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지킨 국민 손에 민주주의 달렸다”
이재명, ‘빛의 혁명’ 완수 호소”
“정권 아닌 국가 체제 운명 달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뉴시스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후보는 “국민 대 내란세력”, “빛의 혁명 완수 대 내란 부활”이라며 선거의 본질을 ‘내란 척결 대 내란 옹호’의 전선으로 규정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시도’ 이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 이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선대위는 일제히 이번 대선을 ‘내란 대 헌정 수호’로 단언했다. “윤석열은 내란수괴”, “국민의힘은 내란을 비호한 정당”, 그리고 “이번 선거는 헌법 제1조를 회복하는 국민 주권 완성의 날”이라는 일관된 어조였다.
민주당은 이 대선을 정당 선택의 투표가 아닌, 내란세력 단죄와 민주 헌정질서 회복의 국민 행동임을 강조한 거다.
“6월 3일은 내란 종식의 날인가, 부활의 날인가”
이 후보는 여의도 유세에서 “이번 대선은 파란색이냐 빨간색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란을 끝내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연설 내내 “12월 3일의 밤”을 회상하며, “국민이 국회를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의 선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계엄 선포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느냐”고 되물으며, “국민의 촛불과 맨손이 다시 한 번 헌법을 구했다”는 역사적 서사를 강조했다. 이에 “이제 투표가 총알보다 강한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개개인이 나라의 주권자 임을 강조한 거다.
윤석열-전광훈 연대 부각하며 “내란 연출자·조력자 규정”
특히 이 후보는 “윤석열의 아바타, 전광훈의 꼭두각시가 대통령이 된다면, 다시 상왕 윤석열이 국민 앞에 나타날 것”이라며 국민의힘 후보를 “내란의 후계자”로 조명했다. 이재명 캠프가 이번 대선을 ‘윤석열 내란 체제의 부활이냐 종식이냐’로 규정한 이유다
민주당은 내란 시도에 대해 국민의힘의 침묵과 방조를 ‘공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비호했고, 내란수괴 탄핵을 반대했으며, 사법부 폭동을 옹호했다”며 “극우 수구 정당일 뿐 보수도 아니다”라고 몰아붙였다.
‘투표냐 보복이냐’ 국민의 선택만 남았다
윤여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이재명은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이재명의 승리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했다. 박찬대 선대위원장은 “우리가 내란을 막았던 그날처럼, 내일도 투표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후보 캠프의 핵심 구호는 ‘빛의 혁명 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내란 책임자를 다 찾아내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고 주요 책임자들은 반드시 문책하겠다”며, “다시는 이 나라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을 위협하는 내란 사태는 꿈도 꿀 수 없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지지자에게 큰절을 올리며 22일간의 공식 선거 운동을 마무리했다.
영국에서 산 세월이 35년이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아이들은 영국에서 초중고대를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산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한국과 영국정치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싶다.
1918년 영국의 부분적 여성 참정권 인정을 부른 서프러제트 운동 시위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투표일은 평범한 시민이 정치인을 해고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정중하게."
최근 차를 마시다 문득 떠오른 역사적 순간이 있다. 바로 1918년 영국 총선이다. 묘하게도, 곧 치러질 한국의 6.3 대선과 겹쳐 보인다. 100년도 더 지난 영국의 선거와 2025년 한국 대선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겠지만 꽤나 깊이 닮은 점이 있다.
1918년 영국의 대반전"여성, 드디어 투표하다!"
1918년 12월 14일 영국에서 열린 선거는 단순한 총선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한 달, 병사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나라 전체가 '이제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할 텐데' 하는 분위기였다. 총리는 캐치프레이즈 하나를 던졌다.
"A land fit for heroes to live in(영웅들이 살기에 걸맞은 나라)."
말은 멋졌다. 문제는 실현이 안 됐다는 것이다. 집도 부족했고, 실업률도 치솟았고, 돌아온 전쟁 '영웅'들은 여전히 슬럼가에서 살았다.
정작 이 선거가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선거였다는 점이다. 물론 완전한 참정권은 아니다. 30세 이상, 일정 재산 보유자, 혹은 남편이 집주인인 여성만 투표할 수 있었다. 29세 미혼 여성은 투표할 수 없었다. 결국 여성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투표권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여성들이 투표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 한 표가 세상을 바꿨다.
영국 선거권 확대 과정.
2025년 대한민국 "그 한 표는 아직도 유효하다"
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본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일이다. 내란과 탄핵,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의 혼란을 거친 뒤 찾아온 이 선거. 상황이 어지럽다는 점에서 1918년 영국의 선거와 어쩐지 닮았다.
물론, 지금 한국 여성은 이미 투표권이 있다. 하지만 '권리가 있다는 것'과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이, 누가 돼도 똑같지"라며 투표를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100년 전 영국 여성들이 "우리에겐 목소리가 있다!"며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 내 아내와 딸은 투표를 못했을지 모른다. 나아가 영국 여성들은 정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도서관에 마련된 청파동 제1투표소에서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5.6.2. 연합뉴스
한국 정치, 이제 '고급스럽게 복수'할 차례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Vote is the most polite form of revenge' (투표는 가장 점잖은 방식의 복수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이런쯤 될까? "투표는 짜장면 값 오른 것에 대한 고급스러운 복수다."
최근 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공약은 넘치고, 말은 많지만, 실현은 미지수다. 그 모습이 마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보리스 존슨 보수당 의원이 "EU에 매주 3억 5000만 파운드를 보내지 않고 공공의료(NHS : National Health Service)에 쓰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보리스 존슨이 브렉시트 후 총리가 되고나서 그 돈 어디 갔는지 지금도 다들 궁금해 한다.
유권자의 상상력, 그게 진짜 '정치력'
1918년 영국 여성들의 투표는 단지 법으로 얻은 게 아니다. 총알과 포탄이 떨어지던 시절, 그들은 가정을 지키고, 공장을 돌리고, 간호하며 세상을 버텨냈다. 그 무게를 알고 있는 의회는 마침내 그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줬다.
오늘날 대한민국 유권자, 특히 젊은 세대와 여성들은 이미 '정치의 주체'다. 이에 대한 BBC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South Korea elections: They helped oust a president. Now women say they are invisible again. (한국 총선: 대통령을 쫓아낸 그들. 이제 여성들은 "우리는 다시 보이지 않는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유튜브에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물어야 한다.
"이 후보가 정말 내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5년 뒤, 내가 다시 투표하고 싶게 만들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한 조각의 영국식 냉소주의
영국에서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정치인을 무작정 믿지 않는 태도도 민주주의의 일부"라는 점이다. 정치인은 약속할 수 있다. 하지만 실망시켰을 때, 그들을 단칼에 교체할 수 있는 힘은 유권자에게 있다. 1918년 총선에서 압승한 로이드 조지 총리도 1922년, 민심에 밀려 물러났다. 민주주의는 실패를 허용하지만, 무관심은 허용하지 않는다.
6월 3일, 짧은 산책 한 번 어떤가? 100년 전, 영국여성들은 싸워서 투표소에 들어갔다. 지금 우리는 그냥 걸어가면 된다. 그 짧은 산책길 끝에서, 2025년 대한민국은 어쩌면 1918년 영국처럼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투표하자. 민주주의는 늘 한 표에서 시작한다. 고급스럽게, 점잖게, 그리고 단호하게.
[내란, 그 다음의 세상-기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부터 실종된 대선… 노동자·시민·약자 관점, 민주노동당만
손가영 기자 | 기사입력 2025.06.02. 06:33:02
8년 전, 광장은 승리했다. 시민들은 엄동설한 속에 촛불을 밝혔고, 비선실세에 휘둘리던 무능하고 타락한 정권을 몰아냈다. 그야말로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권은 촛불의 열망을 제대로 실현해 내지 못했다. 노동자와 소수자·약자들의 삶은 그대로였다. 시민들은 학습했다. 정권 교체만으로 나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8년 만에 다시 기회가 왔다. 또 한 번의 조기 대선을 앞두고 시민들은 새 정부가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시민들은 겨우내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과 더불어 사회 대개혁 구호들을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윤석열 퇴진 집회를 주도했던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지난 2월 10일부터 3월 6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이 바라는 사회대개혁 과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차별금지와 인권보장' 31%,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23%, '돌봄과 사회안전망' 8%, '노동권과 일자리' 7%, '평화와 통일' 7%, '기후위기 대응' 7%, '경제와 민생 안정' 6%, '교육' 5%, '생명존중’ 4%' 순으로 나타났다.
<프레시안>은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위 순서에 따라 분야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본다. 새 정부가 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편에서는 기후 과제를 살펴본다.
① 기후 망친 부유층… "오염자가 책임져" 말하는 후보는?
