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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비상입법기구’가 만들었을 끔찍한 세상

전두환 ‘국보위입법회의’의 부활··· 친윤 입법의원 임명해 독재 맞춤형 무더기 입법

12.12 군사반란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던 전두환과 12.3 내란의 시발점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대통령 윤석열. ⓒ뉴시스 등
‘국가비상입법기구’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앞두고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넨 쪽지에 등장하는 단어다. 당시 윤석열은 최상목 부총리에게 건넨 쪽지를 통해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에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을 지시했다.

 

 

 

최상목에 쪽지 건네
국회 예산 차단하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지시


윤석열이 최 부총리에게 한 지시는 예산을 끊어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국회를 대체할 새로운 입법기구를 창설하는 것으로 12.3 비상계엄이 위헌이고 내란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 가운데 하나다. 윤석열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차은경 판사와 탄핵심판 과정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에게 비상입법기구와 관련한 질문을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파장을 잘 알기 때문에 최 부총리가 국회에서 2번이나 윤석열에게 쪽지를 받았다고 증언했음에도 윤석열은 자신이 작성하지도, 전달하지도 않았다면서 부인했다.

시민의 저항과 계엄군들의 머뭇거림, 그리고 야당 국회의원이 중심이 돼 국회 표결을 통해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비상입법기구는 설치되지 못했다. 만약 윤석열이 의도한 대로 국회를 해산한 뒤 비상입법기구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미 1980년 전두환이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어 독재의 길을 닦았던 역사를 경험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상입법기구를 통해 윤석열이 만들려 한 끔찍한 세상의 실체를 알아보자.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처럼
윤석열이 만들었을 ‘비상입법기구’도
친 윤석열 인사들로 구성됐을 것···
석동현 윤갑근 전광훈 등이 입법 의원?


전두환과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비상계엄과 함께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의사당을 봉쇄했다. 보안사령부는 비상계엄 직전 주요 정치인들을 잡아들이며 사전 작업에 나섰다. 포고령을 통해 정치활동도 금지했다. 전두환은 행정부 역할을 대신할 임시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만들고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이를 통해 행정부를 장악했고,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위해 만든 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1980년 8월 27일 11대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두 달 뒤인 10월 27일 전두환은 국보위를 통해 만든 5공화국 헌법을 공포했다.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 등 전두환 독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개헌이었다. 헌법 부칙을 통해 10대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입법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를 설치했다. 정계, 학계, 종교계, 여성계 등 81명으로 구성된 입법회의 의원들은 전두환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웠다.

 

 

 

MBC뉴스가 공개한 윤석열에게 최상목 부총리가 받았다는 쪽지 사본. 내용엔 국가비상입법기구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MBC캡쳐

윤석열의 비상입법기구도 전두환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다만 차이는 있다. 1987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사라졌기 때문에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통해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 그래서 윤석열은 국회를 봉쇄하고, 여야 주요 정치인을 체포해 국회를 마비시키려 했다.

아울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부정선거를 밝히겠다는 명분으로 계엄군을 보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방법사는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야구방망이에 망치, 송곳, 안대와 포승줄, 수갑으로 사용할 케이블타이까지 준비했다. 고문과 같은 강압적 수사로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하고, 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국회를 해산하려 한 것이다.

국회를 해산한 뒤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선거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정계, 학계, 종교계 등에서 친 윤석열 인사들을 뽑아 비상입법기구를 구성했을 것이다. 지금의 내란 수사와 탄핵 정국 속에서 윤석열을 변호하고 있는 석동현·윤갑근 등의 변호사와 전광훈을 비롯한 아스팔트 극우들도 입법 의원으로 뽑혔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세력 정치활동 금지한
전두환의 ‘정치풍토쇄신법’처럼
윤석열도 ‘반국가세력 정치금지법’
제정했을 수도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10월 28일부터 1981년 4월 10일까지 156일 동안 활동한 한시적 입법기구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만든 법안은 무려 215건에 이르렀다.

입법회의를 구성한 지 1주일도 채 안 된 11월 3일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정치적 또는 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정치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정치풍토를 쇄신하고 도의정치를 구현하여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로 만들어진 이 법안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이 담겨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쇄신위원들이 정치인을 심사해 정당 가입은 물론 출마, 지지 및 반대 행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을 비롯해 전두환이 반대세력으로 지목한 정치인 500여 명의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1980년 11월 열린 국가보위입법회의 첫 회의 모습 ⓒ대한뉴스 캡쳐

윤석열도 비슷한 법안을 만들었을 것이다. 윤석열은 “북한 공산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차례 국회가 반국가세력에게 장악됐다고 이야기했고, 반국가세력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주장도 했다.

윤석열이 평소 주장해온 대로 반국가세력의 활동을 금지한다는 명분으로 법을 만들어 반국가세력이라고 낙인찍은 야당 정치인과 일부 여당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했을 것이다. 국회를 해산한 뒤에도 자신을 반대할 만한 정치인들이 다시 정당을 결성하거나, 후보로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제3자 개입금지’ 등
전두환의 ‘노동개악’처럼
노동개혁 부르짖던 윤석열도
노동권 후퇴 시도했을 것


전두환은 1980년 12월 31일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각종 노동 관련법도 개악했다. 이때 개정된 법안은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 노동쟁의조정법, 노사협의회법, 노동위원회법 등이었다.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인 노동삼권을 제약했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렵게 만들었고, 가뜩이나 열악했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더욱 나빠졌다.

노동자가 회사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유니언숍’(union shop) 제도를 없앴다. 노동조합은 산별에서 기업별 노조로 전환했다. 단체교섭의 위임을 금지했고, 제삼자 개입금지 조항을 만들어 노동조합이 외부 단체의 지원도 받을 수 없게 했다. 아울러 국가·지자체·국·공영기업체 및 방위산업체의 쟁의행위를 금지했고, 쟁의행위도 사업장 이외의 다른 장소에선 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이러한 전두환의 노동법 개악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을 통해 하나씩 바로 잡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2023.10.31 ⓒ뉴시스

노동개혁을 부르짖어 온 윤석열의 행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2023년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노사 및 노노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럴싸한 표현들이지만 이른바 ‘강성노조’의 힘을 빼고, 기업이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막기 위해 기업이 각종 손해배상 소송에 쉽게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노사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에 대해 검경을 동원해 총공세를 벌였던 것과 같은 노동조합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위해 노동관계법을 개정해 노동권을 후퇴시켰을 것이다.

 

 

 

국가보위입법회의 이후
관제야당 만들며 친 전두환 국회 세워
윤석열 비상입법기구 이후
친 윤석열 국회 통해 1당독재의 길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는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11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하며 마무리됐다. 입법회의는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그 영향은 오래 이어졌다.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구성된 11대 국회도 입법회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풍토쇄신법으로 유력 정치인의 활동이 막혀있었고, 전두환은 자신에게 충성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정치활동을 허락했다. 이렇게 정치인을 길들였고, 11대 국회는 집권당인 민주정의당과 전두환 정권이 세운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 등이 의석을 차지해 사실상 1당독재와 다름없었다. 국회가 구성됐지만, 사실상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계속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윤석열의 비상입법기구도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전두환처럼 216개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의 무리를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법안만 처리한 뒤 자신이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은 정치인만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면 비상입법기구 이후 들어설 23대 국회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원들로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두환처럼 관제야당까지 만든다면 손쉽게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 윤석열 국회를 통해 마음껏 자신이 원하는 법률을 만들고,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은 채 절대권력을 누렸을 것이다. 윤석열의 내란이 성공한 뒤 비상입법기구를 통해 만들었을 세상을 상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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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심판, 헌법재판관들이 주목하는 핵심 지점은? [영상 뷰리핑]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정 2025-01-29 21:52등록 2025-01-29 21:00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과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두 번의 탄핵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윤 대통령 쪽은 12·3 비상계엄이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는 주장을 하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임지봉 헌법학자는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사실상 포기한 것과 같고, 그의 논리는 자백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직접 한 진술 중 일부는 헌법재판관들이 판단을 내릴 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윤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갔다고 주장했지만, 계엄군을 보냈다는 사실을 부인한 발언은 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임지봉 헌법 학자는 윤 대통령의 진술이 자백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탄핵심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편,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별도로 내란 수사 및 공수처 수사 거부와 관련된 논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원 폭동 사건과 국무위원들의 수사, 사법적 처벌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임지봉 헌법학자와 권태호 한겨레 논설위원실 실장이 함께 하는 설 특집 뷰리핑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 그리고 윤석열 쪽의 진술이 탄핵재판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영상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책임 피디: 김도성

진행: 권태호

그래픽: 김수경

연출: 박승연

제작: 뉴스영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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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전쟁과 평화, 사대예속과 반미자주의 첨예한 대결이 펼쳐질 2025년

기자명

  •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5.01.30 08:23
  •  
  •  댓글 0
 
 

2025년 한반도 정세 전망 ④

내란의 명분이 되었던 ‘북한 위협론’ 

12.3 내란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드러냈다. 내란 세력들이 내란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북한의 군사 도발’, ‘종북 반국가세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군사 도발’, ‘종북 반국가세력’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한 내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즉 내란 세력은 온갖 반민주, 반평화적 행위들을 하더라도 “북한 소행에 대한 대응”이라는 한 마디로 너무나 쉽게 정당화되는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내란 사건은 ‘북한의 소행’, ‘반국가소행’ 때문에 한국 사회가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반북 적대’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오히려 조선의 정책은 내란을 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12.3 쿠데타 발생 후에도 어떤 ‘군사적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려 했던 세력은 조선이 아니라 ‘북한 위협론’을 거론하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었다. ‘북한 위협론’은 그들의 명분에 불과했다. 이번 내란 사태를 계기로 ‘북한 위협론’을 부추기는 세력이 한국 민주주의의 ‘주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란 세력과 동맹 관계였던 미국

미국은 윤석열 내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10월 무인기 침투는 세 번(3일, 9일, 10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 번에 그쳤다면 국방부 단독 소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세 차례 침투했다는 것은 주한미군의 허가, 양해 적어도 묵인이 있었다는 증거다. 드론의 평양 침투는 ‘한미연합 위기관리’, ‘한미연합 정보관리’에 해당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후에도 이런 ‘관리’는 여전히 주한미군사령관의 관할이다.

지난 해 3월 CIA가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해 국가안보실 고위 관리들의 대화를 미 국방부에 보낸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우리나라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CIA가 도청한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조차 윤석열의 ‘비상계엄’ 준비 정황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면, 미국은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세력이 12.3 ‘비상 계엄’ 전에 미국에 통보했을 가능성 역시 높다. 사전 통보 없이 결행했을 때 한미 관계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뒷감당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윤석열 탄핵 후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내란 이후 중지된 한미 외교 일정도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한덕수는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는 인물이다. 

한덕수가 탄핵되자 미국무장관은 최상목 대행을 만나 한미 외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이 역시 내정간섭이다. 
한덕수가 탄핵되자 미국무장관은 최상목 대행을 만나 한미 외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이 역시 내정간섭이다. 

미국이 대놓고 한덕수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내란 후 정국 주도권을 민주당이 행사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이 미국의 신냉전 정책의 돌격대 역할을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12.3 내란 후에도 윤석열의 정책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탄핵 후 대선이 치러지더라도 그 정책을 지속하는 정권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바라는 1순위는 민주당 정부가 아니다. 최소한 민주당과 국힘이 비등비등하게 향후 정국이 운영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민주당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박정희 쿠데타, 전두환 쿠데타를 미국이 지지했던 것처럼, 미국은 윤석열 내란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한국의 내란 세력과 동맹 관계였다.

더욱 치열해질 조미 전략대결

일각에서는 트럼프 2기 출범 후 조미 사이에 평화국면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트럼프 역시 “우리는 계속해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트럼프 외교 참모 로버트 오브라이언)면서 1기 때의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종료되었다. 비핵화가 조미 대화를 촉진했던 2018년과 2025년의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2018년 조미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조선의 유연한 비핵화 협상전략이었다. 그러나 2021년 8차 당대회 이후 조선의 대미 정책은 강대강 대결로 전환했으며, 2024년 “전쟁 준비 완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인 2024년 11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나 “초대국의 공존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립장과 언제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정책”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외교전의 일환으로 조미 대화는 진행될 수 있다. 트럼프는 2기 출범 전부터 조미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조선 역시 트럼프 정부의 약점을 파고들어 대적 협상을 진행하고, 그 협상과정에서 미국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시도의 차원에서 트럼프 정부와 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대화가 평화적 국면을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는 난망하다.

대화가 평화회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조선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한미군사연습을 중단하고, 조선에 대한 핵전쟁 계획을 폐기하고 한국에 전쟁 무기를 판매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조선 적대 정책을 중단할 것으로 기대되는 그 어떤 단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조선 적대정책을 유지하고 오히려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즉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대중국 봉쇄 정책을 강화할 것이다. 그 기본이 되는 것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한미, 한미일 동맹 강화이다. 조선에게는 비적대적이고, 중국에게만 적대적인 그런 한미, 한미일 동맹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선에게는 우호적이나 중국에게는 적대적인 그런 군사 연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등장, 한국 사회는 더 위험해졌다

 

트럼프가 추진할 MAGA 혹은 아메리카우선주의는 미국의 동맹국 한국에게는 재앙과도 같다. 바이든 정부 때 체결했던 모든 협정이나 합의들을 무위로 돌리고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며,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강도높은 무역 제재 그리고 동맹 압박을 추진할 것이다.

