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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남북 보도 훼방말고 떠나라"

 
민가협 "6.1510.4 깃발들고 남북합의의 길로 진군하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18 [09: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이 국가보안법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해 23년째 목요집회를 갖고 있으나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살아 양심수를 양산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시민사회단체가 남북고위급 긴급접촉에서 합의한 8.25합의에 자주통일의 길이 있다며 이를 훼방하는 세력과 미국을 규탄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상임의장 조순덕, 이하 민가협)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 삼일문 앞에서 목요집회를 열고 남측 당국과 미국은 8.25합의에 대해 시비하거나 혼란을 조성하지 말고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민가협 조순덕 상임의장은 "민가협 집회가 시작 된지 23년째가 되었으나 자주. 민주. 통일. 민생. 인권을 위해 투쟁하던 양심수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권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정권이라면 양심수들을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순덕 상임의장은 "박근혜 정부는 무엇이 무서운지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것도 모자라 당원들을 구속했다."면서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을 모르는 것 같다. 내란음모가 없었다고 사법부가 판결해 놓고도 궁여지책으로 내란 선동이라며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성탄절을 기해 양심수를 전원 사면해 석방시켜야한다. 우리모두 양심수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 통일광장 임방규 선생은 미군이 70년 동안 우리민족에게 ㄱ친 인적 물적 피해는 계산할 수 조차 없다며 온 겨레에게 고통만을 안기는 미군들이 철수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통일광장 임방규 선생은 자신은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고 소개하고 "당시 우리민족 대다수는 일본 놈들을 일본인이라 부르지 않고 왜놈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일본놈들로 해방 되어 이제 살만하다 생각했는데 미국X들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들어 와 70년 동안 우리민족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고 고발했다.


임방규 선생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이익을 위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자기생각대로 살지 못하고 남의 생각과 사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것은 미국이 미군정을 실시하면서 미국의 사상을 세뇌시켰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임 선생은 "미국이 우리 땅에 군홧발을 내민 뒤 우리민족이 입은 인적 물적 피해는 계산할 수 조차 없다"며 "미국은 지금도 한반도 긴장을 고조 시키고 전쟁위기를 만들어 우리민족이 한시도 발편한 잠을 잘 수 없다."고 단죄했다.


또한 "미국. 미군은 외세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에 의해 남북이 분단 되었다."며 "외세가 갈라 놓은 분단을 끝장 내기 위해서는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그게 정석이다 앞으로 온 겨레는 외세의 지배없이 우리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 대해 과거를 묻지 말고 미래를 보자고한다."면서 "그런데 왜 동족인 북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가. 이제 우리 모두 나서서 민족적 비극을 끝장 내기 위해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는 8.25 남북합의에 자주통일이 있다며 8.25정신을 훼손하는 미국과 남측 당국자, 국회등을 규탄했다.     © 이성원 기자



두 번째 발언자로 나선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는 8.25합의 중요성을 설명한 뒤 "그러나 정부 당국은 합의정신에 어긋나는 발언들을 이어 가고 있다."며 "미국은 합의정신을 존중한다고 해 놓고 한미합동 군사연습을 진행 하고 있으며 북을 선제타격 하려는 작전계획 5015를 발표하는가하면 북의 핵 승인자를 제거하는 참수작전 계획도 내 놓았다.


참수 작전은 최고존엄을 생명 처럼 여기는 북을 심각하게 자극하는 말로 전쟁으로 몰아가는 대결적 계획으로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 작전계획 5015와 참수작전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 역시 남북이 합의한 정신을 이행 하기만 하면 우리민족끼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정신에 의한 대단합과 통일의 전환적 국면이 열릴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민족문제를 가지고 여러나라에 통일을 구걸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당국자들은 남북공동합의 정신을 훼손하지 말고 이행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남한 국회에서 여야가 북 인권법 일부에 합의한 사실을 전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여.야 국회는 북인권법 제정에 앞서  40여분마다 강간을 당하고 38분마다 자살하며, 58만여명의 노인들이 밥을 굶고 불타죽는 현실이 펼쳐지고, 자주와 민주, 통일, 민생, 인권을 말한다고 하여 감옥에 끌려가는 남한 인권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민족의 미래는 7.14 공동성명과 6.15 10.4 깃발을 높이들고 남북합의 정신의 길로 전진하는 것"이라며 "북녘 동포들은 백두산에서 평양을 거쳐 휴전선을 넘어 제주도 한라산으로, 남녘 동포들은 제주도 한라산을 출발하여 서을을 지나 분단 장벽을 넘어 백두산으로 달려가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 깃발을 꽂아야 한다. 우리모두 자주통일을 위한 길에 모두 떨쳐 나서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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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방학, 감귤방학… 제주만의 독특한 ‘이색방학’

 
 
제주의 벌초 문화에 숨겨져 있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
 
임병도 | 2015-09-18 08:25: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추석이 가까워져 오면서 주말이면 전국적으로 벌초를하러 오가는 차량으로 고속도로 곳곳이 정체됩니다. 제주에서도 매년 음력 8월 초하루가 되면 오름 주변이나 산간 도로가 벌초 차량으로 뒤덮입니다. 제주에서는 보통 음력 8월 이전이나 8월 1일에 벌초를 합니다.

제주에서는 일가가 모여 조상 묘소를 벌초하는 것을 “소분(掃墳)한다”, “모듬벌초한다”, “모듬소분”한다고 합니다. 제주에서는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는 안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드러난다’, ‘추석 전에 벌초 안 하면 조상이 덤불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벌초하지 않는 일을 가장 큰 불효로 보기도 합니다.

벌초하는 날이면 회사에서는 휴가를 내줬고, 공무원들도 연가를 받았습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도 명절에는 오지 않아도 이날만큼은 비행기를 타고 꼭 와야 했습니다. 만약 오지 않으면 양말이나 장갑, 내의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요새는 벌금처럼 돈으로 냅니다.

다른 지역보다 유달리 벌초에 애착을 가진 제주에서는 ‘벌초방학’이 별도로 있었습니다. 2003년 이전까지는 제주 도내 초중고등학교 100%가 음력 8월 1일에 ‘벌초방학’,‘성묘방학’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풀을 베는 어른들 틈에서 풀을 나르기도 했고, 점심이나 간식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소풍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주에는 ‘벌초방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리 수확 철에는 ‘보리방학’을 감귤 수확 시기에는 ‘감귤방학’을 했습니다. 수확철이 되면 한꺼번에 인력이 필요했지만, 제주는 섬이라 금방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아이들도 일손을 거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3년이 지나면서 벌초방학이나 보리방학, 감귤방학을 하는 곳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벌초를 꼭 음력 8월 1일에 하기보다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점점 보리농사나 감귤농사를 짓지 않는 곳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 제주 4.3평화공원에 있는 민간인희생자 명단 ⓒ겨레하나

제주에서 유독 문중이나 일가의 벌초를 함께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제주 4.3사건으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는 가족마다 4.3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희생자가 많았습니다. 제주 4.3사건 피해자 중에는 아이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모두 학살당해 후손이 일가친척밖에 남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문중 사람들이 돌봐주지 않으면 벌초조차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꼭 모듬벌초가 끝나야 직계가족의 개인벌초를 했습니다. 주변에 ‘골충’이라는 임자 없는 묘소가 있으면 같이 해주는 미덕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마을과 가족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모습이 제주의 벌초 문화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초중고의 벌초방학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학교에는 벌초방학이 남아 있습니다. 총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하는 곳도 있고 안 하는 곳도 있지만, 대학생들이 벌초방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벌초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지로 간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아 벌초를 하기 힘든 노인세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대학생까지는 벌초방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제주에도 이제 젊은 청년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식당 등을 하려고 오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정작 제주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거나 낮은 임금 때문에 오히려 육지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땅을 팔아 장사를 한다고 성공할 보장도 없거니와, 오랜 세월 농사짓는 부모님의 고생을 옆에서 본 자식들 입장에서는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입니다.

제주에 산 지 이제 6년째가 되어갑니다.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그냥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문화가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될 뿐 아니라, 제주의 아픈 역사에 분노가 치솟을 때가 많습니다.

척박한 제주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어쩌면 아이엠피터는 부모님 덕분에 평탄한 인생을 살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부모님을 떠나 살다 보니, 얼마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는지 깨닫습니다.

이번 추석에 육지 부모님을 뵈러 가느냐를 놓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8월에도 육지에 갔다왔고, 온가족이 차를 끌고 육지에 가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벌초방학’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으면서 참 못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자식들 손과 입에 뭐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잊고 살았기에 죄송스러웠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꼭 부모님께 가야겠습니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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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선친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어질 영광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9/18 10:22
  • 수정일
    2015/09/18 10: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5-09-17 16:09수정 :2015-09-17 17:59

 

1943년 9월8일 ‘아사이신문’ 4면에 징병제를 찬양하고 조선인의 참여를 선동하는 광고가 김용주의 이름으로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43년 9월8일 ‘아사이신문’ 4면에 징병제를 찬양하고 조선인의 참여를 선동하는 광고가 김용주의 이름으로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민족문제연구소, 김무성 대표 선친 김용주씨 친일 행적 사료 공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
진정한 정신적 내선 일체화를 꾀하여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

일본 신문에 ‘징병제 찬양·군용기 헌납 독려 광고’ 자신의 이름으로 실어
최대 친일단체 ‘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 ‘황군장병에 감사의 전보’ 제안

 

민족문제연구소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선친 김용주씨의 친일 행적 논란과 관련해 추가 사료를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7일 서울 동대문구의 민족문제연구소 5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친일파냐, 애국자냐는 논쟁이 있었던 김용주에 대해 기초 사료로 검증한 결과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기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김무성 대표 쪽에서 부친의 친일행적을 애국으로 미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평전을 발간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 검증에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겨레>를 통해 김 대표 부친의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된 뒤 일각에서는 ‘친일파가 아니라 오히려 민족교육에 헌신한 애국자였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이 계속됐고, 지난달 15일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은 ‘극일을 이겨낸 망국의 한’이란 부제를 달고 김용주를 애국적인 민족주의자로 묘사했다.(▶ 바로가기 :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공개한 자료들에는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여럿 나온다. 연구소가 정리한 김용주의 대표적인 친일 행적으로는 △식민통치기구인 도회의 의원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 △친일단체 간부로서 침략전쟁에 협력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고 전쟁동원을 선동한 점 등이다. 특히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한 국방헌납운동의 하나인 애국기(국방헌금으로 생산한 군용 비행기) 헌납 운동을 전국에서 가장 활발히 했다고 민족문제연구는 밝혔다.(▶ 바로가기 : [전문] 김용주 ‘친일 발언’)

 

 

당시에는 영일군 소속이었던 포항 출신의 재력가 김용주는 1937년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경북 도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도회는 오늘날의 지방의회와 달리 지방자치기구로서의 기능과 권한은 없었으며,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조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식민통치 기구였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당시 <매일신보> 기사 등을 보면 김용주는 도회 의원으로서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역을 정당화한 국민개로운동을 독려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정황이 나온다.

 

1944년 7월9일 ‘아사이신문’ 4면에는 애국기 헌납운동을 독려하는 김용주 이름의 광고가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1944년 7월9일 ‘아사이신문’ 4면에는 애국기 헌납운동을 독려하는 김용주 이름의 광고가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또 1941년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대의 민간 친일단체인 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에 선정돼 결성식에서 ‘황군장병에게 감사의 전보를 보낼 것’을 긴급 제안하는 등 민·관을 가리지 않고 경북 지역에서 매우 영향력있는 친일인사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또 김용주가 징병제 실시와 애국기 헌납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대한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1943년 <아사히신문>(9월8일)에는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라는 징병제에 찬성하는 광고가 김용주의 이름으로 실렸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용주는 1943년 10월 열린 전선공직자대회에서는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으러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김용주는 경북지역에서 애국기 헌납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민족문제연구소는 밝혔다. 애국기란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낸 국방헌금으로 생산한 군용 비행기다.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대대적으로 전개된 국방헌납운동의 하나다. 김용주는 <조일신문> 등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애국기 헌납운동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싣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김용주가 활동한 영일군은 모두 14기의 애국기를 헌납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애국기를 헌납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에 대한 검증 결과, 기초적인 사실 관계도 틀린 부분이 많고, 객관적 자료로 확인이 불가능한 근거없는 이야기나 과장된 이야기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 불리한 친일 행적은 감추고, 일부 친일 행적은 마치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미화 왜곡하고 있다”며 오류가 많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평전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조세열 사무총장은 “김용주에 대해 친일파냐, 애국자냐란 논란이 있었지만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친일인데 어떤 친일이냐가 문제인데 검증 결과 경북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친일인사로서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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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발밑 가시가 된 오키나와 미군기지

 
2015. 09. 17
조회수 53 추천수 0
 

  오키나와.jpg

 언론매체들은 중국과 일본 또는 중국과 이웃국가들 간 고조되고 있는 긴장감에 대한 기사는 많이 쓰면서도, 오키나와와 도쿄 또는 오키나와와 워싱턴 간 마찰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현의 주민들은 18년 전부터 이 두 정부(일본과 미국)가 결정한 오키나와 북부의 헤노코 미 해군기지 신설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2년 12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아베 신조 총리는 최우선 과제로 이 프로젝트를 꼽았다. 하지만 그는 전례 없는 강력한 저항세력과 마주하고 있다.

  2015년 4월, 아베 총리는 미 의회에서 헤노코 군사기지와 같은 특정 의제를 거론할 때, 민주주의의 '공유가치', 즉 법률과 인권존중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며 의원들을 강력하게 설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국 방문 한 달 후, 오나가 타케시 오키나와 지사는 워싱턴을 방문해 신설 군사기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로 아베 총리의 말을 반박했다.