기후재앙을 막는 마지노선이라 불렸던 1.5도(℃)는 깨졌다. 1.5도는 국제사회가 2015년 파리협약으로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이 선은 넘지 말자'고 약속한 기준이다. 과학계는 1.5도를 넘으면 빙하가 급속히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변화한 기후를 되돌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세계기상기구는 지난 3월,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올랐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들은 기후 재난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마련하고 있을까. <프레시안>은 지난 3월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발표한 10대 개혁 과제 중 기후정의·재생에너지 관련 내용을 기준으로 주요 후보 4명의 공약을 비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기후 공약이 없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비교 대상이 될 굵직한 공약은 없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산업 중심의 기후 적응',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공공성 중심의 기후 정의'로 요약할 수 있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발표한 10대 개혁 과제의 기후 분야 중 '기후위기 책임 묻는 누진세 강화와 과감한 재정 투자로 주택·교통·식량·에너지 생태공공성 강화' 분야 과제. ⓒ프레시안
지난 7일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1990~2020년 지구 온난화의 65%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0% 계층에 책임이 있다'는 논문(☞바로가기)이 발표됐다. 이 중에서도 상위 1%는 20%의 책임을, 전 세계 8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상위 0.1% 계층은 8%의 책임이 있다고 분석됐다. 상위 10%는 연 소득 4만 2980유로(6700여만 원), 상위 1%는 14만7200유로(2억 3000여만 원), 상위 0.1%는 53만 7770유로(8억 3800여만 원) 이상을 버는 계층이다.
연구진은 "모두가 연 소득 하위 50% 수준으로 탄소를 배출했다면, 1990년 이후의 지구 온난화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 세계 인구가 상위 10%, 1%, 그리고 0.1%처럼 배출했다면, 지구 기온 상승은 각각 2.9도, 6.7도, 생물이 생존할 수 없는 수준인 12.2도에 달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진단하고, 책임을 오염자에게 정확히 묻자는 관점이다. 부유층과 부유국에 전적인 책임이 있지만, 피해는 저소득층과 빈곤국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남반구 국가들은 부유국과 다국적 화석연료 회사들의 탄소 배출량에 세율을 매겨 '기후손해배상세'를 걷은 뒤 UN 기후지원 자금에 적립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기후정의세'(2013), '탄소세'(2021, 2024) 등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왔다. 탄소를 과다 배출하는 화석연료 기업에 세금을 매겨, 탄소 배출량도 줄이고 기후 불평등 대응 재원을 마련하자는 안이다.
기후정의를 전제한 후보는 네 후보 가운데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밖에 없다. 권 후보는 "상속세 및 소득세, 법인세 등 최고세율 인상으로 기후정의세를 도입하고 국책은행 녹색공공투자은행을 설립해 재원을 조달하자"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배출량거래제 보완에 그쳤다. 기업마다 탄소 배출량의 한 해 상한을 두고, '폰 데이터사용량 거래'처럼 기업끼리 배출량을 거래할 수 있도록 정한 제도다. 이 후보는 21대 대선에선 탄소세를 공약했으나 이번 대선에선 제외했다. 증세 공약을 배제하며 탄소세까지 제외한 '우클릭' 결과로 보인다.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폭 강화와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을 ‘기후정의법’으로 전면 개정' 과제 관련 비교 표. ⓒ프레시안
② 온실가스 감축 목표, 권영국만 밝혔다
한국은 올해 UN에 2035년까지 감축할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UN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2023년 6차 보고서를 내고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를 2035년까지 60%(2019년 대비)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2021년,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40%로 UN에 보고했는데, 이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최소 수준인 50%에 못 미쳐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50년 탄소 순배출 '0'을 달성하겠단 정부 계획에도 한참 부족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정부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2018년 대비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그 비율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헌재는 2031~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세우지 않은 데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한다"며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써 필요 최소한의 성격을 못 갖췄다"고 밝혔다.
2035년 감축 목표치를 밝힌 후보도 권영국 후보 단 한 명이다. 권 후보는 70%를 목표치로 제시했고 정부의 기존 계획인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을 수립하겠다"며 "헌재 결정을 감안해 책임있는 중간목표를 담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이상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밖에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 위기 대응 문제를 푸는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탄소중립 산업을 육성한다고 밝혔다.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및 발전노동자 고용 보장' 과제 관련 비교 분석 표. ⓒ프레시안
③ 대규모 해고 위기, 노동자·주민 대변 진보정당만
화석연료 감축은 탄소중립의 핵심이다. 2023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 374억 톤 중 절반이 넘는 200억 톤을 36개 화석연료 기업이 배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중 41.4%가 석탄으로 인한 배출량이다. 한국도 전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중 76%(2022년 기준)가 에너지 소비 과정에서 발생한다.
정부는 지난 5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노후 화력발전소 40기(총 5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밝혔다. 당장 올해 말 태안화력 1기가 폐쇄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폐쇄 과정과 그 이후의 계획을 아직도 전달받지 못했다. 2026년엔 3기, 2027년엔 5기가 차례로 폐쇄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화력발전소 폐쇄로 2030년 약 1만 6000명(2019년 대비)의 인력이 감축된다고 추산했다. 산업부의 2021년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도는 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라 27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볼 것으로 분석됐다. 화석연료 발전 중단 과정에 주민과 노동자의 동등한 참여가 필수적인 이유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공약한 후보도 권영국 후보에 그친다.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하는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연대'는 지난 22일 "주요 후보들의 탈석탄 정책은 안일하기만 하다"며 "이재명 후보는 2040년 탈석탄이라는 미진한 목표를 제시했고, 김문수 후보는 그러한 언급조차 없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권영국 후보만이 2035년 탈석탄을 공약했고 공공 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전환 역량을 강화한다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기후 변화에 따른 노동자의 타격과 관련해 권 후보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을 제정해 발전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하고, 내연기관 산업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 대책도 마련할 것"이라며 "단체 교섭 범위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공약했다. 이재명 후보는 "정의로운 전환 특구 지정 및 고용 전환과 신산업 역량 개발 지원"을 약속했다.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헌법 개정' 관련 비교 표. ⓒ프레시안
④ 김문수·이준석 '핵발전', 이재명 '민영화', 권영국 '공공화'
화석연료 감축과 동시에 재생에너지를 확충해야 한다. 한국은 전체 발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10.5%(2023년)로 OECD 38개국 중 가장 낮다. 이마저 90%가량은 해외자본과 민간기업의 투자로 이뤄졌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해상풍력 단지는 92.8%가 국내 대기업과 해외 다국적 기업의 투자다.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핵발전 확대 공약만 있다. 이재명 후보의 주요 공약은 '에너지 고속도로' 건립과 '햇빛·바람 연금' 정책이다. 호남 해안 풍력단지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와 수도권을 잇는 전력망(에너지 고속도로)을 만들고,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해 주민에게 돌아가는 발전 이익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산업단지에 에너지 저장 장치(ESS)를 확충해 RE100(100% 재생에너지로 생산)을 실현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전력망을 확충한다고도 밝혔다.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적 개입은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민영화된 구조를 상수로 둔다. 주민 참여형 에너지사업 경우, 표면적으로는 이익이 공유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론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에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 전력 구매자(한국전력 등)가 이를 부담하고, 이는 시민들의 더 비싼 요금 납부로 이어진다는 위험도 있다.
