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앞둔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글로 만든 조각을 보며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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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돌을 맞는 한글날 기념 퀴즈 세 문제.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다음의 풀이가 뜻하는 단어는?“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 길이가 30~50㎝이며, 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자라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속은 누런 흰색이고 겉은 녹색이다. 봄에 십자 모양의 노란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잎·줄기·뿌리를 모두 식용하며,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백채, 숭채.”2. 다음 중 맞춤법이 틀린 것은?①전셋집 ②전셋방 ③막냇동생 ④훗일3. 다음 중 표준어가 아닌 것은?①코린내 ②시뉘 ③여지껏 ④널판때기
1번 문제의 답은 ‘배추’다. 2번은 ②전셋방, 3번은 ③여지껏이 정답이다. 세 문제를 모두 맞혔다면 국어학자 또는 국어 교사, 과잉교정인간(표준어와 맞춤법 등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거나,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세 문제 모두 틀렸다면? 지극히 ‘표준적’인 대한민국 언중이다.
성적 향상의 지름길은 오답 노트다. 그런데 1번은 대한민국 정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배추를 저렇게 풀이하기 때문에 ‘내가 왜 틀렸는지’ 원인을 찾기가 힘들다. 비슷한 말로 오른 ‘숭채’에서 힌트를 얻었다면, 약 20년 전 드라마 <대장금> 9회에 등장한 ‘숭채만두’를 봤을 가능성도 있다. 사극을 열심히 시청하는 게 국어 실력을 닦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비약이 차라리 ‘말이 되는’ 조언이다.
2번과 3번은 근거가 확실하다. 우선 2번은 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2호인 ‘한글 맞춤법’ 30항 사이시옷 규정이 기준이다. 이 고시는 1988년 제정된 ‘문교부고시 제88-1호’가 원형인데, 지금까지 두 차례 개정됐지만 바뀐 건 문장부호 일부 용례와 조항의 띄어쓰기 오류 정도에 불과하다. ①전셋집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집)과 한자어(전세)의 합성어 가운데 뒷말의 첫소리(ㅈ)가 된소리(ㅉ)로 나는 것’이므로 사이시옷을 쓴다(30항 2의1). ②전셋방은 한자어 합성어(전세+방)인데, 30항 3은 두 음절로 된 한자어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만 사이시옷을 인정하므로 ‘전세방’으로 써야 맞다. ③막냇동생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순우리말 합성어(막내+동생)인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30항 1의1)여서 사이시옷을 써야 한다. 발음이 ‘망내동생’ 아니냐고? 표준발음은 ‘망내똥생’ 또는 ‘망낻똥생’이다. ④훗일은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는 한자어(후)와 순우리말(일)의 합성어인데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30항 2의3) 사이시옷을 쓰는 게 맞다.
3번 문제에서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기준은 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17-13호, 즉 ‘표준어 규정’이다. 한글 맞춤법 고시와 마찬가지로 1988년 제정됐고(문교부고시 제88-2호) 일부 조항의 띄어쓰기 오류 정도만 수정된 채 지금까지 국어 생활의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①코린내는 19항이 ‘어감의 차이를 나타내거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이 다 같이 널리 쓰이는 경우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이므로 고린내와 함께 표준어다. ②시뉘가 표준어인 이유는 ‘준말과 본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효용이 뚜렷이 인정되면 두 가지를 다 표준어로 삼는다’는 16항 때문이다. 이에 근거해 시누이, 시누도 표준어다. 26항은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고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모두 표준어’로 보기 때문에 여태껏, 이제껏, 입때껏은 표준어지만, ③여지껏은 표준어가 아니다. ④널판때기는 17항이 ‘의미에 차이가 없으나 비슷한 발음 몇 형태가 사용되는 경우엔 더 널리 쓰이는 하나만 표준어’로 규정하지만, 앞의 26항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널판자, 널빤지와 함께 표준어다. 하지만 널판지, 널판대기는 비표준어다.
시효 다한 말글살이 표준 역할
이 오답 노트, 쓸 만한가? 복잡하고 장황할뿐더러, 정답과 오답의 형식적인 근거가 ‘확실’한데도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설명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의 말글살이를 연구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국어학자나 출판편집자들 일부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자’거나 ‘맞춤법·표준어를 없애자’는 등의 목소리를 내는 배경이다.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한글 맞춤법은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마춤법통일안’을 내면서, 표준어 규정은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내면서 처음 확립됐다. 사회적 의사소통과 지식 유통을 질서 있고 원활하게 하려고 지역마다 다른 말과 글의 표준, 즉 어문규범을 정립하고 사전을 만드는 것은 근대 민족국가의 일반적인 행로다. 조선어학회 역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1947년 1권 출간, 3권부터 <큰 사전>으로 이름을 바꿔 1957년 6권으로 완간)의 기초 작업으로 맞춤법과 표준어를 정리했고, 해방 전후 조선어학회의 권위로 이것들이 국가 표준안으로 인정돼 공식적으로 쓰였다.
