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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사전투표를 왜 폐지하나…임기단축 개헌은 쓸데없는 소리”

전광준기자

수정 2025-03-05 20:32등록 2025-03-05 20:14

홍준표 대구시장. 홍준표 시장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홍준표 대구시장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사전투표 폐지 주장에 대해 “관리를 잘해야지, 사전투표를 왜 폐지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안을 주장하는 여권 대선 주자들을 향해서도 “얼마나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나”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홍 시장은 5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며 단식 중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투표율을 높이고 모든 사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사전투표 제도를 도입한 게 아니냐”며 “시시티브이(CCTV·폐회로텔레비전)를 설치하고 철저히 투표함 관리를 하도록 하면 되지 그걸 어떻게 지금 폐지하나”라고 했다. 이어 “미국 같은 경우에 투표를 한 달 전부터 한다”며 “사전투표를 폐지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극우 지지층 일부가 사전투표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사전투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해보겠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홍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 발언 등을 통해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가 거론되는 여권 주자들을 향한 견제구를 보내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전후 상황을 담은 책을 출간하며 최근 정치 행보를 재개한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해 “당을 이렇게 망쳐놓고 양심이 있어야지, 나라를 이렇게 어지럽게해 놓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비판한 게 한 예다.

또 한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자기희생’을 언급하며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에 나서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수천억원을 들여서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대선을 하는데 3년 짜리 (대통령을) 뽑으라는 거냐”며 “얼마나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말하자면 ‘내가 되어본들 너희들이 지겨울 테니까 3년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소리 아니냐”며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을 어떻게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겠나”라고도 했다. 홍 시장은 자신의 개헌 구상에 대해선 “구상은 진작 다 해놓고, 정리해서 곧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며 무기한 단식을 하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홍 시장은 “(현재 헌재 심판은) 여론으로 하는 원님 재판이나 다를 바 없다”며 “여론에 따라가는 재판을 하는 것은 헌법재판관이 아니고 뒷골목 양아치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나는 대통령이 잘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으나 처벌하더라도 적법 절차대로 하자는 말”이라며 “(헌재가) 지금 법 절차에 맞지 않게 탄핵을 하고 있다. 계엄 한번 잘못했다고 그걸 갖고 모든 적법 절차를 뒤흔들어버리고 있다. 저렇게 적법 절차를 하지 않으면 헌재는 폐지”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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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세계] 극우와 개신교를 분리하려면

릴레이 기고② 파시즘과 극우개신교

    •  
  •    발행 2025-03-05 19: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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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3-05 20:03:35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왜 파시즘인가?

윤석열이 벌인 무모한 내란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더해 더더욱 심각한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그에 대한 탄핵과 심판으로 사태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지고 있다.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1월 19일 서부지법 난동사태로 그 걱정이 더해졌다.

그 사태 직후 파시즘적 광기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대중의 폭력행위가 애국주의로 정당화되는 사태 가운데서 권력자와 그 집단이 벌인 패악 행위와는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파시즘’은 그 현상을 일컫는 개념어로 새삼 부상하였다. 기왕의 권위주의적 정치를 일컫는 ‘독재’라든지 ‘전체주의’ 또는 그와 관련된 이념적 경향으로서 ‘극우주의’ 등이 혼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사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널리 통용되고 있음에도 그 실체가 딱 떨어지게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José Ortega y Gasset). 파시즘의 개념 정의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가 그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파시즘의 현상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진 대로 그 기원은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주도한 파시스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작 파시즘을 말할 때 그 전형은 독일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즘을 연상한다. 훨씬 파급효과가 컸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나치즘은, 국가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주의와 차별주의 등을 골자로 하여 전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한 데 그 특징이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양상을 덧붙인다면 그것이 단지 일부 집권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동반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파시즘 체제는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형성되었지만,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 절차를 뛰어넘는 극단적 성격을 띠었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대략 공통되는 양상을 신진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에 대한 공포와 증오의 확산, 둘째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원하고 재건한다는 애국적 열정을 결집하는 대중행동과 조직화, 셋째 지도자들과 대중이 적으로 규정한 집단과 공공기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 넷째 보수 정치권과 기득권층의 묵인과 협력 하에 정치권력 획득, 다섯째 국가기구를 장악한 뒤에 대중을 억압하는 테러독재 체제의 수립.”(한겨레, 2025.2.12.)

더불어 기왕에 파시즘의 사회적 토양과 잠재력이 갖추어져 있는 터에 급기야 헌법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보수 정치세력이 묵인하는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파시즘 현상을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펼쳐지고 있던 극우 대중의 정치적 집회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일부 기존 정치세력이 사실상 옹호하고 있는 사태에서 그 위험한 징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불법, 사기탄핵반대 3.1절 광화문국민대회를 하고 있다. 2025.03.01. ⓒ뉴시스


왜 극우 개신교인가?

극우 개신교는 어쩌다 그 음험한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개신교의 정치적 집회와 그 사태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정황상 분명하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전광훈의 메시지와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벌인 이들의 동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만 그 상관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전광훈은 공공기관의 합법적 절차를 부정하는 언행을 수없이 반복해 왔으며, 윤석열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시점에는 “서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 청구하면 서부지방법원도 불 속에 넣어 태워버려야 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실제 난동을 벌인 당사자 가운데 일부가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로 확인되었다. 전광훈은 부인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그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극우세력의 정치행동이 급기야는 헌정질서와 공권력을 부정하는 폭력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그 사태의 위험성이 있다. 이른바 ‘전광훈 현상’은 극우 정치세력이 결집하고 행동하는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극우 개신교가 그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이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종교세력은 대개 그 주도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양상을 띠었다. 종교가 지니는 상징성과 그 동원력 때문이다. 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극우 개신교라는 종교세력이 파시즘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고 있고, 여기에 지지 대중과 일부 정치세력이 동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가히 극우 개신교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에는 전광훈을 중심으로 하는 ‘광화문파’와 결별하여 손현보를 중심으로 하는 ‘여의도파’가 경합을 벌이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진영의 분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할 분담을 통한 극우 개신교의 확장성과 동시에 극단성을 강화하는 양상일 수도 있어 우려된다. 상호간 주목경쟁은 그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와 더불어 선명성을 강화하려는 방향을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성장해 온 방식을 따르는 경로이다.

과연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한국 사회의 극우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교회가 지닌 조직력과 그에 따른 동원력 덕분일까? 그러나 그것이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이 지도자와 대중의 결속력을 높이는 조건이 되는 것일까? 이 역시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회가 지니는 어떤 특성만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정곡에서 벗어난다. 유사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일부가 극우화되고 사회 전반의 극우세력을 향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사연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통찰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반공주의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해 왔다. 이는 분단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적 근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형태였다. 거시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을 뿐 아니라 교회의 유력자들과 정치세력이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가치를 공유해 왔다. 교인들은 그 가치를 내면화했다. 그와는 달리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개신교인들이 의미있는 대안세력으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강고한 지배체제 안에서 보수 개신교는 그렇게 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 양상은 달라졌다. 민주화의 효과는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권위주의와 성장주의를 되돌아볼 여지를 남겼다. 교회는 사회적 민주화가 진척되는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지체된 영역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교회의 흡인력도 줄었다. 그즈음 진보 개신교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역량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은 그간 한국 교회가 견지해 온 반공주의를 공식적으로 철폐하는 의미를 지녔다. 이에 보수 개신교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결과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결성하였다. 이후 한기총은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표방하는 한편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나서 시민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기존 정치적 보수 세력이 더는 이전처럼 확고한 입지를 갖지 못했고,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 또한 분출되었다. 그 가운데 교세 확장은 정체되고 기존 보수 교회의 사회적 효능감 및 신뢰도는 점점 떨어졌다. 보수 개신교는 이를 내적 갱신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선명한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는 과거 반공주의의 효과를 변형된 형태로 답습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곧 위기의 원인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고 내적 결속을 다지는 방식이다. 그것은 사회적 평등의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주로 성소수자와 무슬림 등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공격적 태도로 가시화하였다. 세속 문화에 대항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른바 ‘문화전쟁’이라 할 만한 양상이었다. 보수 개신교가 보수정권을 지지한 것은 그 정권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문화전쟁을 대신해 주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반대, 그리고 무속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그 사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그 동맹관계 안에서 극우주의가 싹텄다.

