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의 PR(홍보) 활동을 수행해온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있었다. 이는 BBC의 모든 구성원에게 매우 큰 수치와 우려 대상이 돼야 한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 기자 100여명과 미디어업계 인사 300여명이 BBC 경영진에 일부 이사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BBC가 “이스라엘의 홍보(PR)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친이스라엘 성향의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이사회 구성원이 팔레스타인 관련 보도를 좌절시키는 편집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자 가디언과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BBC 소속 기자 111명은 지난 1일(현지시간) BBC 사장과 이사회를 수신인으로 이 같은 내용의 공개 서한을 냈다. 공개 서한에는 BBC 직원 외에도 마이크 리 영화감독, 자웨 애슈턴 배우 등 영국의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업계 및 학계 인사 300여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앞서 BBC는 자사가 의뢰해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가자: 공격 받는 의사들>을 불방 결정하면서 내부 반발을 불렀다. 해당 프로그램은 결국 BBC 아닌 채널4가 지난 2일 방영했다. 채널4는 다큐 편성 사실을 알리며 “다른 곳에서 다루지 않는 중요한 저널리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믿기에 이를 수행한다”고 했다.
▲외신(가디언 및 알자지라)의 관련 보도 갈무리. 가디언·알자지라 홈페이지
서한을 쓴 BBC 기자들은 “(해당 다큐의) 방영 거부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결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BBC의 이 지역(가자지구와 중동) 보도 대부분은 반팔레스타인 인종차별로 규정된다”고 했다. “BBC는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것으로 비쳐질까 두려워 마비된 조직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실패는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 조직은 영국 정부의 팔레스타인 전쟁 개입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명자들은 이러한 ‘실패’가 “구조적으로 설계된 결과”라며 BBC 이사회의 로비 깁(Robbie Gibb) 이사를 지목했다. “편집 가이드라인이 일관성 없이 적용되는 데에는 BBC 이사회와 편집기준위원회(Editorial Standards Committee) 소속인 로비 깁 경의 역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이시 크로니클이 “반팔레스타인적이고 인종차별적 내용을 반복적으로 게재해온” 가운데, 이 매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깁 이사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지 않는 결정을 포함해 BBC 편집 결정에 어떤 식으로든 발언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깁 이사는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홍보 담당자였고 BBC 웨스트민스터의 전 정치팀장을 지냈다. 2020년 영국 내 유대계 신문 ‘주이시 크로니클’ 인수 컨소시엄을 주도했고 지난해 8월까지 해당 언론사의 이사로 재직했다.
연명자들은 “더 이상 수신료 납부자들에게 깁의 이념적 충성심을 무시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며 “깁 경이 BBC 이사회와 편집기준위원회에 있는 것이 더는 용납될 수 없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BBC는 시청자를 위해 더 나은 보도를 해야 하며 △편파 없음 △정직 △두려움 없는 보도라는 우리 핵심 가치에 다시 헌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BBC 대변인은 이 같은 공개서한에 “이러한 대화는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며 “가자지구 보도와 관련해 BBC는 분쟁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데 온전히 헌신해왔다”고 했다.
한편 BBC는 지난달 28일 영국의 세계적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을 생중계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해방’ 구호를 외친다는 이유로 힙합그룹 ‘니캡’의 무대를 중계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튿날 다른 밴드 ‘밥 빌런’이 관중과 함께 “IDF(이스라엘군)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BBC 전파를 탔다. 영국 지역경찰은 해당 밴드를 상대로 수사에 나섰고 미국 국무부는 이들의 비자를 취소했다. 영국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는 SNS에 “집단학살이 중요한 이야기이지, 글래스턴베리가 아니다(Genocide is the story, not Glastonbury)”라고 강조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1리의 박기(69) 이장은 지난 5월부터 관할 경찰서 정보관을 종종 만난다. 정보관은 박 이장의 동태를 살피는 듯 그의 주변에 머물렀다. 박 이장은 답답한 마음에 정보관 차 안에 있는 생수를 꺼내 먹고 "경찰 물을 맘대로 꺼내 먹었으니 이제 나를 유치장에 가두라"며 "따라다니지 말고, 차라리 가둬놓고 대화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박 이장이 마을에서 '대책위'를 언급한 후 생긴 일이다. 사촌1리는 지난 3월 의성산불 피해를 직격으로 받은 마을이다. 소나무림으로 둘러싸인 윗마을은 집 열 채 중 아홉 채가 전소됐다. 박 이장도 윗마을 전소 피해 주민이다. 지난 4월 그를 만났을 땐 "우리 주민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뭐라도 할 거다"라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난 후 그는 "우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단 걸 그동안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의성군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5월부터는 점곡면 산불피해주민위원회를 먼저 결성해 위원장을 맡아 왔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9일 점곡면 대책위 활동을 하고 있는 박 이장과 주민 김경희 씨를 만나 대책위 결성 이야기를 들었다.
공무원 없는 현장, 스스로 헤쳐 나갔던 이재민
"우리는 산불이 난 일주일 동안 서로 안부도 못 물었다.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후부턴 애가 탔다. '뭐라도 해야 해. 근데 뭘 해야 하지?' 생각은 가득한데, 혼자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애만 탔던 여성들 다섯이 모였다. 모두 피해자거나 피해자의 가족이었다. 피해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는 것부터 했다. 면사무소는 우리가 실체 없는 모임이니 피해 주민 명단을 주진 않았다. 알음알음 알아내 70여 가구를 찾아다녔고 실태를 조사했다."
▲의성군 및 점곡면 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점곡면 주민 김경희 씨. 지난 6월 29일 의성사촌문화공간에서 열린 주민 집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김경희 씨는 4월 초중순 경 꾸려진 '점곡면 피해 주민 모임'을 만든 사람 중 하나다. 이들은 주민을 만나면서 제일 먼저 "제대로 전달되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피해 회복 및 지원 대책이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될지를 아무도 몰랐고 현황 전달도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구호 물품을 받지 못한 주민도 적잖았다. 피해 주민들은 아는 선에서나마 소식을 전달해 주는 이들에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았던 '현장 실무'도 이들이 스스로 맡았다. 지원 물품, 봉사 인력 등은 쌓이는데, 이를 조정하고 배분하는 인력은 없어 당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점곡면에선 김 씨를 포함한 주민 모임의 여성들 예닐곱 명이 물품부터 정리했다. 쓰지 못할 수준의 물품이 많아 이를 걸러냈고, 더러운 그릇 등은 직접 씻고 닦았으며 주민 실태조사 때 메모해 놓았던 옷, 신발 사이즈를 참조해 물품을 배분했다. 방충망 설치, 미용 등의 기능장들이 봉사를 오면 마을 수요를 일일이 조사했고, 장소도 섭외했다.
'이렇게 움직여선 부족하다'고 느낀 이들은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할 필요를 느꼈다. 처음엔 군청, 면사무소 등과 얘기가 잘 됐다. 주민간담회를 5월 9일 열기로 하면서 점곡면사무소 2층을 빌렸다. 그런데 당일, 면장이 공간 이용을 불허했다. 명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김 씨는 "홍보 현수막에 적힌 피해 주민 대책 모임 문구 중 '대책'이 문제가 됐던 것 같다"며 "다른 경로로 '대책위를 왜 만들려고 하느냐', '가만히 있어라', '우리 지역만 피해 본다' 등의 말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5월 9일 급히 장소를 의성사촌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주민모임은 '갑작스러운 변동에 과연 주민들이 모일까' 걱정했다. 그런데 2층 회의실은 80여 명의 점곡면 주민들로 꽉 찼다. 회의 도중 주민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는 "주민 모임이 뭡니까?"라며 "관에서 도저히 나 몰라라 하는데, 피해자 대책위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모임은 현장에서 점곡면 산불피해 주민 대책위원회로 바로 전환됐다. 모든 참석자가 동의했다. 위원장은 박기 이장이 뽑혔다. 첫 회의에선 피해 조사도 제대로 안 된 문제, 주택 피해가 심각한데 공무원 누구도 배상과 지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는 문제, 미등록 건물이 많은 농촌의 현실 문제, 농지·농산물 보상은 사각지대로 밀려날 것이란 두려움 등이 우후죽순 제기됐다. 이를 계기로 두 달 후인 지난달 30일, 여러 면의 주민들 150명가량이 모여 의성군 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6월 29일 점곡면 사촌리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박기 이장. ⓒ프레시안(손가영)
'가만히 있으라. 우리가 주는 대로 받아라'
박 이장은 모임을 꾸린 이유로 "아무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면사무소와 군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이건 불합리하다'거나 '무엇이 어떻게 되느냐'를 계속 물었지만, 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책위에서 직인 찍어 공문을 발송하면 답변을 주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하지 않고선 관의 답은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게 참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농사 지원 어떻게 될는지 그렇게 물었는데도 못 들었다. 우려한 문제들이 이제 터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사과밭에 바구니, 팔레트, 창고 다 탔다. 사과 담을 데가 없다. '이거 지원이 어떻게 되냐'에 '알아서 하라'는 답만 듣는 거다. 또 1000만 원 무이자 2년 대출? 돈을 아무렇게 쓸 수 없으니, 사업계획서, 견적서, 세금계산서 만들어 오란다. 5~6년 키워야 수확할 수 있는 사과밭 사업 계획을 지금 세워서 그 자금으로만 쓰라고? 당장 생활자금이 없어서 허덕여서 갔는데? 원금을 또 2년 내 갚으라고? 면장 앞에서 서류 찢었다. 분할 상환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답이 없다. 지원의 실상이 다 이렇다."