1984년 문교부 고시 84-1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1988년 앞서 본 한글 맞춤법 고시와 표준어 규정 고시 등이 나오면서, 어문규범은 민간이 아닌 국가가 정하는 것으로 성격이 바뀐다. 당시 ‘설겆이’가 ‘설거지’로,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는 등 맞춤법이 크게 변한 바 있다. 개정된 맞춤법에 따른 최초의 국가 편찬 국어사전이 1999년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한편, 1995년엔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국가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 사용에 필요한 사항(이하 ‘어문규범’이라 한다)을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정한다”(7조 1항)고 못 박았다. 이런 내용을 이어받은 게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이다.
그런데 어문규범을 이렇게 ‘성문화된 규정’으로 정한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과 북한,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앞에서 본 것처럼 표준어의 세부적인 기준과 사례까지 규정으로 제시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땐 사전을 찾아보며 철자와 발음을 익히는 것과 달리, 학교 국어 시간에 ‘르·러 불규칙’(맞춤법 18항) ‘두음법칙’(10~12항) 같은 걸 배워서 표기법을 익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사전을 만들던 시기엔 원칙이 될 표기법 등의 규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1988년 개정된 어문 규정을 바탕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미 나왔으므로 이는 시효가 만료됐다”며 “성문화된 어문 규정을 없애는 대신 <표준국어대사전>을 중심으로 어문규범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햇땅콩인지 해땅콩인지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어떤 게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표준국어대사전>에 해땅콩으로 적혀 있으니 그게 맞다가 돼야 한다. 문서로 된 규정이 없으면,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그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기를 골라 사전에 올려 실생활과 동떨어지지 않는 표준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부실한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이 한국의 언어 정책과 연구 성과를 온전히 반영했다고 보기엔 너무 부실하다며 제대로 된 사전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전직 국어 교사인 박일환 시인이다. 그는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 <국어사전이 품지 못한 말들> 등 여러 저서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오류(그래픽 참조)를 밝혀왔다. 그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전은 권위 있는 표준일 수 있지만 ‘우리가 정한 말만 써’라는 강압과 억압일 수도 있어,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민간에서도 다양한 사전이 나와 경쟁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국어사전을 낼 만한 민간 출판사가 없다. 최소 5~10년은 걸리는데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예산을 들여야 하는데 누가 그런 투자를 할 것이며, <표준국어대사전>이 인터넷에서 무료로 서비스되는 상황에서 누가 비싼 돈을 주고 국어사전을 사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선정부터 풀이까지 모두 새로 만들다시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소원 국립국어원장은 올해 초, “1999년 당시에 서둘러서 사전이 나오느라 용례나 해설이 충분히 검토 안 되고 들어갔다. 여성 비하적인 것들도 많고, 옥스퍼드 대사전에 등재된 ‘먹방’ 같은 신조어도 없다”며 예산 70억원 규모의 <표준국어대사전> 전면 개편 작업을 2026년까지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여러 대학의 국어학자 등으로 꾸려진 연구진이 표제어로 올릴 기준과 관련한 기초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일환 시인은 “70억원이면 전면 개편엔 부족한 예산으로, 이대로면 크게 나아질 것 없이 일부 보완하는 정도에 그칠 것 같아 걱정된다. 무엇보다도, 최소한 공청회든 토론회든 국어사전에 관심과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한테 공개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자리나 통로가 있어야 방향을 제대로 잡을 텐데, 지금은 국립국어원 내부와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이뤄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은 “필요하면 공청회 등도 열겠다.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의견 보내기 난이 있어 사용자는 언제든 의견을 보낼 수 있고, 그런 의견을 모아 심의하는 전문기구 회의도 분기별로 열린다. 한국사전학회 등 전문가들과도 평소 활발하게 연구 교류를 하는 등 의견 수렴은 항상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 다양성’이 복원된다면
국어학계에선 비주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고 그 개정이나 유지에 드는 예산으로 민간 사전 출판을 지원하자는 의견도 눈에 띈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을 활용해 <우리말 유의어 사전> 같은 다양한 다른 사전이 나왔고, 남북이 함께 편찬을 추진하는 <겨레말큰사전>의 바탕도 <표준국어대사전>”(정희원 어문연구실장)이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없애자는 쪽에선 국가가 개인 언어생활의 ‘표준’을 정하고 맞고 틀림을 판정하는 것은 비민주적인 통제이므로 ‘사전 다양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얘기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언어적 근대를 향한 기획의 연장선이다. 일제강점기엔 우리 말글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열망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진 단일한 국가체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언어를 표준화, 규범화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언어의 다양성이 깨진 측면이 있다.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사전에 어떤 단어를 올리고 어떻게 풀이할지 판단을 국가가 독점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 사전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다양한 사전이 나와서 각각의 기준과 철학을 두고 경합하며 말글살이를 풍성하게 해야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이 나온 이후 민간 국어사전은 사실상 사장됐다.”