대중국 봉쇄를 위한 한미, 한미일 군사 동맹을 더욱 강도높이 추진할 것이며, 한미, 한미일 군사연습을 더욱 빈번하게 진행할 것이다. 바이든과의 차이는 전쟁 연습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에 순응하면 “돈”을 요구할 것이며, 한국 정부가 트럼프에 저항하면 “전쟁 위협”을 부추겨 안보 불안을 조성할 것이다. 순응이건, 저항이건 트럼프가 제기하는 안보 프레임(국제적 이슈이건, 한반도 차원의 이슈이건)에서 벗어났을 때 트럼프의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특히 윤석열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한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면 그 자체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상당한 파열구를 내는 결과가 된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신냉전 돌격대 역할을 했던 윤석열의 정책을 있는 그대로 고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윤석열이 없는 조건에서 한국 정부에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정부 길들이기에 착수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강도의 전쟁 위기가 조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4년이 윤석열에 의해 한반도가 위험했다면, 2025년엔 트럼프에 의해 한반도가 위험해 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누구나 예측하듯이 트럼프는 가장 “예측불가능하고 위험한” 미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트럼프로 인해 한반도가 위험해질수록, 트럼프의 무리수로 미국의 민낯이 드러날 수록, 반미 투쟁의 계기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새로운 정부, 윤석열의 모든 정책 폐기로 출발해야

내년 상반기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민주당 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윤석열의 모든 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윤석열이 집권했던 2년 반동안 한미, 한미일, 한일 사이에 체결한 모든 협정은 무효화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운운하며 윤석열의 일부 정책(예를 들어 한일 관계 관련 정책“ 정도를 폐기하고, 그 외의 정책을 계승하려 하더라도 트럼프는 결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의 모든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압박을 넣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민주당 정부가 ‘한일 관계 관련 합의’마저 계승하기는 어렵다. 결론은 트럼프의 압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왕 트럼프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부 취사, 일부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의 모든 정책을 폐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미 관계를 전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굳건한 한미관계’라는 미명 아래 박근혜의 불법적인 사드배치를 수용한 후 미국의 압력은 작아진 것이 아니라 더 커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드 배치가 한미 워킹그룹회의를 초래했고, 그것이 한일 지소미아 협정 유지로 귀결되었다.

일각에서는 혼돈의 시대를 헤쳐갈 유연한 균형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미 동맹 하에서 유연한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이 아닌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탈미를 대외정책의 기조와 원칙을 설정해야 ‘문재인-윤석열’로 이어지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 vs 평화, 사대예속 vs 반미자주” 전선에서 가장 첨예한 대결 전망

내란 세력을 청산하는 것은 12.3 내란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광장과 국회가 하나가 되어 내란을 저지하고, 윤석열을 탄핵 소추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내란 세력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윤석열은 시간끌기에, 국민의힘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내란에 동조하는 한덕수 권한대행 지지를 선언하는 것도 모자라, 12월 27일 민주당이 한 대행 탄핵 소추 표결 직전에도 한덕수 지지를 표명한 데서 확인되듯이 내란 세력과의 동맹을 지속하고, 한국 내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며,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자 하는 한국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헌재에서 탄핵 결정 후에도, 대선 과정에서도, 대선 이후 민주당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시간을 끌면서 광장을 없애려고 할 것이고, 광장과 국회를 분리시키려 할 것이고, 또 다시 ‘북한 위협’, ‘굳건한 한미동맹’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즉 전쟁을 부추기는 대미예속적 사대세력은 사활을 건 저항을 시작했고, 미국 역시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해왔던 이 세력의 잔존과 재집권을 위해 내정 간섭을 강화할 것이다.

내란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된 광장과 의회의 결합을 차단하기 위한 대대적인 이념공세와 ‘반북 소동’을 강화할 것이다. 윤석열 세력과 국힘은 그 본성상 정치적으로 위축될수록 전쟁과 사대예속에 매달리게 된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갖고, 그것을 유지했던 방식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대적인 이념 공세를 강화했을 때 민주당 또한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2025년 한국 사회는 ‘전쟁과 평화’, ‘사대예속과 반미자주’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내란세력들은 국정원 등 여전히 굳건한 그들의 권력기관을 최대한 가동시켜 ‘평화와 반미자주’를 지향하는 모든 세력을 탄압하고, 민주당을 위축시키고, 전쟁 위기를 조성하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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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비상계엄이라는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주지 못하도록 해야

독립성 훼손하고 극우정치 옹호하는 인권위에서 벗어나도록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24차 전원위원회에 자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을 재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2024.12.23. ⓒ뉴스1
1월 26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죄로 기소했다. 특수본은 “증거인멸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고,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내란우두머리 혐의에 대해서만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군·경 관계자에게도 수차례 전화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진술 등 정황 증거도 다수 확보한만쿰, 군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국회를 봉쇄한 것은 형법상의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방송을 통해 모두가 군대가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고, 국회의원을 국회 안에 못 들어가게 경찰이 막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은 내란이 아니라고 우긴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심판에 출석해서도 1월 23일 조대현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은 “국민은 이 사건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반국가세력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죄라고 몰아서”라고 했다. 계몽령이라는 말은 극우단체의 집회에서 나온 말을 재판에서 사용하리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이러한 억지 주장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라는 사람들도 하고 있다니 인권활동가로서 참담하기까지 하다. 헌법 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및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2월 3일 당시에는 평화로운 상황이었고 재난 상황도 아니었다.

 

 

 

국내외 인권 기준에 반하는 비상계엄


비상계엄의 요건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군대의 힘, 즉 무력으로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발표된 포고령 1호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만이 아니라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심지어 비상계엄군의 권한에도 없는 위법적인 정치활동 금지까지 포고령에 담았다.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약칭 유엔자유권규약)’ 4조 1항도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공 비상사태의 경우’로 한정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제29호에서는 전시 상황에서도 ‘국가의 존립(life of the nation)’에 대한 위협을 구성하는 경우에만 필요한 지리적, 시간적, 실질적 범위 내로 엄격히 제한하여 이행정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2월 3일 포고령처럼 대한민국 전체에 포괄적인 인권 제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실제 비상계엄 선포 당시 한국은 자유권 규약에서 명시된 인권보장의 의무를 정지할만한 전쟁이나 비상사태가 없었다. 이렇듯 12.3 비상계엄 발포나 포고령은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하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인 12.3 비상계엄에 대해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대로 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2024.12.04. ⓒ뉴스1

실제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의사당에서 군대와 마주한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권을 주장하기 위해 농성하던 노동자는 ‘집회의 자유를 금지한’ 포고령을 근거로 농성 종료를 해야만 했고, 동덕여대 학생들도 학교에서 포고령을 근거로 협박을 받기도 했다.

 

 

 

시민의 인권을 준수해야 할 인권위원이 대통령의 특권을 주장


이렇게 모두가 방송으로 본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다. 김용원 상임 인권위원은 공수청의 체포영장은 불법이고 내란이 아니라는 내용의 긴급안건을 5명의 인권위원들이 ‘긴급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이름으로 1월 13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려 했다. 해당 문건에는 △한덕수 탄핵소추 철회 및 신속 기각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심판 시 형사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를 정지하고 심판 연장 검토, △계엄 관련 형사 사건 재판에서 적극적 보석 허가 △계엄 관련 범죄 수사 시 불구속 수사 등의 '방어권'을 보장 등이 담겼다. 이뿐만 아니라, 비상계엄은 내란죄가 될 수 없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과 동일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옹호해야 할 인권위원이 대통령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는데 오히려 대통령을 옹호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여러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이를 막기도 했고, 이후에 함께 안건에 이름을 넣었던 강정혜 씨는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며 잡아땠고, 김종민(원명 스님)위원은 조계종의 입장과 다르게 해당 안건에 연명한 것이 문제가 돼서인지 인권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용원 상임 위원은 여전히 인권과 무관한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는 1월 13일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거부한 대통령의 행태도 옹호하더니, 며칠 전에는 TV조선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구속 기한은 2025년 1월 25일 오전 10시 32분에 만료”되었으니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석방을 주장했다. 검찰이 구속 만료 기한을 1월 27일로 본 것은 잘못됐다며 “일(日) 단위가 아니라 시(時)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원 위원은 일관되게 반인권 비상계엄으로 침해당한 시민의 인권은 보지 않고, 대통령의 특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반한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소위 파리원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감시해야 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지난해 8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관련 긴급 의견표명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23.08.09 ⓒ뉴시스

실제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인권위에 진정 사안 182,345건 중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는 139,500건으로 76.5%나 차지한다. 이 중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는 19.1%로 가장 높고, 검찰과 군, 국정원 등에 의한 인권침해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군과 경찰의 초법적 권한 행사를 가능케 하니 만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침해당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김용원 위원이 쓴 안건에는 비상계엄으로 심각하게 다친 사람이 없다며 비상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옹호한다.

이에 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겪은 모든 시민들의 집단 진정을 받고 있다. 인권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다.

 

 

 

인권위원 인선 절차 등 법 개정 필요해


김용원 위원의 이러한 반인권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위안부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에 대해 혐오세력이 방해하는 것을 진정하자 이를 소위 전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합의가 안 됐으니 기각’이라고 일방적으로 기각을 선언했으며, 수해를 방지하러 갔다가 사망한 군인 문제를 해결하려면던 박정훈 대령에게 압력을 가한 사건이 긴급구제로 진정이 들어오자 핑계를 대며 회의조차 열지 않았던 인물이다. 항의하러 온 군 유가족에 대해 감금했다며 수사의뢰까지 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안건을 넣은 강정혜, 이한별, 한석훈 등 모두 인권기준에 반하는 안건심의로 유명했던 위원들이다. 이번에 안건에 연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충상 위원은 성소수자 혐오발언과 이태원참사 유족을 모욕하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또한, 이번 안건 외에도 그동안 전원위원회나 상임위원회 때마다 김용원, 이충상 위원은 막말과 반인권 발언을 일삼아서 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충상 위원은 법안에 대한 의견표명 안건이 나올 때마다 민주당이 지지한 안건인가를 묻고, 진정사안이 정부 비판적인 것이 아니냐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인권위 독립성을 무시해왔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유엔인권기구가 수차례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인물이다.

이렇게 국내외 인권기준도 무시하고 정권 옹호적인 판단과 소수자 혐오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인권위원 인선 절차의 공백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하여하기 때문이다. 법에는 인권위원 인선은 국가기관(국회 4명, 대통령 4명, 대법원 3명) 지명권을 주는 것으로만 되어 있다 보니 각 권력기관들이 보은인사하듯이 인권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자를 인권위원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인권위원장 등 대통령 지명의 경우 한시적인 후보추천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독립적이지도 않고 추천위원회의 짧은 운영기간과 권한으로 인권위원으로 추천되거나 자천한 인사들이 이력서에 자신의 반인권 전력을 숨기면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인권위의 독립성을 위해 인권위원의 임기를 보장하도록 하다보니 반인권 언행을 일삼는 인권위원들이 임기를 다 채우며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 이제 이러한 인권위원들을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제재하는 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더이상 극우정치인들이 인권기준에 반하는 인물을 인권위원으로 임명돼 그들이 국내외 인권기준을 무시하며, 한국의 인권기준을 뒤로 후퇴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윤석열의 파면과 처벌을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12.3.비상계엄 선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진정인 모집 ⓒ국가인권위바로잡기공동행동

 

[참여요청] 12.3.비상계엄 선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진정인 모집

진정인 참여 신청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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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대가 '탄핵의 광장'으로 나온 이유

[인터뷰] 남태령 연설로 화제된 사저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 들으면 안 되는 세대"

25.01.29 19:10l최종 업데이트 25.01.29 19:10l
 
2030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광장에 뛰쳐나올까.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기록한다.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기자말]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 이후, 2030 여성들은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등지에서 철야와 집회를 이어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시위 초반, 일각에서는 '정치를 잘 모르는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놀러 나가듯 시위에 참여한다'는 비난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태령에서의 자유발언으로 화제가 된 사저(가명)의 이야기는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엄마, 아무도 안 나서는데 니가 왜 나서냐고 했제. 엄마, 모두가 여 있다. 자랑스러운 엄마아빠 딸이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나중에 나가는 사람이 될 거다. 와 나여야 하냐고? 내가 안 될 이유는 어디 있는데!"

올해 대학교 2학년인 그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려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월호 세대'다. "아무도 안 나서는데 왜 네가 나서냐"는 물음에, "모두가 여기 있다"며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나중에 떠나는 사람이 될 것임을 당당하게 외쳤다. 지난달 30일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스키 고글과 우유, 세월호 세대의 집회 준비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024년 12월 21일 오후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집회는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어땠나요?

"많이 무서웠어요. 다치거나 잡혀갈까봐 걱정도 컸죠. 경찰이 캡사이신 희석액 888L을 구매했다는 기사도 봤어요(2024년 2월 23일 <동아일보> [단독]경찰, 집회 대응용 캡사이신 희석액 888L 대량 구매 - 편집자 주). 그것을 보자마자 스키 고글을 샀죠. 캡사이신을 뿌리면 눈을 닦을 우유랑 식염수도 챙겼고요. 신분증은 일부러 안 가져갔어요. 혹시라도 추적당하거나 잡혀갈까봐 평소에 쓰는 교통카드 대신 집회 이동용으로만 쓰는 교통카드를 만들었죠."

- 의외의 대답이네요. 남태령에서의 발언이 상당히 당당해서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나요?

"저는 계엄이라는 걸 책으로 접했잖아요. 그리고 계엄이라는 게 항상 폭력적인 유혈 사태를 동반했잖아요. 책에서 보던 일이 제 눈 앞에 실제로 펼쳐질거라는 공포감이 컸어요.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을 봐도 그렇고요. 선거관리위원회로 간 군인들은 니퍼를 소지했다고 했잖아요. 혹시 몰라서 도망칠 수 있도록 집 근처 성당과 집회 장소 근처의 성당을 알아두기도 했죠. 정말 많이 무서웠어요."

