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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올라오렴…

등록 : 2014.05.07 20:59수정 : 2014.05.0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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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 막대들에 실종자 생환을 비는 노란 리본들이 하늘을 향해 층층이 매달려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버이날’
딸 잃고 애끊는 유경근씨
실종학생 그리는 부모심경 전해 

“카네이션 대신 자식 영정에 국화”
분향소의 유족들 비통에 말잃어

“너무나 처참한 모습이 부끄러워 그런 거니…. 너희가 어떤 모습으로 올라와도 엄마 아빠 눈에는 너무도 예쁜 꽃이란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올라오렴. 모두 손잡고 어서 올라오렴….”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17)양의 아버지 유경근(44·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씨는 어버이날을 맞아서도 부모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 학생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부모들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유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딸을 그리는 심경을 절절히 담은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그는 이 글에서 “이제 집에 가자…. 엄마한테 가자…. 수학여행 간다고 집을 나선 지 꼭 열흘 만에 (예은이는) 그렇게 타보고 싶다던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왔다”고 적었다.

 

이젠 사랑스러운 딸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영영 받을 수 없게 된 유씨는 “예은이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고. 집에는 늦게 늦게 들어갑니다. 빈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적응해 보려고요. 예은이 없는 나를…”이라며, 예쁜 딸이 떠난 뒤 채 한달도 안 돼 맞이하는 ‘슬픈 어버이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딸을 봤을 때 “예은이가 ‘아빠! 왜 나를 몰라봐? 나 예은이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나왔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썼다.

 

유씨처럼 ‘잔인한 어버이날’을 맞게 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 유족대기실도 하루 종일 애통한 분위기였다. 한 유족은 “카네이션 받아야 할 부모가 자식 영정에 국화꽃을 올려놔야 하는 고통을 누가 알겠느냐”며 울먹였고, 또다른 유족은 “내겐 이젠 어버이날이 없어졌다”고 힘없이 말하기도 했다.

 

유씨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유족들의 심경과 실종자 수색 상황 등을 꾸준히 전해왔다. 유씨는 어린이날 다음날인 6일 올린 글에서 “어린이날이었네요. 차 막히고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분명 멀리는 못 갔을 거고. 맛난 거 좋아하는 예은이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을 텐데. 음식이 나올 때마다 와~ 감탄하며 연신 사진 찍고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텐데. 이런 작은 행복조차 지켜내지 못한 못난 아빠는 죄인이지요. 아주 큰 죄인이지요”라고 썼다. “다른 모든 상처는 하루이틀 지나면 아물기 시작하는데, 왜 이 상처는 갈수록 더 아픈 건가요”라고도 했다.

 

딸의 장례를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에는 “예은이의 영정 아래 누웠습니다. … 잠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예은이가 공포와 절망에 빠졌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바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유씨는 지난 2일에 올린 글에서는 “이제 가만히 기다릴 수 없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 듣고 얌전히 있다가 죽었습니다.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player009@hani.co.kr

 


 

세월호가 침몰한 지 22일이 넘었다. 지난달 3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둣가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시신이라도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다에 던져 넣은 손바닥만한 인형이 물결 위를 떠다니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예은이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고 집에는 늦게 늦게 들어갑니다 
빈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그리고 적응해 보려고요…예은이 없는 나를…

 

세월호 침몰사고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안산 단원고 2학년 유예은양)을 잃은 유경근(47)씨가, 사고 초기 부모들의 애타는 심경과 구조상황, 딸이 희생된 뒤 겪고 있는 심적 고통 등을 담은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부실한 구조·수색 작업에 대한 부모들의 원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싣는다.

 

 

390㎞, 3시간30분, 그리고 60만원.

 

10시50분 출발, 2시20분 도착. 진도실내체육관에. 보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더군요. ‘시속 200㎞가 맞아? 차가 왜 이리 늦어!’ 열흘 뒤 6장, 총 60만원의 과속 벌금스티커가 날아오더군요. 그렇게 예은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이야~ 전원 구조란다!”

 

전원 구조되었답니다. 실내체육관에서 구조자를 태우고 오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더 이상 들어오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어선이 구조한 아이들은 근처 섬으로도 갔다니 거기 있겠지. 팽목항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 중입니다?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아이들이 왜 안 오죠?”

 

“현재 함정 ○○○척, 항공기 ○○대, 잠수부 ○○○명이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왜 아무 소식도 없죠? 구조작업 하고 있는 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함정 ○○○척, 항공기 ○○대, 잠수부 ○○○명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해경 단정 운전연습 중?

 

그토록 심하던 뱃멀미도 잊은 채 1시간여…. 조명탄이 비추는 바다 위, 세월호 선수를 중심으로 해경 단정이 원형을 그리며 돕니다. “하염없이.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왜 구조를 안 합니까? 제발 우리 아이들 구조 좀 해주세요.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아이들을 꺼내올 거 아닙니까. 왜 안 들어갑니까.”

 

유난히 잔잔한 바다는 부모들의 울부짖음을 고스란히 잡아먹고 맙니다. 부모들을 태운 배가 사고 해역에서 멀어지자 일사불란하게 세월호 선수를 빙빙 돌던 해경 단정들도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제발·…제발….”

 

“우리가 다 보고 왔습니다. 구조작업 하지도 않으면서 왜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까.”

 

“아닙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는데 그래도 거짓말을 합니까.”

 

갑자기 휴대폰을 누르더니 “어떻게 된 거야. 부모님들 하는 얘기가 도대체 뭐야.”

 

“이제라도 구조작업 좀 시작해주세요. 제발···. 제발 우리 아이들 좀 꺼내주세요. 아직 살아있단 말이에요.”

 

“조류가 심해서 잠수할 수 없습니다. 조건이 되는 대로 구조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족들께서 원하시고 모두 동의해 주신다면….”

 

“날이 밝도록 왜 아무 소식도 없습니까? 살았건 죽었건 무슨 소식이 있어야 하잖아요.”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틀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들 다 죽는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사고 해역에 기상상황이 안 좋고 조류가 빨라서. 정조시간이 되어야….”

 

“다른 방법 없어요? 구조장비 많이 와 있다는데 왜 안 써요? 돕겠다고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안 해요?”

 

“가족 여러분이 원하시고 모두 동의해 주시는 방법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뭐라고요? 우리보고 구조 방법을 알려달라고요?”

 

‘아빠, 왜 나를 몰라봐?’

 

아담한 체형, 왼쪽 턱 옆 큰 점, 왼쪽 볼 주변 작은 점 두 개, 긴 생머리 40㎝.

 

“형! 예은이 아닌가 봐. 예은이처럼 안 생겼어. 아니지?” 왼 눈썹 위 상처, 치아 안쪽 교정기, 손과 발….

 

‘아빠! 왜 나를 몰라봐? 나 예은이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나왔는데….’

 

예은아! 돌아와줘서 고마워. 무서웠지? 힘들었지? 잘 견뎌줘서 고마워.

 

이제 집에 가자. 엄마한테 가자.

 

수학여행 간다고 집을 나선 지 꼭 열흘 만에 그렇게 타보고 싶다던 헬리콥터 타고 돌아왔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예은이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고. 집에는 늦게 늦게 들어갑니다. 빈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적응해 보려고요. 예은이 없는 나를.

 

딸 없는 세상에서…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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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근혜 물러난들 '정치'가 바뀔까?

세월호 참사는 '맘몬'에 굴복한 정치 때문!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문제는 정치다. 모든 시민의 생명과 복지를 최우선시 해야 할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렇게 처참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그 괴물은 결국 정치가 키운 것이다. 이제 그 괴물을 잘 다루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든가, 어딘가에 가두어 놓고 통제를 하든가, 그 모두가 어렵다면 아예 죽여 버릴 때가 됐다. 어느 쪽이든,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월호가 속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이른바 '구원파' 교회에서 "기업이 곧 교회요,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바로 예배"라고 설교했다고 한다. 돈을 부지런히 만들고 정성으로 섬길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맘몬교'의 교리를 설파한 셈이다. 맘몬은 성경에 등장하는 '돈의 신'이다. 예수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맘몬의 인간지배였을 만큼 그놈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그러나 예수의 우려는 적어도 한국에선 이미 현실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어디 구원파뿐이던가. 자인하지만 않을 뿐, 많은 대형교회가 실제론 맘몬교회와 진배없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회가 그럴진대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대다수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돈 많이 벌기에만 몰두한다. 다수의 정부 관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자리를 가급적 오래 꿰차고 있는 데에 집중돼 있다. 가능하면 그 자리가 퇴직 후의 돈벌이까지도 보장해주길 원한다. 직업이 무엇이든,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이들이 이렇듯 맘몬을 숭배하며 살고 있다. 기업윤리나 직업윤리는 교과서에나 있는 얘기다. 신자유주의는 맘몬의 현대적 이름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안에 '가만히 있던' 우리 착한 아이들을 삼켜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맘몬과 그 숭배자들이다. 맘몬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 공동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능력껏 각자도생할 뿐이다. 그러니 능력 없고 힘 딸리는 사회경제적 약자들만 죽어난다. 재벌과 대기업은 중소기업, 중소기업은 영세자영업자 위에 군림한다. 노동자도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은 알바를 얕잡아본다.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삶은 팍팍하고 불안하고, 심지어 수치스럽기조차 하다. 누구를 배려하고 챙겨줄 여유가 남아있을 리 없다. 한편, 하찮은 것이든 대단한 것이든, 권력을 쥔 자들은 대개 그 권력으로 어떻게든 돈을 좀 더 만들어보고자 온갖 짓을 다한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이 각 수준과 각 영역에 걸쳐 상존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사회에선 청해진해운이 돈에 눈이 멀어 노후 선박을 싼값에 사들여 무리하게 증축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을 고용하여 제대로 결박도 하지 않은 채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선급과 한국해운조합의 선박검사 및 안전점검 소홀이나 해수부와 해경 등의 관리 및 감독 부실 문제도 그러하다. 해경과 청해진해운, 그리고 민간업체인 언딘 간의 미심쩍은 관계도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대략 추측 가능한 것이다.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과 재난구조 시스템의 유명무실화는 당연한 귀결이다.
 
밝고 맑던 아이들이 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수장돼가는 광경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본 탓에 유난히 가슴 아픈 것이지, 사실 이러한 비극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도 세월호와 비슷한 원인에 의해 292명의 수몰자를 내며 침몰했다. 그 후에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와 대구지하철 화재,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의 대형 참사가 이어졌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늘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경시되는 맘몬의 세상,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부추겨온 신자유주의 정부 아래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아니 역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화돼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처럼, 국가는 어느 샌가 그 권력을 이미 시장에 빼앗겼다. 맘몬에 맞서 사회공동체와 그 구성원들, 특히 돈 없고 힘없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을 조정하고 분배와 복지 강화에 앞장서며 부자와 강자들의 횡포를 규제해야할 민주정치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호처럼 외치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기조를 노골화하며 노후선박 규제 완화를 포함한 무규제와 탈규제 정책들을 쏟아내더니, 현 정부는 아예 그나마 남은 규제를 '암덩어리'라고 공격하는 정도가 되었다. 국가와 정부는 맘몬의 하녀로, 자본의 머슴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의미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정부의 그 이음줄을 끊어내야 한다. 무엇이 신자유주의 정부를 연속 등장케 하는지 그 요인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최형락)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들로 꼽히던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정치구조를 살펴보자. 모두가 두 거대 정당 중 어느 한 정당이 정권을 홀로 차지하는 양당제-승자독식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왜 이러한 정치구조를 가진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에 쉽게 포획되는가? 우선 양당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기업 친화적인 보수파 정당이 집권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통계연구에 의하면 그 확률은 약 75%정도이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선거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중산층 혹은 중도파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집권 후 좌경화하여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파 정당에게 표 던지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소위 '75%의 법칙'은 한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노태우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총 6번의 정부를 만들어줬다. 그 중 노무현 정부만이 진보파 정당 하나로 구성된 정부였고, 김대중 정부는 진보파와 보수파 정당 간의 연립정부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단일 보수파 정당의 정부였다. 이는 1.5번의 진보파 정부와 4.5번의 보수파 정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보수파 정당의 집권기간은 정확히 전체의 75%였던 것이다. 
 
양당제에서는 설령 진보파 정당이 정권을 잡을지라도 (중도파 유권자들의 일반적 우려와는 달리) 그 정책 기조가 대단히 진보적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양당제 국가의 선거정치 결과는 통상적으로 중산층 유권자들이 보수파와 진보파 정당 중 어느 쪽에 표를 더 많이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표는 어차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진보파 정당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중산층 표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양당제 국가의 진보파 정부들이 기껏해야 중도적인 정책들을 양산해내는 까닭이다. 노무현 정부가 저소득층 혹은 진보파 시민들로부터 "좌회전 깜빡이 키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 같은 일은 사실 양당제 국가에선 다반사일 뿐이다. 
 
요컨대, 양당제 국가에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며 신자유주의에 과감히 맞설 정부의 탄생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反)신자유주의 기조를 분명히 하는 거대정당이 존재할 수도 없거니와, 그와 유사한 정당이 있을지라도 그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설령 집권할지라도 그 정부가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는 획기적인 진보정책을 내놓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치가만이 아니라 관료, 기업인, 언론인, 문화예술인, 학자, 목사 등이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가득 찬 각계의 수구 또는 보수 엘리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신자유주의 동맹'이 맺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기득권 수호와 확장을 위해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돌연변이적인 진보정부의 탄생을 똘똘 뭉쳐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거의 영속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이유이다. 
 