보수 개신교 가운데 일부 세력이 그렇게 극우로 치달으며 보수와 극우가 갈렸다. 한기총은 극우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었고, 더불어 지위를 둘러싼 내부 스캔들에 휩싸였다. 한기총을 대신하여 2017년 보수 개신교 연합기구로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결성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극우 잔존 세력의 중심에 전광훈이 우뚝 섰다. 보수 개신교와 극우 개신교가 가치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다른 점은 지난 2월 24일 한교총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데서도 확인된다.

교회적 기반의 확장성에 한계를 지닌 극우 개신교가 자리한 곳은 광장이었다. 지금 그렇게 극우 개신교는 광장에서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극우세력들을 결집하는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개신교의 내적 조건에 따라 돌출한 현상만은 아니며 극우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에 힘입어 나타난 현상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등 의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있다. 2025.03.01. ⓒ뉴시스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극우 정치가 파시즘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려하는 그 사태가 단순히 종교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공통의 대안이 절실하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위기는 언제나 사회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경제적 격차로 인한 상실감과 사회적 차별로 인한 소외감이 그 자양분이다. 이를 정치세력이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구현하고자 할 때 파시즘 현상은 파시즘 체제로 귀결된다. 그 누구도 곤궁에 처해 있는 나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깊어갈 때 환상에 기대는 파시즘의 유혹은 떨칠 수 없게 되며, 그 위에 위험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의 강화, 그리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정치적 대의제 구현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물론 우려할 만한 그 사태에 극우 개신교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만큼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절박한 대책이 필요하다.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는데, 개신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마땅한 우려이며, 그에 동조하지 않는 개신교의 경각심이 요청된다.

우선 전광훈이나 손현보와 같은 이들이 결코 교회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이미 전광훈에 대해서는 그가 속한 교단에서도 면직 및 제명 처분을 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교회 기관에서 누차 그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밝혀 왔다. 최근 부상한 손현보에 대해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대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행세하는 것은, 다양한 교단들이 각기 독자성을 갖는 개신교의 교단 구조상 실효적 제제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다. 개신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교회가 그들을 배태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들과 다른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교회 대중이 오도된 길에 이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한국 개신교인들의 평균적인 정치사회 의식은 그렇게 극단화되어 있지 않으며, 대체로 시민사회의 평균적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목회자나 교회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며 대체로 일반적 인식의 경향을 띠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비상계엄 직전에 이뤄진 2024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개신교인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에서 비개신교인과 마찬가지로 개신교인 역시 60% 안팎으로 부정적 평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몇 해에 걸쳐 누적된 인식조사에서 드러난 일관된 경향이기도 하다. 미세하게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신교인들의 정치사회 인식의 경향은 시민사회의 인식과 크게 괴리되어 있지 않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미세하게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점이 어째서 두드러지게 보일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개신교 공적 기관의 대표성이 주로 고령층 남성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이 주로 돌출된 극우 개신교의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안에서 특정 세력이 교회 전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오인되는 과잉대표성의 문제는 교회의 내적 과제로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여론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여러 교단들이 전광훈과 손현보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밝히고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돌출된 극우 집회 현장만 조명을 받는 사태는 개신교의 실상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또한 ‘주목경쟁’을 동원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고 있는 극우 정치집회를 의도치 않게 강화해 주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극우 개신교의 실상을 과대하기보다는 상대화해서 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언론의 몫 또한 실로 중요하다. 이른바 ‘이대남’을 퉁 쳐서 말해서는 안 되듯, ‘극우=개신교’로 등식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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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5명 중 1명, 결혼·출산·보육 등으로 경력단절…남성의 4배 이상

심각한 성차별' 1위 승진, 2위 임금…尹 "구조적 성차별 없다"에 '동의 않는다' 84.7%

여성 5명 중 1명이 결혼·임신·출산·보육·돌봄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남성의 4배 이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 1월 31일부터 31일까지 15세 이상 임금노동자 10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별 임금 격차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의 61.9%, 남성의 40.6%가 경력 단절을 겪었다고 답했다.

 

경력 단절의 사유를 결혼·임신·출산·보육·돌봄으로 좁혀보면, 여성은 20%(응답자 32.4%), 남성은 4.5%(응답자 11.2%)가 이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다. 다른 사유는 '더 좋은 직장을 위한 준비', '직장 내 갈등', '건강 문제' 등이다.

'임신·출산·육아 등 돌봄 책임이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항목의 5점 척도 조사에서도 여성(2.9점)의 점수가 남성(2.1점)보다 높았다. '식구 중 환자가 생겨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도 여성(2.4점)이 남성(1.9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가정 내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 더 크다는 점을 드러내는 지표로 해석된다.

 

심각하다고 느끼는 직장 내 성차별의 종류는 △승진에서의 성차별(3.53점) △성별 임금 격차(3.43점) △중요한 업무 배제 (3.4점) △채용에서의 성별 차이(3.35점) △성희롱(3.13점) 순으로 조사됐다.

 

 

위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승진 성차별과 관련 '성별 비율이 비슷한 직장에서 여성 관리직 비율'을 살핀 결과, '성별 비율이 비슷하다'는 응답은 12.6%에 불과했고, '남성관리직이 많다'는 응답은 72.7%에 달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여성의 승진이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2위를 차지한 성별 임금 격차와 관련해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 29.4% 낮은 것으로 조사됐고, 응답자의 92.9%가 '성별 임금 격차 해결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성별 임금 격차 발생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사노동담당자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31.1% △정부의 성평등 정책 실현 의지가 없어서 16.2% △육아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14.6% 등 순으로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꺼낸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는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설문도 이뤄졌다. 이에 대해 응답자 84.7%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답은 6.7%, '그저 그렇다'는 답은 8.5%였다.

 

조사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한국 사회와 노동시장이 여전히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조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어 "성역할 고정관념을 약화시키고 성평등한 노동시장과 사회구조를 설계해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여성에게 가족 돌봄의 책임을 부과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고,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해 3월 8일 오후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가 성별임금 격차 해소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종로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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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2명 계엄 당시 선관위 출동...검찰 내란 가담 수사해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03/05 20:06
  • 수정일
    2025/03/05 20:0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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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권우성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검찰청 고위급 검사 2명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휘하 지휘관들에게 '선관위에 올 검찰과 국정원을 지원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후 대검 소속 검사 2명이 선관위에 출동하는 등 비상계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고위급 검사 2명, 내란 당일 방첩사 대령과 통화 후 선관위 출동"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은 추미애 의원은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고위급 검사 2명이 과천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가 확인됐다"라며 "선관위로 출동한 고위급 검사 2명 중 1명은 12·3 내란 당일 방첩사 대령과 통화한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부장검사급)이라고 한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검 고위 검사는 방첩사 대령과 소통한 후 선관위로 출동한 것으로 12·3 내란 관련 실질적인 검찰 개입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인형의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라는 지시와 대검·방첩사·국정원 간 한밤중 통화도 확인됐다"라며 "수사기관은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고위급 검사 2명이 왜 선관위로 출동했는지, 과학수사부 소속 수사관은 총 몇 명이나 출동했는지, 누구의 지침을 받았는지 등의 의혹을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중앙선관위 전산 서버를 촬영 중인 계엄군 ⓒ 중앙선관위 CCTV

이날 추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 30분경 여 전 사령관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에게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에서 올 거다. 중요한 임무는 검찰과 국정원에서 할 거니 그들을 지원하라"라고 지시했고, 정 전 처장은 오후 11시 50분경 방첩사 대령 8명에게 같은 내용의 명령을 하달했다고 한다.

