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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통일' 타령으로 남북합의 팽개치나?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 로켓, 언제든 쏠 수 있는 카드
이재호 기자 2015.10.08 06:33:30
 
 
오는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외에 남북 간 별다른 교류나 대화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북한 입장에서 이를 흡수통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른바 '통일 외교'는 유엔총회에서도 이어졌다. 통일을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협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떠올리는 발언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당국회담을 열기 힘들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중국은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도 사실상 연기 또는 취소되는 분위기다. 

정 전 장관은 현 상황에 대해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라며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튀어 나올 수 있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다. 정 전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발언이 나오고 이후 후속 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오는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남북관계 진전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끌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외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8.25 합의 이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최소 한 달 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9월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는 '접촉'이지,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드는 '회담'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신호를 보냈는데 북한이 응답이 없는 것인지,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설사 우리 쪽에서 제안을 했더라도 북한이 받기가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대북 전단 살포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대화 재개와 관련해 북한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자세로 전단 살포는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라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면 대화가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입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북한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흡수통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9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북핵과 인권문제, 도발과 같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한반도 통일이고,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메시지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이미 흡수통일 논의를 했는데, 오는 10월에 미국하고도 할 생각인가 보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정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박 대통령과 '조속한 시일 내에' 통일에 대해 논의하자고 말했을까요? 

황재옥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조선 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라고만 표현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논의하자고 했는데 중국이 면전에서 거부하지 않으니까 중국과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외교부에 올라온 공식 문구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의미입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 관계는 상당히 경직돼있습니다. 내년 정상회담을 점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조속히 평화통일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예전부터 동일합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건데요. '자주적'이라는 말은 미국을 등에 업고 통일하지 말라는 겁니다. '평화적'이라는 말은 무력을 쓰지 말고 남북이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무력을 쓰지 말라는 것은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통일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겁니다. 그만큼 통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박 대통령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8.25 합의 이후 박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 외교'에 꽂혀있는 것 같습니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 외교인데요. 계속 이런 식이면 북한은 당국 회담을 받지 않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일 문제는 많이 거론하지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박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북한이 경제를 개발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70차 유엔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이어 집권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꺼내 들며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대북 정책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북한도 나름의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유엔 총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핵·개방·3000'과 유사한 발언을 했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저런 정권과 만나서 뭐하냐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달성해야만 국제사회와 손잡고 북한과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그전에는 남북 경협 확대도 없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밝혔으니, 북한에서는 우리한테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세현 : 한편으로는 북한은 남한 정부가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민감합니다. 과거 장관급 회담에 대해서도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 많았습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남한이 유도·권고·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회담이 있었는데, 수행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면서 노 대통령은 "보따리 싸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정이 하루가 남은 상황이라 판을 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개혁개방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거냐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아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쪽에서 개혁개방을 너무 강조한다, 기분 나쁘다 이런 불만을 제기한 것 같았습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런 말도 못 쓰면서 어떻게 대북 정책을 할 수 있겠냐며, 살짝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고도의 협상 전술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판이 깨질 수도 있으니 김정일 위원장이 좀 살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김 위원장의 귀에 들어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든 것이죠. 실제로 그날 오후 회담은 상당히 잘됐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남한 당국자들이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발언을 박 대통령이, 그것도 유엔 총회에가서 이야기했으니 북한은 엄청 기분 나쁠 겁니다. 

북한, 장거리 로켓 언제 쏘나 

프레시안 : 8.25 합의 이후 한반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 전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10일 전에 발사하는 것은 어려워졌는데요. 중국이 공산당 서열 5위의 고위 인사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결정한 것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재옥 :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정세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를 두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벌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중국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막기 위해 강한 경고를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뒤로는 북한을 달랬을 겁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북핵 불용'이라는 표현을 빼고 '한반도 비핵화'만 넣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 때와는 다소 다른 입장입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면서 북한에 "너희들 체면 봐준 거니까 핵 이나 미사일 실험 하지 마"라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로 북한의 비핵화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주변에서 주한미군 함정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도 한반도 내로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중이 합의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이 류윈산 상무위원 파견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사실상 지연 내지 무산시킨 셈인데요. 8.25 합의 이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중국이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그렇긴 하지만 중국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한국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중국이 북한의 도발이나 위협을 자제시켜주는 건설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아시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가 더 큽니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구실로 북한 문제가 계속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는 남사군도 문제도 있습니다. 중국이 암초 위에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더 기지까지 설치하면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미국 비행기나 선박의 움직임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자기들을 압박할 수 있는 구실을 줄여가기 위한 차원에서 북한의 행동을 자제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럼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포기한 건가요? 

정세현 :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급하게 하지 않은 데는 중국의 체면을 생각하는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과 오바마가 만나 북한에 군사적 도발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보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켓을 쏜다는 것은 중국의 입장을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이 중국에 "한-미 정상회담에 이 정도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 발언이 나오면 분명히 쏠 겁니다. 또 이후 후속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북한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미국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고 나올 때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핵 문제의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수정해 달라고 유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선행동에서 미국의 선행동으로, 중국 역할론에서 한국 역할론으로 북핵의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물론 남북 당국회담이 당국회담 성사되고 다음번 만날 날짜까지 잡은 상태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시동을 걸어보자는 이야기를 미국에 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다고 해서 미국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우리가 남북 당국회담을 복원에서 동북아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일익을 담당할테니, 미국도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특히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흘려듣지 말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 못 해서 그렇지, 그 안에 미국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리수용 외무상은 당시 연설에서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핵화의 다른 표현입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즉, 북한이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들도 비핵화의 용의가 있고 협상이 준비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북한 입장에서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살짝 운을 띄우는 식으로 말한 겁니다. 협상이 준비됐다는 이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서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 됐습니다. 류윈산 상무위원 방북으로 북한의 로켓 발사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에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6자회담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자세로 나오라고 설득하고 유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미국 측에서 생각하는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주요한 논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우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사드에 공을 들인 게 많습니다. 원래 이번 정상회담이 지난 6월 계획돼있었는데 당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미뤄진 것 아닙니까?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보다 분명하고 노골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꺼내 들 것입니다. 

 

▲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회담을 하면 서로 받아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쪽에서 줘야 할 것도 있구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회담이고 협상인데 미국은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의해주는 것만큼 큰 이득이 없습니다. 이것은 불편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문제와도 관련돼 있습니다. 

미국은 11월 초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예정돼있는데 그 때 한-일 정상회담도 열어서 한-일 관계를 잘 풀어달라, 미-일 동맹은 튼튼한데 한-일 관계가 나쁘니까 한-미 동맹이 힘을 못 쓰고 있지 않느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미-일 3각 편대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당장 발표는 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무리를 짓자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합의만 해두고 다음 정권에서 사드 배치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는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말려 들어가면 향후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청도, 미국과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었다는 이른바 '3NO' 전략을 구사하면서 시간을 끌었는데요. 이번에는 한-미 동맹 강화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끝내고, 사드 배치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강조해서 정확하게 마무리를 짓고 오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전격 체결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TPP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정세현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애매모호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TPP가 경제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것인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버리면 사드 배치 못지않게 중국에 타격이 됩니다. 사드는 안보·군사적 측면, TPP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건데, 여기에 우리가 참여하면 우리 국익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서둘러 가입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경련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으로부터 받게 될 경제적 보복 때문에 배치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TPP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6월 중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지난 7~8년 동안 중국이 세계 경제를 끌고 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다시 부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인데요. 이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경제계의 요구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물론 중국 경제가 가라앉고 상대적으로 미국이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 현상이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이 6%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성장 동력이 별로 없습니다. 무기 산업 말고 어떤 동력이 있습니까? 

TPP에 들어가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만 보고 쫓아가다가 중국을 섭섭하게 해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혜택보다 먼저 올 수도 있습니다. 큰 틀의 전략을 세워놓고 상황에 맞춰 전술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중국의 입장도 지원했다가 미국 입장도 거들어주는 식으로 가야지, 지금 당장 급하게 TPP 가입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히 당당했고 시진핑 주석은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국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정세현 : 저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무승부라고 봅니다. 아무것도 합의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 관련해서 2017년 기후변화협약에 중국도 참여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미국도 참여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 부분보다는 남사군도 문제를 거론했을 때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대목이 주목됩니다. 중국이 작심하고 남사군도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양국이 전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중이 대립하는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 것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리의 고민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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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치산 중심의 당 영도체계확립자들


<특집②>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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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7  22: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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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북한의 당 70년 역사 동안 수많은 인물이 등장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조선노동당의 인물을 살펴보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정책방향을 이해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 등장과 함께 이들을 중심으로 당 핵심일꾼들이 이끌어왔고, 김정은 시대 들어 40~50대 전문일꾼들이 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아우르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핵심인물들은 누구인가. 당의 핵심세력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 비서들의 면면을 중심으로 당 70년을 살펴보자.

김일성 시대(1945~1994), 항일빨치산 세대 포진

김일성 시대 당.국가건설 초기에는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연합을 이뤘다. 하지만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해 나가면서 당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김일성이 당 창건의 초석을 다지는데 함께한 이들은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맞이하지 못했다.

이들을 두고 김일성은 "혁명은 동지들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한 명 한 명의 동지들은 모두가 억만금을 주고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사람들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해방 후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은 1946년 8월 제1차 당 대회를 거쳐 연안파, 갑산파 등으로 일컫는 파벌 경쟁을 거쳐 1970년 제5차 당 대회에 이르기까지 항일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을 강화하는 핵심세력으로 활동했다.

46년 제1차 당 대회 당시는 당과 국가건설이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에서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함께했다. 이를 반영하듯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김두봉, 김일성, 주녕하, 최창익, 허가이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당 중앙위원 파별간 비율은 항일빨치산 20%, 연안파 35%, 소련파 25% 등으로 정치위원도 비슷한 구도였다.

48년 제2차 당 대회도 기존 정치위원에서 김책, 박일우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 또한, 사회주의 당.국가체제를 세우기 위한 파벌연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6년 제3차 당 대회부터 양상이 달라진다. 당 정치국 정치위원에 김일성이 김두봉보다 앞서고, 박정애, 박금철, 김일, 림해, 정일룡, 김광협, 남일 등이 새로 선출되면서 항일빨치산 세력의 포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61년 제4차 당 대회에서 소련파, 연안파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갑산파가 제2의 세력이 됐다.

1953년 8월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로당파 박헌영, 리승엽, 소련파 허가이, 연안파 무정 등이 숙청되고,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연안파 최창익, 윤공흠, 소련파 박창옥, 국내파 오기섭이 숙청됐다.

이는 당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의 분포와도 유사하다. 48년 제2차 당 대회 당시 조직위원은 김일성, 허가이, 김열, 박창옥, 박영성이었던 데 반해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설치된 비서국에서는 김일성이 총비서로, 최용건, 김일, 박금철, 리효순, 김광협, 석산, 허봉학, 김영주, 박용국, 김도만 등이 당 비서로 항일빨치산과 갑산파가 절 반씩 차지했다.