한국은 양당제 국가들 중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심화․확산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국가에 속한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에는 양당제의 신자유주의 촉진 효과를 일정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변수들이 존재한다. 비록 단일 정당 정부일지라도 그 정부의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독주와 독선은 우선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견제될 수 있다. 미국만보더라도 거기엔 그 권위가 대통령에 필적할만한 상원의원들이 100명이나 있으며, 각기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는 50개의 주정부들이 포진해있고, 완벽한 독립성을 갖춘 사법부가 버티고 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중시하는 청교도 사상과 문화, 저항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자주적 시민의식, 그리고 인간 모두의 평등한 자유를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 역사와 그 전통 등이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 중앙정부에 의한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강행 추진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는 그러한 상쇄효과를 낼만한 여타 변수들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겐 양당제-승자독식 정치체제의 신자유주의 공고화 효과가 거의 고스란히 발생한다. 그러니 우리가 맘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갖춘 뉴질랜드조차 그러했듯, 우리도 이제 정치제도의 개혁을 통해 양당제-승자독식 체제가 아닌 다당제-합의제 민주체제로의 전환을 적극 도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은 선거제도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과 같이 사회구성원들의 지지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우리 사회의 계층, 직능, 지향가치적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지금의 양당제는 무너지고 정책과 이념을 중심으로 세분화된 다당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공산이 매우 크다. 상상해보라. 노동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2004년 총선의 민주노동당 득표율인 13%만 얻어도 당장 39석짜리 진보파 유력정당이 등장한다. 과거의 '안철수 세력'이 만약 민주당과 통합하지 않고 평소의 25%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중도정당을 따로 설립했다면, 전면 비례대표제에서의 그 당은 단번에 75석 내외의 중견정당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새누리당 안팎에 존재하는 합리적 보수세력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뭉쳐 10%만 득표할지라도 그것은 30석의 유력한 중도보수 정당의 탄생을 의미한다. 녹색당이 분발하여 5%만 얻게 되면 우리는 15석을 가진 만만찮은 대안적 진보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청년당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식으로 진보-중도-보수에 걸쳐 셋 이상의 유력정당들이 상존하는 다당제가 구축되면 단일 정당이 의회의 다수파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따라서 연립정부 구성 압력이 일상화될 것이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연립정부 형성의 제도화를 견인하는 권력구조의 개편, 즉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전환할 때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합의제형으로 발전해갈 때 우리는 맘몬의 지배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 
 
합의제 민주국가에서는 돈보다는 생명,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형평성, 경쟁보다는 연대,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중도좌파 성격의 정부가 구성될 확률이 중도우파의 경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통계연구는 그것이 75%에 육박함을 일러준다. 또 다른 '75%의 법칙'이다. 중도정당(들)이 보수정당(들)보다는 진보정당(들)과 연립정부를 맺는 일이 훨씬 많다는 얘기이다. 중도정당의 통상적 선택이 그러한 이유는 진보파와의 연대구축이 보수정당의 지지기반인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수월케 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인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 등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선택의 폭도 진보 쪽이 훨씬 넓다. 사회구성원들의 대다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만큼 비례대표제 국가에는 그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여 생태, 환경, 안전,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강조하는 진보 및 중도진보 정당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극성기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돌파하여 지금까지도 의연히 안정적인 복지국가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들은 공히 비례대표제-다당제-연립정부로 구성되는 합의제 민주국가들이다. 그 자체, 합의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간에 강한 친화성이 존재함을 웅변한다. 
 
비례대표제의 다당제 및 연립정부 촉진효과와 상기한 두 쌍의 '75% 법칙'을 명심하며 우리도 이제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를 통해 합의제 민주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수년간 이것을 목표로 활동해온 <비례대표제포럼>의 청년위원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금 인터넷(http://reform2014.net)상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뀐들 맘몬이 물러나고 돈 중심의 신자유주의 국가가 인간 중심의 복지국가로 화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 해법은 정치체제의 변혁이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켜 놓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 판짜기'는 선거제도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서명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또 전한다. 미안하다, 너무나 미안하다...
 
이 글은 reform2014.net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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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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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리본'을 달지 않는 '대통령' 달겠다는 '국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4일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4월 17일 이후 두 번째 방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과 30분가량 면담을 하고, 바지선에 올라 잠수사와 만난 뒤 사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이 아이들을 꺼내주는 것도 아닌데 왜 왔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등, 박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 재방문은 그다지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회색 점퍼를 입었지만, 그녀 가슴에 노란 리본은 없었습니다. 이주영 장관을 비롯한 경호원들의 가슴에도 노란 리본은 없었습니다. 

' 노란 리본이 주는 연대의식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문제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자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노란 리본이 담긴 기본적인 마음을 박근혜 대통령이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란 리본이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는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의 핵심은 ' 내 생각이 당신과 같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당신을 원하듯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노란 리본을 통해 알려달라는 방식은 쉽게 말해 '연대'와 '공유'라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현장을 방문한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실종자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확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박 대통령이 원했던 유가족 위로는 그다지 성과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일부 유가족들은 모든 유가족도 아닌 소수의 유가족 면담은 말이 되지 않고, 사복경찰이 등장해 자신들을 막았다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았으니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려고 하는 마음과 상반된 그녀의 행동이 문제라는 점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2일이 넘었는데도, 대통령의 모습에는 국민의 아픔을 함께하겠다는 표현과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사고 수습에 대한 박근혜식 리더십'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로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대형 참사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너무 안일했고,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엠피터는 [시사] -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해경의 실체' 라는 글에서 해경이 선미구조를 했으면 더 많은 생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이후 JTBC의 뉴스에서도 일본 해양전문가도 해경이 선미구조를 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만약 배의 뒤쪽으로 갔다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재난대응의 총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사고 초기부터 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우리가 처음 사고를 접했을 때 생각했듯이 큰 인명피해 없이 사고가 마무리됐을 것입니다. 
 

 

 

 

 

 

온라인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회의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회의 모습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특징은 전문가에게 일처리를 맡기고 그는 뒤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9일 국가안전처(가칭)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재난 대응 전문성을 갖춘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은 '0명'이라고 보도했습니다. 

'3일 교육받고 재난담당 공무원 하랴? 재난 전문성 갖춘 공무원 0명인 이슈'(오마이뉴스)


리더는 모든 업무를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를 영입해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해경, 해수부, 안행부에서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한 공무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은 그 비판의 칼날을 행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원인'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민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학생부터 유모차를 끄는 아기 엄마들까지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 선원들이 육성으로 ' 다 나오라'고 말만 했어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더 부모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그대로 배에 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보니, 우리 국민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속상해'라는 팻말을 들면서 무기력함을 느꼈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를 통해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과 선조를 빗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가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모습과 과거 역사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도올은 특별 기고문에서 '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점들 들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우리 시대의 잘못된 지도자들을 그대로 놔둔 우리 스스로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노란 리본과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 

지금 전국적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드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진보네트워크의 '세월호 희생자의 무사귀환을 빕니다. 우리 동네 촛불' (http://candlelights.kr/)이라는 사이트를 보면 전국 수십 곳에서 세월호 관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내의 세월호 촛불 집회, 유모차 행진은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세월호 참사 관련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촛불 집회 외에도 언론의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집회와 5월 8일 카네이션 대신 촛불을 들겠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에만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도올 김용옥 세월호 특별기고문 중에서>

도올 김용옥이 주장하는 것은 더 이상의 애도보다는 분노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의로운 발언을 해야만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당연하게 믿어 왔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에 화가 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꿈이 검은 바닷속에 사라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노와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고, 예전과 똑같아질 것입니다. 

대통령에 책임이 없다고 하는 자들의 핵심은 이 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드는 것은 우리 시대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마음입니다.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사람의 촛불이나 노란 리본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런 슬픔과 분노에 동참하고 이 시대의 역사를 바꾸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이제 정말 바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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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이미 늦었다

 
석가탄신일 '간접 사과' 재탕에 야권 공세 본격화... "특검·국정조사 해야"14.05.06 18:16l최종 업데이트 14.05.06 20:50l이경태(sneer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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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서 축사에 앞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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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갑자기 잃은 유가족들께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두 번째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지난 2일 열린 종교인 지도자 간담회에서 예고했던 '대국민사과'는 아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 사람이라도 더 실종자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또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고, 대안을 갖고 앞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불기 2558년 석가탄신일인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라며 밝혔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사과 내용을 봉축메시지 중 일부로 넣은 셈이다. 

다시 말해 사고 발생 14일 만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참모들을 앞두고 했던 '간접 사과'와 별반 차이는 없는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한 진정성 논란이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기를 놓쳤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도입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도 전에 쟁점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시작일 뿐"

박 대통령의 이번 봉축법요식 참석은 역대 대통령 중에선 처음이다. 이번 행사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취지로 마련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해석'이 붙었다. 박 대통령의 영가등(죽은 사람,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다는 등)도 전날(5일)부터 내걸렸다. 여기에는 '세월호 희생자 무량수 무량광 극락정토 왕생발원'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목숨이 끝이 없고 빛이 끝이 없어서 번뇌 없는 세상에 다시 오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특별히 올해 봉축법요식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리로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세월호 사고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고 계신 유가족들께 부처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지도자로서의 다짐도 밝혔다. 그는 "이번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오랜 세월동안 묵인하고 쌓아왔던 잘못된 관행과 민관 유착, 공직사회의 문제 등을 바로 잡고,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서 바르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고자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무엇보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사과는 시작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가안전처 등의 즉흥적 대처를 내놓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해서는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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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사 법요식 참석한 정당 대표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8년 봉축 법요식에 각 정당 대표들이 참석 하고 있다. 오른쪽 부터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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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특검 도입 ▲ 국회 상임위 차원 청문회 실시 ▲ 국정조사 실시 ▲ 여야정 및 시민사회 참여하는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가칭)' 설치 등 구체적인 제안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면 정부 차원의 '셀프대책' 마련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라며 "정부는 국회가 주도하는 범국가적 위원회의 결론을 수렴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조직개편 역시 국회가 입법을 통해 결론을 낼 일"이라며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구상을 맞받았다.(관련기사 : 박근혜 "단단히 마음 잡고 국가 개조하겠다"
)

아울러 김 대표는 "장관 몇 명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책임을 물었다고 할 수 없다"라며 "유가족과 국민이 원한다면 특검을 포함한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4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 대부분을 처리한 만큼 5월 국회는 4.16 참사(세월호 침몰사고)를 다루는 국회가 돼야 한다"라며 "상황 수습이 끝나는대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도 가능할 것이다, 지방선거 때문에 국회를 닫아야 한다는 발상은 국민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4.16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6월 국회에서 원구성이 완료되지 않아도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하는 데는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6월 중 예정된 국감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야·정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범국가적 위원회 '안전한 대한민국 위원회' 구성을 위한 입법도 있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청문회·국정조사 등 수습 후 모든 상황을 국회 주도로 이끌어가겠단 주장이다. 

안 대표는 "정부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난 이상 지금은 국회가 역할을 다해야 한다, 관료 카르텔을 타파하고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기득권을 물리쳐야 한다"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민적 애도기간을 감안해 '상황수습'에 방점을 찍어왔던 야권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선 셈이다. 

희생자 가족 요구사항, 무시 하기 어려울 듯

새누리당은 이에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따른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정략적 공세"라고 일축하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세월호 사고 관련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는 등 사고수습에 집중하고 사고를 당한 가족들을 보듬는 일보다 이번 사고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공세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야권을 비판했다. 

또 그는 "혹여나 일부 세력이 정부와 대통령을 흔들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부추기는 등 이번 사고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야권의 요구를 일축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설사 박 대통령이 '대안 마련'을 이유로 미뤄뒀던 대국민사과에 나서더라도 상황을 비슷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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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제 아이가 웃을 수 있게 진실을 밝혀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사흘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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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전날(5일) 오전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 출구에서 특검 도입 및 청문회 개최를 관철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중이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에서 이를 무시하기 힘들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세월호 진상규명 특검은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은 유가족들과 국민 대다수의 요구를 정략적 정치공세라고 비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여당의 국정장악력도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202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유무선 임의걸기 병행,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2.2%p),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긍정평가는 52.9%였다. 이는 세월호 참사 후 2주 간 11.8%p 하락한 수치다. 

6.4지방선거 상황도 변수 중 하나다. 여당 내에서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민심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각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야권의 요구를 일축하면 자칫 더욱 세월호 참사에 따른 심판론 구도가 굳혀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사고 수습 후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새 국무총리 등을 인사해야 할 텐데 여기서 실패하면 또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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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52)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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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7  0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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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실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선거에서 낯선 인물 한 명이 당선됐다. 우동측 대의원이었다. 얼마 후 그가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란 설이 흘러나왔다.

6년 후 그는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고, 국방위원에도 선출됐다. 1년 뒤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고,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 때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1위원장과 함께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8인 중 한 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격적 승진과 인선에는 배경이 있다

그러나 2003년 처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그가 이렇게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없었다. 그의 급부상에 대한 의문은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송한 기록영화를 통해 풀렸다. 그가 6.25전쟁 시기 결성된 최고사령부 친위중대원이었던 것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혁명유자녀’ 교육기관인 만경대혁명학원 1~3기 졸업생을 중심으로 최고사령관의 친위중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김일성 사령관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실제로는 이들을 전쟁 현장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것이었다. 친위중대원에는 연형묵, 리길송, 박송봉, 현철해, 김시학, 전병호, 김환, 홍성률, 우동측, 태종수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후 폐허가 된 도시와 파괴된 경제 재건을 위한 군사위원회 회의 결과 친위중대원 상당수가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로 유학을 가게 됐다. 이들은 귀국 후 1960년대에 북한 당, 정, 군의 각 분야에서 활약했고, 1980년대 김정일 후계 체제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정치국 위원과 비서국 비서 등 당.군.정의 핵심 간부로 중용됐다.

우동측은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들어가 지도원, 부과장으로 활동하다 국가안전부로 자리를 옮긴 후 국장, 부부장을 거쳐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북한은 2009년 우동측이 국방위원에 임명된 뒤에야 이 같은 그의 이력을 공개했다.

2012년 4월 그는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제 친위중대원 출신으로는 태종수 함경남도 당책임비서 정도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만경대혁명학원 출신들은 여전히 당 정치국 위원(후보위원)과 군의 핵심부서에 포진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조직지도부 출신의 약진

다만 북한의 3~4세대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라는 배경보다도 북한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 ‘실력’을 앞세워 노동당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핵심간부로 등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지방당과 군 정치기관의 주요 간부의 산실로 기능해 왔는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노동당의 기능이 정상화되면서 조직지도부의 그러한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임 총정치국장 황병서 차수, 최룡해 당 비서 등과 함께 지난 2일 강원도 원산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리일환 신임 노동당 근로단체부장, 김여정 부부장, 김기남 당 비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 제1위원장, 최룡해 당 비서. [캡쳐 - 노동신문]

지난 4월 26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인민군의 정치사업을 총괄하는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황병서 차수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여부 등 그의 정치적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조직지도부에 들어간 후 인민군 총정치국과 조직지도부를 오고가며 주로 군 정치사업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 그는 리용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2010년 사망)-김경옥 부부장으로 이어지는 군사지도부문에 과장급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중반 황병서는 부부장으로, 김경옥 부부장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고, 2010년 9월 김경옥 제1부부장이 대장 칭호를 받을 때 황병서 부부장은 소장에서 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불과 반년 정도가 지난 2011년 4월 다시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빈번하게 수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올 3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3월 15일 대장으로 진급한 사실이 확인된 데 4월 26일에는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차수 칭호를 받았다.

그가 이렇게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은 후계자 시절 김정은 제1위원장과 인연을 쌓은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볼 때 김정은 제1위원장과의 인연 외에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정치적 배경과 업무수행에서의 ‘실력’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김정일 시대에 차세대 주자로 인정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중국의 한 학자는 2년 전쯤 “북한측 인사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후계자로 내정한 후 차기 김정은 체제를 이끌어갈 3~4세대 핵심인사 300여 명을 준비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되면서 이들 신진인사들이 하나 둘씩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70대의 김경옥 제1부부장이 아닌 60대 중반의 그가 총정치국장에 발탁된 것은 세대교체의 성격을 띤 인사이기도 하다. 인민군 총참모부(리영길 참모장)와 인민무력부(장정남 부장)의 수장이 50대로 교체된 것을 고려한 것이다.

