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앞 광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취임 첫 날 야당과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국민들의) 결단이 만약 민주당에 기회를 주는 쪽 선택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여당, 국회와 협력해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비정상을 신속히 극복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1 앞 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 직후 '대통령이 되면 취임 당일 야당 대표를 만날 계획인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당연히 만나야 한다. 대화하고 또 직접 만나든 간접적으로 만나든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되면 취임 첫날 야당 대표 만날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광장 집중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또 "당일날 가능할지는, 제가 선거에 이길지 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면서도 "일반적인 (경우를 가정해) 아마 (대통령) 취임 선서식을 국회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만날 수 있으면 만나는 게 더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은 한다"고 답했다.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질문에는 "김문수 후보는 내란을 극복하는 게 아닌 연장하자는 후보로 보인다. 이 점에 대해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해 결단하게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 결단이 다수당인 민주당에 기회를 주는 쪽이라면 당연히 다수의 여당과, 국회가 협력해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비정상을 신속히 극복하고 무너진 국격과 경제, 안보, 외교를 다 회복하고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일을 해달라는 취지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취지에 맞춰 국회의 다수 의석과 행정 권력을 잘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합과 통합은 구분해야...중대범죄, 부정부패, 인권침해 행위는 책임 물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31일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앞 광장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당초 현장에서 취임 후 '야당' 관련 질문이 주어진 건 이 후보가 이날 오후 KBS 라디오 '정관용 시사본부'에 출연해 진행자로부터 "대통령 당선 시 임기 첫날 야당 당사를 찾아가 대화 정치를 복원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업무 효율과 상징적 측면에서 상당히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긍정 평가했기 때문이다.
다만 '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유발했던 당사자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연신 내비쳤다. 이 후보는 라디오에서 "계엄 당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오지 못하게 한 의원들도 처벌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 후보의 입장이) 정치보복 아니냐"는 질문에 "봉합과 통합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후보는 "중대 범죄 행위, 국민 인권 침해 행위, 부정부패를 저질러 우리 사회 공정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 누군가에 눈물 흘리게 하는 행위를 정치라는 이유로 다 용서하고 눈 감아주면 그건 정치가 아니다"고 답했다. "우리 국민들도 그런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목표를 정하고 '최대한 탈탈 털어 처벌해보자' 하는 건 정치보복이다. 그런 건 하면 안 된다"면서도 "중대 범죄에 눈 감는 건 외레 통합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창프라자 광장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도종환 전 의원, 이연희 의원, 이 후보, 이광희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 이희훈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6·3 대선을 나흘 앞둔 30일 저녁 충북 충주 유세에서 수구 기득권 세력 주도의 '이재명 혐오'와 '이재명 악마화'를 정면으로 따져 물었다.
곧이어 스스로 "시대가 바뀔 수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리곤 "정상적인 사회로,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사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렇게 되면 이 불공정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얻던 특별한 혜택, 특별한 지위가 위협받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충북 충주시 충주체육관 시계탑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청사초롱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30일 춘천·원주·충주 유세에서
'이재명 악마화'에 작심 발언
이 후보가 보기에, 대한민국은 박정희 개발 독재 이후 오랜 불균형 성장 전략을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지역은 서울로 몰빵, 기업은 몇몇 대기업으로 몰빵, 인물로는 잘난 특정 소수에게 몰빵"함으로써 서울·수도권 초집중,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극심한 부패 등을 초래해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균형 발전 전략'으로 국가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야만 할 때다.
그는 "기업도 특정 소수한테 특혜를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고 모든 기업에 공평한 기회를, 아니 힘 약한 기업에 더 인센티브를 주는 그런 생태계를 만드는 기업 전략을 써야 한다...정부 재정도 지방에 더 많이 배정해야 한다"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지속적으로 다시 성장할 수 있고, 기회가 생겨서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같이 손잡고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노무현보다 더 위험한 사람 발견"
"살아온 방식대로 진짜 공정하면?"
이런 대전환은 그간 특혜를 당연시해왔던 수구 기득권 세력에겐 큰 위협임은 물론이다. 이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런 불안감을 느꼈다"면서 "그런데 그 사람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재명)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성남 천둥벌거숭이가...말한 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진짜 공정하게 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다. 그 사람들은 무척 싫을 것이고, 뺏기지 않을까 무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이재명이 성남시, 경기도 행정을 책임지면서 부당하게 한 일이 있는가. 덮어씌우고 가짜로 조작해서 그렇지, 제가 십 원 한 장 챙긴 일 있는가...십수년을 작업해도 제가 씨알이 안 먹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선 불안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30일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원주행복마당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왜 이재명을 두려워하고 음해?
부당한 특권 뺏길까 두려움 탓"
앞서 강원 춘천 유세에서도 그는 균형 발전 전략으로의 대전환은 "혁명적인 과정"이라며 "지금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특혜를 받던 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권적 위치, 특혜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주 유세에서도 이 후보는 "(이재명을) 왜 두려워하고 음해하는가? 제가 언제 독재를 했는가?"라고 되묻고는 "이재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부당한 특권적 지위를 혹시 뺏기게 되지 않을까 해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이재명을 무서워하라고 하거든 앞으로는 공정하게 살 생각해라. 공정하게 대우받고 공평한 기회를 누리고 기여한 만큼의 몫만 보장되는 정상적인 사회를 그대도 준비하시라고 여러분이 말해 달라"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진짜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재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저 변방에서 아웃사이더 비주류에서 이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불평등하게 불이익을 받던 대다수 국민은 환영하지 않느며"며 지지를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열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원과 충북 지역의 표심 공략에 나선 30일 춘천시 춘천역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5.30 [공동취재] 연합뉴스
'비주류의 비주류'였던 이재명
"저는 늘 국민들 속에 있었다"
춘천 유세에서 이 후보는 소년공과 장애, 검정고시, 대학과 사법시험 합격 등의 지난날을 회고한 뒤 "사법시험 합격하고 다시 또 태어났던 그 웅덩이로 되돌아갔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기득권자의 길이 아니라 기득권에 피해 본 힘없는 서민, 우리 다수 대중 속에서 함께 살았고, 또 그들의 소중한 주권 행사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 덕에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는 "비주류고 아웃사이더라고 말하지만, 그건 기득권자, 주류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라면서 "저는 늘 국민들 속에 있었고 국민들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했고,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반영해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들이 맡긴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성과가 났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정치적 우여곡절을 딛고 새로운 비상, 진정한 주류화를 앞둔 탓인지 이 후보는 이날 춘천·원주·충주 유세를 통해 우리 사회 '비주류의 비주류'로서 오랜 세월 가슴에 응어리졌던 '진짜 하고픈 이야기'을 모두 쏟아 내려는 듯했다.
3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유세가 열린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원주행복마당에서 지지자들이 이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2025.5.30 연합뉴스
검정고시 동문들에 보내는 편지
"출신·배경 아닌 기회 공정해야"
이런 조짐은 유세 전부터 있었다. 이 후보는 이날 페북에 '조금 더 특별한 우리: 검정고시 동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려 '빛의 혁명' 완수를 위해 함께 투표하자고 독려했다. 그는 "검정고시는 강고한 학벌주의·연고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오직 실력과 의지만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는 증명"이라며 "출신과 배경이 아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과 의지가 인정받는 사회,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역설했다.