박 이장이 답답함을 쏟아내며 말했다. 과수원이 탄 주민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까지 수확물이 없다. 즉 그동안 밭을 소생하고 관리하는 비용은 들지만, 수입은 없다. 이걸 물어도 "관은 '우리는 모릅니다'라는 답만 한다"고 그는 말했다. 박 이장이 "전염병이 돌 때 국가에서 주는 지원책이 있다. 가령 3년 키워야 수확물이 나는 나무에 3년간 수확물에 대한 자금을 지원해 준다"며 "이런 게 있으니 이에 준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도 소용없다. 1년 치를 준단 말도 없다. 농민은 뭘 먹고 사느냐?"고 울분에 차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그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에 더해 "산불에 충분히 대비하고 대피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재난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민의 알 권리는 지켜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29일 주민 간담회에서 "군에서 지침을 알려주지 않으니 강 건너에 산불이 났는데도, 우린 농사를 계속 짓고 있었다"며 "농촌은 스프링클러, (수십 미터까지 물을 뿌릴 수 있는) 약차(동력분무기) 등이 집마다 갖춰져 있는데, 이 좋은 자산을 활용하지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우리는 산불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도 듣지 못했다"라며 "재산이 모두 타고 일터, 공장이 모두 탔는데 보상과 복구가 어떻게 되는지는 당연히 설명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관은 '지금도 가만히 있으라.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는 태도"라며 "피해자들은 당당히 자신의 권리, 필요한 것, 부족한 문제 등을 말할 수 있다. 대책위는 이걸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드론으로 촬영된 경북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인근 산 풍경. ⓒ정정환(지리산사람들)
'군수에 대드냐' 비난... "피해 주민 눈높이 정치인 없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빨갱이'라거나 '간첩'이라는 등의 혐오까지 나타내며 손가락질한다. 의성군 대책위에 참가하는 이장은 400명가량의 이장 중 박기 이장밖에 없다. 박 이장은 이장협의회에서도 대책위를 언급했다가 비난과 조롱을 맞닥뜨렸다. 날 선 비속어부터 '잘 되는지 두고 보자', '어용 띄워서 대응할 거다', '너희 때문에 군수님한테 찍힌다' 등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대책위를 그저 이유 없이 '하지 말라'고만 하더라"며 "'이장은 군수에게 봉급을 타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이장의 마을 주민들만 317L(리터) 냉장고를 받은 것을 두고 점곡면에선 '군수에게 찍혔다'는 입말도 퍼졌다. 다른 지역엔 모두 500L 이상의 냉장고가 지급됐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와 싸우자는 게 아니라, 관과 민이 같은 목소리로 정부에 요구하자는 것인데 (이런 비난의 이유를) 참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이장은 지난 두 달간 의성 내 모든 피해 면을 돌아 다녔다. 또 안동, 영양, 청송, 영덕까지 산불 피해를 본 4개 시군도 모두 방문했다. 그는 이때 만난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주 울었다. 그는 "가족 유품을 다 태워버려 마음에 골병이 든 어른이 내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주민들 상처가 정말 아프고 깊다"며 "재난 지원이란 게 돈 몇 푼 쥐여 주고 땡인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정부와 지자체)은 왜 없는가?"라 물었다.
박 이장도 사과밭 3000평과 집 두 채를 포함해 총 9억 원가량의 피해를 봤다. 당장 수입도 막막하다. 그럼에도 매일 풀을 베야 하는 등 농사일은 쌓여 있다. 박 이장은 새벽 4시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농사일을 하고 이후부턴 대책위 업무를 본다. 지금까지 수백만 원가량의 사비를 털었다. 그는 "앞으로는 후원회를 만들어 후원을 받으려고 한다"며 "농촌 어르신들 푼돈은 도저히 못 받겠더라"고 말했다.
의성군 대책위가 참여하는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는 산불 피해 지원과 복구에 대한 12대 과제를 세워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산불 확산 저지 실패 원인 분석 및 책임 규명 진상조사 △사망자에 대한 현실적 배상안 마련 △산불재난특별법 제정 및 실효성 있는 피해 복구 체계 마련 △피해 기업에 대한 대책 마련 △민간 재난 기부금 운영 투명성 강화 △과수농가 생계 지원책 마련 등이다. 특히 지원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지원체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요구를 산불재난특별법으로 법제화하려고 한다. 경북대책위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첫 상경집회를 열고 요구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박 이장은 "농민들은 올해 농사가 잘되든, 망하든 꼬박꼬박 세금을 낸다. 어쩌다 못 내면 압류를 해서라도 다 받아 가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세금을 걷는다는데, 내 재산 9억 원을 다 태웠을 때, 이렇게 거리에 나앉았을 때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또 "가장 좋은 약이 관심이더라. 봉사자분들, 관심 가져 주는 시민들에게 정말 가슴 깊이 감사하다"며 "산불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놓지 않아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1일 국회 앞에서 열린 경북 산불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는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 박지영 공보 담당 특별검사보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금일 오후 5시20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8일 수사를 시작한 특검이 약 3주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선 것이다.
특검이 윤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이다.
박 특검보는 “(영장에 들어있는)추가적인 죄명도 있는데, 대표적 죄명 3개만 말씀드린 것”이라면서 “관련 범죄사실이 공개될 경우 피의사실 공표 문제도 있어서 혐의 내용을 (전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구속영장에서 외환 혐의는 빠졌다. 박 특검보는 “현재 외환은 조사가 진행 중에 있고, 조사할 양도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범죄사실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의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라는 입장이다. 같은 날 윤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입장문을 통해 “혐의 사실에 대해 충실히 소명했고, 법리적으로도 범죄가 성립될 수 없음을 밝혔다”며 “특검의 조사에서 객관적 증거가 제시된 바도 없고,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09년 2월 16일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가톨릭 신자들이 전시된 김 추기경의 생전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유성호
2009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원래 꿈은 장사였다. <평화신문>에 연재된 회고록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따르면, 부모님처럼 상인이 되는 것이 어릴 적 그의 꿈이었다. 읍내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국화빵을 구워 파는 어머니, 곳곳을 돌며 옹기장수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 장래 희망이다.
위 신문 2003년 5월 18일 자에 실린 제1편은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읍내 상점에 취직해서 5~6년쯤 장사를 배워 독립한 후 25살이 되면 장가를 갈 생각이었다"는 꽤 구체적인 계획을 소개한다. 그러나 상인의 꿈, 결혼의 꿈은 그냥 꿈으로 그쳤다. 그의 인생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922년 6월 3일 대구에서 출생한 그는 11세 때인 1933년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경북 대구의 성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에 들어갔다. 지금의 서울 대학로에 있는 동성상업학교(동성고등학교)를 1941년에 졸업한 그는 도쿄 조치대학으로 유학을 갔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학병으로 끌려가 미군 포로가 됐다. 귀국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2월 경이다.
20대 초반에 미군 포로가 되는 파란만장한 경험을 한 그는 1947년 9월부터 학업을 다시 이어갔다. 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인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성신대학에 들어가 사제 수업을 받은 그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9월에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현 목성동성당인 안동성당의 주임신부가 됐다. 20대 초중반에 상점을 경영하고 25세에 신랑이 되겠다고 꿈꿨지만, 막상 직면한 현실은 29세 때 신부가 되고 안동성당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에 유학 가 뮌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런 뒤인 1964년부터 2년간 현 가톨릭신문사인 가톨릭시보사의 사장을 지내다가 1966년에 주교가 되고 마산교구장이 됐다. 1968년에는 대주교가 되고 서울대교구장이 됐다가, 47세 때인 1969년 4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한국 가톨릭(천주교) 지도자가 된 그가 역점을 둔 것 중 하나는 '한국 사회와의 대화'다. <교회사연구> 2011년 제36집에 실린 이장우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의 논문 '김수환 추기경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1969년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상과 대화하거나 삶을 나누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고 기술한다. 한국 사회와 가톨릭 사이를 가로막던 그 같은 담장을 헐고 가톨릭과 이 땅을 통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 주의를 기울인 것은 한국 유교와의 화해다. 가톨릭이 한국 사회와 충돌한 것은 제사 문제 때문이고, 제사 문화를 주도하며 가톨릭을 앞장서 비판한 쪽은 유교다. 그래서 유교와의 화해는 한국 사회와의 화해였다.
그가 이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78세 때인 2000년에 제13회 심산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불굴의 독립운동가이자 꼬장꼬장한 유학자인 심산 김창숙을 기리는 이 상을 가톨릭 지도자가 받은 것은 제사 문제로 인한 두 종단의 갈등이 대략 해소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해 5월 23일, 그는 심산상을 받은 직후에 서울 강북구 수유동 김창숙 묘소로 가서 술도 올리고 예법도 표시했다. 언론들은 '가톨릭과 유교, 아름다운 만남', '가톨릭과 유교가 해묵은 역사의 질곡을 벗어버리고 화해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일을 그도 흡족해했다.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그 후 제5편'은 "그런 긍정적 평가가 과분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가톨릭과 유교 두 종교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화합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니 다행이다"라고 즐거워했다.
