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로 밀려나고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끈을 놓지 말라"
프레시안 : 최근 논란이 되는 '산재 카르텔'을 이야기해보자. 지난 10월 26일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산재 카르텔' 주장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각종 견제 장치가 사라져 '나이롱' 산재 환자가 급증하면서 공단과 직영 병원은 과잉진료로 잇속을 챙겼지만, 산재보험기금은 누수가 발생했다는 게 이 의원 주장이다. 이에 발맞춰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기금 재정 부실화 특정감사'에 착수했다. 실제 이러한 '산재 카르텔'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전수경 : '산재 카르텔'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적 약자, 취약 계층을 옥죄는 수순이라고 생각된다. 윤석열식 자유라고 할까.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이상윤 : 새로운 건 아니다.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이, 경제가 어렵고 사회적 갈등과 위기가 많은 시기에 대표적으로 취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희생양을 만들고 이들을 도덕적으로 공격해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어 다수가 혐오하게 하는 식이다. 그렇게 정치권력은 자신이 받는 혐오를 대신 받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면서 자기에게 제기된 비난과 분노에서 벗어난다.
프레시안 : 산재 관련해서 '나이롱' 환자가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산재 보험기금도 매우 많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윤 : 산재보험이 전체 보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다. 줄일 수 있는 돈을 넘어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재 카르텔'이라며 부정 수급을 이슈화하는 것은 종국에는 산재 신청 자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일하다 다쳤는데 병가를 내는 것이 일탈적인 행동 내지는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식이다.
산재 신청 내지는 병가를 내지 않는 게 당연한 분위기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 '산재 카르텔'이다. 이는 현장에서 경영 측 권한이 잘 작동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수적 효과는 윤석열 정권에서 일관되게 노동자에 대한 공격, 즉 노동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화물연대부터 건설노동자, 그리고 이번엔 산업재해자다. 노동자가 가진 자긍심을 허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대중으로부터의 비난도 있지만, 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비난의 굴레 속에서 위축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실업급여 논란도 그렇다. 사회보장 재정을 '세이브'하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정치적 목적이 있다.
전수경 : 그동안은 노동과 산재를 연결해서 '너는 생산성이 다 떨어진 기계야. 너는 이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해' 이런 식의 공격이 주기적으로 진행돼 왔다. 지금은 스케일이 커졌다. 전반 사회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약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실업급여 논란은 고용시장에서도 취약한 위치에 있는 청년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이상윤 : 실업급여 논란에 대한 대응 방식은 ‘부정수급자가 있다 없다’ 식의 사실 관계를 놓고 싸우는 방식은 아닌 듯하다. 방어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롱' 환자로 공격하는 산재보험의 경우, '나이롱' 환자가 있다 없다의 논리가 아니라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또한 정부에서 기업에 산재보험료를 깎아주는 행태가 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도덕적 해이, 정부의 기업 봐주기 등이 심각하지만 그런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재보험의 개혁 과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전수경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듯싶다.
이상윤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그리고 '주69시간' 노동시간 논란 등에서도 드러났는데, 더는 노동자가 사망사고로 죽는, 한국경제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살인적 노동시간은 대기업에서조차도 요구하지 않는 식이다.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좀더 지능적인 방식으로 통제와 관리를 바꿔가는 중이라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현재 윤석열 정부의 노동 배제, 노동혐오,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정치적 스탠스가 공공연해지면서 사회운동 진영이 위축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실정이 많은데, 그것이 지금까지 누적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다시 다잡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수경 : 실업급여 논란에서 눈여겨 본 대목은 집단화 돼 있지 않는 특정 청년 여성을 공격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조직이 없었다.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결국, 그들에게는 낙인만 남았고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지금 정권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개별노동자를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파편화하고 개별존재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방어하지 못하고 상처받는 그들에게 서로 연결돼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주변부로 밀려나고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끈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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