계엄보다 더 두려운 것은

- 그럼에도 계엄 직후 국회에서 철야를 이어나가고, 여의도·남태령 등 다양한 집회에 참여했군요.

"사실 계엄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폭력적인 사태를 보고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두려웠어요. 2024년 12월 28일에 부산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 사무실에 항의하던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 서면 집회 마치고 참여했는데, 어떤 사람들이 계속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욕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밀치고 그랬어요. 자기 잠을 못 자게 한다면서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결국 그런 체제에 적응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만 남게 되잖아요. 그래서 무섭긴 했지만, 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 혹시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요?

"네. 사실은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그때가 제 생일이었거든요. 10월 29일. 친구들이랑 놀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참사 소식이 하나둘씩 올라오는 거에요. TV 뉴스에서도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시면서 '저거 다 놀러 간 애들이 문제지', 이러는 거예요. 그때 너무 놀랐어요. '어떻게 놀러 간 애들이 문제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하고요."

- 특히 어떤 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요?

"그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였잖아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문제가 없었잖아요. 올해는 경찰이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거였잖아요. 신고도 계속 들어갔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들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피해자들 잘못이에요? 부모님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내겠어요? 그때부터 가족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왜 너여야 하냐'고 묻는 엄마에게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024년 12월 22일 새벽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 수도방위사령부앞 도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남태령 발언에서 어머니께 하는 이야기로 화제가 됐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사고 현장 뉴스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무력감이 너무 컸어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가족들과 대화해도 내가 하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느낌에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말자, 뭐라도 해보자,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발언하러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그 부분은 말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 싶은 거예요. 부모님이나 친척들 모두 뉴스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한 명쯤은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에 퍼진 걸 보고 제가 무슨 마음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가족들도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가족들에게 어떤 마음을 그렇게 꼭 알리고 싶었던 걸까요?

"처음에 집회에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30분 넘게 화를 냈어요. '다들 안 나서는데 왜 네가 나서냐. 왜 네가 해야 되냐'는 얘기를 계속 하셨어요. 거기에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제 이야기를 안 들어주셨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저랑 같은 마음으로 보인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여기에 다들 있다고,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들으면 안 되는 세대"

- 부모님은 사저님이 시위에 나가는 걸 지지하지 않았는데,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많은 집회 현장에 나갈 용기를 얻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어요. 당시 많은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취소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는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심지어 배를 타고 다녀왔어요.

그때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을 설득하면서 '이건 어른들이 잘못해서 생긴 사고고,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사고다. 아이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아이들 수학여행에 동의해주시면 저희가 책임지고 인솔하겠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희도 애들이라 잘은 모르지만 큰일인 건 아니까 걱정은 됐죠. 그래도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다들 엄청 신났던 것 같아요. 도착해서 별도 보고 바다도 보고 그랬는데, 그런 경험들도 다 너무 좋았어요. 교장선생님께서는 평소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오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에요. 그런 어른을 만날 수 있어서 제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정말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네요. 그런 교장선생님의 모습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아이들을 위해 힘써주고 어른답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른이 되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번 집회 때 고등학생들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잖아. 저런 아이들도 이렇게 나서서 말하고 있는데 어른인 내가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지난 대선 때는 투표권이 없었지만, 이제 성인이 됐으니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 여전히 집회에 참여 중이지만, 그래도 이번 집회 참여 경험으로 바뀐 점이 있나요?

"저도 청소년 때 어른들에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어요. '여자애가 무슨 운동이냐' '여자애가 왜 이렇게 애교가 없냐'라는 말들을 들으면서요. 어른들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걸 들었을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어른이 됐으니, 아이들을 위해 어른인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이번 집회 참여를 통해 가장 크게 바뀐 점 같아요."

진압의 공포 속에도 광장으로 나가는 힘

 
비상행동,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저는 스키 고글과 우유를 챙겨야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말은 단순한 외침으로 들리지 않았다.

세월호 세대가 짊어진 책임감과, 과거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침묵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돼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제 이 세대의 목소리는 사회를 움직이는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폭력적인 진압의 공포 속에서도 스키 고글과 우유를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이들의 연대와 책임감은,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넘어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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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뛰어넘은 중국 인공지능?…딥시크 출시 ‘파장’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5/01/29 [19:47]

 

최근 중국계 기업 딥시크가 출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인공지능 분야의 선두 주자로 알려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중국 신생 기업 딥시크가 지난 20일(이하 현지 시각) 출시한 ‘딥시크-R1’(이하 딥시크)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기존의 챗GPT를 제치고 최고 평가와 다운로드 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 단체 오픈AI가 개발한 기존의 챗GPT보다 비용이 저렴한데 성능은 오히려 앞선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딥시크 열풍의 중심에는 ‘가성비’, ‘오픈소스’(소스 프로그램이 공개돼 누구든 자유롭게 수정하고 재배포할 수 있는 프로그램)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챗GPT 등 인공지능 기술에는 미국 대기업 엔비디아가 제작한 고성능·고가 반도체인 H100이 쓰인다. 조 바이든 정부 시기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며, 엔비디아를 향해 중국에는 성능을 떨어트린 H800 반도체만 수출할 것을 강제했다. 그런데 중국의 딥시크는 H800만으로도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이끌어낸 것이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정보를 학습하며 성장하는데 학습에는 큰 비용이 든다. 미국 대기업에서는 인공지능 학습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보통 1억 달러(대략 1,445억 원)를 투자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딥시크는 2개월 만에 560만 달러(대략 81억 원)를 들여 학습을 마쳤다. 미국 대기업이 사용한 비용 대비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본래 지금까지 인공지능 칩 분야는 미국, 그 가운데에서도 H100 등 인공지능에 쓰이는 고성능 반도체를 제작한 엔비디아가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엔비디아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쓸어 담으며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대기업으로 올라섰다.

 

오픈AI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칩을 활용해 개발한 챗GPT는 더 좋은 기능을 쓰려면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 사용자의 편집 권한이 없는 클로즈소스(폐쇄형 프로그램)라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가성비와 오픈소스를 강조하는 중국의 딥시크가 오픈AI, 엔비디아가 주도하던 인공지능 산업의 분위기를 뒤집은 것이다. 딥시크는 중국에 본사가 있는 헤지펀드 ‘하이 플라이어 퀀트’를 설립한 량원평이 2023년 5월 설립한 신생 기업이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27일 엔비디아의 주가는 16.86%나 급락했고, 시가총액도 6,127억 달러(대략 880조 원)가량이나 빠져나갔다. 다른 미국 반도체 대기업인 브로드컴의 주가는 17.40%, 마이크론의 주가는 11.67% 급락했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의견을 냈다. 2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옛 트위터)에 ‘딥시크가 비싼 엔비디아의 최신 칩 H100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공유한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 해도 조건이 훨씬 불리한 딥시크가 가성비 측면에서 미국보다 앞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출시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미국 CNN 방송은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AI 스타트업의 놀라운 성과는 미국이 지난 수년간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고성능 AI 칩의 중국 공급을 제한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충격적”이라고 했다.

 

또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딥시크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AI 학습용 첨단 칩을 확보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졌지만, 딥시크의 성과는 미국의 무역 제재가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라고 짚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딥시크의 ‘추론 인공지능’ 일부가 수학 문제를 푸는 성능 시험 등에서도 챗GPT 최신 버전보다 정확도가 앞섰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28일 TV조선의 장혁수 산업부 기자는 “(딥시크를) 직접 사용해 봤는데 생성형 AI 열풍을 이끈 챗GPT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질문을 하면 내놓는 결과도 챗GPT와 비슷”했다며 “일부 계산은 딥시크가 더 빠르기도 했다. 나는 한 달에 20달러, 우리 돈 3만 원 정도를 내고 챗GPT 유료 버전을 쓰고 있는데 (챗GPT의) 결제 취소도 고민할 정도”라고 사용 소감을 전했다.

 

SK증권에서 투자전략팀장을 지낸 이효석 씨는 2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효석아카데미’에서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게 무섭다”라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 씨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3요소는 ▲데이터(자료) ▲알고리즘(입력된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컴퓨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계산, 정보 처리)이다.

 

데이터 분야에서는 이미 14억 인구의 정보를 취합한 중국이 미국에 ‘압승’한 상태다.

 

알고리즘 분야는 미국에 있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조사해 봤더니 중국계가 49%로 드러났으며, 중국 정부가 이러한 핵심 인력을 자국으로 빼내려 해 불안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컴퓨팅인데 자칫 이 분야에서마저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미국의 ‘인공지능 독점’ 시대가 끝나고 누구든 인공지능을 쉽게 활용하는 시대가 가속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 26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투자자인 마크 앤더슨은 딥시크를 두고 엑스에서 현 상황을 “스푸트니크 모먼트(계기)”로 정의하면서 “딥시크는 내가 지금까지 본 획기적인 기술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일로, 오픈소스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스푸트니크 모먼트’는 1950년대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 개발에서 앞서나간 사건을 가리킨다.

 

미국 해군은 이런 분위기에서 딥시크가 출시한 프로그램의 사용을 금지했다.

 

28일 미국 경제매체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지난 24일 전체 대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딥시크가 출시한 프로그램은) 모델의 근원과 사용에 관한 잠재적 보안 및 윤리적 우려”가 있다며 “어떤 용도로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를 볼 때 점차 ‘딥시크 사용 금지령’이 트럼프 2기 정부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중국계 기업인 틱톡을 제재하려 했음에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틱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듯, 미국 정부 차원의 제재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28일 중국 대기업 알리바바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Qwen 2.5-Max’ 버전을 선보였다. 개발자에 따르면 딥시크가 출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V3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중국발 인공지능 파장을 예의주시해야 할 듯하다.

 

한편, 국내 누리꾼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미국 AI 회사들은 폐쇄형인 데 비해 정작 중국 AI 회사는 오픈소스라는 게 정말 웃긴 대비점 같다”, “중국 연구진의 성과가 대단하네요”, “미국이 그렇게 후드려 패도 중국 AI가 이렇게 발전하는데 한국은 손가락 빨고 있다는 것에 개탄스러울 뿐” 등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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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내란범들의 호남 혐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01/29 09:28
  • 수정일
    2025/01/29 09: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여덟 권의 단독 저서와 여러 권의 공저가 번역되어 있는 요모타 이누히코는 이름난 일본 영화 연구자며 아시아 대중문화 연구자다. 지은이는 1979년 도쿄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 과정에 있던 중에, 서울에 있는 건국대학교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사로 한국에 1년 동안 체류한 적이 있다. 2022년에 발표되고 작년 10월에 번역된 『계엄』(정은문고,2024)은 그때의 체험을 적은 것으로, 지은이는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논픽션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물두 살 난 세노 아키오이지만, 그는 지은이의 스물일곱 살 적 분신이다.
 
1970년대의 풍경. 동아일보 1970년 3월 14일자 기사.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기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가 발표한 과밀 억제 대책에 관한 기사다. ⓒ자료사진

이 책은 1970년대 말 외국인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대학가와 도시의 풍속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를 흥미롭게 재현해 준다. 세노 아키오가 관찰한 것은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별도의 의미가 필요 없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록하지 않는 사이에 그 익숙한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버려, 이제 우리는 외국인의 눈에 포착되고 기록된 것을 통해 우리를 다시 보게 된다.

“식당에서 계산할 때면 항상 누군가가 다 계산했다. 비록 학생들끼리라도 각자 낸다는 습관은 없었다. 습관이라고 하지만 학생이 결코 풍족하게 생활비를 받을 리 없다. 여러 명의 밥값을 내다니 상당히 부담이 될 텐데. 하지만 그들은 마치 밥값을 신경 쓰는 일 따윈 하찮다는 듯이 화제에 올리기를 피했다.”(46쪽)

“이 학생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만주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녀가 상경해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그는 무서운 얼굴로 호통쳤다. 그런 천한 패거리가 쓰는 말을 최고 학부에서 배우다니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녀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침내 입학 허락을 받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신만 이렇게 허위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54쪽)

“만원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거나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든 주부나 학생이 있으면 좌석에 앉은 승객이 가만히 손을 뻗어 짐이나 가방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일본인은 만원 버스에 타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 입구 쪽에 몰려 있기 십상이다. 한국인은 버스에 타자마자 일단 맨 뒤로 가서 다음 사람을 위해 충분히 공간을 마련해두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어디서 이런 상부상조하는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어쩌면 한국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한국인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사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게 아닐까.”(62쪽)

세노 아키오의 기록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그 이튿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갑작스레 막을 내린다. 지은이는 이후 21년 만에 서울 중앙대학교 객원교수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 사이에 한국은 몰라보게 바뀌었는데, 20년 넘는 변화를 증언하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지은이는 1979년 8월 중순, 한국 여행을 온 대학교 동문 여학생으로부터 일본에서 막 출간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건네받아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단숨에 읽어치웠다. 그리고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 “이 중편소설은 재미었었다. 동시에 앞으로 영원히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 아닐까 판단했다.”(196쪽) 군사 문화와 최루탄으로 매캐한 한국에서는 하루키 소설 속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한 달관(쿨) 따위는 허용되지 않으며, “가족, 민족,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재치 넘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할 리 만무하다.”(198쪽)라는 것이다.