   대만과 일본 최남단 섬인 규슈 그리고 오키나와의 섬들 간엔 1,000km의 해안선이 펼쳐져 있다. 중국입장에서 보면, 이 해안선은 태평양 접근을 좌지우지하는 잠재적인 “거대한 장벽”이다. 예컨대, 이 지역이 동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 합병되기 이전에 이 섬들은 류큐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이 섬들은 전 근대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정치적으로 의존해 있는 상태였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1) 5세기 동안 동중국 해안에서 평화를 누렸다. 1850년대만 해도, 류큐 왕국은 미국을 비롯한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과 조약을 협상하던 독립 국가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상대적인 자치는 1870년대 막을 내렸다. 1868년 등장한 현대 일본 (메이치)정부가 류큐 왕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는 구실로 징벌차원에서 왕국을 붕괴시켜 일본에 편입시킨 것이다. 이후 왕국은 오키나와현이 되었고, 왕국의 수도 나하를 굽어보던 슈라성(城)은 오키나와 최초의 군사군지로 전락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겐 고유 언어사용 금지, 일본식 이름 사용, 신사참배 채택 등과 같은 강제 조치가 내려졌다. 

  일본 측에서 보면, 오키나와의 합병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반감의 징표이다. 이는 1945년의 참상으로 이어진다. 1945년 3월과 6월 말(2) 두 차례에 걸친 미국의 오키나와 폭격으로, 오키나와 주민 4분의 1이 사망했다. 많은 주민들이 간첩활동으로 기소되어 일본군에 의해 처형되거나 집단 자살을 해야 했다(때로는 일가족 전체가 자살했다). 이 같은 트라우마는 오키나와인들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0주년을 맞은 일본이지만, 미군은 여전히 오키나와 영토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4분의 3이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은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모든 주둔군을 철수시킨 후에도, 20년 동안 (1972년까지) 지속적으로 오키나와를 직접 통치했다. 물론 통치하는 영토가 당시보다 조금 줄기는 했지만 현재도 이들은 여전히 오키나와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헤노코에 건설하기로 한 군사기지는 오키나와 섬 남쪽에 위치한 기노완시 한복판에 들어선 후텐마 기지를 대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후텐마 기지의 격납고와 활주로는 학교, 병원, 거주지와 인접해 있다. 그래서 거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후텐마 기지는 전 미국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의 말처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이다. 천만다행으로 8월 방학이라 희생자가 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교를 덮친 군용 헬기 추락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훨씬 넓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후텐마 기지 대체시설(FRF)은 육·해·공군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헤노코 동쪽만과 오우라 서쪽만을 마주하고 있는 수심이 깊은 바다 위 160ha에 걸쳐 항구를 건설할 수밖에 없다. 이 기지는 바다 위로 10m 높이로 솟아오른 콘크리트 덩어리, 즉 1,800m에 달하는 두 개의 활주로와 272m의 부두로 구성된다.

 그러나 기지가 들어설 곳은 일본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해안 중 하나로 자연 보호구역이다. 일본 환경부 장관도 이 지역을 유엔 산하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싶어 한다. 또한 이곳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다. 산호, 갑각류, 해삼, 미역, 수백 종의 새우, 달팽이, 물고기, 거북이, 포유동물 등은 물론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희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해안에 들어서게 되는 미군기지

 

  만약 이 기지가 건설되면, 21세기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이 가장 밀집된 기지가 될 것이다. 이는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들이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정책(3)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주민들에겐 씁쓸한 일지만, 1996년 이들은 후텐마 기지의 이전을 아무런 조건 없이 약속했다. 아베 정부는 해군은 국방의 축이기 때문에 헤노코가 제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14년 초반 국방장관 나카타니 겐은 후텐마 기지를 규슈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못할 군사적인 또는 전략적인 이유가 전혀 없지만, 도쿄의 반대가 유일한 걸림돌이라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4)

   사실, 후텐마 해군기지는 첫 단추부터가 잘못되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머릿속엔 ‘총검과 불도저’를 동원해 주민들의 토지를 강탈해 불법 조성한 것이 곧 후텐마 기지라고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지의 위험이나 소음 혹은 유해함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당장 폐쇄해야 한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오키나와 주민들은 기지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오키나와현 지사를 비롯한 도·시 의원들과 일본 주요 정당의 오키나와 지부 소속 정당인들 그리고 <류큐신문>과 <오키나와타임스> 등도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초기 몇 년은 기지 이전 프로젝트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초반부터 제2기 아베 정부는 이들 세력을 무력화했다. 우선, 아베 총리는 본인이 대표로 있는 자민당 소속의 오키나와 지역구 의원 3명을 설득해 자기 진영으로 끌어 들였다. 이어 그는 자민당 소속의 오키나와 도의원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키나와현 지사 나카이마 히로카즈까지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지지기반의 잇단 이탈에 분개한 해군기지 이전 저지세력은 2014년 한 해 동안 치른 일련의 선거에서 승리하며 반격에 나선다. 이들은 1월에 치른 오키나와 북쪽에 위치한 나고시(市)의 시장 및 시의원 선거, 11월의 주지사 선거, 국회의원 4석이 걸린 12월의 국회의원 선거 등 모든 선거를 승리로 장식했다. 오키나오현 지사 선거 때, 보수성향의 후보 오나가 타케시는 섬을 수호하기 위해 공산당과 보수당 등 모든 정당을 아우르는 슬로건 “오키나와는 하나다”란 정책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또 기지 이전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 64%가 참여한 기록적인 투표율을 자랑하는 이 선거에서, 그는 당시 시장을 10만 표(그는 36만 800표를 얻은데 반해 상대방은 26만 1천표를 얻음) 차로 크게 이겼다.

 그럼에도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기 때문에 정부는 기지 건설을 착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2014년 7월에 시작했던 군사기지 공사 예비심사는 11월 국회의원 선거기간 동안 중단되었다가, 2015년 1월 다시 재개되었다. 아울러 아베 총리도 경찰폭동진압대와 해안경비대를 동원해 기지건설 반대 시위대를 저지하는 충격과 공포 전략을 채택했다. 일례로, 지난 3월 4일 오키나와 전통악기 산신(일종의 현악기) 음악축제 때, 29명의 음악인들은 기지이전 반대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해군기지가 들어설 장소 외곽에 모여 클래식 음악공연을 개최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연은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경찰폭동진압대에 의해 중단되고, 비를 피하기 위해 이들이 설치한 간이시설도 철거되었다.

  2015년 1월, 오키나와현 지사는 후텐마 기지의 이전을 허락한 전임 지사의 이전계획 과정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기 위해 이른바 ‘제 3의 길’이라는 전문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는 이전 과정이 제대로 진행된 것인지, 이 계획을 철회시킬 순 없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쿄당국이 의뢰한 공사 사전점검 작업으로 인해 산호들이 손상되고 있다며 도쿄당국에 작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나가 오키나와현 지사로 당선된 이후 4개월 동안, 일본 정부는 그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런 사람과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라는 나카타니 겐 국방장관(5)의 말은 이런 상황을 암시한다. 2015년 4월과 5월, 오나가 오키나와현 지사는 마침내 총리, 내각관방장관, 국방장관 등과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이 회동으로 인해 이들 두 진영 간에 골만 더 깊어졌다. 오나가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거만하게 굴면 굴수록 오키나와 주민들은 당신들한테서 등을 돌릴 것이다”라고 말해 섬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베 총리를 접견한 그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땅을 강탈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기지를 짓더니, 이젠 이 기지가 쓸모없는 곳으로 전락했으니 세상에 이보다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직격탄을 던졌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약속했던 5분 연설을 3분 만에 중단한 채 기자들과 함께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아베 정권에 정치적 부담감을 주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일본 총리는 전례 없는 국회 장악력을 선보이고 있다. 야당은 분할되어 약화되고, 대부분의 일본 주요 언론들도 정부를 거들고 있다. 아베 총리가 언론계 거물들과 골프 회동을 갖고 사교파티에서 이들과 조우하는 것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회와 언론계를 뺀 일본인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들의 기지건설 반대투쟁을 강력 지지하고 있다.

  2013년 워싱턴 방문 때, 아베 총리는 환대를 받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저녁 만찬이나 기자회견도 없었다. 그의 발언들, 예컨대 '재도약하고 있는 일본,' '전후 체제와의 단절,' '일본이란 이름에 걸맞은 역사를 가르쳐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겠다' 등과 같은 표현들은 미국 정치인들의 심기만 불편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일본의 전후 체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본이 군국주의와 파시스트 성향에 애착을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 후 아베 총리가 워싱턴을 재방문했을 때, 그 앞에는 붉은 카펫이 깔렸다. 그는 상·하의원들이 집결한 의회에서 연설도 했다. 이 같은 반전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워싱턴의 '일본 자문단'이 요구한 일정을 최우선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베는 미국의 요구대로 과거 60여 년 동안 일본정부가 중시하던 노선으로 복귀했다. 이어 그는 자위대의 군사 개입의 범위를 확장하고 앞으로 세계 어디든 간에 '자율적으로 연합군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일본 헌법도 손질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군 22만 5천명을 미군에 배속시킨 데 이어,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미군 주둔 유지비용은 비밀에 부쳐졌지만, 연간 86억 달러(6)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베는 헤노코에 미 해군기지를 신설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괌과 마리아나 제도의 신설 미군기지의 자금 28억 달러도 대부분 직접 조달해주겠다고 호언했다. 여기다가 해군 8천명의 이전비용을 합하면, 아베정부가 미국에 지불하게 될 총 보조금의 규모는 60억 9천만 달러에 달한다.

 아베 총리는 이를 두고 일본이 1947년부터 중시해온 헌법에 명기된 평화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이른바 “긍정적인 평화주의” 행위라고 일컬었다. 그러자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아베 총리의 발언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요량으로,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평화주의’란 일본자위대를 한국을 비롯한 중동과 남중국해에 파견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했다.(7)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0주년을 맞은 일본은 어쩌면 일본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친미활동을 하는 국가 지도자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워싱턴에 대한 아베의 행동은 노예근성과 깊은 적대감이 뒤섞인 이상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미국에 대한 노예근성과 민족주의의 확립이라는 두 기치를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근대 일본의 근본적인 모순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8)

   그는 당장 오키나와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그럴 방도가 전혀 없다. 일본에서 그의 지지기반이 붕괴되자, 일본 정부도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미온적이다. 4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헤노코 기지건설에 대한 첫 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공사 착공을 지시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 16일 전문위원회 ‘제3의 길’은 보고서를 통해 기지건설 허가 과정에서 전임 지사가 여러 부정을 저질렀음을 지적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오나가 지사는 9월에 이 사건을 제네바의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지난 8월 4일, 아베 정부는 오키나와현 지사와 4개 부문에서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첫째는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8월 10일부터 9월 9일까지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오키나와는 모든 법적조치를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넷째는 지사의 요구대로 오우라만(灣)의 산호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는 착공을 너무 오랫동안 지체할 수 없는 처지이다. 왜냐하면 태풍이 닥치면 공사를 거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보면, 아베 정권에게도 오키나와의 마찰은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한 달 간의 휴전 끝에, 아베 총리는 어쩌면 자신의 의지를 오키나와현에 관철시키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들은 단지 신설기지건설 중단 요구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군사기지의 폐쇄를 요구하지 않을까.

  

 

(1) 동아시아의 중심, 중국은 이웃 국가들에게 충성 맹세를 대가로 무역권을 제공하고 있다.

(2)  오키나와 전투의 가장 끔찍한 행위는 3월 26일부터 벌어진 케라마제도 전투였다. 이 전투는 미군이 이 섬에 상륙한 1945년 6월 22일까지 지속되었고, 미군은 이 섬을 후방 폭격기지로 활용해 일본 전역을 점령했다.

(3) Michael T. Klare, ‘펜타곤이 태평양으로 기수를 돌릴 때(Quand le Pentagone met le cap sur le Pacif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3월.

(4) <Okinawa Taimusu>, Naha, 2014년 12월 25일.

(5) <Okinawa Times>, Naha, 2015년 3월 13일.

(6) Estimations : 2012.

(7) <McCain : SDF should expect to see action in Korea, deploy to Mideast, South China Sea >, <Japan Times>, Tokyo, 2015년 5월 2일.

(8) Bruce Cumings, ‘의심의 시기를 맞은 미일 커플(Le couple nippo-américain à l’heure du soupç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4월.

 

 

글·가번 맥코맥 Gavan McCormack  호주 국립대 명예교수  
 

웹사이트 저팬 포커스(Japan Focus)의 코디네이터. 최근에 사토코 오카 노리마츠와 함께 <일본과 미국에 맞서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Resistant Island : Okinawa confronts Japan and the United States)>(Rowman & Littlefield, Lanham, 2012)를 출간했다.

  

번역·조은섭 chosub@hanmail.net 파리7대학 불문학박사.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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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일본 식민통치 수법까지 쓰려나"

"박근혜 정부, 일본 식민통치 수법까지 쓰려나"
[인터뷰·下]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서어리 기자 2015.09.16 11:49:23

 

인성 교육 법제화에서부터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시도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교육 정책을 지켜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일제 시대의 교육이었다. 예절 교육과 교과서 통제. 이를 통해 일제가 구현하고자 한 조선인의 인간상은 '순응적 식민(植民)'이었다. 

 

이 교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비판했다. 학계와 학교 현장의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서 일제히 "국정화 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정부는 별말이 없다. 국정 전환, 검정제 유지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정부의 모호한 태도는 논란만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정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정부로선 논란을 반길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국정화 시도에는 국민을 순응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교과서 논쟁은 결국 이념 대결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싸움의 승자는 언제나 보수 진영이었다.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진보 세력은 종북 프레임 속에 갇히기 쉽다. 또 현 정부로선 교과서를 둘러싼 잡음이 커진 덕에 상대적으로 다른 여러 실정이 묻히고 있으니,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 셈이다. 정치권이 학계 의견 수렴도 하지 않은 채 국정화 이슈를 들고 나온 배경엔 이런 셈법이 숨어있을 거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정부가 과연 계획대로 국정화 작업을 강행할 것인가. 교육부는 이달 말께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은 지난 회(☞관련기사 :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종북' 아닌가")에 이은 이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국사편찬위, MB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국정 역사 교과서가 발행되면, 이념 편향 문제는 차치하고 단순 오류도 더러 있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공개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에서 오류가 상당수 발견됐다.