김정은시대 인사스타일, ‘실무형 인사’ 중용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군 정치사업의 사령탑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바로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960년대 전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2013년 12월 사망)이 중앙당 간부로 있다가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잠시 활동하는 등 당과 총정치국의 보직을 오간 사례는 자주 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내의 군사부문은 군사부문의 당조직(당위원회)과 정치기관(총정치국과 정치부)에 대한 지도를 담당한다. 특히 조직지도부에 ‘총정치국 지도과’를 별도로 두어 인민군 총정치국 간부들의 당 조직생활에 대해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총정치국은 군대 내의 당 정치사업을 통일적으로 관장하며 이에 대해 당중앙위원회 앞에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비중 때문에 대체로 총정치국장에는 항일빨치산 출신의 ‘혁명1세대’들이 기용됐고, 전임 최룡해 총정치국장도 항일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황병서의 총정치국장 기용은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인사스타일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총정치국에서 당으로 자리를 옮긴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김수길 상장은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으로 있다 평양시 당책임비서로 임명됐다. 이런 사례로 볼 때 향후 당과 군의 정치기관(총정치국 간부와 정치위원) 사이의 간부 교류가 활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당과 군에 나타나고 있는 ‘형식주의’, ‘관료주의’, ‘귀족화’ 등의 병폐를 없애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특히 4월 25일 군사 훈련이 ‘형식주의’에 빠져 있고, 그 원인이 “당 정치사업, 군인들과의 사업을 잘하지 못한데 있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적이 나온 다음 날 총정치국장이 전격 교체된 데서도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총정치국장 외에 조직부국장과 선전부국장도 교체됐다. 총정치국의 3역(役)이 모두 바뀐 셈이다. 군대 내의 정치사업을 “참신하고 진공적(적극적)으로” 개편하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장성택 숙청이후 외부에서 ‘2인자’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최룡해 차수가 갑작스럽게 해임되고 노동당 근로단체담당 비서로 옮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룡해가 불과 몇 주 전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짧은 기간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는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 임명 전에 맡았던 당 근로단체 비서에 다시 임명돼 ‘원대복귀’한 셈이다. 그가 청년동맹에서 오래 사업했을 뿐 군의 정치, 선전사업을 담당한 경험이 없어 총정치국장 자리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5월 2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강원도 원산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식 참석에 동행해 준공사를 하고, 김 제1위원장의 옆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는 최룡해 비서의 모습은 통상적인 ‘좌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룡해와 함께 총정치국을 이끌었던 핵심인사들이 승진하거나 여전히 다른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의 정치사업에 대해 질책했지만 그렇다고 총정치국 간부들을 정치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아니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룡해의 당 비서 임명은 ‘당의 서열’상 좌천됐지만 리영호 전 총참모장, 장성택 전 부장의 숙청과는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최룡해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는 것을 견제했다는 설도 사실과는 다른 것 같다.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도대로 군의 정치사업 개편이 마무리되면 다시 조직지도부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까지는 잦은 인사 이어질 것

북한은 지난 4월 정치국 회의,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 당, 정, 군의 주요 인사를 마무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집권 3년 차를 맞아 일부 신진인사 등용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도를 짰다.

김영남, 리용무 등 원로그룹을 예우하며, 황병서 신임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오수룡 당 비서, 리일환 부장 등으로 대표되는 신(新)실세그룹을 전진배치 시켜 노.장.청 조화를 통해 ‘안정 속의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정.군의 중간간부층에서는 40~50대로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2년 4월 공식 출범 후 지난 2년간 나타난 리영호 총참모장과 장성택 부장 숙청, 잦은 군 인사 등을 근거로 김 제1위원장의 리더십과 체제안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잦은 인사로 조직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 입장에서 보면 ‘2세대’의 퇴진은 김정일 시대의 유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체제의 동요보다 김정은 제1위원장 중심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강화되는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당 총비서에 공식 취임한 김정일 위원장도 대대적인 세대교체와 인사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2010년 9월 3차 당 대표자회,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를 통해 당의 세대교체가 일부 이뤄졌지만 여전히 노동당 정치국 위원급 인사들에는 김정일 시대의 원로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아직까지 김정은 시대의 권력구도가 완성됐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 제1부부장,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사례와 같은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3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과 ‘실무형 인사’가 균형 있게 발탁될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내년 10월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35년 만에 7차 당대회가 개최될 경우 명실상부하게 김정은 시대의 권력구도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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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섬광비행체의 정체가 밝혀졌다

북의 플라즈마스텔스기의 진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5/06 [21:4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이 사진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이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 유쿠(Youku)에 오른 동영상을 퍼날라 2010년 7월 20일에 게시한 동영상에서 잡아낸 것이다. CNN은 미국 군사전문가의 논평을 인용하면서 섬광비행체를 촬영한 이 동영상은 합성사진으로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는 바로 저렇게 흰색 섬광처럼 보이는 거대한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면서 날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 자주민보, 한홋석 소장 제공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비행체는 여객기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의 각종 정보가 해류처럼 밀려다니는 인터넷에는 믿을 수 있는 정보도 있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생겨난 착오정보도 있고, 사실을 과장 또는 축소한 왜곡정보도 있고, 없는 일을 상상하여 꾸며낸 날조정보도 있다. 컴퓨터 합성사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그럴 듯하게 조작된 사진자료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와 외계비행접시를 혼동하는 경우는 착오정보다. 기괴한 몰골을 한 외계인들이 타고 지구에 가끔 내려온다는 외계비행접시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은 소련이 플라즈미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기 훨씬 이전인 1940년대부터 세간에 떠돌며 공상과학소설의 좋은 소재로 되었다. 외계비행접시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은 이온추진체에 관한 이야기도 작가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이지 국제과학계에서 거론되는 과학적 실체는 아니다. 

외계비행접시나 이온추진체와 달리, 플라즈마 방사기는 무슨 신묘한 무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군사장비다. 나는 지난 5월 5일 <자주민보>에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글에서 플라즈마 방사기와 그것을 장착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 관해 서술한 내용은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러시아, 중국, 미국에서 과학자들의 공식 언급 또는 유력한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객관적 사실이다. 다만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였거나 거의 완성한 것으로 보이는 북, 러시아, 중국은 그 특별한 전투기에 관한 군사기밀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으므로, 그 특별한 전투기의 실체가 언론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모호하게 보이는 것뿐이다. 

 
▲5일 기고한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 '라는 기사에 첨부한 사진으로 [<사진 5> 이 사진은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지역주민이 촬영한 것이다. 매우 밝은 빛을 발하는 섬광체가 날아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라고 필자가 설명글을 달았는데 다시 자료를 찾아 확인해 보니 이는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임을 중국 보도를 통해 확인하였다.  ©한호석 소장 


그러한 정보차단으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실체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그 전투기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는 사실관계에 맞지 않게 혼동된 정보도 있다. 이번에 발표된 나의 글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에 들어간 <사진 5>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 사진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 아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5962

나는 그 글에서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에 관해 서술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진자료의 신빙성에 관해 더 치밀하게 조사하지 못하였다. 사진자료의 신빙성에 관한 불철저한 조사가 착오로 촬영된 사진자료를 싣는 실수로 이어지고 말았다. 문제의 사진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었던 내막은 아래와 같다.  

중국 <신화통신> 2010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사진을 촬영하여 언론에 제공한 사람은 마쉬준이라는 지역주민인데, 그는 아내와 함께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붉은 섬광과 흰 섬광을 발하는 비행체가 자기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고 카메라로 촬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촬영한 섬광비행체는 샤오산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던 평범한 여객기였다. 

일반적으로, 여객기 기체에는 안전운항을 위한 섬광등이 여러 개 장착되었는데,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할 때는 그 섬광등을 모두 켜게 되고, 따라서 야간에는 여객기 기체가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고 섬광등 불빛만 매우 환하게 보인다. 문제의 사진을 촬영한 마쉬준은 여객기 섬광등이 발하는 눈부신 빛을 ‘이상한 빛’이라고 착각하고 촬영하였던 것이다.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섬광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섬광등을 켠 여객기였다는 점은 아래와 같은 사실에서 입증된다.

첫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인근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시각은 오후 8시 40분경인데, 문제의 사진이 촬영된 시각은 마쉬준의 카메라에 오후 8시 26분으로 표시되었다. 이러한 시차는 문제의 사진이 섬광비행체가 나타나기 이전에 여객기를 촬영한 것임을 말해준다.

둘째, 비행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되는 플라즈마 기류막은 언제나 흰 섬광만 발할 뿐이고 다른 색 섬광은 발하지 않는다. 반면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 중인 여객기는 흰색 섬광등과 붉은 섬광등을 모두 켠다. 문제의 사진에는 흰 섬광과 붉은 섬광이 모두 나타났으므로, 문제의 사진에 촬영된 것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인 것이다.   

셋째, 비행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되는 플라즈마 기류막은 전투기 기체 전부를 감싸는 것이기 때문에, 전투기 크기보다 훨씬 더 큰 거대한 비눗방울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의 사진에 나타난 섬광은 일렬로 장착된 섬광등 몇 개가 빛을 발하는 모습이므로, 문제의 사진에 촬영된 것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라 여객기인 것이다.   


섬광비행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사결과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 뉴스> 2010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민용항공국(CAAC) 대변인은 그 텔레비전방송 취재기자에게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사건에 대해 중국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중에 중국 당국은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베이징시보> 2010년 7월 26일부에 실렸다. 중국 당국의 조사결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를 촬영한 것이라고 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사진과 동영상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동영상들은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와 무관한 것들이며, 여객기를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들이다. 

둘째, 그 날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가 외계비행접시와 연관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 섬광비행체가 외계비행접시처럼 비행하다가 공중에 멈춰있었다는 당시 언론보도 내용은 오보다.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사건을 보도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2010년 7월 16일 보도기사에서 유씨 성을 가진 목격자인 버스운전사는 “그 물체가 마치 도망치듯이 서쪽으로 매우 빠르게 날아갔다”고 말했다.  

셋째, 샤오산국제공항 지상관제소는 그 섬광비행체를 레이더로 포착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섬광비행체의 항적이 지상관제소 레이더에 나타났다는 당시 언론보도는 오보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 당국이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섬광비행체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섬광비행체가 비행한 것과 그것을 레이더로 포착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레이더 사각지대에 자가용 항공기 또는 군용기가 나타난 것일 수 있다고 얼버무렸다는 점이다. 

섬광비행체는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으므로 당연히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고,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비행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군사기밀이므로 중국 당국은 레이더 사각지대에 나타난 자가용 항공기 또는 군용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그 다음날인 2010년 7월 8일 <중국일보>는 익명의 소식통이 전한 말을 인용하여 중국 당국이 이미 그 섬광비행체의 정체를 확인하였지만, 군사문제에 관련된 일이라서 관련정보를 언론에 공개하지 못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당국은 그 섬광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사기밀 노출을 꺼려하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ABC 뉴스> 2010년 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전에 계속된 섬광비행체의 출현이 군사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대도시 상공에도 출현하고, 국경지대 상공에도 출현하는 섬광비행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이외에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섬광비행체가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난 이후에도 섬광비행체의 출현은 심심치 않게 언론보도를 탔다. 이를테면, 샹하이 상공과 베이징 상공에 거의 같은 시각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적도 있다. <샹하이일보> 2011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8월 20일 오후 9시경 샹하이 상공을 비행하던 여객기 조종사들이 거대한 빛을 발하는 섬광비행체를 목격하고 이를 당국에 신고하였다고 한다. 조종사의 목격담에 따르면, 그 섬광비행체는 샹하이 상공 10,700m의 고공에서 비행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조종한 항공기가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올라갔을 때, “거대한 공처럼 생긴 흰색 비행체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목격자가 거대한 공처럼 생긴 흰색 섬광비행체를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봐서, 그 비행체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인 것은 분명하다. 목격담에 따르면, 그 비행체는 약 20분이 지난 뒤에, 흰색 섬광이 어두워지면서 차츰 사라졌다고 한다. 목격자는 그 섬광의 길이가 92km나 된다고 추정하였지만, 그것은 육안으로 거리측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착시현상이 아니면 오보로 보인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에서 방사하는 플라즈마 기류막의 길이가 그처럼 길 수는 없다. 

샹하이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나타난 때와 거의 같은 시각에 베이징에서도 섬광비행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과학지 편집인 경력이 있는 천체관측 동호인 유준의 목격담에 따르면, “흰색 비눗방울처럼 생긴 비행체가 베이징 상공에 나타났다가 5분 만에 사라졌다”고 한다.  

섬광비행체는 2012년에도 계속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중국 대도시 상공이 아니라 중국-인도 국경지대 상공에 나타났다. <인디아 투데이> 2012년 11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 육군부대와 인도-티벳 국경지대에 배치된 인도 국경경비대는 2012년 8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자무(Jammu)와 카쉬미르(Kashmir)의 라닥(Ladakh)지역 중국-인도 국경지대 상공에 섬광비행체가 100회 이상 낮과 밤에 계속 출현하였음을 상부에 보고하였다. 인도 육군부대는 산의 정상에 이동식 레이더를 끌어다 올려놓고 섬광비행체를 탐지하려고 하였으나, 육안으로 보이는 그 비행체의 항적은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무인정찰기까지 띄웠으나 아무 것도 탐색하지 못했다. 또한 인도 천문대의 천문학자들이 사흘 동안 그 섬광비행체를 관측하였으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였고, 인도 국가기술연구원과 국방연구개발원의 전문가들도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였다. 인도의 군사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그 섬광비행체가 중국이 심리전에 동원한 장비 또는 인도군 상황을 탐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섬광등을 비춘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위에서 서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중국인민해방군의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개발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 시험비행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완성하여 작전배치한 뒤에 비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에서 중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북도 그런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섬광비행체를 육안으로 보았다는 여러 지역의 목격담이 언론에 몇 차례 보도된 것과 달리,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섬광비행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의 항적이 한국군 레이더에 나타났다가 갑가지 사라진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북이 만약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시제기를 시험비행하였다면, 적아가 살벌하게 대치 중인 백령도 상공으로는 출동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더에서 항적이 갑자기 사라지는 북의 전투기는 올해 안에 또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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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역 세월호 참사 애도를 위한 추모 및 시위 개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5/06 15:03
  • 수정일
    2014/05/06 15:0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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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최초 발설자는?

등록 : 2014.05.06 11:06수정 : 2014.05.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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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의뭉스런 국가보며 커지는 음모론
세월호 참사 풀어야 할 ‘5대 의혹’ 집중 탐구

음모론은 어둠을 먹고 자란다. 명명백백한 사실 가운데 의혹과 불신이 깃들 자리는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스무 날이 가까워오고 있지만 사고와 관련해 분명한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사고 정황과 구조 상황의 전말이 파악되지 않았다. 희생자 수마저 아직 오락가락이다. 정부 사고대책본부는 국민 앞에 사실을 부풀리고 의혹을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지만, 의혹을 제기하거나 사실을 부풀린 국민은 ‘유언비어’ 유포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경찰은 “악성 유언비어 87건을 적발하고 56건을 내사 중이며 1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를 사칭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올린 이들, 실종자들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일삼은 이들도 있었지만, ‘한-미 해군 훈련 때문에 세월호가 항로를 바꿔 운항했다’ ‘대통령 방문 의전 때문에 3시간 수색을 멈췄다’ ‘잠수부들의 수색을 막고 있다’는 등 개인적인 의혹을 제기한이들에게도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종합편성채널 뉴스에 출연해 “정부가 민간 잠수부 구조 작업을 막았다”고 거짓 인터뷰를 했던 홍아무개(26)씨는 경찰에 자진 출석했는데도 지난 4월29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세월호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해내지 못하는 동안, 국민을 잡아들이는 움직임은 재빨랐던 셈이다.