   
▲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 확립을 함께 한 항일 빨치산 1세대들. 김일, 최용건, 최현, 김책(왼쪽부터).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1967년 5월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리효순 등 갑산파와 1969년 1월 군당 제4기 4차 전원회의에서 김창봉, 허봉학, 김광협 등 일부 항일빨치산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다. 이는 김일성의 단일지배체계에서 유일지배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이질적 요소를 제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일성의 당'으로 자리매김한 1970년 조선노동당은 제5차 당 대회를 거쳐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 이르는 동안 당의 핵심은 항일빨치산 1세대였다. 그러나 김정일 후계구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과 함께 일한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일꾼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80년 제6차 당 대회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에는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리종옥 등이 이름을 올렸고, 김정일, 김중린, 김영남, 김환, 연형묵, 윤기복, 홍시학, 황장엽, 박수동 등이 당 비서가 됐다.

또한, 제6차 당 대회부터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의 경우, 80년 당시에는 오진우, 김정일, 최현, 오백룡, 전문섭, 오극렬, 백학림, 김철만, 김강환, 태병렬, 리을설, 주도일, 리두익, 조명록, 김일철, 최상욱, 리봉원, 오룡방 등이 선출됐다.

즉, 김정일 후계구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일 빨치산 1세대를 우대하고 김정일로 대표되는 2세대와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한 김정일 측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김일성 시대는 다양한 인물들이 뜨고 진 시기이고 항일빨치산 동료들도 많아 집어낼 수없지만 사망할 때까지 김일성의 측근으로 자리한 김일과 최용건, 최현 등을 꼽을 수있다.

김일은 본명이 박덕산으로 '오직 김일성밖에 모른다'는 뜻으로 김일성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1936년 곰의골밀영에서 김일성과 처음 만났으며, 해방후 1946년부터 민족보위성 부상, 내무성 정치국장을, 1959년 내각 제1부수상, 1972년 정무원 총리, 1976년 제1부주석, 1953년부터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다 1984년 3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용건은 1941년 항일연합군지휘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을 만난 뒤 1948년 민족보위상, 1972년부터 부주석, 1966년부터 당 비서로 일했으며 1976년 9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현은 1907년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나 무장투쟁에 참가했으며, 한국전쟁시기 제2군단장을 지냈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 당 비서 겸 민족보위상,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1982년 사망했다. 최룡해 당 비서의 부친이다.

김책은 1927년부터 항일혁명에 참가해 1932년 유격대에 입대, 초대 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 전선사령관 등을 지냈지만 1951년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이 그의 아들이다.

 

   
▲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된1980년 10월 열린 제6차 당 대회. 오진우(맨 오른쪽)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1994~2011), 후계구도 확립자들

김정일 시대 조선노동당의 핵심을 이룬 인물들은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선군정치를 핵심으로 내세운 김정일 시대는 당 대표자회가 30년만에 열렸을 뿐, 공식적인 당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당 인사변동 보다는 오히려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누가 더 많이 동행했는가를 두고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

김정일 시대 현지지도 동행자 횟수로 보면 현철해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677회로 가장 많고, 이어 김기남 당 비서(616회),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위원(510회), 리명수 당 정치국 위원(486회), 박재경 당 중앙위원회 위원(456회) 순이다.

하지만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일과 함께 오진우가 1995년 사망할 때까지 항일빨치산 1세대로 당의 중심을 잡았다. 오진우는 1968년 당 비서에 이어 제6차 당 대회 이후 줄곧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북한에서 몇 안되는 원수칭호를 받았다.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80년 제6차 당 대회부터 줄곧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2010년 사망 전까지 김정일의 후계구도를 지켜왔다.

그러나 공식적 서열과 상관 없이 김정일 여동생인 김경희와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지근거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대남분야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최측근으로 활약했지만 일찍 사망했다.

   
▲ 김정일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들. [자료정리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열린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당을 정비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오진우 사후 인선되지 않던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리영호가 선출됐다. 그리고 당 비서로 기존 김기남, 최태복 외에 최룡해, 문경덕, 박도춘, 김영일, 김양건, 김평해, 태종수, 홍석형 등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신설되면서 김정은이 처음 등장해 리영호와 함께 선출됐고, 위원으로 김영춘, 김정각, 김명국, 김경옥, 김원홍, 정명도, 리병철, 최부일, 김영철, 윤정린, 주규창, 우동측, 최룡해, 장성택이 올랐다.

즉, 제3차 당대표자회 이전까지 오진우, 조명록으로 대표되는 항일 빨치산 1세대들을 중심에 놓고 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포진됐다면, 그 이후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발판을 놓은 셈이다.

   
▲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고위간부들, 당대표자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2011~현재), 노.장.청 배합을 통한 신진세력의 등장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후계구도의 발판을 마련한 김정은 시대의 당 인물들은 노.장.청 배합으로 풀이된다. 즉,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항일빨치산 2세대 원로그룹을 존중하고 실질적으로 당을 이끄는 전문가 집단인 장.청 인사들을 신진세력으로 포진시킨 것이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김영남, 최영림, 최룡해, 리영호가, 당 비서로 김경희,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김양건, 김영일, 태종수, 김평해, 문경덕, 곽범기 등이 선출됐다. 사망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남고 김정은은 제1비서에 올랐다.

하지만 2013년 12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로 장성택이 숙청되고 관련자들이 축출되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에 확고한 인물들이 당을 구성한다.

   
▲ 김정은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 [자료정리 - 통일뉴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와 함께 걷던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리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 중 현재 김기남, 최태복, 김정각을 제외하고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고 오수용이 당 비서에 오르는 등 끊임없이 김정은 체제 공고화가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인물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 당 정치국은 상무위원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 위원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후보위원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이다. 당 비서는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범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다.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와 이른바 측근정치가 주효해 현지지도 수행횟수와 당비서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당 공식회의 체제가 작동해 당 정치국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과 비중이 더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 곽범기, 로두철 등 경제 전문가들이 중용되고, 황병서, 최룡해 등 비 군부 출신이 군 총정치국장을 맡은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정일 시대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선군정치'를 앞세운데 비해 김정은 시대는 당과 내각을 정상화 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리영호 총정치국장의 숙청과 잦은 인민무력부장 교체 등 군인사는 선군정치 시기를 거치면서 과도하게 집중된 군부의 힘을 덜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비 군부 출신 총정치국장의 임명은 군에 대한 당적 지도의 관철 의지로 읽힌다.

황병서, 최룡해를 양두체제로 삼아 권력 편중 현상을 막은 점과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일선에 나선 점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대남비서인 김양건이 김정은 측근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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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식 메카시즘, 국민 절반이 공산주의자?

 
 
야당 전투력의 현주소, 고영주 처리 결과 보면 안다.
 
임두만 | 2015-10-08 08:29: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나라 전체가 목하 해방 후 좌우갈등 시기와 같아지는 것 같다. 이는 친일파가 친일파로 단죄 될 위험을 느끼자 미군정에 협조하는 방법으로 생존, 자신들을 단죄하려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좌우 갈등을 일으키고 살아남아 기득권이 된 것과 유사하다.

▲공산주의자 발언 파문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팩트티비 화면 캡쳐)

박정희 전두환 정권 부역자들은 1987년 민중항쟁 후 군부독재 정권이 단죄되면서 설 자리가 없었다. 특히 김영삼 정권 당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사법적 단죄를 받은데다 이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설 정도로 국민적 감정은 좌우대립이란 이념전쟁에서 해방되어 갔다. 사회의 이 같은 변혁은 그러나 친일파 후예임을 감추기 위해 보수우파로 위장한 이들에겐 불편한 변혁이었다. 이념 전쟁이라야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새로운 이념무장을 시도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이다. 이 뉴라이트 운동은 기존 독재정권 부역자들이 뒤로 빠지고 새로운 얼굴들로 바꿔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는 친일파들의 논리나 이념을 다시 세팅한 것이었다.

이후 이렇게 세팅된 조직을 키운 이들이 이명박을 앞세워 정권을 잡는다. 그리고 앞서 기득권을 누렸던 친일파이면서 우파 탈을 쓴 이들이 다시 나서면서 노골적 이념전쟁 판으로 만들어 간다. 일베현상도 이 현상이며 이들의 숙주가 바로 고영주 같은 지식인 그룹이다.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이들은 정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무기가 이념전쟁임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이들에게 좋은 숙주다. 북한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로 남쪽의 반북정서 확산이 정권유지에 가장 좋다. 전쟁위협을 통한 국민일체화 현상은 통치그룹이 피통치자들을 제압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라서다.

박근혜 정권 들어 이들은 더 기승을 부린다. 고영주 관련 기사의 포털 댓글들이 이를 증명한다. 백색 테러에 동원해도 될 만한 포털의 뉴스 댓글러들, 이들은 홍위병 그룹이다. 친노 홍위병 그룹은 숫자로 뭉친 세력 싸움에서 이들과 게임이 안 된다. 이미 일베 등에서 양성된 이들 홍위병들은 친노 홍위병들을 포털에서 제압한지 오래다. 따라서 변희재 정미홍 강용석 등 일베 여론 주도층은 이 현상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영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포털의 영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7일 오전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해임촉구결의안을 낸다는 목표로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또 의총 후 고영주가 해임 때까지 당 차원의 규탄대회 등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새정연으로서는 이 싸움이 물러날 수 없는 한판이기 때문이다.

▲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긴급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고영주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고영주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발언에서 물러나기는커녕,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문재인을 당 대표로 하고, 노무현을 절대존엄으로 추앙하는 야당이 이를 용납한다는 것은 곧 자신들 전부가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들을 추종하는 세력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이는 또 현 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은 전체 유권자 48.9%의 득표로 46.8%를 득표한 이회창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 5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고영주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국민 48.6%는 공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지지한 셈이 된다. 이에 그 5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노무현’이 임명한 검찰총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군기무사령관, 군정보사령관 등이 이 나라 모든 정보를 독점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었다는 것도 된다. 문재인도 지난 선거에서 48%를 득표했다. 그러나 상대였던 박근혜가 51.6%를 득표했기에 낙선했다. 노무현 득표율 48.9%와 문재인 득표율 48%의 차이는 0.9%다.

