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 비정상적으로 부동산에만 쏠려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서도 부동산 금융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금융의 세 가지 비정상
한국의 부동산 금융에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뚜렷하다.
첫째, 총신용의 거의 절반(49.7%)이 부동산 금융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이 빌린 돈(민간 신용) 총액 1932.5조 원이 부동산 부문에 들어가 있다. 이는 전체 민간 신용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한정된 금융자원이 부가가치 비중에 비해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매년 100조 원 넘게, 연평균 8.1%씩 폭발적으로 늘어온 결과다.
둘째,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 대출이다. 기업이 빌린 돈 중에서도 부동산 업종 및 건설업 대출 비중이 크게 늘어 2024년 말 기준 32.7%에 달한다.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되는 것 역시 비정상이다. 부동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투자된 자본 대비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가장 낮다. 돈이 이런 곳에 묶이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이 약화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한정된 자금을 부동산에 넣고서, 경쟁력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셋째,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은행이 돈을 풀면 생산적인 곳이 아니라 부동산으로만 몰린 것이다. 경기 둔화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이 돈이 생산성 높은 기술 개발이나 제조업 같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부동산 금융으로만 몰려간다.
이는 부동산 가격과 토지 가격을 밀어 올려,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콘크리트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는 없다. 부동산 금융은 결국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경제성장률 낮추고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시키는 부동산 금융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 세 가지 비정상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경제 성장이 느려진다. 부동산에 돈이 쏠릴수록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이 되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 신용은 이미 성장에 부담이 되는 임계치를 초과했다.
또한 금융안정성을 해쳐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진다. 집값이나 땅값이 떨어지면 빚을 못 갚는 가계와 기업이 늘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연쇄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특히 최근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이런 위험을 키우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후진적인 금융기관들이 쉬운 부동산 대출에만 안주하게 되어 금융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약해진다.
왜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되었나? 이런 비정상적인 부동산 쏠림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 사람들의 강한 부동산 선호와 집값 상승 기대, 부동산업 사업체 증가 및 외부 자금 의존도 증가 같은 수요 측면 요인이 있다. 은행들은 이자 장사하기 쉬운 부동산 담보 대출에 집중하고, 비은행권은 위험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늘려왔다.
정책 대출 확대 등 문제 덮기에만 급급한 금융당국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는 BIS 자본 규제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위험도를 낮게 잡아,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대출을 간접적으로 장려한 측면이 있다. 금융권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된 부동산 대출 규제가 부족했던 점에서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부동산 금융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음에도 한국은행과 금융위는 여전히 부동산 금융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펴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나 금융 당국의 대책은 이런 비정상을 근본적으로 고치기보다 당장 문제가 터지는 것만 막으려는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지분형 주택 금융이나 CR리츠는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임으로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커져 버린 부동산업과 건설업 비중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렇듯 부실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 돈을 부어 생명만 연장하는 '에버그리닝'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기를 늘리거나 정책 대출을 확대하는 편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건 마치 중환자에게 수술 대신 산소호흡기만 달아주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미루면 결국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어디에서도 아무런 경고음이 들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집값을 올리기 위해 영끌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정치권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자신이 낸 보고서를 부정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위는 온갖 편법으로 부동산 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으니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라
우리 경제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금융 구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해결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은행과 BIS 보고서 같은 곳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알려진 대책들을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이다.
먼저 부동산에 묶인 돈의 총량을 줄이고,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바꿔야 한다. 정부 재정도 국토부 예산이 혁신 부서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비정상적인 예산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소득을 기반으로 한 대출 능력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예외 없이,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도 소득 기반 규제가 차입자 회복력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 강조한다. 만기 연장 같은 규제 회피 수단들을 막고, 정책 대출 규모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거시 건전성 정책을 통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높여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 있다. DSR기준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선별적으로 적용하거나, 동시에 생산적인 기업 대출에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부동산으로 더 이상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비정상을 강화할 뿐이다.
아프다고 수술 미루고 30년을 잃어버린 일본, 그 뒤를 좇는 한국
일본 역시 버블경제 대처에 늦는 바람에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비정상적인 금융을 해결하는 대책들은 단기적으로 집값 하락이나 관련 산업의 어려움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실행하기 쉽지 않다. 수술의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미루는 것과 같다. 집값 하락을 막으려 문제 해결을 미루고, 심지어 청년 돕는다고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정책은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을 고착화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할 뿐이다. 일본은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는데, 그것을 생생히 목격한 한국 경제가 그 뒤를 좇고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용기가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눈앞에 와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사건 5차 오전 공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26일, 윤석열의 내란 혐의 5차 공판에서 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휘명령이 실제 실행 단계에 있었음이 법정에서 다시 확인됐다. 같은 날, 경찰은 윤석열과 측근들의 비화폰 통화 기록이 원격 삭제된 정황을 포착하고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는 5월 26일, 윤석열의 내란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5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현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1공수여단장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여단장은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에 각각 한 개 대대를 보내 인원을 밖으로 내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출동한 병력에 실탄을 장착하고 케이블 타이와 포박 장비, 테이저건을 챙기라는 구체적인 무장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여단장이 부하 지휘관들과 나눈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 파일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녹취 내용은 이 여단장과 김형기 특전사 대대장(통화 대상)이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윤석열 측은 해당 녹취가 위법수집 증거일 가능성을 들어 법정 내 공개 재생에 반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생을 허용했다.
이번 증언과 증거 제출은 계엄 당시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이 실제로 실행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비상계엄이 단순한 ‘경고’라는 주장을 일축하는 것이다.
한편,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윤석열의 비화폰 통화 기록이 지난해 12월 6일, 원격 삭제된 정황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삭제된 비화폰에는 윤석열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통화 기록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통화 기록을 경호처에서 삭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경찰이 그 동안 확보한 비화폰 서버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 재판부에 직권 발부 방식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요청한 상태다. 재판부는 영장 발부 여부를 증인 신문 종료 후 결정할 예정이다.
경찰은 또한 대통령실 대접견실과 집무실 복도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해 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의 기존 진술과 영상 내용이 불일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한덕수, 이상민은 오전 10시부터, 최상목 전 부총리는 낮 12시부터 각각 경찰에 출석했다.
모금 두 시간 만에 목표액 100%, 일주일 만에 700% 돌파…"모두가 인간답게 살자는 게 5·18 정신"
박상혁 기자 | 기사입력 2025.05.27. 08:35:37
5년 만에 다시 열리는 광주퀴어문화축제에 시민들의 열렬한 응원이 쏟아졌다. 조직 운영과 축제 진행을 위해 시작한 모금 운동에 목표액의 700% 넘는 후원금이 모인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만날 새로운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도 더욱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게 곧 '5·18 정신'을 잇는 것이라는 데 뜻을 모은 결과다.
26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보면, 지난 20일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조직 운영 및 축제 진행을 위해 시작한 모금 운동에 900여명의 참여로 3800만여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모금 2시간 만에 목표액 500만원을, 일주일 만에 목표액의 7배 넘는 금액을 모은 것이다.
이번 펀딩에 모인 후원금은 조직위가 전혀 예상치 못한 액수다. 앞서 조직위는 지난 2018년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할 당시 같은 방식의 모금 운동으로 후원금 429만원을 모았다. 당시 경험에 비췄을 때 이번 축제 후원금은 300만원정도를 모을 수 있겠다는 게 내부 판단이었다. 이에 축제 개최 직전 펀딩을 한 번 더 여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예상과 정반대로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져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재창립을 기념하는 '무지개 화염병'ⓒ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모금 성공에 따라 광주에서는 2020년 이후 5년 만에 퀴어문화축제가 다시 열리게 됐다. 그간 열린 광주퀴어문화축제는 다른 지역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 풍경이 펼쳐져 소소한 화제가 돼왔다. 2018년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에서는 축제 참여자와 성소수자 혐오집회 참여자 모두 오후 5시 18분 금남로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2019년에는 지역언론 <전남일보>가 성소수자 인권존중의 의미를 담은 6색 무지개 제호를 사용한 신문을 배포했다.
2년간 성공적으로 개최된 광주퀴어문화축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국에 퍼진 2020년 영화제 형식의 축제를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다. 이에 광주퀴어문화축제 부활을 꿈꾸는 시민과 활동가들이 지난해 간담회에서 결집한 이래로, 수 차례 성소수자 관련 행사와 토론 끝에 올해 4월 조직위를 재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축제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수 년 만에 다시 열리는 광주퀴어퍼레이드에 응원과 지지가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이 만난 후원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함께 맞을 새로운 세상에서 성소수자도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게 곧 '5·18 정신'을 잇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탄핵 시위를 기점으로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서울시민 스테끼(30, 활동명) 씨는 "지난 18일 광주를 답사하며 오월의 광주 정신을 후대가 이어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의함에 맞서는 힘에는 여러 사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펀딩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광주 거주자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색한죄(27, 활동명) 씨는 차기 대통령에게 성소수자 정책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진행하던 중 자신을 모른체하는 성소수자 지인들을 보고 퀴어문화축제에 후원을 결심했다. 그는 "그들은 서명에 참여하는 순간 아웃팅(동의 없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일)을 당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라며 "광주가 진보적 도시라고는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후원에 참여했다"고 했다.
