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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광화문광장에 선 민주노총
최루액 맞고 차벽에 막히고

[현장]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15.09.23 16:53l최종 업데이트 15.09.23 23:37l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을 향해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유성호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유성호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한 노동자의 멱살을 잡으며 강제연행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최종신 : 23일 오후 6시 40분]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에 진출했지만, 경찰이 마구잡이로 쏜 최루액과 차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혀 흩어진 뒤, 다시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노동자들은 오후 5시 40분께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사이 세종대로를 점거한 뒤 "쉬운 해고 반대한다", "박근혜를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권은 늘 경찰의 장벽 뒤에 숨어 있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통치를 빙자해 노동자, 서민의 생존을 폭격하는 정권을 끝내자"라고 외쳤다. 

그는 "오늘 투쟁에 이어 10월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저항의 불꽃을 지피겠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아 반격의 포문을 열겠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해산하는 과정에서도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도로에 있던 일부 노동자들을 인도로 밀치자, 노동자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마구잡이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쏘면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와 노동자 최소 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민주노총은 10~11월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10월 12~17일에는 '노동개악 가이드라인 분쇄 총파업 총력투쟁'을 벌이고, 11월에는 총파업에 나서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수배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신문로 구세군회관앞에 바리케이트와 물대포를 배치해 저지하고 있다.ⓒ 권우성
[1신 : 23일 오후 4시 53분]
민주노총, 총파업 후 행진 시도 "청와대로 간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저지되자 다른 길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권우성
23일 오후 3시 '노동 개악 반대'를 걸고 총파업 집회를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세종로 사거리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4시 20분께 행진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그러나 500m도 못 가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혔다.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이들은 대열을 돌려 이동해 늦은 오후 광화문 광장에 집결, 청와대로 가는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날 총파업 집회에는 산하 전국서비스노동조합연맹·전국금속노동조합 등 전국 16개 지역본부 조합원 1만여 명이 참여했다(경찰 추산 4500여 명).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혁 박살 내자", "노동자 다 죽이는 노동개혁 끝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사무실 앞 새문안로 8차선 도로 중 일부를 점거한 채 집회를 진행했다. 점거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경찰 측도 이날 오전부터 서울시청 앞부터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광화문 일대 도로에 경찰 버스 수십 대와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 개악 찬성할 수 없다"

이날 현장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 총파업과 5월 노동절 집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6월 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당시 민주노총 측은 "추후 조사를 받겠다고 했음에도 체포 영장을 재청구한 것은 명백한 노동탄압"이라고 반박했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 안에서 석 달 가까이 지내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위원장은 "노동 개악으로 인해 쉬운 해고 등 야만의 시간이, 우리 자녀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분노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서도 비정규직 악법을 막아내지 못한 탓에, 또 정리해고로 인해 수많은 동료를 잃었는데 더 많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이번 노동 개악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우리 아들·딸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며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민주노총도 역사적 사명을 다 하겠다, 오늘 청와대로 간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 위원장은 이를 위해 10월 24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11월 14일 '전국노동자대회 및 민중 총궐기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연대 발언에 나선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양혜영씨는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으로 아들·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노사정위 결과를 보니 아들·딸은 평생 비정규직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제 살 깎아 먹으라는 것으로, 상생 고용이 아닌 '살생 고용'이다, 청년들은 여기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측은 "이번 총파업은 지난 9월 13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악 방안을 야합하고, 16일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비정규직 확대 등 입법안을 발표한 데 따른 즉각적 경고"라며 "정부와 여당이 노사정위원회 야합을 근거로 '노동개혁'으로 가장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어 투쟁이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비슷한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는 노사정위 합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다가 4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취재중이던 한겨레신문 기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항의를 하자 경찰은 한참 뒤 풀어줬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취재기자를 강제연행하는 경찰에 항의하던 노동자가 사지가 들려 강제연행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자, 경찰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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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등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발족


23일 노동개악 반대 총파업, 상경투쟁...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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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2  17: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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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비롯한 58개 부문별 단체들이 22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발족시키고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민주노총]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빈민연대 등 58개 부문별 단체들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일자리·노동, 농업, 민생빈곤, 청년학생, 민주주의, 인권, 자주평화, 세월호, 생태환경, 사회공공성, 재벌책임 강화 등 11대 분야에 걸쳐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를 제시하고 오는 11월 14일 서울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투쟁본부는 비정규직문제해결을 위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와 함께 정부의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현장 국민투표를 다음달 19일부터 말일까지 주 1회 이상 진행하기로 했다.

또 다음 달 초순 이후에는 시·군·구와 단위 노조 및 제 단체들이 나서 시·군·구 및 부문별 민중총궐기운동을 선언하고 현재 710조에 이르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민중총궐기위원회 차원에서 적극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후 강원, 대전, 경남, 부산, 울산, 충북, 서울, 전남, 충남, 대구·경북, 경기, 전북, 제주 등 광역지역에서 지역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이 여세를 몰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는 일정이다.

투쟁본부는 각 분야에서 절박한 당사자들의 호소문을 담아 ‘청와대로 가자’는 대중운동을 벌여달라고 제안했으며, 지역과 거점에서 진행되는 노동악법 국민투표와 밥쌀 수입 반대 온라인 서명에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10월 중순경부터는 총궐기위원회 대표단이 나서 전국을 행진하며 11월 14일 총궐기대회 참여를 직접 호소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1천만 시대, 재벌은 배가 터지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300만이 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부는 모든 위기를 여전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며 "이 정권을 단죄하지 않고 민중은 살아갈 수 없다. 민주노총은 모든 것을 걸고 이 투쟁의 선두에서 진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조덕휘 전국빈민연합 의장, 김현후 빈민해방실천연대 위원장은 총궐기 투쟁에 함께해 정권심판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쟁본부 발족선언문에서 지난해 29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비극이 올해 메르스 사태로 재현돼 36명의 생명이 또다시 스러졌다며, 민중의 안전과 생존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는 정권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는 남북대결정책 고수와 흡수통일 노골화로 이 땅에 전쟁의 긴장을 높이고 있으며, 사드 배치를 추진, 이 땅을 미국의 대중 군사대결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고용불안정화로 당면한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반발했다.

밥쌀용 쌀 수입이 그대로 지속돼 농민의 생존권이 마지막 벼랑에 섰으며, 재개발·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도 쉼 없이 지속되고 있고 청년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 ‘망한민국’이라 부르며, 이 땅을 떠나겠다고 절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쟁본부는 11월 14일 대회를 노동자·농민·빈민·청년학생·장애인대회 등 각계 각층의 부문대회를 개최한 뒤 본대회로 집결하는 방식으로 진행, 10만 명을 목표로 하는 민중 총궐기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재벌들이 추구하는 반민중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갖고 오는 23일 총파업-상경투쟁을 결정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청계선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개최, 가맹 산하조직 조합원 7천여 명과 함께 쉬운해고와 강제임금삭감,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에 반대하는 9.23 총파업, 상경투쟁을 결의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

 

○ 일자리노동

-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중단

-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모든 서민의 사회안전망 강화

 

○ 농업

- 밥쌀 수입 저지 / TPP 반대

-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 민생빈곤

- 노점단속중단, 순환식 개발 시행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 청년학생

- 재벌 곳간 열어 청년-좋은 일자리 창출 요구

- 대학구조조정 반대

 

○ 민주주의

- 공안탄압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해체, 양심수 석방

- 역사왜곡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폐기

 

○ 인권

-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 중단

- 국가인권위 독립성 확보, 정부 및 지자체 반인권행보 중단

 

○ 자주평화

- 대북적대정책폐기, 남북관계개선! 5.24조치해제, 민간교류보장!

- 한반도사드배치반대, 한미일삼각군사동맹중단! 일본의 군국주의 무장화 반대!

 

○ 세월호

- 세월호 온전한 인양,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 안전사회건설

 

○ 생태환경

-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계획 폐기

- 신규원전 건설 저지 / 노후원전 폐기

 

○ 사회공공성

- 의료 철도 가스 물 민영화 중단

- 제주 영리병원 추진 중단, 공공의료 확충

 

○ 재벌책임 강화

-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로 최저임금 1만원 실현

-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하청노동자 직접교섭 참여 등 재벌 사용자 책임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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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포르셰’ 참다랑어, 양식장 그물과 충돌 사고

 
황선도 2015. 09. 22
조회수 176 추천수 0
 


참치로 알려진 다랑어, '맛의 백화점' 인기 독차지

속도광이자 멸종위기종 참다랑어는 완전양식 길 열려

 

03543345_R_0.jpg»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앞바다에서 시험 양식중인 참다랑어. 사진=제주수산연구소 
 
‘참치’란 이름은 동해 지역 사투리
    
뭐라 해도 가장 값비싼 횟감으로는 ‘다랑어’를 꼽을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참치’라고 알려졌고, 영어로는 ‘튜나(tuna)’라고 부른다. 
 
참치라고 불리는 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넙치, 꽁치, 멸치, 쥐치, 가물치, 한치 등과 같이 생선에 접미어로 붙이는 ‘치’ 자에 으뜸을 나타내는 ‘참(眞)’ 자를 붙여 진짜 생선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공식 이름인 다랑어 대신 참치가 더 일반적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해방 후 해무청 어획담당관이 참치라는 명칭이 동해 지역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고서에 기록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은 원양회사에서 상표에 쓰면서 오히려 주류가 되었다.
   
다랑어는 고등어, 망치고등어, 삼치 등과 함께 농어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외양성 고도 회유종으로 수만 킬로미터를 유영할 정도이다. 다랑어는 잠잘 때도 뇌 기능만 수면을 취할 뿐 10여 년이란 일생을 통해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헤엄친다.
 
유영속도가 평균 시속 60킬로미터, 순간 최대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참 고단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출 1위의 ‘돈 되는 생선’ 

참다랑어.jpg» 평생을 쉬지 않고 헤엄치는 태평양 참다랑어. 사진=open cage

   
다랑어가 사는 곳은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아열대 및 온대해역의 5대양에 널리 분포한다. 초여름에는 고위도로 올라오고 늦가을에 다시 저위도로 계절회유를 한다. 
 
일반적으로 열대성 다랑어에는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가다랑어가 있고, 날개다랑어는 온대성 다랑어로 분류된다.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참다랑어로 몸길이가 3미터를 넘고 무게는 600킬로그램이나 나가며, 새치류는 몸길이가 6미터 정도가 되고 무게는 9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것이 있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에 많지는 않으나, 동해와 동중국해 먼바다에 회유하여 들어온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1957년 인도양에서 처음 조업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주요 어획종이 되었다. 
 
한국원양어업 통계를 보면, 원양에서 2014년에 가다랑어 22만 9588톤, 황다랑어 6만 3970톤, 눈다랑어 2만 2868톤, 날개다랑어 1310톤, 남방참다랑어 783톤을 어획했고,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참다랑어 1311톤을 잡았다. 
 
어획한 다랑어는 대부분 횟감과 통조림용으로 수출하며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이다. 이들 다랑어와 새치는 열대성 표층어 중에서 가장 큰 고도 회유종으로서 성장이 빠르고 맛이 좋기 때문에 원양수산자원으로서 매우 귀중히 여긴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

tu1.jpg» 최초 상업 원양어선, 지남호. 사진=<수산자원조사 50년> 

감칠맛 뱃살 다른 부위보다 2~3배 값 
 
생선 중 ‘맛의 백화점’으로 불리는 참치는 1980년대만 해도 식도락가나 엘리트 층의 고급 횟감으로만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흔한 생선이 되었다. 이게 다 원양어업과 식품가공업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참치 관련 식품회사들이 계속하여 통조림 등 다양한 상품들을 널리 유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랑어는 용도에 따라 횟감용과 통조림용으로 나뉜다. 횟감용 다랑어는 살코기 속에 기름기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 크기에 상관없이 참다랑어와 눈다랑어가 참치회로 가장 좋다. 
 
통조림에 좋은 다랑어는 크기가 적당해야 한다. 지나치게 큰 것과 어린것은 좋지 않다. 가다랑어와 날개다랑어가 통조림으로 이용된다. 
 
이처럼 참치가 여전히 횟감 중 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역시 참치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맛 덕분이다. 참치의 참맛은 바로 잡아 올렸을 때의 색깔 그대로가 유지된 것이 최고로 손꼽힌다. 냉동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어디서나 싱싱한 참치를 만끽할 수 있다. 
 

03088312_R_0.jpg» 참다랑어 옆구리살로 만든 초밥. 사진=박미향 기자

 

이러한 참치도 부위에 따라 맛과 가격이 현저히 다르다. 가장 맛이 좋고 비싼 부위는 뱃살이며 다른 부위보다 2~3배 비싸다. 
 
그 이유는 뱃살에는 토로라 불리는 지방이 등살에 비하여 수십 배 더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소하다. 다랑어 고유의 감칠맛은 이노신산이라는 성분이 많기 때문인데 이는 핵산조미료의 구성성분이 된다. 
 
참치의 살이 붉은 이유는 근육에 혈액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빠른 유영을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소를 근육에 보내야 하므로 근육에 모세혈관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고기 살에 혈액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잘못 보관하면 금방 부패해 버린다. 참다랑어의 붉은 살코기는 지방이 35%나 된다. 
 
일본사람들은 전통식품으로서 가다랑어를 이용하여 조미용 국물을 얻기 위한 건조가공품을 만드는데 이것을 ‘가쓰오부시’라고 한다. 다랑어를 알맞게 다듬어 건조, 발효를 반복하여 몽둥이 모양의 단단한 제품을 만들어, 이를 얇게 썰어서 국물을 우려내는데 이용한다. 가쓰오부시에는 핵산 조미료 성분인 이노신산, 히스티딘염이 많이 들어있다.
 
