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맥도 피하고 수구(水口)도 피했으니 이만한 집터가 어디 있겠소."
우리 집을 찾은 민박 손님 가운데 내로라하는 건축가도 있었고,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터를 본다는 지관(地官)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 집터를 이렇게 평했다. 뒷짐을 진 채 멀리 지리산을 내다보며 집터를 해설하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심지어는 이 집 어느 방에서 아이를 가지면 좋을 것인가를 봐주겠다는 풍수쟁이도 있었다. 자식이 혼인 할 때 자기가 찍어주는 방에서 아이를 가지도록 하면 기막힌 운세를 가진 자손을 볼 거라고도 했다.
"매사에 조심혀. 그 집 전에 살던 사람이 망해서 나간 집이여."
"그 집 예전에 면장이 살던 집이여. 그 전에는 사오백 석 하는 부잣집이고."
마을 이웃들의 우리 집터에 관한 평가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이는 좋은 집터라 하고 어떤 이는 망한 집터라 했다. 내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은 빈집이었다. 농협 빚에 쫓겨 야반도주한 집이라 했다. 한밤중 1톤 트럭에 짐 챙겨 네 식구가 소리 소문 없이 도망친 집이라 했다. 말 그대로라면 흉한 집이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당을 뒤덮은 잡초와 부서진 문짝은 보이지 않았다. 장독대 흩어진 사금파리와 썩어 내려앉은 마룻장은 눈에 들지 않았다. 오직 마을을 휘두른 산맥과 앞으로 건너 보이는 지리산이 나를 포근하게 감싼다는 느낌뿐이었다.
"이 집터는 기가 참 셉니다. 그 기운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차지하면 좋은 집터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리 잡으면 필경 망할 집터지요."
이 집에서 대여섯 해 살았을 무렵 우리 집을 찾은 손님 가운데 지관이 있었는데 그이가 이런 평가를 내려주었다. 용과 범의 혓바닥 위에 자리 잡았고,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이니 기운만 변치 않으면 순리대로 잘 흐를 집터라고 했던가.
그때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제법 고집불통이기도 하고, 사뭇 그릇된 일을 만나면 물어뜯고 늘어지기도 하니 나 스스로 내 기운이 제법 셀 거라 여기던 차였다. 어쨌거나 이 집터에 얽힌 여러 평가 가운데 어쩜 나에게 딱 맞는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터란
며칠 전이었다. 한밤중에 마을방송이 요란을 떨었다. 산너머에 산불이 났으니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서쪽 능선으로 연기가 솟구치고 불꽃이 반사되어 하늘이 벌겋게 물들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금세라도 불꽃이 산을 넘어올 것만 같았다.
"이를 어째... 불이 넘어오면 어째요. 저 봐. 산 너머가 온통 벌겋네."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을방송을 듣고 이웃들도 하나 둘 골목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람은 거칠게 몰아쳤다.
"불이 금방 넘어오겠는데? 그래도 우리 마을이야 괜찮지. 개울이 가로막고 있고, 논밭이 산 아래까지 이어졌으니 아무리 센 불길이라 해도 여기까지야 건너오겠어?"
"아, 저기 울진인가 거기 산불 안 봤어요? 불덩이가 산을 넘어 다닌다더마."
곁으로 다가온 예삐엄마도 발을 동동거렸다.
"우리 마을은 걱정할 거 없고, 저 너머 금대암 가는 길 가에 지은 집들이 큰일 나겠네. 산불이 넘어오면 저기 골짜기 안쪽 새로 지은 집들도 걱정이고."
몇 년 사이에 마을 뒤편 산자락엔 제법 많은 집이 들어섰다. 머구밭골 입구에 3채, 운골에 5채, 뒷골 초입에도 3채가 들어섰다. 다들 외지인들이 주말용 별장으로 쓰거나 귀촌한 사람들 집이었다. 숲과는 지근거리여서 울진 산불을 상기하면 영락없이 산불 피해를 입게 될 거였다.
"집은 마을 안에 지어야지. 마을이 그냥 마을이 아니거든. 그만큼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재해로부터 안전을 검증받은 곳이 마을이야. 물 좋다, 경치 좋다 하며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집을 지으니 재해 앞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산불이 난 쪽 산언저리에 새 집을 지어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불이 집 앞 낮은 능선까지 건너왔다고 했다. 그곳의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스치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불길이 일찍 잡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안도의 목소리를 전해 듣기까지 우리도 걱정에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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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엔 꽃밭을 만들고 주변 울타리를 낮추었다. 찾아드는 사람들 표정이 환하다. 그렇게 우리집은 밝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
ⓒ 김석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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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이 집에서 15년을 살았다. 살아오는 동안 크게 우환이 없었으니 우리 가족에겐 좋은 집터가 분명했다. 큰 비가 내리고 태풍이 왔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지관 말대로 내 기운이 이 집터를 다스린 건지, 집터가 우리 가족을 잘 품어 안은 건지 모를 일이다.