▲2019년 광주퀴어문화축제 당시 지역언론 <전남일보>가 성소수자 인권존중의 의미를 담은 6색 무지개 제호를 사용한 신문을 배포했다.ⓒ광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조직위도 시민들과 같은 마음으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조직위가 준비한 후원 답례품 중 하나는 '무지개 화염병'이다. 조직위는 "화염병은 억압과 불의에 맞서 싸운 1980년 광주시민의 상징이자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불꽃"이라며 "이 화염병의 상징성을 이어받아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에 맞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았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광주의 성소수자 인권단체로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바리 광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은 26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어리둥절하면서도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도 된다. 늦지 않게 꼭 찾아뵙겠다"며 "호랑이 등에 탄 격이니 축제를 포함해 광주퀴어인권단체로서의 움직임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겠다"고 다짐했다.
‘21대 대통령선거’ 여드레 앞인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SNS를 통해 나름의 대외정책 구상을 밝혔다. 3차 TV토론(정치 분야)을 하루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우선 북한이 ‘동족’ 개념을 폐기하면서 ‘적대적 두 개 국가’로 규정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긴장완화와 비핵평화로 공존하는 한반도를 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중단된 지 오래”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동맹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국제사회와도 중층적인 협력의 틀을 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당면해서는 “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을 위해서는 코리아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며 “군사 핫라인 등 남북 소통채널 복원을 추진하여, 긴장 유발 행위를 상호 중단하고,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국민이 공감하는 호혜적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남북대화를 어떻게 시작할지 교류협력의 내용은 무엇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산가족, 납북자 등에 대한 인도 지원과 제도 개선, △북한주민 인권 실질 개선도 다짐했다.
특히 “대북정책이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만 생각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대화로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대외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슬로건은 “대전환의 시대, 진취적 실용외교와 첨단국방으로 외교안보 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실용외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다”며 “불법계엄으로 훼손된 한미동맹의 신뢰기반을 복원하고,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 한미일 협력도 견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일본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며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과거사·영토 문제는 원칙적으로, 사회·문화·경제 영역은 전향적·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일관되고 견고한 한일관계의 토대를 다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중요 무역상대국이자 한반도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는 나라”라며 “지난 정부 최악의 상태에 이른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미러 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며 “한러 관계를 국익 우선의 관점에서 다루고, 우크라이나 재건에 기여하며 한반도 안보와 우리 기업을 위한 실용 외교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경제·통상과 안보이슈의 연계도 우리 앞의 과제”이나 “조선, 방산, 첨단산업 등 미국과 협력할 분야는 넓다”면서 “상호 이익을 균형있게 조정하며 관세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안보 현안 총괄 컨트롤타워 구축도 다짐했다.
또한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중요성과 역할이 날로 증가하는 글로벌사우스 국가, 아세안, 브릭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국가 등과 외교를 다변화해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10월말로 예정된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겠다”며 “12.3 계엄을 극복하고 민주 헌정질서를 회복한 K-민주주의를 널리 알려 국제적 위상과 추락한 외교력의 복원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국방분야에서는 “국민이 신뢰하는 첨단 강군을 육성하겠다”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우선 “12.3 불법계엄으로 훼손된 대한민국 국군의 위상을 복원하고 국민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군이 위헌·위법한 정치적 폭거에 동원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문민 통제를 강화하고, 군인사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방위력 증강은 안보의 핵심”이라며 “공고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기반으로 한미 확장억제 체계와 3축 방어체계를 고도화하고,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비태세를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26일 수원 아주대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이재명 후보. [사진 갈무리-jtbc 유튜브]
이날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남북정상회담’ 관련 질문을 받은 이재명 후보는 “그건 계획하고 말고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나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금 상태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나 “당연히 준비하고 가능하게 만들어야 되겠다”면서 “더구나 지금은 트럼프(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을 계속 공언하고 있는 상태라 그게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도 관심 갖고 지원·협력하고 그 안에 반드시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남북관계는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과 기본적으로 대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은 중요한 주축 중의 하나”이나 “그 관계 역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맞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핵·미사일 해법에 대해서는 “핵무장’을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북한의 핵을 일단 동결하고 비핵화로 가야 하는데, 그 비핵화에는 북미대화 등 미국의 역할이 크겠지만 또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동맹도 굳건하게 발전시키되 한미일 안보협력도 필요한 범위 내에서 잘 해나가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중국, 러시아와 불필요하게 적대화할 필요는 없고 중국·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일 사이에 과거사·영토 문제와 기타 협력을 분리해서 추진하는 ‘투트랙 접근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가능하게 만드는 게 정치이기도 하고 외교역량이기도 하다”면서 “일본도 필요하고 우리도 필요한 게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지난 26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김문수 후보와 김용태 비대위원장. 사진=국민의힘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단일화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국민의힘을 향해 “명분이 없다”는 비판 사설을 냈다. 한겨레는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하면서 단일화만 추구하는 것이 “게으르고 한심한 일”이라며 “설령 (단일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아무런 감동도 실익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개혁신당을 향해 “단일화의 전제 조건을 제시해달라”며 “단일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사전투표(29∼30일)를 사흘 앞두고 공개적으로 조건 제시까지 요청하며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지난 26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단일화 가능성은 0%”라면서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준석 후보가 ‘내란 비호자’ 손 잡는 건 자기부정일 뿐”
경향신문은 27일자 <단일화 명분·효과 다 물음표, 보수 혁신은 거꾸로 가는 길> 사설에서 “대선 막판에 갑론을박하는 보수 후보 단일화는 명분도 효과도 찾기 어렵다”며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파면 후 치르는 대선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쳐온 이준석 후보가 ‘내란 비호자’ 김문수 후보 손을 잡는 것은 자기부정일 뿐”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대선 후보 단일화는 비전과 명분이 분명해도 이루기 쉽지 않은 고도의 전략이다. 그러나 현재 보수의 목표는 ‘이재명 후보의 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뿐, 윤석열 내란과 국정 3년과 부정선거를 보는 눈이 전혀 다른 두 후보의 ‘묻지마 단일화’에 가깝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출당도 못한 국민의힘은 친한동훈계가 요구한 극우 세력과의 절연도 못하고 있다. 명분·방법·효과 다 물음표 쳐진 김문수·이준석의 단일화 논의는 ‘보수 혁신’과도 거꾸로 가고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고 했다.
▲ 27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도 27일자 사설 <‘단일화’에 목맨 국민의힘, 누구를 위한 단일화인가>에서 “직전까지 집권당이자 원내 2당의 선거 전략이 오직 ‘단일화’뿐이라는 것은 그만큼 후보와 정당의 자체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탄핵심판 내내 내란 옹호에 나선 당이 후보를 낸 것도 부적절한데, 김문수 후보는 여전히 극우 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 등에 뚜렷이 선을 긋지 않고 있다.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한 정당과 후보가 국민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저 산술적 단일화에 목매고 있는 것은 게으르고 한심한 일”이라며 “‘가능성’에만 기댄 국민의힘의 일방적 단일화 주장은 국민에게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두 후보의 단일화 논쟁으로 정작 중요한 정책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7일자 사설 <대선마다 반복되는 단일화 소동… 결선투표 검토할 때 됐다>에서 “우리나라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이 채택하고 있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들 국가에선 대선 후보들이 1차 투표에서 완주한 뒤 과반 득표가 없을 경우 다득표자 2명이 결선투표를 치른다. 이때 3, 4위 후보는 자연스럽게 정책 공조 등이 가능한 결선 진출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거연대를 맺는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지금 같은 단일화 신경전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 철회한 민주당에 경향신문 “바람직”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6일 ‘대법관 100명 확대’, ‘비법조인 대법관 임용’ 등의 법안을 철회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3면에 소식을 다뤘다. 조선일보는 1면 <한발 물러선 민주… ‘대법관 100명·비법조인 임용’ 철회> 기사에서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발 뺀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27일자 <李 무죄 만들기 법안들도 철회하길> 사설에서 “지금은 아니어도 향후 추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며 “민주당은 당론이 아니라고 했지만 믿기 어렵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법안들을 이재명 후보를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에 대한 ‘보복성 법안’이라 평가하며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정치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이 후보가 유죄 취지 판결을 받은 선거법 조항도 고쳐 이 후보의 유죄 혐의를 원천적으로 없애려 하고 있다”며 “이 후보는 헌정 회복을 내세우고 있다. 헌정 수호 의지를 증명하고 싶다면 대법관 증원법뿐 아니라 이 후보 무죄 만들기 법안까지 모두 철회하길 바란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민주당이 법원조직법 개정안들을 철회한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사법개혁은 분풀이식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법개혁은 일체의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백년대계를 세운다는 자세로 치밀하게 논의해야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시도한 어설픈 검찰개혁이 어떤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는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경향신문은 사법부를 향해서도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통렬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선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이재명 후보의 파기환송 결정을 놓고 ‘사법 신뢰 실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선이 끝난 뒤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런 우려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라면서도 “사법 독립의 전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과 절차적 공정이다. 이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 사법 독립은 사법독재와 다를 바 없다. 향후 법관대표회의에선 사법부가 국민적 신뢰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통렬하게 성찰한 토대에서 재판의 독립 문제를 논의하기 바란다”고 했다.
“단일화 전제 양자 대결 구도에서도 이재명 우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각 의뢰한 대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두 조사에서 모두 이재명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김문수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화를 전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가 대선을 앞두고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지난 24, 25일 전국 1008명을 전화면접 100% 방식으로 조사. 무선 RDD를 표본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0.8%.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내일이 투표일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재명 후보 45.9%, 김 후보 34.4%, 이준석 후보 11.3%라고 응답했다.