03901585_R_0.jpg» 다양한 부위의 참치 회.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돼지고기보다 단백질 많아
 
다랑어는 일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인들에게도 생선의 대들보 격이라고 생각해서 ‘바다의 귀족’, 또는 닭고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해서 ‘바다의 닭고기’라 불릴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다랑어는 단백질 비중이 27.4%나 되어 생선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육류인 돼지고기, 쇠고기나 닭고기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지방은 6.6%로 육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고단백 저열량 식품이다. 다랑어는 비타민 B군, 토코페롤,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이 많아 어린이의 균형있는 성장을 도우며, 탄수화물이 거의 없고 지방이 적어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환자의 영양식으로도 추천된다. 
 
고등어, 정어리, 다랑어, 연어 등 소위 등푸른 생선에 많다는 EPA와 DHA가 풍부해 동맥경화, 고혈압, 뇌혈전 및 심근경색 등의 성인병 예방에 상당히 효과적이며 머리를 좋게 하는 건뇌식품의 보고처럼 각광받는 생선이라고 평가하고 있어 참치 예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안 된다. 참치는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수은 등 난분해성 유해물질이 농축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임산부나 가임여성, 유아 등은 메틸수은 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냉동 참치를 주 1회 이상 먹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tu2.jpg» 여러 종류의 다랑어를 설명하고 있는 포스터. 그림=국립수산과학원 
 
참다랑어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른다. 2013년에 일본 도쿄의 수산시장에서 222킬로그램짜리 참다랑어 한 마리가 18억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18억 짜리’를 잡았다면 로또라 할 만하겠다. 
 
이 참다랑어로 만든 초밥 2점 한 접시를 원가로 따지면 60만원에 해당한다고 하니 감히 입에 넣을 수 있기나 하겠는가. 아무리 참치 좋아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라면 참치 사랑이 아니라 참치 전쟁 수준이다. 

04165511_R_0.JPG» 2012년 도쿄의 한 참치회 식당 주인이 약 8억원에 낙찰받은 참다랑어를 해체하고 있다. 이듬해 이 기록은 껴졌다. 사진=AP 뉴시스

 
하지만 이는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고, 보통 무게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경매가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니 많이 잡을 것이고, 그래서 다랑어 자원은 급감하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다랑어 조업 규제와 보ㅈ존조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하니 과열 경쟁으로 경매가가 치솟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는 다랑어도 길러서 잡아먹는 것이 대안이다.
    
다랑어의 또 다른 별명 하나는 ‘바다의 포르셰’이다. 다랑어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헤엄친다. 서거나 후진하는 일도 없고 오로지 전진만 한다. 
 
그러니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물고기이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질주 본능은 다랑어 양식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05384259_R_0.jpg» 전남 여수 거문도 참다랑어 양식장에서 그물망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60일쯤 키운 어린 다랑어는 꼬리지느러미가 발달하면서 헤엄칠 때 가속도가 붙게 되는데 그물에 충돌해 상당수가 죽어버린다. 또 알에서 부화한 뒤 개체마다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다랑어 양식을 위한 수정란이 없었다. 수정란을 생산할 어미 암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랑어 양식은 일본 수산청에서 1970년부터 3년에 걸쳐 프로젝트로 시도하여, 2002년에 일본 긴키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완전양식에 성공하였다. 그후 긴키대학과 도요타통상은 참다랑어의 완전양식 생산량을 현재의 연간 80톤(약 2000마리)에서 2020년에는 약 3배인 240톤(약 6000마리)으로 증가시킬 방침이라고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04862520_R_0.jpg» 참치의 완전양식이 이뤄지기 전 양식용 참치를 포획해 대형 그물에 가둔 채 운반하고 있다. 양식을 위한 포획도 참다랑어를 심각한 멸종위기로 빠뜨리게 한 원인의 하나다. 사진=그린피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006년 참다랑어 양식기술 개발에 관한 로드맵을 만들고, 그 후 외해 가두리양식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지중해 몰타에서 수정란을 들여와 연구에 돌입한 지 1년 만에 인공종자 생산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2만 마리의 인공종자를 월동시켜 중간육성기술까지 확보하였고, 2015년 8월9일과 11일에는 두차례에 걸쳐 국내 최초로 국산 참다랑어 어미로부터 자연산란을 유도해 수정란 채집에 성공했다. 참다랑어 양식기술이 수정란 생산, 종자생산, 중간육성, 완전양식 등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3단계까지 성공한 셈이다.
    
우리 바다에서도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위판할 정도의 상품성 있는 다랑어도 있지만 상당수는 3∼5킬로그램짜리 어린놈들이다. 

05278749_R_0.jpg» 우리나라 근해에서도 어린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지난 3월 부산 어시장에는 1만8000상자, 약 250t의 다랑어가 위판됐다. 사진=연합뉴스

 
어린 참다랑어는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잡어로 분류돼 양식장 사료용으로 팔렸다. 2011년 전남 여수 앞바다 정치망에 새끼 참다랑어 110마리가 잡혔다. 정치망은 작업을 잘만 하면 고기를 산 채로 잡을 수 있어 이 참다랑어 새끼들을 여수 거문도 가두리에서 사육하여 65킬로그램까지 키웠다. 
 
기특하게 이 4∼5세가 된 참다랑어들이 양식장에서 수정을 하여 30만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한국산 참다랑어의 시조가 탄생한 것이다. 새끼 참다랑어를 어미로 키워서 수정란을 대량 확보함으로써 참다랑어 완전양식의 길이 열렸다. 
 
■ 다양한 다랑어의 세계

Danilo Cedrone.jpg» 그물에 걸린 대서양 참다랑어. 3m 넘게 자란다. 사진=Danilo Cedrone, 위키미디어 코먼스


■ 3m까지 자라는 ‘참치의 왕’ 참다랑어
    
참다랑어는 다랑어 중에서도 진짜라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일식집에서는 흔히 일본말로 ‘혼마구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로마구로’라고도 불리는데, 등이 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를 직역해서 흑다랑어라고 쓰지만 이름은 함부로 붙이는 게 아니다. 서양에서는 블루핀튜나(Bluefin tuna)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지느러미가 청색을 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등 색깔이 짙은 청색을 보이는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모든 다랑어류가 다 그렇듯이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 부분은 원추형이라 헤엄칠 때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형이다. 몸의 등쪽은 짙은 청색을 띄며 몸의 중앙과 배쪽은 은백색 바탕에 여러 개의 폭이 좁은 가느다란 흰색 가로띠와 그 안에 둥근 점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참다랑어는 열대 원양에 살며 표층을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몸집이 아주 큰 어류로 전 세계에 3종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미국, 멕시코 해역에 분포하는 태평양참다랑어(Pacific bluefin tuna, Thunnus orientalis), 지중해를 포함한 대서양에 분포하는 대서양참다랑어(Atlantic bluefin tuna, Thunnus thynnus), 적도 이남의 남반구에 분포하는 남방참다랑어(Southern bluefin tuna, Thunnus maccoyii)가 그것이다. 
 
이들 참다랑어는 외견상 거의 비슷하나 엄연히 다른 종이다. 태평양참다랑어는 북반구 온대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북서태평양에서는 마셜군도 및 필리핀에서 일본 북해도에 이르는 연안역에 서식한다. 
 
참다랑어는 대양성 어류이나 계절적으로 연안 가까이 오는 수도 있다. 북동 태평양에서는 6~9월에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회유하며, 서부태평양에서는 일본 해안을 따라 여름에는 북쪽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회유한다.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초여름에 동해로 들어와서 오호츠크해까지 회유하며, 동해를 빠져나갈 때는 일본 북부의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다. 산란기는 대만 근해에서는 4~6월,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8월이다. 성장하면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동부 태평양으로 회유하며 다시 산란장으로 되돌아온다. 
 
10세 이상의 200센티미터 정도 크기가 되면 대서양참다랑어는 멕시코만과 지중해에서 산란하는데, 표층에 한번 산란에 1000만 개 이상의 알을 1~2일 간격으로 낳는다. 2일이 지나면 알에서 2.8밀리미터 크기의 새끼가 부화하여 30일 정도의 치어기를 지낸다. 
 
참다랑어는 주로 멸치, 꽁치, 오징어 등을 먹으며, 범고래에게는 먹이가 되는데 대형어일수록 포식자는 줄어든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커서 최대 몸길이는 300센티미터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대개 200센티미터까지 이르며, 체중은 450킬로그램까지의 기록이 있다. 대서양에서는 458센티미터 크기, 684킬로그램 체중까지 자라며, 15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대형선망과 정치망 등에 잡힌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고가이므로 우리나라가 어획한 것은 대부분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양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다랑어는 어획시기와 장소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며,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참다랑어는 주로 횟감으로 애용된다. 참다랑어를 회로 먹을 때 생강과 함께 먹으면 생강의 살균 작용이 날 회로 인한 소화문제를 예방해줄 수 있어 궁합이 좋다. 참다랑어는 육질이 붉은색을 띠고 눌러봤을 때 단단하고 탄력 있는 것이 최고급이다.   
 
 
■ 상어와 함께 회유하는 눈다랑어 

Thobe_u0_눈다랑어.gif» 눈다랑어. 그림=Thobe_u0,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다랑어(Thunnus obesus, 영명: 빅아이투나, Bigeye tuna, 일명: 메바치めばち, 眼撥)는 체형이 높고, 굵으며, 눈이 특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슴지느러미는 적당하게 길어 제2등지느러미 끝자락까지 다다라 자칫 날개다랑어인 줄 착각할 수가 있다. 

눈다랑어는 전 세계의 열대, 아열대, 온대 해역에 걸쳐 수온 10도 이상 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특히 태평양은 북반구에 많이 분포한다. 열대 해역에서 산란하고 먹이를 먹고 성장하기 위하여 계절에 따라 고위도 해역으로 남북 방향 회유를 한다. 
 
체장 100센티미터가 되면 산란하기 시작하며, 1회 산란 수는 300만~1000만 개로 알려져 있다. 최대 250센티미터, 210킬로그램, 11세까지 성장한다. 
 
어릴 때는 표층 가까이에 살다가 성장할수록 점차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눈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는 가장 깊은 수심에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수심에 도달할 수 있는 기다란 원 줄에 가지 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와 미끼를 달아 조업하는 주낙(연승)으로 어획한다. 눈다랑어는 유목에 붙어다니거나 상어와 같이 회유하는 경우가 많아 낚시에 걸린 눈다랑어는 때때로 상어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눈다랑어의 살색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초밥과 횟감으로 많이 이용되며, 일본의 관동지방과 동북지방에서는 봄철이 끝날 무렵 참다랑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다랑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 복숭아 살색 황다랑어

황다랑어.jpg» 노란 등지느러미가 두드러지는 황다랑어. 사진=open cage 
 
황다랑어(Thunnus albacares, 영명: 엘로우핀튜나, Yellowfin tuna, 일명: 키하다, キハダマグロ,黃蘗)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토막지느러미 등 대부분의 지느러미가 밝은 황색을 띠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와 눈은 상대적으로 작고 꼬리부분이 길다. 제2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낫 모양으로 매우 큰 것이 특징으로 체장의 20% 이상이나 된다. 
 
전 세계 대양의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며, 다랑어류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온을 좋아하여 남·북위 25도 사이에 주어장이 형성된다. 황다랑어는 특히 산소가 풍부한 상부 수심에 한정되어 서식하는데, 이것은 빠른 유영을 위해 많은 산소가 필요한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황다랑어의 살색은 봉숭아 색이고, 초밥 및 횟감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여름철과 가을철에 맛이 좋으며, 통조림이나 어육의 원료로도 이용된다.

 

■ 참치통조림 주인공 가다랑어
 

Momotarou2012 _1280px-Skipjack_tuna_Stuffed_specimens.jpg» 가다랑어 표본. 사진=Momotarou2012,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다랑어(Katsuwonus pelamis, 영명: 스킵잭투나, Skipjack tuna, 일명: 가쯔오, かつお, 松魚, 堅魚)는등쪽이 어두운 청자색, 배는 은백색으로 체측 아랫부분에 4~6개의 뚜렷한 흑청색의 세로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다랑어는 전 세계 열대 대양에서 떼를 지어 서식하며, 분포 수층은 낮 동안에는 표층에서 260m까지의 깊은 수심에 서식하며 밤에는 거의 표층에 머문다. 먹이는 어류가 대부분이며 갑각류, 연체동물 등도 먹는다. 때로 다른 다랑어류 및 새치류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표층에서 어군을 형성할 때, 가다랑어는 물새, 유목, 상어, 고래 혹은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함께 떼를 이루는데, 이때 점프나 거품 형성 등의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여 가다랑어 어군을 찾기도 하는데,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헬리콥터를 갖춘 원양선망어선은 주로 가다랑어를 어획하는 것이다.
    
가다랑어는 우리가 즐겨먹는 통조림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여름철에 가장 맛있어 회 또는 다져서 먹기도 하나, 해수에 삶아서 말린 후 대패로 얇게 썰어 다시 용으로 쓰인다.

 

■ 가슴지느러미가 멋진 날개다랑어

Rvalette -_1280px-Cuvier-47-Germon-Thon.jpg» 날개다랑어 암수의 그림. 사진=Rvalette, 위키미디어 코먼스

    
날개다랑어(Thunnus alalunga, 영명: 알바코어, Albacore, 일명: 빈나가, びんなが)는 가슴지느러미가 아주 발달하여 날개처럼 길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가슴지느러미가 제2등지느러미를 지나 가랑이 체장의 30%를 차지할 정도이다. 날개다랑어는 90센티미터이면 성숙을 하고 보통은 100센티미터 정도인데, 큰 것은 140센티미터, 40킬로그램으로 9년생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표층 수온 15∼19도 범위를 보이는 대양에 주로 서식하며, 더 큰 놈은 10도 이하의 더 깊은 수심에서도 발견된다.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떼를 지어 다니기도 하는데, 이는 떠다니는 유목이나 해조류 덤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연안성 다랑어가 있으며, 우리나라 연해에는 몸뚱아리 아래 부분에 알 모양의 흰색 반점이 밀집해 있어 쉽게 구분되는 백다랑어(Thunnus tonggol, 영명: longtail tuna, 일명: 코시나가 )와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작고 검은 반점이 여러 개 있어 구별되는 점다랑어(Euthynnus affinis, 영명 : Kawakawa, Mackerel tuna, black skipjack, 일명 : 수마)가 출현한다. 그리고 유사종으로 몽치다래(Auxis rochei, 영명: Bullet mackerel, 일명: 마루소다)와 줄삼치(Sarda orientalis, 영명: Striped bonito, tunny albacore, 일명: 하가쯔오) 등이 있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 관련 기사헤밍웨이의 그 바다와 고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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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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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교향악단, 미국에서 통일 선율

우륵교향악단, 미국에서 통일 선율
 
제110회 정기연주회 및 통일 음악회 개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3 [06: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우륵교향악단 리준무 선생은 자비를 들여 조국통일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우륵교향악단을 설립 남과북. 해외를 오가며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재미동포가 남북 해외를 아우르며 통일을 추구해 오고 있는 우륵교향악단(단장. 지휘 리준무)이 미국 하늘에 자주통일의 선율을 울리게 된다.


