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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유서에서 "자료 삭제했다"

 
[전문] 해킹팀 관련 자료 삭제됐다면 진상규명 난항 예상
곽재훈 기자2015.07.19 12:57:28
 
 
국가정보원의 해킹 사찰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관련 직무를 수행했던 국정원 직원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유서에서 "자료를 삭제했다"는 대목이 발견됐다. 해킹 의혹을 규명할 자료가 삭제됐다면, 사건의 진상이 미궁에 묻힐 우려가 크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 임모 씨의 유서에는 "내국인·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는 주장과 함께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유서에는 또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다"는 사과 내용도 있는 반면, 그러면서도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 저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이라는 주장이 함께 담겼다. 임 씨가 이 '자료 삭제' 행위에 대해 국정원으로부터 문책을 당한 듯한 정황이다. 

그러나 유서에 나타난 이같은 주장과는 달리, 자료 삭제가 사실일 경우 '우려'의 소지는 굉장히 크다. 설령 국정원이 주장해온 대로 내국인 사찰이 없었다 한들 이를 증명할 방법이 사라지게 됐고, 반대로 불법 해킹이 있었을 경우에도 자칫 진상이 묻히게 될 위험이 있다. 

현재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이 사건 대책위원장인 IT 전문가 안철수 의원은 이날 "해킹 프로그램 테스트 시점부터 마지막 사용 시점까지 모든 사용기록을 출력물 형태가 아닌 원본 로그파일 형태로 제출해 달라"고 국정원에 요구하면서 "디지털 사건에서 현장조사는 보조적 자료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디지털 증거"라고 말했다. 안 의원이 이 발언을 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자료를 삭제했다"는 임 씨의 유서가 공개된 것이다. 
 
국정원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직원이 삭제한 자료는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100% 복구가 가능하다"며 국회 정보위 현장 방문 때 삭제된 자료를 복구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전했다. 하지만 임 씨가 20년간 사이버 안보 분야를 담당해온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처럼 간단히 복구가 가능할 방법으로 삭제를 했겠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삭제된 자료의 복구 가능할지는 실제 복구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일 낮 12시께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한 야산 중턱에서 임모(45·국정원 직원) 씨가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이날 임 씨가 탑승했던 차량. ⓒ연합뉴스


한편 임 씨의 유서에는 또 "원장님·차장님·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하다"면서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또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도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달라"며 흡사 옳은 일을 한 국정원 직원들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는 식의 인식도 이 유서에는 담겼다. 

임 씨는 전날 경기 용인시의 한 야산에서 자동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됐고, 부모와 가족, 직장(국정원) 앞으로 쓴 각 1장씩의 유서가 시신 곁에서 발견됐다. 이날 경찰이 공개한 것은 국정원 앞으로 쓴 부분이다. 

임 씨가 국정원에서 담당한 업무는 "요청을 받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는다든지 하는 작업을 하는 '기술자'"(이철우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하고 사용한 것도 임 씨다. 단 해킹 대상 선정은 다른 부서에서 하며, 임 씨는 다른 부서의 요청을 받아 해킹 대상자(타킷)의 정보를 빼낸 후 다시 요청 부서에 이를 넘기는 일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임 씨의 유서 전문.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저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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