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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팀장들 “우리가 가짜 근로자? 업체서 할 일까지 대신 합니다”

[건설노조가 죄인인가⑧] ‘일 안 하고 돈만 받는다’ 매도하는 원희룡 장관에 분노한 건설노동자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④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⑤ 외국인에 밀려난 내국인 건설노동자, 이면엔 건설사 ‘이윤 욕심’
⑥ [현장] “노조에 빌미 잡히지 말자” 불법에 이중 잣대 보인 원희룡의 ‘황당 연설’
⑦ ‘건폭’ 핵심 한국노총 출신 건설산업노조, 1년 전 ‘윤석열 지지’ 선언했다

"건설현장 정상화는 가짜 근로자 퇴출부터! 일도 안 하고 돈만 받아 가는 팀장들, 이들을 데려다 앉힌 것이 바로 건설노조입니다. 능력이 없어도 노조 집행부에 우호적이면 팀장을 시켜줍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페이스북에 잇따라 올린 글이다. 건설현장에서 "망치 한번 잡지 않으면서 일당만 챙겨가는" 가짜 근로자가 있으니, 이들을 건설현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건설사를 한 데 불러 모아 '일 안 하고 임금만 받는 근로자 실태 점검 간담회'까지 열었다. 한 보수 언론은 31개 건설현장에서 팀·반장 89명이 일하지 않고 총 46억원을 받아 갔으며, 이중 민주노총 소속은 53명, 한국노총은 14명이라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정부는 "가짜 근로자의 근태 기록 등 증빙자료를 확보해 세부 실태를 분석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원 장관의 주장은 팀장의 역할을 지나치게 간과한 '왜곡 공세'에 가깝다. 오히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원 장관이 지목한 건설현장의 '가짜 근로자'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다양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민중의소리가 만난 건설노조 소속 팀장들은 '원 장관이 건설현장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니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팀장은 건설노조가 앉혔다? 팀장은 일을 안 한다?
말도 안 되는 원희룡 장관의 건설노조 공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업계 현장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3.2.26 ⓒ뉴스1


건설현장은 기본적으로 '팀' 단위로 일한다. 이는 노조 조합원으로 구성된 '노조팀'만이 아니라 비조합원들로 구성된 '일반팀'도 마찬가지다. 노조팀에만 팀장이 있는 게 아니라 일반팀에도 팀장이 있다. 

건설현장은 다양한 공정으로 진행되고, 각 공정 단위로 팀이 존재한다. 철근을 연결해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철근공이 모인 팀은 철근팀, 망치질로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목수가 모인 팀은 형틀팀이다. 각 팀에서 팀장은 팀원인 건설노동자를 관리하고 해당 공정을 책임지는 책임자로 보면 된다. 일반 회사에서 과장, 부장이 담당하는 역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팀장이 주로 하는 일은 도면을 확인한 뒤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 규모로 구성된 팀원들에게 각각의 특성과 기능도에 맞는 작업을 지시하는 것이다. 작업 중간중간 공정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잘못된 구간이 있다면 직접 바로잡기도 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경우 팀마다 숙련도가 낮은 양성공을 일정 비율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들에게 직접 기술을 가르치고 기능공으로 육성하는 일도 팀장이 담당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팀원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자재를 챙기고 다음 공정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팀장의 몫이다. 이 외에도 팀원들의 출결 관리나 안전 관리 및 교육 등도 담당하고 있다.

이 중에는 건설노동자인 팀장보다는 공사를 담당하는 건설사가 할 법한 일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건설사는 현장에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하고, 각 공정별 팀장에게 작업 구간을 알려준 뒤 최종 공정 상태만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건설사가 해야 할 일도 팀장 등 건설노동자들이 도맡아 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건설사 중에는 제대로 된 인력을 갖추지 않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서 공사를 수주하고, 실제 시공은 팀에게만 맡겨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92,599개의 건설사가 등록됐는데 이중 최근 5년간 늘어난 건설사만 헤아려 봐도 21,132개다. 건설노조는 이중 상당수를 시공 능력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보고 있다.
 

노무 관리, 작업 지시, 기술교육까지
실제 건설현장에서 팀장들이 하는 일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건설노동자들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20여년간 수도권 건설현장에서 형틀팀장으로 일한 김 모 씨(60)는 "아파트 10동을 지어도 건설업체에서 나오는 인력은 두세명 정도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일할 자리를 표시해주고, 도면만 주면 끝이다.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원 장관은 건설현장에서 팀장을 퇴출시킨다는데, 그러면 건설사는 현재 팀장들이 맡고 있는 일을 담당할 인원을 따로 고용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김 씨는 자신을 가짜 노동자라고 매도한 원 장관을 향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형틀목수가 몇천 개의 핀을 쓰는데, 그중 하나만 잘못 써도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거푸집이) 터져 버린다. 그 정도로 제일 기술을 요하는 일인데 건설사는 각 팀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며 "팀장들은 도면을 보고 팀원들에게 '이쪽 넓이는 몇으로 해라', '저쪽 높이는 몇으로 해라'라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해야 일이 진행된다. 원 장관의 얘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김 씨는 "일반적으로 건설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건 (노조팀이 아닌) 일반팀 팀장의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팀 팀장이란, 대부분 불법 하도급 구조에서 기인한 '오야지', '십·반장', '시다오케' 등으로 불리는 도급 팀장들이다.