상당한 위험 감수하며 민주화 투쟁에 나서
▲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평화방송·평화신문 제공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성과를 거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 가톨릭의 노력과 더불어 추기경 개인의 신념과 역량에 기인한다. 이와 함께, 1960년대부터 전개된 세계 가톨릭의 개혁 열풍과도 연관된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은 서양 제국주의의 세계 침략에서 첨병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전에는 히로히토 일왕(천황)이 강행하는 신사참배도 공인하고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자행하는 파시즘 폭정에도 협조했다. 이 같은 과오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것이 교황 요한 23세의 주도로 1962년 10월 11일 개회돼 1965년까지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다. 개혁을 위한 이 공의회가 성과를 거두면서, 가톨릭은 세계 대중과 친숙한 종교로 거듭날 기회를 갖게 됐다.
공의회에서 강조된 핵심 정신은 현대 세계에 대한 적응, 대화와 자성, 교회 밖에서의 구원 가능성 인정, 종교의 자유 인정, 권위주의 철폐 등이다. 청년 신부 김수환은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유럽 유학을 했다. 그 같은 개혁 열풍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핵심 정신은 김수환 추기경의 이미지와 대략 맞아떨어진다. 이는 그가 그 정신에 입각해 한국 천주교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1964년부터 그는 공의회 정신을 한국에 전파했다. 위 이장우 논문은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재임할 때 공의회 소식을 앞장서서 보도하면서,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로 거듭날 것을 강조했다"고 기술한다.
공의회의 정신적 세례를 받은 신부 김수환이 한국 가톨릭 지도자로 급부상하는 시점은 박정희가 독재자로 부각되는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신부 김수환이 가톨릭시보사 사장이 된 것은 1964년, 마산교구장 주교가 된 것은 1966년, 서울대교구장 대주교가 된 것은 1968년, 교황청 추기경이 된 것은 1969년이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에 취임하고 1967년에 재선된 뒤 1969년에 3선 개헌을 강행해 종신제 군주의 길을 열었다. 1960년대 후반은 김수환과 박정희가 각각 가톨릭 지도자 및 독재자로 떠오른 시기다.
그 시기에 추기경 김수환은 박 정권과의 협력을 통해 교단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정권이 아닌 민중의 편을 들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본업이 추기경인지 운동권 투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는 민주화운동에 깊이 개입했다.
그의 민주화운동이 반정부 차원을 뛰어넘어 반체제로까지 발전했다는 점은, 박정희를 사실상의 종신군주로 만든 1972년 12월 27일 이후의 유신체제에 대해 정면 대항한 데서도 확인된다. 1973년 12월 13일, 그는 함석헌 목사 및 윤보선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서울 시내 한복판인 중구 명동에서 시국간담회를 열고 박정희의 변화를 촉구했다.
다음날 이 상황을 보도한 <동아일보> 1면 기사의 제목은 '민주체제 회복 조치를'이다. 체제 문제를 거론하는 시국간담회였던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참여자들은 "중대한 민족적 위기", "정상적인 민주주의체제로의 회복", "평화적 정권교체" 등을 거론하며 유신헌법 체제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추기경 김수환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며 민주화 투쟁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교회 밖 대중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헌신
▲2009년 2월 20일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거행된 장례미사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과 관이 명동성당을 나오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1987년 6월항쟁이 중산층의 지지를 얻은 결정적 계기는 6월 11일 점심때 서울 명동의 금융 노동자들이 넥타이 차림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건 등이다. 명동이 그런 분위기에 휩싸인 데는 시민과 학생들이 전날 명동성당에 들어가 밤 9시 55분부터 횃불 시위를 벌인 것과 무관치 않다. 추기경을 비롯한 가톨릭 지도자들의 용인과 묵인 없이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박 정권을 비롯한 독재정권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해 노동자·농민의 생존 기반을 억눌렀다. 대중이 경제적 힘을 갖지 못하게 만들어 정치권력과 재벌자본가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이 같은 탄압에 대해서도 김수환 추기경은 도전했다.
그 일례가 1967년 사건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의 주도로 1967년 5월에 강화도 심도직물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심도직물 사장과 경찰은 노동자 탄압에 착수했다. 조합원 16명이 해고되고 일방적인 휴업이 강행됐다. 마산교구장이자 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였던 김수환 주교는 '강화도 사건에 대한 주교단 공동성명'을 이끌며 사측과 경찰에 맞섰다.
이장우 논문에 따르면, 이 성명에는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사회정의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특히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쳐야 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 '노동자들은 가족 부양에 알맞는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 '경영자들은 경영이익 상당부분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과 연소자의 노동은 합당치 않다'는 등의 취지를 담은 부분도 있다. 단순히 노동자를 응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 개혁을 통한 사회 대개혁 비전까지 담은 성명서다.
추기경 김수환은 교회 안의 신자들뿐 아니라 교회 밖의 대중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헌신했다. 가톨릭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도 일생을 살았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가톨릭은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 사회를 항상 염려했음을 보여주는 시가 '평화를 위한 기도'다. 이 시에서 그는 이스라엘민족처럼 한민족도 돌아봐달라고 천주님에게 간청했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한국 민중도 챙겨주시라고 떼를 쓴 것이다. 그의 잠언집인 <바보가 바보들에게>에 수록된 이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의 사면이 드디어 물 위로 떠 올랐다. (그에게는 앞 뒤로 교수, 장관, 당 대표 등의 여러 직함이 있지만, 그의 고통이 시작된 자리라 여겨 굳이 수석이라 부르려 한다)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야5당 대표의 오찬 회동에서 조국 수석 사면에 대한 건의가 있었다. 비록 이에 이 대통령이 즉답이 있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의 논란이 예상된다. 조 수석 본인도 옥중 서면 인터뷰에서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대상자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바로 그렇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대통령이 결심하면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신청이나 심사 등 별도의 절차도 필요없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오로지 대통령의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찬 회동 때 사면이 건의된 건설·화물연대노동자들에 대한 실태 파악을 지시했다. 곧 이들에 대한 사면이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비교섭단체 5당 지도부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2025.7.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사면은 형벌의 집행을 면제해 주지만, 전과는 남는다. 유죄 판결의 사실 인정도 유지된다. 사면받았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고 명예가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조국 수석의 사면이 마뜩찮은 이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국 수석에 대해 죄를 짓고 받은 벌을 면해 주는 사면 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하다. 검찰과 사법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다. 그저 3권분립 체제에서 행정부의 수장이 형벌을 면제해 주었을 뿐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주도했다. 검찰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온갖 패악을 저질렀다. 2019년 8월 17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직속 상관인 법무부 장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조국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가 된 조국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다. 검찰은 한 달 새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해 확인된 것만 해도 무려 70여 곳을 압수수색 했다. ‘조국몰이’ ‘조국사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형이 확정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16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수감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4.12.16. 연합뉴스
법원과 판사들도 매한가지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입증하는 증언과 증거가 수없이 나왔지만 외면했다. 자녀가 봉사상 상장을 재발급한 것을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하고, 민정수석이 되기도 전에 받은 자녀의 장학금을 뇌물이라는 등의 검찰의 기소를 그대로 인정했다. 설사 그걸 인정한다 쳐도 징역 2년이라니.
이런 짓거리를 한 검찰과 판사들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 뒤에 숨어 면죄받게 해선 안 된다. 조국 수석은 사면이 아니라 재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특검 등을 통해 검찰이 조국 수석에게 행한 범법을 밝혀내고, 법원은 재심을 진행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검찰 권력과 사법부의 최소한의 양심고백이다.
특별사면을 받았다고 해서 재심 청구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면을 하고 나면 검찰과 사법권력의 패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들이 양심성찰과 회개의 기회를 반드시 갖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이 더 있다. 역대 민주 대통령들은 당선 이후 ‘통 큰 대통령’ ‘마음 넓은 대통령’에 대한 강박을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전두환, 노태우를 풀어주고, 이명박, 박근혜도 놓아줬다. 지지세력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공정성 시비를 지나치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국 수석의 가족 정경심 교수는 터무니 없는 기소와 판결에도 형기를 다 채우고서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혹여라도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 세력과 이에 동조한 자들을 사면 대상에 끼워 넣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저들은 호시탐탐 나쁜 짓을 할 기회를 보고 있다. ‘조국 사면에 동의할 테니, 우리도 좀 봐 달라’는 식의 제의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그럴 것으로 믿지만, 저들은 별 짓을 다 하는 걸 충분히 보아왔기에 하는 얘기다.
다시 만날 조국 영화 포스터 (부분)
조국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그를 무간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 가석방이든 보석이든 가능한 방법이 강구됐으면 좋겠다.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을 채워야 한다니 8월 16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보석은 형이 확정된 후에는 불가하다지만, 재심이 진행되면 할 수 있지 않나. 법비들처럼은 아니라도 전문가들이 방법을 찾아 주면 좋겠다.
다시 한번 확인한다. 조국은 사면 대상이 아니라 재심의 대상이다. 조국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김민재 행김민재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지급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1차 지급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1일부터 9월 12일까지 전국민에게 1차로 1인당 15~45만원을 지급한 뒤 소득 선별 절차를 거쳐 9월 22일부터 2차로 1인당 1만원을 추가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2025.7.5 ⓒ뉴스1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오는 21일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은 5일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차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김 직무대행은 “우리 경제의 소비 여력을 신속히 보강하면서도 소득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도록 1차는 전 국민, 2차는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을 대상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단계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신속한 소비 진작을 위해 1차 지급을 먼저 시작하고, 2차 지급은 소득 선별 과정을 거쳐 9월 22일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 설명에 따르면, 1차 지급은 국내·외 거주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5만원이 지급된다. 차상위 계층과 한부모 가족 대상자는 30만원을, 기초생활수급자는 40만원을 받는다.