우륵 교향악단은 오는 26일(현지시각) 저녁 8시에 뉴욕시내 Kaufman Music Center(129 W 67th St NYC)에서 110회 정기연주회겸  통일음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이번 음악회와 관련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과 우리의 자랑스런 2세들을 격려하고 찬란한 우리문화를 이 땅(미국)에 심는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는 이 음악회는 문화행사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긍지를 높여주는 값진 행사로도 그 빛을 내게 될 것"이라고 공연 목적을 설명했다.

 

한편 악단장 리준무 선생은 전북 출신으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정착 서울대 출신 음악인들과 교향악단을 만들어 활동해 오다 조국통일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우륵교향악단을 설립 남과북 해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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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이 전율한 팔순 노인의 '사부곡'

 

[인터뷰]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로 시화공모전 최우수상 받은 이경례 할머니

15.09.22 20:57l최종 업데이트 15.09.22 20:57l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문해의 달'을 선포했다. 전국 성인 문해교육 시화공모전(주제: <문해, 꿈을 실현하다>) 수상자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전국 문해 학습자 5658명이 출품한 작품 중 심사위원회 심사와 일반 국민의 온라인 투표를 거쳐 최우수상(교육부장관상) 9편이 선정됐다. 

군산에서는 이경례(85) 할머니가 다른 여덟 명과 함께 영예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작성한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에서 일찍 세상을 뜬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어깨너머로 배워 겨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던 이 할머니는 2014년부터 문해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문해교육 학습장) 2년생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읽기, 쓰기가 어려운 사람의 비율이 6.4%(26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북 군산에도 2007년 기준으로 문자를 모르는 60대 이상 어른이 2000명을 웃돌았다. 당시 군산시는 교육 지도사 양성과정을 거친 3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비문해 ZERO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을 시행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까막눈'의 서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들, 처음엔 자녀들에게 한글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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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활찍 웃는 이경례 할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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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이경례 할머니가 다니는 군산시 늘푸른학교 학습장(금강파크맨션 경로당)을 찾았다. 2~3평 크기 경로당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7, 8명이 선생님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뭔가 노트에 열심히 적는 할머니도 보인다. 배움의 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박수로 반기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문동신 군산시장의 어머니 사례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도 그려졌다.

"이경례 할머니 수상 축하 꽃다발을 보내준 문 시장 어머니도 한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문 시장은 그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처음 시장 취임 후 대상자를 조사해서 2008년부터 문해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문 시장은 지금도 학습자들이 보내준 편지 700여 통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도 이름은커녕 1·2·3·4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죠. 군산 째보선창에서 제법 크게 쌀장수를 했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 자씩 가르쳐 드렸더니 아들 키운 보람이 있다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아라비아 숫자 3을 기억 못 하는 어머니에게 선창가 갈매기를 생각하면 쉽게 떠오를 거라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례를 전하자 할머니들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 굳었던 표정이 이내 풀어진다. "나도 이름 쓰는 법을 손녀에게 처음 배웠다"는 소리도 들린다. 대답 대신 해맑은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경례 할머니는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함께 사는 막내아들에게 영어책, 국어책, 천자문, 학용품 등을 선물 받고 큰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대순(77) 할머니는 "평생의 한이 공부를 못한 것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나도 따지고 보면 첫 번째 선생님은 딸이었다"면서 고향 동무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문해교육 초기부터 '문해교육사'로 활동해왔다는 김기은(47) 담임은 "선대순 할머니는 지난 7월 제11회 성인 문해학습자(초등과정) 편지쓰기 대회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장려상을 받았다"라고 귀띔한다. 그는 "초등과정을 마치고 요즘엔 한자를 교육하는데 할머니들이 무척 흥미로워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하신다"라며 학습장 분위기를 전했다.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못해보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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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낭송하는 이경례 할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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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문해교육 시화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이경례 할머니의 편지
ⓒ 이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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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경례 할머니가 최우수상을 받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전문이다. 이 할머니는 중간에 울먹이기도 했으나 감정을 추스르면서 또박또박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한 여인이 시로 쓴 사부곡(思夫曲)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진 세상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팔순을 훌쩍 넘겨서야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가 꾹꾹 눌러쓴 글이어서 그런지 오랜 세월의 부침이 녹아 있다. 

"지금은 나이도 먹고 되바라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한번 못해보고 살았어. 그때는 왜 그렇게 수줍어했는지 몰라. 지금 살아 있어도 그럴랑가 모르지(웃음).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글로 다 쓰면 가슴이 미어질까 봐 썼다가 찢고, 또 썼다가 찢고 몇 번을 그랬어. 편지를 쓰던 날 밤 옛날 생각이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사랑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니까."

김기은 담임은 "도종환 시인도 심사평에서 '중견 시인들도 할머니처럼 깊이 있고 실감 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라고 극찬했다"라며 "저도 할머니가 처음 읽을 때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특히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공부는 요술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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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 미성동 금강파크맨션에 있는 ‘군산시 늘푸른학교 학습장’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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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례 할머니는 1931년 군산시 개정동에서 태어났다. 여자가 신교육을 받으면 안 된다는 가풍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당시 이 할머니 집안 어른들은 '여자는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살아야 제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 아침을 먹으면 친구들은 책 보자기를 들고 학교에 갔으나 이 할머니는 농사를 거들고 산나물을 캐면서 성장했다. 의지가 됐던 어머니마저 열아홉에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안 어른들 권유로 얼굴도 모르는 네 살 위 총각과 연을 맺었다. 신방을 꾸미고 네댓 달 지났을까, 이번에는 남편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결혼 6개월도 안 되어 생이별한 것. 전쟁터로 나간 남편은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는데 2년여 만에 기적처럼 돌아왔다. 새로운 신혼살림이 시작됐다. 그러나 남편은 마흔을 넘기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났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4남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까지 모시려면 미군비행장 전투기 청소부, 그릇장수, 채소행상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하지만 살림은 항상 쪼들렸다. 그래도 자식들은 고등학교에 보냈다. 부족한 생활비를 쥐어짜 막내는 대학에도 보냈다. 모진 세월을 참고 견디며 남은 앙금은 응어리로 가슴에 남았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아는 글자라곤 어깨너머로 익힌 이름 석 자뿐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삶의 고통도 슬픈 잔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이 할머니가 공짜로 글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동사무소로 달려간 게 2014년 봄이었다. 곧장 늘푸른학교에 등록하고 한글을 한자씩 깨우쳐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이 할머니. 그는 그동안의 느낌과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한마디로 전했다.

"글을 배워서 옛날에 죽은 남편과 교통(소통- 기자말)도 하고, 영어 A·B·C도 알고, 큰 상도 받았으니 얼마나 좋소, 공부가 요술 방망이여!"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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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형 정경유착’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박정희, 신격호,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만주인맥
 
육근성 | 2015-09-22 14:07: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경남 울주군 출신 청년 신격호. 그는 비누, 포마드, 껌을 만들어 번 돈으로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껌 사업이 대박이 나자, 1959년 롯데상사를 설립해 초콜릿 사업에도 뛰어든다.


박정희가 도와준 호텔사업으로 국내 기반 마련

한일 국교정상화로 국내 진출의 기회를 잡은 신격호는 롯제제과를 설립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해 갔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대기업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1970년 11월 박정희는 신격호를 청와대로 불러 호텔을 건설해 보라고 주문했다. 박정희의 한마디에 국무총리와 서울시장이 달라붙어 ‘신격호의 호텔사업’을 도왔다.

박정희 정부는 반도호텔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고, 신격호는 이 호텔을 42억 원에 사들였다. 이어 반도호텔 옆 국립중앙도서관, 동국제강, 아서원 부지 등 7천여 평에 달하는 ‘금싸라기 땅’을 손에 넣었다. 다양한 특혜가 주어졌다. 취득세, 재산세 등 세금도 면제 받았다. 외자도입특례법 덕분이었다.

박정희가 신격호를 배려한 이유가 뭘까? 혹자는 롯데의 자본을 국내에 유입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와 신격호 두 사람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 우익의 거물과 만주 관동군 인맥이 이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매개체였다.


박정희, 신격호,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만주인맥

박정희와 신격호,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공통분모’는 아베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총리였다. 그는 일본 우익의 거물이자 만주인맥의 좌장이었다. 만주국 산업부차관을 지냈던 기시의 눈에 박정희는 어떻게 비쳤을까? ‘만주인맥’으로 분류되는 새까만 후배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박정희가 어떻게 비쳐졌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1962년,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가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 방문길에 오른다.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아들(박정희를 가리킴)의 화려한 무대를 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아들 같은 후배’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오노 반보쿠는 기시 노부스케의 측근이었다.

신격호는 기시 노부스케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신격호의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결혼 전 다케모리 하쓰코)의 외심촌이 외무대신을 지낸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설이 파다하다. 사실이라면 일본인 부인과 처 외삼촌이 교량 역할을 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왜냐면 기시 노부스케가 외무대신으로 임명됐을 때, 전임 대신이 바로 시게미쓰 마모루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격호의 나이는 30대 중반. 그들로부터 사업적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격호의 일본식 이름도 처 외삼촌과 같은 ‘시게미쓰’다. 우연의 일치일까?

“만주국은 나의 작품”이라고 말했던 기시 노부스케. 그가 만주국 관리였을 때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여기에서 착안됐다는 주장도 있다. 5.16쿠데타 직후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박정희가 만난 인물들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기시의 인맥’에 속한 이들이었다. 박정희-신격호 관계는 일본기업이었던 롯데가 국내에 진출해 대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전두환이 준 잠실 개발권으로 재벌 반열에

전두환 정권도 일제의 만주인맥과 가까웠다. 통로 역할을 한 이는 관동군 참모 출신 세지마 류조였다. 박정희의 자문역할을 했던 세지마는 정권이 바뀌자 전두환-노태우와 손을 잡아 신군부의 핵심들과 친분을 쌓았다. 한국 내 이권개입뿐 아니라, 국내정치에 대해 조언까지 했다. 올림픽과 엑스포 유치, 3당 합당도 그의 아이디어였다는 설이 있다. 세지마 역시 ‘기시 노부스케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롯데는 전두환 정권과 친하게 지냈다. 정치자금과 찬조금도 사세에 비해 많이 냈다. 신군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대비해 잠실 개발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롯데가 뛰어들었다. 토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한양을 제친 것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여러 재벌·대기업이 (사업 참여를) 희망했겠지만 결국 개발권을 따낸 것은 롯데그룹이었다… 모든 관련기관이 발 벗고 지원하고, 모든 문서가 초고속으로 처리됐다.”

이렇게 해서 들어 선 게 롯데월드다. 한 달 만에 영향평가, 측량, 지하수 조사 등을 마쳤고, 시청·구청·소방서·관세청·건설부·재무부 등 관계기관이 총출동해 지원했다. ‘롯데 신격호’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배려는 이토록 지극했다.


DJ-노무현 “제2롯데월드 안 돼”

그런데 잘 나가던 신격호가 악재를 만난다. 어느덧 고희를 넘긴 신격호는 자신의 숙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롯데월드 옆 8만7182.80㎡ 부지에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군 시설인 성남공항과 가까워 비행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는 최종적으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MB가 뒤집기를 시도했다.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제2롯데월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제2롯데월드 신축에 반대한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고, 사업 허가를 내주기 위해 성남공항 활주로를 3도 틀었다. 민간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군 공항 활주로에 손을 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는 2009년 초에 나왔다. 신격호의 숙원사업이 해결된 것이다. 왜 MB는 공군참모총장까지 경질하면서 롯데의 손을 들어 줬을까? 당시 롯데호텔 사장이었던 장경작이라는 인물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MB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롯데호텔 31층 로열스위트를 접견실 겸 집무실로 활용했다. 이 방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캉드쉬 IMF총재,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와 사우디 왕세자 등이 묵었던 방이다. MB는 당선 된 뒤에도 이방을 즐겨 애용했다. 여기에서 조각 작업과 정부개편안 마무리, 2008년 총선 공천작업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는 한국에 들어올 때면 이 호텔 37층에 묵었다.


MB 절친동기 발탁, 제2롯데월드 허가권 손에 넣어

그런데 이 호텔의 사장인 장경작은 MB와 고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여기에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 단행된 롯데그룹 인사를 투영해보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신격호는 호텔사업부와 면세사업부, 월드사업부를 총괄하는 총괄사장에 장경작을 임명했다. 없었던 ‘총괄사장’ 자리까지 만들어 발탁한 이유가 뭘까? 쉽게 짐작이 간다.