이만열 : 보수 진영에서는 늘 시장 원리를 이야기하는데, 기본적으로 국정 체제는 시장 원리를 따르지 않는 독과점 체제다. 검인정 체제는 경쟁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또 오류가 발견이 되어도 바로바로 수정하려고 한다. 국정 체제가 되면 그런 노력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다. 결과물에 대해서 검정제 하에서만큼 책임지지 않는다. 오류들이 걸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사편찬위)도 감수를 하기 때문에 그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없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정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비롯해 국사편찬위가 초기 위상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느끼나.

이만열 : 교학사 교과서는 명백한 오류들이 많았고, 내용도 부실했다. 집필 기준에 따르면 떨어졌어야 하는 교과서였다. 그런 점에서 국사편찬위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의 검정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국사편찬위에서 직접 심사를 하는 게 아니라 위원회를 따로 두지만 통과 여부는 국사편찬위 이름을 내걸고 밝힌다. 과거 국사편찬위에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보건대, 국사편찬위는 교과서 검정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사편찬위는 중립적 입장에서 국사 연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해나가야 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3년 내가 위원장에 취임했을 당시 교과서에 관한 업무는 교육부 산하 기관이 담당했고, 국사편찬위는 종래 해 오던 국정교과서 업무만 맡고 있었다. 국사편찬위가 교과서 검정과 관련된 일을 부탁받은 적이 없었다. 정부가 국사편찬위 위원 인선 문제 등에서 관여하려고 했지만, 국사학계가 성장했고 그런 인선은 학회들과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관장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기관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지고 부당한 외압을 막아야만 조직이 제대로 돌아간다. 상부 기관의 압력을 막아내지 못하면 기관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고 공동체를 이끌어가기도 힘들다.

국사편찬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 몇 년 후 MB정권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크게 문제가 됐던 게 바로 '건국절' 논란이다. 정부에서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하면서 당시 위원장으로 하여금 건국절준비위원들 앞에서 건국절과 관련된 강연을 하도록 했다. 아마 그 무렵부터 정부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협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사편찬위이 그렇게 된 데 대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연합뉴스

 

 

"국정 교과서 집필, 교학사 집필진 말고 누가 나설까"

프레시안 : 교과서 발행 체제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부터 비롯된 데 대한 비판이 적잖다. 여권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한 '탈이념' 내지 '탈정치'를 강조하지만, 정작 국정화 움직임은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됐다. 학계에서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나.

이만열 : 내가 아는 한 역사학계에서는 국정화에 대한 의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번 교과서 검정 때 교학사 집필자 몇몇에게서 들은 것 말고는, 학계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 최근 서울대 교수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이를 지적했다. '저희 주변의 역사학자 중에서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데 찬성하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내 주변 또한 그렇다.

교과서는 학계의 보편적 이론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본다. 그 시대 학문 결과로서의 '보편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이 과연 보편적인 이론인가. 이 이론에 동조하는 이들이 일부 있지만 학계에서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만약 식민지 근대화론이 학계의 주류 이론이고, 그래서 이를 근거로 정치인들이 지금의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정화 주장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니다.

먼저 학계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교과서가 당시 학계의 보편적 학문 결과를 집약하여 묶는 것이어야 한다면,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먼저 자극적으로 이념으로 편 가르기하고 선동해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학사 교과서가 배척받을 때, 교학사 교과서 집필 책임자 중 한 사람은 교학사 교과서 외의 검정 통과된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이니 '민중사관'이니 하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국정화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역사학계는 물론 국민들에게서도 크게 신뢰를 받는다고 볼 수 없는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가 한 말이 마치 예언처럼 맞아 들어가는 데 대해 나는 아주 모멸감을 느낀다.

프레시안 : 국정교과서 집필에 학자들이 순순히 나설지도 의문이다.

이만열 : 정부는 공정하고 해박한 분들을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런 분들이 과연 집필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우선 학자들 대부분이 국정화 자체를 반대한다. 더군다나 집필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는데, 이렇게 전국민적인 저항을 받는 상황에서 용기 있게 나설 수 있겠나. 동의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한 얘기지만,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나섰던 분들이거나 그 아류들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면 국가에서 뭔가 요구하는 게 있지 않겠는가. 국가가 굳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현 보수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극우 세력의 입김이 자연히 국정화된 교과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극우 세력이 어떤 존재들인가,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과 독재 부패 세력 그리고 반통일 세력이다. 이들의 입김을 받으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이 독립운동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 및 평화통일 세력 중심에서 친일 세력, 독재 부패 세력 및 반통일 세력으로 대치된 상태에서 힘겨루기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주체가 독립운동 및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친일파와 독재 정권 세력으로 바꿔치기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적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강조하는 헌법 정신이 교과서 속에 제대로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굉장히 우려한다.

그러지 않아도 벌써 국사편찬위에서 만들고 있는 국사 과목 기술 가이드라인에는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사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거기에다 학계에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MB정권 이래 활개를 치고 있는데 이들이 교과서 서술에 또 얼마나 관여하게 될까.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서술들이 역사 교과서에 주입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교과서 논란? 朴 정권 실정들 묻어 버리려는 꼼수"

프레시안 : 교육부가 사회, 역사 과목에서 전근대사와 근‧현대사의 비중이 현행 5대 5에서 6대 4로 조정되고, 학습량 전체는 30% 정도 줄어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역사 교육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축소된다는 얘기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

이만열 : 모든 역사가 소중하겠지만, 최근 세계적인 추세를 보자면 고대사보다 근‧현대사가 좀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대 사회 문제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근‧현대사를 줄이겠다는 것은, 근‧현대사에 대한 치열할 역사의식을 약화시키면서 근‧현대사를 통해 과거의 역사를 보려는 시도마저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 내용의 비중을 줄인 다음, 자신들이 원하는 역사를 넣어 다시 근‧현대사 비중을 늘릴지도 모른다. 국정 교과서로 전환되고 그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교육 과정이 수시로 바뀐다. 예전 7차 교육 과정까지는 예고를 하고도 실제로 바뀔 때까지 시간을 오래 뒀다. 그런데 MB정권 이후로는 아예 몇 차 교육과정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졌다. 교육 과정을 수시로 바꿀 수 있게 했다. 이런 작업이 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 과정을 손질하기 쉽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대통령부터 시작해 국정 교과서에 대한 여권의 의지가 대단한 걸로 보인다. 국정화로 최종 결론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학계와 현장의 반발이 거세다.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가 국정화를 할까? 만일 그렇다면, 정부가 이렇게 국정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만열 : 우선 국정화 전환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늘 그러했다. '반대하려면 해라. 우리는 간다'였다. 일단 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풀에 알아서 지치기를 기다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믿는 거다.

역사 교육, 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좋다고 본다. 그런데 왜 국정화를 시도해서 분란을 일으켜 왜 점수를 다 까먹으려고 하나. 분명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일부러 갈등이 증폭시키려는 것 같기도 하다. 경제도 자신이 없고 다른 공약들도 줄줄이 실천 불가능한 것이 되니, 그런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고, 교과서 논란 같은 걸 만들어 각종 실정들을 함께 묻어버리려는 그런 정치공학적인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때때로 든다.

특히나 보수 진영은 이념적 편 가르기를 통해 많은 덕을 봐왔다.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종북' 세력이라고 몰아붙여 선거에서 이득을 본다. 이렇게 끌고 가야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원치 않는 걸 알면서도 국정화 반대 의견을 종북 좌파의 얘기로 치부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인 편 가르기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교과서 통제에 인성 교육, 일제식 발상"

프레시안 :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시도부터 인성 교육 법제화까지, 정부가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죽이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만열 : 20세기 초,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며 조선 정부를 '지도'할 고문을 셋을 뒀다. 외교, 제정, 그리고 지금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다. 학부 고문이 우리나라 교육에 간섭하면서 맨 처음 한 게 교과서를 통제하고, 교육 현장에서 정의 관념과 투쟁적인 걸 가르치지 말라고 강조한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상부에 순응하는 양순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인성 교육, 예절 교육이라는 것도 투쟁하지 않고 순응적인 식민(植民)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이들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학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국자의 심정이 얼마나 착잡했으면 그런 말을 썼겠나.

지금 국가가 법으로까지 만들어 인성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일제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국정 교과서도 그렇다. 국가가 역사 서술을 독점함으로써 비판적 사고를 위축시키게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올바른 역사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만열 :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역사 교육이라면, 역사 교육은 오늘의 삶에 대한 진단으로도 통한다. 그러기에 역사 교육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재와 연결시키는 교육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실을 인과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적 입장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거기에 비판적인 안목을 키우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가르치는 사람이 확고한 가치관 위에 서서 신념과 열정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교육 지침서라 할 교과서가 좋아야 한다. 열의를 가진 교사가 '이 교과서 정도면 내가 아이들에게 나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겠다' 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외적인 조건이 주어졌을 때에 역사 교육이 바로 된다. 이러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중앙과 지방의 정부, 학부형, 교사의 역할이다. 부디 이를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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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위원장의 차원 다른 북미대결전 대응

김정은위원장의 차원 다른 북미대결전 대응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9/17 [00: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언론들은 벌써부터 북의 위성발사와 핵시험 이후 가해질 대북 제재에 대한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이 자칫 세계적인 전쟁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 자주시보

 

14일 북이 인공위성발사 계획을 발표하자 15일 미국은 유엔안보리결의 위반이라며 대응 조치를 경고하였다.


그러자 같은 날 북은 즉각적으로  "우리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며 핵시험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이것만 봐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한반도 핵문제 해결 관련 정책은 전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2010년 10월 27일 KBS 9시 뉴스 화면복사, 궈보슝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김정은 대장에게도 선물을 전달하였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은 북에 대한 태도가 확 변했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을 시작으로 북중관계가 폭발적인 교류협력으로 접어들었다.   ©자주민보
▲  2010년 10월 27일 KBS 9시 뉴스 화면복사, 궈보슝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김정은 대장에게 전달한 선물,  선물에 김정은 당시 김정은 대장을 '수장'이라고 호칭하였다. 수장은 중국에서 최고사령관에게만 붙이는 호칭이다.   ©자주민보

 


✦ 김정은 제1위원장의 외교전 특징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사분야를 총 지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계기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을 통해서이다. 정원 등에서 그 사건 이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연평도 포격전을 김정은 위원장이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도 포격전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천안함 사건이다.

 

외교는 군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경제력으로 외교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소위 벼랑끝전술이라고 알려져 있는 군사력으로 외교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북의 경우엔 외교전도 군사를 틀어쥐고 있는 지도자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08년 10월 11일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 결정을 이끌어낸 과정에서부터 북은 전과 다른 군사, 외교전 특성을 보여주었다.


첫째가 최종 시한을 명시한 단호한 최후통첩이고 둘째 특징이 실제 물리적 타격까지 사용한다는 점이다.

 

2008년 10월 1-3일까지 힐 차관보가 평양에 들어갔는데 당시 조선신보를 인용 보도한 내일신문과 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보면 그때 북에서 중대한 최후통첩을 했었다고 한다. 그 최후통첩 내용이 얼마나 단호했던지 힐 차관보는 예정보다 하루 더 평양에 체류하면서 미 백악관과 수시로 협상 과정을 논의하였다. 성 김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은 서울에 남겨두고 힐 차관보만 평양에 들어갔는데 성 김은 한국정부와 입장을 조율하는 업무를 수행했었다고 한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미국 부시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북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하여 즉각 그 효력을 발생시켰다. 북이 정한 최후통첩 시간을 10일 정도 밖에 주지 않았던 것 같다.

 

2009년 1월에도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전면적 대결태세 진입'을 발표하여 놀라게 했던 북은 4월 5일, '은하 2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였는데 이것도 1호 때와 달리 발사 날짜와 발사 장소까지 미리 알려주었다. 요격할 테면 해보라는 것이었다. 실제 미국과 일본에서 요격 운운하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즉각적으로 전면전 불사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후 국정원 등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심이 하도 확고해서 ‘세계전쟁이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본지 한반도정세전문가 한호석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성을 요격하려고 할 경우 즉각 미 항공모함을 타격하라는 명령까지 내린 상태였으며 북의 전투기들이 항공모함을 타격하기 위한 매복비행에 들어간 상태에서 광명성 2호 위성을 발사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북의 위성로켓을 요격하지 못했으며 북은 성공적으로 실험위성을 우주공간에 올려놓았다.

 

이에 미국이 유엔을 움직여 대북 제재 논의를 진행하자 그 다음달인 5월 25일 북은 전격적으로 2차 핵시험을 단행하였다. 유엔 제재결의안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이어 6.12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1874호를 채택하자 북은 바로 우라늄농축과 그 무기화에 진입한다는 초강경 입장을 천명하였다.
2006년 5월 장거리 탄도미사일 연속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이 나오자 수 개월이 지난 10월 9일에 1차 핵시험을 진행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전격적인 대응이었다.

 

본지에서는 2010년 천안함 침몰 당시에도 북과 미국 사이에는 엄청난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천안함을 북이 침몰시켰다는 결정적 증거인 어뢰 잔해는 국내외 권위 있는 과학자들에 의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히 드러났다. 어뢰의 백색물질이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바다 속에 있으면서 층층이 쌓인 알루미늄 산화물이란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스라엘과 미국의 잠수함 등에 심대한 타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자세한 그 구체적 내용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어 이정도로 약한다.

