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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운명 걸린 원전 미래, 기명 국민투표로 결정을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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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지뢰' 위에 살 것인지 주권자가 선택해야

정권에 따라 탈원전·친원전 오락가락 그만

'에너지 전환 30년 로드맵' 법제화 필요

공습 당한 이란 원전의 서늘한 경고 새겨야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부쉐르 원전 인근을 타격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직접 타격은 아니었으나,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될 뻔한 순간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은 또 어떠한가. 전쟁 중 외부 전원이 여섯 차례나 완전히 끊겼고, 비상발전기로 간신히 노심 용융을 막아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재앙을 피했다"고 경고한다.

이 두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원전은 미사일에 직접 맞지 않아도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원전의 아킬레스건은 '냉각'이며, 냉각의 핵심은 '전력 공급'이다. 변전소 하나, 송전탑 몇 기만 무너져도 원전은 거대한 시한폭탄으로 변한다. 우리나라는 고리·한울·한빛·월성 4개 단지에 24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전시에 송전망 계통이 무너지면 동시다발적 위기가 시작된다. 그 피해는 한반도를 넘어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미친다. 세계 어느 분쟁 지역보다 위험한 '핵지뢰'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습을 당한 이란 부쉐르 원전 부지를 2026년 3월 7일에 촬영한 위성 사진. 연합뉴스

5년 단임제가 100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모순

원전의 설계 수명은 40~60년이며, 해체와 폐기물 처리까지 고려하면 그 영향력은 100년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시간축을 결정하는 우리 정치 시스템은 고작 '5년'이라는 단기 사이클에 갇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은 180도 뒤집힌다.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다시 그 반대로 춤을 추는 동안 국가 전략의 일관성은 증발했고 사회적 갈등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쌓였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정권의 과오가 아니다. 1987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독재 방지'였고, 그 결과 권력의 분산과 단임제를 얻었으나 '장기적 국가 전략' 수립 능력은 상실했다.

민주화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은 독재의 회귀인가, 아니면 국가 생존이 걸린 전략적 일관성의 부재인가. 이제는 87년 체제가 남긴 공백을 채울 새로운 의사결정 모델이 필요하다.

기실 현재 대의제 민주정은 자본권력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다. 이 현상은 21세기에 극심해졌다. 공산권의 독재처럼 민주정에서도 의사결정능력 저하가 인류의 진짜 위기다. 윤석열과 트럼프가 단적인 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새로 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젠 민치제(民治制)가 병행되어야 한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국민이 책임을 갖고 손수 결정하는 흐름이 중시되지 않으면 안된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모습. 2011년 3월 25일. AP 연합뉴스

대의제의 한계와 '숙의 민주주의'의 필요성

대리운전 같은 현행 대의제는 구조적으로 '현재의 유권자'만을 대변한다. 30년 후 이 땅의 주인일 미래 세대는 오늘 투표권이 없다. 원전, 기후위기, 연금 문제는 모두 미래의 몫을 현재가 가로채는 구조적 모순 속에 방치되어 왔다.

이미 세계는 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아일랜드는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 99명이 수개월간 전문가와 숙의하여 낙태권 같은 초장기적 사회 갈등을 해결했다.

우리 역시 에너지 전환 30년 로드맵을 단순한 정쟁의 도구로 두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로드맵을 확정하고, 이를 어떤 정권도 뒤집지 못하도록 헌법적 수준으로 법제화하는 '에너지 헌법'이 절실하다.

'기명(記名) 투표', 역사 앞에 선 주권자의 명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대한 국민투표를 '기명(記名)'으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비밀투표의 원칙은 신성시되지만, 이는 과거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초장기 과제에서 익명성은 때로 '무책임'의 가면이 된다. 19세기 미국 민주주의 초기에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투표하며 주권자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도 스위스의 일부 지역(란츠게마인데)에서는 광장에 모여 손을 들어 공개적으로 정책을 결정한다.

우리에게는 '족보(族譜)' 문화가 있다.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이고자 하는 마음, 내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지는 명예 문화가 DNA 속에 흐르고 있다. 기명 투표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현재의 편익만 좇는 나를 버리고, 역사와 미래 세대 앞에 선 주권자로서의 나를 소환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56인이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이름을 남긴 것처럼, 우리도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계약서에 당당히 이름을 남겨야 한다.

세대 간의 신성한 계약

"30년 후 우리는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를 지금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진화이며 세대 간의 신성한 계약이다. 기명 투표를 통해 남겨진 기록은 훗날 우리 자손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미래를 꿈꾸며 책임 있는 선택을 하셨구나"라고 확인하는 역사적 유산이 될 것이다.

국가의 명운은 5년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국민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핵지뢰의 공포를 걷어낼 대장정의 첫걸음을 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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