일례로 영어 사전을 보면, <옥스퍼드 사전>은 단어의 변천사에 초점을 맞춰 풀이하고 문헌상 확인되는 첫 출현 연대까지 제시하는 반면, <롱맨 사전>은 현대에 쓰이는 단어의 용례에 맞춰 쉽게 풀이하는 게 특징이다. 두 사전은 각기 다른 강점으로 경쟁하면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에게 선택받는다. 한국에도 단어의 형태 분석에 중점을 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현대에 많이 쓰이는 말이 중심인 <연세 한국어 사전> 등 민간 사전이 있지만 국가 사전의 ‘공신력’에 크게 밀린다. 그나마 인터넷 포털에서 서비스하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알려진 정도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둘러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출판편집자인 변정수씨는 이를 인터넷 검색을 하는 상황에 빗대 설명했다. “검색을 하면서 ‘쓰레기 정보’와 싸워야 할 땐 보통 ‘나한테 필요한 내용만 누가 추려서 넣어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난감한 건 검색 결과가 딱 하나밖에 없을 때다. 쓰레기 정보를 걸러내는 건 힘들고 귀찮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신뢰성 있는 진짜 정보를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하나면 이게 맞는 건지 타당한 건지, 감을 잡을 수도 검증할 수도 없다. 그 단 하나의 검색 결과가 <표준국어대사전>이다. 국가가 주도한 사전이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거나, 일방적으로 권위를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다양한 주체가 다양한 관점으로 만든 사전이 병립하고, 언중은 그중에서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표절이 허용되는 유일한 책이 사전이니 다수가 선택한 사전을 참고해 다른 사전이 개정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권위 있는 사전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사전을 만드는 데 나설 게 아니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의 근간에 맞게 민간에 사전 편찬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실제 말과 너무 먼 교과서
변정수씨는 표준어 규정 폐지론자이기도 하다. “모어는 직관적으로 내가 쓰는 말이라 공부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쓰는 말과 교과서에서 배우는 말 사이에 거리가 멀다. 내가 쓰는 말이 비표준어라고 하면, 언중은 주눅 들고 자신의 언어적 직관을 스스로 무시하게 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표준어를 복수로 인정하기도 하지만, 1988년 고시(190개) 이후 늘어난 복수 표준어는 2011년 ‘짜장면’ 등 74개뿐이다. 그렇다고 복수 표준어를 실생활에 맞춰 대폭 확대하면, 표준어 규정이 어문규범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와 관련한 위헌 소송이 있다. 지역어 연구모임 ‘탯말두레’ 회원들은 표준어 규정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해 “서울이 아닌 지역의 언어를 쓰는 청구인들에게 지역적으로 차별대우를 함과 아울러 상대적으로 교양 없는 사람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헌법소원(2006헌마618)을 냈다. 이에 헌재는 “조항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법적 효과를 갖고 있지 않아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이를 기각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김종대·이동흡 재판관의 반대 의견이다. 서울말이 표준어가 된 것은 조선어학회가 ‘한글마춤법통일안’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고 규정하면서부터다. 그런데 두 재판관은 “오늘날 전국적인 방언 차이는 국민적 의사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을 만큼 약화됐다. 최초 표준어 기준이 만들어질 당시와 다른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기준을 고수하면 우리 언어의 발달을 저해하게 된다.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언어규범을 개정·폐기하여 표준어가 자유롭게 형성되고 국어가 자유롭게 발전할 기반을 만드는 작업은 국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또 “특정 지역어를 표준어로 정하면 그 외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상당한 위축을 가져온다. 서울 이외 지역어 모두를 표준어의 범위에서 배제해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은 표준어 선정의 합리적 방법이라 할 수 없다”고도 짚었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가 서울로 이주한 뒤 ‘서울말’을 쓰는 흔한 사례는 실제로 표준어가 차별과 억압의 기제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김진해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글 맞춤법까지 없애자고 주장한다. “맞춤법이 과도하다 보니, 표준어의 모든 단어에 원리원칙을 적용해야 된다. ‘어쭙잖다’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어색한데, 맞춤법 규정 때문에 그렇게 써야 되는 단어가 얼마나 많으냐”며 “영어의 ‘color’(컬러)가 30년 전에는 ‘color’ ‘colour’ 둘 다 미국 사전에 올라가 있다가 지금은 ‘colour’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color’만 등재돼 있는 것처럼, 사전 편찬자가 당대의 언어 사용 빈도를 계속 추적해 표제어를 수정·보완하면서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해야 한다. 언어의 본질에는 불문율이 맞을뿐더러, 어떤 말을 쓰는 게 적절한지 판단하고 사용할지 결정하는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민주주의가 확장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국어 생활을 풍부하고 편하게 하는 제안일 순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한글을 만든 뜻을 이렇게 밝혔다. “(상략)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것이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참고자료: 김성규 등 ‘표준 발음법 영향 평가’(2012), 김진해 <말끝이 당신이다>(2021), 민송기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2016), 박일환 <미친 국어사전>(2015), 조태린 ‘성문화된 규정 중심의 표준어 정책 비판에 대한 오해와 재론’(2016), 최경봉 <우리말의 탄생>(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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