천안함 하나만 놓고 봐도 사실 이전 서해교전이나 연평해전과는 그 피해 규모에 있어 차원이 다른 엄청난 군사적 충돌이 아닐 수 없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해 10월 벌어진 연평도 포격적이다. 설령 천안함 사건 당시 북미 사이에 잠수함이 격침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해도 북도 미국도 우리정부도 공개하지 않았기에 국민들과 세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평도는 북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엔군이 관할하는 한국의 영토이다. 그곳에 한 두 발도 아닌 포탄 수백발을 쏟아부어 섬 전체의 모든 군사기지를 불바다로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953년 7월 27일 맺은 정전협정은 전쟁을 잠시 정지하자는 협정이지 종전협정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일방이 공격을 가하면 정전협정은 자동 폐기되며 정전 이전 치열한 전투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만약 유엔군사령부 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즉각 보복타격을 지시했다면 바로 전면전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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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건 당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를 주재하며 단호한 결심을 언급하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 .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시한을 명시한 최후통첩과 총포탄을 사용한 물리적 타격의 특징은 이번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건에서 다시 한 번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북은 대북 심리전 방송을 48시간 안에 중단하지 않으면 전 전선에서 무자비한 타격을 가해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내보냈으며 실제 전면전을 대비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인민군의 전방 증강 배치에 잠수함전단 기동, 상륙용 공기부양정 기동과 특수부대 침투 준비는 물론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발사 준비에 들어가는 초강경 군사적 조치를 단행하였다.
결국 유엔사에서 북에 누차 대화제의를 했지만 북은 그마저도 거부하고 남북당국간 회담을 역제의 하여 결국 남북관계 개선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8.25합의를 도출하였다.

 

이 사건에서 보여준 북의 대응에서 주목할 점은 최후통첩 시간이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단축되었다는 점과 물리적 대응 수위가 미 본토타격까지 상정한 전면전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번 4차 인공위성 발사 계획 발표에 대한 미국의 경고의 경우에도 북은 그 당일에 핵뢰성을 터트리겠다는 경고로 대답했다.

 

▲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이 인공위성로켓발사와 북핵시험 계획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강경과는 거리가 먼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자주시보

 


✦ 대북 제재는 북미 본토타격전 초래 우려

 

한국 언론들은 이번 북의 발표에 구체적 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서 실제로 발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반응을 떠보려는 것 같다는 분석과 함께 만약 북이 위성을 발사하게 되면 미국과 유엔안보리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기존 결의에 규정한 '트리거 조항'(자동개입)에 따라 추가 제재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북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추가 제재로는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금융제재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추가적인 강력한 금융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북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6일 주요 뉴스들은 미국의 입장과 함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을 집중보도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한 목소리로 북에게 강력한 경고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 대니엘 러셀 동아태 차관보의 북 위성발사와 핵시험 계획에 대한 입장도 신중한 어조와 단어선택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 자주시보

 

▲ 중국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의 북 위성로켓 발사에 대한 입장 보도     © 자주시보
▲ 중국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은 북만이 아니라 한반도 핵문제 관련 유관국 모두에게 당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 자주시보

 

하지만 미국도 그렇고 중국 훙레이 외교부 대변인의 담화 내용을 직접 들어보면 북만 지칭해서 한 말이 아니라 유관국 모두가 한반도에 긴장을 초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kbs 9시 뉴스에서는 훙레이 대변인이 ‘유엔결의안은 실질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앞 뒤 다 자르고 이 말만 딱 보도해서 아직 중국 정부의 확실한 입장을 확인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미국의 입장은 ‘경고’, ‘자멸’ 등과 같은 과거의 강력한 대응어들이 사라지고 ‘촉구한다’, ‘실수가 될 것’, ‘북의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 등과 같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이를 무슨 엄청난 경고라도 했다는 듯이 보도하고 있는데 미국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이나 다니엘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표정만 봐도 걱정이 한 가득 어려있는 표정들이었다.

 

사실, 지금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에 대한 경제제재를 입체적으로 가하고 있지만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본지의 입장과는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언론에서도 북중관계가 좋지 않을 정도로 중국도 북에 대한 경제제재에 있어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는데도 북은 나날이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는 내놓고 북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전면 대결전을 펴고 있는 러시아가 대북제재 공조에 보조를 함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제3세계 국가들은 평양공항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느라 바쁜 상황이다. 사실 북에 대한 미국과 그 동맹국의 경제제재는 이미 끝장난 지 오래다. 여기서 뭘 더 가한다고 해서 실제 북에 타격을 줄 것인지 의문이다.

 

대신 북의 강력한 반발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사와 외교전을 지휘할 때부터 북은 전에 없는 파격적인 행보들을 보여왔다. 그 중 제재에 대한 입장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제재 경고에 “언제는 제재가 없었는가”라며 신경 쓰지 않고 갈 길은 간다는 입장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 시대에 와서는 경제제재도 북의 레짐체인지 즉, 체제전복을 노린 공격이라고 언급하며 대응타격을 경고해왔다. 특히 강대국의 이득을 위해 언제까지 분단을 인내하며 살 수만은 없다며 주동적으로 분단을 끝장내겠다는 입장, 나아가 통일성전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북은 한반도 전쟁으로 통일을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며 한반도가 아닌 미 본토에서 전쟁으로 미국과 끝장을 볼 준비를 하느라고 그간 통일이 늦어졌다며 이제 그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특히 전쟁은 소문을 내고 하는 것이 아니라며 전혀 알 수 없는 시점에 전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내놓았다.
나아가 전쟁 이후 남한 경제적 혼란을 전혀 없게 할 수 있는 만만반의 준비까지 다 끝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 외교관들은 2차 핵시험 이후 유엔 대북 제재결의안이 나오자 유엔 회의석상에서 ‘미국이라는 갱스터와 그 똘마니 중국, 일본 등 모든 나라가 다 덤벼도 얼마든지 상대해줄 수 있다’는 폭탄발언도 터트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그 후 천안함 사건이 터졌고 연평도 포격전도 벌어졌다. 이 정도면 북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국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말 중국 훙레이 대변인이 유엔대북제재결의안은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고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9.19공동성명 등 그간의 합의사항이 이행에 옮겨져야 한다고 한 말을 우리 언론이 잘못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중국까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북의 위성발사를 이유로 북에 또 다시 제재를 가하려고 하면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심각한 전쟁 위기 상황을 맞이할 우려가 높다.

 

북은 올 초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미대화를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북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 남북관계개선 관련 8.25합의만 봐도 북도 무조건 전쟁만을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틀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면 8.25처럼 위성발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북미대화가 전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북의 위성발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로켓기술이 그대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로 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과 미국은 정전 즉, 실질적인 전쟁 상태에 놓여있기에 이런 위성발사가 미국에게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현 북미사이의 전쟁상황을 완전한 평화체제로 바꾸지 않는다면 북미 사이엔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항상 놓여있게 된다.


중국과 소련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주권을 존중해주고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듯이 미국도 북과 관련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상호 안전을 보장할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입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 정부도 북미관계가 악화되어 한반도가 전쟁 상황으로 치달아가게 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만 더 어려워지게 된다. 전쟁이라도 터지면 그간의 많은 재부가 일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만다.

 

곧 미국에서 열리게 될 유엔 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보가 아니라 미국, 중국 등의 지도자들을 만나 지혜롭게 중재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율해나가기를 국민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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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걸렸어!. 숫자로 본 박근혜정권 ①경제

 
 
정부가 주장해온 GDP 대비 법인세의 비중은 잘못된 것
 
임병도 | 2015-09-17 09:18: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법인세 인상 요구에 ‘GDP 대비 법인과세 비중이 3.7%로 OECD 국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고 주장하며 법인세 인상 불가를 주장해 왔습니다.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고 동의하는 국민도 한국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높다는데 여기서 더 인상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장해온 GDP 대비 법인세의 비중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기재부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GDP 대비 법인과세 비중은 3,7%가 아닌 3.16%였습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정부가 지난해 GDP대비 법인세 비중을 3.7%라고 제시했지만, 작년 한국은행의 GDP통계 1485조 1000억원에서 3.7%는 55조원이다. 정부가 걷은 법인세 수입은 42조 6000억원인데 이는 GDP대비 2.87%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기재부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법인과세 비중을 보면 2011년 3.72%, 2012년 3.68%, 2013년 3.39%, 2014년 3.16%로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박근혜 정권과 여당이 주장해온 숫자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장문의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권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이 의원은 “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16년 재정수입 전망치는 2013년 펴낸 국가재정운용계획보다 21조 7,000억 원, 2014년 국가재정운용계획보다는 13조 1,000억 원이 차이가 난다”며 정부의 국가재정운영계획이 수십조 원씩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한구 의원은 “더 심각한 문제는 2017년 이후 재정지출 증가율을 비정상적으로 낮게 전망해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국가부채를 과소추정한 의혹이 있다”며 박근혜 정권이 고의적로 통계 자료를 왜곡해서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재정운영이 부실하다 보니 부족한 세수를 과태료나 과징금, 가산금 등의 징벌적 세외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2014년 징벌적 세외수입은 4조 773억 원으로 전년대비 14.5%(5,148억원)이 증가했습니다. 과태료의 경우는 9,491억 원을 징수해 2013년보다 22.1%(1,720억 원) 증가했고, 과징금은 7,906억 원을 징수해 2013년보다 무려 1,795%(7,489억 원)가 증가했습니다. 가산금의 경우는 8,263억 원을 징수, 2013년 대비 13.5%(980억 원)가 증가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세수 때문에 과태료를 인상하고, 교통 범칙금을 남발한다는 주장이 유언비어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요새 노동개혁이 박근혜 정권의 화두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정부의 주장을 믿고 ‘청년 일자리’가 많아지고 비정규직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그리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민간의 자발적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민간의 정규직 전환비율은 2013년에는 분기별로 20%대를 유지하였으나, 2014년 이후 10%대로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비율도 2013년 이후 감소율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노동관련 수치만 보면 무조건 ‘임금피크제’만 내세웁니다. ‘임금피크제=청년 일자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박근혜 정권이 해온 노동개혁을 보면 앞으로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거나 결론을 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부 통계와 자료를 보면 지금 박근혜 정권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왜곡하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구조개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로지 총선과 대선을 위한 프레임으로 '청년 일자리'라는 이슈를 만들어 여기에 모든 상황을 뜯어 맞추고 있습니다.

과거 일자리 몇 개 만들겠다고 해놓고 결과를 보면 그저 숫자상의 통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마저도 오류투성이였습니다. 규제개혁을 통해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잠시 그때뿐입니다. 과연 미래를 위한 진정한 정책이 있는지, 정권을 잡기 위해 왜곡된 통계를 인용해 국민을 속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다시 한 번 제대로 알아봐야 할 때입니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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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출발점, ‘평화적 우주개발권’


<초점>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의지 표명의 의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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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6  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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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위원장, ‘평화적 우주개발권’ 강조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5월 초 새로 건설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의지와 핵실험 가능성을 연이어 천명하고 나선 가운데 북한이 유독 ‘평화적 우주개발권’을 강조하고 나서 주목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초 새로 건설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현지지도하면서 “평화적인 우주개발은 우리 당과 인민이 선택한 길, 선군조선의 합법적인 권리”라고 강조했다.

14일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평화적 우주개발은 국제법에 의하여 공인된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우리 당과 인민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이 권리를 당당히 행사해나갈 드팀없는 결심에 넘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거리로켓을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고, 유엔안보리 결의 1718/1874/2094호 등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북한의 모든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2006.10.14)는 북한에 대해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 중지를 결정하고 있으며, 이후 결의들은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성종합관제지휘소 시찰시 “인공지구위성 제작과 발사국으로서의 우리의 지위는 적대세력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으며, 우주개발사업은 그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포기할 사업이 아니”라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우주개발법’을 설명하면서 “우주개발 및 리용과 관련한 국제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우주활동분야에서 선택성과 이중기준의 적용, 우주의 군사화를 반대한다는 데 대한 공화국의 원칙적 립장도 천명되여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2014.3.31)

그러나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중대한 도발행위”라며 “군사적인 위협이고,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행동을 금지하고 있는 UN결의안에 대한 명백한 위반행위”라고 규정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도 14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안보리 결의들은 북한측에 탄도미사일 관련한 모든 활동 중단과 미사일 발사 중지(moratorium),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 행위 중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북한의) 모든 발사는 이들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했다.

이같은 상황에 처한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는 주권국가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할 경우 핵실험이라는 고강도 대응책으로 맞서왔다.

북한이 14일 인공위성 발사 의지를 밝힌 데 이어 15일 미국 등 적대세력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을 계속할 경우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결국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평화적 우주개발권’과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이 상충하고 있는 셈이며, 더 근원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우주개발법 제정, 국가우주개발국 설립

   
▲ 북한이 2012년 4월 내외신에 공개했던 인공위성 '광명성 3호' 1호기.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점시책으로 인공위성과 로켓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를 시작으로 인공위성 개발을 본격화 했고, 2012년 12월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를 은하3호 로켓에 실어 우주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이 여세를 몰아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2013년 4월 제12기 제7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주개발법’을 채택하고 기존의 우주공간기술위원회를 국가우주개발국(NADA)으로 확대개편했다.

이어 국가우주개발국 마크를 제정하는가 하면, 평양시 룡성구역 룡궁동을 은하 로켓의 이름을 따 ‘은하동’으로 개명하는 등 우주개발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우리 국가우주개발국은 나라의 경제발전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하여 기상예보 등을 위한 새로운 지구관측위성개발을 마감단계에서 다그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위성개발의 새로운 높은 단계인 정지위성에 대한 연구사업에서도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고 말했다.