 

홍씨는 구조 자격이 있는 잠수부가 아니었고 그의 말은 거짓임이 분명해졌지만 이후 다른 민간 잠수부들과 해군특수전전단(UDT)동지회 등에서 비슷한 증언이 나오면서 “결과적으론 홍씨의 말이 맞았던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말길을 막고, 자료를 은폐하면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하나의 의혹이 진실로 드러나면, 또다른 의혹들도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강한 심증이 대중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사회 전반에 세월호 사고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론이 움트고 있는 이유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증폭되기만 하는 의혹들을 열쇳말로 톺아본다.

 

 

 

“전원 구조” ‘역대급’ 오보의 진원지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 곳은 사고 초기 “단원고 학생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였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심각한 ‘유언비어’다. 경찰이 사소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누리꾼들은 즉각 색출해 수사 중인 것과 달리 ‘역대급’ 오보의 진원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사고 당일 단원고 관계자는 “오전 11시5분께 학생들이 전원 구조 되었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를 근거로 11시9분과 25분, 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와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각각 보냈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대부분의 언론사가 확인 없이 해당 소식을 타전했다. 그러나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이날 정오 공식 발표를 통해 “탑승객 477명 가운데 179명을 구조했으며 2명이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단원고 관계자는 대체 누구로부터 전원 구조 소식을 확인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단원고 쪽에서는 “학교에 해경·경찰이 참여하는 대책반이 꾸려진 가운데 현장에 있던 해경 관계자가 교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학생들이 전원 구조된 것 같다’고 통보해줬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경찰 쪽은 “학교 쪽에서 전원 구조됐다고 발표한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고 반박하면서 주장이 맞부딪쳤다. 현재까진 현장에서 “전원 구조될 것”이라는 해경 관계자의 말을 학교 관계자가 “전원 구조됐다”고 잘못 알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신 지난 4월29일 감사원은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예비 감사에 착수했다. 오보 문자를 보낸 경위를 비롯해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대응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16번 채널 왜 끝까지 16번 채널을 꺼두었나

 

 

국제 조난 주파수는 초단파무선통신(VHF) 16번 채널이다. 세월호는 침몰 사고와 관련된 내용을 모든 선박이 의무적으로 청취해야 하는 16번 채널이나, 관할 지역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전용 채널인 67번이 아니라 제주 관제센터 전용 채널인 12번을 통해 교신했다. 초보 항해사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16번 채널을 끝까지 이용하지 않은 채 꺼두었다. 강상보 제주 관제센터장은 “목포나 진도 등 해역에서 (세월호를 포함해) 우리 쪽으로 교신해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멀리 교신이 되는 것도 이례적”(<한겨레> 4월22일치)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선장과 선원들이 어떤 의도로 12번 채널과 교신한 것인지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진도 관제센터가 사고 당일 진도 해역 내의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10년 가까이 배를 탄 항해사 ㅇ(38)씨는 “원래 해역에 들어서고 빠져나갈 때 보고를 하게 돼 있다. 더욱이 배가 변침을 시도하고 속도가 떨어졌는데 왜 관제센터에서도 관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직무유기가 맞다”고 지적했다. 진도 관제센터는 세월호의 교신을 받은 제주 관제센터가 사고 상황을 전할 때까지 세월호의 사고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진도 관제센터의 책임이 거론되자 관제센터 쪽은 “연안 관제센터는 구역이 넓어 확대하면 다 체크할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4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조차 확인할 수 없는 관제센터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152분 12일 동안 숨겨왔던 영상들

 

 

선장과 선원들만 매뉴얼을 어긴 것이 아니었다. 해경도 스스로 만든 매뉴얼에 따르지 않았다. 지난 4월28일 해경은 언론의 거듭되는 요청 끝에 사고 당일 구조 동영상을 공개했다. 당초 “수사 증거자료는 일절 보여줄 수 없다”며 12일 동안 숨겨왔던 영상이다.

 

해경은 지난해 7월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서의 대응은 달랐다. 배가 급선회한 아침 8시48분부터 세월호가 해상에서 모습을 감추기까지 152분 동안 해경을 비롯한 정부의 대처는 “구조하려는 의지가 있었느냐”는 의구심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반드시 전복 사고시에는 내부 생존자들이 느낄 공포를 고려해서 규칙적으로 선체를 두드려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전복시 신속한 공기 주입은 전복 선박 내부의 생존자 생명을 유지시키고 침몰을 방지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모두 해경의 구조 매뉴얼에 나와 있는 지침이지만 현장에서 이행된 것은 없다. 공기 주입은 이틀이 지난 4월18일에야 이뤄졌고, 이날 물 위에 남았던 뱃머리마저 가라앉았다.

 

“배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선원을 구조 작업에 활용해야 한다” “선박에 관련된 사람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매뉴얼에 따랐더라면 탈출한 선장과 선원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가려내려는 노력은 했을지 모른다. 매뉴얼엔 그물, 로프, 줄사다리 등 구조 장비를 활용하도록 돼 있지만, 구조 동영상 속에서 해경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망치가 전부였다. 선박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는 어민 김성모(52)씨는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배에 진입해서 방송이나 확성기로 승객들한테 비상 탈출을 유도하고 일부는 바깥 창문을 깼어야 하는데 동영상을 보니 도대체 무슨 구조 활동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실한 초동 대처가 입길에 오르면서, 공개된 동영상도 편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해경에 ‘불리한 부분은 삭제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동영상은 오전 9시28분부터 11시18분까지 1시간50여 분을 기록하고 있지만,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의 길이는 9분45초 분량이다. 해경은 “때때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해경이 사고 당일 언론에 제공한 동영상 캡처 사진이, 4월28일 제공한 동영상 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학생’으로 알려져 지난 5월2일 경질됐다./뉴시스
476명 세월호 탑승자 수조차 오락가락

 

세월호 탑승자 수조차 아직 확실치 않다. 탑승자 수는 사고 첫날부터 477명→476명→459명→462명→475명으로 거듭 조정되다 4월18일 비로소 476명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지난 4월29일 <연합뉴스>가 선원 명단에서 누락된 아르바이트생 4명의 실종 상태를 확인하면서 그마저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이유로 탑승자 명부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사실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탑승자 명단을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사고 이후 해경이 운영하고 있는 ‘세월호 탑승자 문의처’에 지난 1일까지 접수된 신고도 400여 건이나 된다. 허위 신고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추가 탑승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경은 신고자들의 실제 탑승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다.

 

 

 

언딘 청해진해운, 해경과의 유착 관계

 

“언딘은 경찰이나 군보다 뛰어난 잠수업체로 심해 잠수 전문 구난업체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된 민간 구난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언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지난 4월19일 고명석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의 설명이다. UDT 동지회는 지난 4월24일 “사고 초기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해경의 안일하고 관료적인 자세로 묵살됐다”며 항의성명을 내고 그 배후로 언딘을 지목했다. 민간 잠수부 단체인 한국수중환경협회의 황대영 대표도 “언딘이 구조 작업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폭로했다.

 

의혹이 깊어가는 가운데 고명석 대변인을 비롯한 정부 쪽의 입장은 “사고 해역의 조류가 강해서 민간 잠수부들은 10분도 채 잠수하지 못하고 언딘만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30일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해경이 해군의 최정예 잠수요원인 해난구조대(SSU) 대원과 UDT요원조차 “민간업체(언딘)의 우선 잠수를 위해 접근 통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침몰 이튿날인 4월17일 물살이 느린 정조 시간에 19명의 정예요원이 대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딘은 정말 ‘경찰이나 군보다 뛰어난 잠수업체’일까. 언딘이 자사 누리집에 소개한 구조 작업 내역을 살펴봤다. 대양5005호 좌초선 인양을 위한 검사(2008년), 금양98호 선체 수색 및 페인트 샘플채취(2010년), 화물수송기 기체 잔해 인양 및 블랙박스 회수(2011년), 퍼시픽케리어호 선수 인양(2012년). 정부 쪽의 설명대로 “뛰어난 잠수업체”인지는 몰라도 인명 구조 실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언딘 쪽은 또 “해난사고 처리는 국제구난협회(ISU) 회원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자신들이 국내 유일한 ISU 회원”이라고도 홍보해왔지만 이 또한 사실무근이다. 임채현 목포대 교수의 논문 ‘해양구난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적 연구’(2012)를 보면, 해양 구난업체들의 모임인 ISU는 공인을 위한 조직이라기보다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에 가깝다. 2012년 기준 29개국 59개 업체가 가돼 있다.

 

협회에 가입하려면 재정 상태, 구조 실적, 평판, 보유 장비 등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정회원 등록 기준은 기존 정회원의 추천과 가입비 납부다. 대신 다른 회원업체가 1곳이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정부의 설명과 달리, 이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양구난 계약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험회사들이 ISU회원업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형 사고에 주로 ISU 회원업체가 참여하는 것 뿐이다.

 

언딘이 민간 잠수부들의 실적을 가로채려 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강대영씨 등 민간 잠수부들은 JTBC 뉴스를 통해 “(사고 시신수습과 관련해) 언딘 쪽 임원이 ‘저희가 전체 맡아서 하는 일인데 다른 업체에 뺏기게 되면 내가 회사 사장으로부터 굉장히 실망을 얻는다. 내가 뺏기게 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있겠느냐”며 시신 수습을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해경과 언딘은 사람만 막은 것이 아니다. 4월22일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추천한 바지선 현대보령호가 사고 해역인근에 도착했지만, 투입을 미루고 언딘의 바지선 ‘리베로’를 받았다. 이틀 넘게 해상에서 대기한 현대보령호는 철수했다. 리베로는 청해진해운의 모회사인 천해지가 건조한 바지선으로 4월17일 진수식을 해 최종안전 검사조차 받지 않은 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진해운과 언딘, 해경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2일 경질된 이용욱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세모그룹에 근무한 적이 있고 구원파 신도였다는 사실도 이같은 의혹에 심증을 더한다. 서해지역의 한 구난업체 관계자는 “침몰 사고에서는 보통 가장 가까운 민간 구난업체, 개인 등 누구나 구조 활동에 뛰어든다. 계약이고 뭐고 따지지 않는다. 왜 해경이 한 업체에 독점권을 줬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는 걸 독점시키냐”고 말했다.

 

해경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초동 구조와 관련해 논란이 일자 지난 4월28일 구조 장면을 담은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뒤늦게 공개했다./서해지방경찰청 제공
해경과 언딘을 잇는 중간고리로 한국해양구조협회도 의구심을 모으고 있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이사가 협회의 부총재직을 맡고 있고,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최상환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등 해경 전직 간부들도 부총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같은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해경 출신으로 해양구조협회에 재취업한 인원이 6명”이라며 “퇴직 당시 계급이 높을수록 높은 직급으로 재취업했다”고 공개했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인명 구조에서 민관 협력 구조체제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설립한 해양구조협회는 해양경찰청 산하 법인이다. 해경은 해양 사고가 나면 협회에 구조 동참을 요청하고 협회는 회원사를 모은다는 계획이지만, 협회의 회원이 아니면 구조 활동 참여가 어렵다. 민관 협력을 통해 구조를 강화하기보단 ‘이익단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도 해경은 장비와 어선을 모두 확보한 뒤 현장을 찾은 UDT 동지회에 구조 기회를 주지 않고 “일단 해양구조협회에 접수를 하라”고만 거듭했다. 권경락 UDT 동지회장은 “천안함 사고까지 유연하게 유지됐던 해상 사고 현장에서의 민관 협력이 이번 사고에서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진도를 찾았던 한 민간 잠수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경은 언딘이 구조에서도 나름대로 뛰어난 업체라고 믿었는데 인양이 주목적인 업체여서 구조 경험이 많은 잠수부를 많이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결국엔 자기들만의 기득권, 자기들만의 공생 관계를 유지한 것인데, 결과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 해경도 몰랐을 거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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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박 대통령 조롱 칠판에 쓴 글귀가 섬뜩합니다

 

[편지] 17년차 현직 교사가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글

14.05.05 20:57l최종 업데이트 14.05.05 20: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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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조문객이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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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자판 앞에 앉았습니다. 글로 대통령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미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는데, 자꾸만 오타가 납니다. 아마도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엔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한 방에 훅 간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듣는 터라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번에 피해를 당한 단원고 학생들 또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17년차 현직 교사입니다. 그들이 마치 제자들인 것만 같아 제 가슴속 시계는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져 있습니다. 어느 국민이 안 그럴까마는, 보름이 넘도록 '멘붕'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입니다. 수업은 고사하고 아이들과의 대면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흔히들 '시간이 약'이라고 위로하듯 말하지만, TV로 생중계된 그 참담한 장면이 쉬이 잊히질 않습니다. 악몽을 꾼 듯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잠드는 때도 많습니다. 도무지 남 일 같지 않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에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이 황망함을 스스로 달래볼 요량으로 요 며칠 동안 퇴근 후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헌화를 하고 머리를 조아릴 때마다 어김없이 눈이 그렁그렁해지지만, 종일 끊이지 않는 조문 행렬을 보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위로가 되는 걸 느낍니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다 보면, 이 참담함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고, 그래서 자주 분향소를 찾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구조작업을 제주도 해녀 분들에게 맡겨라'

그런데, 그 위로와 힘은 낡은 휴대전화 배터리 닳듯 그리 오래가질 못합니다. TV와 신문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참사 관련 뉴스들 때문입니다. 정부의 '바람'대로 그 모든 게 유언비어라고 믿고 싶을 정도입니다. 사고 발생부터 초동 대처와 사후 수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정부의 무능함을 눈 뜨고 봐야 하는 게 너무나 괴롭습니다.

귀가 있다면 들어 아실 테지만, 기성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생 아이들조차 그런 정부를 조롱합니다. 숫제 '우리 학생회가 정부보다 더 낫겠다'거나 '차라리 구조작업을 제주도 해녀 분들에게 맡겨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저런 무능한 관료들이 고액 연봉 받는다고 생각하니, 엄마 아빠가 뼛골 빠지게 벌어서 내는 세금이 아깝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할 아이들에게 이번 참사는 쉬이 치유되기 힘든 심각한 상처를 입혔습니다. 가족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솔직한 민낯을 몸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치지 않은 '교훈'입니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장난처럼 칠판에 적은 이 글귀가 그래서 더 섬뜩합니다.

'OECD 대한민국, 각자도생 불신지옥.'

그 와중에 대통령님의 뜬금없는 '국가 개조'와 '적폐 일소' 발언이 나왔습니다.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나 국무위원들 앞에서 어렵사리 행하신 '대국민 사과' 자리에서였습니다. 우선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 그것도 여성 대통령의 입에서 반세기 전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기에나 어울릴 법한 '군대 용어'가 튀어나오는 것에 적이 놀랐습니다.