결국 고영주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유권자 48%는 ‘공산주의자’를 지지하는 유권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형된 공산주의자 노무현’을 지지한 수는 48.9%, ‘그냥 공산주의자 문재인’을 지지한 수는 48%이므로 0.9%가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우리 국민 절반에서 2%만 빼고 모두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를 추앙하는가? 이런 말을 국회에서 당당하게 하는 공공기관장을 용인하는 야당? 그렇다면 그런 야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야당후보 지지 48%를 공산주의자라는데 우린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발언만이 아니라 그동안 고영주의 행보를 보면 그는 매카시즘의 신봉자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사 사장의 임명권이 있는 공익기관 대표라면 그 기관은 공익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MBC는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란 사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공동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 국민은 노무현 문재인을 찍은 48%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들도 MBC를 통해 유익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과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는 고영주가 MBC를 감독하는 기관의 수장으로 있다면 이 방송이 이 48%까지의 유익을 위해 복무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관의 수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48%가 배제된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박근혜는 당연히 고영주를 징치해야 한다. 이게 답이다. 결국 이런 답을 얻을 수 있는 전투력을 새정치민주연합이 갖고 있느냐의 싸움, 이 싸움의 끝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느냐가 된다. 그런데 고영주가 당당하게 국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버틸 자신이 있어서다. 야당이 어떤 압력을 행사해도 박근혜가 자신을 지킬 것이라는 자신감, 이 자신감이 당당하게 노무현도 문재인도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야당의 전투력이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05년, 당시 여당 열린우리당은 ‘4대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 개폐에 정권을 걸었다. 당연히(?)한나라당은 이를 ‘4대악법’으로 부르며 저항했다. 열린우리당은 결국 국가보안법 등에는 손도 못 대고 사학법 하나만을 처리했다. 개정된 사학법의 골자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 대학평의원회 설치 의무화, 법인이사회 회의록 공개, 법인 임원의 인적사항 공개 등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학 재단들의 반대를 등에 업고 이도 받지 않았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 9일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즉각 반발한 박근혜는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앞서 국가보안법 등의 극력저항에 밀린 열린우리당이 원내과반 여당의 체면이라도 챙길 수 있는 힘을 보여준 것이 사학법 강행통과였는데 박근혜는 이것까지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2005년 서울 명동에서 열린 한나라당 장외투쟁 현장의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2005년 12월 13일, 명동에서 시작된 한나라당 장외투쟁은 이듬해 1월까지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어졌고 국회는 53일 동안 파행했다. 12월 1월의 한겨울 한파에도 거리의 한나라당은 강경했다. 모든 국회의 회무는 중단되었다. ‘민생입법’같은 말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과반 여당의 항복만이 이들을 장내로 불러 올 수 있었다. 후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이렇게 썼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망연자실했다. 사학법이 어떤 법인가? 우리 아이들의 앞날과 우리 교육의 미래가 걸려 있는 법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는 비장한 결의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땅의 부모들과 함께 사학법 반대투쟁에 나서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사학법은 우리 아이들에 관한 문제로서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나라의 근본이 달라진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여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민생을 챙기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적이 나오자 박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들어놓는 법은 절대 통과돼서는 안 되며, 법의 뿌리가 허물어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당시 장외투쟁 연설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년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온 국민에게 추위를 안겼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이었다. 편 가르기·부정부패·무능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이 정권은 봄의 새싹을 틔울 희망마저 없다. 다수 횡포로, 폭력으로 밀어붙여서 열린우리당이 날치기한 것은 우리 교육이고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헌법정신이다.”- 12월 13일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교육마저 망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 한없는 걱정으로 비통한 심정이다.” - 12월 16일

박근혜와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이듬해인 2006년 1월 30일 여야 원내대표가 북한산 산행을 하며 가진 회담과 함께 끝났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에서 산상 회담을 열고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수용하고 한나라당은 국회 등원을 약속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한 지 53일만이었다.

앞서 거론했지만, 당시 박근혜는 이회창을 지지한 46.8%의 유권자들이 국가보안법 존재를 원한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권의 국보법 폐지 또는 개정을 극력 반대하므로 국가보안법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4대개혁입법 중 마지노선으로 지키려 했던 사학법마저 후퇴하게 만들었다. 같은 맥락이라면 문재인은 자신을 지지한 48%의 유권자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를 지지한 유권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고영주 몰아내기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자신 문제가 아니라 48%의 국민 문제다.

지금 문재인은 2005년 12월 16일 박근혜가 했던 연설 그대로를 받아 되치기를 해야 한다.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교육마저 망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를 그대로 가져다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국민 절반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문재인이 앞장서서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노무현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고영주를 용납하려는 이 정권의 기도를 깨뜨려야 한다. 그래서 고영주는 물론 이념적 편가르기로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암수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교체도 총선승리도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마저도 유야무야라면 정말 이 야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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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

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새정치연합, 긴급 의총 열고 고영주 이사장 해임 촉구 결의
 

 
▲ <사진제공 = 뉴시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

진 교수는 7일 “박근혜는 1년차 국정원 대선개입, 2년차 세월호에 십상시, 3년차 메르스 사태… 경제는 바닥, 민생은 파탄”이라며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는 저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에 들어간 듯”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는 “정신병원, 아니면 반인권적 범죄자로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며 “고영주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수준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로 남을 듯”이라며 “이 중요한 10년을 저들이 하는 닭짓을 보며 고스란히 날려 보내야 하다니…”라고 탄식했다.

   
 

한편, 고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에 새정치연합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고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번에 한 발언이 실수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가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며 “그러나 어제 미방위 국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민중민주주의자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명백히 이야기하며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사상을 알고 찍었으면 이적행위 동조자”라며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 넘는 국민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동조자로 몰은 것으로 이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태”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결의문을 내고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갔던 백색 테러가 고영주 이사장의 입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며 “본인과 다른 생각을 말살시키고야 말겠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인식은 다양한 가치관의 존중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고 이사장의 즉각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등을 결의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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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 때려 부숴도 기뻐하는 사람들

 

[쿠오바디스, 전세난민②] 별이 지고 아파트도 무너진다네

15.10.07 08:14l최종 업데이트 15.10.07 08:14l

 

 

[이전 기사] 서울 '전세 1억' 아파트, 거기 제가 살았습니다 

고덕주공 입주자, 특히 3단지보다 2단지 주민에게 재건축에 따른 이주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우리 가족도 언제 이사 가야 하나 늘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날로 치솟는 서울 전셋값이 너무 야속했다. 고덕주공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심 재건축이 천천히 진행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2014년 하반기 들어서는 그다음 해 봄쯤 재건축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렸다. 우리 가족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이따금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워 근처 다른 지역 매물을 알아보았다. 경기도 하남, 송파구 석촌동을 살폈다. 아파트는 어림없었고 빌라(다세대주택)나 단독 다가구 주택 위주로 찾았다.

전세 물건이 많지 않았고 고덕주공보다 비쌌다. 석촌동 전세 빌라를 직접 보고 온 적도 있다. 고덕주공보다 덜 낡았고 직장이 있던 강남역과 가깝다는 건 나은 점이었다. 하지만 더 좁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았으며 주택가라 주차가 곤란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고덕주공 전세 보증금은 비교적 싼 편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왜 저런 집밖에 구할 수 없는 걸까'하는 무력한 의문만 들었다. 

지난 1월, 추위를 뚫고 퇴근한 어느 날이었다. 몸에 두른 모직 코트와 목도리가 무거웠다. 한 달 전부터 판교로 출근했다. 회사가 강남역에서 사옥을 옮겼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10분쯤 지하철을 타고 천호에서 내려서 6시 35분에 출근버스를 타는 나날이었다.

저녁이 되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도 지쳐갔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힘없이 열고 들어갔다. 1층 각 세대 우편함마다 꽂힌 종이봉투가 눈에 띄었다.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 보낸 이주 안내문이었다. 빠르면 3월부터,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차피 회사 사옥도 옮겼기에 출퇴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이사 가고 싶은 참이었다. 맞벌이가 아니어서 배우자의 직장 위치를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고 어렸기 때문에 전학 문제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하여 최대한 빨리, 3월이 오면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 올 사람 없는 아파트, 하루에만 화물차 10대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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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축 재건축 이주안내 현수막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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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웠다. 회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출발지로 두고 지도를 살폈다. 성남 구도심, 분당, 용인 쪽을 검색했다. 우연히 분당 동쪽 수내동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지만 주택가가 있어서 분당 다른 지역보다는 보증금이 낮을 것 같았다.

수내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중개인이 권하는 매물을 보았는데 역시 그곳에서도 '그 돈으로 왜 저런 집 밖에?'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개인은 수내동이 분당에서도 학군이 좋고 학원이 몰려서 전셋값이 비싼 곳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도 모르고 주택가랍시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중개인은 우리 가족 상황을 듣고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일대를 추천했다. 광주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광주? 그게 어디지? 게다가 읍, 리라니. 물론 호남의 광주(광역시) 말고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다는 건 알았다. 나나 아내나 지방 출신이고 경기도 권역에는 연고가 없었다. 수도권 지도를 볼 때면 동유럽 지도를 보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 이름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사무소 벽에 걸린 지도를 짚으며 설명했다. 광주 신현리는 분당 바로 동쪽에 붙은 곳이라고. 서울이나 분당보다 싸고 새로 지은 빌라가 많이 들어섰다고. 

광주에서 둘러 본 집들은 서울이나 분당과 비교하면 조건이 확실히 좋았다.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 보증금과 똑같은 값의 빌라(단독 다가구주택)를 전세로 구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가 그 세대의 첫 입주자가 될 터였다. 

30년 넘은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자 적잖이 설레기도 했다. 임대차계약을 마친 날, 아내와 나는 광주라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삶의 방향이 무작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지난 3월 첫 번째 금요일에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을 떠났다. 그 날 우리 집 말고도 열 곳 넘는 집으로 화물차량이 들어섰다. 가까이서 내가 본 것이 그만큼이었다. 같은 날 이사 간 집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으로 이사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서로 맞추어야 할 게 없어서 편했다. 재건축조합에서 알려준 대로 미리 한전, 도시가스 회사, 수도사업소에 연락했다. 전기·가스·수도를 차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계약할 때 본 집주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50대 초중반 남자인데 점잖고 친절했다. 함께 재건축조합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퇴거절차를 마쳤다. 헤어지기 직전, 그냥 떠나기도 어색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이곳에 아파트 새로 지으면 이사 와서 사시는 건가요?"

집주인 또한 가볍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 쑥스럽다는 듯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예, 그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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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삿짐 트럭 맨 앞 차가 우리 집 이사 트럭. 그 뒤로 보이는 트럭들은 각각 다른 세대의 이삿짐 차량이다.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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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가게 다시 찾았는데... 이미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떠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찾은 고덕주공 2단지 아파트. 입주자는 드문드문 남았지만 상가는 모두 다 빠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혹시 아직 남은 가게가 있다면 몇 가지 물어보려 했다. 입주민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장사는 되는지, 이제 어디로 떠날 건지.