동아일보는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단일화해 양자 대결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에도 이재명 후보는 두 후보를 각각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재명 후보는 김 후보와 양자 대결 시 50.0%로 김 후보(41.6%)를 8.4%포인트 앞섰다. 이준석 후보와 대결 시엔 이재명 49.3%, 이준석 34.9%로 14.4%포인트 차였다”라고 했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 응답률 24.4%,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로는 이재명 후보가 다자 대결에서 49%,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3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11%,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1%로 나왔다.
중앙일보는 “대선 막판 최대 변수로 꼽히는 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는 걸 전제로 가상 양자 대결을 할 경우 이재명 후보(52%)와 김문수 후보(42%)는 10%포인트 차였고, 이재명 후보(51%)와 이준석 후보(40%)는 11%포인트 차였다”며 “보수 후보로 누가 나와도 이재명 후보가 과반을 얻는 동시에 격차가 두 자릿수로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새 시대의 맏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적절한 판단이었지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구시대의 막내가 되지도 못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구시대를 더욱 퇴영적인 방식으로 연장했고, 그 극단적인 사건이 바로 지난 12.3 비상계엄, 즉 내란 사태였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5공, 3공, 심지어 6.25 전후를 방불케 하는 통치 방식, 담론, 세력을 부활시켰다. 물론 이명박 이후 지난 15여년 동안 지구적 신자유주의 위기, 심각한 불평등으로 신우익, 신파시즘 세력이 창궐한 시기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중간에 촛불의 힘을 업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구시대를 끝내지도, 새 시대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윤석열 즉각 탄핵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이호 작가 사진
압도적 승리보다 국힘당의 압도적 패배가 바람직한 이유
사실 박근혜 탄핵 이후 안보와 성장을 무기로 한 국민의힘과 한국의 주류 보수세력의 지도력과 국가운영 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후 두 번의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은 계속 패배해서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영남 ‘텃밭’과 서울 강남 부자들의 변함없는 계급적 이해, 검찰, 사법, 행정 엘리트, 주류언론, 거대 로펌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버텨왔다. 결국 작년 윤석열의 ‘자살골’로 국민의힘의 지도력은 파국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시기처럼, 또다시 ‘광장의 시간’이 끝나고 ‘선거 정치’의 시간이 다가왔다. 광장의 시민은 이제 개인 유권자로 파편화되었다. 탄핵의 에너지는 주로 광장의 시민에게서 나왔지만, 그것을 법 제도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은 정치세력인 민주당에게 있다. 민주당은 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서 내란 세력, 즉 냉전/ 반민주/ 특권/ 부패/ 지역주의로 무장한 구세력을 퇴출하자고 외친다. 그런데 촛불/응원봉 세력은 물론 내란세력 처벌을 지지한 다수의 대중은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가 구시대를 종식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새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 상당수는 박근혜 탄핵을 지지했으나 이후 민주당 정부에 등을 돌린 경험이 있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압승하여 내란세력을 확실히 응징하고, 정부, 사법부, 검찰 등 권력기관 제도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행이지만, 또다시 개헌 작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현재의 양당 독점 구도에 안주한다면 이번 내란 사태에 등장한 극우세력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압승보다는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투표의 60%를 얻으면 압승이라 할 수 있고, 강한 개혁의 동력이 생기겠지만, 그런 일은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이 55% 정도를 얻어도 압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40%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재명이 55%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준석, 권영국 후보가 합해서 15%를 얻고 국민의힘의 김문수 30%에 못미치는 지지를 얻는다면,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는 민주당의 독주를 가져올 위험이 있으나,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는 민주당이 청년, 노동자 등과 힘을 합쳐 내란세력을 퇴출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2003.3.9.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발호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연합정치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재의 대통령 선출 제도/한국식 대통령제/양당 독점체제 하에서 집권세력은 소수 정당의 정책을 반영하거나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공동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연합정치를 실천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설사 집권세력의 의지가 있어도 권력 독점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즉 현 제도에서는 대통령실이 집권 여당을 압도하기 때문에 여당은 존재감이 없어지고, 정책적 의제를 둘러싼 생산적 논쟁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제도는 정치를 정권 지지/반대로 양분화 한다. 그래서 우리가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에서 보았듯이 집권 세력의 국가 운영의 실책은 집권 후반기에 식물정권으로 이어지고, 동시에 정권 유지/교체를 건 사활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부른다.
즉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이 압승한다고 하더라도,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자 몸사리기, 민감한 사회정책 손안대기로 일관할 수도 있다. 특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책적 오류는 죽어가는 국민의힘과 내란세력의 부활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야권 일반과 촛불/응원봉 세력이 어떻게 권력을 나누어 가질 것인가가 집권 후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몸으로 막은 광장세력과 시민들은 윤석열 파면에 이은 조기 대선이 민주당과 함께 저항적 시민의 공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선 이후 집권의 성과를 민주당이 독식할 경우, 점점 비판 세력으로 돌변할 것이다.
즉 집권 민주당 대통령이 연합정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경우, 내란 세력을 완전히 고립시키지 못할 위험이 있고, 지지율 저하를 맞았을 때 맞서 도와줄 우군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조국혁신당 등 소수당과의 연합정치는 물론이고, 제도권에 대표부를 갖지 못하지만 탄핵을 주도한 광장 세력과 공동정부에 준하는 정부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료 구성에 권영국 후보를 끌어들이거나 여러 정부 위원회의 대통령 몫을 개방해서 국회 및 시민사회의 몫을 늘여야 한다. 연합정치가 필요한 이유는, 지난 5개월 동안 우리가 계속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보았듯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치개입, 사법부, 관료, 검찰, 언론의 지속적인 개혁 방해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5개 야당이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열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3.18. 연합뉴스
연합정치를 궁극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개헌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선거법 개정을 통해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의원내각제로 가야 한다. 이번 이재명의 개헌안에서 이런 내용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으나, 집권 후 국민에게 다시 약속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각료 구성, 정부의 각 위원회의 위원 임명에서 대통령 추천 몫은 가급적 줄이고, 국회 추천, 그리고 시민사회 추천 몫을 확대해야 한다. 과거 민주당은 입법과정에서 이런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정권을 잃은 다음에는 국가교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인권위원회, 과거사위원회 등 중요한 위원회가 파행을 겪거나 설립 목적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시민들을 정치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연성정치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수도권 과집중, 제조업 경쟁력 강화, 경쟁교육 등의 과제는 대통령과 국회 등 제도권 권력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연합정치가 다양한 정치 사회세력의 연대와 타협의 기반을 구축하여 내란/탄핵 지지 세력을 고립시키고, 정치를 정상화하는 작업이라면, 연성정치는 정치 밖 정치, 즉 시민정치, 시민참여를 제도화하고 활성화하는 작업이다. 즉 광장 시위와 선거 참여 외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표출할 수 없는 시민들을 정치와 정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여, 국가의 실질적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국민주권정부’를 내건 것도 이것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 개정 작업을 제도권 여야의 합의로만 진행하면 그 헌법은 기성 양당의 이해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내용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시민회의’ 도입 등을 통해 각계 각층 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숙의의 과정을 거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의 개정 역시 시민의 참여가 배제된 채로 진행되면 지난번처럼 위성정당의 설립으로 귀결되고 비례성 확대의 목표는 생색내기에 그치게 될 것이다.
1987년 6월 1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제단 신부들이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홈페이지
87년 민주화 이후 여전히 모든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지역주의를 끝내기 위해서는 영남에 민주당 기반을 강화하거나, 호남에 국민의힘이 세력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영호남를 포함한 모든 지방과 지역사회의 조례 제정이나 정책 수립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거나 자치를 실질화하는 일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 제도정치의 문턱은 너무 높고, 시민의 일상적 요구는 시장의 힘에 눌려서 제대로 제기되지 못한다. 5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농민, 외국인 노동자들은 교섭권이 없다. 지방의 모든 문제는 주민 일반과 청년들에게 절실한 문제이나, 수도권으로 이전을 결정하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막을 수 없다. 필수의료 등 국민건강 문제에서 잠재적 환자인 국민들은 전공의들의 파업에 맞설 수 있는 발언권이 없고, 주택문제는 모든 세입자, 청년들의 절실한 관심이나 실제로는 건설업자나 수도권 건물주나 아파트 소유자들의 이해에 따라 결정된다. 이들 조직되지 않고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발언권과 교섭권을 부여하는 것이 곧 연성정치가 될 것이다.
결국 연성정치는 연합정치의 아래로부터의 기반이 되고, ‘선거’와 ‘광장’이라는 극단적 선택지의 빈 칸을 메울 수 있는 미래지향적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선거와 광장의 극단적인 이분법과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연성정치가 활성화되어야 아래로부터의 극우세력의 창궐도 막을 수 있고, 골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이 미래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오른쪽’ 자처한 만큼 ‘왼쪽’ 위한 제도 개혁 앞장 서야
선거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와 비토가 교차하는 열광의 도가니다. 그런데 이 열광은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냉정한 일상, 생존 현장으로 되돌아간다. 대부분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그 일상은 감내하기 어려운 벅찬 삶의 현실이다. 보통 시민들에게 비상계엄, 탄핵, 대선은 자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엘리트들의 전쟁일지 모른다. 며칠 전에도 SPC 계열사 제빵회사에서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 2022년 이후 세 번째다. 회사는 첫 사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했다고 했으나, 이 비극적 결과는 변화의 부재를 웅변한다.