MB의 대통령 취임과 장영작의 총괄사장 취임은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 그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MB의 입에서 추상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제2롯데월드 신축 불허방침 재검토하라’고 못청을 높였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MB 정권 내내 롯데그룹는 승승장구했다. 10대기업 매출평균 증가율(13%)보다 훨씬 높은 88.3%의 성장을 보이며 42조(2008년)이던 매출이 81조(2012년)으로 껑충 뛰었다. MB정권과 롯데의 밀월관계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 등 지방에서도 많은 특혜논란을 빚고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글(9월24일 발행 예정)을 통해 자세히 기술하도록 하겠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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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반대 목소리 교수 사회에 확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9/22 08:06
  • 수정일
    2015/09/22 08: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법학 연구자들도 ‘史 교과서’ 국정화 시도 철회 촉구국정화 반대 목소리 교수 사회에 확산…연세대 교수 132명도 반대 성명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법학연구자 106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에 반대하는 법학 연구자 선언문’을 발표하고 “박근혜 정부는 위헌적인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고 강력 요청했다.

21일 법학계 교수와 연구자 등 법학연구자들은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106명의 연구자들이 동참 서명으로 국정화 반대 뜻을 표명했다.

연구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2년 중학교 국어교과서의 국정교과서 제도를 합헌으로 결정할 당시의 판시사항을 근거로 들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과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과서 국정제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이고, 교사의 관점에서는 교육전문가로서 자유로이 교재를 선택하여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며 “또한 국정제는 국가가 지정한 교과서만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국정제 교과서는 ‘검열의 결과물’로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또한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교육과 교과서제도는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며 “이후 독재 정권은 교육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화하여 교과서를 편향적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정사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가의 ‘무오류 신화’에 빠져있다”며 “사실과 관점은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역사적 관점을 하나로 통일하려 하는 것은 명백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는 현직 역사 교사들을 비롯해 대학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주 고려대·성균관대 등에 이어 연세대학교 교수 132명도 이날 “민주적 가치 함양과 창의적 교육을 거스르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 교수들은 성명서에서 “국정 교과서는 권력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유신체제가 강요한 국정 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좁은 틀 속에서 해석한 하나의 생각이 강요된 교실에서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갇힌 사고로 이루어지는 일방적 교육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한다”며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들이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여 뜻을 모아 반대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에도 정부와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이후 우리 사회가 짊어질 부담과 폐해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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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추방 이태원로 가요제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추방 이태원로 가요제
 
이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9/20 [21: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사 진]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장 전경.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9월 19일 탄저균 실험실이 있는 용산 미군기지 일대와 용산 전쟁 기념관 앞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제목의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가 전국의 청년 학생들 주최로 열렸다.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오후 2시 30분에 개막식을 하고 <탄저균 오염 기왓장 격파>, <탄저균 그리고 미군 범죄에 대한 즉석 문답>, <탄저균 오염 두더지 잡기>, <평화의 떡 나누기> 등등 갖가지 부대행사가 진행되었으며 많은 시민과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과 참여가 있었다.

 

▲<<9.19 탄저균 추방의 날 > 풍물패의 공연과 함께 많은 시민이 참가하였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부대행사 중에는 주한미군 기지에서 발견된 각종 오염물(다이옥신, 포름알데히드, 발암물질, 기름 등)을 전시하였으며 그 오염물로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들고 주한미군의 제사상에 올려 제사 지내는 공연이 있었다.

 

▲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주한미군 기지의 오염물질로 떡메를 치는 행사장, 이 떡으로 주한미군 제사를 지내는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참가자들은 부대행사를 마치고 준비해온 의상과 여러 가지 도구를 착용하고 용산 미군기지를 지나 녹사평역까지 거리행진을 하였으며 거리를 지나는 주한미군에게 탄저균 추방을 알렸다.

 

▲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된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이태원로 가요제>>는 전국에서 참가한 출연진과 용산 시민 가족들, 좌석을 가득 메운 관람자들로 시종 뜨거운 열기와 재치 넘치는 공연이 이어졌다.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참가자들은 초대손님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에 큰 호응으로 답하고 주한미군의 탄저균을 추방한다는 각오와 함께 대동놀이를 하고 행사를 마쳤다.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이태원로 가요제> 해학이 넘치는 민속공연 양씨의 마지막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이태원로 가요제>  자갈치 부산아지매의 짠짜라 공연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이태원로 가요제> 용산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경연하고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잡아내는 여성의 모습이 대단하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평화의 쪽지를 적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두더지 잡는 모습.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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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3개 24평, 9000만 원에 月 25만 원!?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주택 복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900만 세입자 세대 중 500만 세대에게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잠정적 유토피아로 기획해 보자. 매년 30만 호의 공공 주택을 계속 공급하고 그 절반인 15만 호를 국민 임대 주택 급의 공공 임대 주택, 다른 절반인 15만 호를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을 가정하여 그것에 소요되는 국가 예산을 추정해 본다. 공공 주택이 기존의 100만 호와 합쳐 500만 호에 도달하는 2030년의 경우 이 유형의 주택 복지에 필요한 국가 예산은 연 7조5000억 원 투입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매년 국가 예산의 2조 원 이내를 주택 복지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LH 또는 SH 등 주택 공기업의 교차 보조 재원 조달 방식으로 주택 복지 사업을 지탱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복지 선진국은 GDP의 3~4%를 주택 복지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도 GDP의 1~2%를 주택 복지 국가 예산으로 사용하는 것을 대전제로 하는 주택 복지 패러다임을 새로이 구상해야 한다. (필자)
 
월세난, 전세난에 시달리는 청년들과 서민들
 
요즘 많은 청년들이 월 120만 원가량 최저 임금을 벌어 그중 집세와 전기·가스비로 30~40만 원을  낸다. 집세에 전기·가스, 상하수도 요금까지 합친 주거비 전체가 자신의 월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는 청년이 서울의 경우 70%를 넘는다고 한다. 이러니 주변의 많은 청년들에게는 데이트할 돈이 늘 모자란다. 연애는 사치고 결혼은 꿈도 꾸기 힘들다.
 
전국 2000만 세대의 45%인 900만 세대가 세를 살고 있다. 그중 3분의 1가량은 아직 전세를 살고 있는데 저금리 환경에서 전세 주택이 월세 주택으로 바뀌면서 전세금이 폭등하고 있다. 그리고 월세 또는 보증부 월셋집의 경우 월세가 자기 월소득에 비해 너무 높다. 선진국에서는 월 임대료와 전기·가스·수도비를 합친 총주거비가 거주자 월소득의 30%를 넘으면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32%를 넘었다고 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알바-비정규직 청장년들, 그리고 비슷한 소득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월소득의 30~40%를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물론 최저 임금을 비롯한 임금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주거비 지출 부담 역시 크게 낮추어야 한다. 개인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주거비 비중이 20%가 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바람직하게는 월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15% 이하로 낮추는 국가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한 가족이 월 300만 원을 번다면 총주거비로 월 45만 원 이하, 월 200만 원을 번다면 총주거비로 월 30만 원 이하, 월 150만 원을 번다면 월 25만 원 이하를 주거비에 쓰는 방향으로 주택‧부동산 프레임 전체를 통 크게 전환해 보자. 이것이 청년들의 삶의 자유와 행복의 출발이다.
 

©연합뉴스

 
현재의 주택 복지 프레임 : '잔여자들'을 위한 복지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하여 공공 임대 주택(국민 임대 주택)의 공급을 2배 정도 늘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급 물량(매년 1만호 가량)을 포함하여 매년 6만 호 가량의 공공 임대 주택(5년/10년 뒤 분양 제외)이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많은 행복 주택 역시 여기에도 포함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기업형 임대 주택(뉴스테이)과 리츠 임대 사업 또한 추진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주택 복지 자원의 일부를 중고소득 계층과 대기업-금융 자본 지원으로 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계획이 달성될 경우, 임기 말인 2017년에는 약 120만 호의 공공 임대 주택(5년/10년 공공 임대 후 분양 제외)이 존재하게 된다. 그 경우 전체 세대의 약 6%가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에 거주하게 된다. 하지만 6%란 기초생활수급자(3%)와 그리고 일부 운 좋은 청년과 노인들, 장애인, 탈북자 등만이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시원과 옥탑방을 전전하는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 알바 청년들을 위한 공공 임대 주택은 여전히 부족할 것이며, 행복 주택 역시 물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GDP의 3.2%, 4%를 주택 복지+공공 주택에 사용한 네덜란드와 스웨덴
 
우리나라는 매년 국가 예산의 2조 원 이내를 주택 복지에 사용하고 있다. 적은 예산을 주택 복지에 투여하는 비결은 LH공사 또는 SH공사 등의 공기업이 자체 부담으로, 즉 택지·아파트 분양을 통해 번 수익을 공공 주택 건설 및 유지에 사용하는 교차 보조 방식으로 그간의 주택 복지 사업비를 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LH 및 SH의 적자와 부채를 고려할 때 그런 방식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 중앙 정부가 직접 주택 복지 예산을 책정하여 과감하고 획기적인 주택복지에 나서야 한다.
 
스웨덴은 1970~90년대에 매년 국내 총생산(GDP)의 4%를 주택 복지에 사용하였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할 경우 2015년 GDP 1500조의 4%인 연 60조 원을 주택 복지에 사용한 것에 해당한다. 네덜란드는 같은 기간에 GDP의 3.2%를 매년 주택 복지 국가 예산으로 사용하였다. 우리의 경우 빈민이 아니더라도 대다수 서민이 가장 고통 받는 생계난이 주택과 교육 문제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적어도 GDP의 1~2%를 주택 복지 국가 예산으로 사용하는 것을 대전제로 새로운 주택 복지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영국은 100년 전에 전체 인구의 90%가 월셋집에 살고 부유한 10%만이 자기 집에 살았다. 하지만 1945년 노동당이 집권하여 공공 임대 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보수당 역시 집권 중에 공공 임대 주택과 함께 자가 주택을 크게 늘린 결과 불과 25년 뒤인 1970년에는 전체 세대의 30%가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에 살고 50%의 중산층이 자기 집에 사는 시대가 도래했다.
 
스웨덴과 독일 등 여타 유럽국들의 주택 사정 역시 100년 전에는 영국과 비슷했다. 그것이 크게 변한 것은 1945년 이후 불과 20~30년의 기간이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시기에, 특히 1945년 이후부터 공공 임대 주택과 협동조합 주택을 25년간 매우 빠른 속도로 늘렸다. 그 결과 오늘날 값비싼 상업적 월세 주택에 거주하는 서민들은 별로 없으며 전체 인구의 20%가 공공 임대 주택에 살고 20%는 협동조합 주택에 살고 있으며, 50%가량은 자기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나라들의 주택 복지 역사를 참고하여 담대한 주택 복지 구상을 기획해야 한다.
 
전체 세입자의 절반 이상에 저렴한 공공 주택을 : 잠정적 유토피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5%, 대도시 인구의 55%가 세를 살고 있으며 세를 사는 세대는 약 900만 세대이다. 그중 중 약 100만 세대가 2017년까지는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에 살게 될 터인데 하지만 800만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자기 집이 아닌 셋집에 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800만 세대의 절반인 400만 세대에게 저렴하고 쾌적한 공공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잠정적 목표(잠정적 유토피아)로 기획해보는 것을 어떨까? 향후 1~2년간 집권당 또는 대통령이 바뀌는 것을 전제로, 새 집권당이 매년 30만 호의 저렴한 공공 주택을 새로 공급하여 13년 뒤인 2030년에는 전국 900만 세입자 세대 중 500만 세대(약 1300만 명)에게 주택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서 멈출 필요는 없다. 국가 예산이 상대적으로 덜 소요되는 공공 토지 임대부 비영리 주택의 공급을 계속하여, 자기 집 소유자들의 상당수도 기존의 낡은 자가 소유 주택 대신에 보다 쾌적하며 에너지 절약 및 환경 친화적인 새로운 공공 주택에 거주하게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대부분 서민들이 주택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어 비싼 시장 가격에 주택을 구입하는데 반해 오직 극소수의 극빈층과 장애인 등 나머지(잔여) 인구들만이 저렴한 주택 복지 혜택을 누리는 잔여적-선별적 주택 복지 프레임에서, 누구나 원한다면 공공 주택에 입주할 권리를 갖는 보편적 주택 복지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부자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원한다면 누구나 저렴한 공공 주택(공공 토지 임대부 비영리 주택 포함)에 거주할 보편적 사회권을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전략을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매년 15만 호의 공공 임대 주택을 공급
 
매년 30만호의 공공 주택 중 절반인 15만호를 현재의 국민 임대 주택급 공공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을 가정할 경우 그것에 소요되는 국가 예산을 계산해보자.

18평형에 2.5명이 거주하는 주택을 기준으로 할 경우, 그 건설 또는 매입에 소요되는 비용을 1호당 평균 1억이고 그중 40%인 4000만 원은 토지의 구입·조성에, 60%인 6000만 원은 건물 신축 또는 매입·수리에 들어간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주택 입주자에게 월 20만 원의 임대료를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이 사업을 주관하는 공공 기관(가령 LH공사)은 매년 240만 원의 임대료 수입을 얻는다.
 
반면에 그 주택 공공 기관에는 매년 토지 임대료 기회 비용 손실과 건물 수리비 및 건물 감가 상각비 등의 비용 지출이 발생한다. 더구나 해당 주택의 건설 자금 6000만 원 전액을 주택도시기금(과거의 국민주택기금)의 융자로 조달했다고 가정할 경우, 매년 이자 지불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또 주택도시기금 측에서도 시중 이자율보다 저렴한 금리 혜택 제공으로 인한 재정 손실(이차 보전으로 인한 손실)이 발생한다. 이 모든 비용을 것을 합하고, 여기서 임대료 수입을 제할 경우, 정부(주택 공공 기관 및 주택도시기금) 측에서는 주택 1호당 매년 평균 약 300만 원 가량의 국가 예산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총 100만 호의 공공 임대 주택을 새로 공급할 경우 매년 3조 원이 주택 복지 예산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200만 호의 경우 매년 6조 원 가량이 투입되어야 한다.
 