대통령님 후보 시절, 많은 정치인과 대학 교수들, 심지어 몇몇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로부터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을 읽고, 저 역시 고개를 끄덕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여성 대통령의 출현 자체가 역사의 진보라는, 섣부른 이야기조차 공감하던 때였습니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기대하는 나름 비판적 지지 입장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지금 대통령님에게는 '무늬만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에서 드러났듯 발 빠른 상황 판단과 일사불란한 대처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온 국민들의 상처를 가슴으로 품어 안는 여성적인 온화한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국민들과는 괴리된 채, 기껏해야 수하인 국무위원들에게나 영이 서는 '불통' 대통령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대통령,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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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경기 안산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화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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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대통령님께 정치지도자로서 자질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구중궁궐에 갇혀 들끓는 민심을 외면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께 투표했다는 사람들조차도 '대통령께서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시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할 정도입니다.

모든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정부의 모든 관료들은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입만 눈이 빠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관료주의의 적폐를 도려내는 칼날이 향해야 할 곳이 다름 아닌 대통령님 자신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단언컨대, 관료들 모아놓고 치도곤 하듯 불호령 내려 봐야, 시늉만 할 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성이라는 게, 미혼이라는 게 지도자로서 결코 문제될 건 없지만, 적어도 이번 참사와 맞물려 대통령님에게는 크나큰 흠결로 남을 것 같습니다. 온 나라가 상중인 마당에 요즘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흥겨울 리 없지만, 그때마다 사람들끼리 술안주삼아 '씹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님을 찍었든 찍지 않았든,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국가안전처? 어디 담당 부서가 없어서 사고 대처를 못했나? 대통령이 손수 낸 건 아닐 테고, 이건 대체 누구 아이디어일까? 아무튼 장관 자리 하나 늘게 생겼네. 누가 낙하산으로 내려올까? 대통령이 자기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람 보는 눈이라도 있어야지. 이건 뭐,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가 없어."

대통령님이 보시기에 정부 관료들의 하나같은 무능함이 개탄스러우시겠지만, 그보다 국민들이 정작 괴로워하는 건 무조건 수하들만 탓하려는 대통령님의 뻔뻔함입니다. 그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지만, 그들도 개인적으로 보면 하나같이 유능한 재원들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지만, 대통령님 자신이 '머리'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애꿎은 '손발'만 나무래서야 되겠습니까.

세월호와 함께 이렇듯 정부에 대한 신뢰도 침몰했습니다. 이젠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국민이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정부뿐 아닙니다. 방송도 신문도 신뢰를 잃었습니다. 오래 전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어용 언론', '관제 언론'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고,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해준 게 대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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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시민들 "기다릴께, 기도할께" 세월호 침몰사건 1주일째인 22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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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이 지금껏 특허처럼 써왔던 '원칙의 지도자',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도 더 이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숱한 공약 파기로 '원칙'을 말하기는 이미 머쓱해진데다, 이번 일로 '능력'을 내세우는 건 남우세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간신'들만 넘쳐나는 판에 장관 몇 명 교체하고, TV 앞에 나와 숙연한 표정으로 머리 몇 번 조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작년부터 터져 나온 국정원과 검찰 등 국가기관의 연이은 범죄 행위는 근근이 버텨냈을지 몰라도 이번 참사의 후폭풍은 쉬이 잦아들지 않을 겁니다. 국가가 수백 명의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의 부정부패와 정부의 무능이 합작한 '집단 학살'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며, 광주에서는 촛불이 아닌 횃불을 드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끝으로, 분향소의 노란 리본에 적힌 글귀 한두 개 소개합니다. 내용으로 미루어 고등학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읽는 순간 유가족도 조문객도 아닌, 대통령님이 읽으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아, 고맙다. 너희들로 인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깨달았다."
"영어 교사에서 이민으로 장래희망 바꿈."

'국가가 국민들에게 해준 게 대체 무언가'를 아이들이 묻고 있습니다. 차라리 어른들이 쓴 글이라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접고, 대한민국을 버리려 합니다. 대통령님은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이마저 제대로 된 국가관을 심어주지 못한 저희 교사들 책임이라며, 다시금 '적폐 일소' 운운하실까 심히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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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화작가가 쓴 세월호...그 진실...

어른들이 제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입니다
 
김하은  | 등록:2014-05-06 09:13:40 | 최종:2014-05-06 10:12: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느 동화작가가 쓴 세월호...그 진실...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하기 두려운 때입니다. 
저는 자유계약직 감정 노동자, 동화작가입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지요. 그리고 저는 노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누구든 정치와 권력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이들을 혐오하고 감시하는 시민입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며칠 동안 충격과 공포, 분노에 사로잡혔다가 김어준 씨가 한겨레 tv에서 진행하는 ‘세월호 번외편’을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구조가 늦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생각하기 싫지만 ‘돈’ 때문일 거라는 추론이 나왔습니다.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 살짝 정리하자면 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전 8시... 해양수산부 차관이 주관하는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인양 – 부산 은진사, 1개월 소요 예상’이라고 한 업체를 지정하는 일이 벌어졌고요. 이후 ‘은진사’는 회의 속기록을 받아적던 사람이 ‘언딘사’를 잘못 적은 것이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문건은 한 번 더 바뀝니다. ‘언딘사’로 말입니다.

‘구조’가 아니라 ‘인양’을 먼저 이야기했고, 현재는 그 문건에서 ‘인양’과 ‘은진사’, ‘언딘사’로 썼던 두 문건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 현재 존재하는 문건에는 이 문장이 삭제되었고요.

어쩌면 승객들을 구할 생각보다 배를 인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 시발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해수부 차관 혼자 내린 결정일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혹시 그 영상을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찾아보세요. 우리가 몰랐던 해상법에 관련된 조항들이 언급되니까요.

그래서 5월 1일 오전 11시, 경기도에서 팽목항으로 갔습니다. 
진짜 멀더라고요. 차로 왕복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니까요. 팽목항으로 가는 길 곳곳에 표지판이 있습니다. 사고 현장, 대책본부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었고요.

팽목항에 도착하기 전에 진도 합동분향소에 들렀습니다. 
수도권에 세워진 분향소처럼 위패가 있거나, 몇 명을 위한 분향소인지는 언급되지 않고, 다만 영정이나 위패가 있어야 할 곳에 수백 송이 꽃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국화꽃을 놓고 분향을 한 다음, 바로 옆에 있는 공간으로 갔어요. 
거기에 탑승객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편지들과 그 이후 사람들이 느낀 감정을 나타낸 편지들, 쪽지들, 노란 리본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같이 간 선배와 함께 울었습니다. 큰 소리로 울기도 죄스러운 곳이었어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자리에 유족이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드디어 팽목항에 도착했습니다.
유족과 아직 아이들을 찾지 못한 부모들, 기자들, 조문객들, 자원봉사자들, 경찰들, 참 사람들이 많더군요. 헬기가 뜨고 해양경찰청 순찰함이 운항하고 수십 개 천막이 있기 전에 팽목항은 고요한 항구였을 겁니다.

사고 현장이 어디인지는 원불표 스님이 기도를 드리는 방향을 보고 짐작했습니다. 
그 바다를 한참 바라보는데 안개가 짙어 잘 보이지 않더군요. 그때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원봉사자들을 만났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사고 당일, 배에서 뛰어내린 학생들이 마을에 들어섭니다. 
어민들은 젖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고 놀라지요. 잠시 뒤 지시가 내려옵니다. 티셔츠 300개를 준비하라고 말이에요. 진도는 좁은 섬이라 그 수를 다 맞출 수 없어 인근 마을까지 연락해 그걸 구하고 빵과 우유까지 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옵니다. 그 숫자만큼 필요 없다고, 100개면 충분할 거라고.

오후 5시, 배 안에 있던 학생과 빠져나온 아이가 전화 통화를 합니다. 
그 아이는 “엄마, 빨리 구하러 와.” 하고 이야기했고 그 통화를 주민이 같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사고 소식을 듣고 출동한 다른 바지선을 언딘이 올 테니까 가라고 합니다. 
바지선 교체에 8시간이 소모됩니다. 참 더디지요?

그러는 사이, 민간 잠수사들 사이에 연락이 돕니다. 
큰 해난 사고가 발생했는데 아이들이 갇혔으니 출동하자는 문자입니다. 저도 그 문자를 받았다는 분이 친구와 한 이야기를 사고 이틀째 되는 날 장보러 갔다 들었습니다. 자기도 가야겠다는 말이었어요.

민간 잠수사들이 진도로 내려갑니다. 
수도권이었다면 5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말이지요. 
그런데 해경이 막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잠수사와 언딘이 바지선을 설치할 대까지 기다리라는 해경 사이에 실강이가 벌어집니다. 며칠을 그 상태로 있던 민간 잠수사들이 화를 내고 철수합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들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기자들은 대책본부나 해경, 언딘측이 발표하는 바를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는 겁니다.

둘째, 아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살려달라고 위치를 나타냈다는 증거를 조작이라고 해경이 말합니다.

셋째, 탑승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숫자는 계속 바뀝니다.

넷째, 민간 잠수사들이 한 말 중에서 의미심장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초기에 크레인 몇 대가 쓰러지는 배를 받치기만 했어도 그 배가 침몰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직접 행동합니다.
지금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연합뉴스 기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go발 뉴스’를 진행하는 이상호 기자에게 연락합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고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 내려오라고 말입니다. 이상호 기자가 진도로 내려와 생중계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건이 터진 첫날, 대안 TV 들이 진도로 내려왔습니다. 1인 미디어 시대이니 제가 처음 보는 1인 방송국 이름들도 참 많았는데요. 이들이 아이들이 구조되는 모습을 촬영하러 왔다가 정부가 하는 일에 분노하여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더 이상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검으로 돌아왔지요. 대통령이 왔다간 날도, 사과했다는 날도,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 체육관에 들렀던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면서 환하게 웃는 사진도 인터넷에 있더군요.

유족들은 분노합니다. 
분향소를 지키던 유족은 분향하러 온 해경청장에게 의자를 던졌습니다.
살아올 수 있는 아이들을 당신이 죽였다며 화를 냈습니다.

총리가 내려와도 사고 현장은 가지 않았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앉아서 사과했고, 
심지어 재난을 담당할 컨트롤 타워는 총리와 안전행정부 소관이지 청와대 책임은 아니라 합니다.

수많은 국민이 죽었는데 책임질 수 없다 합니다. 
사과 했는데 왜 그러냐고, 대통령이 조문할 때 옆에 있던 할머니를 섭외 및 연출한 게 아니냐고 하자 펄쩍 뜁니다.

4월 30일, ‘박사모’ 카페에 ‘주군이 위험하다’ ‘유족들은 대부분 노빠들이다’ ‘좌빨들이다’ 뭐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니고 ‘주군’이라뇨, 혹시 ‘주군의 태양’이라는 드라마에서 귀신 보는 태양이라는 여자친구를 둔 그 ‘주군’은 아니겠지요? 스스로가 시민임을 포기하고 '주군’ 아래 모인 신하와 같은 종속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다시 팽목항 현장으로 돌아가자면 유족들이 이리 말합니다.
아이들이 살던 곳이라 집을 떠날 수는 없는데 직장은 옮기고 싶다고요. 
동정하고 측은해 하는 건 싫다고요.
삼풍백화점 붕괴 사태 때 유족들 중 많은 분들이 이민을 갔답니다.

스스로 진실을 알려달라고 기자를 부르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아직 거기 있습니다.

다이빙 벨이 철수할 때 해경과 큰 충돌이 있었다는 영상도 있습니다. 
위치를 거짓으로 알려주고 가이드 라인을 끊고, 부딪힐 뻔 하고, 결국 잠수사를 죽이겠다 싶어 ‘실패’라고 외치게 만듭니다.

저도 이런 나라에서 사는 게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민을 가면 덜 부끄러울까요?
이민자들은 출신국이 어딘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한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이웃들이 반응합니다. 이거 너희 나라 아니냐고, 그래서 지금 이 사태를 보는 재외국민들은 힘들 겁니다.

배에 있던 아이와 통화했던 그 아이, 
살아남았지만 어른들이 친구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아이, 얼마나 힘들까요.

유족들은 말합니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자식들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라고.

그 속내는 이런 게 아닐까요. 제발 미안해만 하지 말고,
우리가 최선을 다했고 목청껏 외쳤으나 이 먼 진도에서 한 말들이 바깥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미치겠노라고.

지금 진도에는 정부가 없습니다. 
정부가 노력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혹시 그 배에 해경이나 정부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 주세요.”
자원봉사자가 말했습니다. 선거로 저들의 오만을 무너뜨리고, 나이 드신 분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그 상황에서도 1면 기사로 학교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데 이건 서울시 교육청이 무상급식을 하느라 예산을 돌려썼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언론들을 혼내달라고.

“저희도 여당 야당 다 마음에 안 듭니다. 하지만 걸레보다 행주가 낫다고, 하야할 마음이 없는 대통령, 사과 따위는 모르는 대통령, 혼내야 하지 않을까요?”

한 번 경험했습니다. 그래요, 탄핵. 탄핵 조건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주군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노빠들의 색이라며 유족들을 노빠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로에 무수히 그어진 노란 선들, 전봇대에 칠해진 노란 선들, 야생동물 주의, 노란색 신호등, 모두 노빠냐고.

이제 여러분들은 뭘 하시겠습니까.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계실 건가요, 아니면 촛불 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고 참석한 걸로 그치실 건가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셨다면, 조금이라도 이 사회를 바꾸시겠다고 마음 먹으셨다면 지금 움직이셔야 할 때입니다.

글로 혼을 내든 투표로 혼을 내든, 이 사회를 바꾸어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어른들이 제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때입니다.

팽목항에서 정부는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여덟 개 조로 나뉘어 빨래와 식사, 청소를 하고 말동무를 하며, 시신을 닦습니다. 봉사자들 조끼도 자비로 맞췄습니다. 유류품은 함부로 관리되어 유족들에게 상처를 또 줍니다.

이것이, 제가 본 현실입니다.
이 글은 무한 공유 허락합니다.
저도 제 가족 중 한 명을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사흘 동안 실종되었고, 그 사흘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울었습니다. 그것도 힘들었는데 진도에서는 보름 동안 울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비극을 써도 사회보다 덜 슬프고, 희극을 써도 관료보다 덜 명랑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만난 카드 여왕을 내가 현실에서 만나는, 판타지를 눈으로 보고 있는 동화작가가 씁니다.


김하은(동화작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342&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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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분노 "세월호 정부 책임져라"

유모차 끌고 나와 정부늦장대응 항의 행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5/06 [10: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세웡호에 대한 정부 대응에 책임을 묻는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항의행진을 진행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세월호 참사로 희생 된 학생들과 실종자, 사망자들을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젊은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엄마니까 말할 수 있다’2차 유모차 행진은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오후 온라인 커뮤니티 마담방배와 서초엄마들의 모임, 자연출산카페 등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홍대입구역에서부터 주변 거리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커뮤니티 회원 200여명은 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를 끌고 홍대입구역에 모여 홍대 걷고싶은 거리, 상상마당을 거쳐 다시 홍대입구역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1시간 30분 동안 실시했다.
 
