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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28일 시험발사한 '화성-14'형은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북미대결의 '게임 체인저'임에 틀림없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
북한이 28일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이 사거리 1만km 내외로 확인돼 미국 본토가 북한의 사정권에 놓이게 됨에 따라 북.미대결에 새로운 국면이 형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4일에 이어 28일 북한이 두 차례 시험발사한 ‘화성-14’형은 명실상부한 ICBM으로 몇 가지 기술적 확인사항을 남겨둔 상태라 하더라도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임에 틀림없다.
미 본토 북 핵미사일 사정권에, 북미협상 ‘카운트 다운’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 방치 전략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핵무기의 수량과 미사일 사거리가 미국 본토에는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전술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내에 북한이 50-100기 정도의 핵무기를 확보하고, 1만km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개발, 실전배치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4년 중임제인 미국 대통령제에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골치 아픈 북핵문제는 미뤄둔 것.
특히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이라는 젊은 지도자가 ‘경제건설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국가 전략노선으로 강력히 추진해 ‘중국 지렛대’ 등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방치된 뜨거운 감자는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전략적 인내 시대(The era of strategic patience)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5차 핵시험에 이어 올해 7월 두 차례 ICBM 시험발사를 통해 미국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보유국 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자잘한 기술상의 문제점을 지적해봐야 북한이 핵무기보유국이라는 현실을 돌이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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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축하연을 30일 평양 목란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방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
북한이 지난 4일 1차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전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인데 이어 이번 2차 시험발사 성공 직후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부 동반으로 연회에 등장한 것은 북한이 그만큼 ICBM 개발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북한이 핵무기보유국으로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둠으로써 북.미 간 대결구도는 근본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간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앞세워 북한을 상대하는 ‘배후’였다면 이제는 ‘당사자’ 위치에 놓인 것이다.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은 핵무기보유국으로서 자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북한을 상대로 무력 제압에 나서든지 협상을 벌여 합의를 만들어내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다.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은 한반도는 물론 일본열도와 이제는 미국본토까지 상상하기 힘든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또 북한을 잃을 수 없는 중국이나 함께 쑥대밭이 될 한국도 이를 지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답은 이미 협상으로 나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8월말부터 시작되는 UFG(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과 8월말께로 예상되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칠 시간이 필요할 따름이다. 북.미협상은 이미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
미국의 이란, 러시아 연계는 ‘자충수’?
북한이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께 ICBM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관측들도 많았지만 평소 북한은 대북제재가 실행되면 대응조치로써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패턴을 보여왔다. 선제적 도발이 아닌 대응조치, 자위적 조치라는 명분을 토대로 핵.미사일 능력을 시험, 과시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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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30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에 합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이번에도 미국 상원이 27일 북한에 대한 제재법률을 통과시키자 곧바로 ICBM을 발사했다. 그런데 이번 북한의 대응조치는 약간 달랐다. 먼저, 미국 상원이 제재법률을 통과시켰지만 이 법률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재가 등 후속조치가 따라야 하는데, 북한은 즉각 대응조치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이번 미국의 대북 제재는 ‘북한 이란 러시아’ 3국을 싸잡아 마련한 제재법안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란은 당일인 27일 인공위성 로켓 ‘시모르그’(불사조)를 발사했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즉각 ‘보복조치’를 공언했고 실제로 미국 외교관 퇴출 조치에 나서고 있다. 북한이 시간을 잴 필요가 없는 정세가 조성된 것이다.
특히 이란의 인공위성 발사는 주목해 볼 만하다. 오마마 대통령 시기 ‘전략적 인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계의 입김 탓에 북한의 핵.미사일이 중동지역으로 확산돼 ‘모국’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 만은 피하기 위해 ‘비확산’을 위한 노력은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란 미사일 커넥션은 미국의 주요 감시대상에 속한다.
이번 북한의 ICBM 발사는 이란의 인공위성 발사, 러시아의 대미 보복조치와 나란히 사실상 3국 반미 공동행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특징이 있는 만큼 향후 유엔 안보리 등 국제무대에서 대북제재 조치에 러시아가 비토권을 행사하거나 반대입장을 낼 가능성도 높아졌다.
시진핑의 고민, 문재인의 고민
결국 미국은 공을 중국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자신의 트윗에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심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북.중관계 전문가인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베이징을 통해 평양에 간다’는 오바마가 상속한 견해를 따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이 북한에 원유.석유를 끊고, 북한 노동자 송출을 차단하는 등 목줄을 조이면 북한이 손들고 나올 것이라는 트럼프식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마바 대통령 시기 내내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지만 이같은 일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중국은 자국과 인접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추가배치를 추진하는 마당에 중국의 심기가 좋을 리 없다. 오는 10월께 집권 2기 지도부 출범을 준비하며 권력다지기에 나서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체면을 구긴’ 미국과 한국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할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그만큼 북한에 대해서도 강력한 경고나 제재를 가하겠지만.
촛불 민심을 업고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전향적 대북 대화제의에도 불구하고 뺨을 맞은 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또 김정은과 북핵이라는 높은 ‘북한 장벽’을 실감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인국들의 힘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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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ICBM 발사에 29일 새벽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하에 긴급 소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강경책을 담은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
문 대통령은 29일 새벽 1시 긴급 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사드 잔여 발사대 추가배치 △유엔안보리 긴급 소집 요청 △대북 경계태세강화 등 준비된 강경 대응조치들을 쏟아내고 여름휴가를 떠나버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끌어들인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등 정당한 절차를 밟겠다고 공언해온 현 정부가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구실로 손바닥 뒤집듯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를 공표한 것은 현 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통일외교안보라인 구성 때부터 제기된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황스럽다.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하나도 없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같은 조치로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무망해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미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북 제재조치는 다 시행하고 있고, 특별한 대북 제재도 없다”며 “대화를 제의해둔 상태인 만큼 북측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만 말했다. 대응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도적으로 나설 계획도 없다는 것.
현 정부가 ‘제재와 대화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에서는 제재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의 28일 ICBM 발사에 통일부가 아니라 외교부 한반도교섭본부가 정부 성명을 낸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북 6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대통령 8.15경축사 주목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북한의 ICBM 발사에 사드 배치를 연계시킨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의외”라며 “UFG 훈련과 8월 말경에 유엔안보리 결의가 나오면 북한도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북한의 예상되는 대응조치에는 6차 핵실험도 포함된다.
지난 4일 1차 ICBM 시험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 논의는 이번 2차 ICBM 시험발사까지 포함되더라도 중국이 원유.석유 공급 중단을, 러시아가 북한 노동력 송출 금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제재 강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국제적 목소리를 중국이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중국이 대북제재안에 대해서도 마냥 비토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 사드를 배치한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도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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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30일 오전 괌 기지에 있는 전략폭격기 B1-B 2대를 한반도 상공으로 보내 무력시위를 전개했다. 8월말 실시될 UFG연습에는 미군의 전략자산이 대거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제공-공군] |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일각에서는 ICBM까지 발사했으니 이제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수정제의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냉엄한 현실은 북미 간, 남북 간 긴장은 더욱 격화되고 있고, 극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북한의 ‘핵무력 건설’ 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8.15광복절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지 모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측은 문재인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선언하고 민간교류와 경협 등에서 가시적인 정책 변화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특사는 공식 문건으로 제기하고 창구도 공식 창구를 통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운명을 이끌 운전석에 앉고자 한 것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한반도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끌어들이고 사드를 추가 배치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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