매년 15만 호의 공공토지 임대부 비영리 주택을 공급
 
공공 토지 임대부 비영리 주택이란 (1) 토지는 국가(LH공사와 지방자치단체, SH공사 등도 포함)가 소유한 채 50년 장기에 걸쳐 저렴한 토지 임대료를 받으며 임대하고, (2) 건물은 입주자 또는 법인(협동조합 포함)이 소유하는 그런 주택을 말한다.
 
예컨대 18평형 주택의 공급에 총 1억 원이 소요되고, 그 중 4000만 원은 토지(택지)의 구입·조성에 소요되며 6000만 원은 건물의 신축 또는 구입·수리에 소요된다고 가정하자.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경우 토지를 국가 즉 가령 LH공사가 계속해서 소유하면서 그 사용권(지상권)만을 50년간에 걸쳐 주택 소유자에게 장기적으로 임대하고, 게다가 주택은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비영리 법인이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입주자들이 공동 가입한 비영리 주택법인(가령 사회적 주택 협동조합)은 해당 주택의 소유주가 된다.
 
공공 토지 임대료율을 시중 정기 예금 이자율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어야만 한다. 예컨대 3년 평균 정기 예금 이자율이 3%라고 할 때, 그 절반인 1.5%의 연 수익률로 토지 임대료를 책정하여 계상한다. 이 경우, 1호당 토지가격인 4000만 원에 대하여 연 1.5% 수익률인 연 60만 원이며 이것은 월 5만 원을 의미한다. 즉, 이 주택의 입주자들은 1호당 월 5만 원의 토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이 주택에 입주하는 이는 건물 구입비 6000만 원을 주택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납입하여 주택(건물)의 소유자가 된다. 18평형 입주자는 매월 5만 원의 토지 임대료와 그리고 매월 건물 수리비(장기 수선 충당금) 약 2만 원, 즉 총 매월 7만 원을 납부하며 살게 된다. 6000만 원을 출자금으로 납부하고 매월 7만 원의 임대료를 내며 산다. 상당히 괜찮은 주택이 아닌가? 물론 매월 10만 원의 건물 감가 상각비를 계상할 경우 실질적으로 입주자가 부담하는 것은 매월 17만 원이다.
 
이러한 기준대로라면, 9평에 침실 1개의 주택은 출자금(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9만 원, 24평에 침실 3개의 주택은 출자금 9000만에 월세 25만 원으로 제공될 수 있다. 36평에 침실 4개의 주택은 출자금 1억2000만 원에 월세 34만 원으로 제공될 수 있다.  
 
요즘 전세값이 폭등하여 서울의 경우 24평 아파트 전세값이 평균 3억5000만 원에 달하고, 월세의 경우에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에 시장에서 거래된다. 비수도권 대도시의 경우 24평 아파트 전세 가격이 2억 원이며 보증금 9000만 원에 월 45만 원의 준월세 가격에 시장 거래된다. 따라서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 24평형이 보증금 90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의 가격에 제공될 수 있다면 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미산 주택 협동조합과 서울시 토지 임대부 주택 사업의 교훈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주택 협동조합과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이 실험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먼저 서울 마포의 성미산 공동체는 '함께 주택'이라고 하는 청년 공유 주택을 작년 여름에 완공했는데 그 주변의 2인1실 주거 월세가 40만 원인데 반하여 함께 주택은 그것을 30만 원으로 10만 원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월세를 4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낮추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서울시의 사회투자기금 융자이었다. 사회투자기금은 시중 대출 금리의 절반 이자율로 함께 주택에 융자했다. 만약 시중 이자율이 적용되었더라면 함께 주택의 월세는 시중 가격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함께 주택의 토지 구입·조성에 대해 만약 공공 기관(LH/SH공사)이 나서서 그것을 대행해주고 그 토지에 대해 50년간 가령 시중 정기 예금 금리의 절반(1.5%)의 임대료로 임대했더라면 함께 주택의 월세는 30만 원이 아니라 25만 원, 20만 원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SH공사)는 성북구 삼선동(5세대)과 마포 서교동(7세대)에서 토지 사용권을 30~40년간 장기 임대하는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시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의 경우 ‘임대주택법 시행령 제13조의 2항 : 3년 만기 은행 정기 예금 평균 이자율의 수익을 가정한 토지 임대료’의 적용을 받으며 따라서 저렴한 토지 임대료 책정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저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까닭에, 그만큼 임대료를 시장 가격보다 낮출 여지가 있다.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임대료 기준을 변경해야 : 임대주택법 시행령 개정해야
 
현재의 임대주택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토지 임대료 산정 방법은 '토지 가액(시가 또는 감정 평가액)에 대한 3년 만기 정기 예금 평균 이자율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경우 국가(LH공사 등)은 토지 임대와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별다른 손실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원칙이 적용될 경우,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도입 취지는 현격하게 사라진다. 왜냐하면, '저렴한 토지 임대료로 주택지를 제공하여 그 입주자가 저렴한 주택 임대료를 내고 거주하게 한다'는 본래의 주택 복지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토지 임대료를 토지가액(시가 또는 감정 평가액)에 대한 3년 만기 정기 예금 평균 이자율의 '2분의 1 또는 그 이하'로 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3년 만기 정기 예금 평균 이자율이 2.1~2.5%에 불과한 오늘날, 토지 임대부 주택에 대한 토지 임대료는 그 절반인 1~1.3% 사이에 형성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LH 또는 SH공사가 만약 시중 정기 예금 금리의 절반 가격에 토지 임대료를 책정한다면, LH 또는 SH에 회계상 손실이 그만큼 매년 발생한다. 그 손실은 결국 중앙 정부 또는 서울시부의 주택 복지 예산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매년 15만 호의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 공급의 소요 국가 예산 
 
18평형 기준으로 토지 가격이 4000만 원이고 건물 비용이 6000만 원, 시중 정기 예금 이자율이 연 3%이며 공공 토지 임대료율을 그 절반인 연 1.5%로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토지를 소유한 국가(LH, SH, 국가/지방자치단체 등)는 토지 임대료와 관련하여 1호당 매년 60만 원의 손실을 입는다. 국가가 매년 15만 호의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을 2030년까지 계속 신규 공급할 경우, 국가는 이 사업과 관련하여 매년 손실(즉 토지 임대료 차액 보조 형태의 보조금)을 매년 900억 씩 늘어나는 누적적 손실을 입는다. 그 액수는 그것이 210만 호에 달하는 2030년에 연간 1조26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210만호 (18평형에 2.5명 거주 기준)에 거주하는 525만 명이 저렴한 (게다가 에너지·환경·어린이 친화적인) 주택에 거주하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고려할 때, 그것을 위하여 연간 약 1조300억 원의 국가예산을 주택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감수할만한 것이 아닐까?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의 장점
 
게다가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에는 다양한 제도적 장점이 있다. 첫째, 토지를 국가(LH/SH공사, 지방자치단체 등)가 계속 소유한 채로 그것을 50년간 장기 임대하는 까닭에, 근본적으로 토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 부동산 투기가 원천 봉쇄된다. 둘째, 공공 임대 주택과 비교할 때,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 건물은 입주민에게 매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택 복지에 소요되는 국가 예산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셋째, 역사적인 이유로 인하여 한국의 많은 국민들이 전세 보증금 저축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전세 주택이 급격히 사라지고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전세 보증금 저축을 보유한 수백만 세입자 세대들이 저렴한 전세 주택을 구하지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의 경우 결혼을 하지 못하고 미루거나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이에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은 기존의 전세 보증금 저축을 주택 협동조합에 대한 출자금(토지가 아닌 건물 소유 지분)으로 흡수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하는 까닭에, 소득 하위 25%에서 75%에 이르는 광범위한 중간 계층을 위한 보편적 주택 복지 프레임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넷째,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은 부동산 영역에서 사회적 경제를 뿌리내릴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다.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에는 협동조합 주택이 크게 발전해 있다. 스웨덴의 경우 전체 주택의 20%가 협동조합 소유이며,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도 그 비중이 10%를 넘는다. 여기서도 협동조합 주택은 모두 공공(주로 지방자치단체)이 소유하는 택지를 50~100년간 장기 임대하고 그 위에 지어진 주택 건물을 주택협동조합이 소유·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때 공공으로부터 토지 지원과 저금리 지원, 세제 혜택과 같은 공적 지원을 받는 경우, 그 덕택에 임대료를 시중 임대료 이하로 낮추는 경우, 반드시 비영리 또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매년 30만호 공급에 필요한 국가예산
 
한편, 매년 15만호의 공공 임대 주택과 매년 15만 호의 공공 토지 임대부 주택을 복지 국가가 2030년까지 공급할 경우 필요한 매해의 국가 예산 소요액은 아래의 <표 2>와 같다.  2017년에 시작하여 매년 30만 호의 신규 공공 주택을 공급할 경우, 2018년에 약 1조 원, 2020년에는 약 2조 원, 2022년에 약 3조 원처럼, 매 2년마다 1조 원씩 늘어나는 방식으로 그 소요 예산이 늘어난다. 그것은 공공 주택이-기존의 100만 호와 합쳐-500만 호에 도달하는 2030년의 경우 그것은 연간 7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것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500만 공공 주택에 거주할 1500만 명의 가난한 청년과 서민의 행복과 자유를 고려할 때, 이것은 우리가 사회 공동체 정신에 의거하여 지불할 가치가 있는 금액이다.
   
주택 복지 패러다임 전환은 잠정적 유토피아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  
 
매년 수천만 원씩 오르는 전세값으로 서민들은 등골이 휠 지경이고 또한 수입에 비해 높은 월세는 감당하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전·월세 대란은 청년들의 결혼과 연애를 가로막아 초식남, 초식녀들을 양산한다.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단 꿈꾸는 자들에게만. 이제는 담대한 꿈, 잠정적 유토피아를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새로운 정치판이 전개되어야 한다. 전국 세입자의 절반 이상에게 저렴하고 쾌적하며 친환경적인 공공 주택을 제공하는 것을 10년, 20년 뒤의 목표로 삼는 잠정적 유토피아의 정치, 부자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원한다면 누구나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 주택에 거주할 권리가 보편적 시민권으로서 약속되는 꿈의 정치가 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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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감옥에서 손편지로 "득중, 단식 정리하길"

 

[편지]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에게... "건강 걱정,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

15.09.21 17:34l최종 업데이트 15.09.21 17:34l

 

 

인권재단사람에는 매일매일 편지가 도착합니다.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한 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래군 인권활동가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개인의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인권재단사람 후원인들에게 보내는 글도 있고 언론사에 보낼 기고글도 있습니다. 편지를 관리하는 저의 입장에서 가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먼저 읽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됩니다. 

이번에는 2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9월 8일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면회를 가서 요청을 했었나봅니다. 면회에 대한 화답으로 편지를 보내주었고 이 편지를 김득중 지부장의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에 보냅니다. - 인권재단사람 활동가 정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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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한 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2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
ⓒ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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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한 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2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
ⓒ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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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중에게.

처음 쓰는 편지라 호칭부터 어떻게 쓸까 망설였네. 또 뭐라고 인사를 건네야 될까도 고민이 되더군. 오늘로 열 여드레째 굶고 앉았는 사람에게 평범한 안부 인사를 할 수도 없고...

나는 여기서 잘 있네. 바깥에서는 사악한 무리들이 또 한 차례 사나운 바람을 일으켜 정신이 없겠지만, 나는 미안할 정도로 평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중이지. 이 좋은 공간, 움직일 수 없는 이곳에 갇혀서 속만 상하는 거지. 화를 내봤자 여기서 어쩔 수도 없으니...

편지를 쓴다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니까 꿈 속에서도 나타나는군. 내가 서울역에서 평택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어. 요즘 꿈도 잘 꾸고, 꿈에서 어딘가를 자꾸 가네. 꿈에서라도 움직이고 싶은가봐. 갇힌 자의 심리 상태가 반영되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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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사진은 지난 2014년 12월 13일 때의 모습.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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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중. 난 네 몸이 걱정돼. 간이 안 좋아서 매일 약 먹어야 하는 사람이 벌써 20일을 눈앞에 두고 있잖아. 지난번 대한문에서 단식 20일 한 뒤에도 무척 힘들었잖아. 난 이번에 20일까지만 하고 단식을 정리했으면 좋겠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권력과 자본의 악랄함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네. 이번 노사정 합의는 밥그릇만이 아니라 수저마저 빼앗겠다는 악마의 속셈이 노골적으로 관철되고 있더군. 

지금은 쌍차 지부장 김득중이 굶고 힘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기운 차리고 전국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는 때인 거지. 때가 오고 있어. 그 연대 투쟁에 김득중 지부장이 함께 하기를.

단식 풀고... 제발 부탁이네.
네가 단식 풀었다는 소식을 기다리겠네. 몸 건강히...

2015. 9. 17. 아침에 서울구치소에서 박래군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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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상위 핵기술

 
 
한호석의 개벽예감 <17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9/21 [12:0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 <사진 1> 이 사진은 평안북도 녕변의 핵시설단지 안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소로 건물을 촬영한 것이다. 뾰족한 고깔모자처럼 생긴 키높은 증기배출구가 보이고, '자력갱생'이라고 쓴 커다란 구호가 옥상에 세워진 것이 보인다. 6.25전쟁 때부터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을 받아온,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위협피해국인 조선은 미국의 핵위협에 맞설 핵억제력을 보유하기 위해 자력갱생의 투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강위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지난 냉전시기 중국과 소련은 자기들이 조선의 동맹국이라고 하면서도, 조선의 핵억제력 보유를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핵개발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과 봉쇄와 감시, 그리고 중국과 소련의 반대를 뚫고 오직 자기의 힘만으로 최첨단을 돌파하여야 했던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핵억제력은 자력갱생의 핵억제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자주시보

 

 

1. 녕변핵시설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었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기사가 2015년 9월 15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렸다. 그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는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핵뢰성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 있다”고 경고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바로 이 문장에 시선을 집중시킨 한국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제4차 핵실험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하지만 핵뢰성이라는 말은 핵실험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핵타격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에 높이 솟은 만탑산의 화강암층을 1km 정도 파고 들어가 굴설된 갱도식 지하핵실험장에는 10개의 강철문으로 겹겹이 밀폐된 지하갱도가 있는데, 그 갱도의 맨 끝에 자리 잡은 기폭실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상에서는 핵뢰성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에서 말하는 ‘최후결전’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핵탄이 타격목표에 명중하여 폭발할 때 천지를 진동하는 핵뢰성이 울리게 될 것이다.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서 정작 주목해야 하는 문장은 따로 있다. 그는 “우리 원자력부문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계급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금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사진 1>


조선에서 핵억제력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연구와 핵억제력을 양적으로 확대하는 생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면,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답변을 전한 언론보도에 들어있는 또 다른 문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4월 당시 우리의 원자력총국 대변인이 밝힌 바와 같이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에 따라 우라니움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MW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였으며 재정비되여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발언을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2013년 4월 2일 당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인 로선에 따라 우리 원자력부문 앞에는 (줄임)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자력총국은 당면하여 우선 현존 핵시설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해나가기로 하였다.”