▲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많은 의혹이 제기 되면서 국민들은 세월호의 사고 원인과 늦장 구조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유모차 행진에서도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구호가 등장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 우리가 침묵하면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 될 수도 있다는 구호에는 언론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행진 참가자들은 '어린이날 최고의 선물은 안전한 나라입니다', '침묵은 금이 아녜요. 내 아이 위해 큰 목소리를 냅시다', '아이들은 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다렸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행진 주최측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날이어서 고민이 많았으나 물 속에서 차갑게 식어간 생명들을 두고 내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며 "놀이동산, 동물원에 가서 아이를 웃게 해주는 것보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 초롱한 아이의 눈망울과 다시는 이런 비국이 없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눈빛은 우리 사회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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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의 박원순 시장을 향한 끝없는 비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5/05 13:08
  • 수정일
    2014/05/05 13: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 vs 박원순, 재난을 대하는 차이점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의 박원순 시장을 향한 끝없는 비난
 
임병도 | 2014-05-05 08:03: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사고가 아직 수습도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아찔한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5월 2일 오후 상왕십리역에서 성수역 방면으로 가던 지하철 2호선 전동차 2대가 추돌했습니다. 

이날 사고는 앞서가던 전동차가 상왕십리역에서 차량 이상으로 잠시 정차하고 있었는데 뒤따르던 전동차가 '자동 안전거리 유지 장치'의 고장으로 앞 전동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아 발생했습니다.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 사고로 238여명의 승객이 부상을 당했고, 한양대병원과 건대병원, 고려대병원 등으로 나뉘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사고가 나자 많은 시민들은 세월호처럼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을 했습니다. 이 사고로 서울 지하철 일부 구간 운행이 정지됐으며, 일대 교통체증이 극심해지기도 했습니다. 

'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의 박원순 시장을 향한 끝없는 비난'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사고가 나자 조선일보는 5월 3일 신문에서 박원순 시장을 향해 비판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5월 3일 '사고 2시간 지나서야 나타난 박원수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원순 시장이 사고 현장에 2시간이나 늦은 오후 5시 40분이었다고 비난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늦은 이유가 교통혼잡 때문이라는 서울시 설명에 조선일보는 2013년 7월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수도관 공사현장에 박원순 시장이 늦어서 구설에 올랐다는 사례를 들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서울시가 늦게 대처를 한 이유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와 최대한 분리시키려는 해석이 나왔다고 적었습니다. (이 해석은 당연히 조선일보 기자의 해석이겠지만...)

 

 

 

조선일보는 2013년 7월 온라인판에서도 이와 흡사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정미홍 전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트위터에서 <폭우에 상수도 공사 강행하면서 안전점검 안 해 여러 명의 무고한 분들이 희생됐는데, 만찬을 취소하고 달려가야지, 만찬 일정 다 끝내고 5시 사건 보고받고도 10시 40분에 나타난 박원순 시장. 밥이 잘 넘어가던가요? 무엇을 더 중요시하는지 말 안 해도 알겠군요>라며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비서실은 “문 부시장은 시장실에서 상황보고를 하고 시청에서 출발했지만 길이 막혀 9시 반에야 현장에 도착했다”며 “박 시장은 예정된 만찬을 취소하고 집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면서 자세한 현장상황 결과보고와 실무대책 논의를 마친 후 8시25분경 현장으로 출발해 10시25분에 도착했다” 고 밝혔습니다. 

 

 

 

변희재씨는 트위터에서 <박원순은 또 쾌감에 부르르 떨지 말고 즉각 현장에 가서 서울시민 구조하십시오>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하철 사고에 박원순 시장이 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변희재씨만의 생각이겠지만, 자칭 논객이라는 사람이 170여명이 부상당한 사고에 '쾌감"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너무 어이없습니다. 

' 박원순 시장의 현장 도착, 과연 문제였을까?' 

조선일보가 박원순 시장의 현장 도착이 늦었다고 비난하는데, 사실 이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고 현장에 시장이 가봤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인이나 높은 사람들은 구급대원이나 사고 수습 관련자들이 어느 정도 현장을 정리하고 부상자를 구조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사고 수습을 더 빠르게 합니다. 

 

 

서울특별시 시장실 홈페이지를 보면 사고가 난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현장의 브리핑을 생중계로 보여줬습니다. 

대부분의 현장 생중계가 언론에 국한되어 있는 점과 비교한다면 정확히 시민에게 사고 내용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 홈페이지를 보면 지하철 운행에 따른 교통체증과 대체 교통편을 위한 버스 증차 현황을 상세히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페이스북에 사고소식을 접하고 부상자의 신속한 병원이송과 빠른 정상운행을 위한 복구조치, 대체 운송수단을 마련하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장이 해야 할 부분을 하고 현장에 갔다는 그의 말처럼, 무조건 사고가 났다고 서울시장이 현장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구급대원이나 복구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했으니, 박원순 시장의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5월 2일 사고가 난 후에 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각각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있는 이 시기에 지하철 안전사고가 발행하여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라며 부상자와 가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시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라며 서울시장으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알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 국토교통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박원순 시장의 책임론을 일단 접어두고, 우리가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운행을 직접 감독하는 국토교통부가 무엇을 했느냐는 점입니다. 

 

 

 

국토교통부는 4월 4일 '전동차 사고 방지를 위한 관계기관 긴급 안전대책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회의는 국토부 주관으로 철도공사,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였습니다. 

이날 안전대책회의에서 사고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빈번한 고장이 발행하는 노후차량에 대해서는 '신차 대체'를 하겠다고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진짜 회의대로 했다면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왕십리 추돌사고의 원인이 "ATS(자동안전거리유지장치)"의 고장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특별점검을 했다면 분명 ATS 장치 이상을 발견했을 것이고, 25년째 운행 중인 노후차량이었기에 신차로 대체했어야 마땅합니다. 

 

 

 

국토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라서 그런지 나름 빠른 대처를 했습니다. 중앙사고 수습 본부를 사고 발생 30분 이내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최초 시민이 119 방재센터에 신고한 시각이 3시 30분이었는데, 국토부의 사고 접수는 3시 44분이었습니다. 

14분의 차이가 별거 아닌 듯하지만, 수많은 시민이 암흑 속에 있었던 점을 본다면 119 방재센터 신고 접수와 함께 사고수습 본부 기관인 국토부가 더 빨리 사고 접수를 했어야 마땅합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박원순 시장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서 공방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아이엠피터의 결론을 말하면 두 사람 모두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대신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고가 났을 때 수습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는 부분인데, 지하철 사고의 경우는 국토부가 사고 수습 기관으로 전면에 나서 컨트롤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는 안행부,해수부,총리 등이 우왕좌왕했습니다. 

사과의 경우 박원순 시장은 '시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그날 밝혔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계속 '책임자 처벌'만 운운하다가 14일이 지나서야 국무회의 시간에 '간접 사과'를 했습니다. 

 

 

 

서울시와 박근혜 정부, 안전과 재난에 대비한 수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안으로 들어간다면 두 사람의 차이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했던 국토교통부 장관의 상관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그녀 또한 이번 사고의 책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 박원순 시장도 비난받기 싫으면 사고수습 회의하지 말고, 무조건 빨리 현장에 가서 국토교통부 장관 제쳐버리고 사고수습 대책 본부장으로 일하면 됩니다. 


진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박원순 시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하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 하는 말이었습니다. (혹시 박원순 시장 퇴진 운동하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찬성합니다.  두 사람 모두 동반 사퇴하고 선거 다시 할까요?)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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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14]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매너없는 방송해놓고... MBC 사장 자아도취"

 

14.05.05 09:51l최종 업데이트 14.05.05 09:51l이영광(kwang3830)
학계와 언론노조, 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보도를 모니터 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리고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세월호 침몰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듣는 인터뷰를 기획시리즈로 준비했다.... 기자 말
 
기사 관련 사진
▲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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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70여 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세월호에서 나타난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서서히 발을 빼는 분위기다.

재난 현장에서 언론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불신을 받은 적이 있을까? 이번 세월호 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듣기 위해 보도를 모니터 하는 민주언론시민연합(아래 민언련) 김언경 사무처장을 지난 4월 30일 민언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사무처장은 오보,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보도, 백화점식의 보도로 구조 시기를 놓친 점,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 불신을 키운 점 등을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 꼽았다  .

언론을 불신하게 된 원인으로 김 사무처장은 "초반엔 오보와 선정적인 보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무엇을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감싸려고만 들고, 사건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주지 않았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또한 KBS뉴스 시청률이 하락한 원인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KBS가 재난 주관 방송사로서의 권위나 가치를 완전히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KBS 보도는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심층적이지도 못했음을 국민들이 안 것이고 박근혜 정부 감싸기만 하고 있으니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너진 언론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김 사무처장은 "무엇보다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주는 탐사보도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대부분의 언론 보도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저 하루 일을 일기 쓰듯 나열하는 보도들이다. 때문에 공영방송을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바꾸고 문제가 심각한 종편을 안 보는 등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과 나눈 일문 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국민이 언론 못 믿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

-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보도를 모니터링하셨을 텐데 언론의 보도, 어떻습니까?
"세월호 관련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게 '오보'였죠.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매우 중요한데 오보 문제가 커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어요. 물론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의 오보는 단순히 언론 탓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만 믿고 보도하면 수시로 오보가 발생하는 상황이었죠. 이번처럼 오보가 많았던 참사는 또 처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번째 언론의 문제는 초기에 무분별한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보도가 많았던 것입니다. 실종자와 생존자의 초상권이나 그들에 대한 배려는 없이 지나치게 접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이 부분은 줄어들었습니다. 

세 번째로 사건 발생 당일에 빨리 인명을 구조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구조작업을 압박하는 언론의 태도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내용을 보도하고, 다음날부터는 계속 선장과 승무원의 태도 등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에 집중했습니다. 재난 방송 초기에는 원인 규명보다는 피해 구조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이 부분을 놓친 거죠.

무엇보다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은, 실종자 가족들과 민간 잠수사 등이 실종자 구조를 위해 무엇이라도 시도하라는 요구에 비해 현장에서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이것이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실종자들이 구조되지 못하는 날이 하루 이틀 넘어가면서 뭔가 정보가 막혀 있는 것 같다는 국민의 불안감은 커졌고요. 그러다 보니 기존 언론보다 여러 대안 매체들과 SNS를 더 믿고 의지하게 됐습니다. 실제 실종자 가족들이 거대 언론사의 취재를 거부하고 대안매체나 JTBC 등에 의지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것만 보더라도 언론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무너졌나를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 오보를 언론 탓만 할 수는 없다고 하셨는데... 기자는 정부의 자료를 검증해야 할 의무도 있는데 검증을 안한 책임은 있는 것 아닌가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언론 탓만 할 수는 없다고 하는 부분은 재난 보도 준칙이나 심의규정을 보면 모두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거해 보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부가 주는 정보 자체에 한계가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분명 언론의 책임도 있습니다. 처음 한 번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했다가 오보가 되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보다 취재를 해서 신중하게 보도해야 하는데 자꾸 오보가 발생했죠. 이건 자신들이 좀 차분하게 확인해 보면 될 것을 속보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고 빨리 보도해 버린 언론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언론 보도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현재로서는 국민들이 언론을 믿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같습니다. 초반엔 오보와 선정적인 보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무엇을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감싸려고만 들고, 사건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주지 않으니 국민적 신뢰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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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수색 구조 활동을 보도하던 KBS는 지난 18일 오후 4시 30분경 자막과 앵커의 발언을 통해 "구조당국이 선내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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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참사가 터지면 KBS 시청률이 올랐는데 이번엔 오히려 떨어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KBS <뉴스9>의 시청률이 참사 이전보다 떨어졌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국민들에게 KBS가 재난 주관 방송사로서의 권위나 가치를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KBS 보도는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심층적이지도 못했음을 국민들이 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제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빤히 아는데 박근혜 정부 감싸기만 하고 있으니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국민들이 어느 시점에서 실망해 채널을 돌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럼 언론 장악이 영향을 미친 거네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꾸준하게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장악이 시작됐고 정권의 의도대로 성공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현 KBS, MBC 방송사의 사장은 언론사로서의 가치, 보도를 잘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방송사로 자리매김 하기 보다는 자기들 뉴스를 정권에 헌정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보여집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방송장악은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루어졌죠. 그러데 이번 세월호 보도는 방송장악이란 것이 특정 정치집단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 민언련의 모니터 보고에 보니 '세월호 침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찬양'이라고 평가했던데 어느 정도였습니까?
"저희가 '공정보도감시단'을 꾸려서 현재 지방선거 보도 모니터를 하는데요. 박 대통령의 관련 보도가 너무 미화되고 각색됩니다. 대통령의 진도 방문에서는 환영받고 박수 받는 모습들 위주로만 편집해서 보여줘서 청와대 홍보방송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안산 합동 분향소 조문 관련 보도에도 지금 논란이 많지요. 심각한 것은 현장에서 유족들이 심하게 항의했다는데 그런 소란스러운 소리는 없이 참 잘 이루어진 조문 같이 그려졌습니다. 당일 유족 한 분은 박 대통령의 조문에 대해서 "조문을 한 것이 아니라 CF를 찍으러 온 것 같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방송은 또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CF로 담아서 돈도 받지 않고 주요 보도로 내보내 드린 거죠. 이것은 '세월호고 뭐고 우리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찬양하겠다'라는 태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듭니다." 

-  또 보수신문을 중심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악용'이라기 보단 '이용'이라고 봐요. 국민의 관심이 세월호에 갔기 때문에 세월호만 붙이면 뭐든 뉴스가 되잖아요. 그런 상황을 이용해서 선정적인 보도를 합니다. 예컨대 <중앙일보>가 'JTBC 보도가 CNN에 인용된 것을 보도'하는 등 별로 뉴스가치가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세월호와 관련지어 보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앙일보>에 <이준석 선장, 수감 초기부터 잘 먹고 잘 자>라고 해서 수감 초기부터 정상적으로 먹고 자더라, 뭘 먹었다, TV를 봤다, 이런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보도를 보면 선장에게 "왜 잘 살고 있냐"라고 하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분명 선장이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았고 선장 또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마녀사냥하는 것은 도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 선장이나 선원, 청해진해운과 구원파 등으로 본질을 흐리고 물타기하려는 느낌도 있던데요.
"맞아요. 최근 3~4일 내내 구원파에 대해 엄청나게 보도하고 있죠. 어느 집단이든지 어느 기업이든지 문제가 있다면 추적하는 것이 언론의 보도 태도인 것이 맞고요. 언론이 사고를 낸 배의 선사의 문제에 대해 추적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번 보도는 인명구조를 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어딘가로 바꿔 보려는 '물타기' 보도라는 의심이 많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청해진해운 문제가 그리 심각했다면 그 회사와 종교집단 자체의 문제보다 이를 관리감독하는 정부의 태도도 함께 지적해야 마땅하죠. 해운사가 그동안 해난사고를 여러 번 일으켰다는데 그때마다 다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정부잖아요. 