지난해 노동자 사망 및 잇단 부상 사고가 발생한 SPC의 한 계열사인 샤니 제빵공장에서 8일 또다시 근로자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낮 12시 41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소재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 A씨가 근무 중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사진은 성남시 샤니 제빵공장 모습. 2023.8.8. 연합뉴스
민주당이 집권 한다면 미완의 과거청산, 내란 세력을 정치권에서 몰아내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그 세력이 계속 기득권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 법, 언론, 판결, 판검사 관료 엘리트 양성 체제, 교육을 개혁하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여기서 구시대의 마무리와 새 시대의 시작은 사실상 분리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 이후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 저출생, 수도권 집중 문제의 해결, 그리고 다가온 산업전환,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시대에 대처하는 일은 지금 바로 시작해도 너무 늦었다.
무엇보다도 윤석열이 영혼없이 외쳐 댄, 낡은 ‘자유’의 담론을 걷어내야 한다. 민주당이 이제 스스로 ‘오른쪽’이라고 했으니, ‘왼쪽’ 세력의 등장과 활성화를 위한 법, 제도 개혁에 앞장서야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 이재명 후보는 기성층과 기득권층을 의식해서 여전히 부국강병, 성장주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집권하면 산업전환, 생태, 돌봄, 주거 안정, 경쟁교육 청산 등 사회적 의제와 씨름해야 한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왼쪽)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23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한국방송(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 선거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보수 후보 단일화’를 두고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공방이 뜨겁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거듭 ‘독자 완주’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단일화를 위한 ‘회유’와 ‘압박’의 강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준석 후보를 향해 ‘내란 세력과 단일화하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을 요구하는 등 단일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단일화를 둘러싼 3당의 신경전은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지는 사전투표일(29~30일) 직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후보는 25일 충남 공주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이 후보와) 여러 각도에서 만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원래 한뿌리였기 때문에 계속 노력을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생각하는 단일화 시한은 28일이다. 사전투표가 시작되기 전까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면 사전투표용지의 후보자 이름에 ‘사퇴’라고 표기돼 투표자의 혼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문수·이준석 후보 지지율을 합칠 경우 이재명 후보를 넘어선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을 더욱 단일화에 목매게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20~22일 전국 만 18살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8%포인트, 응답률 19.5%)를 보면, 이재명 후보 45%, 김문수 후보 36%, 이준석 후보 10%였다.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지지율 합(46%)이 이재명 후보를 앞지른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힘 바람대로 두 후보가 단일화하더라도 지지층이 온전히 합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 단일화’를 가정한 양자대결 구도는 누구로 단일화하든 이재명 후보 지지율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리서치가 한국방송(KBS) 의뢰로 전국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8%포인트, 응답률 19.5%)를 해보니, 3자 구도에서 이재명 후보 49%, 김문수 후보 34%, 이준석 후보 8%였던 지지율 수치가 가상 양자대결에선 이재명 후보 48%, 김문수 후보 39%로 나왔다. ‘이재명 대 이준석’ 구도에선 49% 대 29%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비슷한 결과는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가 지난 20~21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1007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면접 조사(그래픽)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단일화의 ‘시너지’는커녕 ‘산술적 합’만큼의 지지율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두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층의 연령과 성향, 윤석열 정권에 대한 평가가 달라서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으로 후보가 결정되면 다른 한 사람을 지지했던 유권자는 투표 동기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이준석 후보가 단일화를 한사코 거부하는 명분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 서순라길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난 이 후보는 김문수 후보를 겨냥해 “(나한테) 어부지리로 얹혀가는 주제에 단일화 프레임으로 정치를 혼탁하게 만들지 말고 이 판에서 빠지라”라고 격한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민주당의 처지는 다르다. 단일화가 된다면 선거의 구도가 흔들리면서 여론지형에 어떤 변화가 올지 예단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재명 후보 쪽은 일단 단일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완된 지지층을 재결집하고, 단일화가 될 경우 정치적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는 차원이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보면 단일화하는 게 쌍방에 모두 도움이 돼서 단일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결국 ‘내란 단일화’에 나설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1대 대선 재외국민 투표가 5월 22일부터 전 세계 118개국 223개 재외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한 유권자가 애틀랜타총영사관 관할 올랜도 재외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 김명곤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재외국민투표가 5월 20일부터 전 세계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이번 재외선거에는 총 25만 8254명의 재외국민들이 등록을 마쳤다. 이는 제20대 대선에 비해 약 14.2% 증가한 수치다. 특히 미국 내 유권자만 5만 3377명에 달하며, 플로리다를 비롯한 미주 주요 지역에서는 뜨거운 투표 열기가 감지된다. 재외투표는 25일까지다(공관마다 투표기간이 다를 수 있음).
지난 20대 대선에서 재외국민 유권자 투표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9.77%(8만 8397표)를 얻어 36.19%(5만 3524표)를 기록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23.58%p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재외선거는 단순한 유권자 참여를 넘어, '12.3 내란' 사태 이후 재외국민들이 대한민국 정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미래를 선택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계기와 같다. 현장에서 만난 재외 유권자들은 대부분 "이번만큼은 작심하고 왔다"면서 강한 정치적 의지를 표출했다.
"작심하고 왔다... 무너진 나라 시스템 복원해야"
미국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관할하는 동남부 4개 투표소(조지아 애틀랜타, 플로리다 올랜도, 앨라배마 몽고메리, 노스캐롤라이나 랄리) 가운데 플로리다 올랜도 투표소의 대선 투표 열기는 연일 화씨 100도(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만큼이나 뜨거웠다. 이곳에서는 1시간 거리의 동부 해안 항공학교 유학생들부터 왕복 6~8시간 거리에 사는 동포들까지 줄지어 투표소를 찾았다.
첫 투표자는 게인스빌 플로리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유학생 양아무개씨(29)였다. 그는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려 왔지만, 처음으로 해외에서 직접 투표자로 참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투표소에서 1시간 거리의 항공학교 교관 김아무개씨(31)는 "지난해 비상계엄으로 인해 정국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는 게 가장 큰 투표 기준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휴가까지 내며 투표소를 찾았다. 이경훈씨(26)는 "정치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를 바로 세울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했고, 이아무개씨(22)는 "교육과 일자리를 중시하는 후보를 뽑았다. 12.3계엄이 내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센트럴플로리다 대학에서 도시계획학을 가르치는 노수웅 교수는 "상식과 헌법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했다"라며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시스템 복원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마이애미 지역 항공학교 학생 김아무개씨(30)는 "원래 보수적이라서 보수적인 후보를 선택했고, 12.3 계엄은 후보 선택의 우선적 고려사항이 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플로리다 동부해안의 항공학교에서 공부중인 이아무개씨(25)도 "12.3 이후 유학생들이 사석에서 종종 한국의 정치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들 가운데 특정 학군 출신들은 12.3 계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탬파에서 28년 동안 거주했다는 이아무개씨(58)는 "기본적으로 거대 야당(민주당)의 횡포가 불러온 피치못할 계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부정선거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유명 정치인들도 이를 동조하고 있고… 절대 좌파에 투표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랜도 거주 한아무개씨(48)도 "좌빨이 정권을 잡으면 김정은에게 먹히게 된다. 이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21대 대선 재외국민 투표가 5월 22일부터 전 세계 118개국 223개 재외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동포 유권자들이이 애틀랜타총영사관 관할 올랜도 재외투표소에서 투표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김명곤
"12.3 내란에 분노"... 분명한 정치적 판단 내린 유권자들
하지만 대다수 재외국민들의 인터뷰에서는 12.3 사태에 대한 분노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항공학교 재학생 방아무개씨(25)는 "내란 사태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라며 "신뢰 회복이 가능한 후보를 골랐다"라고 말했다.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김태훈씨(33)는 "당시 (계엄 관련) 뉴스에 가슴이 찢어졌다. 리더십의 부재를 절감했다. 이제는 그런 비상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마이애미 대학에서 뇌과학 연구를 하는 김성재 박사(31)는 "소속 집단의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후보를 심판하러 왔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조미연씨(30)는 "재외국민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번만큼은 내란에 책임 있는 사람은 무조건 뽑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라고 고백했다.
왕복 6시간 거리의 플로리다 동부 해안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사범 김아무개씨(40)는 "진짜 선진국을 만들 수 있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라고 간결하게 말했다. 그의 배우자는 "탄핵정권을 심판하고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 지도자를 택했다"라고 했다. 같은 지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성슬기씨(33)는 "미국 동료들이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며 계속 묻는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공정, 상식, 평안한 사회"... 유권자들이 그리는 한국의 미래
플로리다 동북부 잭슨빌에 거주하는 정아무개씨(62)는 미국인 배우자와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그는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강국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진보적이면서도 영리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평범한 국민이 공정하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디즈니월드에서 교환학생 자격으로 인턴 중인 조아무개씨(23)와 임아무개씨(23)는 "정책 공약도 살펴봤지만, 내란 사태가 결국 후보를 결정하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또 마이애미 북부에서 미국인 남편과 함께 온 한아무개씨(50)는 "정당보다 중요한 건 나라의 미래다. 이제는 진짜 보수가 지도자가 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플로리다 주도 탤러해시에서 5시간 운전해 온 변양빈씨(32)는 "이전 선거에서 한 후보가 외쳤던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이 진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투표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해병 출신으로 1972년에 용접공으로 미국에 이민, 고국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이상남(76)씨는 "고국이 늘 잘 되겠니 하며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살아왔다. 그런데 군사 쿠테타라니...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1대 대선 재외국민 투표가 5월 22일부터 전 세계 118개국 223개 재외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플로리다 동서부 해안에서 4시간을 달려 투표소를 찾은 이상남씨(76) 부부 ⓒ 김명곤
구조적 문제 여전... "인터넷 못 하는 동포들 어찌하라고"
하지만 제도적 문제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재외국민들도 있었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사전 등록을 하지 못해 투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마이애미에서 온 박아무개씨(55)는 "4시간 운전해 왔는데 등록이 안 됐다고 해서 그냥 돌아가게 됐다. 참정권이 사실상 박탈된 셈"이라며 "올드 타이머들 가운데 아직도 컴퓨터 운용이나 인터넷을 하지 못해 등록 자체가 어려운 분들이 많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소 5명의 유권자가 사전등록이 필수인 줄 모르고 투표소를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재외투표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180여개 재외언론사들의 결집체인 (사)세계한인언론인협회는 지난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선 정책토론회에서 재외국민투표의 편의를 위해 우편·온라인 투표 도입을 촉구했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 역시 선거 이후 국회에 선거법 개정을 청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부정선거 가능성을 이유로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정치권도 적극적인 논의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재외국민들 "이번 선거는 경고이자 희망의 메시지"
센트럴플로리다 대학 행정학과 유은실 교수는 "이번 내란 사태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라며 "내란사태의 정확하고 정당한 처리과정이 민주주의 발전의 첫 단추다. 이제 한국의 K-민주주의는 세계적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재외국민들의 이번 투표는 단순한 정치 행위가 아니었다. 이들은 "찢긴 가슴으로 투표장에 왔다"고 토로하며, 민주주의 회복, 상식의 회복,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표했다.