우리 속담으로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민주화와 동시에 완전한 대중 소비 사회가 실현”(297쪽)되었고, 한국인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은이의 단언과 달리, 하루키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가 되었다. 그렇지만 작년 12월 3일, 윤석열이 일으켰던 12·3 내란은 40년도 넘은 대한민국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폭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정보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포고령을 작성하는 등 계엄을 사전에 기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4.12.24 ⓒ뉴스1

1979년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한 세노 아키오는 광주 출신 복학생 홍기철과 친해졌는데, 세노를 서울로 부른 한국인 조교수로부터 “저 학생은 우수하지만 전남이니 조심하는 게 좋아요.”(124쪽)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었다. 지은이는 이후 여러 경로로 호남에 대한 역사적·체계적 차별의 실체를 듣게 된다. 그런데 2024년 9월, 12·3의 주요 하수인이었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정보사 소속 김아무개 대령과 정아무개 대령에게 중·소령급 내부 인원 35명을 선별하라면서 이렇게 지시했다. “820(정보 전문) 특기자 가운데서 선별하되, 호남 지역 출신은 배제하라.”

아가리를 찢을 노상원의 지시는 작년 12월 21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현재까지 그 의미가 동결된 채 제대로 해석되지 않았다. 윤석열과 국힘 일당들은 12·3 내란을 ‘자유민주주의’니 ‘국가 위기’와 같은 헛소리로 옹호하거나, ‘부정 선거’, ‘친중’, ‘종북’에 원인이 있는 듯이 둘러댄다. 하지만 저 거창한 단어들이야말로 ‘체계적인 호남 혐오’를 은폐하고 있는 속임수가 아닌가. 저 내란범들에게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어떤 의미일까. 12·3 내란범들의 의식 구조는 이 지점에서부터 다시 훑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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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입성한 일론 머스크의 요란한 극우 행보

  • 국제

  • 입력 2025.01.28 21:35

  • 수정 2025.01.28 22:34

  • 댓글 0

유럽 좌파 공격, 극우 지원에 나선 머스크

“아이들이 조상이 진 죄 짊어져선 안 된다”

“100년 전 일로 일본 무릎 꿇게 해선 안 된다”

정부내 조직 된 머스크의 정부효율화서비스부

미국 국익 위해 독일 약체화하려는 트럼프 정부?

유럽 주요국 정치인들 머스크의 내정 개입 우려

스티브 베넌 "머스크는 진짜 악당"

지난 20일 일론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취임식 날 워싱턴의 캐피털 원 경기장 내부 연단에서 오른팔을 비스듬히 치켜세우는 손짓을 하고 있다, 극우 성향 머스크의 이런 제스처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독일 시대 인사 '하일 히틀러'를 연상케 한다는 억측과 비판을 받았다. 2025.1.20. 로이터 연합뉴스

“아이들이 조상들이 진 죄를 짊어져선 안 된다”

세계 최고갑부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가 지난 25일, 총선을 앞둔 독일 극우정당 ‘독일의 대안’(AfD) 선거유세 집회장의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서 한 말이다. 머스크는 AfD가 “독일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독일의 위대한 미래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오는 2월 23일로 예정된 독일 총선에 총리후보로 나선 알리스 바이델 AfD 당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기를 바란다”며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Make Germany Great Again)라는 구호로 호응했다.

“100년 전 일로 일본을 무릅꿇게 해선 안된다”

AfD는 지금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서 약 20%로, 보수세력인 기독교민주연합(CDU)사회연합(CSU)의 약 30%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정당이다. 2013년 유럽 부채 위기를 계기로 2013년에 ‘유로 반대’를 앞세우며 창당한 AfD는 점차 이민 반대 등의 배외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나치 시절의 구호를 외치는 등의 과격한 극우 언동 때문에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의 ‘우익 과격파’ 감시대상으로 지목됐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한 적어도 당분간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수 없는 정당이다. 모든 정당이 과반수 의석 미달일 경우 정당끼리 협의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다른 어느 정당도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대상인 AfD와 손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AfD 선거집회의 4000여 명 당원들을 흥분시킨 연설에서 머스크가 “아이들이 조상들이 진 죄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고 외친 것은 그냥 덕담 같은 게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발언이다. 그것은 연임을 노리는 사민당(SPD)의 올라프 숄츠 총리 등 진보 ‘좌파’를 깎아 내리고 우파를 치켜세우기 위해 계산된 발언이다. 나치의 전쟁범죄 등 독일이 비극적인 과거사 옹호를 막기 위해 설립된 연방헌법수호청이 문제삼을 만한 머스크의 그 발언은 “100년 전의 일로 일본을 무릎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 사람의 사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주요 후보인 앨리스 바이델을 보여주는 선거 포스터가 1월 28일 프랑크푸르트의 가로등 기둥에 높이 고정되어 있다. 2025.1.28. AP 연합뉴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1월 28일 베를린에서 덴마크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과 함께 성명에 참여하고 있다. 2025.1.28. AP 연합뉴스

독일의 우경화?

AfD 지지율 20%는 그런 구호에 환호하는 독일 유권자가 적어도 20%는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돼 있던 일본군 위안부 희생 ‘소녀상’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내려진 건 극우세력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독일의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다. 미테구에서 소녀상이 철거될 경우 다른 구에서 그것을 옮겨가겠다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결정에는 일본 외무성과 베를린 주재 일본대사관 등이 독일 정부와 베를린 시를 상대로 집요하게 벌여 온 소녀상 철거 공작에다 이러한 독일 내 정치변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25일 문제의 발언을 한 머스크는 일개 민간인 사업가가 아니다. 지난 20일 트럼프 정부는 머스크가 맡기로 했던 정부 외곽조직 ‘정부효율화부’를 정부내 조직인 ‘정부효율화서비스부’로 격상했다. 백악관 내 인터넷 메일 독자 계정도 배정받았다. 트럼프는 원래 정부 세출 삭감을 위해 정부 바깥에 조언(고문) 기구로 정부효율화부를 설치하고 머스크를 그 책임자로 앉혔다. 그러나 지난 20일 이를 백악관 산하 기구 USDS(미국 디지털서비스)를 개조해 정부 내 ‘미국 정부효율화서비스’부로 개조하고 머스크와 사업가 비벡 라마스와미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하지만 라마스와미가 머스크와의 견해 차이로 사직해 머스크가 단독 수장자리를 꿰찼다.

백악관 산하 정부효율화서비스부 책임자 머스크의 AfD 선거집회 발언은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방침과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파 포률리스트적 성격이 강한 트럼프 정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파 포퓰리스트 “과거사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

“현대적인 테크놀로지와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정부의 효율과 생산성을 최대화한다”는 대통령령에 입각해 설치한 머스크의 그 부서는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경쟁과 능력 제일주의 정책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과 능력 제일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구호 중의 하나는 ‘과거는 잊어라, 이제 미래를 향해 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한미일 준동맹 결성을 위해 한국과 일본에게 강조하고 종용해 온 구호이기도 하다. “과거사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 일본에게 더 없이 유리한 그 구호를 윤석열 정부는 앞장서 받들었다.

극우 포퓰리스트 머스크, 숄츠 독일 공격 극우정당 지지

머스크는 그가 2022년 트위터(지금의 엑스‘X’)를 매수했을 때 했던 것처럼 직원 채용에서 준용해 온 미국 연방정부의 기존 ‘좌파적’ DEI(다양성, 공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종업원 70%를 해고했듯이, 정부 각 부처의 직원들을 대량해고 해 세출을 줄이는 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를 의해 트럼프 정부는 이미 정규직 공무원은 줄이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정무직 직원들을 크게 늘렸다.

주로 좌파를 겨냥한 ‘과거는 잊어라, 미래로 가자’는 구호는 좌파 내지 진보세력에 대한 혐오와 우파, 극우파 지지, 나아가 그들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 몇주일에 걸쳐 AfD지지 발언을 계속해 왔다. <벨트 암 존타크>지 기고문에 AfD가 “독일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라고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X를 통해 반이민을 내세운 AfD 알리스 바이델 당수와 장시간 대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독일 극우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반이민은 지금 트럼프 정부가 취임 초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전시적 정책이기도 하다.

미국 국익 위해 독일 약체화하려는 것?

반면에 머스크는 자신의 X에 올린 글에서 숄츠 총리가 “무능한 바보”라며 사임하라고 요구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CEO(최고경영책임자)로 있는 전기자동차(EV) 테슬라가 독일에 투자하고 있다는 걸 이유로 그런 식의 독일 내정에 개입하는 걸 정당화했다.

숄츠 총리는 “냉정하게 얘기하자. 선동행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며 직접 대응하려 하지 않고 있으나,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베크 당수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손대지 마시오, 머스크 씨”라며 반발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자민당(FDP) 당수는 머스크에 대해 “독일에 경제적 손해를 끼치고, 정치적으로 고립시켜야 할 정당에 투표하라고 촉구” 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으로 귀결될 독일의 약체화를 의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1월 28일 런던 중심부에서 연 기업 리더들과의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1.18. 로이터 연합뉴스

좌파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총리도 공격

머스크는 영국 집권 노동당 당수이자 총리 키어 스타머에 대해서도 근거 불확실한 소녀 성착취문제 개입을 이유로 줄기차게 비판하며 “사임하라”고 요구해 왔다. 스타머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검찰총장 재직 시절,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트 맨체스터의 올덤에서 파키스탄계 범죄 혐의자가 백인 소녀들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충분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며 그를 “영국역사상 최악의 집단범죄에 가담한 죄로 고발돼야 한다”고 머스크는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스타머 정권의 다른 고위관리도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공격했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6일 머스크를 직접 지칭하지느 않았지만, “허위정보를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주목받기를 바랄 뿐”이라며, 자신은 검찰총장 시절 그 사건 혐의자를 기소하고 정면으로 대처했다고 반박했다. “그런 수법은 몇 번이나 봐 왔다. 그들은 위협을 부채질해서 언론이 그것을 증폭시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9일 머스크가 노리는 것은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노동당을 약체화시켜 자신들이 지지하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 ‘개혁 영국’(Reform UK)의 세력 확장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9일 머스크가 영국의 다음 총선거 이전에 스타머 총리를 사임으로 몰고 갈 방책을 관계자들과 협의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기사는 머스크가 영국 소녀 성폭행 사건을 자신의 X에서 계속 거론하면서 스타머의 사임을 요구하고, 2월 총선을 앞둔 독일 극우정당 AfD를 지지하는 글도 계속 올리고 있다면서, “머스크가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권을 어떻게 하면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안을 강구하면서 노동당을 대체할 정치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머스크가 서양문명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전했다.

우파 머스크는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방의 좌파를 혐오하고 비판하면서 우파의 집권을 바라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본노선과도 합치한다. 게다가 백인 우월주의, 서방 우월주의의 인종차별적 양태를 보이고 있는 점도 닮았다. 아시아계 범죄 혐의자의 백인 소녀 성폭행 사건에 대한 머스크의 유별난 반감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유럽 주요국 정치인들 머스크의 내정개입 우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10년 전에 세계 최대급 소셜 네트워크(X) 오너가 새로운 국제적 반동운동을 지지하고, 독일 등의 선거에 직접 개입한다고 했다면 누가 믿었겠나”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요나스 가르 스퇴레 총리는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큰 영향력을 기지고 있고, 엄청난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 타국의 내정에 이토록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스페인의 정부 대변인 피라르 알레그리아는 X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는 “절대적인 중립성, 무엇보다 어떤 간섭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조르쟈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등 우파 정치인들은 머스크의 행보를 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우파 연립정권을 이끌고 있는 극우 멜로니 총리는 머스크를 “천재” “뛰어난 혁신가”로 칭송하면서 그가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의 좌파 공격을 옹호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머스크의 우주사업체인 스페이스X와 1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이 이탈리아 정부에 암호화된 인터넷과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골자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야당들이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중도파 리더 카를로 카렌다가 “머스크가 유럽에서 극우세력을 지원하고, 페이크뉴스(가짜 뉴스)를 확산하면서 각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민감한 기능을 그에게 넘겨 준다는 선택지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지난 8일 <BBC>는 보도했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유명한 금융투기꾼이자 대규모 자선사업가인 자국 출신 조지 소로스를 혐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머스크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지난 달 트럼프의 플로리다 사저 마라라고에서 만났다.(<아사히신문> 1월 8일)

극우 전략가 스티브 베넌 “머스크는 진짜 악당”

이에 대해 같은 우파 포퓰리스트로 트럼프 1기 정권 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베넌은 지난 14일 머스크를 “진짜 악당”이라고 비난했다. 베넌은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데라세라>와의 언터뷰에서 “IT(정보기술)업계는 HIB비자(높은 기술력을 지닌 전문직 취업비자)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벨리 기술자의 76%는 외국인”이라며 HIB비자를 활용해 외국의 고급인재를 불러들이자고 주장하는 머스크를 비판했다.

