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이들 숫자는 그새 80~90%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종락 목사는 아직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곧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와중에 찾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공문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송처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구청과 경찰이었다. 공문은 폐쇄와 처벌을 예고하며 3년 동안 반복해서 날아왔다. 이 목사는 항변했다.
"아니 당신들이 공무원 맞나. 내 집에 내가 구멍을 뚫어서 만든 생명 살리는 박스를.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데 정부는 대책도 없잖아. 그러면 법 제도 행정 복지로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안 들어오도록 만들어라. 외국에서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결국 구청이 철거하러 오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이 목사는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달라 요구하고 KBS·MBC·SBS에 연락했다.
"3사 방송국이 다 온다고 그랬어요. 그게 그 사람들이 알고 난 뒤에 철거를 무산시켰죠."
방송보도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두려웠던 것 같았다. 경찰도 가만있지 않았다. 과학수사대가 출동해 베이비박스로 아이가 들어 온 직후 지문 채취를 시도했다. 이 목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지문을 닦아낸 뒤 자기 지문을 찍고 말했다.
"(이 지문의 당사자가) 아이를 맡긴 사람이니까 지문 조사해서 처벌해라. 국가가 보호자가 보호할 수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무작정)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경찰은 '목사님 뜻 알겠습니다'라며 돌아갔다. 그 뒤로 지문 채취 시도는 없었다.
국가기관과 별개로 민간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베이비박스 앞에서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유괴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여성들을 직접 상담해서 아이를 받겠다고 했다. 그들은 24시간 3교대로 편성해 베이비박스 앞을 지키고 서서 한 달 가까이 버텼다.
하지만 찾아온 여성들과 마주쳐도 상담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목사가 추운데 안으로 들어와 차도 마시고 라면도 먹자고 권했지만 이들은 끝내 들어오지 않고 버티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철수했다.
연락 끊어버린 남성들, 혼자 남겨진 여성들
이 목사의 문제의식은 국가나 단체와의 대치에서 멈추지 않았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생모들과 쌓아온 상담 경험이 그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 목사는 10년 넘게 천 건 넘은 상담을 직접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지겹게 들어야 했던 사연이 있었다. 임신만 시키고 연락을 끊어버린 남성들과 혼자 남겨진 여성들이었다.
"상담을 해보니까 엄마들이 임신만 시키고 도망간 아빠들에 대한 증오심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로 인한 강박관념과 정신적 고통, 출산 우울증까지. 성이라는 게 생존의 도구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따라야 된다는 말이야.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아무 책임을 안 지려는 행동에 대해... 그래서 부성애법까지 만든 거예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목사가 직접 법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현장에서 10년 이상 쌓아온 상담 경험이 제도의 공백을 가장 먼저 알게 했고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사연은 법조문을 만드는 질료가 되었다.
2024년 7월 시행된 보호출산법의 기원이 이종락 목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5년 그는 지금의 보호출산법의 모태가 되는 '비밀출산법'을 직접 설계하고 입법을 추진했다.
"11년 전에 비밀출산법을 만들었어요. 부성애법까지 함께요. 이 법이 왜 필요하냐. 항상 이야기했던 것처럼 법 제도 행정 복지가 잘 되면 베이비박스가 큰 기능을 안 해도 된단 말이야. 선진국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지금 되고 있으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 이 생각이 들었고 그러므로 베이비박스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밀출산법을 만들기 시작했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해 법학 교수, 변호사, 판사 출신 인사들과 함께 일 년 반에 걸쳐 설계했다. 수천만 원 비용으로 만들어진 법안은 당시 오신환 국회의원(서울 관악을, 19·20대)을 통해 발의됐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 법안이 10년 뒤 김미애 국회의원(부산 해운대을, 21·22대) 손을 거치면서 '위기임산보호출산법'으로 부활했다. 이 목사는 부성애법을 비밀출산법에 함께 담았다. 주 내용은 양육비 미납 시 운전면허 취소에 이어 여권취소와 월급 압류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소득이 없다면 국가가 먼저 대납하고 소득이 생겼을 때 환수하는 구상권 조항까지 포함된 법안이었다. 이 원안의 핵심 두 가지는 10년이 지나서야 현실이 됐다.
운전면허 제재는 2021년 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고 2024년 9월에 적용 기준이 갖춰졌다. 국가 선지급 후 구상 제도는 2025년 7월에야 시행됐다. 아쉽게도 방향은 이 목사의 원안을 따랐지만 강도는 달랐다. 운전면허 취소가 아닌 6개월 정지였고, 여권 취소 조항은 빠졌다. 이 목사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거는 이 사람 안 잡는 법이야. 없으면 안 되니까 마지못해 한 거예요. 느슨하게.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생겨요?"
다시 베이비박스로 돌아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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