추 의원은 "정 전 처장의 지시를 받은 대령 4명의 진술을 확보했다"라며 이들의 진술을 공개했다. 이들은 "정성우 처장이 (방첩사 대령) 8명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한 사실이 있음"(A대령), "선관위 출동을 앞두고 회의 과정에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고 인계해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음"(B대령), "계엄 선포 이후 선관위 출동 전에 정성우 처장이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했음"(C대령), "선관위에 가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거다, 거기에 인계해 주면 된다는 지시를 받음"(D대령)이라고 진술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가 있은 뒤 대검·방첩사·국정원으로 이어진 통화 내역도 공개됐다. 이날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일 0시 37분경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선임과장은 방첩사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약 1분 22초 통화했고, 이후 0시 53분경 방첩사 대령은 국정원 과학대응처장과 약 2분 2초 통화했다고 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이에 대해 추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여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를 국정원과 검찰에 인계하라고 지시했는데 실제 대검 과학수사부가 움직였다는 증거를 찾았다"라며 "검찰이 올 거라고 여 전 사령관이 말한 뒤인 0시 37분경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부장검사)으로부터 방첩사 A대령에게 전화가 왔으며 A대령은 국정원 과학대응처장에게 전화 상의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첩사·검찰·방첩사·국정원 순으로 긴박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다음 대검 과학수사부 고위직 2명이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까지 있다"라며 "대검 포렌식 담당 조직이 방첩사와 국정원과 순차 모의하고 현장 출동까지 한다는 것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검찰의 내란 가담 수사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입장을 통해 "검찰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방첩사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지원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고, 다른 기관을 지원한 사실도 없음을 재차 밝힌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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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대검#선관위#비상계엄#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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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민주당 의원들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 매우 긍정적”

[아침신문 솎아보기] ‘헌재 비난 서한’ 국제인권기구에 보낸 안창호, 한겨레·경향 “한심해”

지난해 의대 증원 혜택 본 신입생들, 증원 반대 수업 거부 동참...조선·동아 “개탄스러워”

기자명박서연 기자

  • 입력 2025.03.05 07:39

  • 수정 2025.03.05 07:40

▲백악관 X(옛 트위터) 계정에 게재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여섯 차례나 “당신에게는 (내밀) 카드가 없다”라고 면박을 줬다. 이어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협상할 수 있고, 결국 러시아와 협상을 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한 것이다.

과거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핵보유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미국의 우방국인 우크라이나가 이 같은 대우를 당하자, 조선일보는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최근 “핵 무장이나 핵 잠재력”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환영하는 사설을 냈다.

▲5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 매우 긍정적 변화”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강연에서 당론은 아니라고 전제를 달면서도 “핵 무장이라고 하는 주제를 우리 스스로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관이 상시적으로 나와 있는데, 사찰을 받으면서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하자”라고 주장했다. 위성락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최근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에 대한 논의의 한 자락이 우리 당으로도 들어와 있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담론을 잘 만들어서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우크라 보며 민주당서도 나온 핵 잠재력 확보론> 사설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핵 무장과 전술핵 반입 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이재명 대표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2000여 개 핵무기를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미국에마저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핵 잠재력이라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핵 잠재력은 핵무기 개발은 아니지만 언제든 핵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재처리·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일본이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은 47t이 넘는다. 유사시 즉각 핵 무장에 나설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핵 잠재력은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비확산 정책에 직접적 충돌이 아니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한 억제에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의 자체 핵무기 보유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러시아는 북핵을 용인했고 트럼프 정부 인사들도 북한을 핵 국가로 불렀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여야는 핵 잠재력 확보 국론을 모아가기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4일 조선일보 3면.

앞서 지난 4일 조선일보는 3면 <안보협정 믿고 핵·영토 내줬지만…누구도 우크라 지켜주지 않았다> 기사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면박당한 장면을 언급하며 “소련 해체로 1991년 독립국이 됐지만 30여 년 동안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고 있다가 국제사회 ‘힘의 질서’에 휘둘려 이 같은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패착으로 독립 초기 강대국들의 회유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꼽힌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였다. 중거리 핵미사일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전략 핵탄두 수가 1700개 이상이었고, 중·단거리 미사일과 전략 폭격기용 전술 핵무기도 최소 2000개 이상으로 평가됐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시설에 기반한 자체 핵무기 제조창까지 갖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5일 경향신문 칼럼.

경향신문도 5일 한국의 핵 잠재력 보유 추진을 주장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칼럼을 실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 잠재력> 칼럼에서 “나는 직전 칼럼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국민 불안 심리 증대 등 변화한 정세에 대응하여 유사시 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한·미 확장억제전력 강화에 더해 핵 잠재력 보유 추진 의견을 개진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포기한 것이며 주변국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심지어 핵무장론의 ‘변형’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은 핵 잠재력 보유 추진이 나쁜 정책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나온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국가도 핵 잠재력을 보유할 수 있는데, 그 길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범위 확대이다. 즉 NPT가 허용한 범위에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며 철저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이 길”이라며 “핵 잠재력 보유 과정은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을 비롯한 합법적인 국제협력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기에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이 핵 잠재력을 보유했다고 해서 누구도 일본이 비핵화 원칙을 포기했거나 핵무장을 추구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헌재 비난 서한 국제인권기구에 보낸 안창호, 한겨레·경향 “한심해”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각 나라 인권 기구 등급을 결정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 사무국을 맡고 있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한국의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안창호 위원장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이 국내 시민단체가 제기한 ‘인권위의 12·3 비상계엄 정당화’ 문제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자 지난달 27일 “국민 50%가 믿지 못하고 있고, 불공정한 재판을 한다”며 헌재를 비난하는 답변서를 보냈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 3일 한겨레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인권위원들은 지난 4일 전원위원회에서 항의했다. 그러자 안 위원장은 “의문을 제기했을 뿐 헌재를 비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극우 논리 ‘헌재 비난 서한’ 국제기구 보낸 인권위원장> 사설에서 “내란을 일으킨 권력자를 비호하는 게 인권위의 역할인가. 게다가 국제 인권기구에 이런 한심한 서한까지 보내다니,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라며 “안 위원장은 박근혜 파면 결정 때 출처가 불분명한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한 보충의견을 냈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애초 헌법재판관의 자질을 의심받았던 인사다. 임명 과정에서도 그동안의 행적이나 인식이 도저히 인권위원장을 맡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안 위원장은 더 이상 인권위, 나아가 나라를 욕되게 하지 말고 자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5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국제인권기구에 헌재 비난 서한, 안창호 제정신인가> 사설에서 “여권과 극우·보수층이 헌재를 공격하는 논리를 그대로 담아 12·3 내란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내용의 서한이다. 헌재 흔들기를 통해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에 불복 여론을 부추기려는 의도를 의심케 한다. 헌법상의 기본권과 인권 수호에 앞장서야 할 국가 독립기구의 수장이 헌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내란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니 참담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안 위원장은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즉각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당부했다.

의대 증원 혜택 본 신입생들 증원 반대 수업 거부 동참, 조선·동아 “개탄스러워”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2년 째 이어지는 가운데, 전국 의대가 4일 대부분 개강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의대생은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수업 거부에 동참한 신입생 중에는 지난해 의대 증원 혜택을 보고 입학한 학생도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의대 정원 혜택을 본 신입생들을 향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5일 조선일보 12면.

