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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자의 임금분포는 '최저임금'에 갇혀버렸다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통계조작? 원본 데이터 다 까고 제대로 논쟁하자

 

 

 

 

 

가끔 일이 풀리지 않으면 미친 짓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 도움을 줄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무턱대고 통계청과 고용노동부가 임금, 고용, 일자리 관련해 발표해온 지난 10년치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문구를 발견했다.

 

"전년 대비 16.4% 최저임금 인상으로 하위 임금구간에 속한 노동자가 대거 우측으로 이동"

 

눈이 번쩍 뜨였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자료였다. 더 반가운 것은 그래프였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임금구간별 노동자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인데, 지난 10년치 다른 자료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유일한 그래프다. 

 

10년 사이 딱 한 번 등장한 그래프 

 

이 그래프가 왜 하필 그때 등장했을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2018년은 지난 10년 사이 가장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16.4%)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전년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임금분포곡선 전체가 오른쪽으로 평행이동 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프에 붙여놓은 설명처럼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폭이 상당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노동정책 담당자라면 한국 노동자 임금분포의 이러한 변화를 어찌 자랑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인사이드경제>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2019년 이후로는 이 자랑스러운 임금분포곡선을 구경할 수 없게 된 걸까?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면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한국 노동자 임금분포곡선 그리기 

 

국회의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환노위 윤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지난 6년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통해 확보된 '임금구간별 상용근로자수 및 비중'을 고용노동부에 요구해 자료를 받았다. 이게 바로 2018년에 노동부가 공개한 그래프,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그려볼 임금분포곡선을 그릴 때 사용할 원본 데이터이다. (아래 표)

 

 

그런데 이걸로 임금분포곡선을 그리려면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자료의 임금구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월 임금총액 200만원까지는 구간의 크기가 10만원이었는데(80~90만원, 90~100만원, ……) 200~300만원까지는 구간의 크기가 20만원, 300~500만원까지는 50만원 등으로 크기가 늘어났다. 

 

그래서 표에 나오는 (a~b) 구간의 노동자 수가 c 일 경우를 만족하는 가장 단순한 함수인 상수함수를 구해 그래프를 그려보기로 했다. 간단히 말해 2017년의 경우 월 200~220만원 구간 노동자 수가 672천 명인데, 이 경우 200~210만원과 210~220만원 구간 모두 336천 명인 것으로 단순화해 그래프를 그린다는 얘기다. 

 

상대적 고임금층은 안정적 정규분포 

 

이런 방식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면 2018년에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것과 유사한 그림이 나오게 된다. 우선 임금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매우 안정적인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2017~2022년까지 최저임금 인상율은 낮을 때는 1.5% 높을 때는 16.4%로 완전히 널뛰기를 했는데, 상대적 고임금층에서는 이렇다할 큰 변화를 확인하긴 어렵다. 임금분포곡선의 변화를 보면 매우 '정규적인 분포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저임금 구간이라 할 수 있는 그래프 왼쪽에서는 곡선이 겹치기도 하고 접점도 생기는 등 변화무쌍한 부분들이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변화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월 급여 270만원까지로 그래프를 Zoom In 해보기로 했다.(아래 그래프)

 

그래프의 왼쪽을 살펴보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2018년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두자릿수 인상이 이뤄진 2019년에도 임금분포곡선이 오른쪽으로 평행이동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율이 1.5~5.0% 사이로 매우 낮게 떨어졌던 2020~2022년의 경우 임금분포곡선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아지면서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최저임금 구간에 갇혀버린 저임금 노동자층 

 

왜 저렇게 정신없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을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2018년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이 이뤄졌고 2019년부터 법 시행이 되었고 개악의 효과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오히려 이번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야 할 내용은 따로 있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건 소폭 오르건 상대적 고임금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2020~2022년에 벌어진 최저임금 소폭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6년치의 그래프 말고 좀 더 단순화시킨 곡선을 추출해야 한다. 6년 기간의 첫해인 2017년, 그리고 마지막해인 2022년 곡선 2개만 따로 떼고, 각 연도의 법정 최저임금 액수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그래프로 표현해 보았다. (아래 그림) 

 

 

우선 2017년 그래프를 먼저 살펴보자. 임금구간 중 가장 많은 노동자가 몰린 곳은 최저임금의 120% 수준이며, 최저임금의 140%~160% 구간에도 상당히 많이 몰려 있다. 그래프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크게 치우침 없이 비교적 표준정규분포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그래프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몰린 구간은 압도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저임금층이 대규모로 우측 평행이동을 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였지만, 문제는 2017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의 120~140% 사이에 위치했던 노동자들까지도 최저임금 수준에 몰려버린 것이다.

 

원본 데이터 다 까고 논쟁하자 

 

2018년과 2019년에는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전반적인 우측 평행이동을 한 반면, 최저임금이 소폭 올랐던 2020~2022년에는 최저임금보다 약간 상회하던 노동자들의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말았다. 아니, 저임금층과 상대적 고임금층 모두 다 임금이 오르거나 고른 성장을 보였는데 왜 차상위계층(최저임금의 120~140%)만 제자리걸음을 걸었을까? 

 

그건 다음 글에서 <인사이드경제>가 입증할 내용인데, 비밀은 바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있다. 여하튼 저임금층은 우측으로, 차상위층은 제자리에 서다 보니 최저임금 수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몰리며 임금분포곡선은 왼편으로 완전히 치우쳐 최저임금 부분만 우뚝 솟은 그림이 되고 말았다. 

 

자, 이제 논쟁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통계적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통계에 사용한 원본 데이터를 모두 공개했다. 즉, 저 데이터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며 누구라도 이 원본 데이터를 활용해 내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사실 통계조작 논란이 벌어지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해당 통계분석의 원본 데이터를 누군가 독점하거나 숨기기 때문에 발생한다. 통계자료 자체가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당 원본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집권세력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비판받고 반박받는 게 싫어서 자신들의 해석이 도전받을지도 모를 '원본 데이터 공개'를 끝까지 거부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집권세력은 원본 데이터 없이 자신들의 해석만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반대세력이 집권하면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는 점만 핀셋처럼 집어내 통계조작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원본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으니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차라리 이걸 공개해버리면 통계조작 논란 따위는 벌어질 일이 없다. 각자 주장을 펼치고 논쟁을 하는 수준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자료를 활용하고 주장을 펼치고 다른 이의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평평한 땅을 만들자는 것. 그래서 오늘 <인사이드경제>의 작은 결론은 이거다. 

 

원본 데이터 공개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마시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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