이 후보는 충주 유세를 마치면서 "저 이재명은 사실 엄청나게 많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면서 "국민 덕에 펜을 넘어, 법을 넘어, 칼을 넘어 살아남았고, 앞으로 총탄도 넘어서 반드시 살아남아서 여러분의 훌륭한 도구가 되도록 하겠다. 감사드리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들의 취임 연설에는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 나아가 당사자의 삶의 철학이 담기게 마련이다. 특히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깨고 ‘최초’의 명예를 얻은 지도자들의 연설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 보편적 가치의 확대를 증명하는 웅변으로 감동을 준다. 사진은 윗줄 왼쪽부터 취임 순으로 배열했다. 그래픽 노수민 기자 bbluedahlia@hani.co.kr, 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겨레 자료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2025년 6월3일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 성격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파면된 뒤 치러지는 선거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강점과 취약점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주권자 국민과 대표기관 국회가 헌법의 힘으로 끔찍한 사태를 막았지만, 내란 세력 역시 온갖 법 기술과 궤변으로 민주주의 회복과 정의 실현에 저항하고 있다. 윤석열 쿠데타에 편승한 극우세력은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분열과 혐오를 확산시킨다. 6·3 대선이 단순히 정치적 심판이나 12·3 쿠데타 이전으로 헌정 질서를 되돌리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선거로 들어설 정부는 민주주의 강화, 불평등 축소, 사회안전망 확충, 한반도 평화 같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들은 취임 연설에 시대를 읽고 미래를 제시하는 비전과 임기 중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담게 마련이다. 20세기 이후 세계는 냉전과 탈식민, 민주화와 세계화, 급속한 경제 성장과 환경 위기라는 거대한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도자들의 취임 연설은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목소리로 지금도 큰 울림을 준다.
■ 존 F. 케네디
1961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앞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했다. 사람들은 44살 젊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의 탄생에 환호했다. 존 F. 케네디가 내세운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새로운 개척자)는 전후 냉전 체제의 한복판에서 미국의 이상주의를 상징하는 슬로건이자 세계 최강 대국으로 떠오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 핵전쟁 억지를 포함한 글로벌 리더십의 비전과 의지를 담았다.
“오랜 동맹국들에 약속합니다. 우리는 충실한 우방의 신의를 다하겠습니다. (…) 자유세계에 합류한 신생 독립국들을 환영하며 약속합니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는데 더 강력한 철권 독재가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빈민가에서 궁핍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싸우는 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하겠습니다. (…)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엔에 약속합니다. 전쟁 수단이 평화의 수단을 훨씬 앞질러버린 시대에 유엔은 우리의 최후이자 최선의 희망입니다. (…) 우리를 적대하려는 나라들에게, 약속이 아니라 요청합니다. 과학이 풀어놓은 파괴의 어두운 힘이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모든 인류를 자멸로 몰아넣기 전에 양 진영 모두 평화를 위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합시다. (…)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십시오.”
2001년 3월 한국을 방문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왼쪽)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두 지도자는 평생을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주의에 기여한 헌신한 공로로 각각 1993년과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 제공
■ 넬슨 만델라
1994년 5월10일, 세계의 이목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집중됐다. 76살의 노전사 넬슨 만델라(1918~2013)가 이 나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백인 지배 집단의 권력과 부의 독점을 수십년 지탱해온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의 종말, 나아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선포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앞서 1993년에는 인종주의 철폐와 평화적 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백인 정부의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다 1962년 수감돼 1990년 석방되기까지 28년이나 감옥에 갇혀서도 불굴의 투쟁을 이어왔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벅찬 기쁨을 함께 나누며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이뤘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을 빈곤과 수탈과 고통과 온갖 차별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것을 서약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지속적인 평화를 건설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국민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당당히 걸어가는 사회,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모두에게 정의가 있기를.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우리 모두에게 몸과 마음과 영혼이 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음을 우리가 깨닫기를. 이 아름다운 나라가 다시는, 절대로, 결코, 서로를 억압하고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치욕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2003년 1월2일, 브라질에선 최초로 노동운동가 출신 대통령 정부가 출범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을 지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집권은 브라질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좌파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자,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아닌 민중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 이정표였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군부 독재를 겪었다. 대선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것은 1989년부터다. 룰라는 이때부터 대선에 출마해 네번째 도전 끝에 당선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았다. 정경 유착과 부패,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높은 실업률과 만연하는 빈곤, 외환 위기와 구제금융 사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였다. 룰라의 취임 연설에는 이런 위기를 극복해 가자는 의지와 호소가 담겼다.
“제가 임기를 마칠 때, 브라질의 모든 국민이 하루 세끼를 먹는다면 제 일생의 과업을 완수한 것일 겁니다. 새 정부의 중심적이고 영속적인 목표는 부패와 싸우고 공공기금 운영의 도덕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패와 조세 회피와 낭비가 브라질 국민에게서 그들 소유의 자원을 약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 오늘 우리는 브라질 역사의 새 장을 시작합니다. 계급, 인종이나 민족, 성별, 신념에 따른 차별이 없음을 확인하는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국가로 활동합니다. (…) 오늘은 브라질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날마다 제가 브라질 국민 각자와 연결돼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신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2009년 12월 독일을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악수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라질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 앙겔라 메르켈
2005년 11월22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첫 정책 연설을 했다. 메르켈이 당 대표인 중도우파 기민련(CDU-CSU),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이날 대연정에 합의했다. 앞서 9월 총선에서 기민련은 과반에 못 미치는 35.2% 득표율로, 2위 사민당(34.2%)보다 1%포인트 앞선 박빙의 차로 승리했다. 메르켈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였다. 메르켈 연정의 출범은 독일 통일의 완성을 상징했고 유럽 정치에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알렸다. 메르켈은 연설에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의 가치와 통합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사회적 약자의 돌봄을 강조하며, 독일의 재도약을 선언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누가 오늘 대연정이 결성돼 우리 나라를 미래로 함께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누가 사민당과 기민련이 공동 정책을 마련할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는 걸 생각이나 했을까요? 누가 여성이 정부의 최고위직에 임명될 거라고 예상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내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1989년(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까지 모든 길은 조국의 분단이 영원할 것 같았던 장벽 앞에서 막혔습니다. (…) 우리는 10년 안에 독일이 유럽의 3대 국가로 복귀하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과감히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말했습니다. 장벽 건너편의 (동독)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연설에서 ‘과감히 더 많은 자유’를 말하겠습니다. (…) 특별히 한 그룹을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연대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 아픈 사람, 젊은이, 노약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휴머니티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습니다.”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릴 메모리얼 데이의 연설을 앞두고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보좌관과 함께 연설문을 검토하고 있다. 백악관 누리집 갈무리
■ 버락 오바마
2009년 1월20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 앞 광장에선 미국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소수자 대표성의 상징성이 컸다. 오바마는 8년 재임 내내 명료하고 지적이며 확신에 찬 연설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취임 연설은 경제와 외교·안보, 사회 통합에 초점을 맞춘 정책 비전이 중심으로, 정서적 감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당선의 의미를 담은 것은 2008년 11월5일 선거 당일 밤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한 당선 연설이었다.
“아직도 미국이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주의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이 그 모든 의문에 관한 답입니다. 청년과 노인, 가난한 자와 부자, 민주당과 공화당, 흑인과 백인, 라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모든 미국인이 내놓은 답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단순한 개개인의 집합이나 붉은 주(공화당)와 푸른 주(민주당)의 집합이 아닌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며 항상 그럴 것임을 알리는 메시지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 오늘 밤 우리는 미국의 참된 힘은 우리 무기의 위력이나 부의 규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원한 이상들, 민주주의, 자유, 기회, 그리고 불굴의 희망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호세 무히카
지난 5월13일,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8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무히카는 반자본주의 도시 게릴라 운동에 참여했고, 19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14년이나 감옥에 갇혔다. 그가 2009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광역전선’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나이는 75살이었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이 2014년 3월10일 산티아고의 라 모네다 대통령궁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무히카는 5년 임기 내내 대통령 관저가 아닌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낡은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텃밭 농사를 지었다. 대통령 월급의 대부분은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 가장 마음을 많이 둔 곳은 가난하고 취약한 하층민들이었다. 2010년 3월 취임 연설에서도 빈곤 퇴치와 인권 향상을 역설하며, 교육·에너지·환경·치안을 4대 중점 과제로 꼽았다.
“제 법률 지식이 부족해서 제가 당선자 신분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되는 정확한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시점이 지금인지, 아니면 조금 뒤 대통령 상징물을 받는 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당선자라는 호칭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호칭은 오직 유권자의 뜻으로 제가 대통령이 된 사실을 환기시키고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 헌법은 우리에게 감옥을 모욕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인종·성별·피부색의 차별을 인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진보와 변화를 원합니다. (…) 환경 보호와 생산 증대(경제개발) 사이의 긴장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정부는 양쪽을 중재하며 결정하겠습니다.”