베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머스크를 향해 남아공의 예전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을 염두에 두고 “남아공의 백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종차별적인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들이 미국 일에 참견을 하나”라며 불만을 표시한 뒤 “머스크는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진영에) 거액을 냈으니까 참으려 했는데, 더는 참을 수 없다. 남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고 질타했다. 베넌 자신이 트럼프 1.0 시절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말썽을 빚기도 했다. 두 사람의 언쟁은 트럼프 진영 ‘이너 써클’ 내부의 마찰이 표면화 된 것으로, 트럼프와 머스크의 밀월이 얼마나 지속될지와 관련해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1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마사요시 손(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겸 CEO, 래리 엘리슨(그 왼쪽) 오라클 전무 이사, 샘 올트먼(맨 오른쪽) 오픈 AI CEO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루스벨트 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1월 27일 중국 경쟁사 딥시크(DeepSeek)의 최신 인공지능 R1의 최근 데뷔를 칭찬하며, "특히 가격 대비 인상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2025.1.21. AFP 연합뉴스

머스크와 올트먼의 AI 선점 경쟁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가 밀고 있는 샘 올트먼의 오픈AI와 일본 소프트뱅크 등이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등을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타게이트를 위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먼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트럼프에게 약속했으나, 머스크는 지난 21일 X에 “그들은 실제로 그만큼의 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 소르트뱅크가 확보하고 있는 것은 100억 달러도 안 된다. 확실한 소식통한테서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오픈AI의 CEO 올트먼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이미 진행중인 초기 현장을 방문해 보고 싶은가?”라며 반박했다. 이 둘은 견원지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함께 시작한 오픈 AI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인 끝에 머스크가 뛰쳐나와 AI기업 xAI를 따로 세운 뒤, 비영리 목적으로 시작한 오픈AI가 계약을 위반해 이익 추구로 내달리고 있다며 제소해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의 불화는 머스크의 xAI가 오픈AI, 그리고 스타게이트와 실질적인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에 이권 지닌 머스크 행보 한국엔 어떤 영향?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는 중국 정부의 전면적인 지원 아래 2019년에 상하이 시에 공장을 세웠다. 외국자본 자동차 생산업체로서는 중국 업체와의 합작사업이 아닌 첫 현지 단독자본 진출이었다. 테슬라는 지금 전 세계 전기자동차 출하 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EV생산업체가 됐다. 대형 베터리공장도 상하이에 완공해 조만간 생산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머스크는 중국에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한층 더 강화하려는 트럼프 정권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예전 미중 국교 정상화 길을 연 리처드 닉슨 정부 때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존재로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만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트럼프의 취임식에는 머스크 외에도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메타(예전의 페이스북) 설립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마크 저크버그 등도 귀빈으로 참석했다. 이들 모두 거액의 기부금을 트럼프 취임위원회에 낸 갑부들이다. 트럼프 자신도 갑부다.

거대 IT기업들의 독점을 규제하려 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머스크 등 갑부들을 염두에 두고 “극소수의 초부유층으로의 권력 집중”에 대해 경고했다. “내게 큰 우려를 안기고 있는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자 한다. 매우 한정된 초부유층 인사들에 권력이 집중돼 체크(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권력이 남용되면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과두정치가 민주주의와 기본적 권리, 자유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중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테슬라의 머스크,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대형 IT 프로젝트의 당자자인 머스크가 트럼프 정부 주요 공직을 맡고 있을 경우 피할 수 없는 이해충돌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미국은 정말 중국과 정면대결을 벌이려 할까? 머스크와 트럼프 정부의 극우적 정책 지향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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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미 있는 설 선물이 올해는 없다, 8년 전처럼 [포토]

김혜윤기자
  • 수정 2025-01-28 14:23
  • 등록 2025-01-28 13:00
    • 2016년부터 10년 동안 공개된 대통령 설 선물들. 2017년과 202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로 설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2016년부터 10년 동안 공개된 대통령 설 선물들. 2017년과 202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로 설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매년 설을 맞이해 국정철학과 시대상황 등이 담긴 대통령 설 선물이 국가유공자와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각층에 배달된다. 지난 10년 동안 두 번을 제외하고 대통령 설 선물이 공개됐다.

      2017년 설에는 대통령 설 선물이 없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박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8년 뒤인 이번 설에도 비상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로, 대통령실에서는 설 선물을 발송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설을 맞이해 충북 보은 대추와 전남 장흥 표고버섯, 경남 통영 멸치 등 각 지역 특산물을 설 선물로 마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설에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 소비를 촉진한다는 취지로 충남 공주 차례용 백일주와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횡성 소고기 육포 등으로 설 선물 상자를 채웠다.

    •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사진으로 모아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설 명절을 맞아 보낸 설 선물 세트.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설 명절을 맞아 보낸 설 선물 세트.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설에 보낸 선물 세트.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평창 감자술을 비롯해 경기 포천 강정, 경남 의령 유과, 전남 담양 약과, 충남 서산 편강 등 지역별 한과로 구성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설에 보낸 선물 세트.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평창 감자술을 비롯해 경기 포천 강정, 경남 의령 유과, 전남 담양 약과, 충남 서산 편강 등 지역별 한과로 구성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보낸 설 선물 세트. 경남 함양 솔송주, 강원 강릉 고시볼, 전남 담양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 유과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식품 5종이 담겨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보낸 설 선물 세트. 경남 함양 솔송주, 강원 강릉 고시볼, 전남 담양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 유과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식품 5종이 담겨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설 선물로 전북 전주 이강주, 강원 양양 한과, 경남 김해 떡국떡 등 지역 특산물 3종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설 선물로 전북 전주 이강주, 강원 양양 한과, 경남 김해 떡국떡 등 지역 특산물 3종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설 명절을 맞아 준비한 설 선물세트. 안동 소주와 김제 약과, 여주 강정, 무안 꽃차, 당진 유과가 들어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설 명절을 맞아 준비한 설 선물세트. 안동 소주와 김제 약과, 여주 강정, 무안 꽃차, 당진 유과가 들어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임기 마지막 설 선물로 김포 문배주와 충남 부여 밤, 전남 광양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등 각 지역 특산물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22년 임기 마지막 설 선물로 김포 문배주와 충남 부여 밤, 전남 광양 매실액, 경북 문경 오미자청 등 각 지역 특산물을 준비했다. 청와대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취임 뒤 첫 설날을 맞아 농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각 지역 화합을 바라는 의미에서 경북 의성 떡국 떡, 전남 신안 곱창김, 강원 인제 황태채, 충북 청양 표고채, 경남 통영 멸치, 인천 옹진 홍새우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취임 뒤 첫 설날을 맞아 농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각 지역 화합을 바라는 의미에서 경북 의성 떡국 떡, 전남 신안 곱창김, 강원 인제 황태채, 충북 청양 표고채, 경남 통영 멸치, 인천 옹진 홍새우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충남 공주 백일주,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횡성 소고기 육포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불교계 등을 위해서는 충남 논산 아카시아꿀,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양양 표고채가 준비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선물은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와 보호재를 사용해 포장을 간소화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전통주 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 특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충남 공주 백일주,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횡성 소고기 육포 등을 설 선물로 준비했다. 불교계 등을 위해서는 충남 논산 아카시아꿀, 전남 고흥 유자청, 경기 가평 잣, 강원 양양 표고채가 준비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선물은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와 보호재를 사용해 포장을 간소화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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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다 불법이라는 尹·국민의힘… "궤변 집대성"

 법원이 공수처 수사권 인정했는데 "불법수사" 강변…'기소하라'더니 "기소 또한 불법"

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기간 연장 불허(24·25일) 및 검찰의 구속기소(26일)를 놓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이 검찰·공수처에 "불법"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법원 결정 취지나 심지어 윤 대통령 측 자신들이 앞서 했던 주장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25일 법원이 두 차례에 걸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불허하자,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는 지금까지 수사권이 없음에도 수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을 즉시 석방하라"라고 요구했다.

 

이어 26일 검찰이 윤 대통령을 구속기소하자 변호인단은 "거대 야당의 '하명 수사기관'을 자임한 공수처가 조기 대선을 위해 대통령 내란 몰이에 앞장섰고, 검찰은 각본대로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검찰과 공수처가 모두 민주당의 하수인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므로 검찰의 기소 또한 불법", "직권남용 수사를 근거로 내란을 수사한 별건수사"라며 "검찰은 공수처의 위법 수사에 눈을 감고 기소 대행청, 지게꾼 노릇을 자임했다"고 주장(27일)했다.

 

그러나 법원의 구속기간 연장 불허 취지는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공수처만이 적법한 수사권을 갖고 있으며, 검찰은 수사권이 없다는 취지에 가깝다.

 

 

법원의 불허 이유는 "고위공직자 등의 범죄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하도록 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한 공수처법의 입법 취지,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이를 공수처와 검찰청 사이에도 적용시키는 공수처법 제26조의 규정취지, 검찰청 소속 검사의 보완수사권 유무나 범위에 관하여 공수처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공수처 검사가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수사한 다음 공소제기요구서를 붙여 그 서류와 증거물을 검찰청 검사에게 송부한 사건에서, 이를 송부받아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하는 검찰청 검사가 수사를 계속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고위공직자인 윤 대통령에 대한 범죄혐의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해야 하는 것은 공수처이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수사는 공수처가, 기소는 검찰이 해야 하고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에 넘긴 이상 검찰은 추가 보완수사를 계속하기보다 바로 기소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은 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라는 입장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26일 윤 대통령 기소 결정 이전 전국 고·지검장 회의를 열어 법원 결정에 대해 "서울교육감 사건 등 공수처가 송부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확정한 전례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기소여부 결정을 위한 보완수사와 공소제기, 공소유지 등 검사의 책임과 직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등 형사사법체계에 반하는 부당한 결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법원은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은 보완수사권이 없다'고 결정했고, 검찰은 '기소여부 결정과 공소유지를 위해서는 추가·보완수사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 상황은 모두 공수처의 1차 수사권 자체는 적법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즉 '공수처 수사=불법'이라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검찰 모두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즉 법원 결정의 취지에 따르면 공수처의 수사는 적법했고, 그렇다면 공수처 수사를 철저하게 거부한 윤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로 공수처 수사를 '불법'이라고 주장해온 국민의힘의 대응이 비판받아야 하는 셈이다. 공수처가 결과론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면 오히려 피의자가 수사를 거부하고 그 옹호세력이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신병 확보 후 조사에 소극적으로 임한 점, 검찰이 보완수사를 하면 되리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겨버린 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공수처의 수사가 '엉터리 수사'였음이 사실상 법원에서 입증된 것"(24일 신동욱 수석대변인 논평),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에 대해 불법수사, 불법체포를 했다는 점이 점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헌을 문란하게 한 내란"(24일 김기현 전 대표 페이스북)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권영세), 원내대표(권성동) 등 이른바 당 '투톱'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권 원내대표는 그럼에도 지난 25일 밤 발표한 메시지에서 "구속영장 기한 연장이 최종 불허됐다. 모든 혼란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위법적 체포영장 집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즉시 석방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 모든 혼란을 일으킨 데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즉각 사퇴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26일 윤 대통령 구속기소에 대해서도 "공수처의 불법체포·불법수사를 기반으로 이뤄진데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없는 잘못된 부실 기소"(신 수석대변인)라고 주장했다. 권 원내대표도 페이스북에 글을 또 올려 "부실하고 부당하고 부정의한 기소"라며 "공수처와 검찰은 적법절차의 원칙을 내던져버렸다", "법률 대신 정무로 판단하는 사람을 어떻게 법률가라고 할 수 있겠나", "권력에 따라 눕는 검찰"이라고 검찰을 비난했다.

 

윤 대통령 측은 지난 8일 "증거가 확보돼 있으면 기소하든지, (아니면) 조사가 필요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기소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작 구속영장이 발부(지난 19일) 이후에도 공수처 수사에는 불응했고, 기소가 이뤄지자 "공수처 수사가 불법이므로 기소 또한 불법"이라고 하고 있다.

 

야당은 "국민의힘은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공수처도, 검찰도, 법원도, 헌재도 부정해 왔다. 이렇게 대한민국 사법 체계를 통째로 부정하면 도대체 무엇이 남느냐"(27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라고 꼬집었다.

 

조 수석대변인은 "끈질긴 현실 도피에도 달라질 건 없다"며 "내란 우두머리는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 공범과 비호 세력들도 따박따박 단죄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대해서도 "저질 코미디", "궤변 집대성"(25일 황정아 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황 대변인은 "공수처,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까지 모두 다 부정하는 자들이 법치를 운운하고 적법절차를 따지다니, 소도 비웃을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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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다짐, 뇌를 썩게 하지 않겠습니다

소셜 미디어 중독의 폐해...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고 외로움에 익숙해지렵니다

25.01.28 18:03l최종 업데이트 25.01.28 18:03l 장옥순(jos22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관계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니 삶이 단순해서 좋다. ⓒ zoltantasi on Unsplash

'외로움'의 다른 말은 '자유'

몇 달 전 나는 수십 년 만남을 가져왔던 모임을 탈퇴했다.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친구가 섞여 있는 모임은 즐거움 대신 스트레스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음에도 몇 년을 참다가 결국 탈퇴한 셈이다. 그동안에는 멘탈이 강해서 잘 견뎠으나 점점 모임 후에 오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 없었다. 노년의 모임은 친목 이상의 수준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되도록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마음이 편하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어떤 대화나 토론으로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는 분야이니 감정을 상하기 쉽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자기주장이 강해져서 고집으로 변모되니 조심해야 한다. 선을 넘는 지경으로 가서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쪽이 피하거나 양보를 해야 한다. 마음 편하게 만나 담소를 나누고 간단한 식사와 차를 마시는 자리가 오히려 부담이 된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워본 경험이 없는 나는 불편한 자리는 내쪽에서 피하며 살아 왔음을 상기하고 미련 없이 미리 피하는 선택을 했다.

학창 시절이 몇 년 되지 않은 탓에 동창 모임도 적었기 때문에 수십 년 모임을 탈퇴하기는 쉽지 않아서 몇 년이 걸렸다. 최소한 일흔 살까지는 만나자고 했었는데 앞당겨진 셈이다. 탈퇴의 변을 조심스럽게 알리면서 그간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문자로 대신했다. 그 뒤 몇 번의 전화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으니 그대로 끝났다.

하나 둘, 모임을 없애가면서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가 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홀가분해졌다. 외로움도 따랐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움이 더 컸다. 오고가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경청만이 강요되는 만남은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불러왔는데 참 많이도 참고 견뎌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자유를 원한다면 외로움은 부수적인 것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자유인의 다른 말이다. 관계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니 삶이 단순해서 좋다

2024년의 단어, '뇌 썩음'(brain rot)

2022년에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를 뜻하는 '고블린 모드'(Goblin mode)를 선정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2024년의 단어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꼽았다.