여기서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에게는 3만원이 추가로 지급되고, 농어촌 인구 감소 지역 84개 시군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에게는 5만원이 추가 지원된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신청 가능하며,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지역사랑 상품권과 선불카드 등 사용하기 편리한 수단을 선택해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지급을 원할 경우, 이용 중인 카드사의 홈페이지나 앱, 콜센터와 ARS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카드와 연계된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신청한 다음 날 소비쿠폰이 지급되고, 사용가능한 매장에서 결제할 경우 일반 카드 결제보다 먼저 사용된다.
지역사랑 상품권 지급을 희망하는 국민은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사랑 상품권 앱 또는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한 다음 날 지급된다.
아울러, 온오프라인 신청 모두 첫 주에는 혼잡 및 시스템 과부하를 막기 위해 출생 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요일제를 적용한다. 가령, 월요일에는 출생 연도 끝자리가 1, 6인 경우, 화요일에는 출생 연도 끝자리가 2, 7인 경우 신청하는 방식이다. 주말에는 모두 신청 가능하다.
소비 진작과 지역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만큼 사용 지역과 사용처, 사용기한에는 제한이 있다.
우선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주소지 관할 특별시, 광역시, 또는 시군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선불카드는 사용 지역 내 백화점, 대형마트, 유흥업소를 제외한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업종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으며, 지역사랑 상품권은 상품권 가맹점에서 사용 가능하다. 구체적인 사용 가능 업종은 지자체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차 신청 기한은 21일부터 9월 12일까지로, 이후에는 신청과 지급이 종료된다. 사용 기한은 오는 11월 30일까지며, 사용하지 않은 잔액은 환수될 예정이다.
정부는 오는 14일부터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국민비서 알림서비스와 콜센터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기사입력 2025.07.05. 09:59:05 최종수정 2025.07.05. 09:59:06
그간 몇 년 동안 우리 모두는 실로 충격의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임기 내내 모든 국민들에게 계속 충격을 안겨주었던 윤석열 정권은 급기야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와 선관위에 무장군인을 출동시키면서 내란을 획책함으로써 엄청난 충격은 그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란수괴 윤석열의 망동은 결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간난신고 끝에 윤석열을 간신히 체포할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귀연의 희한한 셈법과 심우정 검찰총장의 이심전심에 의해 어이없이 석방되어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결국 6월 3일 대통령선거로 윤석열의 내란에 가까스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그 완전한 종식은 특검에 의해 내란세력의 범죄가 엄중하게 단죄될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타운홀 미팅, '문제해결형' 정치지도자의 출현
새로운 민주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호남의 마음을 듣다-호남 곁으로, 이재명 대통령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른바 '타운홀 미팅' 방식이다. 국정 최고 지도자가 직접 국민 곁으로 다가가 국민과 대화하면서 현안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다.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와도 정확하게 부합된다.
이 지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여태 볼 수 없었던 '문제 해결형' 정치지도자가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이미 각종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동시에 강력한 추진력으로써 문제 해결을 수행해온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터였다. 일부 내부세력의 음모와 윤석열 검찰의 결탁으로 난도질 당한 대장동 사업도 본디 모범적 공영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아야 마땅했었다.
이재명 정부, DJ와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문제 해결 측면에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바가 적지 않았다. 세월호 진상 조사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임기 내내 거의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의 준비가 아니라 촛불시민들의 박근혜 탄핵으로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이번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과정은 민주당이 계엄 해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후 과정에서도 시민과 함께 '빛의 혁명'을 완수하기까지 계속 핵심적인 역할을 다해왔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박정희에 의해 엄청난 수난을 겪어야 했던 DJ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검찰정권 내내 막가파식 정치보복에 의해 그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날 정도로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DJ처럼 투쟁과 실력이라는 '내공'을 축적시켜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치와 외교 양 측면 모두 성과가 기대된다
DJ는 박정희 구시대에 의한 희생자로서 민주주의의 복원 그리고 IMF 체제라는 국가채무 사태라는 당시의 긴급한 과제의 수행이라는 시대적 조건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박정희의 계속된 잔인한 제거 도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컸던 만큼 미국과 일본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외교적 조건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조건들은 IMF 극복과 민주주의의 복원을 이뤄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되는 부정적 측면을 초래한 한 요인을 낳았다.
DJ와 정치인 이재명은 많이 닮아있다.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의지와 해결 능력에서 뛰어났다는 점 역시 상당히 닮아있다. 다만 DJ는 박정희 구시대의 희생자로서 구시대 정치라는 시대적 조건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인권이나 평화 그리고 여성이라는, 상대적으로 추상적 민주주의의 복원이라는 차원에 제한되었다. 이에 비해 이재명은 DJ와 달리 미국이나 일본에 빚을 진 적이 없다. 그리고 정치인 이재명에게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목표가 있었던 DJ의 개인적 욕망 같은 것도 특별히 발견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이다. 외교가 특별히 중요한 이 나라에서 정책의 조타수로서 운신의 폭이 훨씬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 치하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야 했던 우리 국민은 안온한 삶이 절실하다. 국민에게 위로가 필요한 때다. 새로 출범한 국민주권 정부가 계속 국민들의 성원 속에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우리 시대의 과제를 수행해나갈 것을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차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6일 윤석열을 지키기 위해 김기현, 나경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앞에 모였다. ⓒ뉴시스
2024년 22대 총선도 윤석열의 내란 준비 과정의 일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국민의힘은 대통령실 출신, 윤핵관 등 다수의 친윤 핵심 인사들을 경선 과정 없이 단수로 공천했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강변했지만, 사실상 당을 친윤 일색으로 재정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서울 용산(권영세), 서초갑(조은희), 송파을(배현진), 강릉(권성동), 부산 사상(김대식) 등 주요 지역은 모두 ‘친윤 안전벨트’로 평가됐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출신 강승규, 안보실 2차장 출신 임종득, 법률비서관 주진우 등 용산 참모들도 그대로 국회에 입성했다.
비윤으로 분류된 현역 의원과 유력 후보들은 컷오프되거나 자진 사퇴 압박을 받았다. 이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았다”, “경선 여론이 압도적임에도 단수공천을 강행했다”고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22대 총선은 국민의힘을 친윤 세력으로 채우는 과정이었다. 친윤 단수공천으로 국민의힘은 친윤 정당이 되었다. 이후 당내 반윤 움직임이 원천적으로 저지되는 구조가 완성됐다.
12.3 내란을 통해 친윤 공천의 목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친윤 의원들로 채워진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해제를 막으려고 시도했다. 이후에는 윤석열의 내란을 필사적으로 옹호했다. 심지어 윤석열의 구속영장을 막기 위해 집단행동도 불사했다.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동조·옹호 정황이 드러난 핵심 인물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계엄 당일 윤석열과 전화 통화를 한 인물은 추경호, 윤상현, 나경원, 인요한으로 확인됐다. 또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으로는 추경호, 신동욱, 김대식 등이 있다. 이외에도 권성동, 주진우, 김기현, 김민전 등은 내란을 부정하고 윤석열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다. 이들이 내란 범죄에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철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22대 총선에서의 친윤 공천은 내란을 위한 사전 준비였다. 국민의힘은 그 이후 국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내란 정당으로 전락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내란 동조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22대 친윤 공천 목록
강승규 – 충남 홍성군예산군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출신. ‘윤핵관’ 중 한 명. 홍문표가 공천 경선을 포기해 단수공천.
강민국 – 경남 진주시을
당시 현역 의원. 단수공천으로 김재경, 김병규 등 경쟁자들 강한 반발.
권성동 – 강원 강릉시
대표적인 ‘친윤 핵심’. 경선 경쟁자인 오세인 후보, “교체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의사를 묻지도 않냐?”라고 반발. 친윤 공천의 대표적 사례.
권영세 – 서울 용산구
친윤 핵심 인사들 단수공천의 전형적인 사례. 서울 내 국민의힘 우세지역, ‘친윤 안전벨트’ 공천
김대식 – 부산 사상구
전 경남정보대 총장.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지역인 부산 사상구에 경쟁자 없이 단수공천. 예비후보 송숙희, “단수공천은 부당하고 공정하지 않다”며 1인 시위
김미애 – 부산 해운대구을
원내대변인, 비대위원 등의 당직 수행. 경선 없이 단수공천으로 재선.
김선동 – 서울 도봉구을
‘친윤계 단수공천 라인’으로 윤심 공천 논란. 서울 내 국민의힘 우세지역, ‘친윤 안전벨트’ 공천
김일호 – 서울 강서구병
윤석열 인수위 전문위원 출신. 김성태 전 의원이 부적격으로 판정. 비윤 숙청을 위한 컷오프 논란
김태호 – 경남 양산시을
김태호 의원은 단수공천. 비윤계(윤종운, 한옥문) 컷오프. 친윤 밀어주기 논란.
박정하 – 강원 원주시갑
경선 없이 단수공천. 용산과 연결된 친윤계 인사라는 평가. 용산라인 중심의 공천 논란.
대통령실과 연결된 친윤계 인사로 분류되며, “용산라인 중심의 단수 공천” 논란 대상
박수영 – 부산 남구갑
친윤계 단수공천. 친윤계 단수공천, 현역 우선 형태의 공천.
배현진 – 서울 송파구을
윤석열의 신임을 받는 현역 의원 중 1명으로 평가. ‘친윤 안전벨트’ 공천
송석준 – 경기 이천시
윤핵관 라인과 원만히 호흡한 친윤 성향. 국민의힘 경기도당 위원장을 지내며 수도권 조직 관리,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실행 지원.