■ 김대중
1998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1961년 군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지 37년 만에 국민의 직접 선거로 군부가 권력을 잃고 정권이 교체됐다.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일본 앞바다에 수장될 뻔했고(1973년 8월), 전두환 정권의 대법원이 내란 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확정(1981년 1월)하는 등 숱한 박해와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마침내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을 때는 심각한 외환 위기로 나라 살림이 파탄 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때였다.
“오늘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 정권 교체가 실현되는 자랑스러운 날입니다. 모든 영광과 축복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면서, 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 이 중차대한 시기에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가 닥쳐왔습니다. (…) 잘못은 지도층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 노인이나 장애인들도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합니다.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지금 우리는 전진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 우리 국민은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선두에 서겠습니다. 우리 다 같이 손잡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왼쪽부터 차례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민주노동당 권영국·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정치 분야 TV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주의는 현대 국가에서 최선의 정치 체제이자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하고 지키기는 쉽지 않다. 2011년 봄,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에선 민중의 거대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기자는 이집트 카이로로 급파돼 세계사적 격동의 현장을 취재했다. 30년째 철권통치를 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전국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국민에게 무차별로 총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불과 18일 새 최소 846명이 숨졌다. 사태를 관망하던 이집트 군부가 개입하면서 학살극은 일단 멈췄다.
수십만명이 모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시위에11살 딸과 함께 나온 30대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집트 국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신세대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사고를 한다. 단지 정권을 바꾸거나 내각을 개편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어젠다를 원한다.”
2025년 봄, 뜻밖의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변을 찾아야 할까?
▲21대 대선 유권자들이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전투표소에 줄을 서 있다. ⓒ 특별취재팀
"말투가 이상하다고, 우리를 뒤따라와 '서!' 이러면 투표하러 누가 오겠어요?"
"우리가 죄인은 아니잖아요!"
21대 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29일 오전 6시 직후,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한 남성 무리가 이미 신분 확인을 거쳐 투표를 마치고 나온 여성들을 강제로 붙잡아 신분증을 보여달라 요구했고 이에 따른 항의가 터져 나온 것이다.
한국 국적의 동포로 보이는 이 여성들은 "저 아저씨들이 (우리를) 마음대로 끌고 가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며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곧바로 경찰이 도착했고, 지켜보던 시민들은 남성 무리를 향해 "당신들이 뭔 데 와서 이러냐"고 따졌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도 "즉시 떠나라"고 경고했다.
이 남성 무리는 자신들을 '선거 감시단'이라고 불렀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반해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 숫자를 세고 출입구를 촬영했으며, 특히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쫓아가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사전에 체계적으로 구성된 조직이 전국 각지에 뿌려진 결과물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만든 이 감시단에 모집 단계부터 잠입해 취재했다.
채팅방에 초대된 사람들... 중국인이 싫어할 만한 노래 <자유의 꽃>을 틀어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선거 감시단'의 카카오톡 채팅방. 이들은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중국인의 투표를 단속한다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 카카오톡 채팅방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26일, 자유대학과 YEFF(Youth Election Fraud Fighters)라는 단체는 감시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글폼(온라인 설문 서비스)에 이름, 생년월일, 사는 곳 등을 입력하면 감시단 채팅방에 초대하겠다고 안내했다. "애국 봉사활동"이라 참가수당은 없었다.
감시단 신청서를 내자 얼마 뒤 채팅방에 초대됐다. 채팅방에는 "서울 173", "경기도 169", "영등포구 10" 등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참여 지역은 "서울, 대구, 인천, 광주,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등으로 다양했다. 먼저 채팅방에 접속해 있던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현장행동 방법' 매뉴얼을 공유했다. 뿐만 아니라 특이사항을 발견할 경우 증거 자료를 자체 신고 링크에 올리라는 공지도 이어졌다.
"사전투표를 하는 중국인 합법적으로 적발하는 요령"이란 제목의 글도 전달됐다. 여기엔 "의심자에 대해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며 "선관위 직원이 제지할 경우 (중략) 법적 근거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참가자 대다수는 프로필에 본인 사진을 걸었고 전화번호도 주고받았다. 기자가 "어느 투표소로 가야 하냐"고 질문하자, 한 참가자가 '중국인이 많은 순위'대로 정리된 지역 채팅방을 공유했다. 해당 채팅방에 들어가 참가자들과 약속 시간을 잡았다. 그렇게 29일 이른 새벽, 약속한 투표소 앞에서 그들을 만났다. 당초 계획보다 많은 숫자가 모였는데 다른 단체에서 모집한 감시단이거나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곧장 감시 역할을 분담했다. 몇몇은 계수기 앱으로 투표소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셌고, 다른 이들은 투표소 출입구를 촬영하거나 중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특히 중국인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를 두고 경험담과 팁을 공유했다. 이들은 "중국인처럼 생긴 사람들이 많다. 근데 잡고 보면 한국말을 쓰더라", "중국인처럼 보이면 '어디로 가냐'고 질문해라. 말투를 보면 중국인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인식은 앞서 감시단 채팅방에서도 확인됐다. 참가자들은 '중국인 확인 멘트'라며 "주민등록증 가져왔냐고 질문하라"고 했고, "한국에 오래 살면 한국어를 잘할 테니 중국인끼리 대화하는 걸 보라"고 했다. 또 "중국인이 싫어할 만한 노래 <자유의 꽃>을 틀라"고 하거나 "중국인들이 참여하고 투표했다는 증거 자체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주저앉은 피해자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YEFF(Youth Election Fraud Fighters)라는 단체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게시물들. 자유대학이란 단체와 함께 '선거 감시단'을 모집하는 게시물도 올라와 있다. ⓒ YEFF 인스타그램
결국 감시단의 행위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번졌다. 감시단에 붙들린 한 여성은 "경찰을 불러 달라"면서 "내 말투가 이상하다며 모르는 사람이 손을 붙잡고 자꾸 가자고 했다. 내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왜 이 사람한테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일을 당한 옆의 여성들도 "이 사람들 때문에 너무 놀랐다"고 반응했다.
여성들은 투표소 신원 확인을 거쳐 이미 투표를 마친 상태였다. 일부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은 "18세 이상 국민"에게만 투표권이 있다.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던 여성은 "주민등록증 없이 투표소를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지 않냐"며 "이러면 누가 투표하러 오겠나. 이렇게 사람을 깔보는 게 어딨냐"고 토로했다. 그는 인도에 주저앉아 숨을 내쉬며 "병원에 가야겠다.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고 했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놀란 여성들을 달랬다. 한 시민은 "너희가 뭔 데 와서 (이러냐), 부정선거 주장하는 이들이냐"고 따졌고, 옆에 있던 시민들도 "(부정선거 주장하는 사람들이) 맞다"고 반응했다. 또 "지금 투표소 밖을 촬영하시는 거냐, 이래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출동한 경찰관 또한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투표 권한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신들이 아닌 투표소 안에서 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에 감시단 사람들 중 한 명은 쩔쩔매며 "(우리가) 손을 잡은 건 문제"라며 잘못을 시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이도 있었다.
경찰관은 여성들을 직접 붙잡은 남성 2명에게 이름, 소속, 전화번호를 받았고 "즉시 떠나라.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했다. 이후 "이 아저씨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우리도 알아야겠다"는 여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감시단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채팅방이 울렸다.
"경찰들 갔습니다. (다시) 오셔요."