위에 인용한,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에서 공히 지적된 것은, 조선이 자기의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전면적으로 조절변경하였다는 사실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며칠 전 자기의 웹싸이트에 올려놓은 논문에 들어있는 것인데,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새로 건설되어 완공을 앞둔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을 2015년 8월 초에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이다. 조선은 핵융합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이후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여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조선의 핵억제력이 핵융합기술로 더욱 강화되어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2. 수송열차 드나드는 동위원소생산시설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하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미국의 유명한 안보문제연구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가 2015년 9월 15일에 발표한 글 ‘북조선의 녕변핵시설단지에 관한 최신 정보’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글에서 특별히 언급된 것은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지난 40여 년 동안 있었는데도 그 존재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이름도 생소하게 들리는 어느 특정시설인데, 그것이 바로 동위원소생산연구소다.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 경내의 북쪽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서 방사능치료에 사용될 약 300mg의 의료용 동위원소를 1975년에 생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1992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게 밝힌 바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원래 동위원소생산연구소가 자리를 잡았던 터에는 1970년대에 건설된 작은 건물 두 채가 있었는데, 그 작은 건물들은 헐렸고, 2009년부터 새로운 건설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착공 이후 6년이 지난 2015년 8월 현재 큰 건물 한 채, 서로 연결된 중간 크기의 건물 두 채, 그리고 작은 건물 한 채가 새로 들어섰는데, 시공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설들은 조선에서 당창건 70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10일에 즈음하여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아무리 방대한 공사라도 “평양속도”로 밀고 나가 2~3년 안에 “불이 번쩍 나게 해제끼는” 조선에서 그리 크지 않은 건축공사를 6년 동안 계속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별난 사정은, 그 건축공사가 고난도 시공기술을 요구하는 공사였을 뿐 아니라, 그 신축건물에 들여놓을 각종 설비들도 간단히 만들지 못하는 특수설비들이었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이 새 건물들의 특징은 건물내부가 여러 개의 격폐실(hot cell)들로 나누어졌다는 점, 지붕에 대형 환기시설과 가스배출구가 설치되었다는 점, 그리고 수송열차가 건물 안으로 직접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 등인데, 이런 설계적 특징을 주목한 미국 전문가들은 그 새 건물들을 동위원소생산시설이라고 지목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던 기존 동위원소생산연구소 건물을 들어내고 생산설비가 현대화되고 생산능력이 확장된 새로운 동위원소생산시설을 신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원자력총국 대변인의 2013년 4월 2일 발언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의 2015년 9월 15일 발언이 공히 지적한 것처럼, 조선이 모든 녕변핵시설의 용도를 ‘병진로선’에 맞게 조절변경한 목적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것이므로, 새로 건설된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방사능치료에 필요한 의료용 동위원소를 소량 생산하던 기존 연구소가 없어지고,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용도로 신축된 대규모 동위원소생산시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핵억제력을 확대강화하기 위한 동위원소라는 것은 핵분열(nuclear fission)과는 차원이 다른 핵융합(nuclear fusion)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말한다. 원래 핵융합에는 삼중수소(Tritium), 중수소화 리튬(Lithium Deuteride), 리튬-6, 우라늄-238, 플루토늄-235 같은 동위원소들이 필요하므로, 녕변핵시설단지에 신축되어 완공을 눈앞에 둔 동위원소생산시설에서는 위에 열거한 핵융합용 동위원소들이 생산될 것이다.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힌 조선이 핵융합에 필요한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초정밀측정장비가 검출한 방사성핵종 


조선이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때는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기 3년 전인 2010년 5월이다. 2010년 5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의 과학자들은 최첨단을 돌파할 데 대한 당의 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할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핵융합기술을 우리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을 벌려왔다. 부족하고 어려운 것이 많은 속에서도 우리의 과학자들은 사소한 주저와 동요도 없이 제기되는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핵융합반응에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 우리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되고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으며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기술력량이 마련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은 “우리식의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밝혔지만, 조선에서 진행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의심하고 깎아내리는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보도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은 방사성핵종검출에 의해 입증되었다.


2010년 10월 19일 <연합뉴스>에 국정감사발언을 인용한 흥미로운 보도기사가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핵융합기술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한 날로부터 사흘이 지난 2010년 5월 15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최북단 방사능측정소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거진측정소의 방사성핵종검출장비에서 제논-135가 검출되었다. 이것은 그 핵종검출장비가 2007년에 그곳에 설치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가 나타난 것이었는데, 평소에 검출되는 제논 농도는 0~0.55였으나 2010년 5월 15일 오전 2시 7분에 갑자기 4.085로 솟구쳤다고 한다. 제논은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인공적 핵분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기체상태의 방사능물질이다. 


<노컷뉴스>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 설치된 방사성핵종검출장비는 한국의 다른 70여 개 측정소들에 설치된 유사한 핵종검출장비들에 비해 검출감도가 70만 배 정도 더 높은 초정밀검출장비이므로 다른 측정소들에서 검출하지 못하는 극미량의 제논도 검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강릉대학교 안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를 촬영한 것이다. 한국 각지에 있는 방사능측정소들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관리하고 있다. 이 측정소들은 대기 중에 포함된 방사능핵종을 검출하는 대기측정장비를 가동한다. 조선의 핵실험과 핵융합실험에서 방출된 방사능핵종도 그 측정소들에서 검출되었다.     © 자주시보


2012년 2월 3일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방연구원 소속 대기과학자 라스 에릭 데예르(Lars-Erik De Geer)는 2010년 4월과 5월 한반도 상공에서 포집된 대기표본들에서 평소보다 매우 높은 농도의 제논과 바륨이 검출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의 핵억제력 발전추세를 알지 못하는 그는 핵실험이라는 모호한 말을 썼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조선일보> 2011년 3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거진측정소에서는 2010년 5월 15일에 이어 2011년 3월 27일에도 제논이 검출되었다. 당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일본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방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러시아 캄차카반도로 북상한 뒤 북극을 한 바퀴 돌아 저 멀리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 상공으로 남하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았는데, 기상청은 그 날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었는지 등을 역추적하는 식으로 검증한 결과, 후꾸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제논이 바람을 타고 북극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다고 하면서,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선의 핵억지력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기상청은 그 제논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거진측정소에서 2011년 3월 27일에 검출된 제논도 2010년 5월 15일에 검출된 제논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핵융합실험에 의해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

 

▲ <사진 4> 2009년 후반 조선에서 상영된 다부작 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에는 만탑산 지하핵실험장 입구를 형상한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만탑산 허리의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고 굴설된 갱도식 핵실험장 입구에는 전기장치로 여닫는 거대한 강철문이 설치되었다. 2010년과 2011년에 있었던 조선의 핵융합실험들도 바로 이 만탑산 지하핵실험장에서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4. 3톤급 소당량 핵실험은 핵융합실험이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은 2014년 11월 20일 자기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논문에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북위 41.2863도, 동경 129.0790도의 좌표에서 소당량(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길주군 만탑산 핵실험장의 좌표는 북위 41.28도, 동경 129.13도이므로, 2010년 5월 12일 오전 9시 8분께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소규모 핵실험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진 4>


그런데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서 밝혀진 더 중요한 사실은, 2010년 5월 12일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진행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과 관련된” 실험이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이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이 핵융합실험이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2010년 4월과 5월, 그리고 2011년 3월에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핵융합실험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핵융합실험에서도 핵폭발이 일어나므로 인공지진파도 발생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조선이 세 차례 핵융합실험을 진행할 때마다 인공지진파를 전혀 측정하지 못했다. 이런 불일치 현상에 주목한 국제핵과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당시 조선이 핵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정보부족으로 생긴 것이었다. 위에 인용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이 2010년 5월 12일에 진행한 소당량 핵실험,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2.9톤이고 오차율은 0.8톤이라는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진행한 제1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는데, 2010년 5월 12일 소당량 핵실험(핵융합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그것의 333분의 1 수준인 약 3톤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강도가 매우 낮은 폭발에서 미약한 인공지진파가 발생되었으므로, 한국 각지의 지진측정소들은 그 파장을 측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5. 핵기술의 도약, 증폭핵분열탄에서 열핵융합탄으로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석 달이 지난 5월 21일 <로동신문>에 중요한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 보도기사는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제3차 핵실험은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혔다. 그 문장을 옮기면,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된 제3차 지하핵시험은 작용특성, 폭발위력을 비롯한 모든 측정결과들이 설계값과 완전히 일치됨으로써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고 적들을 전률케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주의 깊게 읽어야 그것이 암시하는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서술된 문장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선 시선을 끄는 것은 “이전과 달리”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제3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이나 제2차 핵실험과는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음을 뜻한다. 제3차 핵실험이 이전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조선은 제1차 핵실험 직후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5(2006) 10월 9일 지하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류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제1차 핵실험이 핵분열탄(원자탄)실험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제1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약 1킬로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2차 핵실험을 진행한 조선은 언론보도를 통해 “주체98(2009) 5월 25일 또 한 차례의 지하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핵시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되였으며 시험결과 핵무기의 위력을 더욱 높이고 핵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 도달하였다는 표현은 제2차 핵실험이 제1차 핵실험에 이어 핵분열탄실험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폭발력을 증폭시킨 새로운 유형의 핵실험을 진행하였음을 뜻한다. 기폭과정을 조종하여 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몇 배 더 증폭시킨 핵분열탄이 바로 증폭핵분열탄(boosted nuclear fission bomb)이다.

 

조선의 제2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1953년 8월 23일에 있었던 소련의 증폭핵분열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28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의 제2차 핵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약 5킬로톤이었으므로, 조선은 소련의 증폭핵분열탄보다 폭발력을 6분의 1 정도로 줄인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조선예술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는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실험을 정면에서 다룬 화제작이다. 조선에서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컴퓨터영상합성기술로 화면을 구성하여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위의 사진은 제2차 핵실험 진행과정 중에 만탑산 핵실험장 지하갱도의 9번째 강철문이 차단되는 순간, 통제실의 컴퓨터에 나타난 화면을 보여준 장면이다. 구불구불한 형태로 굴설된 갱도는 기폭실에 가까와지면서 달팽이모양으로 감돌며 구부러졌다. 핵폭발이 갱도 밖으로 터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지하갱도 곳곳에 설치된 강철문은 모두 10개다. 조선이 이런 갱도식 핵실험장에서 진행한 제2차 핵실험은 제1차 핵분열탄실험보다 한 급 높은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다.     © 자주시보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이 이전의 핵실험들과 다른 유형의 핵실험이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제3차 핵실험이 핵탄의 다종화를 물리적으로 입증한 실험이었다고 밝힌 <로동신문> 2013년 5월 21일 보도기사에 나오는 두 개의 문구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였다는 문구와 “다종화된 우리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을 물리적으로 과시”하였다는 문구다.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표현은, 크기를 소형화하고, 무게를 경량화하였으면서도 핵폭발강도를 높인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사용한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장치를 소형화하고, 그 장치에 소량의 무기급 핵물질만 넣어 무게를 경량화하면서도 폭발력을 핵분열탄보다 5~6배 증폭시킨 것이었다.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우며, 폭발력을 증폭시킨 증폭핵분열탄이 있어야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고성능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5대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탄두는 전량 증폭핵분열탄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은 제2차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증폭핵분열탄실험이었던 것일까? 만일 조선이 제2차 핵실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제3차 핵실험에서도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하였다면, “이전과 달리”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원래 증폭핵분열탄은 핵분열을 증폭시킨 강화원자탄이므로, 핵분열탄의 일종이지 다른 종류의 핵무기는 아니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두 번째 문구는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다종화된 핵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 물리적으로 과시”되었다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제3차 핵실험은 증폭핵분열탄을 사용하면서도,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를 폭발시킨 실험이었던 것이다.


증폭핵분열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핵무기는 무엇일까?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새로운 핵무기는 열핵융합탄(thermonuclear fusion bomb)이다. 수소탄이라고 부르는 열핵융합탄은, 원자탄이라고 부르는 핵분열탄과는 종류가 다른 핵무기다. 핵분열탄은 고폭장약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연쇄핵분열을 일으키는 고전적 무기이고, 열핵융합탄은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고차원 무기다.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6>

 

▲ <사진 6> 1954년 3월 1일 미국은 남태평양 마샬제도의 비키니환초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위의 사진은 열핵융합탄이 폭발하는 순간 거대한 핵화염이 구름 위로 솟구치는 장면이다. 그 날 미국이 실험한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폭보다 약 100만배나 더 강한 15메가톤이었지만, 그 열핵융합탄은 실전에서 쓸 수 없는 실험용 열핵융합탄이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열핵융합탄을 세계 최초로 만든 나라는 소련이다     © 자주시보


핵융합은 핵분열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도 방사능은 방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다면, 당연히 방사능이 방출되지 않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이 진행한 제3차 핵실험에서 제논이나 크립톤 같은 방사성핵종이 방출되지 않았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을 진행하였을 때, 한국은 12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수입한 고성능 제논포집기(SAUNA)를 동원하였고, 미국은 방사능측정정찰기(WC-135)를 동원하여 여러 날 동안 샅샅이 훑었으나, 방사성핵종은 검출되지 않았다. 조선의 만탑산 핵실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중국의 동북3성 변경지역에는 26개의 감측소가 있는데,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 감측소들에서도 방사성핵종이 검출되지 않았다. 방사성핵종을 방출하지 않는 핵실험은 열핵융합탄실험밖에 없다.