신동욱 – 서울 서초구을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캠프 대변인단 출신. 비윤으로 평가받던 박성중 현역 의원을 제치고 단수공천.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홍보했으나, 사실상 친윤공천.
윤한홍 – 경남 창원시마산회원구
대표적인 윤핵관. 친윤 핵심 인사 단수공천 사례 중 하나
이철규 – 강원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
권성동 원내대표 시절 국민의힘 사무총장. 친윤 핵심으로 평가. 당시 장승호 당 중앙위 부위원장 출마 포기로 단수공천.
임종득 – 경북 영주시영양군봉화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2차장 출신. 친윤계 공천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
정동만 – 부산 기장군
친윤 초선 연판장에 참여한 인물. 장원필, 권우문 등은 단수공천으로 인해 사실상 컷오프.
정성국 – 부산 부산진구갑
전 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예비후보가 8명(박성훈, 원영섭, 이수원 등)이었음에도 단수공천. 다른 예비후보들 “영입 인재라는 이유로 경선도 없이 단수공천을 줬다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시간을 끌었다는 뜻”이라고 반발
조은희 – 서울 서초구갑
2022년 서초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당시 윤석열·김건희 공천개입 확인. 명태균이 여론조사 문항 조작, 책임당원 명단 제공. 2024년 총선에서 단수공천 받아 재선.
조지연 – 경북 경산시
윤석열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최경환(무소속)과의 대결. 지역 내에서 “공천이 너무 늦어졌고, 경쟁 없이 단수로 결정됐다”는 비판과 우려.
주진우 – 부산 해운대구갑
윤석열 법률비서관, 검찰출신. 용산 핵심 참모로 지역에 단수공천 됨. 예비후보였던 박지형, 전성하, 박원석 등 특혜 공천 비판 제기.
추경호 – 대구 달성군
윤석열 정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친윤 핵심 인사. 단수공천으로 바로 본선 후보자로 확정
"내가 갚을 능력이 되는데 7년이 지나면 빚을 탕감해줄지 모르니, 신용불량자로 7년을 살아 보겠습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민생안정 차원에서 빚을 갚지 못해 이자에 허덕이는 취약차주의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한 정책을 두고 일각에서 '도덕적 해이론'이 고개를 들자 이같이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민소통 행보, 충청의 마음을 듣다' 행사를 열고 채무를 탕감해주는 정책이 왜 필요한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토론과 질문을 하는 타운홀 미팅 형태로 해법을 찾는 국민소통 행보 2탄"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군 공항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호남 지역을 찾아 타운홀 미팅을 가진 바 있다.
이번 충청지역의 타운홀미팅의 주제 중 하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악성채무 해소 방안'이다. 정부는 민생안정 차원에서 7년 이상 5천만원 이하로 연체된 113만명의 16조원 규모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장기 연체 채무를 탕감해주자고 하니 '도덕적 해이 불러오는 거 아니냐, 그러면 누가 갚겠냐', '나도 앞으로 안 갚을래' 하면서 이거 문제 있다는 주장도 있다. 거기에 동의하는 국민이 여론조사상으로 보면 더 많으신 거 같다"며 "그런 문제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지역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중한 단비와 같은 소식"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채권자 입장에선 "국가의 명령에 의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손해를 봐야만 하느냐"는 반론이 나왔다.
이에 이 대통령은 "왜 정부가 나서서 내가 개인적으로 빚을 받아야 하는데 채무 조정이니 파산이니 마음대로 결정해서 채권 1000만원을 200만원으로 깎느냐는 것"이라며 "맞는 말"이라고 일단 공감을 표했다. 다만 "우리가 대체적으로 정책적으로 채무탕감이니 이런 얘기를 할 때는 금융기관 대출을 얘기하는 거지 개인간 대출에 대해서는 통제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정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회생제도나 파산제도는 상당히 오래된 제도"라며 "이건 돈을 빌려준 사람과 돈을 빌린 사람 사이에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돈을 빌려준 데에 이자까지 약정한 데로 받으면 좋다. 그런데, 영영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돈을 빌려줬는데 이 사람이 갚을 능력 없는 경우다. 그럼 장기를 팔아야 한다. 요새는 밤에 전화하는 횟수를 제한하지만, 예전엔 밤새도록 전화해서 (돈을 갚으라고) 괴롭히는 게 허용될 때도 있었다"며 "이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대통령은 "원금에 이자를 늘려봐야 재기 불능이다. 그러려니 차라리 공평하게 딱 깎아주고 갚게 해야 죽은 채권도 살아나서 현실적인 돈이 되지 않겠나"라며 "그게 파산, 회생 제도다. 국회를 통해 국민의 합의한 거라서 싫어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금융기관들 경우는 이걸 빌려주면 몇 프로(%)는 빚을 못 갚는다. 그런데 이건 이자를 얹어서 미리 다 받았다"며 "못 갚는 걸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 사실 부당이득이다. 10명 중 1명이 못 갚을 걸 봐서 9명에게 다 이자를 받았는데, 못 갚는 1명을 끝까지 쫓아가 받으면 그게 부당이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건) 사실 정리해주는 게 맞다. 그게 형평성에 맞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당하는 사람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봐라. 죽을 지경일 것이다. 이러다가 죽을 거 같으니 차라리 죽자 하면서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채권자와 채무자의 복잡한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빚을 지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통장거래도 못하고, 회사에 취직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도 못한다"며 "사회적으로 보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온다. 정부 입장에선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선 채무 탕감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만 있는 게 아니고 전 세계에 다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 앞으로 채무 탕감을 위해 7년 동안 빚을 안 갚는 사람들이 생기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니 채무 탕감을 해주지 말자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제가 사실 오늘 대전에 와서 이 문제를 얘기하고 싶은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분, 내가 갚을 능력이 되는데, 7년 지나면 탕감해줄지도 모르니 신용불량자로 7년을 살아보겠는가. 압류당하고 경매당하고 통장거래도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은행 거래도 안 되고 , 아르바이트도 못하는 삶을 7년 살아보겠는가. 그렇게 빚을 탕감받기 위해 7년을 버틸 수 있겠나"라고 물으면서 "7년 동안 못 갚은 원리금 5천만원 이하의 빚을 탕감해주면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서 안 갚을 사람이 생길 테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물론 있을 수 있다. 제가 변호사를 할 때 보니까 진짜 있긴 했다"며 "그러나 극소수였다. 그런 몇몇 사람들 때문에 7년 동안 빚을 못 갚아서 신용불량으로 경제생활도 못하고 버티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의 빚을 정리해주는 것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사회경제적으로도, 인도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냐. 채권자 태도에서 합리적인 것이냐"고 따졌다. 이어 "오히려 장부 관리 비용을 따지면 손해가 더 크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채무자의 입장도 반영해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학원을 운영한다는 대전 동구의 한 시민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건 소용이 없다"며 "채무 탕감에 대한 부분이 진행된다면 거기에 대한 투트랙으로 성실상환자에 대한 핀셋정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옳은 말씀"이라며 "이번에 추경에 편성된 사업에도 성실상환자에 대한 대책이 많이 들어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실무자인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에게 관련 대책을 요약해 설명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모든 정책은 매우 상대적"이라며 "사회의 기본은 연대"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근본적인 건 자영업자 너무 많다. 물론 자영업나 소상공인도 아주 생산성 높은 고급 서비스업이면 권장해야 한다. 그런데 동네 식당, 치킨집과 같은 단순 노동에 가까운 자영업이 많다"며 "직장이 없으니 그거라도 하는 거다. 우리는 실제로 실업 상태이고 상당 부분이 자영업으로 스펀지처럼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론 경제성장을 회복해야 한다. 일자리를 많이 늘리고 기업도 많이 늘리고 국민전체 소득을 올려야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의 길이 열린다. 지금은 서로 너무 무한경쟁 아니냐"며 "제가 경제성장 노래를 부르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날 타운홀미팅의 또 다른 주제는 '과학기술 발전 방향'으로 카이스트(KAIST) 교수를 비롯해 과학기술계 종사자들도 다수 참석해 의견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여기 대전은 과학중심 도시 아니겠나. R&D 관련 취업 인구가 가장 많을 거 같다"며 "전에(윤석열 정부 때) 황당무계한 R&D 예산 대규모 삭감에 직접 폭격을 맞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어떤 산업부분을 살릴 거냐는 정책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 새 정부에서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기술산업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지원하고 육성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그중 핵심은 연구개발 R&D와 인재 양성"이라고 강조했다.
배석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은 "저도 과학자다. 학위 시절부터 불합리함이 있던 걸 실제 체험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께 말씀드렸던 것 중 하나가 전반적 체계, R&D의 기획, 예산관리, 평가, 선발에 대해 손볼 필요 있다는 것이었다"며 "과학기술부와 함께 테스크포스팀을 띄워서 연구와 과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 첫번째 행사로 오늘 경청한 거고, 저도 계속 현장을 찾아 들을 것"이라며 "머지않은 미래에 그 결과를 발표해서 여러분들께 개선된 대책안을 공유해드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항의 집회 중인 농민단체의 의견을 듣고 있다. 이들 단체는 '농업4법'을 '농망4법'이라고 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을 반대하며 송 장관이 물러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025.7.4. 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는 4일 오전 9시 30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직후 대통령실 맞은편의 전쟁기념관 앞 보도에서 농성 중인 농민단체 대표들을 만나 그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줬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농민단체 대표들에게 김 총리는 "지난 정부 장관을 한분 유임하는 것이 전체 국민통합이라는 흐름"이라고 설득하면서도, '대통령과 미팅' 등의 약속을 하기도 했다. 김 총리는 이후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국회를 찾아 우원식 국회의장을 접견했다.