"의혹 제기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어... 정치인들, 거들면 안 돼"
▲김문수 유세장에 등장한 '윤 어게인' 모자윤 어게인(YOON AGAIN) 모자를 쓴 시민이 29일 경기 시흥시 삼미시장에서 열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들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투표 결과 조작설을 넘어 중국인이 대선 투표에 참여한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같은 음모론의 자양분 중 정치권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그간 전광훈 목사 등과 교류하며 꾸준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실제 사전투표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사전투표제 폐지'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1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씨가 영화 <부정선거>를 관람한 것을 두고 "누구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선관위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투표권 없는 중국인들이 투표를 한다는) 전혀 근거가 없는, 그리고 한국의 선거관리 시스템을 통해 얼마든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을 두고 이렇게 색출 소동을 벌인다는 건 중국인 혐오만 부추기는 일"라며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으로 이 일이 정당화될 수 없다. 불필요하고 근거 없는 의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인들이 거들지만 않는다면 사실 이 문제가 확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개입하면 '이 문제 제기가 정당했다'거나 '의미가 있었다'는 식으로 (대중을) 자극하게 된다"라며 "(주요 정치인 중) '저도 중국인들이 부정 투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저러겠냐'는 식으로 편을 들어주면 행동을 자극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혐오나 차별이 퍼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풀어서 기인한다"면서 "문제의 원인이 그곳에 있지 않다고 분명히 선언·설득하고,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은 확실히 체크해 반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공론을 모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종로에서 본 유권자의 민심, 핵심 키워드는 ‘비상계엄’과 ‘민주주의’
“비상계엄은 선을 넘었다”…기호 1번에 쏠린 표심
중도·무당층의 움직임...계엄이 판단 기준이 되다
이탈한 보수층과 고립된 2번 지지자들
“이념보다 민주주의”…6.3대선의 프레임
‘계엄 대선’, 유권자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30일 오후, 6.3대선 사전투표가 한창인 가운데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서울 종로 1·2·3·4가동 주민센터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종로에서 본 유권자의 민심, 핵심 키워드는 ‘비상계엄’과 ‘민주주의’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지난 29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본지는 30일 서울 종로 1·2·3·4가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출구조사를 진행했다.
취재에 응한 18명 중 14명은 정권교체를, 4명은 정권연장을 희망했다.
유권자들의 발언에서 드러난 공통된 정서는 단 하나였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선을 넘었다”…기호 1번에 쏠린 표심
3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선택한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계엄”과 “내란”이었다.
30대 초반 여성은 “교과서에서만 봤던 계엄을 직접 보게 된 충격이 크다”며, “국민에게서 정치적 자유를 빼앗고 맘대로 제재하겠다는 발상이 무섭다”고 말했다.
80대 남성은 “계엄은 선을 넘은 것”이라며 “윤석열의 내란은 정말 비극”이라고 울먹였다.
70대 남성 역시 “복잡한 건 모르겠지만, 윤석열이 나쁜 사람인 건 알겠다”며 정권교체를 희망했다.
40대 중반 여성은 “내란에 동조한 당에 어떻게 표를 주나”라고 일갈했고, 30대 초반 남성은 “이번 대선은 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한 탄핵이 이유다. 그럼 어딜 찍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계엄령 사태에 대한 충격과 분노는 특정 연령이나 정치 성향을 초월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크게 움직인 요인이었다.
중도·무당층의 움직임...계엄이 판단 기준이 되다
이번 출구조사에서는 중도 성향이나 무당층을 자처한 유권자들 역시 대거 정권교체 쪽으로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후반 여성은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에 대한 반감으로 윤석열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비상계엄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40대 여성 유권자도 “원래 정당 지지도 없고 투표도 잘 안하지만, 이번엔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사전투표까지 나왔다”며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했다.
30대 남성 유권자 역시 “지지 정당은 없고 중도보수”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가 사익집단화된 걸 보면서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당 충성도가 낮은 층이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은 ‘이재명 지지’가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동기로 투표장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성격이 반(反)권위주의적 대중행동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탈한 보수층과 고립된 2번 지지자들
정권연장을 선택한 유권자들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뚜렷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상대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나 사법리스크 때문에 지지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60대 남성은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고, 30대 남성은 “안정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며 정권연장에 투표했다.
60대 여성은 “김문수는 깨끗하고 청렴하다”며 정서적 지지를 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지는 정권 차원의 계엄령 사태에 대한 반응과는 무관한 개별 후보 중심의 평가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는 투표의 근본 이유를 국가 위기, 민주주의 붕괴, 정권 책임론에 기반한 구조적 판단으로 설명했다.
즉, 정권연장 측은 상대적으로 고립된 판단 구조 속에서 표심을 결정한 반면, 정권교체 측은 시대적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이라는 공동의 문제의식 아래 결집된 경향을 보였다.
“이념보다 민주주의”…6.3대선의 프레임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번 조기대선은 전통적인 진보-보수 구도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념보다 내란청산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우선시했고, 그 판단의 기준은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50대 여성 유권자의 발언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내 투표의 선택은 현 정부에 대한 어이없음이 크게 작용했다.”
20대 여성은 “윤석열이랑 국민의힘이 나라를 절단 냈다”고 말하며, “정권 가담자가 후보로 나오는 걸 보고 기함했다”고 말했다.
‘계엄 대선’, 유권자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 조기대선은 단순한 정책 경쟁도, 이념 대결도 아니었다.
유권자 다수는 이번 선거를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표로써 말하고 있다. “계엄은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이 말은 단지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앞으로 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국민의 경고이기도 하다.
"6월 3일 대한민국 대선의 확실한 선두 주자로서 이재명은 이미 확연한 국가지도자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찰리 캠벨 선임기자는 29일 공개된 인터뷰 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사의 제목은 '한국의 조종간을 잡으려는 이재명, 위기와 산적한 도전의 순간을 벗어나도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024년 8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목 왼쪽 부위에 자상으로 인한 흉터가 보인다.
미 타임, 이재명 후보 인터뷰
"완연한 국가지도자"로 평가
캠벨 기자가 이런 인상을 받은 건 지난해 1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칼 테러' 사건을 얘기하는 과정에서였다. 목의 흉터를 보여주던 이재명 후보가 불쑥 "하지만 귀를 스친 총알을 견뎌야만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비하면, 내 상처는 충격이 덜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캠벨은 이 장면을 이 후보가 동맹인 미국의 정상을 '예우'하고 자신은 겸손하게 낮춘 것으로 풀이했다. 작년 7월 미국 대선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귀가 찢어진 트럼프보다 경동맥을 다쳐 사경을 헤맸던 자신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했는데도 말이다.
벌써부터 '한국의 지도자'란 마음가짐을 가지고 '특히 강하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때에 대비해 자연스럽게 마음을 얻고자 사전 포석하는 이 후보의 실용적 외교 자세가 몸에 밴 것처럼 느꼈다는 뜻으로 읽혔다.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으로 귀를 다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연단을 내려오면서 성조기를 배경으로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2024. 07.14 AP 연합뉴스
트럼프 '예우'…"미 국익 대변 바람직"
이재명 "나 역시 한국 국익 지켜야"
캠벨은 "오늘날의 외교에 필요한 게 있다면, 골프 실력, 유세 청중 규모, 또는 죽을뻔했던 경험, 뭐든 간에 얇은 피부의 악명 높은 47대 미국 대통령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이라면서 '힘의 과시'를 즐기는 트럼프와 협상할 때 필요한 '팁'을 알려줬다.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는 트럼프에 대해 "협상과 교섭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는 "미국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나는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내 입장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한국 국민의 이익과 더 나은 삶, 한국의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캠벨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 성향의 이재명은 가장 가까운 경쟁자인 보수 국민의힘 김문수를 두 자릿수 격차로 앞서고 있다. 그 뒤를 개혁신당 이준석 전 국민의힘 의원이 따라가고 있다"면서 "보수표가 분열되면서 이재명이 낙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서울 관악구 관악산 으뜸공원에서 열린 관악ㆍ금천ㆍ동작구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엄지들 들어 답하고 있다. 2025.5.29 연합뉴스
타임 "보수 분열…이재명 낙승 예상"
이재명 "미국과 합의 도출이 최우선"
그러나 캠벨은 이재명 앞엔 12·3 계엄령 불법 선포로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 혼란상을 연출하는 대한민국의 안정 회복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캠벨은 대통령에 당선돼도 "축하할 시간이 많지 않다"라며 △ 침체된 경제 복원 △ 더 호전적인 북한 제압 △ 트럼프의 상호관세 등 심화하는 글로벌 무역 전쟁 대처 등 산적한 과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후보는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과의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우리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타임은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7일 대선후보 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이 후보는 소위 '흙수저' 그 자체다. 최근 펴낸 책에서 어린 시절을 기록한 대목의 첫 문장을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고 쓸 정도로 이 후보는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을 견뎌야 했다. 사진은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2025.4.27 [이재명 후보 측 제공] 연합뉴스
"이재명 견뎠던 역경 비하면
칼 테러조차도 별일 아니다"
또한 캠벨은 "이재명은 또한 심하게 분열된 국가를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많은 보수주의자와 심지어 중도주의자도 윤석열의 탄핵 및 범죄 수사가 검찰과 법원, 그리고 국회에 의해 처리된 방식에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칼 테러' 흉터는 "한국이 얼마나 끔찍하게 양극화됐는지"를 보여준다고 개탄한 뒤 "그러나 이재명 인생 스토리의 반전 과정에서, 그 칼 테러조차도 그가 견뎌야만 했던 수많은 역경에 비하면 별일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의 입지전으로 이어졌다. 빈농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매일 왕복 4시간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고, 미성년의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손목이 눌리는 사고를 당했던 얘기로 시작됐다. 캠벨은 "이 부상으로 그는 계속 고통을 겪었으며 장애인으로 지정됐다. 그 괴로움은 아버지의 도박 중독과 결합해 어린 이재명의 자살 시도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캠벨은 이 후보가 검정고시를 통해 법대에 합격하고 졸업 직후 사법 시험을 통과한 사실을 소개한 뒤 "그는 과거의 자신과 같은 착취당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을 돕고자 인권과 노동권 사건에 뛰어들었고, 나중에 정치에 입문해 성남 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선출됐다"고 전했다.