▲21대 대선 재외국민 투표가 5월 22일부터 전 세계 118개국 223개 재외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투표를 마친 유학생들이 함께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 김명곤
25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다시만들세계포럼'에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윤석열 파면 광장’에 함께 한 청년, 대학생, 청소년 1천명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만들 세계’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는 지난 겨울 광장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다가오는 대선과 2026년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의 주역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내란 세력에 대한 ‘압도적인 심판’을 강조하며 “청년, 대학생, 청소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천명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의 연휴인 25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 일대에는 ‘다시만들세계 포럼’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공론장이 만들어졌다. 줄지어 설치된 원탁 테이블 30여개에는 청년, 대학생, 청소년 1천여명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으며, 지나가는 시민들도 흥미로운 듯 한동안 발길을 멈춰 이들의 토론을 지켜보기도 했다.
광장의 청년들은 ‘다시만들세계 포럼 조직위원회(조직위)’를 조직해, 이 같은 행사를 개최했다. 조직위는 70여개 대학교 학생들이 모인 ‘윤석열 퇴진 전국대학생시국회의’와 ‘내란청산사회대개혁청소년비상행동’, ‘윤석열OUT청년학생공동행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회’ 등이 구성했으며, 포럼에는 이들 단체를 비롯한 21개 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25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다시만들세계포럼'에 참가자들이 참여 신청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25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다시만들세계포럼' 참가자들이 원탁토론을 통해 사회대개혁 과제를 논의하고 있다. ⓒ민주노총
포럼의 핵심 순서는 ‘1천명 원탁토론’이었다. ‘윤석열 파면’ 이후 해결해야 할 사회 각 분야의 과제를 두고, 문제와 원인, 해결 방안 등을 토론하는 순서다. 주제는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광장의 목소리를 집약해 제시한 12가지 사회대개혁 의제로, 민주주의와 경제, 평화·주권·역사정의, 환경, 돌봄, 노동, 생명과 안전, 성평등과 인권, 언론, 식량주권, 교육 등 다양한 사회 분야로 이뤄져 있다.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토론 열기는 뜨거웠다. 테이블 곳곳에서 각자의 주장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각 주제에 대한 설명이 담긴 팸플릿을 꼼꼼히 확인하며, 원하는 주제의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평소 기후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한서연(25) 씨는 “청년들이 참여하는 원탁토론이라고 하니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오게 됐다”며 “직접 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 놀라웠다”고 말했다.
한 씨는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주저 없이 “온실가스 감축”을 꼽았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판결을 봐도 2030년까지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뤄야 하는데, 새 정부 임기가 딱 2030년까지”라며 “이번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가 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에서 상경한 김눌(활동명) 씨가 지역 정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다시만들세계포럼'에 참여했다. ⓒ민중의소리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대구에서 상경한 청년도 있었다. 김눌(활동명·33) 씨는 ‘TK 딸은 TK에서 살고 싶다! 말로만 하는 지역발전 그만! 실효성 있는 정책을 요구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지역 청년에 대한 모욕이다. 대선 후보들은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라!’라고 적은 손팻말을 만들어 참여했다.
김눌 씨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최저임금 차등 공약을 다 냈는데, 너무 모욕적이었다. 대구는 안 그래도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지역으로 유명하고, 기본적인 인프라도 최악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차등법이 적용되면 솔직히 죽으라고 저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길래 오늘 새벽 6시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김눌 씨는 참여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청년 정책이 집중되지는 않고 있다”며 “광장도 열렸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고 외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갈 세계와 미래에 대해서는 청년들이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이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1, 2부로 나뉘어 진행된 원탁회의 중간중간에는 광장에서 함께 한 여러 인사들의 발언이 마련되기도 했다. ‘남태령 대첩’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청년 농부 ‘향연(활동명)’ 씨는 지난 겨울 투쟁을 회상하며 “이 나라를 지켜낸 건 결국 시민들의 단결된 힘과 강력한 연대”라며 “이번에 집권하게 될 새 정부는 이 점을 뼈에 새기고 다시는 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시민들과 함께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연 씨는 “이 모든 과정은 지난 파면 투쟁보다 어쩌면 더 괴로울 것”이라면서도 “그 와중에 우리는 지치지 않고 계속 우리의 목소리가 시스템 안으로 침투될 수 있도록 빛으로, 깃발로 길을 열어내야 한다. 트랙터를 타고 차벽을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다시 만들 세계는 우리가 살아남고 버티고 싸운 만큼 열릴 것”이라며 “함께 오래 만나며 내가 살아갈 세상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호소했다.
유튜버 ‘경제학 죽이기’는 극우 커뮤니티인 일베저장소(일베)의 폐쇄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혐오가 판을 치고, 사회적 약자들과 민주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을 선동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을 자리는 없다”며 “우리가 극우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민주 시민으로 살기 위해, 일베는 반드시 폐쇄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실존적 위협에 떨지 않고 살 수 있게 되기 위해 일베는 폐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함께 외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빛의 혁명을 이끈 청년, 대학생, 청소년은 오늘 이곳에서 내란 세력 청산, 사회대개혁 주역으로 나설 것을 선언한다”며 “내란 세력이 청산되는 날까지 투쟁과 연대를 멈추지 않고, 사회대개혁의 날까지 광장을 지켜내며, 대선과 지방선거의 주역이 되어 ‘다시 만들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외쳤다. 이번 포럼에서 모인 청년, 대학생, 청소년의 목소리는 이후 대선 후보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문제에 대해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거리를 뒀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유죄 취지의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 이후 당내에서 박범계 의원을 중심으로 대법관의 수를 늘리고 비법조인에게도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이슈가 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로 <대선 핵심 이슈 된 ‘사법부 독립’ 문제>를 배치하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사법권도 장악하는 수순으로 간다고 보도했다. 이 후보의 여러 발언 중에 대법관 증원에 대해 “대법관 당사자 외엔 대체로 원하는 원안”이란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 신문은 “향후 이를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25일 박정희·박근혜 마케팅에 나섰다. 충북 옥천군 육영수 여사 생가에 방문해 김 후보는 “그 따님인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있을 수 없는, 온갖 잘못된 거짓 정보로 덮어씌워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집 하나 있는 것도 다 뺏어갔는데, 이렇게 해선 안 된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도넘은 박근혜 마케팅”이라고 비판했다.
지지율 빠지는 이재명, 사법부 개혁과 거리두기
한겨레 26일자 1면 <이재명 ‘주춤’…김문수와 한자릿수 격차>를 보면 한겨레가 여론조사 업체 에스티아이(STI)와 진행한 지지율 예측조사(여론조사 메타분석)에서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격차가 9.3%p로 줄었다.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24일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188개 여론조사를 종합 분석한 대선 지지율 예측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46.7%, 김문수 후보는 37.4%를 기록했다.