하지만 모두 가까이 또는 멀리 가게를 옮긴다는 말을 남기고 이미 가버렸다. 물건 오천 원어치 사면 쿠폰 스티커를 한 장씩 주던 슈퍼 아주머니도, 텔레비전 채널을 KBS1에 고정해두던 약사 할아버지도, 떠나면서 화분 가져가도 된다고 써붙인 꽃집 아주머니도 지금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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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상가 문 닫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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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폐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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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안내 '점포를 급히 이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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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도 수명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위험하거나 미관을 해칠 수 있으며 살기 불편할 수 있다. 부분 개보수가 어려워 전체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철거가 더욱 나은 주택공급을 위한 후생의 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있을 한국 사회의 재건축·재개발은 안타깝고 지나친 면이 많다.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을 때려 부수는데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부동산 차익과 개발이익을 두고 벌이는 아귀다툼, 해임 재선임 고소 고발 손해배상 운운 현수막이 걸리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고 오히려 낯익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같은 독립잡지 발간 소식은 반갑고도 소중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편집장 이인규씨는 고덕주공보다 세 살 위인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묻어 버릴 풍경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사진을 싣고 글을 엮어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 뒤 추억을 지키고 싶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져 잡지 2, 3호를 냈다. 이씨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반영할 가치를 재건축참여 건축교수와 함께 고민하거나 아파트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동체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관련기사 : 재건축아파트 속 사람이야기 기록하는 아파트키드).

광주 신현리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여행스케치 1집에 실린 <별이 진다네>였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중략)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 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 만이 짙어가는데

곧 아파트가 헐린다. 내 삶의 흔적과 추억 한 부분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평생 보던 나무를 베어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아메리칸 인디언이 한 말이라고 한다(김영하 작가의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138쪽 참조).

고덕주공은 그저 오래된 부동산일 뿐일까. 같은 자리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덕주공에 살면서 사귄 이웃이 없다. 증인 삼을 사람도 없다. 나와 아내의 주민등록초본, 아들의 출생등록지가 이곳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직장, 학교, 부담스런 보증금 등 여러 사정 때문에 고덕주공 2단지를 멀리 떠나기 어려운 전·월세살이 입주민이 많았을 것이다. 3단지 2580세대도 머지않아 이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 많던 입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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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주공 3단지 표지판 내 고향은 어느 쪽인가.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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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고덕주공아파트 놀이터와 벚나무, 다시 볼 수 없을 풍경. 2014년 4월 어느 봄날에.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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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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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조홍섭 2015. 10. 07
조회수 70 추천수 0
 

산호초 물고기 먹이 사냥에 같은 종 또는 다른 종과 협동 잇따라 밝혀져

청소물고기는 '명성'까지 신경 써, 복잡한 인지능력 이전에 협동 발달 가능성

 

fish2_Jordan Casey2.jpg

흔히 물고기는 둔하고 사회성 없는 찬피동물로 그려진다. 그런 선입견이 차츰 깨지고 있다. 지적이고 사회성 있는 물고기가 발견되고 있다.
 

상대방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는 호혜적 행동은 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 일부에서만 나타난다. 그만큼 복잡한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혜택을 베풀었는데, 받기만 하고 도망친다면 곤란하다. 그래서 호혜적 행동을 하려면 상대방을 인식하고, 지난 행동을 기억하며, 나중에 보답을 예상하고 의식적으로 먼저 투자하는 능력이 전제가 된다.
 

그런데 어떤 물고기는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이먼 브랜들 박사 등 오스트레일리아 제임스쿡대학 연구자들은 대보초(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서식하는 물고기인 독가시치에서 직접적인 호혜행동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9월2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fish1_Jordan Casey.jpg» 협동사냥을 하는 다른 종류의 독가시치. 같은 성끼리 늘 붙어다니며 사냥하는 독특한 행동이 연구의 계기가 됐다. 사진=조던 케이시
 

연구자들은 잠수를 통해 여우독가시치 등 산호물고기 4종의 행동을 조사했다. 이들 물고기는 같은 성의 짝과 함께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는데, 한 마리가 먹이를 먹는 동안 다른 짝은 그 위에서 헤엄치며 머리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행동을 한다.


이들의 먹이는 산호초 틈 깊숙한 곳에 있는 조류와 해면 등인데,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기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띄면 매우 취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료가 망을 봐주면 마음 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외톨이 개체에 견줘 짝을 이룬 독가시치가 경계와 먹이 먹기에서 훨씬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계와 식사 당번은 수시로 바뀐다. 또 경계를 서던 물고기가 위험을 느끼면 지느러미를 쳐서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다른 산호물고기에게서도 발견되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경계 물고기가 자리를 뜨면 먹이를 먹던 물고기도 어김없이 뒤를 따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동물의 호혜적 행동이 진화하려면 복잡한 인지적 사회적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이제껏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로 그런 능력이 호혜적 행동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Richard Ling _Epinephelus_tukula_is_cleaned_by_two_Labroides_dimidiatus.jpg» 그루퍼의 기생충을 잡아먹는 청소물고기. 그러나 기생충보다 물고기의 피부보호 점막을 쪼아먹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Richard Ling,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연구 이전에도 물고기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왔다. 산호지대에서 큰 물고기와 청소물고기 사이의 관계는 대표적인 예이다.

 

청소가 이뤄지는 산호초의 특정 장소에 큰 물고기가 와 입과 아가미를 벌리고 있으면 청소물고기가 안팎을 드나들며 기생충을 잡아먹도록 해 기생충 제거와 먹이 획득의 공생이 이뤄진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이들의 관계는 훨씬 복잡했다.

 

청소물고기는 그루퍼 등 큰 물고기의 기생충보다 영양가가 풍부한 피부 보호 점막을 선호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점막을 뜯어먹는데 그때마다 손님은 깜짝 놀라 몸을 뒤튼다.

 

큰 물고기는 이처럼 서비스가 나쁜 청소 장소는 기피하게 된다. 청소물고기도 다른 경쟁자가 많거나, 다른 고객 또는 배우자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딴 짓을 줄여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피했다.

 

곰치.jpg» 두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도 다투지 않고 오히려 협동해 사냥하는 행동을 한다. 사진=리두안 브샤리 유튜브 동양상 촬영

 

산호초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도 유명한 사례다. 이집트 홍해 등의 산호초에서 관찰한 두 포식자는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 힘을 합쳤다.

 

■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 사냥 유튜브 동영상

 

 


그루퍼는 산호 틈에 숨어있는 곰치에 다가가 머리를 흔들며 마치 "사냥하러 가자"고 제안하는 행동을 한다. 곰치가 따라나서면 그루퍼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산호 틈을 곰치가 뒤져 먹이가 튀어나오면 기다리던 그루퍼가 낚아챈다.

 

먹이가 숨어있는 바위틈에 그루퍼가 거꾸로 선 자세로 "여기 먹이가 숨어있다"고 하듯이 곰치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동도 관찰됐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imon J. Brandl & David R. Bellwood, Coordinated vigilance provides evidence for direct reciprocity in coral reef fishes, Scientific Reports, 5:14556, DOI: 10.1038/srep1455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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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선봉적 부대'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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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6  2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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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조선노동당과 국가를 알기 쉬운 것은 당 규약을 살펴보는 일이다.

초기 조선노동당의 강령은 표면적으로 민주주의적 완전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고 진보적 민주주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표를 표방했다. 그리고 해방이후 독립국가의 경제건설을 위해 경제개혁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러한 당 규약은 70년 역사를 거쳐 북한 내부변화와 국제정세에 맞춰 바뀌어왔다. 그리고 주체사상의 확립과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확고히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어 왔다. 당 규약의 변천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의 변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1961년 제4차 당 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주석. 당시 북한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당 강령, 선봉적 부대→혁명조직→김일성의 당→김일성.김정일의 당

당 강령 및 전문, 총칙에는 당의 위상과 지도사상, 당면목적, 투쟁내용 등이 서술되어 있다. 당 규약은 1946, 1948년 제4장 41조, 1956년 제10장 62조, 1961년 제9장 70조, 1970, 1980년 제10장 60조으로 구성, 최종적으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발표된 제10장 60조로 돼 있다.

46년 제1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에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근로대중의 이익의 대표자이며 옹호자'라는 내용으로 당의 위상을 서술하고 13개의 과업을 제시했다. 그리고 제4장 41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48년 제2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 내용과도 유사하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조선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것, △토지개혁을 실시할 것, △광산, 철도 등을 국유화할 것, △민족군대조직과 의무적 군사징병제를 실시할 것,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인방과 평화를 애호하는 각 국가 각 민족들과 튼튼한 친선을 도모할 것 등이 담겼다.

구체적인 당의 지도사상은 없지만, '조선 근로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부강한 민주주의적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근로대중의 정치경제 및 문화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해방 후 당과 국가의 전망을 제시했다.

56년 제3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강령은 '우리나라 노동계급과 전체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적 부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이익 대표', '일본 및 식민주의자에 반대하여 투쟁한 조선 인민의 혁명적 전통의 계승자'로 위상이 구체화됐다.

또한, '맑스-레닌주의 학설'에 근거해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 완수, △공산주의 사회건설, △인민 민주주의 제도 공고화 등의 목적이 담겼다.

'맑스-레닌주의'가 들어간 이유는 제3차 당 대회 당시 있었던 소련.연안.빨치산파의 파벌갈등을 반영한다. 즉, 소련 흐루시쵸프 서기장의 스탈린 비판연설을 감안, 당이 맑스-레닌주의의 국제적인 원칙에 근거해 공산당으로서 정당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61년 제4차 당 대회 들어 소련.연안파의 숙청으로 김일성 단일지도체계가 성립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위상과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원리, △조선혁명실천활동에 창조적으로 적용, △수정주의, 교조주의의 반대, △'맑스-레닌주의 순결성 고수' 등의 지도사상이 반영된다.

이는 김일성 외 파벌의 주장인 수정주의, 교조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1960년대 중.소분쟁을 배경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 진영의 맑스-레닌주의 논쟁에 '순결성'으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토대로 조선노동당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보장, △사회주의 제도 공고화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즉, 네 번째 당 규약 개정은 조선노동당이 '김일성의 당'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됐다.

   
▲ 1980년 제6차 당 대회 준비를 점검하는 김일성과 김정일.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명문화했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의 당'임을 확고히 한다. 70년 11월에 열린 제5차 당 대회에서 당은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에서 '노동대중의 최고형태의 혁명조직'으로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이 지도사상으로 등장했다. 또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이 새로운 당의 목적으로 제시됐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김일성 동지께서 창건한 주체형의 혁명적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당'의 위상에 맞게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지도사상을 토대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강조한다.

즉,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가 명문화된 것이다.

김정일 시대 들어 30년만인 2010년 9월에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으로서의 위상이 당 규약에 명문화됐다. 여기에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지도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인민근로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로 규정됐다.

그리고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 '근로인민대중의 대중적 당'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이 당면과제로 제시됐다.