이 단어는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잉 소비로 초래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자료를 과도하게 소비한 결과, 정신적 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현상이란다. 특히 '뇌 썩음'이라는 표현은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에서 사용되었다니 그는 선견지명이 대단한 지성인이다.

며칠 전 뇌 썩음을 뜻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날부터 의식적으로 짧은 영상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뇌가 썩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주로 고양이나 강아지 영상, 정치 관련 숏폼을 즐겨 보곤 하는 편이다. 시간을 빼앗아 가는 주범인데 남는 것은 별로 없으니 뇌에 피로감을 안겨주고 생각 없이 보게 하니 퇴화되는 건 당연하다.

예전에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로 부르며 되도록 멀리 하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나 신문과는 달리 주어진 정보를 무분별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과도한 영상 매체는 인간에게 바보 상자를 선물하여 왔다. 한술 더 떠서 휴대전화의 편리함과 신속함은 인간 자체를 서서히 바보로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 연합뉴스

요즈음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모습들은 바로 '뇌 썩음'의 증거가 아닐까. 내 생각이나 이성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 대신 나보다 우월해 보인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거나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종속되는 현상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그들이 시키는대로, 선동하는대로 광신도들처럼 몰려가서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법적인 제재나 처벌을 받고서도 반성은커녕 합리화 하며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큰일이다.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면서 거액의 돈을 버는 일부 유튜버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며 선동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현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정치와 종교는 가족 간에도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분야임을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하다.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대신 남들이 먹고 배설한 찌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추종하는 것도 모자라서 시키는대로 원격조종되는 좀비인간이 등장한 세상은 '뇌 썩음'의 증거가 분명하다.

인류 역사의 괴물인 히틀러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여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 ~ 1962)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그는 독일을 떠나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되어 9일 후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그는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 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악의 평범성'은 어디에나 있다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히틀러의 부하들처럼,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저지하기는커녕 반대도 못하고 입을 다문 국무위원들과 군 장성, 경찰 수뇌부는 한국판 악의 평범성을 지닌 아이히만이 분명하다.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전문적 지식과 일반상식이 풍부하여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이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부당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한 일을 벌인 책임은 모두 그들 몫인데 피해는 국민들이 당하고 있다.

권력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 영상에 매우 심취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대통령이라면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한 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사고력의 결여가 분명하다. 믿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주장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여 신념화한 그는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통치수단이라는 궤변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댄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자리에 가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거짓말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사고력이 결여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미 그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말바꾸기를 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사고력과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사죄는커녕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애국하라며 선동하기를 서슴지 않으니 얼마나 두려운 현상인가! 맹목적으로 폭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애국자라 자처하며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이렇게 뇌가 썩어가는 사람들을 교화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중독되면 스스로 빠져 나오기는 힘들고 특단의 조치로 치료를 받거나 교정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설득하고 교정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불확실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구속되었어도 '뇌 썩음'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이다.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반발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의 극우 세력, 폭력적인 수단을 합리화 하면서 준동하는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되도록 어려서부터 불건전한 유튜브 영상이나 스마트폰의 역기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부모와 학교, 국가의 노력이 절실하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편리함 속에 숨겨진 무서운 역기능이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게 진리인가.

설을 맞은 나의 다짐은 두 가지다. ⓒ averey on Unsplash

설을 맞은 나의 다짐은 두 가지다. 첫째, '뇌 썩음'을 예방하는 일이다. 되도록 중요하지 않은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기, 특히 소셜 미디어를 과잉 소비하지 않는 것. 소셜 미디어에 구속되어 함부로 시간을 내주는 대신 책을 더 많이 읽는 것, 귀찮더라도 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둘째, 조금 더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불편한 관계에 집착하지 않기, 물건과 사물에 연연하지 않고 정리하며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최소한의 관계, 적정한 소비로 쓰레기를 줄이고 생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영혼에 더 많은 '자유'를 선사하리라. 더 맑고 투명하게 이 세상과 자연에 감사하리라. 설날의 다짐을 쓰고 나니 내 마음에는 벌써 새봄이 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교육통, 호남교육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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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악의평범성#뇌썩음#설날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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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합의’에 숨는 한덕수·최상목…전직 공무원이 본 관료의 ‘두 얼굴’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

이승준기자

수정 2025-01-28 08:00등록 2025-01-28 08:00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 전인 2024년 12월2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국무위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에 대한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뒤 우리는 ‘관료’ 두 명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과 관련한 두 권한대행의 선택은 12·3내란 사태 수습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방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들이 가진 관료라는 ‘정체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부 부처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여권 관계자는 “두 권한대행의 결정들을 보면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권자나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관료의 전형적인 특성이 보이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출간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노한동 지음·사이드웨이)은 이러한 공무원들의 모습에 돌직구를 날립니다. 10년간 정부부처에서 일하다 2023년 4월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공무원을 그만둔 저자는 “지난 10년간 경험하고 관찰한 공직사회의 무능한 일상과 좌절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이자 르포”라고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펼치면 두 권한대행의 행보와 저자가 관찰한 공무원들의 초상이 겹쳐 보입니다. 저자가 경험하고 목격한 것과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의 최근 행보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관료’라는 이름 아래 교집합을 형성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024년 12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갑과 을의 두 얼굴’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포부로 빛나던 젊은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논리에 길든다. 공직사회의 수많은 헛짓거리 때문에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할 여유가 없어서기도하지만, 실상은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그저 세월을 버티기만 하면 정해진 승진과 적당한 명예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료는 두 얼굴을 갖는다. 평소에는 공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한다. 그러나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26일 “여야가 합의하여 안을 제출하실 때까지 저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며 당시 공석이던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고, 다음날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2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도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선 “여야의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며 임명을 보류했습니다. 대부분의 헌법학자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권한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후보자를 임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최 권한대행의 2명 임명, 1명 보류 결정에선 한 총리의 ‘여야 합의’ 논리를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고집도 엿보입니다.

헌법재판소가 8인 재판관 체제가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상화가 됐습니다만, 두 권한대행 모두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거나 보류한 것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관료는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정권,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 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입니다.

12·3 내란사태를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관저 구역에 진입한 체포팀이 2차 저지선을 넘어 관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체포영장 집행 ‘뒷짐’=부작위와 책임회피

“정부의 일 처리는 언제나 국민의 요구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에 명시된 절차를 준수해야 하고,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선의의 이유로 정부의 일 처리가 늦어지는 건 아니다. 정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일부러 처분을 부작위(不作爲, 법률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하며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다. 축구 경기 후반전 막판,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볼을 돌리는 것처럼, 관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교묘히 시간을 끄는 방법을 안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언론, 국회 등 '시어머니의 눈을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공무원인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특별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본인이 있을 땐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 하는 것이 공무원의 태생적 속성이다. 연구용역과 위원회는 정책의 전문성과 민주성 증진을 핑계 삼아 공무원이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정의 완충지대이다. 이런 완충지대는 논의와 검토의 과정을 길게 끌며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적합하다. 즉,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호막인 셈이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는 경호처에 협조를 지시하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야당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수사기관과 이를 불법적으로 막아서는 경호처의 관계를 ‘두 기관 간 갈등과 충돌’로 동일 선상에 올리며 ‘충돌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대통령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경호처를 지휘할 권한과 그 근거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최 권한대행의 방관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둘러싼 무력 충돌 우려와 여야 갈등, 사회적 혼란은 계속됐습니다. ‘관료는 책임을 싫어한다’, ‘부작위하며 결정을 최대한 미룬다’는 책의 지적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서진 건물 외벽.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6개 거부권 행사: 권한과 의무와 책임의 불일치?

“‘정치권’을 단순히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 등 집권 세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책 결정 권한이 정부 관료들에게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관료가 겪는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료의 정책 결정 권한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부와 관료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묻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 이는 정책 결정 권한의 대부분을 휘두르는 정치권조차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의 문제 중 많은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 관료가 가진 권한은 약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져야 하는 신세이니 자연히 업무에 무기력해진다.”

“어쨌거나 세상은 공무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월성원전 자료삭제 사건’이나,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에선 국장급 이하 공무원부터 구속했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의 책임이 징계 등에 머무르지 않고 형사 처벌 등 법적 책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일단은 나중에라도 책임질 만한 소지가 있는 일은 최대한 맡지 않으려고 하고, 맡더라도 책임 소재를 남기는 일에 열성을 다한다. 예를 들어 국·과장이 보고서를 수정하면 실무자는 ‘과수원’(과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국수원’(국장이 수정을 한 번 지시) 등을 파일명에 추가하여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남긴다. 몰래 휴대폰을 사용하여 회의를 녹음하는 사례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업무수첩에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빼곡히 적는 것은 이제 공직사회에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통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최 권한대행은 26일 현재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6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여야 합의가 없었다’거나, ‘위헌적 요소가 있다’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준다’ 등의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모두 정부·여당이 반대해온 법안입니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법안들 대부분은 행정부가 안 하려는 ‘무언가를 새로 하겠다’는 것으로 관료들에게 현상 유지 대신 부담과 책임을 증가시킵니다. 책은 권한은 줄어드는데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정도가 커지는 것도 공직사회의 무기력을 야기한다고 지적합니다.

최 권한대행 쪽 관계자들은 ‘권한대행의 권한의 범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이 없고 명확하지 않아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야는 각각 최 권한대행에게 정반대의 시각으로 권한을 행사하라고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권한이 없고, 그래서 책임을 최소화하겠다’는 최 권한대행의 선택은 여야 뒤에 숨어 정치 현안에 대한 개입과 결정은 피하되, 거부권 행사는 이어가겠다는 거로 보입니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서 재의결 절차를 한 번 더 거치고, 여야가 한 번 더 협상할 여지가 있다 보니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당장 최 권한대행은 설 연휴 뒤 야당 주도로 통과한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일을 걷어내고, 관료가 본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관료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공직사회의 자기방어적인 거짓말을 들춰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저자는 책 막바지에서 공직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12·3내란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과 혼란을 수습 해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주는 말 같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이승준 기자

사람의 마음이 늘 궁금합니다. 눈높이를 맞추고 듣고 또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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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은 42년 만에 어떻게 극우 권력의 우두머리가 됐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01/28 09:31
  • 수정일
    2025/01/28 09: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스팔트 극우 개신교 선봉에서 대통령·국민의힘 흔드는 실세로

극우 유튜브 채널인 '신의 한수'에 올라온 전광훈 찬송가인 '애국자 전광훈' ⓒ유튜브 캡쳐
윤석열 탄핵심판과 내란재판이 시작되면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각종 집회를 이끄는 이는 이른바 ‘광화문 최고 사령관’이라 불리는 전광훈이다. 극우 개신교 신자들과 함께 각종 거리집회를 주도하며 ‘아스팔트 극우’의 선봉이었던 전광훈은 어느새 국민의힘과 국힘이 배출한 대통령인 윤석열을 쥐락펴락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국힘 소속 의원들은 앞장서 전광훈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윤석열도 이제는 전광훈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광훈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 극우집회엔 전광훈을 찬양하는 노래까지 등장했다. 바로 ‘애국자 전광훈’이라는 노래다, 전광훈 찬송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노래는 신혜식이 운영하는 ‘신의한수’라는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해 12월 27일 공개됐다. ‘애국자 전광훈’이라는 노래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자여. 전광훈, 당신의 이름을 외친다”, “영원히 기억될 그 이름 전광훈. 애국자의 자부심” 등 전광훈을 구원자처럼 찬양하는 낯 뜨거운 가사들로 가득하다. 1983년 사랑제일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전광훈은 42년 만에 어떻게 극우 권력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 분석해 봤다.

 

 

비인가 신학교 출신이지만
부흥사로 이름을 날린 전광훈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광훈은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목사로서 내세울 만한 경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광훈은 전도사 시절이던 1983년 사랑제일교회를 세웠고,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소속 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의 전신) 신학과를 중퇴한 뒤 교육부 비인가 신학교인 대한신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편목 과정 등을 수료했지만, 일반 신학대 석사 과정과 다른 특별 과정이다.

물론 지금도 개신교단 가운데는 단기 교육 또는 비인가 신학교를 통해 목회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육부 인가 신학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긴 어렵다. 하지만, 전광훈은 이런 과거 때문에 학력 위조 의혹 등 목사 자격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 2019년 7월 3일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개신교 교단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맡았던 전광훈은 초대되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에 초청된 주요 교단은 제대로 인가된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목회자로 있는 교단을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광훈과 한기총은 이런 기준에 못 미쳤다.

이뿐만 아니라 전광훈의 자격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그가 예장 대신교단 총회장으로 있을 당시 백석교단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통합에 반대한 대신교단 잔류 목사들이 반발하면서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을 제외하고 예장 백석대신 교단을 세웠다. 하지만 전광훈은 2019년 7월 여러 논란 때문에 백석대신 총회에서 면직 및 제명당했다. 전광훈은 스스로 새로운 교단인 예장 대신복원을 만들어 독립하면서 징계를 피했다.

 

 

 

전광훈이 지난 2005년 개최한 전국목회자부부 청교도영성훈련 안내 광고 ⓒ인터넷

2000년대 초반까지 전광훈은 부흥사로 이름을 알렸다. 개신교계 신문들엔 전광훈이 부흥사로 참여한 부흥회 광고가 자주 실렸다. 그는 1998년 청교도영성훈련원을 설립하고 원장직을 맡은 이후 목회자 초청 영성훈련을 진행했고, 각 교회를 돌며 부흥회를 이끌었다. 이런 전광훈이 이름을 알린 건 그의 스승이라 불리는 금란교회 담임목사인 고 김홍도 목사 때문이다. 김홍도는 전광훈이 세운 청교도영성훈련원 총재를 맡았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인 금란교회에서 전광훈의 청교도영성수련회를 열도록 지원했다.