한겨레는 이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5월18일 기준 예측조사에서 53.7%였던 이 후보의 중도층 지지율은 일주일 새 4.1%p나 빠졌다”며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비법조인 출신 대법관 임용 법안 발의 등 사법부를 겨냥한 속도전식 개혁 드라이브, 1차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불거진 ‘호텔경제학’ 논란 등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이 후보에 ‘반신반의’하던 중도층 일부의 이탈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비법조인 출신 대법관 임용 법안,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이슈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한겨레 정치면 톱기사 제목도 <민생경제 내세운 이재명, 검찰·사법개혁 후순위로 돌려>였다. 한겨레는 이 후보의 25일 기자간담회를 “선거구도 재정비 기자회견”으로 표현한 뒤 “유권자 반응이 엇갈리는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루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정치 보복’에 대해선 ‘결단코 없다’고 못박았다”며 “경쟁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에 흔들리는 선거구도를 재정비하고, 이탈한 중도층을 설득하기 위해 ‘민생·경제’를 선거전의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정치면 톱기사 제목을 <이재명, 사법·검찰개혁 속도조절…“초기에 힘 뺄 상황 아니다”>라고 뽑고 “이 후보는 새 정부 초기는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나머지 과제는 그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후보는 선거캠프에 “사법 문제가 논란이 되게 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혔다. 박범계 의원이 추진하는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 26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
한동훈·조선일보, 사법개혁 키워드로 ‘김어준 대법관’
조선일보는 해당 이슈를 전면에 띄웠다. 1면 기사 부제를 “민주당 ‘대법관 증원’ 밀어붙여”, “李 당선 땐 사법권도 장악 수순” “‘非법조인 대법관’ 법안 논란엔” “李 ‘나와 당의 입장 아냐’ 진화”라고 하면서 “막바지에 이른 6·3 대선에서 ‘사법권 독립’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대법관 증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 보복 성격이 짙고 대통령 당선 시 사법권까지 장악해 삼권분립을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는 이 신문에 “민주당이 지금 시점에 법안을 낸 것은 대법관의 성향, 대법원의 구조를 바꾸려는 나쁜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비법조인 대법관’에 대한 비판도 함께 기사에 담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원의 핵심 기능인 ‘법률심’ 역할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김어준·유시민씨도 대법관을 시키려는 것이냐”고 했으며 윤여준 민주당 상임총괄선대위원장도 “그건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고 한 발언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외에도 3면에서 <대법관 30명 되면…민주, 집권 2년 뒤부터 사법부까지 장악 가능>, <베네수엘라, 대법원 장악후 독재 정권 대물림>, <오늘 법관회의, 사법부 독립·李 판결 관련 입장 낼리 주목>이란 기사 3개를 배치해 사법개혁 이슈를 보도했다.
▲ 26일자 조선일보 3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의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법’ 등”을 언급한 뒤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무능하고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국민도 그 점에 충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가 무능하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이 되면 위험하다는 ‘무능 프레임’에 가둬야 한다”며 “그 방식은 국민의 시각에서 쉽고 명쾌해야 한다. 이 후보의 ‘호텔경제론’을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정책인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을 연상시키도록 ‘노주성(노쇼 주도 성장)’으로 부르고,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법을 ‘김어준 대법관법’이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 <정말 ‘김어준 대법관’식 사회 원하는 건가>에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좌파 진영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김어준씨는 민주당의 정신적 멘토 같은 존재다. 계엄 사태 때 김씨가 ‘암살조가 있었다’는 황당한 음모론을 제기하자 민주당은 ‘상당한 허구’라는 보고서를 냈다가, 김씨 방송에 나가서는 사과하고 보고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수정했다. 이런 역학 관계를 보면 학식·경험·소양 같은 추상적 기준으로 ‘김어준 대법관’을 선발한다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정치면 <김문수, 도넘은 박근혜 마케팅…파면·유죄 판결까지 부정>에서 김 후보의 박근혜 홍보 발언에 대해 “대법원은 2021년 뇌물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의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을 확정한 바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2017년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그런데 김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법부의 결정을 부정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해 기소로 이끈 건, 각각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전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 26일 한겨레 정치면 기사
김 후보는 지난 25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물러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울먹였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1시간가량 만나기도 했다. 한겨레는 “김 후보가 보수층의 ‘박정희 향수’와 ‘가여운 박근혜’ 정서를 자극하는 건 최근 결집하고 있는 지지층을 더욱 독려하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이런 전략이 ‘추격자’인 김 후보가 지지층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2025.5.2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향해 작정하고 가한 인신공격은 많은 국민이 오히려 낯 뜨거워 시청이 힘들었을 정도로 시종 저열하기 짝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이 후보가 당했던 치명적 암살 테러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며 선거용 흑색선전의 소재로 삼은 대목은 그 비인간성과 반민주성에서 최악이라고 할 만하다.
김 후보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 후보가 지난해 1월 부산에서 테러를 당해 쓰러진 뒤 서울대병원으로 헬기 이송됐던 사안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황제 헬기 아니냐" "큰 상처는 아니고 성남의료원이 그것도 (수술을) 못할 정도인가" "꼭 헬기를 타고 와야 됐느냐? 그렇게 중증이고 그렇게 위험하냐?"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이 후보를 집요하게 몰아세웠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였는데 왜 본인이 건립한 성남의료원이나 처음 치료받았던 부산대병원에서 수술하지 않고 지역을 무시했느냐, 헬기까지 탈 필요가 있었느냐는 얘기다. 이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서 수없이 되풀이했던 선동과 판박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지난 3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부산에서 목을 긁힌 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이재명 대표의 모습" "그 정도로 구차하다"고 표현하며 극언을 퍼부었던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를 실제 치료했던 의료진 판단은 전혀 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2024.1.2. 연합뉴스
2024년 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테러를 당했을 때 출혈 상태를 알 수 있는 현장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정청래 TV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후보는 지난해 1월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보고 이동하다 지지자를 가장한 채 순식간에 접근한 테러범 김진성이 휘두른 칼에 목을 찔렸다. 지혈에도 불구하고 상당량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이 후보는 구급 차량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45분 만에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의료진 연락에 따라 출동한 응급의료헬기에 실려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후보의 수술을 집도한 서울대병원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사고 발생 이틀 뒤인 1월 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취재진을 대상으로 치료 경과 등을 브리핑했다. 혈관외과 전문의로 서울대병원 외과 과장과 대한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민 교수는 이 후보가 실려 왔을 때 얼마나 위중한 상태였고 수술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했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목 부위에 칼로 인한 자상으로 인해 속목정맥(내경정맥) 손상이 의심되고, 기도 손상이나 속목동맥(내경동맥) 손상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에는 얼굴 쪽 혈액을 공급하는 바깥목동맥이 있고,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속목동맥이 있는데, 속목동맥과 속목정맥이 손상되면 대량 출혈과 여러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목 부위는 중요한 혈관, 신경, 기도, 식도 등이 밀집된 곳이라서 겉에 보이는 상처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깊이 찔렀는지, 어느 부위를 찔렀는지가 중요하다. 목정맥이나 목동맥의 혈관 재건술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따라서 그 수술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경험 많은 혈관외과 의사의 집도가 꼭 필요하다. 우리는 부산대병원의 전원(轉院) 요청을 받아 우리가 수술할 수 있는지 상황을 점검하고 중환자실을 예약하고, 수술실을 예약했고, 정해진 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부산 방문 도중 목 부위를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수술 경과와 회복 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2024.1.4. 연합뉴스
고도의 숙련도를 갖춘 혈관외과 의사의 집도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부산대병원의 전원 요청을 받아 수술에 이르게 됐다고 확실하게 못박은 것이다. 야당 대표에 대한 특혜나 지역 병원 차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어디까지나 의료적 판단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민승기 교수에 따르면 이 후보는 좌측 목빗근(목을 돌리는 근육) 위로 1.4㎝의 자상이 있었다. 칼날이 근육을 뚫어 근육 내 동맥이 잘려있고, 많은 양의 피떡이 고여 있었다고 한다. 근육 아래 속목정맥의 앞부분이 전체 원주의 60% 정도 예리하게 잘려 있었다는 것이다. 속목동맥은 속목정맥의 안쪽 뒤쪽에 위치하는데, 다행히 속목동맥의 손상은 없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급소를 비껴가는 천우신조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래서 이 후보도 김 후보의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간단한 수술처럼 말씀하시는데 제가 동맥은 1㎜, 정맥은 67%가 잘려서 (칼날이) 1㎜만 더 깊이 들어갔거나 옆으로 들어갔으면 사망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 후보는 "후송을 하더라도 꼭 헬기를 타고 와야 됐느냐? 그렇게 중증이고 그렇게 위험하냐?"며 "헬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면 부산대병원에 그대로 있는 게 맞지 않겠냐?"고 추궁했다. 부산을 무시했다고 억지로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한편 서울 이송을 특혜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헬기 이송 역시 의료진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이 후보는 코앞에 다가온 총선 준비를 지휘해야 할 제1 야당 대표로서 부산대병원에 오래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 후보 곁을 지키며 간병해야 할 가족 또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래서 가족과 민주당 측은 서울로 이송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 모두 이를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이 후보 측이 "부산대병원 수술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거나, "다른 이동 수단은 싫으니 헬기를 불러달라"고 압력을 가한 사실도 일절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024년 8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목 왼쪽 부위에 자상으로 인한 흉터가 보인다.