또한 “보다 높은 급의 위성들을 발사할 수 있게 위성발사장들을 개건확장하는 사업들이 성과적으로 진척되여 나라의 우주과학발전을 힘있게 밀고나갈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2년에 궤도에 진입시킨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는 실용위성으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혁 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은 지난 7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광명성 3호 2호기에 대해 “지금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도 “물론 데이터 전송에 종종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인공위성 발사의 경제적 효과

따라서 지금 북한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지구관측위성’은 보다 진전된 기술로 실용위성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현 시기 우주개발은 세계적 추세로 되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통신 및 위치측정, 농작물수확고 판정, 기상관측, 자원탐사 등 여러가지 목적으로 위성들을 제작, 발사하고 있다”며 “우리의 위성발사 역시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국가과학기술발전계획에 따르는 평화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윤창혁 국가우주개발국 부소장은 지난 5월 28일 <AP>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은 통신위성을 개발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상위성은 농업에 효과적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재정난을 겪고 있어도 우주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8배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 전략기술분석센터 전문가인 바실리 카신은 15일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위성발사에 대해 “국가 위상을 높여줄 뿐 아니라, 북한에 있어 미사일 기술 수출은 외화 벌어들이기에 상당한 출처가 된다”고 평했다.

그는 “북한에 있어 우주 분야 기술 수출은 상당한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이며, “특히 연구원들에게 지불되는 저임금과 저렴한 재료 비용은 국제가로 상환할 때 거의 공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은하 9호’, 미국 본토 사거리에 넣을 수 있어

   
▲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발사의 완전성공을 지켜보았다고 5월 9일자로 보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의 발표처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 위성발사장’의 발사대는 기존 50m에서 67m로 확장돼 전장 30m의 은하3호 로켓보다 최대 두 배 크기의 로켓 발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기술력 향상을 국제사회에서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은하3호 로켓은 이미 1만Km 사거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며, 은하3호보다 훨씬 큰 로켓이 개발될 경우 미국 본토 전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정권에 들게 된다.

북한은 2013년부터 은하3호 보다 훨씬 큰 은하9호 로켓 모형을 여러 차례 홍보했고, 2013년 3월 26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지금 이시각부터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군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의 모든 적대상물들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케트군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고 엄포를 놓은 바도 있다.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 무대책으로 북한 문제를 방치해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로켓에 인공위성을 탑재해 쏘아 올리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로켓 비행거리 뿐만 아니라 탄두 경량화 기술이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이 추가로 필요하고 북한의 관련 기술력은 아직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5월초 수중에서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북한은 ICBM 외에도 잠수함을 이용해 미국 본토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인공위성의 이중 용도와 GPS

   
▲ 24개의 위성으로 구성된 GPS의 개념도. [자료사진 - 통일뉴스/카리스쿨]

북한의 인공위성 기술이 경제적 가치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적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 두 측면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전지구 위치파악 시스템) 문제도 장기적인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GPS는 24개의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6면 궤도로 돌면서 보내오는 신호를 수신해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으로 미국 국방부가 1970년대부터 군사용으로 개발해 독점적으로 운용해 왔다.

GPS 기술은 무기 유도, 항법, 측량, 지도 제작, 측지, 시각 동기 등 군용 및 민간용 목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폰에서도 사용되는 등 첨단 과학기술의 보고라 할 만하다.

북한 <노동신문>은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가 성공한 직후인 2013년 1월 7일 “GPS 분야에서 미국의 독점적 지위는 허물어지고 있다”며 “앞으로 자기 식의 GPS를 가지는 나라들이 더욱 늘어날 것은 명백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의 GPS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연합(EU)은 독자적인 GPS인 갈릴레오(Galileo)를, 중국은 베이더우(北斗, COMPASS)를, 러시아는 글로나스(GLONASS)를 개발 중이거나 보완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GPS를 보완해 정밀도를 높인 ‘준텐조(準天頂, QZSS)’위성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GPS 독점권으로부터 벗어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GPS를 이용하거나 이와 연계해 독자적인 GPS를 구축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임에는 틀림없다. [관련기사 보기]

‘조선이 우주개발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도전적인 <CNN> 기자의 질문에 윤창혁 부소장은 “우리의 목표는 경제발전이다.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제고하는 것”이라며 정확한 일기예보는 농업발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적으로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는 답변인 셈이다.

한편, <노동신문>은 “1990년대에 있은 페르시아만 전쟁과 발칸전쟁 때 유럽이 GPS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작간을 부린 사실은 많은 나라들에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고 지적, GPS가 상업적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적 자주권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는 올해 초 ‘2015년도 3대 안보위협 예측’ 보고서에서 “관성항법장치(INS)에 GPS가 결합되면 정확도가 25% 높아지고, 재진입오차제어 등을 활용하면 60%까지 정확도가 향상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평화적 우주개발권 문제는 핵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북핵 문제가 없었다면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 결의가 나왔을 리도 없다. 결국 북핵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평화적 우주개발권 문제도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평화적 우주개발권과 핵이용권

   
▲  2007년 2.13합의에 도달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았다. 9.19공동성명에 입각한 북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상호 조율된 조치'에 합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겨레>에 따르면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오는 18일 토론회 발제에서 이란 핵협상 타결을 예로 들어 “플루토늄 생산 시설은 완전 폐기하고, 대신 전력생산용 경수로와 이에 필요한 저농축 우라늄 시설의 일정한 유지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이 타협은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 협상에 적용될 여지가 많다”고 지적할 예정이다.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평화적 우주개발권과 핵이용권을 보유하는 것은 보통국가에게 적용되는 통상적 국제기준이다. 그러나 핵을 개발한 북한을 보통국가로 용인하는 협상을 할 수 없다는데 미국의 딜레마가 있다.

국가의 생사존망을 걸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온 북한에게 이것을 포기하라고 할 때는 그에 합당한 안전장치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 감시하의 평화적 우주개발권과 핵이용권은 미국의 ‘종잇장 약속’이 뒤집힐 경우 북한이 핵무장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역성’을 보장하는 물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관련기사 보기]

북한이 국가우주개발국 국장과 원자력연구원 원장을 내세워 연이틀 인공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경고하고 나선 지금이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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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부동산 정점, 2018년 디플레 시작"

 
[한국이 일본 된다 ①]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이대희 기자 2015.09.16 08:12:17
 
 
세계 경제의 미래를 놓고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다. 유례없을 정도로 각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빚을 지고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이 똑같은 병에 걸려 있다. 높은 실업률, 정부와 가계 부채의 급등, 치솟는 부동산 가격, 그리고 잠재 성장률 둔화.
 
한국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5일 국제결제은행(BIS)이 선진 12개국과 신흥 14개국을 대상으로 가계, 정부,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가계 부채는 작년 말 현재 GDP 대비 84%로 신흥국 평균(30%)의 2.5배에 달했고, 선진국 평균(73%)보다 높았다.
 
그나마 선진국들은 2007년 말 이후 7%포인트의 가계 부채를 줄여나가고 있었으나, 같은 기간 한국은 12% 포인트 올랐다. 신흥국들의 상승 폭(10%포인트)보다 크다.
 
빚은 많이 졌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회복되지 않은 경기를 부양하고자 빚으로 소비를 늘리는 모르핀 식 처방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고, 그 부담을 가계에 주로 떠맡겼음을 뜻한다. 작년(2014년) 말 현재 기업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5%였고, 정부 부채 비율은 38%였다. 한국 정부의 부채 비율은 비록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홍콩,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편이었다.
 
한국의 가계, 기업, 국가 부채를 모두 합한 총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228%로 신흥국 중 홍콩(287%), 싱가포르(242%), 중국(235%) 다음으로 높았다. 다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독일(191%) 다음으로 낮았다.
 
이런 식의 땜질 처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모두가 안다. 사회 복지 시스템 마련을 회피한 탓에 가계는 생계유지를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졌다. 10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의뢰해 발표한 '경제 활동 인구 조사를 활용한 청년 실업률 분석 결과'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5%였다. 구직 단념자 수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청년은 사회에 갓 진출해 경제에 활력을 일으키는 존재다. 경제 기반이 부족해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낳는 계층이기도 하다. 이들이 취업을 포기하면 소비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주택 시장도 악영향을 받는다. 특히, 출산율이 떨어지는 게 큰 문제다. 경제의 미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그리는 잿빛 미래상은 어떨까. 올해 주목받은 두 권의 책은 우리의 불안한 상상을 구체적 통계치로 암울하게 그려낸다. 올해 초 번역돼 '인구 절벽'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2018 인구 절벽이 온다>(해리 덴트 지음, 권성희 옮김, 청림출판 펴냄)와 최근 나온 <지방 소멸>(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 바로 그것이다.
 

▲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합계 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초저출산국'에 해당하는 1.19명으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부동산, 이미 정점 쳤다
 
두 권의 책이 초점을 두는 건 인구다. 인구 변동이 짧은 기간 안에 국가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두 책은 강조한다.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인구 통계치를 기반으로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장기 하락,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에 따른 1990년대 미국 경제의 대호황을 예측했던 투자 분석가 해리 덴트의 저서다. 그는 이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20세기 처음으로 주요 선진국이 대대적인 출산 증가세를 경험한 시기에 나온 다자녀 세대. 나라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보통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0~60년대 세대를 통칭한다. 한국은 1960~70년대 초가 해당한다)가 본격적으로 소비 주체에서 퇴장하는 이번 시기가 끝나면 세계 주요 선진국이 소비 주체의 부족으로 인한 인구 절벽을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소비 하락에 따른 경제 불황기를 맞이하리라고 전망한다.
 
이 책은 투자자를 위한 안내서다. 따라서 이 불황의 시기에 맞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담았다. 그러나 주제 의식을 떠나, 저자의 불황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인구 통계를 근거로 세계 경제의 큰 미래를 그린다. 인구 통계는 기술 통계와 더불어 경제학에서 장기 전망에 사용하는 통계치다. 그만큼 큰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데 적중률이 높다.
 

▲ <2018 인구 절벽이 온다>(해리 덴트 지음, 권성희 옮김, 청림출판 펴냄). ⓒ청림출판

해리 덴트가 그린 미래상은 간단하다. 세계 주요 경제 국가는 2018년부터 2025년 사이에 인구 절벽을 맞이한다. 이미 초고령사회(65세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다. 그로 인해 현재 경험하는 장기 불황을 벗어날 힘을 잃었다. 아베 정부의 빚에 의존하는 정책은 일본 경제의 수술 시기만 늦춰, 더 막대한 피해를 낳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국은 막대한 버블 경제의 후유증으로 이른 시일 안에 경착륙하리라는 과감한 주장도 이어진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 경제의 미래상도 제시했다. 일본을 '식물 경제'라고 묘사한 저자는 한국이 정확히 일본 경제 모델을 22년 차이로 따라간다고 설명한다. 22년의 근거는 일본과 한국 경제가 가장 많은 출산 인구를 경험한 해가 1949년과 1971년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왕성한 소비를 마치는 2018년(1971년생의 47살 시기) 이후 한국은 인구 절벽을 경험한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는 불안정한 사회 보호망 등의 이유로 자녀를 많이 낳지도 못했다. 따라서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달리 '에코 붐 세대'(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각국의 첫 번째 출산 붐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태어난 세대를 통칭한다)의 소비 호황을 기대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수십 년간 소비 흐름의 하락세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한국은 2014년에서 2019년 사이 대대적인 디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예측이 맞는다면 이른 시간 안에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018년 출범하는 새 정부는 혼란에 빠진 경제를 일으키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는 인구 통계치를 근거로 "한국은 출생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에서 42년 뒤인 2013년에 부동산 시장이 이미 정점을 쳤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거용이든 투자용이든 사업용이든 필수적이지 않은 부동산을 괜찮은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단언했다.
 
더구나 한국은 기형적일 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특히 대중국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 중 30%를 넘는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한국 경제는 특히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경제 지침서가 아닌 만큼, 문제 해결책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책 곳곳에서 답안을 제시했다. 빚을 일으키는 데 의존하는 정책을 당장 그만두고, 안정적인 불황을 준비해야 다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는 데 더해, 무엇보다 출산율을 높여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여러 장에 걸쳐 동아시아 경제가 선진국보다 빠른 고령화로 인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출산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본 인구, 100년 후에 4000만 명대로?
 

▲ <지방 소멸>(마스다 히로야 지음, 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와이즈베리

해리 덴트의 주장대로 일본은 한국의 미래다.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선진국 대열의 막차에 올라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이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미래는 어떨까.
 
<지방 소멸>은 '사토리 세대'(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을 겪은 1990년대부터 약 20여 년 사이에 성장한 세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 취업과 출세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활력을 잃은 일본의 인구가 이대로 간다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치를 내놓은 책이다. 예언대로라면 일본 경제는 사실상 파멸한다. 인구 증가가 없이는 경제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일본 건설성과 이와테 현 지사, 총무장관을 지낸 관료다. 현재는 일본 창성회의(산업계 인사와 지식인들이 일본 사회 문제를 논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회의체)의 좌장이다. 정부 출신 인사답게, 그는 일본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시나리오를 책에서 제시한다. 일본이 겪는 대도시 집중 현상, 농촌 고령화 현상과 그에 따른 지방 공동화 현상은 한국과 판박이다. 한국 사회에 닿는 무게감이 큰 이유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일본의 인구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산율(인구 치환 수준)은 2012년 현재 2.07이다. 한 가구가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야 현 수준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일본의 출산율은 1.43에 불과하다. 인구의 절대 수가 감소하는 건 필연적이다.
 
저자의 조사 결과, 이미 인구 감소는 지방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전국의 794개 시구정촌(일본의 기초 자치단체. 시, 특별구, 정, 촌)에서는 고령자도 감소하고 있다. 자치단체의 절반이 급격한 인구 감소에 직면하게 된다. 책은 그중 896개를 '소멸 가능성 도시'로 지정했다.
 
일본 정부가 미래를 포기한 지금의 일본을 극복할 좋은 정책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에 따라 2030년에 출산율이 2.1까지 올랐다고 가정하자. 그런데도 책에 따르면, 일본 인구의 인구 감소가 멈춰 9900만 명이 되는 시기는 2090년이다. 이미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다.
 
현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100년 후인 2110년 일본 인구는 현재 한국보다 적은 4280여만 명에 불과하게 줄어든다. 암울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파멸적인 미래상이다.
 