 

 

 

금란교회 김홍도 통해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극우개신교 집회 주역으로


전광훈은 김홍도와 정치적으로도 통했다. 북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월밤한 김홍도는 극우성향이 강했다. 2000년대 초반 각종 극우집회를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전광훈은 그런 그와 함께 지난 2007년 6월 북핵 완전폐기와 대선음모용 남북정상회담 반대 등을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열었다. 극우개신교계와 재향군인회 등이 중심이 돼 열린 이날 집회엔 박근혜를 비롯한 보수정치인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선 지금의 윤석열 옹호 집회와 마찬가지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렸다.

극우개신교 신자들과 목회자들이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같이 들고 집회에 나서기 시작한 건 2004년 무렵이다. 이들은 2004년 6월 25일 극우단체와 연합해 ‘한미 동맹강화와 경제 살리기를 위한 6·25 비상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선 성조기와 태극기가 휘날렸다. 당시는 2004년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획득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사학법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개혁입법을 추진 중이었고, 미군 범죄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반미여론이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이날 비상구국기도회에서 김한식 목사는 “하나님이 미군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미군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극우개신교 신자들에게 ‘미국’은 우리와 동등한 ‘동맹’이 아니라, 고난받는 대한민국을 구원하기 위해 온 ‘구원자’다. 미국을 ‘구원자’로 믿는 신앙은 이승만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워온 개신교가 이후 반공의 기치를 들고 독재정권과 함께 성장하며 계속됐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이고, 우리나라를 구원한 나라임을 강조하는 신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옹호 집회에서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출해 줄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미국 구원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미국 구원론’의 가장 충실한 전파자가 바로 전광훈이다.

 

 

 

‘미국 구원론’ 전파자 전광훈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으로
기독교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국가


극우개신교는 이후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중심이 돼 각종 극우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함께했다. 근데 당시까지만 해도 전광훈은 집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극우집회는 신도 동원 능력이 뛰어난 대형교회들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07년 북핵 관련 극우 집회부터 전광훈은 김홍도와 함께 집회 전면에 나서며 ‘미국 구원론’을 본격적으로 전파했다.

 

 

 

대한애국당과 박근혜대통령 구명총연합회 등이 지난 2018년 1월 20일 오후 서울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태극기 집회를 마치고 대형 성조기를 들고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전광훈을 비롯한 극우개신교 신자들은 ‘기독교입국론(基督敎立國論)’을 주장한다. 이 주장의 핵심은 미국의 지원으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됐고, 대한민국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북한 공산주의를 무찔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광훈은 지난 2019년 대표회장 취임식에서 “미국의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와서 한 가장 위대한 사건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미국에 데려가서 박사 학위를 받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 장로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세웠다. 또 한미동맹도 세웠다. 그리고 또 하나가 기독교 입국론이다. 이런 4대 기준으로 국가를 운영했더니 전 세계 10대 대국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광훈은 이어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예수가 세운 나라다. 결단코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 고려연방제로 갈 수 없다. 성도 여러분, 이 나라를 지키자”며 “유튜브 1천만 조직을 완성해 모든 악의 세력과 맞서 이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광훈 등 극우개신교에게 북한은 절대 악이다. 북한이라는 절대 악이 하나님이 세운 대한민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걸 해석한다.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도, 목회자를 비롯한 종교인들에 대한 세금 부과도,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도, 경제정의 실현도, 노동권 보장 요구도 모두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악의 세력이 벌이는 일로 몰아갈 수 있다.

 

 

 

2007년 대선 앞두고 발언 논란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전광훈이 ‘미국 구원론’의 전파자로 나설 수 있었던 건 거침없는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전광훈의 거친 입은 그에게 최고의 무기였지만, 동시에 최대의 약점이기도 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05년 전광훈은 목회자 부부세미나에서 “이 성도가 내 성도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또 하나는 인감증명을 끊어 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발언해 비난이 쏟아졌다.

 

 

 

제25대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취임식 ⓒ한기총 홈페이지

2007년부터는 각종 정치 발언으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는 그해 4월 경남 마산에서 열린 청교도영성훈련원 집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10월 3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개천절 국민대회’에선 “하나님의 나라를 왜 북한에 갖다 바치려 하느냐”며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했다.

이후에도 전광훈의 발언 논란은 계속됐다. 2012년엔 전북 전주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전교조 안에 성(性)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1만 명 있다”고 주장했고, “전교조는 대한민국을 인민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전교조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기독자유당, 자유통일당 등
극우개신교 원내진출 시도
선봉에 섰던 전광훈

 

전광훈은 거침없는 발언뿐 아니라 극우개신교의 정치세력화를 주도한 인물로도 주목을 받았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는 지금도 극우개신교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이끌고 있다.

2008년 18대 총선부터 전광훈은 극우개신교 정당 결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전광훈이 만든 기독사랑실천당은 2.59%(약 45만 표)를 득표하면서 원내진입 일보 직전까지 갔다. 비례대표 의석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 3%에 0.41%(약 4만 표)가 모자란 수치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기독당으로 원내진출에 도전했지만 1.2%를 득표해 실패했다.

지난 2016년에도 극우개신교 세력은 원내진출을 시도했다. 창당을 주도한 건 역시 전광훈이었다. 기독자유당을 만들고 ‘동성연애법·차별금지법·이슬람저지를 위한 100만 서명’을 여러 대형교회와 함께 벌였다. 한기총 대표회장이던 이영훈 목사와 극우개신교 성향의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연합의 대표회장 조일래 목사는 긴급 목회서신을 보내 전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기독자유당 지지 광고를 해 달라’는 등 측면 지원했다.
 
기독자유당 등 극우개신교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를 시도해온 전광훈 ⓒ뉴시스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기독자유당은 2.63%의 득표율로 62만 표를 얻었다. 극우개신교 정당 가운데에는 역대 최고 득표율이었다. 또 다른 보수개신교 성향의 정당인 ‘기독당’이 0.54%(12만9871표)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이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출마했다면 3% 이상 득표해 최소 비례대표 1석을 확보했을 것이다.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 뒤 거리투쟁


2020년 총선을 앞두고 2019년 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광훈은 한기총 조직을 극우개신교 정치세력화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2019년 6월 5일 그는 시국선언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전면전을 선언했다. 전광훈은 시국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화, 공산화돼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 운운하며 “문재인 대통령 하야와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를 위해 한기총이 지향하는 국민운동에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한기총 시국선언이 ‘성령의 불러주는 대로 쓴 것’이라는 신성모독 발언도 했다.

이후 전광훈은 한기총을 통해 ‘253개 지역 연합’이라는 전국적 지역 조직을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 하야 서명’을 받았다. 253개 지역은 국회의원 지역구로서 서명운동은 사실상 선거운동이었다. 여기에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며 시작된 태극기 부대가 대거 동참했다. 이때부터 전광훈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극우개신교 거리집회의 중심이 됐다.

 

 

 

뜨거운 광화문 극우집회 열기에
자유한국당도 동참
황교안 대표 극우세력과 함께
국회 난입해 극우 불법집회


당시 극우개신교의 기세는 대단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던 당시 집회 열기는 지금의 윤석열 옹호 집회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열기에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도 동참했다.

김진태 의원은 2019년 10월 9일 광화문광장에서 ‘조국 문재인 퇴진, 대한민국바로세우기 2차 국민대회’에 참석해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을 10월 항쟁으로 부르자. 4.19 때보다, 6.10 때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모였다. 힘을 모아 싸우자”고 말했다.

 

 

 

2019년 10월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촉구 집회’ 에 참석한 전광훈이 발언하고 있다. 2019.10.09 ⓒ민중의소리


전광훈이 10월 22일 청와대 앞 '광야교회' 저녁예배 설교에서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산다.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과 친하다(는) 말이야, 친해.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산다(는) 말이야”라고 발언하는 바람에 신성모독 논란이 일었지만, 자유한국당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황교안도 함께했다. 10월 25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5 문재인 퇴진 철야 국민대회’에 참석한 것이다. 두 달 뒤 황교안은 당원들과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광화문광장 한쪽을 차지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황교안은 극우개신교의 지지를 받는 거리의 투사로 우뚝 섰다. 12월 16일 국회 본관 앞에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엔 자유한국당·우리공화당 당원과 극우단체 회원들이 함께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돼 있다. 국회 내부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날 황교안은 마이크를 들고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저희가 앞장서겠다. 저희와 함께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 시위대를 이끌었고, 곳곳에서 ‘아멘’이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전광훈과 손잡았던 미래통합당
2020년 총선서 103석으로 참패
전광훈에 코로나19 확산 관련 비판 일자
뒤늦게 거리두기 나선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전광훈은 ‘기독자유통일당’을 만들었고, 미래통합당과 함께한 거리투쟁의 열기에 힘입어 원내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개표 결과 기독자유통일당의 득표율은 1.8%로 4년 전 총선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거리투쟁에 함께했던 미래통합당도 103석에 그치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결국, 황교안은 1년 2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이 2019년 3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예방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총선 참패 이후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한 가운데 전광훈이 정부의 집회금지를 어기고 연 8.15 집회에서 대량으로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미래통합당에도 불똥이 튀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랴부랴 “전광훈 목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또 함께 한 적도 없다”라며 선 긋기에 나섰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소위 사회에서 극우라고 하는 분들, 당은 저희와 다르다”라며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같은 보수 계열 아니냐?’ 이렇게 뭉뚱그려서 보는 경향이 있다”라며 전광훈과 자신들은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광훈 교회 예배 통해
“이재명이 되면 대한민국 망한다”며
22대 대선서 윤석열 노골적 지지


이후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엔 전광훈과 관련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관계를 쉽게 끊어내기 힘들었다. 22대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전광훈과 밀착했다. 전광훈이 오래전부터 윤석열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전광훈은 윤석열이 검찰총장 시절 자신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하자 “하나님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내려줬다”며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 내려준 사람이다. 절대 기죽지 말라. 문재인을 현장 체포하라”라고 응원한 바 있다.

윤석열이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전광훈의 윤석열 지지발언은 더욱 화끈해졌다. 전광훈은 2021년 12월 5일 사랑제일교회 예배 시간에 “이재명이라도 덜컥 되어버리면 대한민국 망해 버리잖아”라고 발언했고, 2020년 1월 2일엔 “왜 윤석열을 대통령 세우려고 합니까. 윤석열을 통하여 정권교체 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 있으면 가져와 봐”라고 발언했다.

노골적인 윤석열 지지운동을 펼친 전광훈은 국민의힘과 조금씩 밀착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 국민의힘은 전광훈을 경계했다. 선거 때는 극우개신교 표심 결집을 위해 전광훈을 가까이 했지만,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김재원 최고위원, 전광훈 교회 예배서
5.18 헌법 수록 반대 발언 등으로 징계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광훈의 영향력


전광훈과의 관계를 두고 국민의힘의 고민이 계속되던 2023년 3월 김재원 최고위원이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수록에 반대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연이어 한 보수단체 강연에서도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 했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김재원 최고위원을 징계했다. 과거 거리투쟁에 함께했던 황교안까지 전광훈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황교안은 2023년 3월 인터뷰를 통해 과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시절 전광훈으로부터 공천 청탁이 있었음을 언급하며, 전광훈 추천으로 입당한 이들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국힘이 전광훈과 손절에 그토록 애를 썼다는 것은 전광훈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광훈의 추천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한 당원들도 많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극우성향 당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었다. 각종 극우 발언과 전광훈과 관계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을 보면 전광훈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여러 논란에도 김재원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1·2·3기 지도부 선거에서 모두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3연속 최고위원으로 뽑힌 건 김재원이 유일하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국민의힘은 전광훈과 관계를 끊겠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지만, 완전히 끊어내긴 힘들었다.

전광훈은 2024년에도 자유통일당을 만들어 극우개신교 세력의 원내진출을 노렸다. 여전히 당헌에 기독교 정당임을 밝혔지만, 예전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옅어졌다. 보수 성향의 목사들 위주에서 불교 신자로 알려진 황보승희 의원과 권투선수 홍수환, 탤런트 임동진을 입당시키는 등 나름대로 외연도 넓혔다. 보수세력 사이에서 인기를 끈 영화 ‘건국전쟁’의 후광을 얻기 위해 이승만을 부각시키는 선거 전략도 펼쳤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자유통일당은 비례대표 지지율 4.2%를 기록하는 등 기대감이 컸다.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사랑제일교회 주최로 열린 성탄 축하 예배에서 전광훈이 연설하고 있다. 2024.12.25. ⓒ뉴시스

하지만, 국민의힘과의 관계에선 불협화음이 일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과거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는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아 도태우 변호사의 대구 중남을 공천을 취소하는 등 선거를 앞두고 극우적 모습으로 비치는 걸 경계했다. 이런 행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피아를 구분 못 하는 한동훈 위원장은 즉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대통령 윤석열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당내 인사들의 극우적 행보를 경계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고, 원내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전광훈의 자유통일당도 2.26%를 득표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2024년 총선 참패 뒤
윤석열-국민의힘-전광훈이 찾은 접점
부정선거, 중국, 북한, 반국가세력
그렇게 극우세력 우두머리된 전광훈


국민의힘과 자유통일당 모두에게 처참한 성적표를 남긴 22대 총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리고 전광훈이 다시 접점을 찾는 계기가 됐다. 그 접점은 바로 ‘부정선거’, ‘중국’, ‘북한’, ‘반국가세력’이었다.