19일 오전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을 만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목에 흉기 피습으로 인한 상처가 보이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공동취재]
우선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책임자인 김영대 센터장이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 입장'을 이해해 센터장으로서 전원을 결정한 뒤 '다른 수단보다는 헬기가 낫다고 생각'해 헬기 이송을 선택했다. 이는 다른 언론도 아닌 조선일보가 지난해 1월 4일 보도한 <부산대 외상센터장 "李대표 이송, 바람직 안해…반대 있었지만 가족 뜻 존중">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시 권역외상센터의 일부 의사는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이송을 반대했다고 한다. 수술을 준비하던 권역외상센터 소속의 한 교수는 '우리가 합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해당 교수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하고, 이송 중 위급 상황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며 "그 부분도 이해는 가지만,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 입장도 이해됐기 때문에 센터장인 내 의견에 따라 전원이 결정됐다"고 했다. 또 김 교수는 이송을 한다면 다른 수단보다는 헬기가 낫다고 생각했고, 서울대병원에 '즉시 수술이 가능하냐'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보내게 된 것이라고도 했다.』
사건 당일 민주당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으로부터 "지금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던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A 교수가 지난해 1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김영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으로부터 이 대표의 상태를 공유받은 A 교수는 서울대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장인 B 교수에게 상황을 전했다. 이후 B 교수가 "OK(전원을 받기로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오자 A 교수는 "그 정도 응급수술이랑 이럴 거면 헬기 이송을 요청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인터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가 의학적 판단하에 헬기 이송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저랑 헬기 얘기를 '10원어치'도 한 적이 없다. (이 대표가 다친) 경정맥은 우리 몸에 있는 제일 중요한 혈관 중에 하나다. 동맥 출혈도 있어 근육 내 출혈이 엄청나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헬기) 이송을 하게 되는 기준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소방당국에 헬기 출동 요청을 한 건 부산대병원이다. 자꾸 뭐 '구급차로 옮겨도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데 제가 알고 있는 의학적 상식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다. 저희 응급의학 쪽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헬기 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환자였어도 제가 당연히 헬기로 이송하라고 하고,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든 일반 국민이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난해 1월 16일 남화영 소방청장 역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신년간담회에서 이 후보의 헬기 전원을 두고 "매뉴얼 상 문제가 없다"고 단호하게 밝힌 바 있다. 남 소방청장은 "소방헬기 전원 시 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고, 소방헬기 이송 조건에도 의사가 반드시 같이 탑승하게 돼 있다"며 "그런 조건이 맞고 요청이 오면 소방헬기는 무조건 가는 것이다. 매뉴얼 상 문제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응급헬기를 이용해 병원을 옮긴 수는 162건이며, 이 가운데 30% 정도가 지방에서 서울로 전원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소방헬기를 본인 전용기처럼 남용한 사실을 보도한 언론 기사들. 네이버 화면 갈무리
정작 김문수 후보야말로 경기도지사 시절 소방헬기를 본인 자가용처럼 마구 타고 다닌 사실이 있어 자가당착과 적반하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다. 재임 중 5년간 뷰티 디자인 엑스포 개막식, 포천 아트밸리 개장식 등 온갖 행사 참석에 소방헬기를 무려 43번이나 이용했던 인물이 생사를 오가는 위급한 상태에서 병원 후송을 위해 헬기에 실려 갔던 이재명 후보를 질책한다는 건 파렴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 후보는 심지어 산불 진압 및 인명 구조를 위해 소방헬기가 출동한 날까지 소방헬기를 타고 지역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2014년 10월 여러 언론에 보도됐던 내용에 따르면 김 후보는 경기지사였던 2009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소방헬기를 43번 이용했으며, 이 중 산불 발생으로 소방헬기가 긴급 출동한 날에도 소방헬기를 부른 사례가 4번이나 됐다. 당시 소방방재청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정청래 의원에게 제출한 소방헬기 출동 자료를 보면 2009년 3월 17일, 4월 10일, 5월 7일, 5월 9일 산불 발생으로 소방헬기 1대가 출동했다. 그런데 해당 날짜에 김 후보는 미산 골프장 관련 기자회견, 자전거도로 현장 방문, 북한이탈주민 돌봄상담센터 방문, 국무총리 현장방문 수행, 도민체전 개막식 참석 등을 이유로 소방헬기를 탔다.
또 산악 구조 및 수색 활동 등을 위해 소방헬기가 출동한 날에도 김 후보는 행정 편의만을 위해 소방헬기를 타고 다닌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소방헬기를 도지사 전용 헬기처럼 남용하는 바람에 진화 작업이나 인명 구조에 차질을 빚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가 당시 보유하고 있던 소방헬기는 총 3대뿐이었는데 1대는 산불 진압, 1대는 산악 구조에 나선 상황에서 단체장이 남은 1대의 소방헬기를 차지하면 응급 사태 발생시 환자 이송을 못 하게 된다.
실제로 2009년 3월 17일의 경우 소방헬기 1대는 산불 및 산악 구조 활동을 위해 출동했고 다른 1대는 훈련 중이었다. 나머지 1대는 김 후보가 미산 골프장 기자회견에 참석한다고 사용했다. 또 2009년 5월 7일에는 산불 진압과 수색 구조에 각기 다른 2대의 소방헬기가 출동했는데 나머지 1대는 김 후보의 국무총리 현장 수행을 위해 출동했다. 2009년 5월 2일에는 소방헬기 3대가 모두 소방헬기 본래의 목적이 아닌 행정 지원에 이용됐다. 당일 김 후보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헬기를 타고 갔다. 총 43번 가운데 소방헬기 본래의 목적인 재난 점검을 위해 이용한 사례는 4회에 불과했다.
6.3대선이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란세력의 대선 목표가 당선이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관심은 대선 이후에도 내란을 지속할 세 재결집에 맞춰져 있다.
이미 그들은 검은 흉계를 드러냈다. 내란수괴 윤석열이 여론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부정선거’를 다룬 다큐영화를 관람했다. 김문수 후보 유세장에서는 ‘사전투표 부정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모두 ‘선거무효, 대선불복’을 위한 명분 쌓기다. 사전투표함 탈취, 개표소 난입, 대선후보 테러 같은 폭력사태에도 경계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윤석열 아바타의 선전포고
12.3계엄을 반성하기는커녕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조차 부정한 내란동조 국무위원이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이자, 출마 자체가 내란이다.
내란수괴 윤석열은 ‘국민께 드리는 호소’에서 “이번 대선은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지킬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문수 후보와의 단결을 주문했다.
이는 내란수괴가 제 입으로 대선은 ‘내란 연장전’이며, 김문수는 자신의 아바타라고 공언한 것이다. 이후 윤석열은 탈당을 통해 흩어진 내란세력(한동훈, 홍준표 등)이 다시 결집할 명분을 만들고,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에 장애 요인을 제거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내란 연장전’, 투표의 의미
이처럼 대선은 내란세력과의 전쟁, 12.3계엄의 연장전이다. 그래서 누구에게 투표하느냐는 ‘내란 동참이냐, 내란 청산이냐’의 선택이다. 누구나 내란청산에 투표할 것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제는 통상적인 선거운동으로는 내란세력에 압도적 패배를 안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선정국은 이미 김문수-이준석 단일화가 대선 이슈로 등장했고, ‘개헌 빅텐트’가 전선을 교란하고 있으며, 윤석열의 ‘탈당쇼’가 여론조사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등 ‘내란청산 대선’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광장의 힘이 절실하다.
‘윤석열 재구속 투쟁’, 광장연합의 돌파구
내란세력이 완패하는 대선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진보정당을 비롯한 민주시민이 광장대선을 주도해야 한다. 이럴 때 ‘윤석열 재구속 투쟁’이 광장대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광장연합이 ‘윤석열 재구속 투쟁’을 재개하면 ‘탈당쇼’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친윤과 비윤 사이의 갈등이 증폭된다. 또한 ‘영화관람’, ‘한강 산책’, ‘맛집 투어’ 등으로 광장시민을 복장 터지게 만든 윤석열에 대한 분노가 광장에서 분출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룸살롱 의혹이 제기된 지귀연 재판부가 윤석열을 탈옥시킨 것만큼 투쟁 과녁을 ‘윤석열 재구속’에 맞추면 광장대선이 활기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선, 내란청산의 출발점
야5당과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가 협약한 내란청산은 광장연합이 대선 전에 투쟁 동력을 확보해야 실현된다. 대선에서 완패한 내란세력이 사분오열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쉴 틈을 주지말고 ‘윤석열 즉각 구속’, ‘내란청산특위 구성’, ‘윤석열 거부권 법안 일괄 입법’ 등 연속타격, 집중포화를 가해야 한다. 그러자면 대선과정에 광장연합이 투쟁의 불씨를 꺼트려선 안 된다.
자칫 대선 이후 광장시민이 검찰의 내란 수사와 사법부의 판결만 지켜보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광장연합정치는 사라지고, 내란청산 과제는 입법활동에 국한될 위험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내란청산은커녕 ‘쿠데타 시즌2’를 허용하게 된다.
요컨대 남은 대선 10일에 내란청산의 명운이 걸렸다. 3년된 종기를 도려낸다고, 80년 묵은 암덩어리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대선은 그래서 내란청산의 출발점이다. 내란세력에 압도적 패배를 안김으로써 내란청산의 힘찬 출발을 선언하자.
24일 오후 2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가 열리는 서울 경복궁 영추문 앞 도로에 검은 물결이 생겨났다. 최근 제주에서 돌아가신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3천여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들이 만든 광경이다. 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교사들이 죽어야 하나.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성토했다.
앞서 지난 22일 새벽 제주의 한 중학교 창고에서 40대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교사는 학칙을 위반한 학생을 생활지도 했는데, 최근까지 학생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민원을 받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대회가 열린 영추문 앞 인근 도로 한편에는 집회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과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임시분향소를 세웠졌다. 집회시간 임박했는 데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동료 교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를 마친 교사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연신 “너무 참담하다”, “안타까워서 어떻게 하냐”고 읊조렸다.
경복궁 영추문 앞에 차려진 제주 교사 임시분향소 ⓒ민중의소리
교사들 “더 이상 교사 죽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
이날 결의대회는 당초 계획과 달리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사망한 제주 교사에 대한 추모대회로, 2부는 전국교사 결의대회로 치러졌다.