2004년 3월 25일 성남시의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상현 의장이 '성남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을 상정하지 않고 개회 47초 만에 산회를 선포하자 이재명 당시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자신의 X(트위터) 계정에 지난 2014년 3월 30일 올렸던 사진.
"엘리트 정치인과 달리, 실제로
고난을 경험하는 특권 누렸다"
여기서 이재명 후보는 "어려운 삶을 산 건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오직 바깥에서만 바라보는 엘리트 정치인들과 달리, 나는 그것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다"고 말했다.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특권'으로 승화시키는 내공이 돋보인 대목이다.
캠벨은 "뿌리 깊은 정치적 적대의 문화를 해결하는 것이 이재명이 평생 겪어온 수많은 난관 중 가장 큰 시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란 세력과 극우 세력을 빼고 합리적 보수까지 끌어안으려는 이 후보의 행보에 "투표가 끝나면 총체적 개혁 없이는 과거의 응어리와 악감정이 돌아올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이것이 통합형 후보의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9일 서울 성동구 메리히어에서 열린 '혁신성장의 씨앗, 스타트업 레벨업!' 간담회에서 소셜 및 스타트업 기업 대표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5.5.29 [공동 취재] 연합뉴스
이에 이재명 후보는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가치는 모두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결코 '내가 항상 옳고 너는 항상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만나고,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 후보는 △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 북미 정상회담 지지와 한국의 역할 △ 한국의 핵무장 반대 △ 일제 과거사 직시 등 한일 관계 △ 대만 유사시 한국의 지원 여부 등 외교·안보 현안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앞서 이재명 후보는 4월 16일 발표된 올해의'타임 100'의 지도자 부문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J. D. 밴스 부통령 등 21명과 함께 선정됐다. 당시 선정 이유를 밝히는 글에서 캠벨 기자는 "시장과 도지사를 역임한 이재명은 한국의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졌고, 2년 뒤엔 후 제정신 아닌 비판자에게 칼로 목이 찔렸다"면서 "이렇게 믿기 힘든 이재명의 스토리는 이제 한국 차기 대통령이 되면서 화룡점정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지난 14일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정책연구소가 주최한 '트럼프 관세정책의 지정치경제학' 주제의 제12회 평화너머 포럼.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미국이 고율 관세부과와 부자감세, 환율 평가절하로는 무역적자나 재정적자를 줄이기 어렵고 거꾸로 교역 위축과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고용감소, 물가불안이 겹치면서 상당한 경제불안정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오중산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나원준 교수, 장창준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센터장, 변학문 평화너머 평화연구센터 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이하 현지시각) 전 세계 교역국을 대상으로 10%의 기본 상호관세를(4.5. 시행 예고), 한국을 비롯한 50여개 주요 무역적자국에는 추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부과(4.9. 시행 예고)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해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교역상대국의 대미 무역흑자와 비관세장벽 등 차별 대우(?)를 해결 또는 완화할 때까지 해당 조치를 시행하고, 미국에 보복하면 추가 관세인상이 있을 수 있다고 했으나, 막상 4월 9일에는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대국에 대한 차등 상호관세를 90일간(~7.9) 유예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앞서 1월 20일 취임 당일에 발표한 '미국우선통상정책'(AFTP, America First Trade Policy) 각서에서 추가 관세를 권고하는 동시에 연방부처와 기관에 미국상품의 무역수지 적자 원인 및 경제·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지시하고, 2월 13일 발표한 '상호무역 및 관세'(RTT, Reciprocal Trade and Tariffs) 각서를 통해 주요 교역상대국의 비상호적 무역관행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것은 관세전쟁의 예고편인 셈이었다.
미국은 3월 12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3월 27일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으로 대상품목을 늘렸다. 그 모든 정책의 근거로 제시한 미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of 1962) 232조는 해외 수입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산업 위험을 야기할 경우 대통령이 무기한 수입을 제한하거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원준 교수는 유럽, 중국, 일본,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공동보조를 하면서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반도체나 조선, 배터리 등 미국이 필요로하지만 갖지 못한 제조업 역량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트럼프의 관세전쟁 셈법은 무엇일까?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난 14일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정책연구소가 주최한 '트럼프 관세정책의 지정치경제학' 주제의 제12회 평화너머 포럼에서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관세정책은 내부적으로 △무역적자 감소 △재정적자 감소 △제조업 부흥이라는 세가지 목표를 추구하며, 대외적으로 △중국봉쇄라는 목표까지 동시에 추구하는 포괄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이같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단순히 전통적인 고립주의 노선에 입각한 보호무역주의를 넘어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유지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전략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은 전통적 동맹국들에게 '무임승차'를 중단할 것을 압박하면서 전략적균형의 재조정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동맹국들로 하여금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미국이 세계 각지의 분쟁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에 이제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같은 논리는 미국이 역사적으로 '유럽의 각종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높은 관세율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며 독자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한 고립주의 노선'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그 목표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같은 모순은 정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강력히 개입할 것을 요구한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가 달라진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의 안보우산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움직임과 함께 지금까지 누려왔던 평화배당이 끝나간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 목적의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는 논의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우려하는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알아서 하던지, 미국의 안보우산이 계속 필요하면 그 대가, 즉 고율관세를 감수하라는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관세정책은 한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 파트너국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나아가 향후 국제무역질서에 지속적인 불안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관세 정책의 세 가지 목표와 구조적 모순
나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정책은 중·단기적으로는 △무역적자 감소와 △재정적자 감소를, 장기적으로는 △제조업 부흥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동시 달성은 불가능하다.
첫 번째 모순은 무역적자 감소와 재정적자 감소 목표 간의 상충이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여 수입을 감소시켜야 하는데, 수입이 줄어들면 관세 수입도 함께 감소하여 재정적자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관세수입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수입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이는 무역적자 확대로 이어진다. 즉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감소시키려는 목표는 관세라는 수단으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
두 번째는 일방적인 고율관세 부과는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상대국들도 보복관세로 대응하게 되고 그렇게되면 결국 수입 뿐만 아니라 수출도 줄어들어 무역적자 감소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실제로 캐나다와 유럽 등이 이미 보복 관세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애덤 스미스도 인정했을 정도로 '경제학적으로 합리적 대응'이다.
관세정책과 부자감세 정책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부유층에 대해서는 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관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재정적자 감소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트럼프는 관세 인상과 부자 감세 외에도 달러 평가절하를 무역적자 감소의 복안으로 생각하지만 세 가지 정책이 모두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고질적인 고비용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거꾸로 가는 정책일 뿐이다. 과거 1995년 플라자합의 결과 일본경제는 타격을 입었지만 정작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지는 않았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고율 관세부과와 부자감세, 환율 평가절하로는 무역적자나 재정적자를 줄이기 어렵고 거꾸로 교역 위축과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고용감소, 물가불안이 겹치면서 상당한 경제불안정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과연 고율 관세가 제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정책일까?
