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오마이뉴스>가 서면 인터뷰한 여덟 명의 '여초 카페'(여성시대, 우리동네목욕탕 등) 회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유하는 심판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찍었고, 대선 직후 민주당에 가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집토끼의 귀환'이 아니라, '심판자의 변신'이다. 그래서 힘이 더 세다.
왜 이재명을 찍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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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이 8일 서울시 마포구 홍대 걷고싶은거리 광장무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마지막 유세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
ⓒ 국회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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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 중 5명은 대선 직전까지 이재명 후보를 찍을 생각이 없었거나,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 사이에서 고민했다. 기존의 '민주당 지지층'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다.
- 성예지(가명, 24) "이재명 후보가 여성 관련 공약을 내놓기 전까지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자고 생각했다."
- 김희주(가명, 22) "이재명 후보의 많은 의혹들에 반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중 닷페이스 채널에 나와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고,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여 조금 부족한 답변을 하긴 했어도 이 사람이 윤석열 후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 이유리(가명, 25) "SNS를 통해 가짜뉴스를 많이 보았고 여과 없이 믿었다. 하지만 대선이 점점 다가오면서 최소한 내가 뽑을 후보에 대해서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보들의 공약을 보게 되었다. 예상외로 이재명 후보의 공약들에 국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봐야만 낼 수 있는 세심한 내용들이 많아서 놀랐다(...) '그럼 그때 그 논란들은 뭐였지'라는 생각이 이어졌고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이 가짜뉴스거나 악질적인 날조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정지현 (가명, 24) "이재명 후보의 닷페이스 출연+'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인 박지현 디지털성범죄 특별위원장 영입 후 박 위원장의 인터뷰를 보고도 심(상정)에서 이(재명)로 흔들리는 수준이었지, 소위 '개딸'은 아니었다. 마지막 TV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성평등·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주변 20대 여성 표심이 술렁였고 저도 그랬다. 3일 종로 여성 유세 이후로는 마음을 굳혔다."
- 박수민 (가명, 21) "이재명 후보들의 루머들이 진실이라고 믿었고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하고자 했다. 다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성별 갈라치기로 인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시 여성 인권이 많이 훼손되고 후퇴할 것이 두려워 이재명 후보를 뽑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처음에는 '윤석열을 막기 위해' 뽑는 거였지만, 제가 마음을 바꾼 후 이재명 후보의 루머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후보의 여성 관련 공약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와 진심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이들 다섯 명은 선거 과정에서 의심 → 비판적 지지 → 지지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 변화는 '윤석열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페미니즘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한 것에서 비롯됐다.
8명 중 7명은 이재명 후보의 '여성 공약'이 이 후보를 찍을 수 있도록 만든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10대 공약 3순위에 '여성안심 평등사회'를 내걸었고, 대선 정책 공약집에서는 '여성' 관련 7가지 의제와 44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그밖에도 이들은 성평등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출연과 박지현 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영입 등을 이 후보에게 투표하게 된 배경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 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 보니까 닷페이스 출연으로 설왕설래가 있었던 수준이었다"라며 "그런데 종로 보신각에서의 3월 3일 여성 유세를 보면서 민주당 분위기 역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해당 유세 당시 '이재명으로 마음 돌린 2030여성 7431명의 지지선언' 행사가 진행됐다.
이 관계자는 "후보 본인이 직접 선거 전략을 (성평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차악'이거나 '비판적 지지'를 받는 것에 머물러서는 여성들의 표를 집결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지지 않았다는 것 보여주고 싶었다"... 민주당 입당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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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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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선거에선 패배했지만, 수많은 2030 신규 여성 당원을 맞이하게 됐다. 대선 6일만에 11만 7700명(16일 기준) 신규 당원이 입당했다. 서울시당은 온라인 입당자 중 80%가 여성이고 이중 2030 여성이 절반 이상, 충북도당은 신규 입당자중 70% 이상이 20~40 여성이라고 밝혔다. 부산시당 역시 "성별과 세대별 갈라치기 등으로 사회의 분열과 혐오가 심화될 것을 우려하는 2030세대 여성들이 대거 입당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한 8명의 여성 중 기존 민주당 당원은 김희주씨와 정지현씨, 두 사람에 불과했다. 이들은 선거 막판까지 표를 어디에 줄지 결정 못할 만큼 '충성도가 낮은 당원'이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한 사람은 당비를 납부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민주당 홈페이지 멤버십에 등록(회원가입)했다.