이 대통령은 김 총리에게 임명장 및 위촉장을 수여한 뒤 환하게 웃으며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후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가벼운 다과와 함께 환담을 나누며 "총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 운명이 바뀐다"며 "장관들이 임명되기 전이라도 차관들과 급한 업무를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이에 "새벽 총리가 돼 국정 운영의 체감 속도를 더 높이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정의 논의와 집행에 있어 과정과 절차가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며 "만약 업무에 착오, 오류가 있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임명장을 받은 직후 오전 11시경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가서 농민단체 대표를 만났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등 8개 단체가 결성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은 지난달 30일부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이며 이 대통령과의 면담도 요구하고 있다. 농민단체는 송 장관이 '농업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을 '농망4법'(농업을 망치는 4개 법)이라고 했다며, 송 장관이 물러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김 총리는 농민단체 대표들을 만나 1시간에 걸친 면담을 하면서 대표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송 장관 유임 배경을 납득시키는 데 주력했다. 김 총리는 농성장 깔판에 신발을 벗고 앉아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항의 집회 중인 농민단체와 면담하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들 단체는 '농업4법'을 '농망4법'이라고 했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을 반대하며 송 장관이 물러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025.7.4
농민단체 대표들은 김 총리에게 송 장관 유임 결정에 납득할 수 없는 심정을 말했다. 과거 정부의 농업정책으로 점점 힘들어지기만 하는 농민의 현실에 대해서도 전했다. 김 총리는 농민단체 대표들의 말에 경청을 하고 메모를 했다. 더운 날씨에 양복 상의를 탈의하고 넥타이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김 총리는 농민단체 대표에게 "새 정부에서도 지난 정부의 장관을 한분 정도는 유임하는 것이 전체 국민통합이라는 흐름을 봐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면서도 "100% (농민들의) 마음에 공감이 된다. 충분히 문제 제기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어 "대통령이 식량 주권, 식량에 대한 안보, 농업 주권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또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농정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강하다"며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직은 불신하지 말아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 총리는 또 "송 장관도 아마 유임 선택을 본인이 받아들이고 결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면서도 "그런 입장에 처한 장관이라면 저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왜 나오는가 이해하고, 표현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저도 (송 장관을) 뵙게 되면 거취 문제와 상관없이 (이런) 말씀을 드리겠다"고 농민단체 대표에게 약속했다.
김 총리는 아울러 "(대통령이) 유임을 한둘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누구를 해도 쉽지 않다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며 "내란 과정에서 (송 장관의) 관여 정도가 덜한 것 아니냐는 판단도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농민단체 대표들은 김 총리가 취임한 첫날인 것을 고려해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2주 안에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고, 대통령과의 미팅을 검토해 달라는 것이다. 김 총리는 "총리 공관으로 초대해도 좋고, 청사 집무실로 초대해도 좋고, 차 한잔하면서 얘기를 한 번 더 하자"며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민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 생기면 반드시 농민들과의 대화가 우선순위에 들어가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김 총리는 농민 대표들에게 "가급적 고생의 시간을 줄여주시면 좋겠다"며 "남태령을 넘느라고 그 고생을 한 걸 저희가 아는데, 죄송하다"고 노숙 농성 해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농민단체 대표들은 향후 농성 계획은 내부 논의를 거쳐서 결정하기로 한 상황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4일 국회의장실을 예방한 김민석 국무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2025.7.4. 연합뉴스
김 총리는 이후 오후엔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국회를 찾아 우원식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우 의장은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 불안정성, 민생의 어려움, 대외적 불확실성 이런 복합적으로 위기가 맞물려있는 참으로 어려울 때"라며 "이제 국정은 흔들림 없이 민생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에 김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께서 한 국무위원을 향해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런 마음으로 국무총리도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헌법 기관인 국회를 민주주의의 맏형처럼 존중하는 마음으로 와서 (지금) 앉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또 "앞으로 저희가 함께 걸어왔던 민주주의의 길, 배워왔던 민주주의의 역량 이런 것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특별히 지금은 제2의 IMF 위기처럼 어려운 때이기 때문에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가 올바른 길을 가고 민생을 살리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늘 말씀을 청하고, 듣고, 협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인 윤석열과 12·3 내란 사태를 주도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전 장관이 대북도발에 동원된 의혹을 받는 군 부대들에 연이어 같은 이유로 격려금을 전달한 것이어서 외환 혐의 관련 내란 특검팀의 수사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인한 '2024년 10월 군인복지기금(장병격려비) 자금청구' 내역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2024년 10월 23일 국군 심리전단에 "군사대비태세 유공" 명목으로 300만 원을 지급했다. 이보다 앞서 북한 국방성이 발표한 무인기 침투날인 10월 8일에도 김 전 장관은 드론사에 같은 명목으로 300만 원을 지급했다.
이에 대해 추미애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대령급 부대의 경우 장관 격려금이 100만 원 정도 지급되는 것이 통상적인데 국군 심리전단에는 300만 원이 지급됐다. 더군다나 지난해 10월은 무인기가 연달아 북한에 들어가 삐라가 살포돼 대북 긴장감이 고조되던 시기"라며 "김 전 장관이 왜 하필 그 시기에 대북 도발에 동원된 것으로 의심받는 부대들에 격려금을 하사했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군 심리전단은 대북 심리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로 라디오·확성기·전단·LED전광판 등을 활용하는 대북 심리전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국군 심리전단, 수백만장 대북전단 살포하며 비정상적 군사활동"
▲한국이 평양에 살포한 대북전단(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은 11일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대북전단.2024.10.11 ⓒ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해 10월 11일 외무성 발표를 통해 "한국 무인기가 이달 3일, 9일, 10일에 평양에 상공에 침투해 전단을 살포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 외환유치진상조사단(아래 조사단)은 철원 소재 국군 심리전단이 최소 수백만장의 대북전단을 살포하며 '비정상 군사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단은 지난 1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 국군심리전단 근무자가 제보한 바에 따르면 철원읍 중세리 소재 특정 지역서 국군심리전단 소속 중대가 대북전단 수백만장을 살포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군 심리전단이 살포한 삐라 중 일부는 북한이 공개한 것과 동일하다는 제보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시 국방부는 조사단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정상적인 군사활동과 조치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계엄상황과 결부시켜 지속적으로 '북풍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조사단은 "국군 심리전단 일부 중대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최소 5차례 이상 50여 만 장의 대북전단이 북한에 살포했다. 살포 시점도 민간단체가 인근지역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는 시점을 택해 군의 직접 살포를 은폐했다는 제보도 있다"며 "지난해 10월에는 지휘관이 '다른 소대나 합참도 모르게 진행한다'고 지시한 제보 내용도 있다"고 주장했다.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검)은 12·3 내란 사태뿐만 아니라 윤석열·김용현 등의 외환 혐의 역시 주된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고자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키고 대북 전단을 뿌려 군사도발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외환 혐의의 핵심 내용이다.
외환유치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중대범죄다. 준비만 했거나 미수에 그쳤어도 처벌받는다(형법 제92, 100, 101조). 내란 특검은 외환 유치 의혹을 받는 윤석열에 대해 "7월 5일 오전 9시에 출석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위험의 외주화 공장, 태안화력] ③ 고 김충현 동료들 불법파견 소송…"하청, 사람 싸게 실컷 부리는 수단"
기자 | 기사입력 2025.07.04. 05:01:21
16일 충남 태안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정철희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이 사진 하나를 보여 주며 물었다. 남색 작업복을 입은 10여 명의 태안화력발전소 원·하청 정비 작업자들이 대기실에서 쉬는 사진이었다.
"누가 원청 직원이고, 누가 하청 직원인지 구분이 돼요?"
함께 촬영된 사진은 수두룩했다. 터빈, 전기차단기, 고압전동기, 크레인 등 화력발전소 현장 곳곳에서 원·하청 직원이 한 팀처럼 일해 왔다. 원청은 한국서부발전의 협력사이자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이지만, 하청은 특정하기 어려웠다. 수개월에서 1여 년 단위로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철희 분회장은 현재는 '삼신' 소속이다. 한전KPS의 하청으로, 태안화력을 운영하는 서부발전의 2차 하청업체다. 한전KPS는 서부발전으로부터 태안화력의 경상정비를 도급받았다. 한전KPS는 이 중 일부를 전기 부문과 기계 부문으로 나눠 전기 정비는 삼신에, 기계 정비는 한국파워O&M에 재하도급했다. 지난 6월 산재 사망한 고 김충현 씨는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한전KPS 직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2022년 전 함께 작업 대기실에서 쉬는 모습.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한전KPS 직원과 하청 직원지 발전소의 설비를 함께 점검 중이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다만 혼재 작업은 2022년 6월부로 끊겼다. 2차 하청노동자 24명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낸 직후다. 2009년 입사했던 정 분회장은 13년간 원청 직원들과 함께 일해온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원청이 더 괘씸하다. 그는 "힘든 일에 사람은 실컷 부리고 싶은데 돈과 권리는 챙겨주기 싫으니, 불법파견을 해 온 것"이라며 "'도급 계약'이란 외피로 차별과 불법을 합법처럼 가장해 왔다"고 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6월 태안화력 경상정비 2차 하청노동자 3명을 만나 이들의 노동 이야기를 들었다.