그에 따르면, 미국의 제조업 공장이 버려지고 탈산업화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제4의 생산요소로 불리는 공공서비스와 인프라가 점차 열악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내수 서비스부문을 제외하면 △설계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는 첨단기술부문 △해외생산경제에 기생하고 달러 패권에 기초하여 초과이익(지대)을 추출하는 금융부문 △750개의 군사기지로 유라시아를 포위하며 어느 곳에든 무력을 공급하는 군산복합체 연관부문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또 지난 수십년간 주택, 교육, 보건, 연금 등 공적 공급이 가능한 서비스를 민영화해 금융자본에게 지대 추출의 기회를 늘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상실되고 중산층이 약화되는 고비용경제가 되었다.
지금 트럼프가 최상위 부자들에게는 누진소득세를 부담시키지 않고 재정자원을 관세로 충당하는 방식을 고수하면 최종적인 조세부담은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정치경제학의 교훈은 '국가자본주의' 또는 '혼합경제'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정책, 즉 공공투자를 늘리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며 독점에 의한 폐해는 최소화하는 정책이 경제의 건강한 발전과 민중생활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으로 칭송하는 시대는 남북전쟁 전후부터 1913년 연방소득세 도입 이전까지 '19세기 고립주의시대'였으며, 당시 미국은 재정자원을 통신과 운하, 철도 등 기반시설 확충과 교육, 보건 등 공공서비스에 집중함으로써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를 낮추고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이면서 영국을 추격해 결합 발전에 성공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관세 논리의 오류
트럼프 관세 논리를 제공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븐 미런은 '트리핀 딜레마'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외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수출을 늘릴 목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달러 강세를 조장했고(원인) 이로 인해 미국은 산업 경쟁력을 잃고 무역적자라는 희생을 감수해왔다(결과)'고 주장하지만, 이는 인과관계와 사실관계 모두 틀린 이야기이다.
산업경쟁력 저하와 방위비 지출로 인한 무역적자 지속이 원인이고 그렇게 달러를 벌어들인 해외 민간금융회사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한 것이 결과이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평균 2.8%였던 반면 외국 중앙은행 등(대부분은 민간금융)의 달러 매입규모는 겨우 0.16%에 불과해 연관을 찾기 어렵다.(경제사학자 마이클 보르도 등의 보고)
대외 부채가 많은 미국은 다른 나라로부터 물건을 많이 사서 쓰는 나라이지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나원준 교수)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이 무역흑자를 보면 기축통화인 달러의 해외공급 부족으로 세계경제가 원활히 운영되기 어렵고 반대로 무역적자를 보면 달러가치가 하락해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모순에 처한다는 가설'
상호주의에 대한 왜곡
전후 국제경제질서인 브레튼우즈 체제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는 '자유무역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자국 산업에 대한 국민국가의 보호책임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지향하고, '어떤 나라도 편애나 배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무역참가국이 차별없이 대우받아야 하며, 그런 맥락에서 가장 우대받는 국가와 동일한 수준의 시장접근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는 비차별 원칙인 '최혜국대우'조항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 트럼프가 전 세계에 강제하는 상호주의는 '양국간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절대 수준을 일치시켜야 한다', '미국 기준으로 나라마다 관세에 차별을 두겠다'는 차별적 상호주의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나원준 교수)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경제는 생산적 혁신이나 실물경제의 성장보다는, 독점적 지위나 규제, 특허·인허가 등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지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된 금융자본주의로 변모했으며, 그와 동시에 탈산업화와 대외 적자폭이 두두러지게 커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달러가 세계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석유파동을 거친 이후 형성된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 덕분이었는데, 대미 무역흑자를 본 나라들이 유일한 국제준비자산인 달러표시 자산으로 꾸준히 비축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달러와 달러표시 국채를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국제수지 적자를 충당할 수 있게 되면서 '터무니없는 특권'을 누려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도 전세계 대미수출국들이 미국을 수탈해왔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가히 '비정상적인 음모론 수준의 날조'라고 할 수 있다.
국채발행을 남발한 미국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운데 기존 자본의 흐름이 더 이상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자 미국은 불가피하게 전략을 변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전통적인 제국주의의 자본수출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이제는 종속국이 지배국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전략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제출된 것인데, 자본의 자발적인 본국 회귀가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지배국에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유형의 지배종속 관계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기획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제거한 나머지 세계에 안보우산을 제공함으로써 군사적 종속관계를 재확인하고, 반대급부로 전략적 관계를 명분으로 자국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새로운 지배전략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구상을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의 시간이 끝난 것으로 진단하면 큰 오산이다. 관세인상과 상관없이 부자감세, 작은 정부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중국 기업 틱톡의 미국내 사업을 매각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미국의 행태로 미루어 반강제로 이전된 미국 현지공장을 미국 자본에 매각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미국의 패권을 벗어나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려는 미국의 계획은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의 성장으로 인해 의도대로 실현되기 어려운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미·중 관계의 장기적 전망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90일간의 협상 기간에 희토류 규제와 반도체 기술 이전, 중국 국유기업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산적해 있으며, 얼마든지 추가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중국의 국유기업 시스템을 '비관세장벽'으로 간주하는 문제는 체제의 문제라는 속성상 타협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미는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종료일인 오는 7월 8일까지 이른바 '7월 패키지'라 불리는 포괄적 합의 도출을 목표로 지난 4월 24일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집중 논의한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및 투자협력 △산업협력 확대 △통화·환율 등 4대 의제에 대한 6~7개의 실무작업만을 구성하고 기술협의를 진행중이다.
앞서 대통령 윤석열 파면과 조기대선 국면이 열리는 정치적 격변상황에서 열린 4월 24일 한미 2+2 통상협상 전에 당시 한덕수 대행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확대 상업용 항공기 도입 △해군 조선분야 등 산업협력 확대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약값 산정,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인터넷 망사용료 등 비관세 장벽 완화 △사안의 성격에 따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논의 등 월권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퍼주기, 졸속협상전략을 노출하기도 했다.
한국은 수입국을 가리지 않는 품목별 관세 25%에 더해 상호관세 25%가 추가로 부과되는 것이어서 실제 이중 관세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른 품목별관세는 철강, 자동차, 자동차부품, 알루미늄 외에도 이미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 의약품에서 대상 품목이 더 확대될 수 있고, 과세 논리상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개입 여지가 적다는 문제가 있다.
또 전체적으로 고율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국내 생산거점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차기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은 수출주도, 재벌주도의 과거 패러다임을 유지하면서 인공지능(AI) 주도 성장으로 산업전환을 하겠다는 복안을 밝히고 있지만 수요측면에서 다수 국민의 구매력과 내수시장이 제한된 가운데 수출길마저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근 현대차그룹이 관세 25%조치에 대응해 국내 협력업체와 미국 동반진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데 대해 오중산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별도로 발표했다.
나 교수는 중국이 최근 대미관계에서 경제안보를 위해 독자적으로 통제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중요 품목에 대해서는 최소 하나 이상의 대체 조달 원천을 갖추도록 하는 필수적 산업예비체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고 언급했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 역량의 보전이 핵심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디지털전환, 에너지전환이라는 이중의 기술적 전환을 큰폭으로 겪게 될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유럽, 중국, 일본,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공동보조를 하면서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반도체나 조선, 배터리 등 미국이 필요로하지만 갖지 못한 제조업 역량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아침 전남 여수 석창사거리에서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민주노동당 제공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29일 오전 7시10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로 들어가는 초입 석창사거리에서 ‘기호5번’이 적힌 커다란 장갑을 끼고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던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에게 시민 한 명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여수국가산단에서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는 오외진(57)씨다.