이런 세상에서 참한 며느리도 만났고, 귀여운 손녀도 받아 안았고, 언덕배기 논배미도 장만했으니 이게 다 집터 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경제적 형편도 많이 풀렸으니 그 이유를 딱히 어찌 설명할 수 있나. 그저 조상이 도왔거나 좋은 터를 만났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가 여기로 들어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
"그러게. 우리가 아직도 도시에서 살았으면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전세방을 전전하면서 당신은 조그만 식당이나 운영하고 있겠지?"
"당신은 식당일 도우며 꾀죄죄한 모습으로 기원이나 들락거리겠지?"
가끔 아내와 나누는 대화가 이렇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모습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 집을 만났고, 도시를 떠났고, 온 가족이 이 터에 깃들어 나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집터에 대한 신뢰는 누구보다 더했다.
집이 중요한가, 주인이 중요하지
요즘 대통령 집무실 옮기는 일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청와대는 권위주의의 상징이니 그런 권위를 지우겠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일념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당선자의 행보도 남다르게 탈권위적이다. 남대문시장을 방문하고, 국밥을 먹고, 대중목욕탕에 가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런 서민인데 어찌 청와대와 같은 집에 들어가 산단 말이냐'라고 하는 것 같다.
20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당선자는 기필코 청와대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려하는 국민을 설득하고 반대 여론이 강해도 돌파해 나가겠다고 했다. 5월 10일 집무는 반드시 국방부 청사에서 시작한다고 못박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여기저기서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 못 들어간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도 이 나라 대통령 당선자인데 그렇게까지 하랴 싶었다. 실제 2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풍수지리라든가 무속 논란도 같이 불거지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윤 당선자는 "무속은 민주당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라며 일축했다.
어느 유능한 지관이 있어 대통령 당선자의 생각을 그리 이끌었는지, 국가운영에 관한 본인의 철학과 의지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다.
국민 삶을 위해 할 일이 부지기수건만 대통령 당선자라는 사람이 일터 타령이나 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이 나라 국토방위의 사령탑을 자기 일터로 삼겠다며 밀어붙이는 것이 볼썽사납다. 대통령이 국민 말에 귀기울여 주기 위한 장소가 청와대면 어떤가. 대통령이 국민을 만나고 섬기기 위해서라면 집무실 위치가 그리 대순가. 국민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데 그런 군색한 이유로 고집을 부리니 '청와대는 터가 사납다'는 풍수쟁이의 요설에 맘을 뺏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청와대 터가 안 좋을 리가 있나. 내가 보기에 좋기만 하드만. 거기 무장경찰이 국민들 발걸음을 통제하고, 목소리를 틀어막고, 눈동자를 가리니 안 좋은 게지. 그러고도 주인입네 행세하다 부정축재하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총칼로 겁박하고 그래서 그런 말년을 맞은 게지.
청와대는 불통 자리고 용산 국방부 청사는 소통 자리라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기가 차고 속이 터질 일이다. 괜한 짓 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말을 수식어로 덧붙이지는 말아야지.
저 자리에 청와대를 두고서도 국가는 번영했고 국민은 잘 살아왔다. 억울한 일도 당하고, 이리저리 떼밀리면서도 꿋꿋이 이 나라를 지켜왔다. 터가 사납거나 말거나 나라는 대국이 되었고 국민들은 법을 잘 지키고 따랐다. 불의에 항거할 줄 알았고, 국난 앞에 힘을 모아 나라를 건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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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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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집터가 좋다. 살아오면서 좋은 일만 있었으랴. 마을일로 송사도 당하고, 민원에 시달리며 머리카락도 많이 듬성듬성해졌다. 이장 선거에 나가 낙선도 하고, 아는 사람에 속아 돈도 좀 떼였다. 보름이가 크게 다치기도 했고, 아내는 대상포진으로 고생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일을 사랑했다. 각자가 성의 있게 열심히 살았다. 나는 농부로, 아내는 민박집주인으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았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살았다. 약한 사람을 편들며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집안일도 순조롭게 풀렸다. 마침내 이 집터가 좋은 집터가 되었다.
청와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주인이 부패하지 않으면 된다. 부정한 일을 삼가고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너그럽게 지혜롭게 국민을 섬기면 된다. 그러면 좋은 터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사나운 터가 된다.
국민은 하루하루 허겁지겁 어렵게 살아가는데 어찌 대통령 당선자로서 이런 일을 함부로 꾸미는가.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고집불통이지 국민 소통이랄 수 있나.
코로나가 극성이고, 국제정세가 안갯속이다. 이래저래 국민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새 집을 짓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차고 넘친다. 청와대에 들어가 살면서 천천히 살펴보고 계획하고 옮겨가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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