조선일보는 <증원 혜택 의대 신입생들이 “증원 반대” 수업 거부> 사설에서 “의대 증원 혜택을 본 올해 의대 신입생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수업 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한다. 의대 정원은 지난해 3058명에서 올해 4567명으로 늘었다. 이번 의대 신입생들은 그 정책의 혜택을 본 학생들이다. 그런 신입생들이 ‘의대 증원 반대’를 위한 수업 거부에 나선다면 ‘염치없는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 신입생들이 수업 거부를 하는 것은 선배들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한다.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신입생을 대상으로 ‘투쟁 필요성’을 설명하거나 휴학을 권유했다고 한다”고 설명한 뒤 “지난해 정부가 갑자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것은 무리한 정책이었다. 그렇다 해도 의료계 일부에서 내년 의대 모집 중단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의료 사태가 2년째로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5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도 <의대 신입생 수업 거부는 문제 해결도, 정의도 아니다> 사설에서 “눈치를 보던 의대 신입생들도 수업 거부에 가세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올해 의대 신입생들은 정부 증원 정책의 수혜를 입어 전년보다 1497명이 증가한 약 4600명이 입학했다. 더욱이 의대 증원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각했다는 점을 이미 알고도 지원했다. 이제 와서 정부 정책을 이유로 휴학에 동참할 명분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현재 의대생 7500명을 한꺼번에 교육하기 위한 여건이 미비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입생들의 휴학은 그간 투자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의대 교육의 파행을 장기화할 뿐이다. 신입생이 유급, 제적과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선배들의 조직적인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부가 설치한 의대 학생 보호·신고센터에는 하루 수십 건씩 선배들이 휴학 동참을 압박한다는 신고가 접수된다고 한다”라고 설명한 뒤 “의대생은 일단 복학해서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을 지켜보다 휴학을 선택하더라도 늦지 않다. 지금 무작정 휴학부터 하는 것은 의정 갈등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의롭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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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새 학기 특수는 옛말…상인들 “월세도 못 내요” 한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03/04 08:23
  • 수정일
    2025/03/04 08: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고은기자

수정 2025-03-04 08:05등록 2025-03-04 06:00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의 폐업한 문구점 앞에서 상인이 장난감을 팔고 있다. 박고은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에서 30년간 문구점을 한 김아무개(73)씨가 지난 2일 진열대 위 상품을 비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달부터 20평 남짓한 가게 규모를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매출이 크게 떨어진 탓에 월세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심산이다. 김씨가 비운 자리는 같은 골목에서 다른 문구점을 하던 상인이 오기로 했다. 그 역시 같은 이유로 매장을 옮기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는데, 지난해 연말부터는 세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예요.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까먹고 있는 가게가 한두곳이 아니에요.”

새 학기를 앞둔 이날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찾은 손님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문구점보다는 장난감 가게를 찾았다. 문구점을 찾더라도 규모가 큰 서너곳에 손님이 몰렸다. 7살 딸과 함께 시장을 찾은 이지은(38)씨는 “주말이어서 아이와 구경할 겸 시장을 찾았다”며 “학용품은 이미 온라인으로 시켜서 오늘 구매하진 않았고 장난감만 하나 샀다”고 말했다. 이날 매출이 3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한 문구점 상인은 “평일에는 (매출이) 이보다 더 못하다”고 했다.

시장 골목 곳곳엔 셔터를 내린 채 ‘임대’ 펼침막을 내건 문구점이 여럿이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구매처 확대 등으로 문구업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문구유통업협동조합이 파악한 지난해 전국 문구 소매점 수는 7800여곳으로, 5년 전인 2019년(9468곳)에 견줘 20%가량 줄었다. 매해 333곳의 문구점이 사라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저가 생활용품 유통 업체와 온라인 유통 쇼핑몰의 경쟁력을 이겨낼 수 없는 문구 소매점의 줄폐업이 심화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의 한 문구점이 장사가 되지 않아 가게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 2일 가게 한쪽 진열대 위 상품이 비어 있다. 박고은 기자

학교 주변 동네 문구점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경기 화성에서 7년간 문구점을 하다 지난달 폐업한 임아무개(48)씨는 “가게 앞에 ‘점포 정리’를 내걸고 땡처리를 해도 재고 정리가 안 돼 폐업 매입 전문 업체에 반의반 값으로 팔았다”고 했다. 소매 문구점이 벼랑 끝에 내몰리니 도매업을 하는 문구점도 타격이 크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도매 문구점을 하고 있는 오아무개(75)씨는 “이 일을 하는 동안 매출이 떨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매출이 감소 추세로 꺾였다”고 했다.

문구 소매점의 자리는 다이소 등 저가 유통 업체나 온라인 쇼핑몰이 대체하고 있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동향조사를 보면, 온라인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은 2022년 1조874억원에서 2023년 1조9171억원, 지난해 2조35억원으로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학교에서 교과과정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해 학생에게 지급하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의 여파도 있다. 학교는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데 가격 경쟁력이 우선시되다 보니 동네 문구점이 참여하긴 어려운 구조다.

문구점 단체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소형 문구점이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사들일 수 있도록 소형 문구점들의 공동 구매를 연계하고 있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이와 함께 소형 문구점도 온라인 판매에 나설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에 관해서는 지역에 있는 문구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문구점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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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에게 굴욕 안긴 트럼프의 도발, 무서운 노림수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서막... 기로에 선 한국

25.03.04 06:49최종 업데이트 25.03.04 06:4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2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회담 중 설전을 주고 받았다.연합/EPA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모욕이었다. 트럼프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젤렌스키를 철저히 압박하며 굴욕을 안겼다.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대표로서 트럼프의 모욕을 감내하고 그의 비위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해 미국이 지원을 끊을 빌미를 제공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기습 전략에 젤렌스키는 본능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젤렌스키의 오만한 오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굴욕적 대응을 해도 어차피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을 중단할 명분을 위해 플랜B, C를 가동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미국의 짐짝에서 던져버릴 기회를 만들었고, 그의 의도를 전 세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미-우 정상회담에 러시아는 쾌재를 불렀고,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선택,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서막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수호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경찰이자 심판을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단순한 '이익 추구자'로 변모했다. 심판의 권한과 영향력을 쥔 채, 이제는 선수로 뛰겠다고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국제 기구와 협약, 조약을 무시하며, 다자 외교보다는 힘 있는 국가 간 거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공정성과 규범이 아닌 힘과 거래가 외교의 중심이 되면서, 국제 질서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에게 더 이상 미국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젤렌스키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미국의 지원을 원한다면, 미국의 입맛에 맞춰라." 이것은 단순한 협상이 아니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을 재편하는 선언이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은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다. 철저하게 이익을 계산했고, 필요 없다고 판단한 순간 과감히 버렸다. 트럼프의 행동은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흔드는 태풍이었다.

물론 과거의 미국이 이익을 계산하지 않았다거나,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쥐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미국이 체제수호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을 추구했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체제를 뒤흔들어 이익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변화는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미국이 만든 질서의 최대 협력자였고 동반적 수혜자였다. 하지만 이제 유럽은 미국의 본심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제 유럽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예정된 공동 기자 회견이 취소된 후 떠나고 있다.연합/EPA

러시아의 장기 전략, 유럽을 겨누다

이 분열을 가장 기다린 것은 러시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유럽과의 힘 대결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푸틴은 단기적인 승리가 아니라, 서방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고, NATO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손을 떼면, 러시아는 보다 대담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몰도바, 발트 3국, 그리고 폴란드에 대한 압박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군사훈련은 점점 서방 국경과 가까워지고 있으며, 크렘린은 유럽 내 친러 정당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치적 균열을 심화시키려 하고 있다.

푸틴은 단순한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이 미국 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그는 서방이 독자적인 방위 체계를 구축할수록, 그것이 러시아의 공격 명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동유럽, 30년 전쟁의 서막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다. 이는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30년 전쟁'과 같은 장기적인 안보 지형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1세기 전,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단발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청일전쟁(1894)에서 시작된 충돌은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그리고 태평양전쟁(1941)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일련의 전쟁은 동아시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결국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몰도바, 발트 3국, 폴란드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한 번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유럽 진출 전략은 일본의 대륙 진출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서방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크림반도 병합(2014)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2022)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러시아는 트럼프라는 유리한 변수를 맞이했다.

미국의 고립주의, 러시아의 기회가 되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러시아의 유럽 확장이라는 장기 목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공교롭게도, 1세기 전 일본이 동아시아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할 때도 미국의 고립주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미국의 외교적 개입이 줄어들게 되면서 일본의 확장 가능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았다. 1930년대에 들면서 미국은 본격적 고립주의를 채택하며 유럽과 아시아 문제에서 거리를 두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다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의 경쟁관계에서 발을 조금씩 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확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러시아의 유럽을 향한 서진 정책에 날개를 달아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푸틴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몰도바는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트란스니스트리아지역은 이미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몰도바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발트 3국도 안전하지 않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과거 소련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이면서 가장 가까운 사정거리 안에 있다.