“정치인과 평생 사진을 찍어본 적 없다”던 그였다. 오씨가 그런데도 아침 퇴근 길, 자전거를 타고 3㎞나 떨어진 이 유세 장소까지 찾아온 건, 세차례의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에서 권 후보가 보여준 모습이 마음 깊이 남았기 때문이다. 오씨는 이 토론 전까지만 해도 권영국이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다. 그에게 권 후보는 “정책적으로 비전도 없고 험담이나 사생활만 뜯어싸대는 토론에서 유일하게 괜찮아 보였던 후보”였다. 오씨는 “(권 후보에게서) 노무현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세차례 대선 티브이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고, 손바닥에 백성을 뜻하는 한자 ‘민’(民)자를 쓰고 나와 화제가 됐다. 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게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하고, 부자 감세·친기업 행보를 보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비판하며, 12·3 내란 이후 거대 양당 모두에게 답답함을 느끼던 유권자들에게 사이다 맛을 안겨줬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오전 전남 여수 주삼동 주암마을회관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석우 기자
권영국이 “사표는 절대 없다”고 한 이유
“티브이 토론이 끝나고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주삼동 주암마을회관으로 이동하던 길 이은주 후보 비서실장이 이렇게 말했다. ”특히 기차역 같은 델 가면 같이 사진 찍자는 요청이 많아요. 대부분 토론회를 보고 (권 후보를) 알게 됐다고들 해요.”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온 권 후보도 기자들 앞에 서서 말했다. “아마 그동안 (저를) 잘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가 서민의 삶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후보인지 토론을 통해 잘 보셨을 겁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와 가려진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이번엔 나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뽑는 대선이 되길 기대합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오전 광주 동구의 길거리에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석우 기자
투표를 마친 권 후보는 여수산단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와의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간담회 전, 권 후보는 화섬노조 조합원들과 빵을 나눠먹으며 가벼운 얘기를 나눴다. “실물이 더 나은데요.” 한 조합원의 말에 “화면으로는 별로라는 이야기냐”며 권 후보가 우스갯 소리를 했다. 모인 이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김성호 화섬식품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이 여수산단의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구조조정 계획을 하는 사업장들이 많고 원청도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취약한 사내하청부터 구조조정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에요.”
최진만 화섬식품노조 엘지(LG)화학사내하청지회장도 말을 보탰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 여수산단 위기라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어떤 해결 의지도 없는 거고. 권 후보에게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습니다.”
조금 전 웃음기는 오간 데 없이, 자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30분 간 이어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권 후보가 어렵게 입을 뗐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이 먼저 폭탄을 맞게 될 텐데, 내가 당선되면 당장 협의체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아요. 일단은 이 문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것부터 해서 저희도 고민을 같이 해보겠습니다.”
권 후보 말 끝에 김 지부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총선이나 대선 때 후보자들이 한번 와서 아픔을 듣고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경험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희 아픔만 위로하고 가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 후보에게 이 말은 “뼈아픈 이야기”였다. “사실 제가 이번에 대통령 될 수 없다는 건 다 아실 거 같아요. 이번엔 어렵겠죠. 저를 만나는 게 무슨 의미 있을까 하는 분도 많을 거예요. 제가 당장 문제를 해결할 만큼 힘과 권력이 있진 않습니다.” 권 후보는 “그래서 이번에 필요한 건, 우리의 목소리를 함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사표는 없어요. 제가 5% 득표하면 민주당도 저를 함부로 못합니다. 제가 하는 얘기를 정책에 반영할지 고민하게 될 거예요.”
이준석의 기자회견, 그리고 한 통의 전화
화섬식품노조와의 간담회를 마치고 광주로 이동하는 차 안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서울의 선거대책위원회와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던 이은주 실장이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시각,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티브이 토론에서 했던 여성혐오 발언이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후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단계적 검증”을 위한 절차였다고 주장했다.
차 안에서 조용히 대화가 오가는가 싶더니 잠시 후, 기자들의 휴대폰엔 ‘이준석 후보 티브이 토론 여성혐오 발언 관련 입장 발표 예정’이라는 공지 문자가 일제히 떴다. 좀 더 확실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차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준 건, 한 통의 전화였다. 통화하던 권 후보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졌다. 여수산단 내 남해화학 파견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소송 1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업체는 40여년 전부터 협력업체를 두고, 여러 제품 생산공정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입해왔다. 권 후보는 정의당 대표로 취임하기 전 이 소송의 변론을 맡은 바 있다.
“불법파견 소송은 노동자 입장에선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변호사로서도) 책임감이 크거든요. 이겼다고 하니 당연히 기쁘죠. 이분들의 삶이 다시 밀려나지 않게 된 것 같아서 너무 다행스러워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티브이(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들어 보인 레드카드. 뒷면에는 토론에서 언급하려고 한 노동자와 농민, 성소수자 등이 쓰여있다. 류석우 기자
다시 레드카드를 들다
광주에 도착한 권 후보는 윤석열정권즉각퇴진·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과의 간담회 그리고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노조 및 사측과의 간담회를 이어갔다. ‘정규직 외 협력업체나 비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권 후보 얘기에 회사 쪽에선 “화재 조사 이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말만 반복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금호타이어 정문 앞에선 권 후보는 예고했던 대로 이준석 후보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국회 단상 위에 선 이준석 후보와는 달리 그는 공장 앞 맨 아스팔트 바닥에 섰다.
“성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성폭력을 자극적으로 전시해야 합니까?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막말을 전시하는 이준석의 나라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혐오 하나에 기대 연명해 온 이준석의 정치를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권영국의 승리로 퇴장시켜 주십시오.”
권 후보는 그리곤 가슴에 품었던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첫 대선 티브이 토론회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꺼내 들었던 바로 그 레드카드다. 사실 이 카드는 이은주 실장이 정의당 의원이던 시절, 김문수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게 들어보였던 카드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손을 타며 땀 때문에 글씨가 지워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붉은 경고 카드 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이들이 더 이상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고, 자꾸만 주변으로 밀려나는 이 불평등한 세상,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권 후보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제2, 제3의 이준석이 나와서 혐오와 막말을 전시하게 둘 수 없습니다. 이제 유권자들이 혐오 정치에 레드카드를 들어줄 때입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찾아 사측과 노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주노동당 제공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해 도착한 광주송정역.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여분이었지만, 잠깐의 틈에도 권 후보는 그를 알아보며 악수를 청하는 시민들에게 시간을 할애했다.
“왜 이렇게 아픈 데가 많을까요.” 고된 일정 탓에 피곤하다는 얘긴가 싶었더니 그 말이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감정을 참느라 힘들어요. 곳곳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아요. 정치가 이런 사람들한테 필요한데, 결국 해결이 안 되니까 다들 정치가 필요하다고 느끼질 않는거예요.” 하루종일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유권자들을 만났던 권 후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잦아들었다. “(정치인들이) 다들 어디에 눈길을 두고 있는 걸까요.”
아픔과 분노, 미안한 마음이 뒤엉킨 목소리다. 30일 아침, 그는 경남 창원 현대로템 앞으로 향한다. “지워져선 안 되는 목소리”를 들으러 현장에 간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9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며 경고를 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과거 ‘빨갱이’ 발언과 국회난입 사실이 알려졌다. 자연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종북 반국가 세력 암약’을 언급하며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한 12.3계엄이 재조명된다.
지난 2019년 12월 16일 김문수 후보는 공수처법 통과를 막겠다면서 국회난입집회를 주도했다. 김문수 후보는 이날 일명 ‘태극기부대’와 함께 국회 본관 입구까지 난입해 “빨갱이 국회, 기생충 국회!”를 외치며 “여러분이 빨갱이 기생충들을 쳐부수기 위해 오셨다”라고 선동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국회를) 점령하시고 국회의 주인이 된 날”이라고 선언했다. 김 후보는 이 일로 기소돼 벌금 300만 원 처벌을 받았다.
다음날 김문수 후보는 서울의 한 교회 강연에서 “문재인, 노무현, 이해찬, 이인영, 이게 다 빨갱이들”이라면서 “손학규도 빨갱이짓 하다가 바뀌었다가 다시 빨갱이짓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부 인사를 모두 빨갱이 취급한 것이다.