 

 

6. 증폭과 열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선의 놀라운 핵기술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은 조선이 이전에 진행한 두 차례의 핵실험들에서 각각 발생된 폭발력에 비해 상당히 강해졌지만, 이전에 미국과 소련이 진행했던 열핵융합탄실험들에서 발생한 폭발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선진국의 전문기관들이 조선의 제3차 핵실험에서 발생된 폭발력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최소 6킬로톤에서 최대 16킬로톤에 이르는 상당한 편차를 드러냈다. 측정조건과 측정장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편차를 드러낸 것이다.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의 강도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측정위치를 핵실험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두어야 유리한데, 그런 점에서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의 측정결과가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제3차 핵실험 직후 그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중국과학기술대는 폭발진앙지를 정확하게 탐지한 뒤에 위성영상자료들을 분석하여 폭발심도까지 정밀하게 계산함으로써 미국지질조사국이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의 측정결과들보다 오차범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이 그렇게 측정한 조선의 제3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2.2킬로톤으로 나왔다. 이것은 상용폭약(TNT) 12,200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폭발력이 발생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진 7>

 

▲ <사진 7> 1953년 8월 12일 소련은 첫 열핵융합탄실험을 진행하였다. 기폭순간에 엄청난 핵뢰성이 진동하면서 핵화염이 하늘을 뒤덮고, 핵폭풍이 땅을 휩쓸고, 핵진동이 지축을 뒤흔들었으며, 400킬로톤급 폭발력을 발생시켰다. 증폭핵분열탄을 기폭제로 사용하여 다단계 핵융합을 일으키는 열핵융합탄보다 폭발력이 더 강한 무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핵융합탄은 그야말로 최상위 종결자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3년 2월 12일 조선에서 진행된 핵실험이 폭발력을 12.2킬로톤으로 크게 줄인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다. 조선은 약 25년 동안 핵개발분야에서 자력갱생의 간고한 투쟁을 밀고나간 끝에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하여 세계 최강의 핵강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조선은 미국이 상상하지 못하는 최첨단 핵기술과 초강력한 핵억제력을 보유한 것이다. 조선이 말하는 '최후결전'은 그런 초강력 핵억제력으로 미국의 핵공격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단 3일만에 끝나는 초단기속결전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조선에게 열핵융합탄이 없다면 3일전쟁은 불가능할 것이다.     © 자주시보


1953년 8월 12일에 있었던 소련의 첫 열핵융합탄실험에서 발생한 폭발력은 400킬로톤이었는데,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실험을 하였다면, 그 폭발력이 어째서 12.2킬로톤밖에 나오지 않은 것일까? 열핵융합탄이 전략핵분열탄보다 1,000배 이상 초강력한 폭발력을 발생시킨다는 것만 아는 사람들은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필요에 따라 전술핵분열탄 수준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연지리적 공간이 협소한 조선에서는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할 수 없다. 1메가톤은 1,000킬로톤이고, 1,000킬로톤은 상용폭약 1,000톤이므로,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은 상용폭약 100만톤의 폭발력을 가진다. 만일 조선이 1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을 실험하면, 혜산, 청진, 라선, 김책 등 북변도시들은 물론 국경을 넘어 중국의 훈춘, 옌지, 투먼 등 도시들에 엄청난 피해를 줄 초강력 인공지진파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은 핵실험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을 극도로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조선이 메가톤급 열핵융합탄의 폭발력을 전술핵분열탄 수준의 매우 낮은 폭발력으로 열화(劣化)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제3차 핵실험에서 열핵융합탄을 실험하였는데도 그 폭발력이 고작 12.2킬로톤밖에 되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소련도 폭발력을 3.5킬로톤으로 줄인 열핵융합탄실험을 1955년 9월 21일에 진행한 적이 있다. 메가톤급 폭발력을 킬로톤급 폭발력으로 열화시킨 열핵융합탄을 열화열핵융합탄(depleted thermonuclear fusion bomb)이라고 부른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2013년 2월 12일에 진행한 제3차 핵실험은 열화열핵융합탄실험이었음이 자명해진다. 열핵융합탄실험에서 성공하여 크게 고무된 조선에서는 자기의 핵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더욱 발전시키려는 국가적인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조치가 바로 원자력공업성을 신설한 것이다. 2013년 4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선의 원자력공업을 현대화, 과학화하며 최첨단 과학기술의 토대 우에 확고히 올려세워 핵물질의 생산을 늘이고 제품의 질을 높이며 자립적인 핵동력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원자력공업성을 내오기로 결정”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1985년 12월 조선과 소련은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듬해부터 녕변핵시설단지에서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가동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원자력공업부가 신설되었는데, 그로부터 27년 만에 기존 원자력공업부를 원자력공업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열핵융합탄을 만드는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약 25년이 걸린 셈이다.


2015년 9월 19일 <로동신문>에 실린 논평기사는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큼 질량적으로 장성강화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조선이 2013년 2월 12일 마침내 열핵융합탄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분열탄→증폭핵분열탄→열핵융합탄으로 상승발전하는 핵억제력강화과정의 최정점에 도달하였음을 암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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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대세론’ 꺾은 ‘샌더스 돌풍’의 뿌리

[美대선 분석] ‘힐러리 대세론’ 꺾은 ‘샌더스 돌풍’의 뿌리

친서민적 정책으로 검증된 인물 ‘버니’...풀뿌리 민초의 반란 시작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뉴시스/AP
 

"내가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라고 자처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북한(North Korean) 정부 체제를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는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민주당의 이른바 '힐러리 대세론'을 꺾으며 강력한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73세, 버몬트 주) 상원 의원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좌중에는 폭소가 일었지만, 샌더스는 폭소가 가라앉자 이내 스웨덴을 예로 들며 자신이 추진하는 것은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지 정부가 돈과 모든 상점을 장악하는 사회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샌더스가 자신을 위험한 극단적 좌파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는 보수 진영을 반박하기 위해 북한을 예로 든 것이다. 그는 이런 여론몰이는 "결국 유사한 색깔의 옷(similar colored pajamas)을 입은 말도 안 되는 비난과 조작일 뿐"이라며 일종의 '미국식 종북몰이'에 선제 대응했다. 그만큼 '샌더스 돌풍'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거세다.

지지율 3%로 출발해 '잠시의 찻잔 속 태풍'으로 예상됐던 샌더스의 돌풍은 이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세론을 완전히 꺾었다. 지난 13일 미 CBS 방송의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 샌더스는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뉴햄프셔주에서 52%대 30%로, 아이오와주에서 43%대 33%로 오차 범위를 벗어나 힐러리를 눌렀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를 현격한 차이로 앞서 가고 있다. "우리가 주에 40시간을 일하고도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급진적인 주장이냐"는 그의 말이 이제 미 국민의 가슴에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후원금 모금도 돌풍을 뒷받침하고 있다. 샌더스는 지난 4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1,500만 달러(177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대선 선두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모금한 4,500만 달러(591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샌더스에게 후원금을 낸 40여만 명의 지지자들 가운데 고액 후원자는 거의 없다. 99%가 250달러(29만원) 이하이며, 1인당 평균 34달러(4만원)를 후원했다. 이는 샌더스의 인기가 일회성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자부하면서 "모든 수입의 99%는 상위 1%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구호를 앞세우며 이를 제대로 분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치 혁명을 강조하는 그의 노선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4일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샌더스 후보는 첫 당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앞지르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14일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샌더스 후보는 첫 당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앞지르고 있다.ⓒ뉴시스/AP

"우리 '버니'가 드디어 대선에 나왔다"... 탄탄한 지역 기반과 검증된 인물

이른바 '샌더스 돌풍'은 일회성이 아니라 준비된 '풀뿌리 민초'들의 힘이고 반란의 시작에 불과하다.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샌더스는 이미 시카고대학에 다닐 때부터 흑백차별에 저항하는 시위를 주도하면서 지역 활동가로 활약했다. 버몬트주로 거주지를 옮긴 후에는 자유노조당에 들어가 주지사에 출마하는 등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지역 활동 기반을 닦았고 1981년 버몬트 주의 가장 큰 도시인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불과 10표 차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샌더스는 발로 뛰는 서민 친화적인 진보 정책을 펼치며 무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시장·하원의원·상원의원을 두루 역임하면서 공화·민주 양당 체제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무소속 신화'를 일궈냈다.

다소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버몬트 주에서 신화를 써가며 이제는 대선 후보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선거 때만 반짝 나타나는 후보가 아니라 발로 뛰면서 현장을 누비는 정치인으로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시장실로 걸려오는 민원 전화를 직접 받아 처리하는 등 '일중독 시장'으로 통했으며, 민원 현장에 자신이 직접 나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기는 폭발했다. 눈 내린 도로에서 제설 작업을 하는 차의 운전자가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원 현장 미팅을 워낙 자주 개최하다 보니 샌더스는 시장이나 상원의원이 아니라 그냥 '버니'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버몬트 주민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특히,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호숫가에 호화 호텔 허가를 금하는 대신 '시민의 호수'를 만들었으며 대형 식료품 체인점의 입점을 금하는 대신 소비자가 직접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일관되게 친서민적인 정책을 폈고 노동자와 중산층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이번 돌풍의 원동력이다. 버몬트주 주민들이 "발로 뛰는 우리 '버니'가 드디어 대선에 나왔다"고 환호하면서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탄탄한 지역적 기반과 함께 검증된 정치인인 샌더스가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판론자, "공허한 포퓰리즘의 인기 위주의 주장일 뿐"
샌더스, "미국이 직면한 현실을 개혁하자는 것"

샌더스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여러 공약을 발표하면서 가히 급진적이라고 불릴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근본적인 세제 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재분배, 인종차별 철폐와 국영 건강보험 도입, 대형 금융기관 해체, 선거비용의 국가 부담 등이 핵심이다. 자유 시장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샌더스의 주장은 어쩌면 급진 사회주의자의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공약과 주장은 현재 미국 국민들이 당면한 현실과 불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지지율 상승의 기반이 되고 있다. 미 국민들이 오바마도 하지 못한 친서민적인 정책을 이제 샌더스가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샌더스 돌풍에 대해 비판론자도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샌더스 돌풍은 현실을 모르는 포퓰리즘이며, 이것이 그의 한계라는 것이다. 특히, 대형 은행 해체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발로 뛰는 노력으로 미국의 한 주에서는 빛을 발해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공화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즉, 둘 다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극단적 지지층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정책 실현 가능성을 도외시한 인기 위주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 15일 시민들이 모인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고 있는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이 15일 시민들이 모인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AP

하지만 샌더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변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미국의 부자 상위 14명의 재산이 지난 2년간 1570억달러(약 182조원)나 늘었는데, 이는 하위 계층 40%가 2년간 벌어들인 소득보다 많다"면서 "미국이 직면한 현실을 바꾸자는 것은 결코 공허한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개혁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또 어떤 재원으로 그렇게 많은 복지 정책을 달성할 수 있느냐의 비판에도 샌더스의 답은 간단하다. 그는 "내년 11월 내가 대통령이 된 다음 날 당장 여러분들과 함께 월가로 달려가 그들에게 공정한 몫을 부담하도록 하겠다"며 부의 공정한 재분배로 얼마든지 자신의 공약은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힐러리 대세론을 꺾은 샌더스 돌풍의 위력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이라는 일차 목표에 안착할 수 있을지 혹은 더 나아가 미국 대통령 선출이라는 종착점으로 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샌더스 돌풍'이 바로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그대로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민초들의 반란은 부동을 구가하던 '힐러리 대세론'도 가차 없이 꺾고 말았다. '샌더스 돌풍'이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돌풍의 반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온 세계인의 이목이 미 대선판의 70대 노신사 '버니'에게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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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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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광화문 박근혜 노동개악 반대 시국농성장에서 열린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에서 이동수 화백이 그린 만평.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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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후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홍보하는 광고가 나오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아래 4절지 캔버스 12개가 놓였다. 이어 '거리의 만화가' 이동수 화백이 인도에 무릎을 대고 앉은 채로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어있던 캔버스 위로 파란색 크레파스가 여러 번 움직이자 한복 치마를 입고 발길질하는 성난 얼굴이 나타났다. 또다시 손이 움직이자 이번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젊은 남성이 나왔다. 그 아래에는 이미 추락 중인 노년 남성이 있다. 스케치를 마친 이 화백은 오른쪽 상단에 '노동유연화, 쉬운 해고'라고 썼다.

"박근혜표 노동재앙 반대", 문화예술인들 거리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가 열렸다. 이곳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연대' 등 36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반대하며 4일째 농성 중이다. 이동수 화백을 포함한 10여 명의 예술인들은 이날 거리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이후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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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광화문 박근혜 노동개악 반대 시국농성장에서 열린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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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록 위에 놓인 도화지에 작가들의 손이 슥슥 스치자 신문에서 볼 법한 작품들이 뚝딱뚝딱 완성됐다. "여기서 마감하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오랜 시간 공들인 만평도 거리에 전시됐다. 자연스럽게 근처를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는 구경꾼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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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광화문 박근혜 노동개악 반대 시국농성장에서 열린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에서 비정규직 만화가 최정규 작가가 그린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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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박근혜 노동개악 반대 시국농성장' 앞에서 열린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에서 비정규직 만화가 최정규 작가가 그린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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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비정규직 만화가라고 밝힌 최정규 작가는 맨땅에 엎드린 채 작품 두 개를 완성했다. 하나는 비정규직 최장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정부안을 풍자한 것이다. 그림 속에서 야윈 얼굴로 장거리 달리기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이라는 결승선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정부가 결승선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면서 쓰러지고 만다. 