이는 한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한국의 2014년 출산율은 1.2명으로 일본보다 낮다. 서울의 출산율은 0.98명에 불과하다. 부부가 결혼하더라도 1명 미만의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인구의 감소는 생산 가능 인구의 부족화를 낳고, 이는 소비를 떨어뜨려 경제 악순환의 기본 고리를 만든다. 부동산 수요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서비스업 활력이 급락할 것이다.
 
아이 낳을 수 있어야 경제 살아난다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관료 출신답게 뚜렷한 정책 목표를 제시한다. 인구를 다시 늘리기 위한 10년 기준의 국가 전략 계획을 마련하고, 그 1차로 2024년까지 출산율을 1.8로 늘리는 한편 도쿄 중심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2034년까지는 출산율을 2.1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들 목표 실현을 위해 정부가 구체적 대안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장한 기운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기감이 실감 나게 묻어난다.
 
저자는 출산율 회복과 지방 도시의 활성화를 인구 회복을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축으로 꼽는다.
 
출산율 회복을 위해 30대 후반 부부 합계 500만 엔 이상의 연 수입을 '안정적'(책은 이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으로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감소를 피할 수 없는 소규모 도시의 인구 감소는 포기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대신 인구 감소를 막을 '최후의 보루'를 정부가 만들어, 이 마지노선을 사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 도시 중 일부를 중핵 도시로 삼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지방 경제가 인구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닫힌 사회인 일본이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도 책은 주장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라는 말은 <2018 인구 절벽이 온다> 역시 같은 입장이다. 당장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의 엔진이 꺼지기 때문이다. 다만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는 일본 사회의 폐쇄적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리라고 전망한다. 
 
두 책의 주제 의식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핵심은 같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에 미래가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빚만 늘리는 대증 요법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일본 정부의 빚은 이미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2018년 이후 부동산 시장의 하락이 시작될지는 미지수다. 중국 경제가 정말 경착륙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이는 예측의 세계이지, 당장 마주한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 다음 정권 창출을 꿈꾸는 이들은 이들 책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지금, 불황의 늪에 빠진 세계가 빚이라는 마약에 의존한 중독자가 되어버렸다는 소리, 특히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를 잃어가고 있다는 소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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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세월호 실종자 수색 도운 민간잠수사 징역형 구형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9/16 06:43
  • 수정일
    2015/09/16 06: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서주호 “해경 책임 왜 민간잠수사에 뒤집어 씌우나?…잔인한 박근혜 정권”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사진제공=뉴시스>

검찰이 세월호 실종자 수색 당시 감독관으로 참여한 민간 잠수사에게 동료 잠수사의 사망 책임을 물어 실형을 구형했다.

<뉴시스> 등에 따르면,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15일 민간 잠수사 공모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업무상과실치사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앞서 검찰은 숨진 이모씨의 잠수사 자격검사와 사전교육, 건상상태확인 등을 소홀히 했다며 지난해 8월 공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공씨와 그의 동료들은 “(공씨는) 해경의 지시만 전달하는 역할이었을 뿐 책임자는 아니었다”면서 “수색현장을 책임졌던 해경은 단 한명도 수사나 징계를 받지 않고 책임을 (민간잠수사에게만)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소식에 온라인에서는 ‘적반하장’, ‘후안무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가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 활동을 벌인 민간 잠수사를 ‘의상자(義傷者)’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열린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실종자를 수색하다 다친 민간잠수사 22명을 심사한 결과 의상자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복지부는 “심사 대상인 민간 잠수사들은 수난구호 비용을 받고 잠수에 참여했다”며 “직무 수행 중 다친 것으로 판단해 의상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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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를 남북 화해 전령사로, 연백평야에 복원할만

 
조홍섭 2015. 09. 15
조회수 609 추천수 0
 

충남 예산 복원 황새 8마리 적응 순항 중…일본 도요오카 방사 수컷도 '환영' 방문

연백평야는 한반도 최대 번식지, 황새 복원으로 동아시아 평화와 지속가능 발전 기대

 

05392061_R_0.jpg» 9월3일 방사된 황새가 충남 예산황새공원 하늘을 날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황새가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다 줄까. 사진=예산 / 김진수 기자


충남 예산에서 방사한 황새 8마리가 자연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절반인 네 마리는 전북 남원과 완주, 경기도 화성, 충남 안면도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성공 여부는 농약에 중독되지 않고 번식을 하는 1년쯤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다행이다.

 

이번 황새 복원은 이 땅에서 황새의 번식이 중단된 지 44년 만의 일이다. 1971년 사라진줄 알았던 황새가 충북 음성에서 알을 품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사흘 만에 사냥꾼의 총질로 수컷이 죽었다. 품던 알마저 도난당한 암컷은 이후 해마다 무정란을 낳다 농약에 중독돼 쓰러져 서울대공원에 옮겨진 뒤 1994년 노환으로 숨졌다.

 

말콤 쿨터.jpg» 1971년 밀렵꾼에게 짝을 잃은 뒤 1983년 농약중독으로 쓰러지기까지 해마다 무정란을 낳던 음성 '과부 황새'가 둥지를 지키고 있다. 사진=칼뫀 쿨터 

우리의 황새 복원에는 일본도 관심이 많다. 3일 황새를 풀어놓는 자리에는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의 나카가이 무네하루 시장이 참여했고, <아사히>와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이 행사를 취재했다.

 

일본에서 마지막 황새가 도요오카에서 죽은 해도 한국과 같은 1971년이었다. 이후 수십년 동안 인공증식과 서식지 복원 노력 끝에 2005년 황새 5마리를 성공적으로 자연방사했다. 1996년부터 일본 등의 도움을 받아 황새 복원에 나선 한국교원대의 박시룡 교수도 황새복원센터 대표로 일본의 복원 현장을 지켜봤다.

 

05391727_R_0.jpg» 황새 야생방사 행사가 열린 3일 오후 충남 예산군 예산황새공원에서 위성항법장치(GPS)가 달린 황새가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날 행사를 통해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연구센터에서 복원된 황새 중 성조 6마리와 올해 태어난 어린 새 2마리 등 총 8마리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자리엔 일본의 황새 복원 관계자와 언론인도 참가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국과 일본은 황새 복원에 관한 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실은, 장거리를 이동하는 황새에게 한국과 일본의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산의 방사를 축하라도 하듯 7일 울산 태화강 하구에는 도요오카에서 지난해 4월 방사한 어린 수컷이 출현했다. 지난해부터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화포천에 나타나 장기간 머물러 도연 스님이 ‘봉순이’란 이름을 붙여준 2년생 암컷도 도요오카 방사 황새 2세이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일본산 황새는 현재 3마리인데, 이번에 예산에서 방사한 황새 가운데도 겨울 동안 일본에 가는 개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05199348_R_0.jpg» 일본 도요오카시에서 복원해 방사한 황세 2세인 봉순이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에서 뱀장어를 사냥하고 있다. 사진=도연 스님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황새는 서로 섞이면서 무리를 유지했다. 황새는 북방계 새이다. 번식지인 러시아 아무르·우수리강 유역과 중국 동북부가 기원지이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벼 재배가 시작되면서 논습지를 새로운 번식지 삼아 확산됐을 것으로 본다.

 

한반도와 일본의 번식지는 독자적으로 유전다양성을 유지하기에는 규모가 작아 서로 교류하면서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동아시아 황새 번식집단을 형성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번식한 황새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서 짝을 이뤘고, 거기서 태어난 새끼 일부는 또 한국으로 왔다.

 

stork.jpg» 황새의 과거 분포지(왼쪽)와 현재 분포지. 그림=한국교원대학교 황생태연구원

 

러시아와 중국에서 주기적으로 날아오는 황새도 한국에 ‘새 피’를 공급했다. 이번 복원은 솥단지의 다리 셋 가운데 부러졌던 2개째 다리를 바로 세우는 셈이다.
 

전국에 약 50쌍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황새가 치명타를 맞은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눈에 잘 띄고 날개를 펴면 2m에 이르는 큰 새는 쉬운 표적이었다.

 

둥지를 틀 큰 나무도 사라졌다. 새끼와 알을 훔치는 일이 널리 퍼졌지만 누구도 희귀한 새인지 몰랐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들 때였다지만 멸종될 때까지 공식 조사도 없었다.

 

stork2.jpg» 한반도 황새의 절멸과 복원 과정. 그림=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

 

전쟁 이후 광범한 농약 사용과 습지 감소가 결정적으로 황새를 내몰았다. 이렇게 남한과 북한에서 1970년대 황새가 사라졌고, 한반도로부터 새로운 황새의 공급이 끊긴 일본에서도 황새의 명맥이 끊어졌다.

 

이번에 황새 복원을 주도한 박시룡 황새생태연구원장의 꿈은 황해도 연백평야에 황새를 복원하는 것이다. 박 교수와 동료 연구원이 쓴 책 <황새, 자연에 날다>를 보면, 연백평야는 과거 한반도 황새의 절반 이상이 번식하던 곳이다.

 

연백평야.jpg» 북한 황해남도의 예성강 유역에 위치한 연백평야. 그림=구글지도

 

개성과 해주 사이에 있는 연백평야는 호남, 재령에 이어 한반도에서 세번째로 넓은 평야인데다 비옥한 범람원이어서 생물자원이 풍부하다.

 

황새는 물고기, 개구리, 우렁이, 곤충뿐 아니라 들쥐와 뱀까지 잡아먹는 상위 포식자다. 먹는 양도 많아 어미는 하루에 미꾸리 400g, 왕성하게 자라는 새끼는 1㎏까지 먹어댄다. 황새가 살아가려면 너른 논과 둠벙, 자연하천이 있어 생산성이 높고 생태계가 살아 있어야 한다.
 

경기도 여주와 이천 등 남한에서 그런 서식지는 거의 다 공장터나 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연백평야는 아직 지형 변화가 덜하다. 박 교수는 연백평야에 생태농업단지를 조성해 남한에 유기농식품을 공급하는 제2의 개성공단으로 키울 것을 제안한다.

 

이곳에 황새를 복원하면 30㎞ 떨어진 비무장지대 습지와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임진강 습지에서 먹이를 먹고, 가을이면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남한에 내려와 겨울을 날 것이다.

 

안변평야.jpg» 두루미의 월동지인 북한 강원도 안변평야의 모습. 기근과 함께 두루미들이 철원으로 대거 이동했다. 사진=아치볼드 박사

 

안변프로젝트.jpg» 국제협력사업인 안변프로젝트의 하나로 모형 두루미를 들판에 설치해 두루미의 도래를 유도하려는 시도도 펼쳤다. 사진=아치볼드 박사
 

황새를 매개로 남·북한이 상생하고 평화를 이룩하자는 이런 발상은 처음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 자취를 감춘 두루미를 비무장지대에서 확인해 보전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지 아치볼드 박사는 2008년부터 국제협력 사업인 ‘안변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철원에서 80㎞ 떨어진 강원도 안변에 유기농업단지를 만들어 두루미와 주민의 삶을 지키자는 사업이다. 기근으로 들판에 남은 낙곡마저 모두 줍자 ‘탈북 두루미’가 대거 나타났던 것이다. 주로 미국인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국제협력 사업도 한국의 참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 도요오카시는 황새를 살리면 마을도 살아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황새가 사는 생태계에서 나는 유기농 쌀뿐 아니라 황새가 행운과 자식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더해진 덕분이다.

 

이미 ‘황새의 춤’이란 상표의 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있는 예산이 바라는 것도 이것이다.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나아가, 남북 화해와 협력, 동북아 평화와 공존의 씨앗을 황새가 물어올지 모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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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위성발사 무조건 불법시해야 하나

북의 위성발사 무조건 불법시해야 하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9/15 [18:5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우리 언론들은 오늘 하루 종일 북 위성발사 계획 발표를 보도하면서 그것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 자주시보

 

15일 북이 위성발사 준비를 마감단계에서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자 미국의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은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탄도미사일 발사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어떠한 위성 발사도 그러한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정부도 똑같은 입장이다. 다만 위성발사를 하게 되면 이산가족 상봉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는 위성을 정말 쏠지, 쏘더라도 이산가족 상봉 전에 쏠지 뒤에 쏠지 아직 예단은 이르다며 상황에 따라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간 북이 위성을 쏘면 미국은 위성을 가장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것이라며 유엔안보리를 가동하여 유엔대북제재결의안을 채택 북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2006년 1695, 1718호, 2009년 1874호가 그런 것인데 모두 직 간접적으로 북의 로켓발사와 연관되어 있다. 
이로 인해 북은 핵시험을 단행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가 계속 고도되어 왔으며 2006년 이후 북미관계도 완전히 얼어붙었고 남북관계도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만약 미국이 북의 위성로켓발사를 빌미로 북에 또 다시 제재를 가한다면 북미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며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극적으로 만들어 낸 남북 사이 관계 개선을 위한 8.25합의도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북은 위성발사는 주권국의 당연한 권리라며 ‘세계는 조선의 위성이 계속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번 당창건 70돌을 계기로 쏘아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쏘아올릴 의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결국 이런 북의 위성발사를 미국과 그 연합국들이 계속 문제시한다면 언제가도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게 된다.

 

▲ 북 위성발사 계획 발표 보도     © 자주시보

 

문제는 북에 대한 제재가 제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쟁위기를 위험한 단계로 끌어올릴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이후 한반도는 사실상 정전상태는 끝났으면 전쟁상태로 돌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연평도 포격전은 북도 유엔군 관할 아래 있는 남측의 영토라고 명백하게 인정하고 있는 연평도에 수백발의 포탄을 쏘아 불바다로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다. 정전협정에서는 어느 일방이 먼저 총을 쏘면 그것으로 정전은 끝나고 전쟁 상황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에 미국이 대응 사격을 가했다면 즉각 한반도 전면전, 나아가 북과 미국이 서로 본토를 타격하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비화되었을 것이다.