발전소에 하청노동자 손길 안 닿은 데 없다
경상정비는 발전소가 작은 문제도 없이 원활히 가동되게끔 설비 하나하나를 직접 손 보고 관리하는 일이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현장에 가 확인 후 점검·수리하고 예방 정비도 하며, 발전을 멈추고 집중 정비(계획예방정비공사)를 할 때엔 분해, 청소, 점검, 조립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터빈, 보일러, 발전기, 전동기, 차단기, MOV(전동기 구동 밸브), 변압기, 탈황시설 등 발전소 내 대부분 설비에 관여한다.
가령 고열 설비의 열전도를 차단하기 위해 각 설비를 보온재로 일일이 다 감싸야 하거나, 설비 특정 부분에 문제가 발생해서 보온재를 분해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작업자가 출동한다. 유리 섬유로 된 보온재는 피부에 박히면 따갑고 기도로 들이마시면 폐질환도 유발한다. 안전모, 보안경, 마스크, 작업복, 안전화에 더해 통풍이 전혀 안 되는 보호복까지 착용하고 고열 설비에 올라야 해 노동 강도가 높다.
윤활유 관련 설비를 관리하는 주유 업무도 고되다. 발전소 내 회전 설비는 모두 윤활유가 필요해 오일탱크 등의 밀폐공간이 한 호기마다 5~6개씩은 있다. 정비 작업자는 기름이 모자라면 보충하고, 기름이 샜으면 점검·수리하고, 탱크 청소도 맡는다. 작업자 동선 고려 없이 무작위로 설치된 기둥과 배관 때문에 무거운 펌프, 드럼통 등을 탱크로 운반하는 것부터 어렵고 위험하다. 탱크를 청소할 땐 바닥에 수북이 침전한 각종 슬러지, 부산물들을 직접 긁어내고 유해물질을 함유한 세척제로 탱크 벽을 직접 다 닦아내야 한다.
기계 정비원 최아무개 씨는 "한전KPS와 하청 노동자들은 소송 전까진 서로 뒤섞여 팀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아침마다 하청업체 소장이 한전KPS 건물을 들러 업무를 받아왔다. 가면 '작업현황판'에 오늘의 업무와 작업조가 다 적혀 있었다. 주로 원청직원이 조장, 하청직원이 조원으로 꾸려졌다. 소장이 하청 사무실로 오면 간단한 회의를 하고 '오늘 너 무슨 설비에 일 있대. 네 조장(원청직원)한테 전화해서 가봐'라고 전한다. 이렇게 각자 자기 현장으로 가서 맡은 일을 하는 게 일과였다. 정 분회장은 "당시는 업무 범위도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아, 이 작업, 저 작업 시키는 일은 다 했다"며 "문자, 전화로도 수시로 작업지시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노동강도는 집중 정비 기간에 가장 셌다. 한 호기당 평균 2년 터울로 가동을 멈추고 설비를 모두 분해해 점검하는 기간이다. 볼트 하나만 해도 지름이 성인 남성 손을 펼친 길이보다 크고, 길이도 팔 길이보다 길다. 꽉 맞물려 있어 산소 용접기로 일일이 가열해야 볼트가 빠졌다. 특히 수백 킬로그램(kg)에서 수백 톤에 달하는 중량물을 일일이 분해하고 크레인으로 옮겨야 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공사 기간은 1~2달로 촉박하게 정해져 있어 매일 3시간씩 연장 근무하고 주말마다 일했다. 기계 정비원 조아무개 씨는 "매달 시간 외 근무만 100시간이 넘었다"고 말했다.
▲소송 전 한전KPS에 걸린 작업현황판. 정비원엔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이 한 조로 구성돼 적혔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2013년 5월 EBS에서 방영된 '극한직업-석탄화력발전소24시' 화면 갈무리. 작업자들이 터빈 설비 근처에서 산소용접기로 설비를 가열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하청 직원들은 위 사진처럼 함께 일했다. ⓒEBS유튜브
장비 없는 정비업체… "드라이버도 빌려 써"
정 분회장은 "이상한 건 한전KPS는 서부발전에서 각 공사를 받아올 때 일일이 계약을 하면서, 이를 하청에 시킬 땐 계약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즉 집중 정비 공사만 해도, 한전KPS는 서부발전으로부터 따로 대금을 받아오면서 2차 하청노동자들에겐 그냥 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한두 건이 아니었다.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IGCC(석탄가스화 복합화력발전소) 경상정비도 이들이 맡았고,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 정비도 계약 없이 맡았다. 결국 하청 직원들이 항의하자, 다음 해 재하도급 계약서에 이 업무가 슬쩍 추가돼 적시됐다.
이들은 당진, 영흥, 평택 등 한전KPS의 다른 화력발전 사업장으로 파견 근무도 갔다. 재하도급 계약 범위에 적히지 않은 일이다.
정 분회장은 이 현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수상 태양광 정비 일화를 들었다. 서부발전은 태안화력 부지 내의 해수면에 부표를 띄우고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2016년경부터 가동하고 있다. 정 분회장은 "거긴 바람이 정말 강하고 물살도 세다"며 "3년 전쯤 부표랑 패널이 전부 한쪽으로 쏠리고 부서져 떠밀려 왔었다. 이 정비를 그대로 하청 노동자들이 떠안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냥 구명조끼 하나 입고 바다에 빠지면서 작업하는 거예요. 중간 중간에 부표들을 연결한 볼트가 부서졌고 케이블도 끊겼어요. 일일이 부표 위에 엎드려서 볼트를 조여야 해요. 물속에 손 넣고 하는 거죠. 물살이 정말 세고 수심이 깊어요. 20~30미터(m) 밧줄 20타 정도 사서 일일이 다 연결해서 양쪽에서 조심스레 당기고, 또 당기고. 감전 위험도 있는데. 어떻게 정비하라는 말도 없이 그저 '알아서 해라'는 식이어서, 저희 소장이랑 직원 13명 전원이 머리 맞대고 방법 찾아가면서 땡볕인 7월부터 3개월간 했어요. 계약서에 적힌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거 다른 회사에 맡기면 수십억 원대 공사예요. 저흰 한 푼도 못 받았어요."
2차 하청의 공사 대금의 약 96%는 노무비다. 정 분회장은 "공구 하나 살 돈도 없다"며 "드라이버 하나까지 한전KPS의 것을 빌려 쓴다"고 했다. 중량물을 다루면서도 운반 차량 등이 없으니, 주변에 있는 철제 리어카로 직접 낑낑거리며 먼 거리를 운반하거나, 개인 차량을 이용할 때도 가끔 있었다.
초기엔 사무실도 열악했다. 패널로 세운 임시 건물이었는데, 전체 직원 12명이 다 앉을 수 없을 만큼 좁았다. 책상, 의자를 넣지 못해 바닥에 앉아 쉬어야 했다. 그래서 근무 시간 중엔 사무실에 들어오는 직원이 적었다. 정 분회장은 "현장에 의자가 있으니 차라리 현장이 더 편했다"고 말했다. 2017년경, 태안화력의 9~10호기가 건설되면서 같이 지어진 정비동 건물에 지금의 사무실이 마련됐다. 하청업체는 이를 별도 계약 없이 무상으로 제공받고 있다.
▲2022~2023년 하청노동자들은 한전KPS 직원으로부터 카카오톡(왼쪽)과 전화(오른쪽)를 통해 수시로 업무 지시를 받았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2017년경 새 사무실이 마련되기 전의 사무실 전경. 공간이 좁아 책상, 의자를 넣을 수 없어 바닥에 앉아 회의했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16년간 15번 근로계약... 오는 8월 1심 선고
이들은 지난 2022년 노조를 만들었다. 정 분회장은 일방적인 임금 삭감, 포괄임금제, 주말 출근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고 말했다. "당시 원청이 갑자기 '그동안 계산이 잘못됐었다'며 공사 대금을 낮춰, 한 달 30만 원 정도 월급이 깎였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만큼 매년 5~7만 원씩 월급을 올려 받았던 이들이었다. 정 분회장은 "이마저 힘들게 싸워서 오른 건데, 갑자기 5년 전 월급으로 회귀했다"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는 이 구조가 정말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또 포괄임금제처럼 월급이 지급돼 연장근무를 해도 제대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았다. 동시에 주말 새벽 출근은 늘었다. 주말 동안 발전소 가동을 중지하면서 금요일 밤 11시, 월요일 새벽 4시 출근을 해야 했다. 발전소는 가동을 중지하거나 재개할 때 3~4시간이 소요된다. 원청 직원 1명, 하청 직원 1명이 한 조로 이 일을 맡았다. 이렇게 야간 근무를 도는데도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십수 년 누적된 불만이 2022년경엔 폭발하면서 한전KPS의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지난 2009년부터 16년간 근무한 정 분회장은 그동안 하청업체 15곳과 근로계약서를 썼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업체만 바뀌었다. 이 구조는 많은 권리를 앗아갔다. 근속수당은 언감생심이고, 연차유급휴가는 늘 15개였다. 노조 설립 전엔 임금 인상 속도도 더뎌, 정 분회장은 2019년 11년 차 중견 기술자였음에도 세금을 제하면 매달 260만 원을 급여로 받았다.
정 분회장은 "매년 다음 하청업체로 고용 승계가 이뤄질 시기, 원청 관리자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은 재고용이 안 되는 문제도 있었다"며 "(이런 노무관리가) 엄청, 엄청, 엄청 심하다"라고 말했다. 은행 대출을 하러 갈 때도 매번 벽에 부딪혔다. 최 씨는 "쪼개기 계약을 하니 오래 근속해도 서류 상엔 고작 몇 개월 근무로 나와, 몇 개월 더 일하다 다시 대출하러 가야 하는 식"이라며 "처음 심사 땐 '대출 안 될 수도 있어요'란 말을 먼저 듣는다"고 했다.