여기서 특징은 54년동안 견지해 온 '맑스-레닌주의'가 빠졌다는 점이다.  대신 선군정치 노선과 당 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고 영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당시 제3차 당 대표자회가 김정은으로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당 정비 차원의 행사였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변모했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당'의 위상으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또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밑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위업,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가 포함되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한 당이 됐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당 창건 70돌 기념 노작에서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옳게 계승하지 못하면 당이 변질되고 결국에는 혁명의 좌절을 가져오게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었다"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당의 핵심사상임을 강조했다.

당원, 공민→혁명투사→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형의 혁명투사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당원의 자격이 명시되어 있다. 북한에서 당원은 조선공민이라는 초기 정의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의식을 지닌 자각적인 혁명투사, 당과 수령,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한 주체형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의미가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무장한 주체.사회주의 위업을 달성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당원을 규정한다.

제1,2차 당 대회에서는 20세 이상으로 1년 이상의 당 연한을 갖고 서로 아는 사이인 당원 2명이 보증을 서면 입당자격이 주어졌다.

이렇게 입당한 당원은 △자주독립국가건설, △법령.당 규약 준수, △당 상급기관 복종, △당 회의 의무참가, △입당금 당비 및 의연금 납부, △대중교양, △기술생산능력, △모범의 의무를 지녔다.

그러나 제3차 당 대회가 열리면서 당원 자격은 18세 이상으로 연령이 낮춰졌다. 이는 조선노동당을 확립하면서 당원의 확보가 관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1년 이상 당 활동을 한 2명의 추천, △조선민주청년동맹원의 입당보증은 1명 등으로 조선노동당 입당 조건을 다소 까다롭게 했는데, 이는 당시 종파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독립 및 인민민주주의제도 공고화, △사상.조직 통일, △맑스-레닌주의 이론 연구, △비판 수용, △의무보고, △비밀엄수 등 당 규약을 토대로 의무조항을 늘려 김일성의 당에 복종하는 당원 양성을 꾀했다.

   
▲ 2013년 11월 6일 해군 구잠함 233호 지휘관과 해병들에게 당원증이 수여됐다. 사진 속 붉은 색 소책자가 당원증으로 파악된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제4차 당 대회에서부터는 입당 추천인 자격이 2년 이상 당 활동을 한 자로 좁혀진다. 그리고 후보당원 조항을 추가해 추천을 받더라도 1년의 후보당원 활동을 해야한다. 후보당원이 됐다고 무조건 정식 당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행 정도에 따라 자격이 주어진다.

당원의 의무도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건설, △당의 혁명전통 체득, △종파.지방.가족주의 반대, △공산주의적 도덕품성 항목을 추가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 확립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했다.

김정일 시대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 △주체사상.선군사상.혁명전통으로 무장,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하나로 움직임, △혁명적 사업기풍과 생활기풍, 당비 매달 납부 등으로 10개 의무조항을 뒀다.

또한 "상급이 주는 어떤 과업이라도 그것이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어긋날때에는 그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권리조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명예당원 항목을 신설해, 나이가 많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당원을 명예당원으로 하고 명예당원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2012년에 개정된 당 규약은 현재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구체적인 당원의 입장조건과 의무조항을 확인할 수 없으나, 대체로 2010년 당원 항목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노동당이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규정됐다는 점에서 당원의 의무도 '김일성-김정일주의' 무장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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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나선 큰물피해 한달만에 ‘와다닥’

 
 
1천8백가구 건설 새집들이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07 [07:5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북은 큰물 피해를 입은 나선시에 1천800여 가구 규모의 주택을 새로 짓고 입주를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6일 조선중앙방송을 인용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선시 선봉지구 백학동지역에 1천300여세대의 단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일떠서 옹근 하나의 주택구역이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어 "청계동, 유현동, 관곡동지구 등 여러 곳에 500여세대의 소층 단층살림집들이 주변 풍치와 어울리게 새로 건설돼 새마을들이 생겨났다"며"인민군 군인들은 단 2일동안에 1천300여세대의 살림집 기초공사를 끝내고 열흘만에는 전반적 살림집들의 벽체축조를 완성하는 성과를 이룩했다"고 소개했다.

 

▲     © 이정섭 기자

중앙방송은 또 "주택 보수에 동원된 인민군 군인들은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선봉지구 2천700여 세대의 살림집 보수를 와닥닥 해제꼈다"고 강조했다.
나선시에서는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지난 8월 22∼23일 폭우가 내려 40여 명이 사망하고 가옥 1천여 채 이상이 파손됐으며 1만1천 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학실한 피해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사업을 중요 의제로 상정하고 인민군이 나서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 작업을 당 창건일 이전에 끝내라는 당부와 함께 사회주의 선경으로 건설할 것을 강조한 후 직접 수해복구 지역을 현지지도했다.

 

한편 김정은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주민들에게 집들이 선물도 전달했다. 선물 전달식은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김평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용진 내각 부총리,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5일 나선시 곳곳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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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왜 배워? 박 대통령이 갔잖아

 
 
‘야당이 하면 종북, 박근혜 대통령,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하면 관광’
 
임병도 | 2015-10-07 08:33: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월 5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는 ‘역사교육 정상화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발언이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시중에 출판된 한국사 참고서를 문제로 들면서 ‘균형 잡힌 역사인식 형성을 위한 한국사 교과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일부 한국사 교과서에 나온 ‘주체사상’이나 ‘만경대에 왜 온 건가?’ 등의 예문을 제시하면서 ‘이런 것을 우리 학생들이 지금 배우고 있다’며 한국사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국정교과서 추진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왜 학생들이 ‘주체사상’이나 ‘만경대’를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는 것 같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경대 방문 논란’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구체적으로 누구와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어디를 방문했는지는 현재까지도 상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내용은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방북기에는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을 찾았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로 수정됐습니다. 왜 갑자기 방북기의 내용이 수정됐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기에 나온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이라는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방북기에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내용이 올라오자 언론들은 이를 보도했고, 논란이 일자 수정된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만경대 방문은 또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 측에서는 “공연이 있었던 만경대 소년궁전만 갔을 뿐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에는 간 적이 없으며, 이것은 당시 통일부도 확인한 사안”이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만경대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 아이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만경대 방문 논란을 알기 위해서는 만경대 정도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체사상탑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2008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북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이 영상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체사상탑을 방문하고, 주체사상탑 찬양 현판들을 둘러보는 모습도 자세히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체사상 방명록에 “기다리던 단비가 오는 가운데 평양의 전경을 잘 보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깁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홈페이지나 방북기에는 주체사상탑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체사상탑은 김일성의 70회 생일에 맞춰 1982년에 완공된 높이 170미터의 석탑입니다. 주체사상탑 자체가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기념하기 위한 탑입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주체사상탑에 갔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습니다. 박 대통령 측에서는 그냥 ‘관광’차원에서 갔다고 해명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처럼 “평양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라고 해서 올라가 살펴본 것밖에 없다”는 변명밖에 하지 못합니다.


‘야당이 하면 종북, 박근혜 대통령,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하면 관광’
 
2002년 방북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정치인 자격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상황이었고,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특별기를 보냈고, 김대중 대통령이 머물렀고 백화원 영빈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김정일이 직접 백화원으로 찾아와 단독으로 1시간가량 면담도 했고, 김정일의 제안으로 베이징이 아닌 판문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치인으로 가지 않은 순수한 방북이었다고 하기에는 북한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통령 의전 급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경대나 주체사상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홈페이지에 방북기를 잘못(?) 쓰지도 않았고, 관광이라고 가자고 했더라도 주체사상탑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보나 야당 인사들이 주체사상탑과 만경대를 방문하면 ‘종북’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가면 관광이라고 합니다.

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과의 대화 내지는 향후 통일을 위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만 알면 됩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마치 현행 역사교과서를 ‘종북 교과서’로 왜곡하면서 국정교과서 추진을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주체사상과 만경대를 왜 알아야 하느냐고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과거에 갔다 와서 논란이 된 이유 정도는 고등학생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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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물리학>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박근혜 대선 압승? 지도만 바꿔봤을 뿐인데..."

[e사람] <세상물정의 물리학> 쓴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15.10.06 09:01l최종 업데이트 15.10.06 10:15l

 

 

'e사람'은 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서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장 노동자부터 학자, 관료, CEO, 사회단체 등 그 누구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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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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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대통령선거 결과를 인구 비례에 맞춰 다시 그린 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득표율은 51.6% 대 48.0%로 박빙이었지만, 지역별 1위 후보를 표시한 전통적 지도만 보면 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역 면적으로 인구 밀도에 맞춰 늘이거나 줄였더니 두 후보가 차지하는 면적이 실제 득표율에 더 가깝게 나타났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보이는 정보라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 대학원생 이일구, 조우성 씨와 함께 이 지도를 만든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48)는 언뜻 과학과 무관해 보이는 선거 결과에 간단한 물리학 방법론을 적용해 오랜 고정관념을 깼다. (관련기사: [사이언스온] '51.6 대 48.0' 득표율 그대로 보여주는 인구비례 전국지도

오지랖 넓은 물리학자,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이처럼 과학 연구 결과가 세상의 관심을 끄는 일은 흔치 않다. 특히 자연과학 가운데서도 물리학은 왠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을 깨는 데 '세상에 뛰어든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오지랖'도 한몫했다. 김 교수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수많은 '입자'에 해당하는 '빅데이터'에 물리학 방법론을 적용한 사회적 연구 결과물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프로야구팀들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는 경기 일정표를 짠다든지, 윷놀이에서 유리한 전략을 계산한 게 대표적이다. 컴퓨터로 무려 10억 번 계산했더니, 같은 편을 업고 가는 '평화적인' 전략보다 상대편 말을 잡는 '공격적인' 전략이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펴낸 <세상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에는 이런 '오지랖 넓은' 연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에서 따왔다는 책 제목처럼, 지난 10월 2일 찾아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 있는 김 교수 연구실 모습도 사회학자의 연구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보고 분석하는 데 쓰는 컴퓨터와 프로젝트, 강의할 때 쓰는 장난감 같은 모형들이 고작이었다. 

때마침 김 교수는 10년 만에 연구년(안식년)을 맞아 강의는 없었지만, 제자들 논문 지도와 각종 연구로 여념이 없었다. 책에 포함된 상당수 내용들이 논문으로 선보였지만 정작 앞서 인구 비례 지도는 논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 물리학자인 마크 뉴먼 미시건대 교수가 지난 2006년 미국 대선 결과에 사용한 방식을 단순히 우리나라 실정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중부는 인구가 적은데 보수층이 많아 공화당 지지가 많고, 동부와 서부는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데 보통 지도를 그리면 전부 빨간색(공화당)이고 파란색(민주당)은 거의 없어 보여요. 마크 뉴먼 교수가 인구 밀도에 맞춰 그리니 가운데가 쪼그라들고 양쪽이 커지니까 비슷비슷하게 경쟁했다는 걸 알게 돼요. 우리나라도 2012년 대선 때 처음 그려봤어요. 박근혜-문재인 득표율 차이가 없었는데 지도를 보면 박근혜 후보가 압승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반반이었다는 게 명확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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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 지역별 1위 득표자를 표시한 지도(왼쪽)와 지역별 인구밀도를 감안해 그린 인구 비례 지도. 붉은색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파란색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 김범준 교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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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등장에 30년 남짓... 결국 정치인들 작품"

지난해 4월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지도에 표시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지지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인구 밀도를 적용하면 강원도를 비롯한 도 면적은 줄고 서울과 6대 광역시 면적이 늘면서 양당이 균형을 맞췄다.