에너지 고속도로도 지역 간 불평등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피하지 못한다. 밀양은 울산 신고리 핵발전소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올리는 데 필요한 송전탑을 세우려다 격렬한 주민 반발을 야기한 지역이다. 현재 에너지 고속도로가 관통할 정읍, 완주, 무주, 진안, 부안, 장수 등의 주민들도 지역마다 대책위원회를 꾸려 "송전선로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권 후보는 "기후·에너지·산업을 총괄하는 '기후경제부'를 신설하고, 국회 기후특위에 입법권과 예산심사권을 부여하며, 재생에너지 전문 국책 연구 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발전공기업 5개사의 석탄발전소를 2035년까지 조기 폐쇄하고 공공 재생에너지로 신속히 전환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60%까지 달성하겠다"며 "해외 자본에 의한 해상풍력 추진을 규제해 국부 유출을 막고, 막대한 민영화 비용을 줄이겠다"고 제안했다.(끝)
6월 4일 취임할 한국의 차기 정부가 마주할 가장 큰 딜레마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이 될 것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요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한 미국의 한국 방어 비용 증액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다. 둘째는 주한미군 감축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28,500명 가운데 4,500명을 괌을 비롯해 인도 태평양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셋째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2000년대 초반 이래 미국이 꾸준히 추구해온 것인데,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혹은 고정된 항공모함”이라고 부르면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 감축과 역할 변경은 어울리는 짝은 아니다. 이는 미국 내부의 이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엘브릿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감축해 괌 등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브런슨은 대중 견제에 있어서도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는 주한미군의 전력을 유지·강화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전방에 배치되어 있음으로써, 사실상 적의 접근거부·지역거부(A2/AD) 영역 안에서, 그리고 그들의 심리적 공간 안에서 작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 감축 논의를 무마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대중 견제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이러한 미국 내부의 이견이 어떻게 조율될지는 콜비 주도로 작성 중인 ‘국방전략지침’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미국 내에선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핵심 전략이 중국, 특히 양안 분쟁 대비에 맞춰져야 한다는 데에 모이지고 있고, 감축이든 유지·강화든 주한미군의 변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차기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물론이고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면서 양자택일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우리에게 큰 딜레마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면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우려도 커지고 윤석열 정부 때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중관계 회복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만다. 반대로 미국이 감축을 추진하면, ‘안보 공백론’과 더불어 보수 진영에선 그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면서 정쟁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익 중심의 판단이 중요하다. 주한미군의 규모·역할·분담금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낫다고 여길 순 있지만, 현실적으론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감축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 감축을 막기 위해 분담금을 올려주고 미군의 역할 변경도 수용하는 게 막대한 국익 손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와 시야는 ‘더 큰 한국’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발 의제에 갇혀 있었다. 21세기 이래 모든 미국 행정부들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한 데에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 옵션을 갖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를 인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심해왔다. 이렇게 ‘미국의 범위’에 갇힐수록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좁아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시도는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의 일부라는 것이다. 둘째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 여부와 그 수준에 영향을 받겠지만 한국 역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한국’은 대만 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를 놓고 ‘큰 틀’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추구하려는 방향은 군비증강과 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 억제 일변도’이다. 억제의 취지는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시도할 경우 중국이 치르게 될 대가의 크기를 깨닫게 해 이를 저지하겠다는 데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크다. 중국은 이를 대만의 독립을 부추기는 의도로 보고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곤 한다. 대만을 향해서 무력시위를 일상화하는 한편, 외부세력을 향해서도 개입의 대가가 매우 클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 결과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이 격화되면서 대만 해협의 위기지수도 계속 높아져왔다. 이는 한편으론 민생과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발적 충돌과 확전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한국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만 해협의 미래에 대해서 경고와 우려와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대안적인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논의를 제안할 수 있는 의제는 다양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문하고 싶은 것은 ‘두려움의 공유’이다. 대만 해협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일방적 두려움’의 산물이다. 일방적 두려움은 상대를 위협으로 인식해 적대적 언사와 군사 태세를 강화하는 사유로 작용한다. 그런데 두려움 역시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어느 일방의 공포가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되면 그 상대 역시 적대적 언행으로 응수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유된 두려움’은 공감과 연대를 낳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도 두렵지만 상대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제의 미덕과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의 공유를 ‘동맹의 체인’의 대항적인 담론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사유로든 양안 전쟁이 발생해 미국이 개입하면,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하게 관련국들이 동맹의 사슬에 엮여 전화(戰火)가 ‘동맹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전체로 번질 수 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일본·호주·필리핀이, 중국의 동맹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조선의 동맹인 러시아가 개입·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끔찍한 시나리오는 두려움의 방정식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냉전 시대에서도 그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적대적 경쟁심에 도취되어 군비경쟁에 몰두했던 미국과 소련이 각종 군비통제·군축 조약에 합의하고 냉전 종식에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핵전쟁이 모두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의 공유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안 관계의 제3자이니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니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하다. 양안 전쟁 발생시 조선의 도발 가능성에만 집중하는 시각은, 정작 조선이 느끼는 두려움을 외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적대적이고 불안한 현상유지’를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현상유지’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군비통제와 신뢰구축을 통해 군사적·전략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야 한다. 두려움의 자각과 공유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조작 의혹 수사, 사건 배당
리박스쿨, 국민의힘의 하청?
김문수, 이주호와도 인연 깊어
“교육부, 방조 정황 조사 필요”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신속대응단 부단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31일 서울 종로구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이라는 댓글 조작팀을 만들어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보수 단체 리박스쿨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국민의힘이 대선 앞두고 극우 성향 단체와 손잡고 여론조작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극우 성향의 역사교육 단체 ‘리박스쿨’을 앞세워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 조직원을 침투시키고, ‘자손군’이라는 온라인 댓글 부대를 활용해 특정 후보에 대한 여론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과 교육부 자문 시스템까지 얽혀 있다는 점에서, ‘국가기관과 공교육을 총동원한 ‘선거판 기획통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리박스쿨 사태에 국민의힘은 공개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리박스쿨과 김문수 후보 사이의 접점이 너무 많다. 2018년 강연, 2019년 선거교육 협력, 2025년 지지선언까지 이어지는 인연은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경찰청은 서울경찰청 산하에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해당 사안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야3당 소속 국회 행정안전위원들은 이날 오전 경찰청을 방문해 “사이버 여론조작과 교육현장 침투를 연계한 정치공작”이라며 전면적 수사를 촉구했고, 경찰은 “강력하고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다. 경찰은 현재 고발인 조사와 증거 채집을 진행 중이며, 관련자 소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리박스쿨, 국민의힘 하청?
최근 뉴스타파 보도와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리박스쿨은 ‘자손군’이라는 명칭의 댓글 조직을 운영해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여론 조작 활동을 벌였고, 그 참여 인원 다수를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에 강사로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 정신 계승’을 내세운 민간 교육단체로, ‘창의체험활동지도사’라는 이름의 민간 자격증을 자체 발급하며 강사 인력을 조직적으로 모집했다. 뉴스타파의 잠입 취재 결과, 이 자격증을 발급받은 일부 인원이 실제로 서울 시내 10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진행한 정황이 확인됐다. 해당 수업은 ‘한국늘봄교육연합회’ 명의로 운영됐으며, 서울교육대학교와의 협약을 통해 정식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업에 참여한 강사들이 ‘자손군’ 조직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조작과 공교육 침투가 연계된 정치공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자손군은 ‘자유손가락군대’의 줄임말로, 온라인 포털 뉴스 기사에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방·지지 댓글을 집단적으로 작성하고 공감 수를 조작해 노출 순위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제기됐다. 이들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한 비방과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지지 댓글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부모 단체’ 명의로 이재명 후보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자리를 주선한 인물은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이 자리의 발언자 중 상당수는 리박스쿨 산하 자손군 조직원으로 확인됐고, 일부는 방과후 강사로도 활동 중이었다. 기자회견에는 권성동 원내대표와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함께했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해당 기자회견은 조작된 여론을 기반으로 한 정치 활동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김문수, 이주호와도 인연 깊어
김문수 후보와 리박스쿨의 과거 관계도 확인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사이, 리박스쿨의 전신인 프리덤칼리지장학회가 주최한 교육 행사에서 김 후보는 강사로 초청됐고, 장학회에 기고문을 남긴 바 있다.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리박스쿨이 진행한 ‘자유필승선거학교’ 교육 프로그램에는 김문수TV가 협력기관으로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리박스쿨 대표 손효숙 씨가 포함된 보수단체가 김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지지선언은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 주선으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문수 후보 측은 현재까지 리박스쿨과의 연계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또한 해당 단체와의 조직적 관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리박스쿨 대표 손효숙 씨가 현직 교육부장관 이주호 씨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태는 교육부와의 제도적 연결 고리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정책자문위원회는 장관 직속 기구로, 교육정책 전반에 대해 자문을 제공하는 자리이다. 손 씨는 교육계 경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자문위원에 위촉됐으며, 그 인선 과정에서 교육부 내 특정 인사가 개입했다는 정황도 제기됐다.
“교육부 방조·협조한 정황 조사 필요”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6월 1일 선대위 회의에서 “손효숙 대표를 추천한 인사는 이주호 장관의 최측근 정책자문관 중 한 명으로, 뉴라이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며 “교육부가 방조 또는 협조한 정황이 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뉴스타파 취재 영상에서는 리박스쿨 측이 “늘봄학교 시스템을 활용해 뉴라이트 역사관을 전국 교육현장에 확산시키겠다”는 발언을 했고, 방과후 교사 채용을 위한 자격증 발급이 이 목적과 연결된 구조였음이 확인된다.
