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그간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마저 퇴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의 언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기존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고민이 많을, 더 많은 민주주의와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이들에게 전하는 제언을 연재기고로 담았습니다. 노동, 기후, 젠더 등의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전문가의 기고가 이어집니다. 이번 새로운 상상과 진보의 성장에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한국경제는 서서히 코로나19 위기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국내 상황은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가 끝난다고 해서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K자 양극화는 K자 경제회복으로 진행되면서 향후 양극화-저성장 악순환의 심화구조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사회,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던 이유이다.
이제 곧 등장할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과제에 직면해서 어떠한 경제정책을 펼칠 것인가? 당선인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정책이 존재한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손실보상, 노동자 보호 사각지대 해소, 납품단가 제도 개선, 근로장려세와 공공부조 혜택 확대, 사회복지종사자 처우 개선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상태여서 대선 승리를 위한 빈껍데기 공약일 가능성이 높으며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한 공약들에 주목해서 보면 친기업적-반노동적 정책 기조가 뚜렷이 드러난다.
친기업, 친기업적 규제 완화를 통한 성장 추구
윤석열 당선인은 자유시장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만의 ‘선택할 자유’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저서로 거론하였는데 이를 반영하듯 그의 공약집은 규제 완화와 기업 및 산업 지원이 경제공약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재벌 개혁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 온 것과 달리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에는 재벌 개혁 요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정책은 어느 정부든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경제정책 분야이다. 문재인 정부도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했고 첨단산업 육성,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러한 산업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와 동시에 과도한 경제력 집중 방지, 기업을 통한 사익추구의 방지,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 장려도 중요하다. 특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규제 완화라는 슬로건 자체보다 어떤 규제완화인가가 중요하다. 행정편의주의적인 규제는 당연히 완화되어야 하지만 필수 규제마저 경제활성화 명목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는 묻지마식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윤석열 당선인은 법규정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사용자 책임 및 처벌 등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등 오히려 느슨해서 문제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외에도 현재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윤석열 당선인은 혁신을 장려한다는 명목 하에 자율규제 및 최소 규제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기업이 이미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정책이 추진된다면 일부 기득권 기업의 과도한 지대 향유를 온존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업 친화적 규제 완화가 대기업에게만 좋을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당선인은 추상적 수준에서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유도하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제시한 몇 개의 관련 공약을 살펴보면 중기부의 의무고발제를 축소 운용할 가능성이 있고, 기술탈취 예방을 위한 시스템 구축 공약이나 납품단가 제도 개선 공약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아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크다.
근본적 노동개혁 외면, 친시장적 노동개혁 과제 제시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친기업적, 친시장적 경제철학을 고려하면 향후 노동정책은 철저하게 반노동적일 것임을 전망할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현재 노동 부문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들, 즉 비정규직 과다, 취약 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 낮은 노동권 보호 수준 등에 대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언급만 할 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생명·안전 관련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 법제화, 동등처우 실현을 위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으며,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이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자는 데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러한 문제들을 도외시한 상태에서 이번 대선 과정에서 사용자 친화적인 몇 개의 노동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현재 1~3개월로 제한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1년으로 확대하고, 취업규칙과 근로자대표 서면합의 없이 부서별 노사합의로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함으로써 이 제도를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가 아니라 노조를 배제하고 기업의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제도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둘째,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중심 직무급 임금체계로 전환할 것을 공약했는데, 성과중심을 강조한 것이나 전체 노사합의가 아니라 직무·직군·직급별로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서면합의로 결정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직무급제는 연공급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성과급 측면이 과도해진다면 소모적인 경쟁을 초래할 수 있고,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직무·직군·직급별로 합의해서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노노 갈등을 부추겨 사용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상생형 노사관계를 실현하겠다고 하면서 노동위원회의 조정기능 강화, 원·하청 공동노사협의회 활성화 공약은 내놓았는데, 전자의 경우 노사갈등을 해결이 아니라 쟁의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을 안고 있으며 후자의 경우 불법적 사내 하도급을 근절하는 방안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편 플랫폼종사자 등 모든 노무제공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법제화하겠다는 공약의 경우, 바람직한 입법(일명,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등)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할 고용형태 종사자들을 노동법 배제 대상으로 공식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서 신중한 판단을 요구한다. 다양한 고용형태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의 반노동적 노동철학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면제해 주는 결과를 야기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미 대선 기간 중에 드러났듯이 윤석열 당선인의 노동에 대한 관점은 놀랄 만큼 전근대적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갈수록 ‘플랫폼노동화’, ‘액화노동화’되고 취약해지는 노동에 제대로 대응할 것으로 기대하기 난망이다.
