선거를 의식해 새 정부와 대립 구도를 만들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날 NSC 회의를 직접 주재한 뒤 기류가 급변했다. 여권에선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 중에 윤 당선인과 협력하자는 ‘협조파’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러서면 안 된다는 ‘투쟁파’ 중 ‘투쟁파’에 힘을 실어준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았다”며 “실제 청와대는 최근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한 비공개 여론조사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찬반 의견이 비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때 청와대 폐지와 집무실 이전을 약속했던 일을 언급하며 “하지만 청와대에 들어가자 약속을 저버렸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후임자가 하겠다면 도와주는 게 도리다. 그런데 근거도 불명확한 안보 공백을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다른 사람도 아닌 문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을 들어 안보 공백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쏴도 도발이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올 들어 유엔의 대북 규탄 결의안엔 세 번이나 불참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이후 북 도발에 대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거의 주재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기본 책무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 뒤 “이날도 ‘북한’이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위협하는 주체도 없이 무슨 ‘안보’인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완승도 완패도 아닌 박빙의 결과로 우리 정치에 통합과 협치를 주문했다. 그런데 여야는 그런 민의를 배신하고 갈등과 대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서둘러 만나 갈등을 해소하고 원활한 정부 인수인계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 약속한 통합·협치의 선거 민의를 받드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새 정부와 180석 야권이 싸움만 했다가는 국민만 불행해진다”고 우려했다.
한겨레는 4면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이 21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합동참모본부가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로 연쇄 이전하는 비용이 1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전날 윤 당선자가 496억원의 집무실 이전 비용만 제시했다가 하루 만에 집무실 이전 비용의 2배가 넘는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을 실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도 3면 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는 보도를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문 대통령의 청와대 국방부 이전 반대에 계획에 “타당한 의견 표명이다.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이 달린 국가 안보에 털끝만큼의 공백도 있어선 안 된다는 건 기본 상식”이라며 “누가 뭐래도 5월9일까지 국가 안보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오롯이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 합참 등 국가 안보 중추 시설의 연쇄 이전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피할 수 없는 책무다. 윤 당선자는 엔에스시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이어 “이런 점에서 이번 엔에스시의 의견 표명을 신구 정권 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윤 당선자 쪽에선 새 정부의 출범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상식 밖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윤 당선자가 국가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는 더 이상 비현실적인 ‘취임 전 이전’에 집착하지 말고, 취임 뒤 여론 수렴과 충분한 검토를 거쳐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선·동아 “기업이 곧 국가인 시대” 한겨레·경향 “노동자 목소리 귀 기울여야”
윤 당선인이 21일 경제 6단체장들을 만나 “정부 주도에서 이제는 민간 주도 경제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기업을) 도와드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게 정부가 해야할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차기 정부에서 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지금 전 세계에서 정부가 기업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거꾸로였다. 기업 아닌 민노총의 전성시대였다”며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급속 인상, 경직적 주52시간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등 각종 반기업 규제를 쏟아냈다. 노동3법 개정, ILO협약 비준 등 노동계 요구는 대폭 수용했다. 이 와중에 민노총은 불법·폭력 면허증을 받은 집단이 됐다”고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정부가 노조의 불법·폭력에 법대로 대응하기만 해도 노사 관계는 상당 부분 정상화될 수 있다”며 “지금 세계는 기업이 곧 국가인 시대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많이 가진 나라는 잘 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못 산다. 정부 정책이 이 시대 흐름을 막지는 않는지 늘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과 청와대 이전 후보지 결정을 마친 당선인의 첫 대외 행보가 경제단체장과의 만남이란 건 상징적이다. 기업규제 3법, 노조 3법 등 기업을 위축시키는 입법과 정책 때문에 한국의 경제계는 5년간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그만큼 새 정부에 거는 기업들의 기대도 크다”고 쓴 뒤 “노동법제 개정, 많은 ‘대못 규제’ 완화는 입법사안이어서 야당과의 협치가 본궤도에 올라야 기대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거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도입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만큼 경제계 의견을 경청해 부작용을 줄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에 불리해 보이는 노동법제 개정을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친기업’ 일변도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윤 당선자는 또 ‘(재계가) 저와 언제든 직접 통화할 수 있게 하겠다’며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개통했던 대통령과 기업인 간 직통전화를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이어 “경제단체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규제의 합리적인 개선을 건의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중대재해법을 완화해달라고 했다”고 지적한 뒤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심각함에도 처벌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못 미치는 상황을 알고나 이런 주장을 하는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경제단체들은 주 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제 개선, 상속세·법인세 완화 등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해선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하지만, 동시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그리고 반시장적 행태를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공정 경쟁 확립이라는 공약이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다. 현시점에서 기업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자칫 불평등을 강화할 뿐 아니라 심각한 경제·사회적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전면적·일방적 규제 완화는 사회 분열을 파생시켜 한국 경제를 더 위기 속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인수위는 이날 회동을 추진하면서 전경련이 주도하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기업들의 자금모금을 주도해 국민적 비난을 받은 게 전경련이다. 그 여파로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탈퇴해 조직이 사실상 형해화됐다”며 “인수위는 실무자의 실수라고 설명했지만 윤 당선인의 기본 인식을 드러낸 게 아닌가 우려된다. 노사 간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윤 당선인은 노동계와의 만남도 조속히 추진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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