이번 사건은 사이버 여론조작이 교육정책과 맞물려 정치적으로 활용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민간자격증 관리 체계, 방과후 위탁교육 제도, 교육부 자문위원 선정 시스템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광경 . 북한은 6월 갈마해안관광지구의 본격적인 개장을 예고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2025년 6월 북한이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의 본격적인 개장을 예고했다. 동시에 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원산갈마해안관광특별구법」이라는 특구법이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35차 전원회의에서 심의·채택되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시설규모는 호텔 12개, 콘도 27개 동, 펜션과 민박 등 총 2만 개에 가까운 객실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관광 인프라의 조성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전략 전환, 외교·군사 정세 변화, 한반도 평화 체제 재편과도 밀접히 연관된 중대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관광지 개발을 넘어선 ‘경제전략의 제도화’
북한은 원산 갈마 지역을 금강산 관광지구, 마식령 스키장과 연계된 복합 관광지로 개발해 왔다. 2014년 6월 개발 계획 발표 후 같은 해 7월 착공했다. 그러나 미국 주도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의 이중 압박으로 완공이 지연되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이 지역을 직접 시찰하며 “지방 진흥과 나라의 경제 장성을 추동하는 전략적 지대”라고 밝힌 것은 단지 관광 사업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켰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에 새로 제정된 「원산갈마해안관광특별구법」은 외자 유치, 투자기업 운영, 조세·행정 특례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존의 일반 경제개발구법과는 별도로 설계되었다. 이는 북한이 경제특구를 보다 정밀하게 제도화하여, 외국인 투자자와 협력국을 대상으로 예측 가능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보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전략국가화와 ‘경제적 다극화’ 실험
북한은 202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전략국가 건설의 두 축은 강력한 국방력과 자립적 경제”라고 천명했다. 원산 갈마 관광지구는 바로 이 자립경제의 상징적 실험장이다. 특구법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부여하고, 관광·물류·교통 인프라를 집중 배치하는 방식은 기존의 군사 우선 전략을 보완하는 ‘경제적 다극화’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전략국가 구상이 단지 핵무력 고도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개방과 통제된 시장화, 지역 특화 개발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경제·군사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연해주 관광객의 전세기 방북 추진, 북러 교통망 복원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원산 갈마 지역은 이 새로운 관광 루트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국 역시 단둥·혜산·훈춘 등 국경 지역에서 관광특구 개발을 추진해 왔고, 북한의 특구법 제정은 이러한 지역 기반 협력 확대의 제도적 토대가 된다. 북은 자력갱생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북러·북중 협력 속에서 제한적 개방과 외화 확보를 꾀하는 전략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 및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라선(나진·선봉) 경제특구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개방이 이루어졌다. 2025년 2월 말 서방 단체관광객을 받아들였는데, 약 3주 만에 외부 정보 유입, 내부 실상 노출 등 악영향 우려로 관광을 중단한 바 있다. 5월 평양에서 열린 국제상품전람회에 외국인 관광객이 초청되었으며,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방문도 일정에 포함되었다. 이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비(非)러시아 관광객에게 허용된 사례이다.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시도 3월 1일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게 공식 개방되었다. 개인 자유여행은 허용되지 않고 하루 입국자 수는 300명으로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대화재개 요청과 ‘경제 카드’의 시그널
트럼프는 3월 1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그와 매우 잘 지냈다.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와의 관계를 재개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4월 1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김정은과의 소통이 있다" "언젠가 그와 관련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미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훌륭한 해변을 가지고 있다. 포탄을 바다로 쏘는 장면을 보면 정말 멋진 전망이다. ‘저기에 콘도를 지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발언을 통해 북한의 해안 지역이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북한이 원산 갈마 관광지구를 개장하고, 특구법까지 제정한 시점은 이러한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한 사전 포석으로 읽힌다. 트럼프가 북에 경제 인센티브를 제시하려 할 경우, 북한은 이미 준비된 특구법과 관광지구라는 실물 기반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 카드’를 복원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반영한다.
과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협력의 결정적 경로였다. 원산 갈마 관광지구가 제도화된 특구로서 개방된다면, 장기적으로 남북 경협 복원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윤석열 내란세력의 대북 적대로 단절되어 있으나, 6.3대선으로 등장하는 새 정부가 미국의 간섭을 극복하고 남북합의 실행의지를 확고히 갖출 경우, 이 관광특구는 남북 협력의 실질적 교두보로 작용할 수 있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을 다시 실현 가능한 논의로 되살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남북 경협 복원과 한반도 평화체제에 주는 함의
원산 갈마 관광지구 개장과 특구법 제정은 북한 내부에서 경제개발과 외교 전략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는 단지 관광지 하나의 문제를 넘어, 북한의 ‘전략국가화’ 구상 속에서 경제 개방의 제도화, 북러·북중 협력의 확장, 미국과의 협상 기반 조성, 남북 협력의 재건 가능성이라는 다층적 함의를 가진다.
향후 이 지역이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외자를 유치하며, 남북 공동 프로젝트로 확대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북한의 내부 변화와 더불어, 남측과 국제사회의 대응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산 갈마 관광지구가 이제 북한 경제전략의 실험장이자,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찬조연설로 화제가 된 금희정씨가 지난 5월 29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조정훈
"저는 매일 아침 보수 일간지를 보는 국민의힘 당원인 아버지와 '정치인은 그 놈이 그 놈이지 결국 다 똑같다'고 하는 어머니의 장녀입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유튜브를 통해 보면서 "계엄 세대가 아니어서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국회에 계엄군이 들어오고 창문을 깨는 것에 심장이 떨렸다"는 금희정(35)씨. 그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찬조연설을 해 화제가 됐다. 그는 방송에서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재명"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스스로 'TK의 딸'이라고 밝힌 금씨는 외과의사다. 방송 직후 아버지가 국민의힘 당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댓글창엔 여러 우려가 올라왔지만 정작 아버지는 "자랑스럽다"면서 그의 선택을 응원했다고 한다.
지난 5월 29일 대구 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금씨는 지난 '12.3 내란 사태' 이후 매주 동성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구에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부터 민주당에 가입했다.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내란 정국을 맞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금씨는 외과의사의 관점에서 TK를 수술한다면 "국민의힘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윤석열을 옹호하거나 내란에 동조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쳐쓸 수 없다면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내란당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면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는데도 대선후보를 내고 당당하게 유세하는 모습을 보면 비빌 언덕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게 바로 TK"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정치에 대해서는 채찍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찬조연설 후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셨다"
▲윤석열 파면 촉구 집회에 참가 중인 금희정씨. ⓒ 금희정 제공
- 대구에서 태어난 TK의 딸이라고 했는데 자신을 소개한다면?
"대구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졸업하고 현재는 외과의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이 있고 화목한 가정에서 살고 있다. 부모님도 엄하게 하거나 제약을 많이 두지 않는 편이다. 방송에서 아버지가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말한 후 걱정했는데 미리 말씀드렸더니 자랑스러워 하시더라.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하신다."
- 어떻게 찬조연설 방송에 출연하게 됐나?
"지난 5월 13일 동성로에서 한 유세를 보고 민주당 중앙당의 작가팀에서 찬조연설을 부탁하는 연락이 왔다. 대구시당도 강력히 추천했다. 당시 동성로에서 한 발언은 방송 내용과 비슷하다. 윤석열의 내란에 무력감도 느끼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나와서 '빛의 혁명'을 하고 탄핵도 했지만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고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 '12.3 비상계엄' 당시 어떻게 상황을 알게 됐나?
"'집순이'라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속보가 뜬 것을 보고 알았다. 친구들이 SNS를 통해 알려주기도 했고 커뮤니티에도 올라왔다. 나는 계엄세대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게 잘못된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군인들이 국회로 들어가고 창문을 깨는 걸 보면서 심장이 떨렸다."
- 이후 많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빛을 밝히며 탄핵을 요구했다. 탄핵 집회에도 참석했나?
"매주 참석해 시민들에게 잘못된 것을 알렸다. 윤석열이 구속되기 전까지는 대구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데 구속되고 날씨가 추워지니까 점점 사람들이 줄었다. 그래서 계속 나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느 추운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당시 30~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런데 사람이 적으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시비를 걸기도 하고 막말을 하거나 위협하기도 해 공포를 느꼈다."
- 매주 집회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집에서도 걱정을 했을 것 같은데.
"부모님께는 집회 나간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약속이 있거나 저녁 먹고 온다고 핑계를 댔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면 불편해하고 잔소리할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은 눈치를 챘어도 모른 척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려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찬조연설로 화제가 되고 있는 대구 장녀 금희정씨. ⓒ 유튜브 갈무리
- 방송 출연 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연락도 해왔을 것 같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정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부딪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고 친구들이 SNS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보내줬다. 친구가 찬조연설을 하니까 자기 부모들에게 보라고 권하고, 마음을 돌리게 했다고 한 친구도 있다. 유튜브 댓글을 보니 초등학교 때 방문교사 하셨던 선생님이 알아보고 댓글을 달았더라. 25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방송 출연에 용기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 직업이 외과의사인데 외과의사의 관점에서 TK를 수술한다면?
"국민의힘을 도려내야 한다고 본다. 고쳐 쓰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 같다. 지금까지도 윤석열을 옹호하거나 지지하거나 내란에 동조한 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반성도 없고 대구를 잘되게 하겠다는 비전을 보이는 정치인도 안 보인다. 고쳐 쓸 수 없다면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
- 대선에서 TK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나?
"내란세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데도 대선후보를 내고 당당하게 유세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그들이 여전히 비빌 언덕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게 바로 TK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정치에 대해서는 채찍이 필요하다. '우리가 남이가' 해서 특정 세력만 찍는다면 대구의 발전은 없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신속대응단 정준호 부단장과 의원들이 3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리박스쿨'을 방문하고 있다. 리박스쿨은 '자손군'이라 불리는 댓글 조작팀을 운영해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2025.5.31.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를 위해 암약해온 '댓글 공작팀'의 실체가 폭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댓글팀이 김문수 후보와 직접 연결됐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김 후보 측은 관련성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 해도 불법성이 뚜렷해서 수사를 통한 본격적인 진상 규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댓글팀을 경찰에 고발했으며 곧 경찰청을 방문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민주당 중앙선대위 신속대응단은 31일 댓글 조작 활동을 벌인 '리박스쿨'과 김 후보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유필승선거학교 교육생 모집' 문건을 공개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성을 딴 '리박스쿨'은 겉으론 두 전직 대통령을 추앙하는 역사 교육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일명 '자손군'이라 불리는 댓글팀을 운영하고 있다. 자손군은 '댓글로 나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의 약칭이다.