추모식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승혁 전교조 부위원장은 “‘잘 될 거로 생각한다. 잘 자고 내일 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제주의 선생님이 전날 학생과 나눴던 카톡 내용이었다”며 “그 누구보다 학들을 사랑하고, 악성민원에 괴로운 상황에서도 상대 학생을 성심성의껏 교육하기 위해 애썼던 내용이라 기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부위원장은 “‘잘 될 거로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학생을 대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생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상이 규명되고 부당한 교육활동 침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그 대가와 책임을 지도록 여러분들이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고인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 ▲(교육당국)학교민원처리방안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 마련과 악성민원인에 대한 강력 대응 ▲(국회)악성민원인 처벌제도 마련을 위한 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김상미 전교조 제주지부 사무처장은 “사건 이후 지부로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작은 ‘내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라는 짧지만 무거운 말이었다”며 “그 말속에는 교사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지금도 겪고 있을, 그리고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고 우려했다.
김 사무처장은 “과도한 행정, 혼자 감당해야 하는 민원, 마음을 다한 학생 관계 속에서 돌아오는 차가운 비난.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 곁에 있으려 애썼다. 그리고 고인은, 바로 그런 분이셨다”며 “요즘은 안심번호를 통해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아도 됨에도 고인은 아이들과 진심으로 다가가고, 신뢰를 쌓기 위해 기꺼이 연락처를 공개하시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지내셨다. 그래서 수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야 했고, 감당하기 힘든 말들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그 모든 고통을 혼자 감당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정말 묻고 싶다. ‘왜 고인은 끝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왜 교사는 항상 혼자 싸워야 했는가’, ‘우리는 이 죽음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대선을 앞둔 이 시점. 후보들에게 외치고 싶다. 더 이상 교사를 죽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제주 교사 추모대회 ⓒ전교조 제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6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는 참가자들 ⓒ전교조 제공
전교조, ‘교육 대개혁 실현’ 위한 10대 요구사항 발표
이날 추모대회를 마치고 진행된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교사들은 ‘교육 대개혁 실현’을 위한 10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 교사 교육권 쟁취 ▲교육권보장법 개정 ▲교사정원 학급 수 기준으로 법제화 ▲필수 교사 정원제 도입 ▲교원 임금 수당 인상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졸속 늘봄 지자체 이관 ▲졸속 유보통합 폐지 및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고교학점제 폐지 ▲성평등·기후정의 학교부터 실현 등이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국민의 삶을 위협했던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교사들의 삶은, 교육은 어떤가”라며 “서이초 투쟁에 수십만 교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되묻고 있다. 예비교사들은 자퇴하고 현장교사들의 탈출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마음속에는 분노를, 한 손에는 우리의 요구를, 또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외치자.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교사 정치기본권을 쟁취하자. 학생도 교사도 죽어가는 절망의 시대를 끝내고, 교육대개혁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며 “저와 17개 시도지부장이 날카로운 송곳의 끝이 되어 뚫고 가겠다. 교육대개혁의 길로 함께 달려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사들이 직접 경험한 교육 현장 발언이 이어졌다.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과를 가르치는 정환윤 교사는 “고교학점제와 연계된 수시 모집 전형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진로 변경을 저해한다”며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개인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정서적 지원과 생활 지도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공립 유치원에서 일하는 홍양희 교사는 “아무런 기준 없는 예산 지원, 개인 소유 기관까지 무차별적인 통합을 통한 지원은 평등이 아니라 특혜”라며 “현장의 유치원 교사들은 이미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과의 유아모집 경쟁 속에서 민간 기관의 회계 비리, 교사 처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진정한 유보 통합은 국공립 확대와 사립 기관의 법인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결의대회는 경복궁 영추문에서 시작해 안국역 사거리, 조계사 등을 거쳐 청계광장으로 향하는 행진으로 마무리했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의 신화 속에 반세기를 달려왔다. 개발독재 시대부터 민주화 이후까지 경제성장률은 모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우선주의 틀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2024년 한국의 소득 분포는 이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상위 10%의 연평균 소득은 2억 1051만원으로 하위 10%의 1019만원의 20배가 넘는다. 이런 격차는 단순한 소득 불평등을 넘어 사회적 이동성의 사실상 봉쇄를 의미한다.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려면 현재 소득의 20배 이상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적 불가능성 앞에 놓여 있다.
최상위와 최하위계층 연도별 소득 격차 추이. 연합뉴스
저출생 현상을 둘러싼 담론 역시 이러한 구조적 맥락에서 재해석돼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성역할 인식 변화는 분명 중요한 요인이다. 과거 '바깥사람'과 '안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성역할 구조가 해체되면서 맞벌이 가구가 일반화 됐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출산과 양육을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사회 구조에 있다.
여성을 '출산 기계'로 환원하는 관점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본질을 흐린다. 성별에 따른 일반화와 편견에서 벗어나 개인의 역량과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상호 보완적 관계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위계적 구조로 고착화하는 사회적 장치다.
능력주의 신화와 잠재력 발굴의 정치학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또 다른 신화는 능력주의다. '1등 만들기'에 매몰된 교육 시스템과 사회 구조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양산한다. 그러나 1등은 구조적으로 1명만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간과한다. 나머지 99%를 실패자로 규정하는 시스템이 지속할 가능성은 없다.
진정한 문제는 개인의 다양한 잠재력을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구조적 경직성이다.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일자리 구조에 개인을 끼워 맞추는 방식은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손실을 동시에 초래한다. A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인이 B영역의 일자리에 억지로 배치되는 구조적 미스매칭이 만연하다.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접근 방식도 재고돼야 한다. 인구 감소를 단순히 '더 많이 낳으라'는 구호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부족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업이 기술 개발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생산 효율성 향상으로 대응하듯, 인구 정책도 양적 확대보다 질적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진로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적성과 사회적 필요를 연결하는 장치가 부재하다. 생계 유지를 위해 자신의 잠재력을 포기하는 구조적 강제가 지속되는 한, 사회 전체의 창의성과 생산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출생기본소득 3법(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아동수당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6.17. 연합뉴스
기본소득 실험과 재분배 정치의 실증적 근거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론은 주로 '근로 의욕 저하'와 '재정 부담'에 집중된다. 그러나 최근의 해외 실험 결과들은 이러한 우려가 실증적 근거를 갖지 못함을 보여준다.
핀란드의 2017-2018년 기본소득 실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무작위로 선발된 2,000명의 실업자에게 월 560유로를 조건없이 지급했다. 수급자들의 정신적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현저히 개선되었고, 생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자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경제 활동이 나타났다.
케냐에서 진행 중인 GiveDirectly의 장기 기본소득 실험 역시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 12년간 매월 22달러를 지급받는 마을과 일시불로 지급받는 마을의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 기본소득 수급 마을에서 창업과 교육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본소득은 게으름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창의성을 촉진한다. 생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면 개인은 더 장기적이고 의미있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가장 현실적 장애물은 재원 마련이다. 이는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포괄적 조세 개혁을 통한 다각적 접근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토지보유세 강화다. 토지는 개인이 창조한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의 산물이다. 지하철역 주변 땅값 상승은 개별 토지 소유자의 노력이 아닌 사회적 투자의 결과다. 토지 보유에 따른 세금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면서 안정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탄소세와 환경세 도입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재원 마련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탄소 배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내재화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논리에도 부합한다.
셋째, 디지털세 신설이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가치에 대한 합당한 과세가 필요하다. 이들 기업은 한국의 디지털 기반시설과 인적 자원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세금은 본사 소재국에만 납부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 신뢰 회복과 포용적 성장 모델로의 전환이 핵심이다.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재분배 정책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적 투자다.
현재의 극심한 불평등 구조는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한다.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20배 격차는 단일한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분열은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위협한다.
결국 분배 우선주의는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질적 전환을 추구한다. 소수의 승자 독식 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용적 성장 모델로의 전환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의 청사진이다.
23일 열린 대통령 후보 2차 티브이(TV) 토론을 주도한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였다. 두 사람은 시작부터 막판까지 상대를 의식한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이재명 후보는 이준석 후보가 “모든 문제를 지나치게 왜곡한다”고 비판했고, 이준석 후보는 “비판을 받으면 ‘극단적이다’라는 말로 덮으려고 한다”고 응수했다. 이준석 후보는 자신이 이재명 후보 대항마로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점을 부각하려 애쓰는 모습이었고, 이재명 후보는 이런 이준석 후보에게 ‘수세’가 아닌 ‘공세’로 예봉을 꺾으려고 했다.
두 후보는 시작부터 토론회 규칙을 두고 감정적 언사를 주고받았다. 이준석 후보는 자신의 질문에 ‘역질문’으로 응수한 이재명 후보에게 “저한테 (질문)하시면 안되는 거다. 원래 룰(원칙)상 (그렇다)”고 이재명 후보의 토론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재명 후보가 “질문도 답의 일부다. 이게 토론이 쉽지가 않다. 중간에 안 끼어들면 좋겠다”고 받아치자 이준석 후보는 “결국 제가 질문드린 것에 답은 안 하시고 저에게 훈계하듯 말씀하시며 끝내려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재명 후보는 이준석 후보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사실을 문제 삼기도 했다. 그는 “이준석 후보는 12월3일 밤 다른 사람들이 전부 국회 담을 넘어들어가서 계엄 해제에 참여했는데 담을 넘자는 참모들을 야단치고 말다툼을 하면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싸우는 척하면서 계엄해제에 반대한 게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그러자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음모론적이고, 세상을 참 삐딱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반대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재명 후보가 정치 공세를 위해 트집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향해 “파란 옷 입은 또 다른 계엄세력”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재명 후보가 “(정책에 대한) 대책을 물으면 ‘잘하면 된다’는 말을 반복하고, 비판하면 ‘극단적이다’라는 공격으로 덮으려 한다”며 “무지성, 비과학, 비합리, 파란 옷을 입은 또 다른 계엄 세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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