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를 하염없이 보면서 할머니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내 어릴 적 보아 온, 책을 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마당 쪽 방문을 열어 놓고 글을 쓰셨다. 햇빛을 옆으로 받으며 앉아서, 무릎을 세워 책상 삼아 글을 쓰셨다. 무릎 위에 놓는 단단한 책받침은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할머니의 자세에 맞게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버지가 직접 재단하고 만들어 드렸다.
할머니는 마치 붓글씨를 쓰듯이 펜의 중간 위를 잡고 글을 아래로 써 내려갔다. 펜 끝에 힘이 많이 들어갈 수 없는 옛 필법이었다. 그렇게 쓰면 글씨 또한 커지기 때문에 펜도, 원고지도 특수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한지류의 적당하게 부드러운 종이를 찾았다.
큰 한지를 크기에 맞춰 가지런하게 잘라 저술 용지로 묶어 드렸다. 펜은 굵은 사인펜을 사서 끝이 부드러워지도록 이겼다. 붓펜이 따로 없던 시절이어서 아버지가 이런 방법을 고안했다. 끝이 풀린 굵은 사인펜은 할머니의 손과 팔에 무리가 안 가게 했고 잉크도 적절하게 풀려 나왔다. 왜 할머니의 사인펜은 새것도 항상 헌 것처럼 끝이 이겨져 있는지 그때는 궁금했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던 시기에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여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할머니가 무엇인가 쓰고 계셨고 그러기 위해서 늘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기억을 한다.
초겨울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 때에도 할머니는 방문을 열어 둔 채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마당을 내다보며 글을 썼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막내 손자와 가끔 눈이 마주치면 예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느 때처럼 나의 놀이에 눈길을 계속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 옛날 엄동설한의 기억 속으로 생각을 모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잎을 거의 떨군 화단의 겨울나무들을 보는 할머니의 눈길은 그보다 훨씬 멀리,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얼마를 그러다가 천천히 눈길을 되돌려 다시 사인펜의 윗부분을 잡고 붓글씨를 쓰듯 몇 줄을 술술 써 내려가곤 하셨다.
추위와 기아는 이제 옛 얘기가 됐을지 몰라도 그 겨울들에 묻혀 있는 고난의 시간을 어찌 따뜻한 온기에서 맞이할 수 있을까? 가늠할 길 없는 할머니의 눈길이 그렇게 수없이 겨울을 오가며 할머니의 과거는 뭉툭한 글씨로 하나씩 종이 위에 옮겨졌다.
할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종종 갑자를 꼽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네 손가락의 마디를 하나씩 짚어 가며 중얼거리곤 했다. 기억을 불러오다가 다시 고쳐 되뇌고를 반복했다. 어떤 경우에는 연이어 갑자를 꼽고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억의 정확한 자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 몇 줄을 써 내려갔다.
간혹 손가락 마디를 계속 짚다가 마치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한 것처럼 손을 탁탁 털고 원고용지를 접은 후 일어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한 줄도 더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이 시기를 기억하기 위해 갑자를 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린 손자의 눈에 그것은 정말 희한한 행동이었다. 언젠가 할머니께 여쭈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손에 뭐가 있어?"
할머니는 웃으며 갸름한 손바닥을 보여 주셨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잔주름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주름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연을 그 당시에는 헤아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의 막내 손자를 안고 상기된 볼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다.
<서간도 시종기>는 거의 전적으로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다행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경험을 회상하고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리가 있었다. 할머니의 생신이 되면 아침부터 과거의 동지들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할머니 무릎에 앉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며 가며 본 장면과 소리로만 기억이 남아 있다.
해마다 생신 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어르신들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혁명가들이어서 그런지 노인들임에도 대체로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쾌활했다.
국사 교과서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의 동지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