민주당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리박스쿨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20년 2월 자유필승선거학교 4기, 5기 교육생을 잇따라 모집했다. 각 기수별로 40명을 모집해 5일 50시간 동안 집중적인 선거사무원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2020년 4·15 총선에서 후보자의 필승을 위해 동고동락하며 뛰어 줄 선거운동원 양성" 및 "사상과 국가관이 정립된 직업 정치인으로서 자유대한민국 수호자가 되게 함"을 목적으로 표방했다.
또 "예비 보좌관 후보 180명 육성" "자원봉사 선거운동원 전국 1천 명 육성"을 목표로 삼고 20~40세대를 우선 선발하며 교육비는 무료라고 소개했다. 주관은 리박스쿨과 대한민국역사지킴이, 유권자선거연구소라는 단체이고 교육 장소는 '자손군' 교육장과 동일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 H빌딩이다. 이 학교 교장은 검사장 출신의 극우 인사로 유명한 고영주 변호사로 돼 있다. 그런데 협력 기관에 '김문수TV'가 적시돼 있어, 김 후보가 이미 5년 전 극우 유튜버 활동을 할 때부터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당 신속대응단은 "문제는 선거사무원 전문교육을 리박스쿨이 주관하면서 김문수TV와 너알아TV 등을 협력 기관으로 명시했다는 점"이라며 "앞서 김 후보 측은 리박스쿨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지만, 해당 문건은 양자가 이미 오래전부터 공동 활동을 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너알아TV는 전광훈 목사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이라며 "리박스쿨과 김문수, 전광훈 측이 어떤 연관 고리가 있고 왜 공동으로 선거사무원 교육을 실시했는지, 선거사무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강득구 단장은 "자손군의 댓글 조작은 보다 교묘해진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신속대응단은 31일 댓글 조작 활동을 벌인 '리박스쿨'과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유필승선거학교 교육생 모집' 문건을 공개했다. 민주당 제공
앞서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이재명·이준석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후보 비방에는 '커피 원가 120원 이재명이 경제 1도 모르는 X명이 소상공인들 다 X었다' 이런 댓글 방식이 동원됐다. 나아가 지난 27일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과 학부모 단체가 이재명 후보의 교육 관련 공약을 비판하는 국회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 단체 소속 11명 중 5명이 자손군 소속 인사였고 심지어 결혼도 안 한 뉴스타파 기자를 학부모로 둔갑시켜 행사에 데려갔다고 폭로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더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 정부 교육부가 리박스쿨을 사실상 지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합쳐서 '늘봄학교'란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 왔으며 내년엔 전국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리박스쿨 측의 교육을 수료하면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학생 교육을 목적으로 한 자격증이니만큼 상당한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데도 뉴스타파 기자는 단 하루 만에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에서 이곳 출신 강사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왜곡된 극우적 역사관을 초등학생들에게 주입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리박스쿨 손모 대표는 뉴스타파 기자가 '전광훈 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김문수 후보가 리박스쿨을 알고 있는지' 묻자 김 후보와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김 후보가 예전에 이 사무실에 온 적 있고 이곳에서 무얼 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분(김문수)이 여기 아스팔트 현장에서 경기도지사 그만두시고 오랫동안 우리랑 시민운동을 같이 했다"며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가 리박스쿨의 댓글 조작 활동을 오래전부터 인지한 것은 물론 일정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던 정황이 더욱 분명해진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이에 이재명 후보도 직접 나서 '반란 행위'라고 규정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다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경기 평택 배다리 생태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 "거기를 파보면 나라가 뒤집어질 중범죄 행위가 나올 것 같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댓글 조작하고 가짜뉴스 쓰고 그걸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선거 결과를 망치려고 하느냐"며 "반란 행위 아닌가? 용서할 수 있나? 마지막 잔뿌리까지 다 찾아내서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주 유세 뒤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과 연관돼 여론 조작을 체계적으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그 돈은 어디서 났을지, 국민의힘과 관련성은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하라고 선대위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선대위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극우 단체가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여론 조작으로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을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여론조작 집단이 교육 현장에까지 침투해 어린 학생들에게 극우 사상을 주입하도록 도운 검은 권력은 누구인지도 밝혀내야 한다"며 "자손군의 대표는 김문수 후보가 사무실을 방문했고, 하는 일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이 조력을 넘어 사주, 설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전했다.
김한나 선대위 대변인은 "김문수 후보는 내란 수괴 윤석열이 추진하고 극우 내란 세력이 잠식한 늘봄학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저의가 무엇인지 국민 앞에서 직접 밝혀라. 여론 조작 부대가 '가짜 자격증'으로 학교에 침투해 조직적으로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극우 세뇌를 해왔다니 충격적"이라며 "국립대학과 업무 협약까지 거쳐 이미 다수의 극우 강사들이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로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단체와 윤석열 내란 정권, 내란 공범 국민의힘의 유착 관계 등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선대위 미디어법률단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힘과 김 후보는 (해당 단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민주당이 드루킹 댓글조작단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허위 사실로 해당 단체들과 국민의힘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무리한 시도를 한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뉴스타파는 지난 대선 당시 '김만배-신학림 가짜 인터뷰'를 통해 선거 개입을 시도했던 매체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뉴스타파와 민주당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쓴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유권자들의 민심을 왜곡할 수 있는 불공정 보도와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전광훈 제일사랑교회 목사가 ‘계엄 합법, 탄핵 무효’ 집회에서 “사전투표가 완전히 사기당한 부정선거”라며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선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사느냐, 북한 연방제로 가느냐가 결정된다”라고 6월 3일 본투표를 종용했다. 이어 “계엄령 때문에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라며 “10년마다 한번씩 계엄령 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44년만에 계엄을 선포한 것은 너무 늦은 계엄령”이라며 아쉬워했다. ‘정광훈 집회’에 이어 ‘6.3대선 중단선언 집회’도 열렸다.
윤석열 “탄핵 반대 한마음, 김문수에게 힘 몰아달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정광훈 집회에서 대독되었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 반대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혼신을 다해주신 국민여러분, 6월 3일 투표장에 가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게 힘을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이재명 "댓글 조작은 반란행위"…리박스쿨·국힘 연계 의혹
이재명 후보가 댓글조작과 관련해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리박스쿨이라고 들어보셨냐, 댓글을 불법으로 달아 국민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 결과를 뒤집어보겠다는 중대범죄집단의 명칭”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댓글 조작과 국민 여론 조작은 국가정보원이 하던 것 아니냐, 반란행위”라며 “마지막 잔뿌리까지 다 찾아내 엄정히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우호적인 극우단체 '리박스쿨'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댓글로 나라는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라는 뜻의 '자손군'을 모집해 온라인 댓글로 여론조작 활동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 자손군은 다수의 네이버 아이디를 동원해 온라인 기사에 이재명 후보의 비방 댓글을, 김문수 후보의 옹호 댓글을 달았다. 과거 리박스쿨 대표 손 모 씨가 기자회견을 할 때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참석했던 만큼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 측에서 자손군 활동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뉴스타파] ‘리박스쿨’ 대표, 현재 교육부 장관 '정책자문위원'
‘김문수 띄우기’ 댓글공작팀을 이끌었던 뉴라이트 역사 교육 단체 ‘리박스쿨’의 손효숙 대표가 지난해부터 교육부 장관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리박스쿨 사무실에서 이주호 교육부장관 명의의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위촉장을 발견했다. 손 대표의 교육정책자문위원 위촉일은 2024년 6월 13일이고 위촉 기간은 1년이다. 현재도 정책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대선실천단 “투표로 내란세력 청산에 쐐기를 박자”
‘대학생 대선실천단’이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선은 내란세력 청산과 나아가 미국의 내정간섭을 끊어내어 자주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디딤돌”이라며 “내란세력에게 절대로 단 한 표도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가올 6월 3일은 우리의 주권을 행사하여 내란세력 청산에 쐐기를 박을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석 국회 제명안 반발…국힘, 후보사퇴 압박 수단?
진보당은 지난 28일 “이준석 의원은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특정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하는 성폭력을 자행했다”며 야5당과 함께 이준석 후보를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만약 윤리특위가 징계안을 의결하면 본회의에서 최종 표결 절차를 밟는다. 본회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다. 국민의힘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이준석 제명 건’을 사퇴 압박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편 이 후보는 31일 자신을 고발한 정당과 관련 단체들을 무고 혐의로 역고발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남편 명의 대리 투표’ 선거사무원···경찰, 구속영장 신청
사전투표 첫날 남편 명의로 대리투표를 한 선거사무원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남구 보건소 소속 계약직 공무원이었던 이 여성은 이틀 동안 투표사무원으로 근무했는데, 강남구청은 "소식을 듣고 다음날 오전 바로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앞 광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취임 첫 날 야당과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국민들의) 결단이 만약 민주당에 기회를 주는 쪽 선택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여당, 국회와 협력해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비정상을 신속히 극복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1 앞 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 직후 '대통령이 되면 취임 당일 야당 대표를 만날 계획인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당연히 만나야 한다. 대화하고 또 직접 만나든 간접적으로 만나든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되면 취임 첫날 야당 대표 만날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광장 집중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또 "당일날 가능할지는, 제가 선거에 이길지 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면서도 "일반적인 (경우를 가정해) 아마 (대통령) 취임 선서식을 국회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만날 수 있으면 만나는 게 더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은 한다"고 답했다.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에는 "김문수 후보는 내란을 극복하는 게 아닌 연장하자는 후보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해 결단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 결단이 다수당인 민주당에 기회를 주는 쪽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여당과, 국회가 협력해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비정상을 신속히 극복하고 무너진 국격과 경제, 안보, 외교를 다 회복하고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일을 해달라는 취지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취지에 맞춰 국회의 다수 의석과 행정 권력을 잘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합과 통합은 구분해야...중대범죄, 부정부패, 인권침해 행위는 책임 물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31일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앞 광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당초 현장에서 취임 후 '야당' 관련 질문이 주어진 건 이 후보가 이날 오후 KBS 라디오 '정관용 시사본부'에 출연해 진행자로부터 "대통령 당선 시 임기 첫날 야당 당사를 찾아가 대화 정치를 복원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업무 효율과 상징적 측면에서 상당히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긍정 평가했기 때문이다.