기업 지원과 재정보수주의, 복지 위협 예상
친기업적, 반노동적 경제정책은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은 이러한 양극화를 상쇄해 줄 수 있을까? 윤석열 당선인은 자영업자 손실보상 및 다차원적 지원,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현금복지 확대 등 임기 내 총 266조원 가까운 복지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재정이 투입되어서 실행해야 할 복지 정책들은 보수적 재정 기조와 친기업적 재정 운영으로 인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양극화 심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과거 증세나 국채 발행과 같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반대해왔고 이번 공약집에도 그러한 내용이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원 마련이 요원하다. 특히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인 추경호 의원은 엄격한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이미 오래전부터 피력해 왔다. 지난 2020년 6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추경을 편성했던 시기에 그는 국가채무비율을 45% 이하로 유지하자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이밖에도 공공부문 부채관리계획까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포함시킬 것, 4대 보험 등에 대한 장기재정추계를 2년마다 40년 이상의 기간에 대해 추계할 것을 제안했다. 전 세계 유례없는 엄격한 재정준칙을 담은 것이다.
그가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면 엄격한 재정준칙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러한 강력한 재정건전성 프레임 하에서의 재원 마련은 기존 세출을 줄이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기업 친화적, 북한 적대적 정부일 것은 자명하므로 경제, 국방 부문 지출을 줄이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제시한 복지공약을 축소 혹은 폐기하거나 기존의 복지사업 중 잘 드러나지 않는 사업, 표 안 되는 계층에 대한 사업을 중복 혹은 낭비 등의 이유를 내세워 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상병수당 확대, 돌봄 확대, 취약계층의 일자리 전환 지원, 전국민고용보험 확대와 같은 복지 공약들은 소요재원조차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제대로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윤석열 당선인은 세대간 부담을 공평화하면서 소득보장 수준을 높이고 재정안정화를 달성하겠다고 했는데 미사여구로만 점철된 이 공약이 공약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재정안정화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개악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전국민고용보험과 관련해서는 저소득층 예술인과 농어업인 고용보험 확충을 약속했는데 고용보험의 확대 및 보완 대상을 지나치게 선별적,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어서 문제이다.
부채 확대, 자산 시장 호황을 통한 경기 부양 추구
윤석열 당선인의 경제공약 중에서 대표 공약이라고 할 만한 또 다른 정책이 바로 부동산 부문 활성화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1기 신도시 재정비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 임대차3법 완화, 민간임대사업자 혜택 확대를 통한 민간임대 활성화를 공약했다. 또한 부동산세제를 약화시키고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주택매입을 수월하게 해주는 정책을 실시할 것을 예고했다. 이러한 정책을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제안하고 있다.
주택과 토지, 상가 등을 완전히 상품화시키겠다는 것인데, 수요 확대가 생산 확대, 비즈니스 활성화로 이어지는 다른 일반 재화와는 달리 특정 지역 부동산은 수요에 따른 공급 확대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에서의 이러한 정책은 투기 심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고자산, 고소득 계층이 부동산 자산을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고 투기의 주요 주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부동산 시장 투기화는 결국 자산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켜서 저소득, 저자산 계층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봉건시대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가 자본주의적 버전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글로벌 대세와 반대로 가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지향했던 길을 걷고자 할 것이다. 4% 성장률 목표도 이명박 정권의 ‘747’ 공약과 박근혜 정부의 ‘474’ 공약의 연장이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적 정책들이 효과가 있었던가? 과거를 돌이켜보면 일부 수출 대기업은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수출은 기대했던 낙수효과를 창출하지 못했으며, 결국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대대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에 의존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했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다다른 가계부채, 금리 인상 전망을 고려한다면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은 얼마 안 돼 시장의 급락, 혼란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진보진영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공약으로 제시한 복지는 반드시 지킬 것, 노동과 중소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를 제공할 것, 대기업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재정보수주의에 매몰되어 어려운 시기에 마땅히 해야 할 국가의 일을 방치하지 않도록 적극적 조세재정정책 시행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진보진영이 더욱 단단하게 연대할 필요가 있다. 각 조직이 전통적인 관심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합적이고 일관된 공통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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