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번째 봄이 그냥 지나가기 전에, 이제 우리가 S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어야 한다. 그의 얼굴에 찍힌 낙인을 지우고, 그의 등을 짓누르고 있는 멍에를 벗겨주어야 한다.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조선의 어린 생명을 추모할 따뜻한 마음이 천만이 넘는다면, 비극적인 현세의 삶을 살고 있는 S의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은 적어도 수백 만은 되어야 맞다.
눈을 잠시 돌려 S를 바라보자. 우리가 제대로 몰랐고,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S의 이름은 바로 '사북'이다.
간절히 기다려온 이 찬란한 새봄이 그냥 지나가기 전에, 이제 우리는 '사북'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K의 이름도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딴 곳을 쳐다보는 그 시선을 돌리게 하고, 더 늦기 전에 당장 행해야 할 그의 오래된 책무를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한다. 권력을 찬탈한 폭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과 '왕과 사는 남자'에 얽힌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천만이 넘는 나라라면, 국가 폭력에 유린 당한 '1980사북'에 얽힌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적은가에 대해 문제를 느껴야 마땅하다.
이제 귀를 잠시라도 열고 K의 입을 바라보자. 더 이상 '사북'을 방관해서는 안 될 가장 큰 당사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기 민망했던 K의 이름은 바로 '국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북사건
1980년 4월에 발생한 사북사건은 이른바 '광주사태'와 함께 그 해 '10대 뉴스'에 선정될 만큼 당시에는 널리 주목을 받았고, '부마', '광주'와 함께 민주화 이행기에 일어난 이른바 "3대 사태"로 언급되었던 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통제하고 왜곡한 집단 기억 속에서 폭력 난동 사건으로 낙인 찍혔고, 수사당국의 협박과 당사자들의 침묵 속에 오랫동안 잊힌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비상계엄 시기 작은 광산 마을에 살던 수천 명의 광부와 부녀자들까지 대거 가담했던 이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사건의 주요 당사자들이 20년 만에 용기 있게 침묵을 깨고 피해 구제를 김대중 정부에 청원하였고,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는 방대한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본질적으로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국가 사과와 피해자 구제 조치를 권고하였다.
그 이후 관련자들의 추가 증언과 역사가들의 후속 연구를 통해 이 사건의 발단과 악화와 은폐의 모든 국면에 국가 폭력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국가 폭력이 자행 되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2024년 제2기 진회위는 추가 조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 사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국가의 사과를 재차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사과나 후속 조치는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유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방치되고 있다.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영화 <1980 사북>(감독 박봉남)은, 비상계엄 치하 1980년 4월 강원도 광산촌 사북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항쟁과 그 전후로 벌어진 국가폭력의 실상, 그리고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는 공동체의 상처를 뒤늦게 시대의 공론장으로 불러낸 작품이다(관련 기사 : '사북사건' 6년의 기록, 아들뻘 군인에게 맞은 아버지와 무너진 가족).
지난해 12월 2일 국회 초청 상영회를 계기로 "허공 중에 흩어져서 되돌아오지 않는 45년 전 광부들의 외침에 이제라도 화답하겠다"는 뜻으로 1980사북시민상영위원회 <늦은 메아리>가 출범했고,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공식 사과 이행을 목표로 서명운동과 영화 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시민 초청 상영회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4월 21일은 사북항쟁 제46주년 기념일이다.
* 영화 <1980 사북> 오마이뉴스 초청 무료 상영회 신청하기(https://omn.kr/2hfje)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jcrc.kr(정선지역사회연구소 1980사북 특별페이지)에도 실립니다.
필자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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