다만 '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유발했던 당사자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연신 내비쳤다. 이 후보는 라디오에서 "계엄 당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오지 못하게 한 의원들도 처벌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 후보의 입장이) 정치보복 아니냐"는 질문에 "봉합과 통합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후보는 "중대 범죄 행위, 국민 인권 침해 행위, 부정부패를 저질러 우리 사회 공정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 누군가에 눈물 흘리게 하는 행위를 정치라는 이유로 다 용서하고 눈 감아주면 그건 정치가 아니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들도 그런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목표를 정하고 '최대한 탈탈 털어 처벌해보자' 하는 건 정치보복이다. 그런 건 하면 안 된다"면서도 "중대 범죄에 눈 감는 건 외레 통합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광장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도종환 전 의원, 이연희 의원, 이 후보, 이광희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 이희훈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6·3 대선을 나흘 앞둔 30일 저녁 충북 충주 유세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 주도의 '이재명 혐오'와 '이재명 악마화'를 정면으로 따져 물었다.
곧이어 스스로 "시대가 바뀔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리곤 "정상적인 사회로,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사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렇게 되면 이 불공정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얻던 특별한 혜택, 특별한 지위가 위협받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충북 충주시 충주체육관 시계탑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청사초롱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30일 춘천·원주·충주 유세에서
'이재명 악마화'에 작심 발언
이 후보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박정희 개발 독재 이후 오랜 불균형 성장 전략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지역은 서울로 몰빵, 기업은 몇몇 대기업으로 몰빵, 인물로는 잘난 특정 소수에게 몰빵"함으로써 서울·수도권 초집중,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극심한 부패 등을 초래해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균형 발전 전략'으로 국가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야만 할 때다.
그는 "기업도 특정 소수한테 특혜를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고 모든 기업에 공평한 기회를, 아니 힘 약한 기업에 더 인센티브를 주는 그런 생태계를 만드는 기업 전략을 써야 한다...정부 재정도 지방에 더 많이 배정해야 한다"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지속적으로 다시 성장할 수 있고, 기회가 생겨서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같이 손잡고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노무현보다 더 위험한 사람 발견"
"살아온 방식대로 진짜 공정하면?"
이런 대전환은 그간 특혜를 당연시해왔던 수구 기득권 세력에겐 큰 위협임은 물론이다. 이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런 불안감을 느꼈다"면서 "그런데 그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재명)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성남 천둥벌거숭이가...말한 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진짜 공정하게 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다. 그 사람들은 무척 싫을 것이고, 뺏기지 않을까 무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이재명이 성남시, 경기도 행정을 책임지면서 부당하게 한 일이 있는가. 덮어씌우고 가짜로 조작해서 그렇지, 제가 십 원 한 장 챙긴 일 있는가...십수년을 작업해도 제가 씨알이 안 먹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선 불안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원주행복마당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왜 이재명을 두려워하고 음해?
부당한 특권 뺏길까 두려움 탓"
앞서 강원 춘천 유세에서도 그는 균형 발전 전략으로의 대전환은 "혁명적인 과정"이라며 "지금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특혜를 받던 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권적 위치, 특혜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주 유세에서도 이 후보는 "(이재명을) 왜 두려워하고 음해하는가? 제가 언제 독재를 했는가?"라고 되묻고는 "이재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부당한 특권적 지위를 혹시 뺏기게 되지 않을까 해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이재명을 무서워하라고 하거든 앞으로는 공정하게 살 생각해라. 공정하게 대우받고 공평한 기회를 누리고 기여한 만큼의 몫만 보장되는 정상적인 사회를 그대도 준비하시라고 여러분이 말해 달라"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진짜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재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저 변방에서 아웃사이더 비주류에서 이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불평등하게 불이익을 받던 대다수 국민은 환영하지 않느며"며 지지를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열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원과 충북 지역의 표심 공략에 나선 30일 춘천시 춘천역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5.30 [공동취재] 연합뉴스
'비주류의 비주류'였던 이재명
"저는 늘 국민들 속에 있었다"
춘천 유세에서 이 후보는 소년공과 장애, 검정고시, 대학과 사법시험 합격 등의 지난날을 회고한 뒤 "사법시험 합격하고 다시 또 태어났던 그 웅덩이로 되돌아갔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기득권자의 길이 아니라 기득권에 피해 본 힘없는 서민, 우리 다수 대중 속에서 함께 살았고, 또 그들의 소중한 주권 행사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 덕에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는 "비주류고 아웃사이더라고 말하지만, 그건 기득권자, 주류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라면서 "저는 늘 국민들 속에 있었고 국민들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했고,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반영해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들이 맡긴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성과가 났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정치적 우여곡절을 딛고 새로운 비상, 진정한 주류화를 앞둔 탓인지 이 후보는 이날 춘천·원주·충주 유세를 통해 우리 사회 '비주류의 비주류'로서 오랜 세월 가슴에 응어리졌던 '진짜 하고픈 이야기'을 모두 쏟아 내려는 듯했다.
3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유세가 열린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원주행복마당에서 지지자들이 이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검정고시 동문들에 보내는 편지
"출신·배경 아닌 기회 공정해야"
이런 조짐은 유세 전부터 있었다. 이 후보는 이날 페북에 '조금 더 특별한 우리: 검정고시 동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려 '빛의 혁명' 완수를 위해 함께 투표하자고 독려했다. 그는 "검정고시는 강고한 학벌주의·연고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오직 실력과 의지만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는 증명"이라며 "출신과 배경이 아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과 의지가 인정받는 사회,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역설했다.
이 후보는 충주 유세를 마치면서 "저 이재명은 사실 엄청나게 많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면서 "국민 덕에 펜을 넘어, 법을 넘어, 칼을 넘어 살아남았고, 앞으로 총탄도 넘어서 반드시 살아남아서 여러분의 훌륭한 도구가 되도록 하겠다.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들의 취임 연설에는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 나아가 당사자의 삶의 철학이 담기게 마련이다. 특히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깨고 ‘최초’의 명예를 얻은 지도자들의 연설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 보편적 가치의 확대를 증명하는 웅변으로 감동을 준다. 사진은 윗줄 왼쪽부터 취임 순으로 배열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bbluedahlia@hani.co.kr,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겨레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2025년 6월3일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 성격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파면된 뒤 치러지는 선거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강점과 취약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주권자 국민과 대표기관 국회가 헌법의 힘으로 끔찍한 사태를 막았지만, 내란 세력 역시 온갖 법 기술과 궤변으로 민주주의 회복과 정의 실현에 저항하고 있다. 윤석열 쿠데타에 편승한 극우세력은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분열과 혐오를 확산시킨다. 6·3 대선이 단순히 정치적 심판이나 12·3 쿠데타 이전으로 헌정 질서를 되돌리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선거로 들어설 정부는 민주주의 강화, 불평등 축소, 사회안전망 확충, 한반도 평화 같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들은 취임 연설에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과 임기 중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담게 마련이다. 20세기 이후 세계는 냉전과 탈식민, 민주화와 세계화, 급속한 경제 성장과 환경 위기라는 거대한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도자들의 취임 연설은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목소리로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
■ 존 F. 케네디
1961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앞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44살 젊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의 탄생에 환호했다. 존 F. 케네디가 내세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새로운 개척자)는 전후 냉전 체제의 한복판에서 미국의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이자 세계 최강 대국으로 떠오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 핵전쟁 억지를 포함한 글로벌 리더십의 비전과 의지를 담았다.
“오랜 동맹국들에 약속합니다. 우리는 충실한 우방의 신의를 다하겠습니다. (…) 자유세계에 합류한 신생 독립국들을 환영하며 약속합니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는데 더 강력한 철권 독재가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민가에서 궁핍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싸우는 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하겠습니다. (…)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엔에 약속합니다. 전쟁 수단이 평화의 수단을 훨씬 앞질러버린 시대에 유엔은 우리의 최후이자 최선의 희망입니다. (…) 우리를 적대하려는 나라들에게, 약속이 아니라 요청합니다. 과학이 풀어놓은 파괴의 어두운 힘이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모든 인류를 자멸로 몰아넣기 전에 양 진영 모두 평화를 위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합시다. (…)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십시오.”