김 교수는 마크 뉴먼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의 뿌리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1963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한 후보의 득표율을 인구비례지도로 그려봤더니, 1971년까지만 해도 동-서간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1987년 대선부터 점차 커지더니 1997년 대선에서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그래프를 토대로 김 교수는 "한국을 동서로 양분하는 지역감정은 (백제-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니라) 길게 잡아 30년도 안 되는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기간에 만들어지고 고착화됐다"면서 "지역감정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투표로 선출되기를 바란 정치인을 위해 조장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현재 '서울 영등포구와 구로구에서 야당 지지 성향이 높은 이유가 전라도 출신이 많아서'라는 명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통계청 전입·전출 자료를 토대로, 전라도 지역 출신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때 아버지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확률, 현재 거주지 주변 사람들 영향을 받아서 그 지역 대다수가 지지하는 후보로 바꿀 확률 등을 계산한 뒤 실제 선거 득표율과 비교해 보는 방식이다. 

"마크 뉴먼 교수 연구도 자세히 살펴보면 각 지역 인구 밀도를 정의하고 인구밀도가 균일하게 퍼지는 수학적 과정을 정의한 상당히 아카데믹한(학문적인) 연구예요. 하지만 저 지도를 달리 그려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거죠. 저도 살다 보면 궁금한 게 참 많은데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해 본 거죠."

"과학자는 가치중립적? 맘에 안 드는 결과 선택 안 할 수도"

김 교수가 이렇게 색다른 연구 주제에 빠진 계기는 이처럼 개인적인 '궁금증'과 '재미', 그리고 '비판의식' 때문이다.

"보통 과학자들 활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어떤 결과가 맘에 든다, 안 든다 판단할 수 있거든요. 한 과학철학자가 과학하는 사람들이 철학이나 가치관이 없다고 하지만, '체크인 안하고 몰래 들여온 수화물' 속에는 반드시 있다고 한 것처럼 모든 인간 활동이 마찬가지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거론한 '때맞음(동기화)' 관련 논문이 대표적이다. 한 연구팀은 계층화된 어떤 조직에서 여러 구성원이 동시에 박수 소리를 내려고 할 때 상명하복의 계층구조가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런데 김 교수팀이 개개인마다 '진동수'가 다르다는 변수를 추가해 오히려 시간은 더 걸려도 계층 간 의사소통이 활발할 조직일수록 더 '때맞는' 박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상반된 결론을 끌어냈다.

"일단 그 논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논문에서 고려하지 않은 요소들이 보이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똑같다고 가정하는데 실제로 그렇진 않잖아요?"

한마디로 논문에는 진보와 보수 같은 과학자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만, 어떤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는 건 과학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처음 연구도 수학적으로 올바른 논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연구 결과가 나왔다면 난 그 논문을 쓸까 말까 고민했을 거예요. 비판적인 생각이 들어 제 연구를 시작한 거죠. 그렇다고 논문에 민주적 구조니 상명하복 같은 말을 넣을 순 없어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고 집단적으로 의논해서 좋은 결론을 내리고, 시간은 오래 걸려도 위에서 시키면 나는 한다는 '상명하복' 스타일보다는 훨씬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개인적으로 기뻤던 연구예요. 그 논문을 쓰고 나서 물리학자의 가치관이나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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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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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여론 조작, 페이스북은 안 돼도 트위터는 통한다"

'통계학'이나 '물리학'은 그나마 익숙하지만 '통계물리학'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다.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 학문인 걸까?

"물리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미시적인 입자 하나하나가 어떤 상호작용을 해 우주를 만드는지 연구해요. 그 입자가 굉장히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구하는 게 통계물리학이에요. 통계학도 많은 샘플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듯 통계물리학도 굉장히 많은 입자들 가운데 의미 있는 양을 추출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관심 대상이 사회 영역까지 조금씩 넓어진 거죠."

통계물리학은 이른바 '빅데이터' 연구의 성장으로 물리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는 분야지만 국내 연구자는 40명 정도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와 정하웅 카이스트 석좌교수,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장이 대표적이다. 

빅데이터의 힘을 얘기할 때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트위터에 한 아이디(계정)로 올린 글을 다른 아이디로 '인용(리트윗)'하고, 그걸 다른 아이디로 퍼 나르는 일을 반복해 "마치 그 내용이 사실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처럼 호도했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72쪽. '리트윗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하지만 다른 한편 저렇게 소수가 여론을 조작한다고 대선 결과까지 뒤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대선 결과가) 바뀔 수 있죠. 사람들이 전부 서로서로 연결돼 있어 처음 만든 트윗을 본 사람은 얼마 안 돼도 점점 퍼지게 돼요. 사람들 성향이 책 살 때 베스트셀러 목록 보듯 메시지 내용보다 많은 사람이 언급하면 그걸 더 중요시해요. 소수라도 많은 트윗을 날리고 중요한 것처럼 판단되면 메시지 진위에 상관없이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이른바 '마당발'일수록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연결망 효과'다. 하지만 당시 트위터 마당발 상당수는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조직적인 여론 조작 세력에 맞서 '상쇄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반인이 헌신적으로 여론 호도하려 하지는 않죠. 자발적인 힘과 조직적인 힘의 싸움이라면 조직적인 게 영향이 더 있을 수밖에 없어요. 페이스북은 그룹끼리 얘기하는 방식이어서 영향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트위터 속성상 한 사람이 다수를 향해 말하는 방식이고 상대방의 팔로워(구독 신청)를 거절할 수도 없어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퍼트리기에 유리해요. 트위터는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광자보다 빛알, 물리학 용어부터 알기 쉽게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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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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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가 세상에 다가가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어려운 물리학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다. 앞서 '동기화'를 '때맞음'으로 바꿨듯, '공명'을 '껴울림'으로, '광자'를 '빛알'로 바꾸는 식이다. 꼭 우리말이 아닌 한자라도 '만유인력' 대신 '보편중력'으로 바꾸면 훨씬 의미 전달이 쉽다. 하지만 때맞춤, 껴울림 같은 우리말이 더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때맞음'이 어색한 건 우리가 '동기화'를 먼저 배워서 그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광자'란 말을 이해시키려고 한자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20년 전부터 물리학용어집을 발간하면서 은사인 최무영(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많이 노력했지만 반발도 컸어요. 그래도 지금은 두 용어를 병행하고 수업시간에 '빛알'을 쓰는 교수들도 늘고 있어요. '만유인력'도 다른 데서 '만유'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보편적 중력'이라고 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잖아요."

'세상물정'이란 융합 테이블에서 만난 사회학과 물리학

김 교수는 10여 년 전 노명우 교수와 같은 아주대에서 교수 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공교롭게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세상물정...>이라는 책 제목도 양쪽 출판사 대표들의 친분 덕에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노 교수는 이 책 원고를 먼저 보고 "사회학자와 물리학자는 동일한 세상에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임을 '세상물정'이라는 융합의 테이블에서 새삼스럽게 확인했다"면서 "물리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회학자는 그 테이블에서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통찰에 감탄했다"는 인상 깊은 추천사를 남겼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은 김 교수도 "이 책을 보며 인문사회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고 감탄하면서 "노 교수도 기존 사회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고, 강단 사회학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사회학을 얘기하자는 메시지로 들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세상물정의 물리학>도 물리학이 사회와 대중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 전반에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강한 비판과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도 느껴졌다.

"개인적 가치관인 것 같아요.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목격하는 시기와 (학창시절이) 겹치고 과거 독재에서 벗어나 사람이 참여해서 바꾸는 사회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개인적 경험으로도 많은 사람이 토론해서 내린 결론이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하는 것보다 당연히 좋겠죠. 그렇다고 집단이 만든 결정이 항상 옳은가,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가 숙제죠. '숙의 민주주의'란 말처럼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집단지성은 생각 없이 손든 사람들 숫자를 세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의미가 있어요."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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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06 08:34
  • 수정일
    2015/10/06 08: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의 거짓말에 농락당하는 유권자들…
 
 
 
김용택 | 2015-10-05 10:07: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공자의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변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군대”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다시 자공이 묻자 공자는 “양식”이라고 답했다. 논어에 실린 내용이다. 양식이나 국방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는 가르침이다. 공자뿐만 아니라 신뢰가 통치의 기반이라는 것은 성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가 아닌가? 박근혜대통령이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밝힌 공약이다. “저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고 신뢰와 평화의 새로운 한반도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위에 남북한의 신뢰, 국제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된 남북관계를 모색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겠습니다.”

이런 박대통령의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설레었다. 이제 우리도 반세기 동안 동족간의 반목과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공존, 통일의 시대를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임기 2년여를 남겨 놓고 현실에서 신뢰프로세스는 어떻게 됐을까? 박근혜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는 역대 어느 대통령 때보다 가장 심각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어렵게 만든 남북이산가족 상봉조차 성사될지 의문이다.

‘약속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다’

지난 7월 1일 JTBC 손석희 아나운서가 9시뉴스를 진행하면서 꺼낸 클로징 맨트다. 오죽하면 뉴스 진행자의 입에서 이런 험담까지 들어야할까? 19대 총선을 불과 6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국회 의석수 48석을 아우르는 서울에서 선거를 완패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자 박근혜의원을 당대표로 추대하면서 당기와 당명까지 바꾸면서 새누리당의 개혁이 시작됐다.