 

이번 판문점 지뢰 사건도 북이 최후통첩으로 정한 48시간 안에 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면 바로 북의 대포들이 남측 휴전선 방송장비에 조준사격을 가했을 것이며 남측의 보복 반격과 그에 대한 북의 대응타격으로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면전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언제든 이렇게 전면 터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지역이다. 그래서 미국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도 최근 '한반도는 손가락만 까딱해도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언급했던 것이다.

 

이런 한반도에서 언제까지 북의 위성로켓 발사를 유엔결의 위반이라고 하면서 대북제재를 가해 북의 반발을 불러와 한반도 전쟁위기 상황을 고조시켜갈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 위성로켓은 중동 반미국의 대표국인 이란은 물론 한국에서도 쏘아올리고 있는 등 위성로켓 발사가 문제가 되는 나라는 북밖에 없다. 그래서 북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자주권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어 기어이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이제 미국 본토도 전쟁의 참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 긴장고조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발 금리인상 움직임 때문에 경제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이제는 북의 위성로켓 발사를 꼭 불법시해야만 하는지 한국과 미국 주변국들은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러시아는 최근 북의 위성발사를 막는 것은 국제법적 견지에 말이 되지 않는다면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현실적인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하란대로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자주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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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북송 희망하는 탈북자 김련희 집중 조명

 
 
산케이, 한국 대법원 40년 전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무죄 확정
 
뉴스프로 | 2015-09-15 18:39: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뉴욕타임스, 북송 희망하는 탈북자 김련희 집중 조명 
– 김 씨, 치료비 벌기 위해 남한행 감행
-“자유, 물질적인 것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좋은 것도 내 가족과 가정만큼 내게 중요하지 않다”
– 한국 정부가 김 씨의 북송 막아… 현행법상 김 씨를 돌려보낼 방법 없어

지난 8월 15일 뉴욕타임스는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통해 분단된 한반도에서나 가능한 한 슬픈 이야기를 조명했다.

4년 전 탈북한 김련희씨는 북한 정부로 인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간 질환을 앓고 있던 김 씨가 스스로 의료비를 해결할 요량으로 남한에서 돈을 벌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 정부가 무능하지만 않았다면 김 씨가 탈북과 망명을 생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 씨는 이후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 잡고자 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밀수업자에게 이미 여권을 빼앗긴 데다 여권 없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송환된 탈북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녀에게 탈북을 종용했다.

결국, 한국에 도착한 김 씨는 곧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사정하지만, 그녀의 요구는 무시됐으며, 김 씨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탈북에 동의하는 자필 진술서를 제출하고 북한 체제를 부정한다. 한국 사정에 무척 어두웠던 김 씨는 필사적으로 북한으로 돌아가려 한 만큼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했고 급기야 여권 위조와 간첩 활동이라는 더 큰 문제에 휘말려버렸다.

그 후 김 씨는 체포되어 간첩활동과 여권위조의 혐의로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가석방된다. 또한, 김 씨는 가석방 후 강제 송환되기 위해 간첩인 척했으며, 북한이 그녀에게 간첩활동을 하도록 명령하고, 수집한 자료를 건넨 적이 없다고 자백을 번복했다.

김 씨가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남한의 실상에 대한 무지와 북한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김 씨는 간첩 활동을 하면 남한 정부가 그녀를 북으로 강제 송환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녀로 인해 북한에 있는 가족이 입을 피해를 매우 걱정했다.

김 씨는 현재 북송을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그녀의 바람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는 김 씨의 사연을 알고도 그녀를 북으로 보낼 마음이 없으며 북한 정부 묵묵부답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 탈북자는 약 2만 8천여 명. 남북한 정부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Terry

기사 바로가기 ☞ http://nyti.ms/1VIUsWz

A North Korean Defector’s Regret
한 탈북자의 후회

By CHOE SANG-HUNAUG. 15, 2015

Kim Ryen-hi, who left North Korea four years ago, says her defection was a mistake. She now works at a recycling plant, operating a machine that chops up wires.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4년 전 북한을 떠났던 김련희는 자신의 탈북이 실수였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재활용 공장에서 철사를 잘게 절단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SEOUL, South Korea — Since the late 1990s, some 28,000 North Koreans have fled to South Korea.

서울, 한국 –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약 28,000명의 북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도망쳐왔다.

Only one, as far as anyone knows, has ever asked to go back.

지금까지 되돌아가기를 요청했다고 알려진 건 오직 단 한 명뿐이다.

Kim Ryen-hi, a 45-year-old dressmaker from North Korea, says her defection to the South four years ago was a terrible mistake. She says she has been trying since she got here to return to the impoverished, repressive North to be with her husband, daughter and ailing parents. But her efforts have only brought her more trouble, including imprisonment on spying charges.

북한 출신의 45세 양장사인 김련희는 4년 전 한국으로의 망명이 지독한 실수였다고 말한다. 김 씨는 한국에 온 이후로 남편, 딸 그리고 병든 부모와 있기 위해 가난과 압제의 북한으로 돌아가려 시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그녀를 더 곤궁에 빠뜨렸을 뿐이고 간첩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Freedom and material and other lures of any kind, they are not as important to me as my family and home,” a tearful Ms. Kim said at a recent news conference in Seoul. “I want to return to my precious family, even if I die of hunger.”

“자유, 물질적인 것 그리고 그 밖의 어떤 좋은 것도 내 가족과 가정만큼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서울에서의 최근 기자 회견에서 김 씨는 울먹이며 말했다. “굶어 죽더라도 내 소중한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But in a case full of bizarre twists and blind alleys, now it i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will not let her leave.

하지만 기이한 우여곡절과 막다른 골목이 가득한 이 사건에서, 이제 김 씨를 막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다.

Government officials, while professing sympathy for her plight, say that as a convict on parole she is not entitled to a passport. Moreover, she became a South Korean citizen when she arrived, and under South Korean law it is illegal to help a citizen flee to the enemy North.

정부 관계자들은 김 씨의 곤경에 동정을 표하면서, 집행유예 중인 범죄자인 김 씨는 여권을 발급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김 씨는 한국에 와서 한국 시민이 되었고, 한국법률상 적국인 북한으로 탈출하려는 시민을 돕는 것은 불법이다.

“More than anything else, I want North Korea to recognize that I am not a traitor and that I have never, ever, not even for a blinking moment, forgotten my fatherland,” she said.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배신자가 아님을, 단연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내 조국을 잊은 적 없음을 북한이 알아주기 바란다”고 김 씨는 말했다.

“She became a South Korean citizen on her own will, and accordingly she is subject to laws applying to all other South Korean citizens,” said Park Soo-jin, a spokeswoman for the Unification Ministry in Seoul.

“김 씨는 자신의 의지로 대한민국 시민이 되었고, 따라서 다른 한국인과 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고 박수진, 서울의 통일부 대변인이 말했다.

A ministry official, speaking on the condition of anonymity to discuss the highly unusual case, said, “We know of her sad story, but right now, under the current law, we see nothing we can do for her.”

한 통일부 관계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 매우 이례적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우리는 김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있지만, 현행법상 현재로써는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Ms. Kim’s improbable story began in 2011, when she traveled to China to visit relatives and obtain treatment for a liver ailment. There, she said, she met a broker who said he could smuggle her into South Korea, where she could make a lot of money in a few months and return to China.

김 씨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녀가 친척들을 방문하고 간 질환 치료 방안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간 2011년에 시작됐다. 김 씨는 거기에서 한국으로 자신을 밀입국시켜줄 수 있고 몇 달 내에 많은 수입을 얻고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다는 브로커를 만났다.

Although she was married to a doctor in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and well off by North Korean standards, she said she signed on with the smuggler with the aim of helping to pay her medical bills.

김 씨는 북한 평균 생활 수준에 비해 부유한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의사와 결혼생활을 했지만, 의료비에 보태는 것을 목표로 해당 밀수업자와 계약했다.

At some point before arriving in the South, she realized this was a bad idea. But the smugglers had confiscated her passport and said there was no turning back.

한국에 도착하기 전 어느 시점에 김 씨는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밀수업자는 그녀의 여권을 압수하고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I also feared that if I was caught without a passport and deported back to the North, I would be found out and treated as a traitor for trying to flee to South Korea,” she said in an interview. “I thought my best chance was to make it to South Korea, where I hoped that fellow Koreans would understand me and help me find my way home.”

“만약 내가 여권 없이 잡혀 북한으로 추방된다면 한국으로 도망가려고 시도한 배신자로 확인되고 그렇게 취급될까 두려웠다”고 인터뷰에서 그녀는 밝혔다. ”한국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한국 동포들이 나를 이해해 주고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도와주길 바랬다.”

Passing through Thailand, she submitted a handwritten statement agreeing to defect, a requirement for North Korean refugees to be allowed to enter the South.
Once she arrived in South Korea, however, she began demanding that she be allowed to return to the North. But South Korea, it turns out, has procedures to bring defectors in from the North, but not to send them back.

태국을 거치면서, 김 씨는 한국에 입국허가를 받기 위해 북한 이탈 주민에게 요구되는 탈북에 동의하는 자필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일단 한국에 도착하자 북한에 되돌아가게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은, 밝혀진 바대로, 북에서 온 탈북자를 받아들이면 되돌려 보내는 절차가 없다.

She was allowed to leave the debriefing center only after she signed, as all defectors do, a document disavowing communism and agreeing to become a law-abiding citizen of the South.
Fearing that her prolonged absence from home had already put her family in Pyongyang in jeopardy, she resorted to desperate and often bewildering steps that only got her deeper into trouble.

김 씨는 모든 탈북자가 하던 대로, 공산주의를 부인하고 한국의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기로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난 후에야 합동신문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자신이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것이 평양에 있는 가족을 이미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불안감으로, 김 씨는 필사적이고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방법에 기대었고 이는 더 큰 문제에 휘말리게 할 뿐이었다.

She met a smuggler to discuss stowing away, she said. She repeatedly called a North Korean consulate in China asking for help. Denied a South Korean passport, she tried forging one.

김 씨는 밀항을 논의하기 위해 밀수업자와 만났다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북한 영사관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한국 여권이 거부되자 그녀는 여권을 위조하려 시도했다.

Then she did something that she now characterizes as a dumb mistake but that appears to have been wildly ill advised. She began to spy for the North, she said, collecting cellphone numbers and other personal data of other defectors in the South.
그러다 김 씨는 지금은 자신도 바보 같은 실수라고 여기는, 몹시 무분별했던 것으로 보이는 행위를 했다. 한국에 있는 다른 탈북자의 개인 정보와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하며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I foolishly thought that once they believed I was spying, they would deport me as a troublemaker,” she said.
She even reported her spying to the police, begging them to “please hurry and stop me,” she would later testify.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간첩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그들이 믿으면, 나를 골칫덩어리로 여겨 강제 추방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심지어 경찰에 “제발 서둘러 나를 막으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의 간첩 행위를 신고했고, 나중에 법정에서 진술까지 했다.

Kim Ryen-hi, right, with her roommate in their room at the recycling plant where she works in Yeongcheon, South Korea. Jean Chung for The New York Times
김련희(오른쪽)와 한방동료, 한국 영천에 있는 자신이 근무하는 재활용품 처리공장 숙소에서.

Deportation, however, is not what South Korea does with spies. In July of last year, she was arrested and charged with espionage and passport fraud.
At trial, she told the court that the North Korean consulate had instructed her to spy, and said that she had handed over her data to a Communist agent in a stadium in Seoul where she went to watch a women’s soccer match between the two Koreas in 2013.

그러나 강제송환은 한국이 간첩을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김 씨는 간첩 행위와 여권 사기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재판에서, 북한 영사관이 자신에게 간첩 행위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고 2013년 남북 여자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서울 한 경기장에서 공산당 기관원에게 자료를 넘겨주었다고 말했다.

She was convicted and sentenced to two years in prison. In April, after she had served nine months, an appeals court suspended her sentence, saying that her confession was a mitigating factor. She was released on parole and kept under surveillance.

김 씨는 유죄판결을 받고 2년의 실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지난 4월, 김 씨가 9개월을 복역한 후, 항소심 법원은 김 씨의 자백을 경감 사유로 들어 형 집행을 정지했다. 김 씨는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며 감시하에 놓여있다.

“There are reasons to believe she was not a typical spy,” the court said in its ruling. The court acknowledged that Ms. Kim had wanted to return to the North from the moment she had arrived. It also determined that she had been coerced into spying by the North because she feared for her family if she did not oblige.

“김 씨가 전형적인 간첩이 아니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같이 말했다. 법원은 김 씨가 도착한 그 순간부터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김 씨가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 생길 가족의 안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북한의 강요로 간첩이 됐다고 판단했다.

Ms. Kim has since reversed herself, denying that the North ordered her to spy or that she turned over her data. She now says she that she was only pretending to spy in order to be deported, and that she falsely confessed to receive a shorter sentence.

그러나 김 씨는 그 후 태도를 바꾸고 북한이 그녀에게 간첩활동을 하도록 명령한 것, 수집한 자료를 건넨 것에 대해 부인했다. 현재 김 씨는 그녀가 추방되기 위해 간첩인 척했으며 짧은 형량을 받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Her conduct is too absurd to be a spy’s,” said Jang Kyung-uk, a human rights lawyer helping Ms. Kim. “It’s time for South Korea to discuss a way for people like her to return home.”

“그녀의 행동은 간첩이라고 보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김 씨를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장경욱 씨가 말했다. “이제 한국 정부는 김 씨와 같은 이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Her case has not drawn much attention in South Korea, where hers is just another sad, if strange, story in a land where thousands of families have been divided since the Korean War.

한국에서 김 씨 사건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한국전쟁 이래로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한 한국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상하지만 그저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North Korea has not commented on the case. Its government calls all defectors “traitors,” sometimes dispatching family members left behind to prison camps.

북한은 김 씨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정부는 모든 탈북자를 “배신자”라고 부르고 때로 남은 가족을 수용소로 보내기도 한다.