물론 이들 발트 3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회원국이다.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하면 우크라이나와 달리 모든 나토회원국, 또는 일부 회원국이 자동 개입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략은 군사력 동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이미 20세기 초에 핀란드, 그리고 21세기초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익숙한 나라다.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흔들어가는 전략에 능숙하다.

우선 친러 정당을 만들고 정보전을 활용해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고, NATO의 대응 능력을 시험할 것이다. 서방이 단합하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더욱 대담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발트 3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군사 침공이 아니라, 사회적 균열이다.

동아시아의 지각변동

트럼프의 돌발적 행동이 유럽에 충격을 준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마지노선이 아니라, 첫 번째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100년 전 동아시아의 대혼란이 단지 역사 속의 일만은 아니다.

일본이 1894년 조선과 만주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청나라를 패퇴시킨 후, 러시아와 충돌했고, 이후 만주사변을 거쳐 중국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역시 서방의 대응을 시험하며 서서히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20세기 초 국제연맹이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결과,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럽이 지금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길을 밟을 수도 있다.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유럽 전체의 재편이다. 그는 군사적 충돌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분열을 유도하고 새로운 안보질서를 형성하려 한다. 동유럽의 안보 질서가 재편되는 순간, 유럽은 더 이상 과거의 유럽이 아니다.

유럽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100년의 기득권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검증 받는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기로에 선 한국

그렇기에 동북아시아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대만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가 되었고,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화하며 안보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자주국방과 외교적 자율성이 강조된다. 일본의 재무장은 이제 한미일 공조 체제 속에서의 군사력확장이라기보다, 미국의 개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독자적인 움직임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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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세계] 친구의 단톡방에 가슴이 철렁한다

릴레이 기고➀ 극우파시즘과 음모론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나에게 수개월째 지속되는 증상이 하나 있다. 휴대전화를 켰을 때 카카오톡 메신저 아이콘에 100을 넘기는 숫자가 떠 있는 것을 보면 늘 가슴이 철렁거린다.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에 떠 있는 숫자가 많으면 괜히 거슬리고 불편해지는 강박 같은 건 아니다. 누군가의 중요한 연락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아니다.

나를 철렁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학창 시절에 만나서 지금까지도 자주 교류하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십여 년째 지속하고 있는 단톡방(단체대화방)이다. 애초부터 ‘출근하기 싫다’, ‘너무 춥다’와 같은 별 의미 없는 말들을 숨 쉬듯이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단톡방이기 때문에, 잠시만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금세 안 읽은 메시지가 수백 개가 되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고 이에 반응을 안 한다고 해도 뭐라 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지만, 그런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내가 안 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노심초사하기 시작한 것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부터다.

휴대전화를 잠시 안 보고 있던 사이에 ‘헌법재판관 임명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탄핵하는 건 야당의 폭정이고 독재 아니냐’, ‘야당이 시민들 카카오톡을 검열하고 이재명 욕하면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는 게 사실이냐’, ‘민주당은 왜 간첩법 개정에 반대하냐’,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이 음란물을 공유했다더라’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야당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정정해준다. 그러면 일부는 이를테면 ‘오마이뉴스는 좀...’이라는 식으로 말끝을 흐리며 팩트체크 기사의 출처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이야기했던 것이 ‘가짜뉴스’였음을 인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보도로 경찰에 고발한 인터넷언론 스카이데일리의 기사 ⓒ홍페이지 캡처

 

하지만 그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야당 진영 및 윤석열 탄핵의 당위성과 정당성 등에 대해 가지게 되는 일말의 반감 정서는 사실을 정정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 공해로 인해 발생한 담론의 오염이 누적되는 속도가 그것을 팩트체크로써 정정하고 ‘정화’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무엇보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팩트체크는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친구가 또 다른 가짜뉴스를 단톡방에 올리면 팩트체크와 사실관계 정정, 맥락과 배경 설명의 지난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다른 데로 넘어간다.


다행인 것은, 팩트체크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당 세력과 극우 혹은 내란 옹호 세력의 흑색선전, 음모론, 내전 및 내란 선동, 혐오적 극언 등을 포함한 일체의 가짜뉴스를 인용 보도만 하고 사실관계의 정정이나 맥락 설명은 일절 없는 언론을 우리는 비판하지만, 언론의 본령을 다하는 언론사는 없지 않고, 많다. 적어도 내란 사태와 탄핵 심판 관련한 사안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기민하게 가짜뉴스에 반박하고 전후 상황을 잘 정리하는 기사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쉬운 일, 가짜뉴스로부터 키워드 두 개만 추출해서 검색창에 입력하면 곧바로 팩트체크 기사를 찾을 수 있는 10초도 걸리지 않는 일을 직접 능동적으로 해낼 의지를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단톡방을 주시하며 친구들에게 언제든 팩트체크 기사를 떠다 먹여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날 이후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팩트체크를 한다


나는 친구들에게 배달 음식 시킬 때 고민하는 시간의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써서 신문 기사를 읽으라고 권한다. 그럴 때마다 ‘바빠서 어쩔 수 없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하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엇을 걸러내고 수용해야 할지 알지 못하여 극심한 피로감과 환멸을 느끼고 결국에는 일체의 정치 뉴스에 대한 관심을 끊게 된다(그러면서도 가짜뉴스의 선정적인 헤드라인에는 반응한다). 최종적으로,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불신하고 냉소하게 되며 무미건조한 ‘팩트’마저 당파성의 산물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인한 담론 오염의 가장 심각한 폐해가 바로 이것이다. 가짜뉴스를 비롯한 일체의 선동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라는 책에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포함한 탈진실 시대의 정보 공작을 ‘역정보(disinformation)’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범주화한다. 그에 따르면 역정보의 핵심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없앨 수 없으면 개소리로 둘러싸고 거짓을 쏟아내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사기가 꺾이면 진실을 파악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며, 이러한 형국이 지속되면 거짓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마저 결국에는 진실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것이 당파성에 종속된 것이라는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고 매킨타이어는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작을 ‘disinformation’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냉전기 첩보전의 정보 교란을 일컫는 말로 쓰였지만, ‘dis’라는 접두사가 무언가를 부정, 반대하거나 해체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도대체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좌절마저 초래하는 교란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더없이 탁월하다.

따라서 가짜뉴스는 오늘날 역정보의 폐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역정보로 인한 과학 부정과 역사 부정이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인지능력의 저하 및 인지의 편향의 출발점에는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 있다. 전 국민에게 듣기평가 시험을 치르게 한 이 희대의 사건은 생생하게 들리는 육성마저 당파성, 지지하는 정당, 이념에 따라 해석에 열린 무언가로 바꿔버렸다.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의 문제의 발언에서 ‘바이든’을 들었다고 한 응답이 58.7%,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한 응답이 29.0%, ‘모름’은 12.4%로 집계되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65.0%가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응답했다.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은 언론을 압박하며 현실마저 자기 마음대로 조작한 것이며, 일부 무시 못 할 규모의 대중은 그 농간에 기꺼이 놀아났다. 객관적인 것을 눈앞에(혹은 귀 앞에) 두고 그것을 A로 인식하냐 B로 인식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유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진실이라는 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서 언제가 되었든 결국에는 발견되고 드러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뉴스 등의 역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혹은 휘둘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체크와 정정만 하면, 혹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안일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진실이란 언젠가 발굴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이자 산물이며 적극적으로 구성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수십 편의 논문으로도 모자랄 터이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면 ‘야당이 탄핵을 남발했다’라는 주장은 백번 양보해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주장을 밀어붙여 ‘야당이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켰다’라는 주장을 내놓는데 이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응하려면 사실관계를 정정하는 것을 넘어서 과거로부터 여러 사례와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길어 올려서 하나의 새로운 형상을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진실이 상대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의 구성 요소로서 사실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사람들이 공통된 인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성장한 문화권에 따라, 교육의 여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으로서 타고난 생태적 조건,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공유된 인지 체계는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이며 이것이 있어야만 기초적인 사실 판별이 가능하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의 규칙과 같으며, 진실을 둘러싼 투쟁은 게임의 규칙을 따르면서 경합하는 과정이다. 역정보는 이러한 규칙을 붕괴시키며, 최종적으로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을 붕괴시킨다. 역정보로 인해 진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극으로 치닫는 형편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듣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형편에서 다수 언론은 항상 쉬운 길을 택한다. 가짜뉴스나 음모론, 극언 등을 말하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단순히 인용 보도만 한다거나, 그가 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이유로 방송에 출연시키거나 하는 것은 의도 및 취지와는 무관하게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진실 도살자’ 혹은 적어도 ‘방관자’다. 더불어서 편파적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양쪽 진영’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양분하여 보도하는 것 역시 진실 도살에 일조한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부정선거 음모론, 선관위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를 믿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양 진영이 마치 해석이나 선택, 신념의 문제인 것처럼 만든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믿지 않는 것 또한 어떤 편향의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로써 추가로 전달되는 암시는 진실이 양쪽 의견 사이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이 어딘가에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안일하게 믿고 있는 동안 진실은 점점 더 갈수록 빠르게 극우로 기울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담장 너머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1.18. ⓒ뉴시스

