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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국가세력' 한마디에 본색 드러낸 尹정부 '자유민주주의'

[이관후 칼럼] 윤석열 정부, 보수의 자유주의로 돌아오라

이관후 정치학자  |  기사입력 2023.06.30. 08:27:55 최종수정 2023.06.30. 08:37:24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할 때 사실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란 본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정치제제이므로, 누가 당선되거나 누구는 떨어져야 한다는 당위란 본래 없는 법이다. 만약 그런 생각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 사람도 불행하고 나라도 불행하다. 본인은 자신의 당위가 실현되지 않을 때 대단히 고통스러울 것이고, 나라는 게임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게임에서 승자일 뿐이다. 검찰총장 출신이라서 정치에 서툴다든지, 전임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다든지 하는 것은 어쨌든 차후의 일이다. 윤 대통령은 쿠데타나 불법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한국의 헌정질서는 헌정을 유린하는 통치행위를 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제도화되어 있고, 실제로 작동도 한다. 그러니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이를 비난하는 것은 민주주의자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 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전후 언사를 통해 봤을 때, 그렇게 크게 염려할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자유, 공정, 정의, 헌법 등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조된 것은 '자유'였다. 자유와 평등 중에서 보수가 자유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적어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인 풍조였다. 여기서의 자유를 다소 거칠지만 간단히 2가지로 구분해 보면, 하나는 말 그대로 인격적인 자유,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의 자유다.

 

먼저 후자부터 살펴보면, 시장에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진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려될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선택이다. 한국의 보수는 늘 (적어도 겉으로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고, 실제로 그러한 공약을 제시해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니, 그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공약이었다고 모든 것을 함부로 할 수는 없고,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의 자유가 신장될 때 내용적으로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를 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를 아예 하지 말라거나 그것은 악이라거나 하는 주장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식의 비판이 우리 사회에서 잘 작동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필자는 윤석열 정부가 시장에서 불평등한 개인들의 자유를 과도하게 확장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런 내용을 공약하고 당선된 정부가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본다.

 

이제 인격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사실 시장의 자유라는 것은, 인격적 자유, 책에서는 인신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에서 파생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본질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영역이 매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히 노동과 재산의 문제가 자유에서 중요한 기반이 되기 때문에 시장의 자유가 강조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시장의 자유보다 실은 인격적 자유가 더 선행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시장의 자유가 인격적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많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수십 번 외쳤을 때, 필자는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헌법은 자유와 평등을 모두 중요한 가치로 품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서 공정과 정의가 평등에 많은 가치를 둔 것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정의에서는 자유를 더 강조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 시장의 자유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의 '자유'라면, 보수정부가 들어섰을 때 펼쳐지는 정책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제주 4.3과 자유민주주의 

 

작년 제주 4.3 기념식.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참석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제주 유세 때 했던 말을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특별한 일이었다. 연설은 짧았지만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정작 올해 4.3 추념식에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추념사는 평소 다른 해의 추념사에 비해 1/4 분량이었다. 내용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대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 올해, 4.3을 앞두고 극우 보수정당과 단체들의 현수막이 제주를 뒤덮었다.

 

'제주 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는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 

 

윤 정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보수세력인 정부여당은 이런 극우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변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해 말, 윤 정부는 4.3을 '남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반국가세력'은 누구인가?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 대통령이 24년 만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 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자유총연맹 회원들에게는 이렇게 호소했다.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뜨거운 사랑을 가진 여러분께서 이 나라를 지켜내야 합니다. (…)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바탕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표현에 대해 일부에서는 곧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의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되는 것 아니냐고 비판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수사적 차원에서의 비판이다. 오히려 심각한 것은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에 그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정부 자체를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곳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내용적으로 어쨌든 간에 이 정부 역시 윤석열 정부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되고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정부다.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나 마치는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반국가세력에 대한 정의다. 우리에게 반국가세력이라는 말은 조금 낯설지만 '반국가단체'라는 말은 익숙하다. 이것은 법률 용어다. 간첩조직을 이르는 말이다.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자문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간첩이고, 국민들의 70%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간첩의 문제라면 당연히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세 번째는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대통령이라면, 이런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법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에 의해 "자유 대한민국의 국가안보가 치명적으로 흔들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반국가세력에 대해 응당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를 수사해야 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선언'을 입에 담은 사람들이 모두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일까? 

 

이전 정부 겨냥한 것 아니다? 

 

일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이 이전 정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 연설에는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다음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평화 주장이었습니다." 

 

종전선언이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한 대북정책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가짜평화'라는 딱지를 붙여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비판한 것은 현 정부의 대통령실과 정부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것 이외에 '가짜평화'라는 표현이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만약 윤 정부가 문재인 정부가 아닌 다른 세력을 지칭한 것이라면, 이 부분은 해명이 아니라 사과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전 정부나 다른 정당의 정책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상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임기 초기, 윤석열 대통령이 천명한 자유는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인격적 자유와 시장의 자유가 공정과 정의의 바탕 위에서 실현되고, 외교적으로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보수가 해 볼 만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최근 윤 정부의 언어와 정책은 자유민주주의보다는 반공권위주의 시대의 그것을 더 많이 닮았다. 한국의 각종 민주주의 관련 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운 정부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하락한다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다. 윤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21세기 보수에 걸 맞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확립해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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