이들이 결국 2022년 6월 "우리는 원청의 직원처럼 일했다"라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낸 이유다. 한전KPS는 이후 팀 작업을 없앴고, 재하도급 물량 범위도 바꾸었다. 터빈, BFP(보일러 급수 펌프) 등 공사 대금이 더 높은 주요 설비를 떼어 내 원청 업무로 돌렸고, 나머지 설비를 하청업체에 외주화했다. 조 씨는 "단가가 더 낮은 설비, 힘들거나 귀찮고 더러운 일들을 다 밀어 넣었다"며 "근데 주요 설비도 처음 준비작업, 마지막 정리작업은 하청에 시킨다"고 말했다.
조 씨는 "더 화가 나는 건 하청 직원들이 10년간 고쳐 달라고, 고쳐 달라고 할 땐 듣지도 않더니, 본인들이 그 일을 맡으니 바로 작업환경을 개선했던 점"이라고 했다. 수백 킬로그램(kg)이 넘는 중량물을 체인블록(사람이 줄을 직접 당겨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도구)만 써서 힘들게 운반해야 했던 현장들이 있는데, 소송 이후 해당 설비를 원청이 전담하면서는 호이스트(크레인 일종)가 생겼다.
한전KPS는 소송에서 "이 사건 하청업체들은 경영상 독립성과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업체이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법원은 묵시적 근로관계에 대해 일관되게 소극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근로자 파견 관계에 대해서도 법원은 과거에 비해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 선고는 오는 8월 28일 오전 9시 50분 서울중앙지법 민사 법정 동관 562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07.03.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은 향후 국정방향을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언급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기자회견은 역대 대통령이 통상 취임 100일을 맞이해 하던 것과 달리 취임 30일을 맞아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빠르게 기자회견을 열자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과 관련해 "(취임 후) 1년도 아니고, 그동안 했던 것을 자랑하는 자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며 "솔직하게 현재 준비 중인 상황을 밝히고 앞으로 정부의 추진 방향을 밝히고 답하겠다. 주로 언론인들의 의견을 많이 듣겠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그 취지에 맞게 기자회견의 타이틀은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로 정해졌고, 별도의 무대를 마련하지 않고 이 대통령과 기자가 같은 높이에 눈을 맞추고 앉아 마주보고 대화하는 구조로 기자회견장이 구성됐다. 강훈식 비서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들도 모두 배석했다.
또한 이 대통령이 "약속대련은 안 된다"고 강조함에 따라, 질문자 선정도 이 대통령이 현장에서 지목하는 방식과 추첨하는 방식이 동시에 이뤄졌다. 질문 내용의 사전 조율 역시 없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전날 공식 일정 없이 참모들과 함께 기자회견 준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2시간을 꽉 채워 진행됐다. 외신기자 2명을 포함해 총 15명의 기자가 질문을 했고, 이 대통령이 답변했다.
이 대통령은 가장 먼저 취임 30일을 맞이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보통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이렇게 말하는데 저는 일주일 단위로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다"며 "아쉬움도 많이 있다. 시간이 좀 하루가 한 24시간이라 한 30시간만 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꽤 있다"고 밝혔다. 성과로는 "눈에 띄는 주식시장"을 꼽으며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이 한정되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도 약간은 지갑은 약간 두툼해진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 모두발언에서 먼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예상된 질문'에 대해 미리 답변부터 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새 정부의 새로운 농정에 대한 기대와 우려, 특히 농식품부 장관 유임에 대한 염려를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대통령실 앞에선 농민들이 상경해 송 장관 유임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전략안보 산업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이 각별한 만큼 농업과 농민의 문제는 각별히 직접 챙기도록 하겠다"며 "양곡법 등 농업 민생 4법을 조속히 처리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농촌에 희망이 다시 자라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송 장관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은 '통합과 협치 방안'을 묻는 첫 질문에 답하는 도중 "인사와 관련해서 분명히 질문할 거라서 제가 미리 말씀을 드린다"며 인사를 둘러싼 논란 전반에 대한 입장도 질문을 받기도 전에 직접 밝혔다. '통합과 협치, 인사는 모두 관련이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인사에 대한 불만도 사실은 있고, 부족한 점도 있고 '더 나은 사람을 했어야지' 이런 지적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들의 눈높이나, 또는 야당 또는 지지층 안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그런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인사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히며 이해를 구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야당 대표 또는 여당 대표가 아니고,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 국민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통합의 국정을 해야 한다"며 "그리고 마음에 드는 또는 색깔이 같은 쪽만 쭉 쓰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2025.07.03. ⓒ뉴시스
이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여당이 다수당이라서 국회의 견제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게 바로 국민의 선택"이라고 받아쳤다. 동의하기 어려운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여대야소는 우리 국민께서 선택하신 건데 그거를 당신들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내년에 당장 또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잘못하면 또 심판당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는 것도 사실은 약간 어폐가 있다"며 "국회가 여소야대가 돼버리면 (대통령은) 거의 할 수 있는 게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걸 제도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 제 몫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검찰개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제가 답변드리기가 좀 곤란하기도 하고 예민한 질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다. 동일한 주체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면 안 된다는 점들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결단하기 나름"이라며 "협의는 하되 국회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 질문에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하며 이해를 돕기도 했다. 주 4.5시간제 정착 방안을 묻는 질문이 나왔을 땐 자신이 소년공 시절엔 한달 내내 일하다가 이후 하루씩 쉬는 날이 늘어났다는 경험을 토대로 답변했고, 인사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땐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낼 당시 인사 경험을 소개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북 정책을 묻는 질문에는 변호사 시절 부부 갈등 상담을 많이 했봤다면서 남북관계든 뭐든 결국 "대화와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러다보니 답변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 이후 "상세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남성이 대다수인 기자단 구성을 염두에 둔듯 일부러 여성 기자를 지목하기도 했고, 특정 지역 문제에 질문이 쏠린다고 판단했는지 공통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바란듯 통신사에 직접 질문권을 주기도 했다. 잘 보이지 않는 맨뒷자리에 앉아있는 기자들을 배려해 질문권을 주기도 했고, 예정된 시간이 다 됐지만 질문을 더 받으라고 사회자에 주문하기도 했다. 딱딱한 기자회견 분위기를 깨려는 듯, 이 대통령은 중간중간 농담도 던지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질문하는 기자와의 인연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가열된 부동산 시장을 겨냥해 최근에 나온 고강도 대출 규제에 대해 "맛보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향후에도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그동안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은 많다. 공급 확대책, 수요억제책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다"며 "얼마든지 (실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5개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한 이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을 통해 "1초를 천금같이 여기고 대통령의 1시간, 국가 공무원의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59인, 찬성 255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의 내란 시도를 계기로 추진된 계엄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와 헌정을 무력화했던 전두환 쿠데타 이후, 제도적 공백을 메우지 못한 40년의 침묵에 뒤늦게 마침표가 찍힌 셈이다.
3일 국회는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계엄 시 군·경·정보기관의 국회 출입을 금지하고, 계엄 선포 시 국회 통보용 회의록 작성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계엄 권력으로부터 입법부의 독립성과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인데, 국민의힘도 이 법안에 찬성하며 재석의원 259인 중 찬성 255인으로 가결됐다.
국회 통보 시 회의록 제출 의무를 명시화했다. 이는 최근 한덕수 전 총리가 계엄 직후 사후 문건을 만들려 했다는 점을 고려한 거다. 요건과 자격이 갖춰진 국무회의였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계엄 시 국회의원 체포 중일지라도 본회의에 출석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에 의무를 부과했다. 이는 과거 계엄 선포 직후 현행범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체포해 입법부를 무력화했던 과거에서 얻은 교훈이다.
계엄 선포 이후, 국회를 보호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회의장의 허가 없이는 군과 경찰이 국회에 출입할 수 없다. 군·경의 무분별한 국회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취지로, 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 및 국회 소속 공무원의 국회 출입과 회의 방해를 금지하고, 국회의장 허가 없이 군과 경찰이 국회 경내에 출입하지 못 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계엄해제 후 국방부·계엄사령관은 국회에 모든 지휘·감독 관련 사항을 보고하도록 했다. 계엄이 더 이상 권력의 도구가 아닌, 헌법에 따라 통제받는 긴급수단으로 기능하도록 감시하는 입법적 방패가 생긴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비상계엄 확대와 국회 해산 기도로 군을 정치에 개입시켰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며 정권을 찬탈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이후, 윤석열이 총선 결과를 부정하며 내란을 모의한 정황이 드러났다. 과거와 똑같았다. 언론을 통제하려 했고, 국회의원을 체포해 계엄해제를 막으려 했다.
윤석열의 내란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1987년 헌법 개정에서도 계엄 선포 절차는 규정됐지만, 국회 보호와 군경의 정치개입 통제 장치는 사실상 미비한 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패한 원인은 다행히 법보다 시민의식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계엄법 개정안은 입법의 성과인 동시에 시민주권의 성취다. 제도가 늦게 따라왔을 뿐, 그 동력은 언제나 깨어 있는 시민이었다. 법은 시민의 투쟁을 뒤쫓아 기록하는 역사일 뿐, 앞서가는 것이 아니다.
이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법이 또다시 늦지 않도록, 시민의 의식을 제도의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 인해 실패한 내란이다. 더 늦어지지 않도록 시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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