중립을 자처하며 양비론에 선 많은 이들이
극우화 물결에 합류할 것을 우려한다


친구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구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중국인 간첩 관련한 음모론, 가짜뉴스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선포와 내란 행위를 옹호하지도 않고 탄핵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 친구들은 역정보가 담긴 기사를 단톡방에 공유하는 걸까? 이들은 중립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사이에 중립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양쪽 의견이 각자 편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들이 자처하는 중립은 구색만 갖춘 양비론이자 정치혐오다. 이러한 탓에 내란을 일으킨 자 및 그를 옹호하는 세력과,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의사당 담을 넘어 계엄 해제를 가결시킨 세력을 둘 다 똑같이 나쁘다고 하는 ‘거짓 등가성’의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탄핵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탄핵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소동과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탄핵의 당위와 정당성에 시비가 걸리는 상황에 아주 쉽게 동요하게 된다. 말하자면, 말이 안 된다고 느끼겠지만, 이들은 윤석열과 그를 옹호하는 여당을 매우 싫어하며, 윤석열이 탄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되 탄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지만 탄핵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기대선이 치러져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내 친구들에 한한 이야기를 섣부르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마저도 중립이나 중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어떤 심리나 논리의 단초는 내 친구들의 사례로부터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소위 ‘2030 남성’이 극우화되었다며 우려를 표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여전히 ‘2030 남성’의 탄핵 찬성률이 높게 집계된다며 안도를 표하지만, 위와 같은 ‘~이기도 하고 ~이 아니기도 한’ 상태는 여론조사만으로는 결코 파악이 안 된다. 이 상태를 안일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뭇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2030 남성’뿐만 아니라, 중도를 자처하며 양비론을 채택하고 있고 진실을 향한 열정을 결여한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여론조사의 ‘탄핵 찬성 측’에 암약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엄청난 극우화의 물결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 김내훈 작가(‘프로보커터’, ‘급진의 20대’ 저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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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최상목 향해 '마은혁 임명 안 돼' 공세

최상목, 4일 비공개 간담회 열어 국무위원 의견 청취할 듯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않은 것은 국회 권한을 침해한 행위라는 헌법재판소 결론이 나왔으나 국민의힘은 마 후보자를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최 권한대행 압박을 이어갔다.

 

권 원내대표는 3일 페이스북에서 최 권한대행을 향해 "무엇이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결단인지 분명하다"며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 후보자를 이번에도 임명하지 않을 경우 최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압박을 두고 "야당 겁박에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최 권한대행에게 뜻을 전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정치적 혼란을 무리한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더욱 가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영진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탄핵 심판 선고 전 마 후보자를 임명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마 후보자가 (헌재재판관에) 들어가면 '탄핵 인용' 표결하리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그렇게 해서 탄핵이 인용된다면 국민이 헌재가 공정하다고 믿겠느냐"며 "헌재 스스로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당 차원에서 최 권한대행에게 마 후보자 임명을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누가 보아도 마 후보자 임명은 정국 혼란을 키울 수 있다"며 "더 이상 혼란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권한대행은 마 후보자 임명 여부를 두고 장고에 들어간 상황이다. 다만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일각에서 많이 나온다.

 

정치적 부담이 큰 결정인 데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직무복귀 가능성도 있는 마당이어서 최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건 부담스러운 결정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 권한대행은 4일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들을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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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55%, ‘정권연장’ 39% [리얼미터]

기자명

  •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5.03.03 15:09
  •  
  •  수정 2025.03.03 15:15
  •  
  •  댓글 0
 
[자료-리얼미터]
[자료-리얼미터]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를 선호하는 의견이 과반을 훌쩍 넘었다고 [리얼미터]가 3일 알렸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506명 대상으로 차기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결과,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정권교체) 55.1%,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정권연장)은 39.0%였다. 5.9%는 의견을 유보했다.

그 전주와 비교해 ‘정권교체’가 6.1%p 올라갔고, ‘정권연장’은 6.3%p 떨어졌다. 두 의견 간 차이는 16.1%p로 오차범위(±2.5%p) 밖으로 벌어졌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정권교체’ 의견이 ‘정권연장’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무당층’에서 정권교체(46.7%)가 정권연장(25.3%)을 크게 앞섰다. ‘중도층’에서도 정권교체(60.6%)가 정권연장(33.6%)을 압도했다.

[리얼미터]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여권 주자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간의 대선주자 가상 양자 대결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이재명 50.0%, 김문수 31.6%, △이재명 50.3%, 오세훈 23.5%, △이재명 50.0%, 홍준표 24.2%, △이재명 49.7%, 한동훈 20.3%로 “이재명 대표가 여권의 잠룡 4인과의 대결 구도에서 18%P ~ 29%P 차이로 많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에너지경제신문] 의뢰에 따라 [리얼미터]가 무선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응답률은 6.0%(25,263명 통화 시도해 1,506명 응답 완료). 더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에 대해, 3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달 25일 윤석열탄핵심판 최종변론, 윤석열·김건희의 공천개입 뒷받침하는 명태균 폰 공개, 극우세력의 대학가 시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봤다. 

나아가 “탄핵 이후 대선 국면으로 가는 분위기가 본격화되는 것 아닌가”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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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김용현의 옥중편지 "헌법재판관 처단하라!" 노골적 선동

민주 "민주주의 붕괴시키려는 선동"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옥중 편지를 통해 "헌법재판관들을 처단하라"고 선동했다.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이 주최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김 전 장관 변호인단 소속인 이명규 변호사는 김 전 장관의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김 전 장관은 "헌재의 탄핵심판과정에서 수많은 불법·위법행위가 드러났다"며 "탄핵심판은 각하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또 "대통령을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이것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지속 번영과 함께 미래 세대의 안전과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특히 헌법재판관들을 언급하며 "불법 탄핵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처단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3.1절 극우 집회에서 공개된 내란 주범 김용현의 옥중 메시지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는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변인은 "자신을 비판하면 모두 다 '반국가 세력'이고 '처단해야 할 대상'이라고 외치는 내란 수괴 윤석열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4차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증인신문을 하자(사진 왼쪽), 김 전 장관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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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특위 활동 종료···불출석과 위증에도 밝혀진 것들

기자명

  •  김준 기자
  •  
  •  승인 2025.03.02 12:35
  •  
  •  댓글 0
 
 

증인 불출석, 위증 등으로 성과 미진
김현태, 조태용, 김성훈 등 10명 고발
마지막 날에도 계속된 여당의 몽니

지난해 12월 31일 출범한 국조특위는 역대 국정조사처럼 구체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불법비상계엄에 대한 여야의 상반된 입장과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이 이유로 꼽힌다. 그럼에도 60일 동안 활동한 국조특위는 일부 증인들의 핵심 증언을 이끌어냈고, 국회 봉쇄 및 단전 지시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안규백 내란 국조특위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청문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 국조특위 고발 대상자와 관련해 항의하며 자리를 떠났다. ⓒ 뉴시스
안규백 내란 국조특위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청문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 국조특위 고발 대상자와 관련해 항의하며 자리를 떠났다. ⓒ 뉴시스

마지막인 28일, 결과보고서 채택과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위증을 일삼았던 증인들의 고발 건이 의결됐다. 고발이 의결된 증인은 총 10명이다.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노상원, 문상호, 강의구, 김용군, 조태용 등이다.

