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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유승민, 천정배 그리고 정의화

 
새로운 정치세력은 합리적 보수세력 견인할 수 있어야…
 
이진우  | 등록:2015-12-20 08:58:10 | 최종:2015-12-20 09:04: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안철수 돌풍이 거세던 시절,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35%를 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동의 여권 대선주자 박근혜 후보와의 1대 1 가상 대결에서도 상당한 격차로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의 지지율이 이제는 10%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 때 그를 지지했던 나머지 25%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지극히 일부가 새누리당 혹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옮겨갔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부동층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왜 부동층으로 남았을까요? 수구 기득권도 싫고 운동권 진보도 모두 거부하는 ‘합리적 보수’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안풍’의 실체였지요.

바로 이 부분을 안철수는 오판했습니다. 기존 한국 정치 지형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제3의 길’을 열어달라고 유권자들은 간절히 요구했는데, 그 열망을 ‘반 박근혜’ 진영 쪽에 그냥 넘겨줘 버렸습니다. 그 후 대선 국면에서 애매모호한 행보를 보이다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독자노선을 걷는 듯 하더니 이번에는 또다시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그 열망을 문재인 세력에게 넘겨줘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독자 노선을 걸어가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 안철수는 다시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일까요? 그리고 안철수의 홀로서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합리적 보수’를 기대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는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습니다. 92년 총선의 국민당과 신정당, 96년과 2000년 총선의 자민련, 2008년 총선의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 등을 지지한 유권자가 대략 20%(500~550만 표) 정도 됩니다. 이들 20%로 상징되는 ‘제3 정당’ 혹은 ‘제3 후보’의 색깔이 보다 분명해지고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3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돌풍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92년의 정주영 돌풍, 97년의 이인제 돌풍, 2002년의 정몽준 돌풍, 2007년의 이회창 돌풍, 그리고 2012년의 안철수 돌풍 등이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결론적으로, ‘안철수 돌풍’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잠시 가라앉았을 뿐입니다. 92년 정주영을 지지했고, 97년 이인제를 지지했고, 2002년 정몽준을 지지했고, 2007년 이회창과 문국현을 지지했고, 2012년에 안철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그 증거가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려는 박근혜 대표에 맞서 싸우다가 원내대표를 사임한 유승민, 그리고 국회선진화법을 이유로 경제활성화 관련법 직권상정을 거부하고 있는 정의화,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와 새로운 합리적 중도정당을 만들겠다는 천정배. 이들 모두가 바로 ‘합리적 보수’를 열망하는 국민의 정서와 현재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합리적 보수’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민주주의와 국민행복을 위해 정도를 걸어가 달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 선거 승리만을 위해 유권자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 독선과 권위주의에 빠져 국민을 섬기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계파 정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정치와 국정운영을 펼쳐달라는 것이지요. 알고 보면 쉽지요.

2012년 안철수 돌풍의 원동력도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아닌 ‘통합과 상생의 정치’로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원내대표 직을 사임하기는 했지만 유승민 의원에게 적지 않은 국민들이 박수를 친 이유도 '합리적 보수'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호남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아닌 무소속 천정배 후보를 선택한 이유도 ‘계파 정치’와 ‘낡은 진보’를 청산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이들에게 보낸 국민의 열렬한 박수 속에 ‘제3의 길’을 위한 작은 씨앗들이 담겨 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삼권분립’과 ‘의회민주주의’를 요즘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고등학교 사회문화(혹은 법과정치) 시간에 배운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지만, 새삼 그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본래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각자의 존재의미와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이들 3부간 합리적 견제와 균형으로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정치가 펼쳐진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결국 기본은 각자가 각자의 존재의미와 역할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유권자가 선출한 국회의원, 그리고 그 국회의원들이 모두 모여서 선출하는 자리가 바로 국회의장입니다. 아무리 여당이라 할지라도 국회의원은 입법부의 일원이고, 입법부의 수장은 엄연히 국회의장인데,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이 청와대 수석의 편을 들면서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을 버젓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특보로 임명하는 것, 여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직선제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평당원 신분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사임을 압박하는 행위,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회의장이나 여당 대표를 만나려면 국회나 당사를 찾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조직 문화…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삼권분립’이 무력화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이거야말로 ‘비정상’이며 ‘국가비상사태’입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된 시민의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참뜻과 중요성을 일깨워준 게 바로 그들이고, 집회/결사/시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해준 것도 그들입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삼권분립’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준 것도 바로 그들입니다. 본인들은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에 기여한 거지요.

안철수에게 ‘콘텐츠’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승민과 천정배에게는 ‘세력’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콘텐츠’와 ‘세력’ 모두 이미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듣고 수용하여 새로운 정치로 풀어낼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만 우리 국민에게 줄 수 있다면 국민의 목소리와 바램이 바로 ‘콘텐츠’이고 그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바로 ‘세력’이 될 수 있는 거지요. 부디 안철수와 천정배가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유승민과 정의화도 자신들을 향하는 격려와 기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답은 국민의 목소리와 바램 속에 있습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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