2001년 3월 한국을 방문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왼쪽)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두 지도자는 평생을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주의에 기여한 헌신한 공로로 각각 1993년과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 제공
■ 넬슨 만델라
1994년 5월10일, 세계의 이목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집중됐다. 76살의 노전사 넬슨 만델라(1918~2013)가 이 나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백인 지배 집단의 권력과 부의 독점을 수십년 지탱해온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의 종말, 나아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선포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앞서 1993년에는 인종주의 철폐와 평화적 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백인 정부의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 1962년 수감돼 1990년 석방되기까지 28년이나 감옥에 갇혀서도 불굴의 투쟁을 이어왔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며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이뤘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을 빈곤과 수탈과 고통과 온갖 차별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을 서약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지속적인 평화를 건설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걸어가는 사회,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모두에게 정의가 있기를.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과 영혼이 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을 우리가 깨닫기를. 이 아름다운 나라가 다시는, 절대로, 결코, 서로를 억압하고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치욕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2003년 1월2일, 브라질에선 최초로 노동운동가 출신 대통령 정부가 출범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집권은 브라질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좌파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자,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아닌 민중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 이정표였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군부 독재를 겪었다. 대선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것은 1989년부터다. 룰라는 이때부터 대선에 출마해 네번째 도전 끝에 당선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았다. 정경 유착과 부패,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높은 실업률과 만연하는 빈곤, 외환 위기와 구제금융 사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였다. 룰라의 취임 연설에는 이런 위기를 극복해 가자는 의지와 호소가 담겼다.
“제가 임기를 마칠 때, 브라질의 모든 국민이 하루 세끼를 먹는다면 제 일생의 과업을 완수한 것일 겁니다. 새 정부의 중심적이고 영속적인 목표는 부패와 싸우고 공공기금 운영의 도덕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패와 조세 회피와 낭비가 브라질 국민에게서 그들 소유의 자원을 약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 오늘 우리는 브라질 역사의 새 장을 시작합니다. 계급, 인종이나 민족, 성별, 신념에 따른 차별이 없음을 확인하는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국가로 활동합니다. (…) 오늘은 브라질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날마다 제가 브라질 국민 각자와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신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2009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악수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라질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 앙겔라 메르켈
2005년 11월22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첫 정책 연설을 했다. 메르켈이 당 대표인 중도우파 기민련(CDU-CSU),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이날 대연정에 합의했다. 앞서 9월 총선에서 기민련은 과반에 못 미치는 35.2% 득표율로, 2위 사민당(34.2%)보다 1%포인트 앞선 박빙의 차로 승리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였다. 메르켈 연정의 출범은 독일 통일의 완성을 상징했고 유럽 정치에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알렸다. 메르켈은 연설에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의 가치와 통합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사회적 약자의 돌봄을 강조하며, 독일의 재도약을 선언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누가 오늘 대연정이 결성돼 우리 나라를 미래로 함께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누가 사민당과 기민련이 공동 정책을 마련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는 걸 생각이나 했을까요? 누가 여성이 정부의 최고위직에 임명될 거라고 예상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1989년(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까지 모든 길은 조국의 분단이 영원할 것 같았던 장벽 앞에서 막혔습니다. (…) 우리는 10년 안에 독일이 유럽의 3대 국가로 복귀하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과감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말했습니다. 장벽 건너편의 (동독)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연설에서 ‘과감히 더 많은 자유’를 말하겠습니다. (…) 특별히 한 그룹을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연대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 아픈 사람, 젊은이, 노약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휴머니티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습니다.”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릴 메모리얼 데이의 연설을 앞두고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보좌관과 함께 연설문을 검토하고 있다.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 버락 오바마
2009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 앞 광장에선 미국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소수자 대표성의 상징성이 컸다. 오바마는 8년 재임 내내 명료하고 지적이며 확신에 찬 연설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취임 연설은 경제와 외교·안보, 사회 통합에 초점을 맞춘 정책 비전이 중심으로, 정서적 감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당선의 의미를 담은 것은 2008년 11월5일 선거 당일 밤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한 당선 연설이었다.
“아직도 미국이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주의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이 그 모든 의문에 관한 답입니다. 청년과 노인, 가난한 자와 부자, 민주당과 공화당, 흑인과 백인, 라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모든 미국인이 내놓은 답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단순한 개개인의 집합이나 붉은 주(공화당)와 푸른 주(민주당)의 집합이 아닌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며 항상 그럴 것임을 알리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 오늘 밤 우리는 미국의 참된 힘은 우리 무기의 위력이나 부의 규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원한 이상들, 민주주의, 자유, 기회, 그리고 불굴의 희망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호세 무히카
지난 5월13일,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8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무히카는 반자본주의 도시 게릴라 운동에 참여했고, 19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14년이나 감옥에 갇혔다. 그가 2009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광역전선’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나이는 75살이었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2014년 3월10일 산티아고의 라 모네다 대통령궁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무히카는 5년 임기 내내 대통령 관저가 아닌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낡은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텃밭 농사를 지었다. 대통령 월급의 대부분은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가장 마음을 많이 둔 곳은 가난하고 취약한 하층민들이었다. 2010년 3월 취임 연설에서도 빈곤 퇴치와 인권 향상을 역설하며, 교육·에너지·환경·치안을 4대 중점 과제로 꼽았다.
“제 법률 지식이 부족해서 제가 당선자 신분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되는 정확한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시점이 지금인지, 아니면 조금 뒤 대통령 상징물을 받는 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선자라는 호칭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호칭은 오직 유권자의 뜻으로 제가 대통령이 된 사실을 환기시키고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헌법은 우리에게 감옥을 모욕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인종·성별·피부색의 차별을 인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진보와 변화를 원합니다. (…) 환경 보호와 생산 증대(경제개발) 사이의 긴장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정부는 양쪽을 중재하며 결정하겠습니다.”
■ 김대중
1998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1961년 군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지 37년 만에 국민의 직접 선거로 군부가 권력을 잃고 정권이 교체됐다.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일본 앞바다에 수장될 뻔했고(1973년 8월), 전두환 정권의 대법원이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확정(1981년 1월)하는 등 숱한 박해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마침내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심각한 외환 위기로 나라 살림이 파탄 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때였다.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 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모든 영광과 축복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면서, 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이 중차대한 시기에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쳐왔습니다. (…) 잘못은 지도층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합니다.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지금 우리는 전진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우리 국민은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선두에 서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왼쪽부터 차례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민주노동당 권영국·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정치 분야 TV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주의는 현대 국가에서 최선의 정치 체제이자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하고 지키기는 쉽지 않다. 2011년 봄,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에선 민중의 거대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기자는 이집트 카이로로 급파돼 세계사적 격동의 현장을 취재했다. 30년째 철권통치를 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전국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국민에게 무차별로 총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불과 18일 새 최소 846명이 숨졌다. 사태를 관망하던 이집트 군부가 개입하면서 학살극은 일단 멈췄다.
수십만명이 모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11살 딸과 함께 나온 30대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집트 국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신세대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사고를 한다. 단지 정권을 바꾸거나 내각을 개편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어젠다를 원한다.”
2025년 봄, 뜻밖의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찾아야 할까?
▲21대 대선 유권자들이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전투표소에 줄을 서 있다. ⓒ 특별취재팀
"말투가 이상하다고, 우리를 뒤따라와 '서!' 이러면 투표하러 누가 오겠어요?"
"우리가 죄인은 아니잖아요!"
21대 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29일 오전 6시 직후,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한 남성 무리가 이미 신분 확인을 거쳐 투표를 마치고 나온 여성들을 강제로 붙잡아 신분증을 보여달라 요구했고 이에 따른 항의가 터져 나온 것이다.
한국 국적의 동포로 보이는 이 여성들은 "저 아저씨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끌고 가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며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곧바로 경찰이 도착했고, 지켜보던 시민들은 남성 무리를 향해 "당신들이 뭔 데 와서 이러냐"고 따졌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도 "즉시 떠나라"고 경고했다.
이 남성 무리는 자신들을 '선거 감시단'이라고 불렀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반해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 숫자를 세고 출입구를 촬영했으며, 특히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쫓아가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전에 체계적으로 구성된 조직이 전국 각지에 뿌려진 결과물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만든 이 감시단에 모집 단계부터 잠입해 취재했다.
채팅방에 초대된 사람들... 중국인이 싫어할 만한 노래 <자유의 꽃>을 틀어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선거 감시단'의 카카오톡 채팅방. 이들은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중국인의 투표를 단속한다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 카카오톡 채팅방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26일, 자유대학과 YEFF(Youth Election Fraud Fighters)라는 단체는 감시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글폼(온라인 설문 서비스)에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 등을 입력하면 감시단 채팅방에 초대하겠다고 안내했다. "애국 봉사활동"이라 참가수당은 없었다.