여당은 증인 고발에 반발했다. 야당이 조태용 국정원장과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을 위증으로 고발하려 하자, 이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 홍장원 국정원 제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특전사령관까지 고발해야 한다고 몽니를 부린 거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홍장원, 곽종근도 출석할 때마다 말이 달랐다는 취지로 말하며, 이들까지 함께 고발 의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말이 바뀐 건 조태용 원장과 김현태 단장이다. 

조 원장은 불법계엄 당시 국무회의 참석 사실을 숨겼고, 기자회견에서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보고를 받긴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 전쟁기념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곤 “곽 전 사령관에게 전화가 왔고,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저한테는 끌어내라고 까지는 아니었다”고 번복했다.

이 내용은 이날 채택된 결과보고서에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가당착, 내란 옹호를 지적했다. “207페이지에서 208페이지에 조 원장이 거짓말하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고, 그에 반해 홍 전 차장의 일관된 주장은 204~206페이지에 그대로 나와 있다”며 “이 내용에 대해 여당도 동의했는데, 이건 이미 자신들이 통과시킨 보고서 자체를 부인하는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무엇이 밝혀졌나

 

다섯 차례의 청문회, 두 차례의 기관보고, 합창 및 결심실 현장 조사 등 약 두 달에 걸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국조특위)’ 활동이 종료됐다. 그 과정에 국조특위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을까

처음 국조특위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냐”는 질문에 10초 정도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곽 전 사령관은 그런 지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후 윤석열 측은 ‘요원’이었다는 초라한 변명을 내놨다.

국회 단전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CCTV를 통해 공개됐다. 계엄 해제안건이 의결되고 불과 6분 뒤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적인 것도 아니었고, 지하1층의 부분적이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주장했으나,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1차 불을 내렸을 때, 비상등이 잠시 들어왔지만, 그것까지 또 차단했다”며 “이후 밝아진 건 CCTV가 적외선 촬영모드로 전환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군 내부에서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 관련 문건도 공개됐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라는 방첩사 내부 문건을 공개한 거다. 해당 문건은 여인형 전 사령과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계엄과, 합동수사기구의 법적 근거부터 주요쟁점이 정리돼 있었다. 윤석열의 내란이 사전에 치밀히 모의 됐었다는 증거였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도 드러났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계엄 당일 밤 11시 37분쯤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언론사 다섯 곳을 말 하셨다”며 “단전·단수 지시가 명확하게 있던 건 아니고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있으면 (소방청이) 협조해주라는 뉘앙스였다”고 밝혔다. 이어 허 청장은 “회의 석상이라 옆에 있던 (이영팔) 소방차장과 의논했지만, 특별하게 액션을 취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윤석열이 이 전 장관에게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보여줬다고 명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질의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로 일관했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서는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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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폰’ 선관위 사무총장, 알고보니 국힘 단체장 예비후보... “즉각 사과해야”

진보당 “결국 그 ‘부패한 카르텔’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자료사진. 2020.03.03. ⓒ뉴시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명의로 이른바 ‘세컨드 폰’을 만들어 정치인과 연락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밝혀진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해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사무총장 세컨드 폰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해 온 국민의힘의 처지도 난감해졌다. 정치권에선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경향신분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4일 강화군수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자는 14명이었는데, 김 전 사무총장은 1차 경선을 통과해 경선 대상 4명에 포함됐다. 다만 같은 해 9월 있었던 최종 경선에서 탈락했다.

전날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선관위 명의의 ‘세컨드 폰’으로 정치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표 내용을 보면 김 전 사무총장은 2022년 1월부터 세컨드 폰을 이용해 정치인과 연락했다. 그해 3월과 6월에는 각각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열렸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세컨드 폰을 통해 정치인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각양각색인데 그 부분까지는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국민의힘은 김 전 사무총장을 비난하며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관급인 사무총장이 특정 정치인과 선별적으로 몰래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선관위를 어떻게 신뢰하나”라고 썼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도 김 전 사무총장 사례를 언급하며 “비리종합세트 선관위의 실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진보당은 “겉으로는 부정선거·관리부실 운운하며 정작 안으로는 그 핵심 당사자를 따뜻하게 품고 지자체장 선거에까지 출마하도록 배려했다니, 그 뻔뻔함에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에서 내란까지 노골적으로 비호하며 연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독립성·공정성을 공격하는 가운데, 정작 정치인 통화 논란이 제기된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바로 작년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에 출마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작년이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그 무슨 대국민담화가 있을 때마다 부정선거 운운하며 선관위를 공격했던 때 아니냐”며 “결국,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고 반문했다.

이어 “엊그제도 국민의힘은 김동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선관위 내부의 가족채용 실태를 비판하며 '차라리 가족기업으로 전환하라'고 일갈했다”며 “아들 특혜 채용 의혹의 장본인이 바로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 수석대변인은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아온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었다”면서 “이러고도 과연 국민의힘에서 선관위 사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운운할 자격이 있나. 즉각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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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최승호PD 해고 압박? 뉴스타파 피케팅 현장을 찾았습니다

기자명금준경, 박재령 기자

  • 입력 2025.03.03 01:17

  • 수정 2025.03.03 03:52

▲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승호PD. 사진=금준경 기자

뉴스타파 구성원들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박중석 신임 사장 체제에서 최승호 PD에게 회사 운영규정상 정년이 초과했다고 통보해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최승호 PD에 따르면 사측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투입됐다고 지적했고, 4대강 보도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노조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 정년 조항이 없고, 사측이 제시한 운영규정은 이미 사문화됐다고 반박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사측은 해고 압박이 아닌 용퇴 요청이라고 했습니다. 4대강 보도를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최승호 PD는 김만배 신학림 녹취록 보도 당시 촉발된 이견과 반발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측은 이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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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연일 피케팅을 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 사측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에는 최승호 PD 개인의 인사 문제를 넘어 뉴스타파 보도방향 및 운영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 등이 이면에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노조의 피케팅 현장을 찾아 최승호 PD 등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측에도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내부의 일’이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측의 입장을 반영해 최승호 PD를 인터뷰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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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광고에 등장한 수도원장들... 찡한 사연 있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종교와 맥주가 건네는 이 시대의 낭만

25.03.02 19:31최종 업데이트 25.03.02 19:31

문화 윤한샘(livesaem)

오르발 트라피스트 수도원 전경윤한샘

 

이제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9개 남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재작년 라 트라페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기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양조장 관계자는 수도사가 되려고 하는 유럽인들이 없다고 털어놨다. 하긴, 아무리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어도 외부와 단절된 트라피스트의 삶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겠지.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봉쇄 수도원이다. 수도사는 베네딕트 성인의 규율, '일하고 기도하라'에 따라 자급자족을 수행한다.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치즈, 와인, 맥주는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노동의 대가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이유로 트라피스트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 됐다. 수도원이라는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배경이 맥주를 프리미엄 상품으로 등극시켰다. 트라피스트 제품을 인증하기 위해 창설된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도 맥주가 아니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0년 상업 맥주 양조장 밸텀이 트라피스트 이름으로 맥주를 출시하자 진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오르발 수도원이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생산된 맥주에만 '트라피스트 맥주'라는 이름을 허가했다. 단, 수도원 맥주 레시피로 상업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는 '애비 비어'(Abbey beer)로 구분해 분쟁의 여지를 없앴다.