당시 새누리당이 꺼낸 카드를 보면 우리 정치도 후진성을 벗고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이런 약속을 듣고 있으면 왜 아 그렇겠는가? 그런데 이런 약속들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저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삼겠습니다. 국민행복의 길을 열어갈 첫 번째 과제로, 저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정당한 기업 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로, 저는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전통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겠습니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어 내수 중소기업을 키워나가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2012년 7월 10일, 새누리당 예비후보 박근혜)

이런 공약 역시 국민들이 열광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의 공약을 들을 때마다 이제 유럽 선진국처럼 다른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희망의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 벅차게 만들곤 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의 공약 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공약을 시행되기는커녕 하나같이 공약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배신감과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얼마나 지켜지고 있나?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후보로서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어디 지역에서 살든, 어떤 계층에 속하던 간에, 억울한 일없이 정당하게 대우받도록… ‘차별도 없고 특혜도 없는 세상,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대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경제, 불공정거래가 발붙일 수 없는 경제, 좋은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성장시스템을 만들고, 위기와 갈등, 반칙과 불공정, 그리고 불확실성과 혼란의 악순환을 끊고 국민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미지 출처 : 늙은 도령>

박대통령의 공약과 현실을 비교해 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차라리 그런 공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기대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기 격이다. 아니 노골적으로 의도된 공약(空約)으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저는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거짓말… 그가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면 소가 웃을 얘기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 와 같은 공약은 이행이 아니라 거꾸로 가고 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면서 철저하게 친재벌정책을 펴고 있다. 4대구조개혁이니 노동개혁을 보면 그렇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며 ‘노동시장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미운살이 박힌 노동자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단다. 교육개혁을 한다면서 유치원수업시수까지 늘리고 시행도 하기 전의 교육과정을 또 바꾸겠단다. 나라사랑을 말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한자병행을 강행하겠다는 게 박근혜정부다. 그가 얼마나 사기에 가까운 정책으로 포장하는지는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게 왜 죄가 되는가? 취업을 해도 정규직은 하늘에 별 따기요, 그것조차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와 철도 교육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는 게 박근혜정부다. 청년실업자 100만 시대, 비정규직 800만, 1천만 노동자를 두고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에 대한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확대… 라는 정책이 어떻게 복지정책이며 경제민주화인가?

3포시대, 5포세대도 모자라 7포세대라는 청년들의 한탄의 소리가 SNS를 채우고 있겠는가? 이제 3포, 5포 7포세대 뿐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민 가고 싶다고 한다.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두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을 두고 의료 민영화, 교육민영화,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자본이 행복한 사회는 노동자도 행복할까? 박근혜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공약을 믿고 기다리는 국민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는 그의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 기다리면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오기나 할까?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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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김일성.김정일의 당, 어머니당'[친절한 통일씨] 조선노동당 70년 역사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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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5  17: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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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거리에 걸린 당 창건 70돌 축하 문구. 북한 조선노동당 당기 중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중앙노란색 망치, 낫, 붓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의미한다.[자료사진-통일뉴스]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 "조선노동당은...인민대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돌보는 어머니당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간다."

지난 2012년 개정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의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인민을 보살피는 당이라고 풀이된다.

김일성-김정일주의 당, 어머니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 혁명의 참모부 등 다양한 표현을 지닌 북한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북한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북한의 조선노동당을 제대로 안다는 것도 사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속 깊이 이해한다는 것과 다르다. 분단 70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조선노동당의 출발

북한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창건됐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출발이 1920년대라고 설명한다.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17일 일제에 맞서 결성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이 조선노동당의 토대라는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ㅌ.ㄷ'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반제청년동맹 등을 결성하고 공산주의자 육성과 도시와 농촌 의식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 당시 함께 활동한 이들이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김혁은 김일성이 생전에 잊지 못한 동지로 평가받았고, 훗날 부총리가 된 김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어 김일성은 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중국 만주 장춘현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대회'(카륜회의)를 열고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지도사상과 혁명노선 및 전략전술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7월 3일 첫 당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조선노동당의 기원이다.

이후  1930년 10월 온성일대 당 조직 결성, 1934년 5월 조선인민혁명군(훗날 조선인민군) 당 위원회 결성, 1936년 2월 남호두회의, 5월 조국광복회 창건 등으로 이어져 해방 후인 194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의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창립됐다.

   
▲ 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전신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이 발표된 평양 중앙지도부 건물. 현재 북한은 당 창건 사적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당시 '서북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 마지막 날인 13일에 창립이 선포됐지만, 김일성 주석이 연설을 한 날짜인 10월 10일을 창립 날짜로 지정했다. 이어 14일 펑양시군중대회에서 김일성은 지도자로 소개됐다.

그리고 1946년 2월 김두봉,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을 중심으로 창당된 조선신민당과 8월 합당대회를 통해 '북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광범한 근로대중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묶어세우고 조직동원할 수 있는 통일적인 대중적 당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편, 남측에서는 1945년 9월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재건, 1946년 1월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 합당해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됐다. 그러나 1949년 6월 남북조선 노동당은 1국 1당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됐다. 

1926년  'ㅌ.ㄷ'에 뿌리를 둔 조선노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선포를 거쳐 1949년 6월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 북한은 "피어린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장기간에 걸쳐 억세게 다져온 주체형의 당 창건 위업의 실현"이라고 표현한다.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 구조

70년 역사를 지닌 조선노동당의 성격과 특징은 무엇인가.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은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당이다"로 시작한다. 즉, 김일성이 당을 만들고 김정일이 당을 강화 발전시켜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라고 밝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화하는 성격을 지닌 당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조선노동당은 최고 형태의 혁명조직이고 수령, 당, 계급, 대중이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 아래에서 향도적인 영도역량이며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노동당은 노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 원칙을 토대로 △사상, 기술, 문화 3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와 사회주의 문화발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의 민족의 통일, △반제자주 연대성 강화를 통한 세계자주화, 평화 및 세계사회주의운동 발전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성격과 목표를 지닌 조선노동당은 집체적 지도기관으로 당 대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당 중앙군사위원회을 두고 있다. 서열로 본다면, 당 대회-당 대표자회-전원회의-정치국 순이나 당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 당 대표자회, 그 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당 대회는 조선노동당 규약 2장 14조 1항에 명시된 '가장 상위에 있는 최고지도기관'으로 2010년 개정된 규약에는 소집시기가 명시되지 않지만 1980년 당 규약에는 5년 1회 개최를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1946년 8월 제1차 당대회, 1948년 3월 제2차, 1956년 4월 제3차, 1961년 제4차, 1970년 11월 제5차, 1980년 10월 제6차가 열렸을 뿐 3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긴급한 당의 정책이나 전략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위해 당 대표자회를 소집하도록 한다. 당 대표자회는 1958년 3월 1차, 1966년 10월 2차, 2010년 9월 3차, 2012년 4월 4차가 열렸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하는데 △전 당에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며, △당의 노선과 정책을 수립하고, △당과 혁명대열을 공고히하며, △행정 및 경제사업을 지도조정하고, △혁명적 무력을 조직, 그들의 전투능력을 높이며, △기타 정당 및 국내의 기관의 활동에서 당을 대표하고,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임무와 역할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당 중앙위원회 위원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당한 위상을 의미한다. 제1차 당 대회시 중앙위원은 43명이었으며, 지난 1980년 6차 당 대회에는 정위원 145명, 후보위원 103명이었다. 1명의 위원이 약 1만명의 당원을 대표한다고 할 때, 1980년에는 약 248만명이 노동당원인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당 중앙위원회는 전원회의를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하도록 한다.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 내각성원, 도당 간부, 사회단체 간부, 주요 기관 및 공장 기업소 간부들이 참석한다. 여기서는 당의 주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중이 크다.

하지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상시적으로 열리는 회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핵심은 당 정치국 및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이다.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하는 정책 수립의 절대권력기관이다.

그래서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의 변동은 북한의 정책 혹은 정책변화를 읽을 수있는 키워드가 된다. 이 중 상무위원회는 1980년 10월 김정일 권력승계 당시 설치된 것으로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이 상무위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다 1981년 김정일이 김일성 다음에 불렸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이며, 위원은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등이고, 후보위원은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 등이다.

조선노동당의 또 다른 기구로 비서국이 있다. 비서국은 상설기관이 아닌 협의기관으로 당 내부사업과 그 밖의 실무적 문제들을 토의.결정해 집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정치국에는 당 일꾼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포진된다면, 비서국은 전임 당 일꾼들인 비서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밤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 당 비서를 맡고있다.

그리고 이들 비서국은 전문부서를 두고 있는데, 조직지도부, 간부부, 경공업부, 계획재정부, 과학교육부, 국제부, 군사부, 근로단체부, 기계공업부, 당역사연구소, 문서정리실, 민방위부, 선전선동부, 신소실, 재정경리부, 총무부, 통일전선부, 38호실, 39호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당 중앙 검열위원회, 당 중앙 검사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으며, 지역에도 도.시 당 대표자회, 도.시 당 위원회가 있다.

   
▲ 1945년 12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결정서 초안을 토의하는 김일성.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일성 시대의 조선노동당(1945~1994)

조선노동당 70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 당 대회, 당 대표자회,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너무 내용이 방대해 여기서는 북한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내용만 다루기로 한다.

김일성 시대는 조선노동당 창건과 공화국 창건 등 북한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이다. 1946년 8월 1차 당대회를 시작으로 1948년 3월 2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 체제 틀을 잡았고,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계급교양강화를 통한 사회주의교양과 혁명전통교양사업이 심화됐다.

그러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와 소련파가 숙청되고 1958년 3월 열린 제1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반종파투쟁'을 일단락하고 김일성 유일지도체계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1961년 9월 4차 당대회,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를 거쳐 대내외 자주노선을 강조한 권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50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현 상무위원회)에서 군대 내 정치기관 조직, 1950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의 당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 강화, 1951년 11월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 195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등에서는 한국전쟁 극복을 통한 당 강화 발전이 강조됐다.

그리고 1953년 8월 당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 중공업 우선 발전, 1956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천리마운동 시작, 1962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의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 채택, 1967년 5월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통한 전당 유일사상체계 확립 등 김일성 시대 당의 기틀이 완성됐다.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시대에서 김정일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를 맞이했다.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 과업을 제시했다고 북한이 평가하는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를 거쳐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서열 5위로 발표되며 후계구도를 명확히했다.

   
▲ 1980년 10월에 열린 제6차 당 대회. 여기서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공식화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일 시대의 조선노동당(1994~2011)

1994년 총비서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 시대 공식적인 당 회의는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가 유일하다.

제3차 당대표자회의는 김정은 후계구도를 공식화하는 회의의 성격이 컸다. 김일성 시대의 당 대회, 당 대표자회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등에서는 당 건설과 국가 발전이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김정일 시대에 공식적으로 열린 당 회의는 후계구도에만 치우쳐있다.

그래서 일각에서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시기는 당과 국가체계가 약화된 시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1980년 제6차 당 대회로부터 30년,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로부터 44년만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 후계구축을 위해 당 기능을 복구하고 '김일성 동지의 당', '선군정치', '영도의 유일성', '계승성' 등을 당 규약에 명확히했다.

   
▲ 2012년 4월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제1비서로 추대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2011~현재)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은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김정은을 제1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진 유일영도체계를 김정은 제1비서로 확고히 했다.

또한, 조선노동당을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세우고, 2013년 1월 제4차 당 세포비서대회, 2013년 2월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2013년 2월 3대혁명소조회의,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 2014년 2월 제8차 사상일꾼대회, 2015년 8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등이 개최돼 김정은 시대에는 당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 김일성 시대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의 뒤를 이었고, 2013년 1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 장성택을 숙청해 유일영도체계를 공고히했다.