그런데 정부에 대해서는 늘 하나마나한 지적에 그칩니다. 좀더 치밀하게 파고 들어가서 일명 '해피아(해수부 마피아)' 문제, 해경의 문제 등 보다 문제의 중심에 접근하지 않은 채 곁가지를 건드려 국민의 분노를 그쪽으로 쏟아내게 하는 보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안광한 MBC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특보방송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모두들 힘든 가운데서도 온몸을 던져서 제 역할들을 해준 덕분에 우리 뉴스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우리 뉴스는 이미 시청자가 기억하는 그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고 MBC의 보도를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안 사장의 이 발언은 어이가 없어요. 여전히 MBC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보도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사 기자들에 격려하고 덕담을 건내는 수준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아도취된 것, 한 마디로 착각하고 있다고 봐요. 어이가 없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보험금을 얘기한 것이 MBC와 <TV조선>이에요. 부적절하고 매너가 없는 방송을 했는데 이것에 대해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있어요."

"세월호 사고 원인 밝히는 탐사보도 나와야"

- 1990년대 서해 훼리호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참사가 많았는데 당시의 언론보도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여러 사고마다 문제점들이 쭉 있었고 그래서 재난보도가 어려운 거죠. 아무리 훈련을 하고 이렇게 하지 말자고 해도 막상 재난이 터지면 기자들의 속성이라는 것이 달려 들어 속보를 만들어 내고 더 흥미있는 보도를 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보도할 때 차분하게 본질적으로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연습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준칙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준칙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봅니다.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추락 당시 그들은 최대한 잘 구조했죠. 아시아나 승무원들이 구조훈련을 자주 했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반대로 청해진은 그런 연습이 거의 안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청해진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 언론에도 해당되죠. 재난이 없을 수가 없는데 참사가 터지기만 하면 우왕좌왕 하거든요. 이에 대한 교육과 준비,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참사가 터질 때마다 합동 취재팀을 꾸리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이 너무 많으면서 똑같은 내용만 계속 소비적으로 만들어 내니까 오보도 더 많고 더 선정적인 보도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동취재단을 만들어서 영역별로 시간별로 역량을 모으면 집중하면서 좀더 깊이 있는 보도도 만들어 낼 수지 않을까 해요. 재난에 대한 국가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언론의 시스템도 이번에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데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저는 지금도 이번 사고가 왜 이렇게까지 큰 참사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것을 밝히는 제대로 된 탐사보도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현재 대부분 언론 보도들은 수박 겉핥기식 보도들, 그저 하루 일을 일기 쓰듯 나열하는 보도들입니다. 그나마 솔직하고 상세한 일기도 아니죠. 

게다가 의혹에 대해 네티즌이 지적하면 정부는 유언비어로 처리하려 듭니다. 며칠 전 드러난 방송통신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언론 통제 태도도 문제가 됐죠. 이러다 보니 현재 국민은 박근혜 정부의 말을 앵무새처럼 보도하는 특정 언론들, 특히 지상파와 종편에 대해서 불신이 매우 깊어요. 이 상황을 회복하려면 국민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제공해야 되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지상파나 <채널A>, <TV조선>의 이런 보도태도가 빨리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는 대안 매체에 좀 더 많은 기대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튼 이번 사건은 언로가 막혔을 때 국민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볼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아마 국민들이 절실히 느끼셨을 것이라 보고요. 공영방송을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바꾸고 문제가 심각한 종편을 안 보는 등 분노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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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가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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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JTBC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일단 JTBC가 이 사건 보도로 인해서 시청률도 많이 올라갔고 국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JTBC 보도 자체가 이번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고요. 그게 손석희 효과일 수도 있고 바른 언론인 한 명이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JTBC는 종편이고 분명 종편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 속에 잘못 태어난 방송사입니다. 그리고 종편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식의 판단은 아니라고 봅니다. JTBC만 보더라도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의 변화일 뿐 다른 방송 전체의 변화는 아니고요. 다만 정부가 세월호 이슈를 가리고 다른 이슈로 넘어 가려고 하는 상태에서 JTBC 보도가 아직도 세월호에 집중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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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블로거를 결심하게 만든 '다음뷰' 사라지다니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운영하는 '다음view' 서비스가 6월 30일부로 종료합니다. 블로거가 아닌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일부 블로거에게 다음뷰는 블로그와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통로와 같은 역할을 했었습니다. 

특히 아이엠피터에게 다음뷰는 전업블로거를 결심하게 했던 가장 큰 배경 중의 하나라서, 다음뷰 서비스의 종료 소식을 들으니 다음뷰와 함께 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10년 넘게 했지만, 그중에서 전업블로거로의 삶을 펼쳤던 몇 년간의 다음뷰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해봤습니다. 
 

 

 


다음뷰의 초기 모델은 2005년도 '다음only'라는 서비스입니다. 이 '다음only'는 2006년 '블로거가 만든 뉴스'에 이어 2007년 '블로거 뉴스'에 이르러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지금도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다음이 만든 '블로거뉴스'가 1인 미디어(물론 아직도 미비하지만)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로 봅니다. 

당시 블로거뉴스는 지금 언론사들이 송고하는 기사처럼 블로거의 글을 노출했고, 많은 네티즌들이 '블로거 뉴스'를 마치 언론사의 기사처럼 읽었습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블로거뉴스가 '블로거를 언론으로 볼 수 없다'는 기성 언론 시스템의 문제 제기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다음은 2009년 '다음view'라는 서비스를 통해 블로그의 글을 '뉴스'가 아닌 그냥 블로그 포스팅으로 선을 그어 버렸습니다.
 

 

 



블로거의 글은 결코 뉴스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기존 언론사들의 현재 모습은 눈을 뜨고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사라고 부르기 민망하게 클릭을 유발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사진은 포털 뉴스의 상징처럼 됐습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블로거들도 창피해서 잘 하지 않는 '뉴스 어뷰징'을 태연히 하고 있습니다. 

<'뉴스 어뷰징'은 김연아 교제 소식을 단독 보도한 언론사의 기사를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사가 기사의 제목이나 사진 설명만 바꿔가며 수백 개의 기사를 송고하여, 비정상적인 클릭을 유도하는 형태 등을 뜻한다.>

[언론] - 천박저널리즘, 이젠 "박근혜가 예수, 엘사와 닮았다"
[언론] - '견원지간' 블로그와 신문, 그들이 손을 잡으니
[언론] - 조중동의 '네이버 때리기' 결국 돈이었던가
[언론] - 매일 보는 '뉴스'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면



지금 사람들은 언론사 기사보다 SNS나 블로그, 해외언론 기사를 더 많이 찾으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블로거뉴스를 포기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진화된 형태로 유지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 대목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블로거뉴스를 '다음view'로 개편하면서 블로거에게 제시한 정책이 활동지원금이었습니다. 블로그에 광고 위젯을 설치한 블로거에게 랭킹에(광고 클릭수가 아닌 블로그 랭킹)따라 지원금을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블로거가 스스로 광고를 달거나 블로거 마케팅류의 상업 포스팅을 하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에서 신선한 충격을 줬으며,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수혜자가 너무 적고, 랭킹을 올리기 위한 경쟁이 과열화된 단점 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전업블로거를 결심하게 된 배경도 사실 '다음view'의 활동지원금이었습니다. 좋은 글만 써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음뷰 활동지원금과 기존 원고료 등을 합치니 최저 생계비는 나올 듯하다는 판단을 하고 2010년 11월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인천에서 제주행 배를 타고 제주에서 전업블로거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탔던 배가 오하마나호로 세월호와 같은 청해진해운 소속입니다. 그동안 계속 배를 타고 다녔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아내와 함께 더는 배를 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생각외로 활동지원금만으로 생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백만 원 이상 받으려면 랭킹 관리에 많은 시간과 신경 써야 했습니다.  체질상 맞지도 않았고 불협화음도 많아 고민하는 차에, 독자들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후원금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후원자 명단에 나온 에스더 이모, 큰아빠는 후원자분들이 스스로 선택한 애칭입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두분씩 보내 주시던 후원자가 이제는 70여 명가량 됐습니다. 어쩌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엠피터 입장에서는 이런 분들이 있기에 오로지 글만 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뷰 활동지원금은 이미 2013년 4월에 종료됐기 때문에 후원자분들이 없었다면 제주 생활을 포기하고 서울로 다시 갔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기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아직 블로거를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어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글쓰기 이외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글과 콘텐츠 그 자체로 평가받고 후원을 받는 편이 블로그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음뷰 활동지원금이 사라지면서 다음뷰라는 시스템이 종료될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SNS와 검색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던 아이엠피터로서는 큰 변동은 없습니다. 

요새 블로그 유입을 봐도, 다음뷰보다는 검색이 70%, SNS 유입이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기에 피해를 줄였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 노력을 해야만 살아남는 한국의 인터넷 상황이 서글프기도 합니다.  
 

아이엠피터님, 다음에서 6월 30일 다음뷰 서비스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전 주로 다음뷰를 통해 시사 블로그를 구독해서 보는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시사 블로그에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해 나중에 블로그를 하나 써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면 이미 이전에 쓰셨는데, 제가 모르고 있는 건가요?? (구독자 문의 댓글중에서)

다만, 기존의 다음뷰로 블로그를 구독하시던 분이 7천여 명이 넘는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롭게 되어 다음쪽에서 구독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2010년에 만들었던 블로그 어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튠스에서 검색이 되지 않고, 구글리더기도 종료되어 현재는 즐겨찾기 내지는 검색창에 '아이엠피터'를 검색하고 들어오는 방식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공한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보면 작가와 미술관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경우를 봅니다. 명성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도 합니다. 포털사이트도 이렇게 블로거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식은 없는지 늘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을 다음커뮤니케이션도 늘 고민하고 있었지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블로그를 운영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라는 주제로 네이버에서는 글을 써봤자, 노출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누가 뭐라 해도 정치,시사라는 주제의 글을 노출해줬고, 그것을 통해 정치블로거로서의 삶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뷰의 종료가 다음에서마저 정치,시사라는 주제를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그동안 다음뷰에 1,500여 개의 글을 발행했습니다. (이전 서비스 제외) 그 리스트를 보면 마치 아이엠피터가 살았던 삶의 목록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 목록들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씁쓸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정치블로거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고, 도전할만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희망을 품어 봅니다. 

정치블로거로 반드시 성공하고 싶습니다. 블로거 외적인 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 그 자체로 인정받아 성공하고 싶습니다. 

좋은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는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뉴스보다 더 정확히 진실을 알려주는 블로거'라는 소릴 들을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며, 후원하시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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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

불가사의한 현상,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 <11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5/05 [08:5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이것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제4세대 전투기를 촬영한 것이다. 미국 군부는 북이 소련산 미그-29를 수입하여 작전배치하였다고 보지만, 북은 미그-29를 자체 기술로 개량하여 미그-29의 외형을 닯은 자국산 제4세대 전투기를 대량생산하였다.     © 자주민보


일촉즉발 긴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

기존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일촉즉발 긴박한 상황이 조성되었던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나타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측 국방부와 합참은 그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당시 백령도에 추락한 무인항공기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언급하였다. 남측 언론매체들도 무인항공기 추락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기 때문에,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렸다.  

그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악하려는 이 글의 서술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그 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로부터 듣고 <연합뉴스> 취재기자에게 전해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연합뉴스> 2014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4월 3일에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은 지난 3월 31일 미그-29 2대와 다른 기종의 전투기 2대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TAL)’을 넘어 백령도 북쪽 상공으로 접근하였다고 한다. <사진 1>은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것과 같은 기종의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29 전투기다. 

북의 전방지역 비행장들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들은 이륙한 뒤 3∼5분 안에 남측 수도권 상공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공군은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부터 북쪽으로 20∼50km 떨어진 북측 상공에 가상의 ‘전술조치선’을 그어놓고,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그 선에 접근하면 즉각 전투기 대응출격을 명령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31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백령도 북쪽 상공으로 접근하였고, 그에 맞서 한국 공군은 F-15K를 비롯한 전투기 3대를 대응출격시켰다. 그런데 ‘전술조치선’을 넘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 중 전투기 한 대가 ‘북방한계선’도 넘어 백령도 상공으로 접근하였다. 한국 공군이 전혀 예상치 못한 비상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에는 전투기를 격추할 요격무기가 없고, 저고도 비행체를 상대할 벌컨포밖에 없다. 너무 다급해진 한국군 해병6여단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날아오는 백령도 북쪽 상공을 향해 벌컨포 300발을 쏘며 경고사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유효사격고도가 900m밖에 되지 않는 벌컨포로는 전투기를 상대할 수 없으므로, 허공을 향해 포성이나 울렸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당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백령도 기지들을 공습하였더라면, 방호력이 약한 그 기지들은 화염 속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미그-29는 로켓폭탄과 공대지미사일로 중무장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최장사거리가 30km이며, 무게가 320kg이나 나가는 강력한 고폭-장갑관통탄두가 장착된 Kh-29 공대지미사일 한 발이면 웬만한 기지를 날려버릴 수 있다. 

지난 4월 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의 보고내용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1차 서술은 여기서 끝난다. 왜냐하면 당시 백령도 북쪽 상공을 향해 접근하던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그 뒤로 어느 항로를 따라 비행하였는지에 대해 그들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당시 백령도 상공의 긴박한 상황은 공군 핵심관계자가 사흘 뒤 <중앙일보> 취재기자에게 들려준 더 자세한 이야기에서 알려졌다. 공군 핵심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14년 4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백령도 상공으로 접근하자 한국 공군도 서해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F-15K와 F-16 전투기들에 “대기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백령도를 향해 남하비행을 하던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는 ‘북방한계선’도 넘었다. 

백령도에서 황해남도 장산곶까지 직선거리는 17km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 수역의 ‘북방한계선’은 백령도에서 북쪽으로 약 9km 떨어진 해상에 그어졌는데, 고속으로 비행하는 전투기가 9km의 거리를 통과하는 시간은 약 1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공군 핵심관계자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고만 언급했으나, 위에 언급한 지리공간적 조건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 가운데 전투기 한 대는 ‘북방한계선’ 남측 공역을 통과하여 곧바로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기사에서 국방부 핵심관계자는 당시 “레이더 상에 나타난 물체는 분명 미그기였다. 초계비행을 하던 우리 전투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E-737 피스아이)에서도 잡혔다”고 지적하였다. 
 
비상상황을 주시하던 한국군 공군작전사령부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 한 대가 ‘북방한계선’ 남측 공역을 쏜살같이 통과하여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하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곧바로 격추명령을 하달했다.” 여기서 말하는 격추명령이란 서해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 공군 전투기에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여 격추하라는 뜻이다. 그 전투기에 탑재된 공대공미사일 AIM-120D의 사거리는 180km다. 