하청 건설사는 도급 팀장에게 불법 재하도급을 주고, 이들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소규모 팀이나 팀원에게 일을 준다. 도급 팀장 중에는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건설노동자를 모집, 소개해준 대가로 건설노동자로부터 불법 수수료를 받아 가는 이들도 있다. 건설노동자를 중간착취할수록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윤이 늘어난다. 이런 구조 탓에 한 명의 팀장이 여러 개의 팀을 거느리는 경우가 많다. 원 장관의 주장처럼, 일은 하지 않고도 막대한 돈을 챙겨가는 팀장이 생겨나는 배경이다.

반면, 건설노조는 중간착취를 거부하며 모든 건설노동자가 건설사와 직접 고용 계약을 맺고 현장에 투입된다. 팀장 한 명이 한 개의 팀을 담당하는데, 조합원의 팀 배치는 노조에서 결정한다. 또한, 팀원인 조합원의 월급을 중간착취하거나 일하지 않고도 일을 했다고 허위로 출력하는 경우는 벌칙 사유로 규정하고 엄격히 제재를 가한다. 건설노조는 지부 세칙에 팀장의 역할을 설명하며 "조합원 팀원이 돈벌이 대상이 아니며, 조합원 팀원은 건설현장 개선을 위한 협력자로서 임금 갈취, 부정 출력 등을 행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김 씨 역시 건설노조에 가입하기 전에는 일반팀을 이끌던 '오야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 노동자의 일당 일부를 가져가는 생활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건설노조를 찾아가 가입했다고 한다.

김 씨는 "일반팀 팀장은 현장을 2~3개씩 맡아서 하니, 아침에 와서 팀원들에게 일만 시키거나 출근을 안 할 때도 많다"며 "그런데 뉴스를 보면 노조팀 팀장이 출근 도장만 찍고 간다고 하더라. 그건 절대 아니다. 노조 활동과 관련한 일이 있어서 한 시간만 자리를 비우더라도 다 회사에 얘기해야 하고, 노조 세칙에도 팀장이 자리를 비우면 반드시 보고하라는 세세한 규정이 다 있다"고 반박했다.
 

"사장도 직접 일 안 하니 퇴출하란 얘기?"
원희룡에 '역지사지해보자' 꼬집은 건설노동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장옥기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건설노조 탄압 규탄! 반노동 윤석열 정권 심판 !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2.28 ⓒ민중의소리


올해로 3년째 철근팀장을 맡고 있는 김상윤 씨(36)는 직접 건설노조 조합원이 지켜야 할 세칙이 담긴 조합원 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여기에는 노조팀 팀장의 역할과 평가 기준, 벌칙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김 씨는 "기본적으로 팀장이 조합원 근태나 기능도 관리를 다 한다"며 "이 일은 단순 반복하는 작업이 아니라, 치수를 재고 각도를 재서 일정한 품질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팀장은 조합원의 작업도와 숙련도에 맞게 작업을 지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조합원들이 도면을 보지 않고도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도면대로 바닥에 수치를 적어두거나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는 일도 한다"며 "젊은 조합원들의 기능도를 올려주기 위해 팀장이 일대일로 붙어서 직접 일을 가르쳐 주고, 팀의 근태를 위해 전반적인 팀 분위기를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드는 것도 팀장의 역할"이라고 부연했다.

이렇게 다양한 팀장의 역할 중, 김 씨는 가장 중요한 팀장의 역할로 '팀에 대한 책임감'을 꼽았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김 씨는 "한 현장이 끝나면 팀장도 팀원도 실업자가 된다. 그러면 팀장은 팀원들을 다른 팀에 분산 배치하든 어떻게 해서든 팀원들의 일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손을 놓은 건설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 역시 노조가, 팀장이 해결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노조 집행부에 우호적이면 팀장을 시켜준다'는 원 장관의 주장 역시 사실과 큰 차이가 있었다. 김 씨는 "팀장을 한다는 건, 이 일에 대해 어느 정도 마스터했다는 의미고, 회사에서도 이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라며 "팀장에 대한 기준도 다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팀장에게 일정한 자격을 요구한다. 팀장 경험이 있거나, 노조팀에서 반장(부팀장) 등 현장을 관리한 경험이 6개월 이상이거나, 지부의 신규팀장 양성 교육 과정을 이수한 자 등이다.

이러한 자격을 갖춘 이들 중 지대장의 추천을 받아, 지부장의 승인을 받으면 팀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도면 독해와 작업 배치·지시 등 기술력과 도덕성 등을 두루 평가하고 별도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팀장이 된 이후에도 반기마다 한 번씩 작업 능력과 팀원의 근태 등을 평가받는다. 단순히 경력만 쌓인다고 팀장이 되고, 직책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팀장의 역량 부족이 문제가 될 경우, 팀장에서 직위 해제되는 등 내부 통제 장치도 작동하고 있다. 노조팀이 아닌 일반팀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과정들이다.

김 씨는 "건설사도 팀별로 물량을 계산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팀장도 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도 다 치열한 사회이고, 조합원들끼리도 일에 대한 평가를 한다"며 "역량이 안 되는 팀장은 본인 스스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매일 욕하고, 조합원도 욕하는데 그걸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노조 차원에서도 다음 현장을 주지 않거나, 팀을 해체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건설노동자들의 반발에도 '가짜 근로자'를 퇴출시키겠다는 원 장관의 으름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 씨는 "역지사지 해보자"고 말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건설사가 배치한 현장소장은 실제 시공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현장소장도 가짜 근로자니까 없앨 것인가"라며 "회사 사장도 직접 일을 하지 않는 가짜 근로자니 나가라고 할 수 있나. 제발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자"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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