나머지 6명은 대선 이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윤희정(가명, 35)씨는 "당원 활동을 통해 우리의 의견을 피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이정혜(가명, 25)씨는 "20대 여성인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서현(가명, 31)씨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곳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처음 입당한 이유는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고, 지금은 20~30대 여성의 민심을 알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바람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박수민씨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이대로 체념하지 말고 민주당에 가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라며 "2030 여성들은 이번 대선에서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며, 지속적으로 민주당을 지켜볼 것이며 여성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면 우리는 지지를 보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자는 의견이 모였고, 저도 동참했다"라고 전했다.
성예지씨는 "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본다면 미약한 보탬일 수 있지만, 하나둘씩 모이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고, 이유리씨는 "이번 대선 결과는 '여성혐오'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사회적인 문제는 개개인이 모여서 제도를 바꾸고 개혁을 해야 한다. 거대정당을 상대로 의견을 피력하고 개혁을 촉구하려면 그 당의 당원이 되어 관여할 권리를 얻어야 해서 기본적인 단계인 입당을 하게 된 것"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답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에 반영시키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었다. 이는 세간에서 평가하듯 단순한 '열성적 지지'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이들의 입당은 민주당에 '계속 2030 여성을 의식하라'는 식의 압박을 주기 때문이다.
'형'과 '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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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명이네 마을에서 "개딸"로 검색하면 나오는 글들. |
ⓒ 재명이네팬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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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개설된 이재명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에서 나온 '개딸'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이 고문을 '아빠'라고 부르고, 이 고문의 젊은 여성 지지자들이 '개딸'(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만들어진, '성격이 괴팍한 딸'을 일컫는 말. 아버지와 투닥거리면서도 친하게 지낸다)을 자청하면서 나눈 일부 메신저 대화가 공개되면서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에 일각에서는 '새로운 팬덤 정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2030 여성들의 정치적 열망이 정치인 개인에 대한 우상화나 무비판적 응원으로만 수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8명의 여성들은 대체로 2030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먼저 아니겠냐며, 특정한 호칭에 집중하거나 '색안경'을 끼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김서현씨는 "요즘 주변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정치가 너무 먼 이야기인것 같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적어도 친구들과 이재명이, 심상정이 어떻다는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인의 '친근한 이미지'가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여성들과 소통하며, 말했던 바를 지키고자 하는 후보에게 더 정이 가고 지지하는 건 당연하다"라며 "40~50대가 특정 후보를 지나치게 지지하는 것은 내버려두고, 우리(2030 여성)의 목소리와 지지하는 방식만 팬덤 정치라고 말하는 것 또한 차별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지현씨 또한 "팬덤 정치라는 말은 모욕적이다. 이준석 당 대표나 대선 후보를 '형'이라고 부르는 20대 남성은 정치적인 주체로 호명되는데, '아빠'로 부르면 팬덤이 되는 건 기이하다"라며 "응원하고 지지하지만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리씨는 "'팬덤 정치'라는 말이 2030 여성 지지자를 가벼운 이미지로 고착화하거나 여성 지지자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정치활동이 기성세대와 사뭇 달라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개혁을 위해 이제 결집하게 된 2030 여성들을 기성세대들이 응원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밖에도 "우려하는 시선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주민선), "이재명 후보를 '재명파파' '잼칠라(재명+친칠라)', 지지자를 '개딸', '냥아'들이라고 친근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치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긍정적"(이정혜)등의 의견도 있었다.
20대 여성들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담은 책 <판을 까는 여자들>의 저자 신민주씨는 "이재명 후보는 커뮤니티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직접 소통을 하는 사람이었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세는 일정 부분 유지돼왔다"라며 "친근함을 나타내는 호칭을 온라인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예상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고, 이상하지도 않다"라고 밝혔다.
신씨는 "오히려 '개딸'이라는 말을 문제 삼아 '여성들이 어쩜 그러냐'라면서 비난하는 행태가 더 이해하기 힘들다"라며 "젊은 여성들이 마치 정치권의 팬덤문화를 만든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사실 옛날부터 팬덤 정치는 있어 왔고, 기성세대 팬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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