만일 한국 공군 전투기가 백령도 북쪽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인민군 반항공군은 한국 공군 전투기가 발사한 공대공미사일은 물론 한국 공군 전투기 편대를 향해 황해남도에 배치된 지대공미사일을 각각 발사하였을 것이다.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한국군 공군작전사령부가 전투기 격추명령을 내린 바로 그 시각,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놀랍고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사격통제레이더에 나타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그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졌다. 공군 핵심관계자가 <중앙일보> 취재기자에게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미그기로 추정되는 물체에 공대공미사일로 격추를 시도했으나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이 물체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부터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졌던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레이더에 나타난 비행체 항적이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경우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비행체가 추락하는 경우 그 비행체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지는데, 당시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명백하다. 
둘째, 레이더 오작동이 일어나는 경우 비행체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지는데, 당시 서해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한국 공군 전투기들의 레이더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레이더에서 동시에 오작동이 일어났을 리 만무하다. 레이더에서 오작동이 일어난 전투기는 작전임무수행을 중지하고 즉시 공군기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시 한국 공군 전투기들 가운데 공군기지로 급히 돌아간 전투기는 없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를 향해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 그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한국 공군작전사령부는 아군 전투기의 레이더에서 혹시 오작동이 일어나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F-15K를 백령도 남쪽 상공에까지 접근시켜 전투기조종사가 육안으로 정찰하게 하였으나, 항적이 사라진 그 전투기는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인용보도한 기사에서 국방부 핵심관계자는 항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그 전투기에 스텔스도료가 칠해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취재기자에게 말하였다. 물론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적의 레이더전파를 흡수하는 전파흡수도료(Radar Absorbent Material, RAM)를 기체에 칠한 스텔스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는데, 적의 레이더가 그런 스텔스전투기를 포착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전파흡수도료를 기체에 칠한 미그-29를 운용하는 러시아 항공군의 사례를 보면, 그 도료를 칠한 미그-29는 실제보다 4∼5배 더 작은 0.60∼0.75㎡의 아주 작은 물체로 레이더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31일 백령도 상공에서 항적이 갑자기 사라진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만일 전파흡수도료를 칠한 스텔스전투기라면, ‘전술조치선’을 넘기 이전부터 한국군 레이더가 포착하지 못했거나, 실제보다 4∼5배 더 작은 물체로 한국군 레이더에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전투기가 적진 상공에 진입한 순간 갑자기 레이더에서 그 항적이 사라졌으니, 이것이야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 현상에 대해 말해주는 추가정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지만,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서술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당시 전투기 4대로 편성된 조선인민군 항공군 비행대가 백령도 북쪽 상공에서 돌발사태를 대비하고 있는 가운데 전투기 한 대가 고속으로 남하비행을 하여 백령도 상공에 진입하였다. 그 시각 한국 공군 전투기가 사격통제레이더를 켜고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다. 일반적으로, 공중전에 참가한 전투기는 적기가 자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켜는 순간, 그 레이더전파를 포착하여 공대공미사일이 곧 날아올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당시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도 한국 공군 전투기가 자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켜고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상황을 포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전투기는 한국 공군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따돌리기 위해 기상천외한 불가시(不可視) 비행상태로 갑자기 전환하였고, 그에 따라 한국 공군 전투기 레이더에서 그 항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비행 중에 불가시 비행상태로 갑자기 전환되는 전투기가 있을까? 이제껏 언론에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는, 레이더 감시망을 감쪽같이 뚫어버린다는 ‘전설 속의 전투기’가 혹시 그 날 백령도 상공에 나타났던 것일까?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을 파악하려면, ‘전설 속의 전투기’에 적용되었다는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plasma stealth technology) 개발에 얽힌 사연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소련-러시아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해온 사연들

미국의 전기전자공학연구소(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 Engineers)는 1963년에 펴낸 논문 ‘절연체의 레이더 교차면 또는 플라즈마를 칠한 활동영역과 원형 실린더’에서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쏘아올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의 지구궤도비행  중에 나타난 특이한 현상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그것은 지구궤도에 형성된 전리층을 고속으로 통과하며 비행 중인 스푸트니크가 우주공간에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플라즈마 기류막(plasma screen)에 둘러싸이는 현상이었다. 만일 플라즈마 기류막이 스푸트니크를 완전히 둘러싸면, 그 순간 스푸트니크는 레이더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다. 

57년 전 소련의 우주과학자들이 지구궤도를 비행하는 스푸트니크를 관찰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이 흥미로운 현상은 당시 소련 과학계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소련에서 일찌감치 시작되었고, 오늘날 러시아는 그 분야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다.   

소련의 우주과학자들이 스푸트니크의 지구궤도비행을 관찰하던 중에 자연발생적인 플라즈마 기류막에 둘러싸인 현상을 발견한 때로부터 42년 긴 세월이 흐른 1999년 1월 20일 러시아의 <이타르-타스(ITAR-TASS)통신>에 주목할 만한 대담기사가 실렸다. 그 통신사의 취재기자 니콜라이 노비취코브(Nicholai Novichkov)가 러시아의 켈디쉬연구소(M. V. Keldysh Research Center) 소장이며 러시아과학원 원사인 아나톨리 코르테에브(Anatoliy Korteev) 박사와 대담한 기사다. 대담에서 코르테에브는 “인공적으로 발생시킨 플라즈마 구름(plasma cloud)에 둘러싸인 비행체는 (적의 레이더에) 탐지될 가능성을 수 백 배 이상 확실히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플라즈마 기류막을 플라즈마 구름이라고 불렀는데, 원래 플라즈마라는 것은 이온, 전자, 중성자의 유사중성적 혼합물(quasi-neutral mix)로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와 강하게 반응하는 성질을 지녔다. 바로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레이더전파를 흡수하고 그것을 열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은 적의 레이더전파를 피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적의 전자기파(EMP) 공격도 막아낼 수 있다. 

위의 대담에서 코르테에브 박사는 인공적으로 생성된 플라즈마 기류막에는 전자기에너지(electromagnetic energy)를 흡수하는 성질도 있고, 전자기파를 반사하지 않고 자기 주위에로 통과시키는 성질도 있는데, 이런 두 가지 성질을 이용하여 적의 레이더전파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지상에서 실험하였고, 비행체에 적용하여 실험하였는데, 스텔스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소장으로 근무하는 켈디쉬연구소에서 제1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하였고, 레이더전파를 반사하면서 그 파장을 변동시킬 뿐 아니라 교란전파까지 발신할 수 있는 제2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개발하였고, 최근에는 제3세대 플라스마 장치를 개발하였는데, 이전에 만든 제1세대 플라즈마 장치와 제2세대 플라즈마 장치는 이미 다른 나라에 수출하였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99년 당시 켈디쉬연구소가 개발한 제3세대 플라즈마 장치는 무게가 100kg을 넘지 않고, 10킬로와트 안팎의 전력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무게가 100kg을 넘지 않고 10킬로와트 안팎의 전력을 소비하는 플라즈마 장치가 개발되었다면, 그것을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다. 

코르테에브 박사의 대담기사를 통해 러시아가 제3세대 플라즈마 장치를 개발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6월 미국의 군사과학월간지 <전자국방저널(Journal of Electronic Defens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군은 자국에서 개발된 플라즈마 장치를 수호이-27B 전폭기에 장착하고 성능시험을 이미 실시하였다고 한다. 

2005년 10월 21일 러시아 일간지 <노브예 이즈베스티야(Novye Izvestia)>는 코르테에브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켈디쉬연구소가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는 작고 가벼운 이동식 플라즈마 방사기(mobile plasma generator)를 개발하였다고 보도하면서, “이 장치는 비행체 주위의 공기를 이온화(ionize)하는 강력한 전자파를 방사함으로써 비행체 주위에 플라즈마 구름을 효과적으로 형성한다”고 하였다. 그 보도기사에서 코르테에브 박사는 비행체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가 작동할 때 비행체에 내장된 전자장비와 교신장치에서 전자장애가 일어나 불통되는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만든 플라즈마 방사기는 러시아 정부당국으로부터 성능검사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 중인 전투기 맨 앞의 원뿔꼴 두부(nose cone)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에서 방사한 플라즈마 기류막이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를 전체적으로 완전히 감싸지 못하는 결함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런 결함은 2003년에 러시아과학원 산하 전자기 이론 및 실용연구소(Institute for Theoretical and Applied Electromagnetics)가 실시한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에서 나타났다. 그 시험비행에서는 지름이 88.9cm이고 접시처럼 둥그렇게 생긴 플라즈마 방사기를 수호이-35 기체 맨 앞의 원뿔꼴 두부에 장착하고 고속으로 비행하면서 플라즈마 기류막을 방사하였는데, 플라즈마 기류막은 기체 전부를 완전히 감싸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실험은 러시아가 2003년에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 제작에서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음을 말해준다.   

그런 결함이 나타났다면, 플라즈마 방사기를 전투기의 원뿔꼴 두부에 한 개만 장착할 게 아니라 두 날개에도 장착하면 플라즈마 기류막으로 기체 전부를 감쌀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 항공군은 군사기밀에 속하는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존재에 대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 방사기를 한 군데 이상 장착하여 완성시킨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그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아직 개발하는 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사진 2> 이것은 지금 러시아가 개발 중인 제5세대 전투기인 수호이 T-50(PAk FA) 시제기의 비행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 전투기에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 전투기는 오는 2016년에 작전배치될 예정이다.     © 자주민보


웹사이트 ‘세계안전관찰’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러시아가 개발 중인 제5세대 전투기 수호이 T-50(PAK FA)에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러시아는 수호이 T-50의 첫 시험비행을 2010년 1월 29일에 실시하였는데, 오는 2016년에 작전배치할 예정이다.

 
‘전설 속의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힘써온 북과 중국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 1월 20일 <이타르-타스통신> 대담기사에서 아나톨리 코르테에브 박사는 켈디쉬연구소가 개발한 제1세대 플라즈마 방사기와 제2세대 플라즈마 방사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였다고 말한 바 있는데, 1990년대에 러시아로부터 플라즈마 방사기를 수입할 수 있는 나라는 북과 중국밖에 없다. 

2010년 11월 19일 웹사이트 ‘러시아 밀리터리 포럼(Russia Military Forum)’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여러 개의 플라즈마 방사기를 기체 곳곳에 장착한 제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제5세대 전투기의 명칭은 J-20이다. 중국은 J-20의 첫 시험비행을 2011년 1월 11일에 실시하였는데, 오는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작전배치될 예정이다. 여러 개의 플라즈마 방사기를 J-20 기체 곳곳에 장착하게 된다는 것은, 중국이 플라즈마 방사기를 소형화하고 경량화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 <사진 3> 이것은 최근 체코공화국에서 만든 플라즈마 발생기다. 이 장치의 크기는 60cmX30cmX20cm이며, 무게는 25kg인데, 실내공기를 정화하는 데 사용한다.     © 자주민보


이러한 정보를 살펴보면,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 러시아와 중국은 적의 레이더망을 감쪽같이 뚫는다는 ‘전설 속의 전투기’ 시제품을 이미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러시아와 중국처럼 북도 플라즈마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힘써왔다. 이를테면, 북의 과학자들이 플라즈마 분야에서 각종 산업장비를 개발하는 성과를 지적할 수 있다.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오늘날 플라즈마 기술은 각 산업부문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난 시기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조선국가과학원 레이자연구소(남측에서는 레이저로 표기함)가 플라즈마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힘써왔는데, 그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2005년 5월 플라즈마 전원장치와 플라즈마 절단 및 용접기를 개발하였고, 2006년 1월 주사식 공기플라즈마 열처리장치를 개발하였고, 2011년 1월 새로운 플라즈마 열처리기술을 개발하였다. 조선국가과학원 산하 레이자연구소가 개발한 주사식 공기플라즈마 열처리장치는 아르곤 같은 불활성기체를 쓰지 않고 공기를 쓰면서 플라즈마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하여 플라즈마를 생성시키는 장치라고 한다.  

북에서 각종 첨단산업장비는 국가과학원에서 개발하고, 각종 첨단군사장비는 국방과학원에서 개발한다. 그렇다면 국방과학원 과학자들은 전투기 기체 곳곳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 경량화된 최첨단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어냈을까? 

 
▲ <사진 4>2010년 9월 17일 오후 3시경 중국 랴오닝성 푸순현 라구향 쑹강마을 사탕수수밭 인근에 조선인민군 항공군 미그 전투기가 불시착하였다. 비행 중에 생긴 기계고장으로 정상항로를 벗어난 사고기가 중국 영공으로 약 160km나 들어갔는데도,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사고기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2010년 8월 17일 중국 정부당국은 당일 오후 3시경 ‘국적불명의 비행기’ 한 대가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현 라구(拉古)향 쑹강(松崗)마을에 불시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튿날 중국 <신화통신>은 “사고기가 기계고장을 일으켜 방향을 상실하고, 중국 영공에 잘못 진입한 뒤 추락했다. 조선측이 중국측에 사과를 표명했다”고 보도하였다. 불시착한 그 비행기는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전투기였던 것이다. 현장사진에 나타난 전투기는 미그-21인 것으로 보인다. 불시착 지점은 중국 선양(瀋陽)에서 동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이며, 신의주로부터는 약 160km 떨어진 곳이다. 

주목하는 것은, 비행 중에 기계고장이 생겨 정상항로를 벗어난 전투기가 중국 영공으로 160km 정도 진입하여 약 5분 동안 비행했는데도,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망이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푸순 외곽에 불시착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비행 중 기계고장으로 정상항로에서 벗어난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기가 중국인민해방군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고 중국 영공 깊숙이 비행하다가 불시착한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에 중국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이었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항저우의 샤오산국제공항 상공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지역주민이 촬영한 것이다. 매우 밝은 빛을 발하는 섬광체가 날아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2010년 7월 7일 오후 8시 40분경 중국 샹하이(上海)에서 서남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항저우(杭州)의 샤오산(肅山)국제공항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섬광을 내며 날아가는 놀라운 장면을 지역주민들이 보았다. 당시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를 보고 놀란 샤오산국제공항 당국은 오후 8시 45분부터 9시 41분까지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 정체불명의 섬광비행체가 출현한 것을 두고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이러저러한 추측이 무성하였는데, 그것은 중국이 개발 중인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지상에서 그 전투기를 육안으로 보면 섬광을 발하는 비행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투기에 장착된 플라즈마 방사기가 작동하여 기체를 플라즈마 기류막으로 감싸면, 레이더에서는 그 전투기의 항적이 갑자기 사라지지만, 플라즈마 기류막에 감싸여 날아가는 전투기를 지상에서 육안으로 바라보면 눈부신 형광성 발광체로 보이게 된다. 전파흡수도료를 칠한 스텔스 전투기와 달리,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는 섬광을 발하는 전설 속의 미확인비행체(UFO)처럼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나는 것이다.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레이더로는 물론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오다.  

 
▲ <사진 6>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적용한 '전설 속의 전투기'는 섬광을 발하는 형광성 발광체로 보인다. 만일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 병사들이 이 사진에 나타난 것과 같은 섬광체가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였다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전설 속의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목격담은 없었다.     © 자주민보


지난 3월 31일 낮 12시 40분경 백령도에 주둔하는 한국군 해병6여단 소속 병사들이 <사진 6>에서 보는 것처럼 형광성 발광체가 날아가는 비행장면을 목격하였다면, 그 목격사실이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각에 백령도 상공에서 형광성 발광체를 목격하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백령도 상공에 진입한 전투기의 항적이 레이더에서 사라진 불가사의한 현상은 북에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가 존재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유력한 증거이지만, 비행하는 형광성 발광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오지 않은 이상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플라즈마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북에서 말하는 ‘붉은 비행대’의 전투기들이 형광성 발광체의 모습으로 한반도 상공에 거대한 불보라처럼 출현하는 날, ‘전설 속의 전투기’가 실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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