감시단 신청서를 내자 얼마 뒤 채팅방에 초대됐다. 채팅방에는 "서울 173", "경기도 169", "영등포구 10" 등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참여 지역은 "서울, 대구, 인천, 광주,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등으로 다양했다. 먼저 채팅방에 접속해 있던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현장행동 방법' 매뉴얼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특이사항을 발견할 경우 증거 자료를 자체 신고 링크에 올리라는 공지도 이어졌다.
"사전투표를 하는 중국인 합법적으로 적발하는 요령"이란 제목의 글도 전달됐다. 여기엔 "의심자에 대해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며 "선관위 직원이 제지할 경우 (중략) 법적 근거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참가자 대다수는 프로필에 본인 사진을 걸었고 전화번호도 주고받았다. 기자가 "어느 투표소로 가야 하냐"고 질문하자, 한 참가자가 '중국인이 많은 순위'대로 정리된 지역 채팅방을 공유했다. 해당 채팅방에 들어가 참가자들과 약속 시간을 잡았다. 그렇게 29일 이른 새벽, 약속한 투표소 앞에서 그들을 만났다. 당초 계획보다 많은 숫자가 모였는데 다른 단체에서 모집한 감시단이거나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곧장 감시 역할을 분담했다. 몇몇은 계수기 앱으로 투표소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셌고, 다른 이들은 투표소 출입구를 촬영하거나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특히 중국인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를 두고 경험담과 팁을 공유했다. 이들은 "중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다. 근데 잡고 보면 한국말을 쓰더라", "중국인처럼 보이면 '어디로 가냐'고 질문해라. 말투를 보면 중국인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인식은 앞서 감시단 채팅방에서도 확인됐다. 참가자들은 '중국인 확인 멘트'라며 "주민등록증 가져왔냐고 질문하라"고 했고, "한국에 오래 살면 한국어를 잘할 테니 중국인끼리 대화하는 걸 보라"고 했다. 또 "중국인이 싫어할 만한 노래 <자유의 꽃>을 틀라"고 하거나 "중국인들이 참여하고 투표했다는 증거 자체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주저앉은 피해자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YEFF(Youth Election Fraud Fighters)라는 단체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게시물들. 자유대학이란 단체와 함께 '선거 감시단'을 모집하는 게시물도 올라와 있다. ⓒ YEFF 인스타그램
결국 감시단의 행위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번졌다. 감시단에 붙들린 한 여성은 "경찰을 불러 달라"면서 "내 말투가 이상하다며 모르는 사람이 손을 붙잡고 자꾸 가자고 했다. 내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왜 이 사람한테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일을 당한 옆의 여성들도 "이 사람들 때문에 너무 놀랐다"고 반응했다.
여성들은 투표소 신원 확인을 거쳐 이미 투표를 마친 상태였다. 일부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은 "18세 이상 국민"에게만 투표권이 있다.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던 여성은 "주민등록증 없이 투표소를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지 않냐"며 "이러면 누가 투표하러 오겠나. 이렇게 사람을 깔보는 게 어딨냐"고 토로했다. 그는 인도에 주저앉아 숨을 내쉬며 "병원에 가야겠다.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고 했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놀란 여성들을 달랬다. 한 시민은 "너희가 뭔 데 와서 (이러냐), 부정선거 주장하는 이들이냐"고 따졌고, 옆에 있던 시민들도 "(부정선거 주장하는 사람들이) 맞다"고 반응했다. 또 "지금 투표소 밖을 촬영하시는 거냐, 이래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출동한 경찰관 또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투표 권한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신들이 아닌 투표소 안에서 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에 감시단 사람들 중 한 명은 쩔쩔매며 "(우리가) 손을 잡은 건 문제"라며 잘못을 시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이도 있었다.
경찰관은 여성들을 직접 붙잡은 남성 2명에게 이름, 소속, 전화번호를 받았고 "즉시 떠나라.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이후 "이 아저씨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우리도 알아야겠다"는 여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감시단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채팅방이 울렸다.
"경찰들 갔습니다. (다시) 오셔요."
"의혹 제기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어... 정치인들, 거들면 안 돼"
▲김문수 유세장에 등장한 '윤 어게인' 모자윤 어게인(YOON AGAIN) 모자를 쓴 시민이 29일 경기 시흥시 삼미시장에서 열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들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투표 결과 조작설을 넘어 중국인이 대선 투표에 참여한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같은 음모론의 자양분 중 정치권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그간 전광훈 목사 등과 교류하며 꾸준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실제 사전투표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사전투표제 폐지'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1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씨가 영화 <부정선거>를 관람한 것을 두고 "누구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선관위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투표권 없는 중국인들이 투표를 한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그리고 한국의 선거관리 시스템을 통해 얼마든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을 두고 이렇게 색출 소동을 벌인다는 건 중국인 혐오만 부추기는 일"라며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으로 이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 불필요하고 근거 없는 의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인들이 거들지만 않는다면 사실 이 문제가 확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개입하면 '이 문제 제기가 정당했다'거나 '의미가 있었다'는 식으로 (대중을) 자극하게 된다"라며 "(주요 정치인 중) '저도 중국인들이 부정 투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저러겠냐'는 식으로 편을 들어주면 행동을 자극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혐오나 차별이 퍼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풀어서 기인한다"면서 "문제의 원인이 그곳에 있지 않다고 분명히 선언·설득하고,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은 확실히 체크해 반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공론을 모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종로에서 본 유권자의 민심, 핵심 키워드는 ‘비상계엄’과 ‘민주주의’
“비상계엄은 선을 넘었다”…기호 1번에 쏠린 표심
중도·무당층의 움직임...계엄이 판단 기준이 되다
이탈한 보수층과 고립된 2번 지지자들
“이념보다 민주주의”…6.3대선의 프레임
‘계엄 대선’, 유권자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30일 오후, 6.3대선 사전투표가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서울 종로 1·2·3·4가동 주민센터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종로에서 본 유권자의 민심, 핵심 키워드는 ‘비상계엄’과 ‘민주주의’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지난 29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본지는 30일 서울 종로 1·2·3·4가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출구조사를 진행했다.
취재에 응한 18명 중 14명은 정권교체를, 4명은 정권연장을 희망했다.
유권자들의 발언에서 드러난 공통된 정서는 단 하나였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선을 넘었다”…기호 1번에 쏠린 표심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선택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계엄”과 “내란”이었다.
30대 초반 여성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계엄을 직접 보게 된 충격이 크다”며, “국민에게서 정치적 자유를 빼앗고 맘대로 제재하겠다는 발상이 무섭다”고 말했다.
80대 남성은 “계엄은 선을 넘은 것”이라며 “윤석열의 내란은 정말 비극”이라고 울먹였다.
70대 남성 역시 “복잡한 건 모르겠지만, 윤석열이 나쁜 사람인 건 알겠다”며 정권교체를 희망했다.
40대 중반 여성은 “내란에 동조한 당에 어떻게 표를 주나”라고 일갈했고, 30대 초반 남성은 “이번 대선은 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이 이유다. 그럼 어딜 찍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계엄령 사태에 대한 충격과 분노는 특정 연령이나 정치 성향을 초월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크게 움직인 요인이었다.
중도·무당층의 움직임...계엄이 판단 기준이 되다
이번 출구조사에서는 중도 성향이나 무당층을 자처한 유권자들 역시 대거 정권교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후반 여성은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에 대한 반감으로 윤석열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비상계엄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40대 여성 유권자도 “원래 정당 지지도 없고 투표도 잘 안하지만, 이번엔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사전투표까지 나왔다”며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했다.
30대 남성 유권자 역시 “지지 정당은 없고 중도보수”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가 사익집단화된 걸 보면서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당 충성도가 낮은 층이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은 ‘이재명 지지’가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동기로 투표장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성격이 반(反)권위주의적 대중행동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탈한 보수층과 고립된 2번 지지자들
정권연장을 선택한 유권자들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뚜렷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상대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나 사법리스크 때문에 지지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60대 남성은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고, 30대 남성은 “안정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며 정권연장에 투표했다.
60대 여성은 “김문수는 깨끗하고 청렴하다”며 정서적 지지를 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지는 정권 차원의 계엄령 사태에 대한 반응과는 무관한 개별 후보 중심의 평가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는 투표의 근본 이유를 국가 위기, 민주주의 붕괴, 정권 책임론에 기반한 구조적 판단으로 설명했다.
즉, 정권연장 측은 상대적으로 고립된 판단 구조 속에서 표심을 결정한 반면, 정권교체 측은 시대적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이라는 공동의 문제의식 아래 결집된 경향을 보였다.
“이념보다 민주주의”…6.3대선의 프레임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번 조기대선은 전통적인 진보-보수 구도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념보다 내란청산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우선시했고, 그 판단의 기준은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50대 여성 유권자의 발언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내 투표의 선택은 현 정부에 대한 어이없음이 크게 작용했다.”
20대 여성은 “윤석열이랑 국민의힘이 나라를 절단 냈다”고 말하며, “정권 가담자가 후보로 나오는 걸 보고 기함했다”고 말했다.
‘계엄 대선’, 유권자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 조기대선은 단순한 정책 경쟁도, 이념 대결도 아니었다.
유권자 다수는 이번 선거를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표로써 말하고 있다. “계엄은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이 말은 단지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앞으로 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국민의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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