Ms. Kim, who now works at a recycling plant in Yeongcheon, operating a machine that chops up old electrical wires, still professes her love for the North, affections that do not endear her in the South but that may be intended to protect her family back in Pyongyang.

현재 영천에 있는 재활용 공장에서 낡은 전선을 잘게 절단하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을 하는 김 씨는 한국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여전히 북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평양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애착일지도 모른다.

She said the last four digits of her South Korean cellphone number represented the birthday of Kim Il-sung, the North’s founder and grandfather of the current leader, Kim Jong-un. She said she worshiped Kim Il-sung “like my own biological father.” She said she tearfully sang the North Korean anthem at the stadium during the 2013 soccer match.

김 씨는 자신의 남한 휴대전화의 끝 네 자리 숫자는 현 지도자 김정은의 할아버지이자 북한을 세운 김일성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친아버지처럼” 김일성을 숭배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3년 남북한 축구시합 당시 경기장에서 북한 국가를 눈물 흘리며 불렀다고 말했다.

“More than anything else, I want North Korea to recognize that I am not a traitor and that I have never, ever, not even for a blinking moment, forgotten my fatherland,” she said in the interview. “If I was caught as a spy, I thought it would at least prove that I did not abandon the fatherland.”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배신자가 아님을, 단연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내 조국을 잊은 적이 없음을 북한이 알아주기 바란다”고 김 씨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만일 내가 간첩으로 체포된다면, 그것은 최소한 내가 조국을 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It is difficult to parse the motivations behind such comments, separating the state-instilled patriotism from state-induced fear.

그러한 언급 뒤에 내재한 동기를 국가에 의해 주입된 애국심과 국가에 의해 유발된 공포심과 분리하여 분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Fear for her family helps explain her desperate and seemingly strange behavior,” said Choi Seung-ho, a veteran TV producer who reported on her story for Newstapa, an investigative news website. “Hers is a humanitarian story, perhaps possible only on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탐사보도 웹 사이트인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했던 최승호 PD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염려가 김 씨의 필사적이고 표면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이야기는 분단된 한반도에서나 있을 법한 인도주의적인 이야기다.”

Ms. Kim’s only hope for returning home at this point would be some sort of political deal between the two Korean governments. South Korea has a strict policy against repatriating convicted spies and has only done so twice, in 1993 and 2000, as good-will gestures as part of bilateral negotiations.

이 시점에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김 씨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남북한 정부 간의 일종의 정치적 협상이다. 한국은 간첩혐의자를 송환하는 데 엄격한 정책을 갖고 있으며 양자 간 협상의 일환으로써 선의의 행위로 1993년과 2000년, 단 두 번 송환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I had never imagined that my initial bad judgment in trusting the broker would lead to so much trouble,” Ms. Kim said. “One thing I learned is how ignorant North Koreans like myself were about how things work in South Korea, just as South Koreans don’t understand North Korea.”

“브로커를 믿은 내 첫 나쁜 판단이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도 못 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내가 배운 한 가지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일이 진행되는 방식에 나처럼 북한 사람들이 몹시 무지하다는 것이다.”

 


 

산케이, 한국 대법원 40년 전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무죄 확정
– 고문 수사로 인한 증거능력 없음 인정, 검찰상고 기각
– 간첩사건 자체가 조작과 날조
– 현재까지 재일교포 23명 무죄 확정

일본 산케이 신문은 10일 교도 통신 기사를 받아 한국 대법원이 1975년 재일 한국인 학생들을 “북한 간첩단”으로 조작해 4년 7개월간 복역하였던 재일교포 이동석(63)씨에게 무죄확정 판결을 내린 사실을 보도하였다.

기사는 고문 수사로 인한 증거능력 없음과 사건 자체가 한국 공안당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70-80년대 한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날조되었던 공안 사건들이 무죄로 확정되고 있다며 현재까지 이씨를 비롯해 23명의 재일교포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 정보기관의 효시인 중앙정보부와 80-90년대의 안전기획부, 그 후신인 국가정보원은 그동안 각종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국내 정치에 악용해 왔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정치의 고립을 야기하며 국가적 위상을 추락시켜왔다. 정보기관은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책무를 다하며 국내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산케이 신문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Ohara Chizuru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XSav6n

在日男性の再審無罪確定 韓国、スパイでっち上げで
재일(在日) 남성의 재심 무죄 확정 한국, 스파이로 내몰아서

2015.9.10 21:17更新

2015.9.10 21:17보도

韓国最高裁は10日、韓国公安当局が1975年に在日韓国人学生らを「北朝鮮スパイ団」として摘発した事件で約4年7カ月間服役した在日韓国人、李東石さん(63)=大阪市=の再審上告審で、無罪を言い渡したソウル高裁判決を支持し、検察の上告を棄却した。李さんの無罪が確定した。

한국 대법원은 10일 한국 공안 당국이 1975년에 재일 한국인 학생들을 「북한 간첩단」으로 매도한 사건으로 약 4년 7개월간 복역하였던 재일교포 이동석 (李東石) 씨 (63) = 오사카시 =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서울 고법 판결을 지지하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씨의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二審判決は、拷問捜査で証拠能力のない供述調書がつくられたとし、「スパイ事件」自体がでっち上げだったと認めた。

이심 판결은. 고문 수사로서 증거 능력이 없는 진술 조서가 이루어졌다며 「간첩 사건」자체가 날조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韓国では70-80年代に同様の罪状で服役した在日韓国人への再審が続き、スパイでの無罪が確定した在日の被害者は李さんで23人となった。

한국에서는 70 – 80년대에 비슷한 혐의로 복역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재심이 이어져, 스파이에서 무죄로 확정된 재일의 피해자는 이씨를 비롯한 23명 이었다.

李さんは、韓国で機密を探知し、在日本朝鮮人総連合会(朝鮮総連)所属の工作員に伝えたとして国家保安法違反罪などで懲役5年の刑が確定。80年に特赦で釈放されるまで服役した。(共同)

이씨는 한국에서 기밀을 빼내어.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조총련) 소속 공작원에게 전달했다 하여 국가 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징역 5년형을 받았다가. 80년에 특사로 석방될 때까지 복역했다.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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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조국, 그 기회주의와 후안무치에 대하여

 
 
오늘의 정치를 황폐화시키는 두 지식인
 
김갑수 | 2015-09-15 10:13: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심한 인간들, 구태 중에서도 저런 엽기적 구태는 처음 본다. 저 지랄이 어떤 지랄이냐 하면, 조금이라도 유권자들을 생각하면 인두껍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지랄. 자기들이 뭔 지랄을 해도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싫어서 결국 자기들 찍을 수밖에 없다는 배짱에서 나오는 배 째라 지랄. 새정연 지지하는 분들, 배 째달라고 하는데, 확실히 째 드리자. 다시는 저 지랄 못하게. 남은 것은 자기들 이권, 그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적나라하게 지역주의 드러내는 것”

위는 지난 10일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만남을 비난한 문장들이다. 앞서 안 의원과 천 의원은 9일 국회 안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안 의원은 천 의원에게 복당을, 천 의원은 안 의원에게 신당 참여를 요청하면서 의견 차를 보였으나 "정권 교체를 위해 함께 하고, 지금 야당의 혁신으로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어서 조국 서울대 교수는 14일 트위터로, “절차에 따라 당헌 또는 당규로 확정된 사항만큼은 지켜라. 그게 싫으면 탈당해 신당을 만들어라”고 말했다. 이는 전날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성명을 통해 당무위원회 의결로 확정된 16일 중앙위원회 개최를 무기한 연기하라고 요구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또한 조 교수는 “정치인의 언동 뒤에는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있다”고 덧붙였다.

 

 

진중권과 조국은 언필칭 ‘진보’를 내세우는 지식인들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막말을 주고받기도 하는 막역한 동문 사이라고 한다. 1997년 대선정국에서 진중권은 ‘김대중 집권 불가능론’을 내세웠다. 김대중은 호남후보라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대중은 그 해 대선에서 승리,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IMF 환란을 극복했으며 6.15 선언을 성사시켰다.

2012년 대선정국에서 조국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것을 <오마이뉴스>와 협작으로 발간했다. 하지만 그의 진보집권플랜은 결과적으로 진보몰락플랜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선거운동을 했던 조국은 문재인이 대선에서 패하자 “조선시대 같으면 나는 참수 당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제 학교로 돌아가 은둔하겠다’고 몸을 낮추고 잠적했다.

그러나 조국은 분위기가 달라지자 다시 나오더니 최근에는 새정치연합의 혁신위원직을 맡았다. 대선정국에서 안철수의 인기가 높았을 때에는 안철수에게 온갖 존대어를 쓰며 ‘문안연대’(문재인과 안철수의 연대)를 정중히 요청하기도 했던 조국이었다.

진중권과 조국은 2012년 통합진보당 죽이기에 앞장섰던 위인들이다. 그들은 초보적인 IT 지식도 없이 일방적으로 유심노조 편을 들면서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을 분쇄하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진중권은 기회만 있으면 민노당과 통합진보당에 대하여 원색적인 종북몰이를 가했다.

두 사람은 공히 분단현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으며 현실적인 정세와 정국 파악에도 무능하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외국에서 배워온 파편적인 지식정보들뿐인 것으로 비친다. 두 사람은 공히 매번 틀렸으면서도 자기들이 범한 숱한 오류를 반성은커녕 복기하는 일조차 없다. 그들은 공히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외국 유학을 한 현직 대학교수들이다.

난데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 보고 싶다. 식민지시대 이완용, 송병준 등을 대표로 하는 반민족행위자들의 해악과 최남선, 이광수 등을 대표로 하는 위선적 친일계몽주의자들의 해악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이완용, 송병준이 매국노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욕이라도 실컷 먹었다. 그러나 최남선, 이광수는 식민지시대의 우중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식민지시대 민족정기를 타락시킨 주역들이었다. 진중권과 조국은 오늘의 유권자들을 끊임없이 오도하면서 한국의 정치를 황폐화시키는 주역들이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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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없다면…이제 당신은 언제든 잘릴 수 있습니다

등록 :2015-09-14 19:41수정 :2015-09-14 21:38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조합원들이 최근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조합원들이 최근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일반해고·취업규칙 완화’ 합의 파장
노조 울타리 밖 노동자 1800만명 ‘고용 불안’ 내몰릴판

해고요건 ‘완화’ 표현 없다지만 
정부·회사쪽 ‘업무부진자’ 거론
시행원칙도 ‘합의’ 아닌 ‘협의’로
정부 일방추진해도 막을길 없어

노동자 90%가 무노조·비정규직
1998년 ‘정리해고 악몽’ 재현 우려
결국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할 길이 뚫렸다. 정부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늘리는 등을 내용으로 한 비정규직 대책도 밀어붙일 기세다. 전체 노동자의 90%에 이르는, 노동조합 울타리 밖에 방치된 노동자 1800만명의 고용안정성은 거센 폭풍우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13일 밤 노사정위원회 대표자가 잠정 합의한 문서에는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동안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요건 관련 항목이다.

 

물론 합의문 초안은 “명확히 한다”고 했을 뿐 ‘완화’라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와 사용자 쪽은 일반해고와 관련해 ‘저성과자’니 ‘업무부진자’를 거론했다. 절차와 요건이 강화될 리는 없는 것이다. 취업규칙 관련 내용도 정부가 이미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과반 노조나 노동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바뀐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합의문은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했다. ‘합의’가 아니라 ‘협의’다. 협의를 거듭해도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동안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한 뒤 성난 황소처럼 노사정 논의를 밀어붙여온 정부의 태도를 봐서는 더욱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이 더는 협의할 게 없다고 할 정도로 협의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제시한 노사정 대타협 시한일인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4인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리에 앉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정부가 제시한 노사정 대타협 시한일인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4인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리에 앉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정책으로 실현되면, 결국 고용불안의 폭풍우 앞에 서는 건 무노조 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이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대부분 취업규칙보다 훨씬 구속력이 강한 단체협약(단협)을 두고 있어 취업규칙이 바뀌더라도 단협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저항에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해고를 당하면 회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문제를 제기할 세력이 없어 해고자 스스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회사 쪽과 법적 다툼을 힘겹게 벌이는 수밖에 없다.

 

“1998년 악몽의 재판” 
정리해고 재현 우려

 

국내 노조 조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낮은 10.3%다. 열에 아홉은 노조의 우산 밖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뿐이다. 요컨대 회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비정규직은 극소수다.

 

취업규칙·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비정규직 종합대책까지 고려하면 이번 합의는 ‘노동유연성 강화 대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부가 강조하는 노동유연성은, 노동자 말로는 불안정노동의 확대다. 기간제·파견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 등과 관련해 합의문은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란 제목을 달아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 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하도록 한다”고 했다. 이기권 장관은 14일 간담회 때 “비정규직은 유연화 차원에서는 인정하되, (기업의) 인건비 절약을 위한 남용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기업이 집단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제와 파견노동을 받아들여 고용안정성에 큰 생채기를 남긴 ‘1998년의 악몽’이 17년 만에 개별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을 흔드는 방식으로 재현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완화는 합의문에 담는 것 자체가 산업현장과 노동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무노조 사업장에선 ‘사회적 합의가 됐다’며 밀어붙일 터라 굉장히 우려된다”며 “노동시장 전반을 바꾼 1998년의 재판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14일 열린 한국노총의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김만재 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미리 준비한 시너로 분신을 시도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중집은 표결로 잠정합의안을 추인했다. 노사정은 15일 오전 7시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합의문에 서명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는 앞으로 국회와 노사정위, 거리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전망이다. 근로기준법 등 입법 사항을 두곤 국회에서 야당과 여당이 맞붙고, 애초부터 논의에서 빠진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을 벌이리라 예상된다. 노사정위는 관련 일정을 추진할 계획인데, 한국노총의 목소리가 위원회에서 힘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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