또 하나는 '쉬운 해고', '사용자 임의의 취업 규칙 변경' 등 노동자의 권익을 약화시키는 내용의 합의안을 내놓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아래 노사정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작가는 대통령 소속이라고 쓴 뒤 '소속'에 빨간색 가위표를 긋고 '꼭두각시'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노동자 말살 노사정위원회'라고 썼다. 그 위에는 말살된 노동자들의 무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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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광화문 박근혜 노동개악 반대 시국농성장에서 열린 '박근혜 노동재앙 사생대회'에서 김동범 작가가 그린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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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사생대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엄마 손을 잡고 광화문 나들이를 나온 정채승(9)군은 노란색 크레파스를 잡자마자 가족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4인 가족이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은 모습이 완성됐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 '갈비'라고 옆에 썼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배경으로 산을 그려 넣었다. 쉬운 해고가 노동자의 일상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생대회와 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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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채승(9)군이 그린 '우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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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생대회는 예술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확대되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도 시민들에게 더 많이 알리겠다는 취지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를 담당한 박은태 화백은 "3일 전에 급하게 행사를 공지했는데도 열 명 넘게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면서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예술인들 사이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반대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한편 노사정위가 지난 1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하자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23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동 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등 법률가단체 6곳도 이번 합의안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오는 21일에는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시민사회원로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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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도발자들 짓밟을 것” 경고

 
 
청년동맹 대변인 담화 ‘국회 북인권 추진’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1 [04: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남측 여야 국회가 북인권법에 합의한 것을 두고 북측의 각급 단체가 연일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탈북자가 운영하는 서평방송은 지난 20일 조선중앙방송이 ‘우리 청년들의 삶의 요람을 해치려는 자들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 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송출했다.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최근 남조선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우리 공화국의 ‘인권문제’를 악랄하게 걸고들며 ‘북인권법’을 조작해보려고 책동하고 있다는 보도에 접한 우리 500만 청년전위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남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인권법 조작책동을 우리 공화국에 대한 또 하나의 극악한 정치적도발로, 이 세상 가장 존엄 높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우리 청년들을 모독하는 범죄적 망동으로 낙인하고 준열히 단죄 규탄한다.”고 말했다.

 

대변인 담화는 “오늘 세계적으로 최악의 인권문제를 안고 있는 곳은 남조선이며 특히 청년들의 초보적인 지향과 요구,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암흑사회는 다름 아닌 남조선”이라고 주장했다.

 

담화는 “우리 청년학생들이 등록금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있을 때 남조선에서는 청년대학생의 80%이상이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노동현장에서 고역의 피땀을 흘리고 생체실험에까지 몸을 내맡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청년들이 사회의 가장 활력 있는 부대로 떠받들리며 사회주의 대건설장을 비롯한 청춘의 활무대들에서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고 있을 때 남조선에서는 수백만의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으며 꽃나이 청춘들이 타락과 염세에 빠져 자살의 길을 택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위대한 청년중시의 정치아래 청년강국이라는 시대어가 태어나 세상을 격동시키는 공화국의 눈부신 현실과 청년이라는 이름이 불행과 고통, 죽음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남조선의 참혹한 실상은 인간의 참된 보금자리가 어디이고 사람 못살 인간생지옥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고 남한 사회 청년들의 실상을 고발했다.

 

이어 “청년실업문제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남조선위정자들이 제 할 바는 하지 않고 그 누구의 있지도 않는 인권문제를 걸고들며 모략소동에 발광하는 것은 실로 가소롭고도 파렴치한 망동이며, 추악한 대결적 정체만을 낱낱이 드러낼 뿐”이라고 각을 세웠다.

 

아울러 “우리 청년학생들의 삶의 보금자리이고 행복의 터전인 사회주의제도를 해치려고 피 눈이 되어 날뛰는 자들을 추호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백두산절세위인의 향도 따라 위대한 청년강국의 성스러운 년대기를 찬란히 수놓아가고  있는 우리 청년전위들의 불패의 진군대오는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감히 도전해 나선 도발자들을 무자비하게 짓 부셔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남측 여야 국회는 북인권법에 대해 일부 합의하고 미타결 조항은 지도부에 넘기고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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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발사 및 4차 핵실험 시사..북한인권법 비난


[주간북한동향] 9월 14일~20일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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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1  00: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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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동향>

□ 경제분야 :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14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완공을 앞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찾아 정상운영을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4일 보도했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로 김 제1위원장이 명명했다.

그는 1호발전소와 2호발전소 언제(댐), 물길굴, 발전기실, 조종실, 옥외변전소 등을 둘러보며 "혹한 속에서 자연과의 전쟁을 벌린 청년들의 애국심에 머리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이날 현지지도에는 최룡해 당 비서, 조용원 당 부부장이 동행했다.

□ 사회분야 : 나선시피해복구현장 방문(18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홍수피해를 입은 나선시피해복구현장을 찾아 당 창건 70돌까지 완료할 것을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8일 보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군대와 인민이 힘을 합쳐 이번에 진행하는 나선시피해복구전투에서도 세상에 없는 군민대단결의 위력을 다시금 과시하자"며 "당 창건 일흔돌 전으로 최상의 수준에서 무조건 끝냄으로써 10월의 하늘가에 사회주의 만세소리, 노동당 만세소리, 일심단결의 만세소리가 더 높이 울리게 하자"고 지시했다.

이날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리일환 당 부장, 조용원 당 부부장이 동행했으며, 현지에서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강표영 등 나선시피해복구전투지휘부 지휘관들과 김용진 내각부총리가 맞이했다.

<정치>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내부군 군인들과 근로자들에게 감사편지를 20일 보냈다.

□ 김정일 함경남도 현지지도 10돌 기념보고회가 14일 함흥대극장에서 열렸다. 태종수 함경남도당위원회 책임비서가 참가했다.

□ 한기범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 교원이 80회 생일상, 김성근 조선산업미술정보교류사 미술가가 70회 생일상을 김 제1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고 14일 매체가 전했다.

□ 당 창건 70돌에 즈음해 평양생물기술연구원 최승복 부원장과 림명성 소장에게 국가학위직 수여식이 15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공화국 창건 67돌 축하단으로 온 홍인흠 총련중앙감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18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만났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가을걷이전투를 힘있게 다그쳐 당이 제시한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자'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7일 '인민군대의 모범을 따라 단숨에의 기상으로 총돌격속도를 최대로 높이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9일 '반제계급의식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위력한 정신적 무기'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했다.

<남북관계>

□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16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국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비난했다.

□ 조선민주법률가협회가 18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국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비난했다.

□ 조선직업총동맹은 19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국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비난했다.

□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가 20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 국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비난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4일 '정세안정국면을 깨버리는 위험한 도발'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군 당국을 비난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조소를 자아내는 역사왜곡놀음'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상해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 참석을 비난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일 북한 인권법을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7일 '남조선당국의 처신을 온 민족이 지켜보고 있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지난 15일 인천상륙작전 재현을 비난했다.

□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8일 '인공위성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의 상징이다'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 미사일 발사를 거듭 암시했다.

<대외관계>

□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이 14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위성 발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 원자력연구원 원장이 15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이 17일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한다고 비난했다.

□ 외무성 대변인은 19일 담화를 발표, 일본 아베정권의 안보법제 통과를 비난했다.

□ 북한과 중국이 15일 평양에서 남양-도문 새 국경다리 건설과 관리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박명국 외무성 부상과 리지쥔 주북 중국대사가 서명했다.

□ 제11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참가할 독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이탈리아, 베트남 대표들이 19일 평양에 도착했다. 

□ 김기남 당 비서가 조니 혼 김일성김정일기금이사회 공동이사장을 1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만났다. 그는 문수물놀이장, 미림승마구락부, 메아리사격관 등을 참관했으며 16일 도착, 18일 돌아갔다.

□ 리수용 외무상이 탄 초 미얀마 외무성 부상을 15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만났다. 그리고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도 그를 1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만났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사동구역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 평양민속공원 등을 둘러봤으며 14일 도착, 18일 돌아갔다.

□ 공화국 창건 67돌을 맞아 베니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 카부스 사이드 오만 국왕,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자카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 압둘 하미드 방글라데시 대통령, 피에르 은쿠룬지자 부룬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맘눈 후세인 파키스탄 대통령이 김 제1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왔다고 14일 매체가 보도했다.

□ 공화국 창건 67돌을 맞아 람 바란 야다브 네팔 대통령,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남부수단 대통령,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적도기니 대통령,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알 자베르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싸니 카타르 국왕, 폴 비야 카메룬 대통령,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안드레아 벤투리니 산마리노 집정관, 하사날 볼키아 부르나이 국왕, 알파 콘데 기니 대통령 등이 김 제1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왔다고 15일 매체가 보도했다.

□ 시타람 예처리 인도공산당 총비서가 김 제1위원장에게 공화국 창건 67돌 축전을 7일 보내왔다고 15일 매체가 보도했다.

□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50회 생일 답신을 11일 보내왔다고 15일 매체가 보도했다.

□ 라울 카스트로 쿠바 위원장이 당 창건 67돌을 맞아 주쿠바 북한대사관에 꽃바구니를 9일 보내왔다고 14일 매체가 보도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에게 16일 독립 205돌 축전을 보냈다.

□ 박봉주 내각총리가 키스 로울리 트리니다드토바고 총리에게 14일 임명 축전을 보냈다.

□ 박봉주 내각총리가 샤리프 이스마일 이집트 내각총리에게 17일 임명 축전을 보냈다.

□ 리수용 외무상이 사우드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에게 14일 메카 사원 사고 위로전문을 보냈다.

□ 리수용 외무상이 사무엘 로페스 나카라과 외교장관에게 독립 194돌 축전을 15일 보냈다.

□ 리수용 외무상이 엠마누엘 이소제 가봉 외무상에게 재임명 축전을 18일 보냈다.

□ 영국에서 열린 세계간염대표자회의, 동티모르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 동남아시아지역총회에 참석한 강하국 보건상이 14일 돌아왔다.

□ 제14차 세계산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김경준 국토환경보호성상이 15일 돌아왔다.

□ 동아시아축구연맹 대표단이 제46차 집행위원회 참가를 위해 18일 평양에 도착했다.

□ 제2차 세계소방및 구조연단 회의 참가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리성철 인민보안부 참사가 18일 돌아왔다.

□ 네일 데이비드슨 영국 레이버당 출신 상원의원이 18일 평양에 도착했다.

□ 베트남, 라오스를 방문한 김동선 직총 부위원장이 20일 돌아왔다.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주 인도네시아 대사에 안광일을 19일 임명했다.

□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엠 카림 신임 주북 방글라데시 대사로부터 16일 신임장을 봉정받았다.

□ 리수용 외무상이 아제이 샤르마 주북 인도대사를 17일 만나 작별인사를 나눴다.

□ 리수용 외무상이 엠 카림 주북 방글라데시 대사를 16일 만났다.

□ 주북 아세안위원회가 공화국 창건 67돌 연회를 16일 열었다. 리수용 외무상, 리명산 대외경제성 부상, 서호원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이 초대됐으며, 주북 인도네시아 대사, 캄보디아 대사, 베트남 대사, 라오스 대사, 말레이시아 대사 등이 참석했다.

□ 공화국 창건 67돌을 맞아 김일성.김정일.김정일 도서가 러시아 막심고리키 연해주국립도서관에 7일 기증됐다고 15일 매체가 보도했다.

□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9일 포웰 전 국무장관의 북핵 발언을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사회문화>

□ 세계구급처치의 날을 맞아 '구급처치와 노인들'이라는 주제의 행사가 14일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열렸다. 

□ 2015년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14일 돌아왔다.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경제개발구 세금규정을 15일 채택했다.

□ 박봉주 내각총리가 15일 흥남지구 공업부문사업 현장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 룡성기계연합기업소, 흥남전극공장,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2.8비날론연합기업소 등을 찾았다.

□ 양강도 대홍단군에서 감자캐기가 15일 시작됐다.

□ 세계교예예술축전에 참가한 배우들이 15일 돌아왔다. 이들은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 평양 쑥섬 과학기술전당 실내 및 야외과학기술전시장 내부전시사업이 마무리에 들어갔다고 16일 매체가 전했다.

□ 청년중앙예술선전대공연 '태양을 따르는 청춘의 노래'가 청년공원야외극장에서 계속 진행 중이라고 16일 매체가 전했다.

□ 김일성종합대학 지구환경과학부 연구팀이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지역 환경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17일 매체가 전했다.

□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주최로 전국기계공업부문 과학기술발표회와 전국수의축산부문 과학기술발표회가 16일과 17일 함흥시와 사리원시에서 각각 열렸다.

□ 제9차 전국가설 및 착상발표회가 14일부터 17일까지 함흥시와 평성시에서 각각 열렸다.

□ 제42차 전국농기계전시회 및 창안자회의가 15일부처 17일까지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열렸다. 

□ 제12차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가 15일부터 17일까지 평양 능라도에서 열렸다. 평북 조명진 선수가 1등을 차지했다.

□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 25돌과 유엔아동기금 협조 30돌을 맞아 어린이 자랑모임이 17일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열렸다.

□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기술예술선동대가 18일 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최룡해 당 비서, 전용남 청년동맹 위원장 등이 관람했다.

□ 제8차 평양악기전시회가 15일부터 18일까지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진행됐다. 폐막식에는 김덕훈 내각부총리, 박춘남 문화상 등이 참가했다.

□ 동아시아축구연맹 제46차 집행위원회 회의가 19일 평양에서 열렸다.

□ 제52차 전국청소년체육학교 체육경기대회 수영경기에서 8개의 새로운 기록이 수립됐다고 19일 매체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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