 

상표권 보호를 절감한 트라피스트 수도원들은 1997년 협회를 조직한 후, 세 가지 규정을 충족한 제품에만 육각형 ATP(Authentic Trappist Product) 라벨을 붙이도록 했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제품은 수도원 내에서 생산될 것, 모든 제품은 수도사의 관리 감독을 받을 것, 수익은 수도원 운영과 지역 공동체 발전에 사용할 것.

 

ITA는 수도원이 이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라벨을 박탈했다. ATP 라벨은 트라피스트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식이 됐다. 사람들은 육각형 라벨을 통해 트라피스트 정신을 공감하고 소비했다. 현재 ATP 제품은 치즈, 와인, 맥주, 초콜릿, 벌꿀, 쿠키, 초, 비누를 포함 총 14종이 있다.

 

위기의 트라피스트 맥주

 

이태리 트레 폰타네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2020년까지만 해도 ATP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12곳에 달했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맥주의 대부, 베스트말레를 필두로 오르발, 베스트블레테렌, 시메이, 로슈포르, 아헬, 6곳과 네덜란드 라 트라페와 준데르트 그리고 영국 틴트 메도우, 미국 스펜서, 이탈리아 트레 폰타네, 오스트리아 엥겔스젤이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21년부터 불안의 조짐이 나타났다. 벨기에 아헬과 미국 스펜서가 맥주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아헬은 수도사 부족으로 수도원을 폐쇄했고, 스펜서는 재정 문제가 원인이었다. 그나마 아헬은 베스트말레의 도움으로 2023년까지 맥주가 나오다가 상업 양조장에 인수되어 애비비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트라피스트 수도원, 엥겔스젤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4명의 수도사는 인원 부족으로 수도원 운영이 힘들다는 판단 아래 폐쇄를 결정했다. 그레고리우스, 벤노 같은 아름다운 트라피스트 맥주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023년 사라진 오스트리아 엥겔스젤 벤노윤한샘

 

맥주만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제품들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현재 ATP 인증 제품이 나오는 수도원은 13곳에 불과하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과 연대하고 있다.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 운영과 제품 생산에 지역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수도원을 개방해 피크닉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 트라페는 수도원 마켓을 통해 지역민에게 빵, 치즈, 맥주, 옷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친환경 음식과 수도원 맥주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고, 뒤뜰 텃밭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도 지역 커뮤니티에 공급하고 있다.

 

맥주에 낭만 한 스푼

 

세 개의 규칙을 상징하는 그림들쓰리룰즈 보도자료

 

2024년 라 트라페는 첫 맥주 출시 140주년을 기념하는 맥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은 쓰리 룰즈(Three rules), 트라피스트 맥주를 정의하는 세 가지 규칙에서 가져왔다. 진정한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니라면 흉내 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는 이름이었다.

 

가슴을 찡하게 한 건, 영국 틴트 메도우와 네덜란드 준데르트가 양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역 색과 개성이 뚜렷한 트라피스트 맥주에서 협업은 극히 드문 사례다. 이전까지 트라피스트 수도원들끼리 협업한 맥주는 이태리 트레 폰타네가 2019년과 2021년 진행했던 '시네르지아'가 유일하다. 트레 폰타네는 수도원 연대 활동 강화와 자선 사업에 필요한 자본 확충 그리고 새로운 양조 경험을 목적으로 협업을 했다.

 

2020년 출시된 시네르지아' 19는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와 협업으로 나온 벨지안 IPA였다. 벨지안 IPA는 벨기에 효모 향과 미국 홉 향이 어우러진 맥주로 크래프트 맥주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물론 트라피스트 맥주가 전통적인 스타일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ATP 라벨이 붙은 벨지안 IPA는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경우였다. 아마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영향을 받은 스펜서 수도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밖에.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시네르지아' 21은 트레 폰타네, 로슈포르, 베스트 말레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다. 7.5% 알코올을 품은 어두운색 벨기에 에일, 두벨로 출시됐다. 두벨은 20세기 초 베스트 말레 수도원에서 양조된 이래 벨기에 맥주 스타일의 근간이 됐다. 맥아에서 올라오는 감초, 초콜릿, 견과류 향 그리고 맥주 전체를 조용히 감싸고 있는 옅은 페놀 향이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매우 드물지만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상업 양조장의 협업으로 나온 맥주도 있다. 라 트라페와 미국 브룬스윅 비어웍스, 이 어색하고 생경한 조합은 트라피스트와 크래프트가 만난 첫 번째 사례로 주목받았다. 맥주 이름 또한 거룩했다. '오라 에 라보라'(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

 

7.5% 알코올을 가진 도펠 복, '오라 에 라보라'는 유럽과 미국 홉이 첨가됐고 병 내 이차 발효를 통해 탄산화와 숙성을 진행했다. 전통적인 도펠 복의 문법을 비틀어 전통과 실험을 적절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트라피스트 맥주가 협업을 한다는 건, 수익 이외의 공익 목적이 있다는 뜻. 이 맥주는 우간다에 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라 트라페 수출 책임자 안토니오 반 헤케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거라고 말했다. '기도하고 일하라', 트라피스트 정신이 담긴 이름을 아무 맥주에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형제애로 지구를 지키다

 

쓰리룰즈를 협업한 수도원장들쓰리룰즈 보도자료

 

지금까지 트라피스트 협업 맥주가 베일에 싸인 채 비밀리에 진행됐다면, 쓰리 룰즈는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를 열고 맥주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것도 세 명의 수도원장을 앞세워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세 명의 수도원장이 전면을 장식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살짝 찡했다.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얼굴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로슈로프와 라 트라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도사의 사진을 찍는 것도 불허했던 트라피스트 아닌가.

 

마치 성배를 들고 있는 듯 두 손으로 병을 받치고 있는 틴트 메도우 수도원장 조셉 옆으로 라 트라페 수도원장 이삭과 준데르트 수도원장 귀도는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흰색 튜닉 위에 검은 색 스카풀라를 걸친 세 수도사의 눈빛에서 라 트라페 140주년 맥주를 향한 강한 형재애가 느껴졌다. 사라져가는 트라피스트 맥주를 지키는 수호자의 굳은 의지와 진심 또한 묻어났다. 이렇게 낭만 터지는 맥주라니.

 

얼마 전 웹상에서만 보던 쓰리 룰즈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맥주를 직접 보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스테인글라스를 투과한 빛줄기처럼 쓰리 룰즈는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육각형 ATP 라벨을 가운데 두고 금색으로 버무린 수도원의 상징들이 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홉에 둘러싸인 세 개의 규칙과 수도원 로고는 진짜 트라피스트 맥주 정신이 무엇인지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 룰즈윤한샘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룰즈윤한샘

 

쓰리 룰즈는 두벨이다. 짙은 갈색을 두르고 7.4% 알코올로 무장한 쓰리 룰즈의 첫 향은 우아한 감초와 캐러멜이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 뒤로 섬세한 수지 향이 물씬 밀려왔다. 적절한 쓴맛과 단맛이 만나 이루는 균형감은 완벽했다. 손의 온기로 잔의 온도를 높이면 우아한 바디감이 입안 곳곳을 물들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뭔가 한 방이 더 있을 텐데. 역시나, 쓰리 룰즈의 수익금은 네덜란드 환경단체 'Trees For All'이 1만 4000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기부되고 있었다. 140년 된 트라피스트 맥주의 가치 수호와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보호를 위해 뭉친 수도원 맥주라니. 이보다 낭만 넘치는 맥주가 있으려나. 내가 쓰리 룰즈를 마시며 작은 위안을 얻었던 건, 요즘 한국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일부 종교에 지쳐있기 때문이리라.

 

종교가 맥주의 힘을 빌어 우리 사회를 더 살 만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니, 이보다 더 멋진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어려울수록 진정성에 답이 있다. 종교와 맥주가 가야할 길도 마찬가지다. 오라 에 라보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맥주 #수도원맥주 #트라피스트맥주 #쓰리룰즈

프리미엄 윤한샘의 맥주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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