또한, 경제 등 국내정책을 다루는 화요회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금요회의 등 협의기구가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 시대는 당을 중심으로 한 국가운영을 강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Q&A]

(1) 북한의 당원은 아무나 되나요? 당비도 낼까?

북한의 당원 가입과 당비 등은 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다. 2012년 당 규약은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2010년 당 규약에서 당원 가입, 당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 당원은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가"이며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가 든든히 서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며 당 규약을 준수하려는 근로자"이어야 한다.

해당 조건에 맞으면 18세가 되면 입당 청원서와 당원 2명의 입당 보증서를 당 세포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이 입당하려 한다면, 시.군 청년동맹위원회의 입당 보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입당 보증인은 2년 이상의 당 생활 경력을 지녀야 하며, 입당 문제는 개별심의를 거쳐 1년의 후보당원 기간을 지내야 한다. 그럼에도 입당 자격이 안 되면 제명되며, 입당하게 되면 당원증을 받고 입당 선서를 한다.

당비는 월 수입의 2%로, 매달 당비를 내야 한다.

(2) 북한의 당 마크는 뭔가요?

북한 조선노동당의 마크는 망치, 낫, 붓을 교차한 표식이다. 당 규약은 마크에 대해 "당이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뭉친 노동자, 농민, 인텔리(지식인)를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전위부대이며, 인민대중 속에 깊이 뿌리박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적이고 대중적인 당이라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당기는 붉은 색 깃발에 중앙에 당 마크를 새겨넣은 것으로, 붉은 색은 항일혁명을 의미한다.

(3) 북한에는 당이 하나만 있나요?

북한에도 조선노동당 외에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 청우당 등이 있다.

조선사회민주당은 1945년 11월 3일 창당,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민대중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적 지향과 요구를 배경으로 중소기업가, 상인, 수공업자, 소시민, 일부 농민, 기독교인 등으로 이뤄진 민주정당이다.

천도교 청우당은 1966년 2월 8일 창당했으며, 보국안민의 애국사상과 척양척왜의 자주정신으로 제국주의의 침략과 예속성을 반대하고 민족적 자주와 부강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천도교를 믿는 농민들을 주로 한 민주주의적 정당이다.

여기서 사회민주당은 조선노동당과 같이 연합하고 청우당은 조선노동당의 3대혁명노선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으로 정의되지만, 일반적인 정치적 속성을 지닌 정당으로 보기는 힘들다.

(4) 북한 조선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어떤 차이가 있죠?

북한과 중국은 국가 지향점이 우선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로 외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중국은 '노.농 연맹에 기초한 인민 민주주의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로 다당합작제를 중심으로 공산당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의 출발도 북한 조선노동당은 2차대전 일본 제국주의에 대응한 반제, 반봉건주의로 항일 빨치산이 정치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창당했다는 점에서도 1차 대전 이후 청의 몰락과 서구열강의 진입, 러시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영향을 받아 산업노동자, 농민, 학생을 정치기반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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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통일뉴스, 뉴시스 펌도 보안법 위반이라니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0/06 [05: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박창숙 통일인사 석방 촉구 기자회견     ©자주시보

 

통일뉴스, 뉴시스 등 합법적인 언론사에서 보도한 북 관련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도 보안법상 북 찬양 고무죄 위반이라는 검찰이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5일 수원지방법원 410호실에서 2시부터 7시까지 5시간여 진행된 박창숙 통일운동가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 증인으로 나온 보안수사대 수사관 2인은 5,000여 쪽의 방대한 증거자료를 몇 보따리 싸가지고 왔는데 그 주된 내용이 합법적인 언론사들의 글을 복사하여 박창숙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다. 그것도 친구들에게만 공개한 것이었고, 그마저도 지난 1차 재판 도중에 비공개처리한 것임에도 북 찬양고무죄 위반이라며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남성욱 변호인은 “찬양고무죄와 관련된 판례가 여러 차례 나왔고 최근 2015년에도 나온 것이 있는데 그 판례와 이 증거들은 충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라고 묻자. 보안수사대 수사관은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재판장에서 웃음이 터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기준으로 이적성을 판단합니까?”
“내부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도 판례를 반영하여 변경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러자 은퇴를 앞둔 경험많은 수사관이 ‘그건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며 대답을 바꿈)

 

“도대체 이적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재판정 웃음이 터지자 판사가 조용히 할 것을 요구)”

 

증인들의 대답은 심문이 진행될수록 거의 이런 식으로 ‘모르겠습니다. 답변할 수 없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등등 무성의하고 현실에 맞지 않은 내용으로 일관하였다.


남성욱 변호사는 이적목적성이 뚜렷하고 실질적인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확실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 들을 들어가며 북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라는 이적 규정은 시대 추세에도 맞지 않고 국민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면 개성공단사업, 북 어린이 돕기, 나무심기 돕기 등등 대부분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다 이적행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박창숙 씨를 촬영한 100장의 사진을 범민련 등 사람들과 만난 증거로 제출하였는데 실제로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진 등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는 것이 과연 합법적인 수사활동인지, 관련 영장을 받아서 적법하게 진행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모르겠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등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실 범민련 사람들과 만났다고 해서 바로 죄가 될 수도 없다.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무슨 일을 모의했는가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 재판을 참관한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의 과도한 적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실제 두 정부 들어 유엔인권위원회의 한국 인권 지수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인터넷에서의 사상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21세기 들어 한국만 인권이 거꾸로 가고 있어 세계인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음 재판은 19일 오후 3시(앞 재판이 일찍 끝나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음) 수원지법 410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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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급식 비리’ 폭로한 충암고 교사, 전방위 압박당했다


등록 :2015-10-05 21:09수정 :2015-10-05 21:49

 

‘짬짜미 의혹’ 폭로 교사 “제자들 한 학기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충암고 전경. 충암고 누리집 갈무리
상급기관의 감사와 제재도 학교를 바꾸지 못했다. 2011년 충암학원은 학교 공사비 횡령과 회계 부정 등의 비리 사실이 적발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법인 이사 전원에 대한 임원취임승인 취소 처분 등 제재를 받았다. 제재에 따라 감축됐던 학급수는 한 해 만에 원상복귀됐다. 임원승인이 취소된 이사장은 ‘법인 사무국장’으로, 해임을 요구받은 충암고 교장은 교감으로 돌아왔다.

 

학교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충암고 소속 ㄱ교사는 지난해 학교의 급식운영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끼니를 챙겨 먹고도 자꾸 배고프다고 했다. 성장기여서만이 아니다. 애초에 밥상이 부실했다. “똑같은 재원을 갖고도 질이 다른 음식이 나올 순 있지만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ㄱ교사는 판단했다. “우리 학교 3학년 제자들이 한 학기만이라도 개선된 급식을 먹고 학교에서 겪은 상처 일부를 치유하고 졸업하게 하고 싶었어요.”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ㄱ교사는 말했다.

 

 

5개월전 교내서 공개 비판하자
전 이사장이던 법인실장이 불러
“내가 그런짓 하라고 채용했나”

 

급식업체는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
직원들 시켜 ‘수업 사찰’한 의혹도

 

업체의 고소에 검찰 “무혐의” 불구
학교선 교사 징계 절차 진행중

 

 

위탁배송업체와의 짬짜미 의혹 등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일 밝힌 충암중·고교 감사 결과는 ㄱ교사가 학교 안에서 먼저 제기한 문제들이다.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급식운영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바뀐 것은 ㄱ교사의 처지였다. 학교와 학교의 위탁을 받은 업체, 학부모들이 전방위적으로 그를 압박해왔다.

 

지난 5월 급식 관련 교내 1인시위를 벌인 뒤 전 이사장인 ㅇ사무국장이 ㄱ교사를 불러 다그쳤다. “‘내가 채용할 때는 그런 짓 하라고 채용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허락 안 해줬으면 여기 학교에 왔겠어?’라고 말하더군요.” 명백한 학사 개입이고 압박이었다. 학교와 계약을 맺은 위탁배송업체의 직원이 수업을 사찰한 의혹도 있다. “설마 싶었지만 여러 차례 학생들이 저에게 ‘조리종사원 형들이 선생님이 수업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나 급식 이야기를 하느냐면서 녹음까지 했다. 선생님을 음해하려는 것 같다’고 제보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지요.”

 

해당 업체는 ㄱ교사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충암고 교감의 ‘급식비 막말’ 논란 이후 ㄱ교사가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것을 문제삼았다. “ㄱ교사의 폭로로 인해 운영하는 식당의 체인점 계약이 몇 건 날아갔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9월 해당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학교와 업체의 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ㄱ교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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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여전히 학교의 징계 절차는 진행중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징계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 징계 절차가 일시 중단되긴 했지만 ㄱ교사는 “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학교는 징계를 진행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의 앞날을 생각해서 용기를 내긴 했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학교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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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교과서 안 돼"... 서울대부터 학부모까지

타임라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 사회 전반 확산

15.10.05 19:57l최종 업데이트 15.10.05 19: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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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 역사정의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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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교사, 교수, 학생, 학부모, 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교육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애초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는 8일 이후로 발표 시기를 미뤘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감사 이후 생각을 정리해서 결정하려고 한다"면서 "처음에는 8월에 결정을 보자고 그랬는데 9월로 넘어오고 9월에 찬반이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에서는 국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역사교육 정상화 첫걸음 내딛을 때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변화다"라면서 "시중에 고교 참고서를 보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 확립과정을 이해해야 된다고 나왔다.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9월 2일부터 <한국사> 교과서 반대 목소리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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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정용욱 한국역사연구회장(왼쪽 세번째)이 9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역사·역사교육 연구자들은 이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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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각층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은 9월 초부터 쏟아졌다. 당시 교육부가 9월 중에 국정화 여부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나왔던 때다. 

9월 2일 전국역사교사 모임 소속 교사 2255명은 교사 선언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강조하지만, 그 진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 시키려는 시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결정되면 즉각 폐지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서울대 역사학 전공 교수들은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반대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에는 역사학 전공 교수 44명 가운데 77%인 3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 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운동후손·단체, 학부모, 14곳의 시도교육감, 법학연구자, 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진, 역사·역사교육 연구자, 일반 교사 등도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서울대에 이어 부산대·덕성여대·고려대·서원대·성균관대·연세대·한국교원대·동국대·가톨릭대·한국외대·신라대 교수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충남, 대구·경북 교수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10월 1일에는 전국 23개 대학 사범대 역사교육과 학생회가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다양한 검정 교과서로 한국사를 만나며 역사교사의 꿈을 키워 온 우리 예비 역사 교사들은 당연히 우리가 만날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검정 교과서로 미래의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비롯해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전국 470여 개의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등이 힘을 합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인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는 7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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