윤석열은 총선 참패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았다. 중국과 북한이 국내 반국가세력과 연계해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장악해 일으킨 부정선거를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반중국 정서는 이런 주장이 퍼지는 데 한몫했다. 전광훈도 마찬가지였다. 자유통일당의 원내진출이 실패한 것이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달랬다.

윤석열과 전광훈 모두 2020년 총선 이후 부정선거 주장을 접하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의혹 제기 수준에 그쳤던 부정선거 음모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화됐다. 22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윤석열이 부정선거가 비상계엄의 주요 배경이라고 밝히면서 부정선거 주장이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전광훈 중심의 극우개신교 세력이 윤석열 옹호 집회에 대거 결합하면서 윤석열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렇게 전광훈의 존재감이 커지자, 국민의힘은 또다시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있던 부정선거 주장에 휩쓸렸다. 법원에 폭도들이 난입해도 이를 옹호했다. 국민의힘이 극우세력의 뒷배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전광훈과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의 행보와 언어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전광훈은 ‘국민 저항권’ 운운하며 극단적 행동에 나서는 극우 세력에게 그럴싸한 명분까지 심어주며 강력한 배후가 되었다.

전광훈이 국민의힘과 윤석열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져만 갔다. 전광훈의 한마디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좌지우지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전광훈은 이렇게 극우 권력의 사실상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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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또 다시 '메신저'를 공격하고 있다. 이번 표적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다.

27일자 이 신문은 <尹 탄핵소추에 결정타 날리고는… 말 달라지는 '국정원 넘버2'>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이 야당의 공세에 맞춰 '윤 대통령의 체포지시'에 관한 발언을 조금씩 바꿨다고 보도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6일 한겨레 인터뷰에선 "대통령에게 한동훈 대표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가 12월 7일 KBS 인터뷰에선 "대통령이 저에게 직접 한동훈 대표를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고, (체포) 명단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밝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또 홍 전 차장이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윤 대통령의 체포 지시를 보고했다가 묵살당한 상황을 두고도 말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선 "조 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에서 "(내가) 목소리를 높였더니 조 원장이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렸다"로, 지난 22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오전회의에선 "정무직 회의가 열리는데 어떻게 말씀 안 드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정무직 회의 때는 (정치인 체포 지시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 정무직 회의가 끝나고 보고했다"로 말이 바꿨다는 것이다.

'단독' 제목 바꿨지만… 홍장원 진술은 일관

조선일보 페이스북이 12월 6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 대통령 체포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의 자사 단독보도를 홍보하는 게시물. ⓒ 조선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그런데 홍 전 차장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최초 보도한 곳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22일 국회에서 "홍 차장이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제가 12월 3일 밤에 들었던 얘기는 '대통령이 전화하셨다.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셨다' 보고했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대통령 지시로 보고한 게 없다"며 "12월 6일날 오전에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홍장원 차장을 소스로 해서 보도가 났다"고 말했다. 네이버 검색 기준, 12월 6일 오전 10시 44분에 나온 <[단독] "尹,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 한동훈 체포 지시… 거부하자 경질"> 기사 얘기였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인사의 체포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한 자사 기사의 제목을 '홍장원 전 차장이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로 변경했다. 화면은 네이버에서 확인한 해당 기사. ⓒ 네이버 갈무리

이 기사는 현재 <국정원장 "1차장 '이재명에 상황 설명하자' 제안… 정치 중립 어긋나 인사 조치"란 제목이 달려 있다. 수정 시각은 12월 6일 오후 11시 6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X(옛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 등에는 해당 기사를 소개하는 게시물이 여전히 존재한다. 매체 스스로 단독보도라고 했던 기사를 사실상 오보 취급하는 셈이다. 또한 홍 전 차장 진술은 큰 틀에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매우 상세하다. 다음은 국회 회의록시스템에서 확인한 홍 전 차장의 '윤 대통령 체포 지시' 관련 발언이다.

홍장원 전 차장 : (12월 3일 오후) 8시 22분에 통화를 한 이후에 대통령께서 대기하라고 한 말씀이 있으셨기 때문에 국정원 청사로 돌아가서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중에 10시 23분에 비상계엄이 일어난 부분을 TV로 보고 그 이후에 한 30분 정도가 지난 10시 53분 정도에 대통령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비상계엄을 발표한 사실을 확인했는가 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아까 윤건영 위원님께서 질문했던 내용과 동일합니다. 중요한 요지는 방첩사령부를 적극 지원하라는 부분이 요지셨습니다.

전화를 받으니까 비상계엄 발표하는 걸 확인했냐라고 물으셨고 그다음에 조금 강한 어투라서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하여튼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목적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를 그렇게 해야 되는지까지는 잘 몰랐고 그렇다고 대통령께 누구를 체포하라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여쭤보기도 뭐해서 잠깐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께서도 약간 말씀에 포즈(pause)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주시겠다는 건지 아니면 향후에 주시겠다는 건지는 말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이번에는 일단 방첩사를 적극 지원해라.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 무조건 지원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10시 53분에 대통령님 전화가 끝나자마자 대통령께서 지시하신 부분이 방첩사를 지원해라라는 부분의 지시였기 때문에 이어서 바로, 기억하기로는 11시 6분에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머뭇머뭇해서 제가 '어떻게 된 거야?'라고 얘기했더니 계속 이야기를 안 하길래 'V께서 전화하셨어. 대통령께서 너희들을 도와주래'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이후에 아마 정보위에서 말씀하신 그 관련된 내용들을 저한테 얘기했던 겁니다.

김병주 의원 : 그러니까 여러 명 정치인 체포해라, 이재명……

홍장원 전 차장 :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중간에 일일이 세지도 않았고 당시 밤중에 전화로 메모지에 막 메모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14명 정도로 기억합니다.

홍 전 차장은 오히려 조 원장이 계엄 당시 비상국무회의에 다녀온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12월 3일 밤 조 원장을 찾아가) '대통령께서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합니다'라고 하니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조금 놀라시라고 '그런데 방첩사에서 지금 이재명하고 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답니다'하니까 다소 의외의 답을 받았다. '내일 아침에 얘기하시죠'라고 말씀하셨고, 제가 그래서 '원장님, 그대로 최소한의 업무 방향이나 지침은 주셔야죠' 했더니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서 가버리셨다"라며 '보고 묵살' 상황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내란 혐의 흔들렸다?' 비상계엄 위헌성은 명백

그런데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 구속 기소 다음날인 27일 전면적으로 윤 대통령 수사와 탄핵심판 등을 '논란'으로 만들며 사실상 그를 비호하고 있다. <국회 마비·정치인 체포… 尹의 핵심 내란 혐의, 탄핵심판서 흔들려>라는 기사의 경우 제목만 보면 마치 큰일 난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홍장원 전 차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부인했다는 내용일 뿐이다. 이 신문은 또 검찰의 구속 기소를 문제 삼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에 맡겨야 했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평가를 다뤘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복원과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속내가 담긴 보도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 사실은 홍 전 차장의 진술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홍장원 흠집내기'로 국회 탄핵 소추의 정당성을 흔들려고 하지만, 성공하기 힘든 작전이다. 12.3 내란사태는 온 국민이 목격자다. '국헌문란'의 목적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지시'에서만 확인되지 않는다.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란 차원에서 질서유지, 상징성 측면에서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고 인정한 윤 대통령 본인의 말이 뒷받침한다. 선관위 군 투입 지시 또한 부인하지 않으며 "(부정선거 의혹의)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던 해명 또한 마찬가지다.

헌법학자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일 토론회에서 "계엄의 본질은 한시적인 군정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헌법은 정상적인 헌정상황을 중단시키고서 군정통치가 행해지는 계엄의 중대성과 그 오·남용 위험성을 고려하여 여느 국가긴급권과는 달리 발동요건, 이른바 '준법요건'을 추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 역시 "12.3 사태의 경우 담화와 포고령, 그 실행행위를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꾀한 것임이 명백하다"며 "이미 집권자의 자기쿠데타(Self-Coup)의 가장 최신 사례로 학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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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회에 군을 투입한 데다 포고령 1호로 국회 활동을 전면 금지한 대목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조선일보조차 지난해 12월 6일 <헌법학자들 "野 견제 위한 계엄 헌법 어디에도 그런 내용 없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이 기사에선 이후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된 배보윤 변호사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감사원장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탄핵대상이 되는 상황은 국가 기능의 마비 상태인 것은 명백하다"면서도 "계엄은 속성상 국회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평가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상계엄 선포 당일 당 대표 명의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기자들에게 직접 "국민과 함께 잘못된 계엄 선포를 반드시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국민들은 안심해달라. 반드시 저희가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조선일보는 <홍장원, 尹대통령 탄핵소추에 영향 미쳤나>란 기사에서 홍 전 차장의 '제보'가 한 전 대표가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게끔 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 자체는 처음부터 명백했다.

홍장원 죽이기, '정의실현·불편부당'에 부합할까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는 조선일보의 나쁜 습관은 오래 됐다. 이 신문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에는 이 사건 제보자인 전직 국정원을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가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고비마다 '메신저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내란 사태에서도 역할은 변함없다.

조선일보는 최근 '법은 왜 짓밟혔나'라는 기획을 진행하며 '입법부의 위인설법'과 '여론에 휘둘리는 판사' 등을 다루며 '국회와 법원이 법을 짓밟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회와 법원도 잘못했으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수사기관의 난맥상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법을 잔인하게 짓밟은 자는 누구인가. 바로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리고 헌법을 짓밟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이 社是(사시)라는 매체는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양비론'으로도 부족해 '홍장원 죽이기'는 아니지 않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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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윤석열#홍장원#내란#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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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내란계엄의 경제적 충격

 

기자명

  •  김장호 기자
  •  
  •  승인 2025.01.27 11:09
  •  
  •  댓글 0
 
 

2025년 한국경제가 위험하다 (1)

2025년 한국경제가 위험하다.
(1) 내란 계엄의 경제적 충격
(2) 트럼프 리스크 현실화
(3) 악화일로의 한국경제

내란계엄 상태가 빚어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한국경제와 민생이 더욱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과 압박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2025년 한국경제와 민생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주가폭락

비상계엄 직후 지난 12월 3일부터 12월 9일까지 한국 증시의 시가 총액 144조원이 증발했다. 현대자동차(42조 원) 같은 대기업이 3개 이상 사라진 셈이다. 시총이 비상계엄 직전의 2390조원에서 2246조원으로 폭락한 것인데, 코스피 시가총액은 2046조원에서 1933조원으로 113조원, 코스닥 시가총액은 344조원에서 313조원으로 31조원 줄었다. 12월 4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투자자는 국내 상장주 약 9630억어치를 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는 패닉셀에 빠져 약 2조526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윤석열 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극복한다면서 크게 주창한 것이 밸류업 프로그램인데, 오히려 외국인과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를 떠나고 있다. 가상화폐도 급락했다. 계엄령 선포 직후 비트코인은 33.4% 급락했고, 리플은 56.7%, 이더리움은 38.2%가 빠졌다. 글로벌 코인 가격과 정반대현상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석열을 ‘대한민국 GDP(국내총생산) 킬러’라고 칭하며, 스스로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비상계엄으로 발생한 경제적 부담을 “5100만 한국민들이 남은 기간 동안 할부로 갚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율폭등

비상계엄으로 원화가치 역시 폭락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계엄직전 1403원에서 1,436원으로 급상승했고, 12월 4일에는 1,450원까지 치솟았다가 12월 26일 급기야 1,464원을 기록했다(표2). 결국 원/달러환율이 1460원선을 넘었는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5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머지 않아 1,500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도 나온다. 환율폭등은 사실상 경제위기 수준으로 다가가면서 경제계에 신음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고 내수 제조업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하고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원화폭락을 막지 못했다.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와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 회사채 CP매입 프로그램을 즉시 가동하고, 외화 RP 매입과 환율 안정화 조치를 강화했으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환율방어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환율방어에 실패하면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소진되어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얼어붙은 실물경제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연말 특수가 크게 위축되어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실시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상공인 경기전망 긴급 실태조사'에서 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88.4%에 달했다. 사업체의 매출이 50% 이상 감소한 곳은 36%였고, 30~50% 감소 25.5%, 10~30% 감소 21.7%, 10% 미만 감소가 5.2% 순이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업장 방문 고객이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은 89.2%였다. 지난 16일 발표한 소상공인·자영업자 긴급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단체 예약 취소 등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46.9%였다.

중소기업중앙회의 513개 수출기업 조사 결과, 26.3%가 비상계엄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고, 63.5%는 향후 피해 가능성을 우려했다. 주요 피해 유형은 계약 지연·취소(47.4%), 해외 바이어 문의 증가(23.7%), 수발주 지연·취소(23.0%), 고환율 문제(22.2%) 순이었다. 해외 투자자들과 논의 중이던 투자 계약 역시 중단되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일부 스타트업들은 해외로 본사 이전을 검토하는 등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윤석열 자신이 공을 들여온 '대왕고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같은 국가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고, 체코 신규 원전 수출 사업 동력이 약화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의 출범이 무기한 연기되고, 고환율로 인한 원료의약품 수급의 차질이 우려된다.

불확실성의 위험 확산

2006년, 2016년 탄핵정국 당시에는 한국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탄핵정국에는 경제상태가 매우 안 좋은 조건에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의 시간끌기와 버티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계엄 이후의 경제적 충격을 수습하지 못하고, 경제와 민생위기가 날로 가중되고 있다. 경제성장 둔화, 금융시장 불안, 외국인 투자 감소, 소비심리 위축, 기업투자 위축,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험, 민생경제 악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가 확대재생산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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