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체제 파탄의 첫 번째 요인 중국?
중국의 경우 2001년 WTO 가입 이후 경제규모가 15배로 커졌다. 이것 자체가 미국에겐 안보상 위협으로 다가왔고, WTO에 가입한 중국에게 자국 시장을 열어 압축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자유무역체제를 미국 자신이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됐다.
WTO체제는 주로 물품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미국의 우위를 보장해 준 주요 장치 중의 하나인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과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게 한다는, 미국에게는 차명타가 될 수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이 지적 재산 침해로 입고 있는 연간 피해액은 2250억~6000억 달러(약 301조~802조 원)에 이른다. 중국 국가자본주의가 자국 기업들에 뿌리는 보조금과 그 보조금 덕에 값싼 가격의 가성비를 무기로 밀어내기 수출전략을 구사해 교역상대국 제조업을 초토화시키는 폐해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WTO 체제 내에서는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은 WTO체제에서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 결과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전체의 28%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이는 17%로 쪼그라든 미국을 압도한다.
이런 뒤틀림은 소비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소비는 세계 전체소비의 12%를 차지해, 31%인 미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말하자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막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와 천문학적인 정부 보조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해 미국 제조업과 그 토대 위에 형성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는 데도 자유무역체제에선 뾰족한 대응방법이 없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 과잉소비가 문제라는 지적 외면
중국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과소비,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길들여진 과잉소비의 거품경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냐, 미국이 값싼 중국제품 구입 등 자유무역체제에서 누려온 이득이 그보다 더 크지 않느냐고 비판해 봤자, 미국 정치인들과 일반대중들에겐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중국 탓으로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 미국에 조성돼 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자국 내부 문제보다 중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무너진 것은 값싼 중국산 수입품의 범람 외에 저임금과 값싼 원자재, 더 넓은 시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미국 제조업의 ‘미국 탈출’도 함께 얽혀 있지만, 어쨌든 미국 제조업은 기업들의 도산이나 해외이전으로 공동화됐다. 2007~08년의 월스트리트발 국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파산 쇼크’) 이후 가속화한 미국 제조업 공동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부정기적인 서비스업 수입에 의존하는 저소득층(하위 20%)의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나 주로 금융과 I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상위 20%의 소득은 같은 기간에 1.6배로 늘었다.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분야의 노동력을 금융 IT의 고소득산업 쪽으로 이동시키는 노동정책 부재가 미국 중산층의 빈곤과 불만을 더 키웠다.
WTO체제도 2001년에 시작된 ‘도하 라운드’에서 농축산품 수출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정치가들은 미국이 압박한 농산품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업 종사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개도국들도 자국의 수입 농산품 관세 인하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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