이날 김 후보는 “천주교에 빨갱이가 너무너무 많다”, “언론이 빨갱이에 장악돼 있다”, “선배들이 빨갱이 사상을 주입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학생들이 빨갱이가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급기야 “박근혜 퇴진 촛불은 확실한 빨갱이 혁명”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56분 강연 동안 57번 ‘빨갱이’를 언급했다. 1분에 1번꼴이다. 나치 히틀러의 입으로 불리던 괴벨스의 괴변 “거짓말도 100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한편 12.3계엄 3개월 전, 당시 대통령 윤석열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하여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12월 3일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면서 계엄군을 국회에 보내 국민 가슴에 총구를 겨누었다.
“빨갱이를 쳐부수자”며 태극기부대를 선동해 국회난입을 시도한 김문수 후보는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을 위해 국회에 계엄군을 보낸 내란수괴 윤석열의 도플갱어(Doppelgänger 나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생물체)가 아닐까.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 4층에 마련된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소에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투표를 하고 있다. ⓒ 윤성효
새 대통령을 뽑는 사전투표 첫날부터 투표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9일 아침 사전투표소를 찾는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경남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행정복지센터 4층 강당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는 일터로 출근하기 전에 사전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됐다.
"빨리 투표하고 싶어서 일찍왔다" "토요일 사전투표 없어, 이 부분 홍보 부족"
김아무개(47)씨는 "빨리 투표하고 싶어서 일찍 왔다. 본투표인 6월 3일에 할 수도 있지만 그날 혹시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 사전투표를 하려고 왔다"라며 "저 혼자일 줄 알았는데 제법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부산에 주소지를 두고 있으나 일 때문에 창원에 와 있다고 한 이아무개(34)씨는 "일하러 가기 전에 투표부터 하려고 출근하면서 들렀다"라며 "새 대통령을 뽑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새 대통령은 경제가 잘 되도록 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행정복지센터 1층에 들어서면서부터 신분증을 꺼내 들었던 20대 청년은 "학교에 가기 전에 투표하려고 왔다. 지난 12.3 계엄 이후 광장에 나간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는 심정으로 투표를 하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아침 중앙동행정복지센터와 가까운 창원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서너 명이 환자복을 입고 이곳 투표소를 찾아 귀중한 한 표를 행사 하기도 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서 투표소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를 보였다.
이전 선거 때 사전투표를 주말에 하기도 했지만, 이번 대선 사전투표는 평일인 29일(목)과 30일(금) 사이에 해야 한다.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사전투표 첫날 출근 전에 투표했다는 한 사천시민은 전화통화에서 "내란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일찍 투표했다"라며 "이번 대선은 토요일에 사전투표가 없어 걱정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홍보가 안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낮 3시 기준,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은 14.05%로 지난 대선 같은 시간대 12.31%보다 1.74%p 더 높다.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인천 연수구 송도1동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 연합뉴스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오전 전남 여수시 주암마을회관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줄 서 있다. ⓒ 연합뉴스
선관위 "정복 경찰, 투표소 내 돌발행위 예방하고 선거인 등 안전 확보"
경남선거관리위원회는 사전투표소마다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투표소에 정복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정복경찰관은 사전투표소 내 돌발·소란행위를 예방하고 선거인 및 투표관리 인력의 안전을 확보할 것"이라며 "최근 선거벽보 및 선거운동용 현수막에 대한 훼손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부정선거 주장 단체 등이 사전투표소에서 조직적인 단체행동을 예고하고 있다"라고 했다.
선관위는 "선거인이 집중되는 20개 사전투표소에 대해서는 돌발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전담 경찰관 배치를 경찰청과 협의하였다"라고 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와 관련한 유의사항을 당부하고 있다. 투표용지에는 반드시 기표소에 비치된 기표용구를 사용해야 한다. 선관위는 "최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SNS 등을 통해 선거일은 개인 도장을 사용해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한다는 등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라며 "개인 도장으로 기표한 투표지나 공개한 투표지는 무효로 처리된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또 투표지를 촬영하여 소셜미디어 등에 게시·전송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선관위는 "누구든지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라며 "투표지를 촬영하여 게시·전송하는 경우 고발 등 엄정 대처할 방침"이라고 했다.
선관위는 "구·시·군선관위는 관내사전투표함과 우편투표함을 CC-TV가 설치된 장소에 선거일까지 보관하고, 누구든지 경남선관위 청사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통해 24시간 보관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라며 "CC-TV에는 영상 암호화 및 위·변조방지 기술을 적용하여 보관·관리의 투명성과 무결성을 담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후 '투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 연합뉴스
▲5월 29일 아침, 사천시 사남면 사람중심활성화센터에 마련된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소에 유권자들이 투표하러 들리고 있다. ⓒ 윤성효
▲지난 27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발언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사진=SBS 화면 갈무리.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의 TV토론 여성혐오 발언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시정잡배나 쓸 법한 저속한 표현”(중앙일보) “인간 존중부터 배워야 한다”(한국일보)라는 종합일간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TV토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혐오 발언이 나올 만큼 TV토론이 생산적인 논의가 아닌 네거티브와 자극적 발언 경쟁의 장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준석 여성혐오 논란 한겨레 “후보 자격 없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27일 TV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혐오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주요 종합일간지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4면 <이준석 ‘성폭력 발언’에 후보 사퇴 요구까지… 대선 막판 변수로> 보도에서 “(이 후보 발언은) 일주일도 남지 않은 대선의 마지막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TV 토론회에서 성폭력적 가해 방식을 그대로 읊은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에 노출된 시청자들에게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9일 한국일보 4면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는 4면 <이준석, 원색적 ‘젓가락 발언’ 일파만파 민주 “저열한 언어폭력” 국힘도 “부적절”> 보도에서 “정치권에선 ‘이른바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 공략에 공을 들인 이 후보가 원색적인 발언으로 여성과 중도층의 반감을 샀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이준석의 여성 혐오성 저질 발언, 제정신인가>에서 “이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과거에 작성했다고 의심되는 여성 혐오성 댓글을 부각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어린이·청소년을 포함한 전국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TV 방송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며 “아무리 남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도 시정잡배나 쓸 법한 저속한 표현을 대선 토론에서 꺼내는 건 자제했어야 한다”고 했다.
▲29일 중앙일보 사설 갈무리
중앙일보는 이준석 후보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위를 기록한 것은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지만 토론회 때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면서 “미래 비전 제시가 아니라 네거티브 공세에만 매달렸던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준석 후보에 대한 사설은 쓰지 않았지만 6면 기사에서 “‘젓가락’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벌어졌다”며 이 후보 발언에 대한 비판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공론장서 저질 성폭력 발언 이준석, 국민 모독이다>에서 “이 후보 발언은 명백한 성폭력이다. 성폭력 묘사·재현은 그 자체로 가해 행위여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며 “에 담기도 끔찍한 발언을 이 후보가 공론장에서 한 것은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정치인·공인 자질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인간에 대한 존중부터 배우는 게 마땅할 만한 과오”라고 지적하면서 “보여주겠다던 ‘압도적 새로움’이 고작 이런 것이었나”라고 비판했다.
▲29일 한겨레 사설 갈무리
한겨레도 사설 <이준석 온국민 앞에 언어 성폭력, 대선 후보 자격 없다>에서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도 갖추지 못한 이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나설 자격이 없다”며 “이 후보는 그간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혐오와 갈라치기 정치를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적지 않게 받아왔다. 이번 대선 토론회 성폭력 발언 논란은 ‘이준석 정치’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준석 후보 발언을 계기로 TV토론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성혐오 발언, 네거티브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평가다. 국민일보는 <이런 TV토론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사설에서 “토론을 보고 후보들에게 매료돼 투표할 마음이 생겨나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 혐오만 커졌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우리 정치가 매일같이 치고받고 싸우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중요한 대선 토론조차 그 정도로밖에 진행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29일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도 사설 <어른들 보기도 창피했던 TV토론… 아이들이 볼까 두려웠다>에서 “제한된 역할의 사회자는 남은 발언 시간을 알려줄 뿐 진흙탕 싸움을 제지하지 못했다”며 “비방이 선을 넘으면 사회자가 적극 개입하고 허위 정보를 바로잡는 미국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정치 혐오만 키운 대선후보 TV 토론, 이대론 안 된다> 사설을 통해 “후보가 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경우 발언권을 빼앗는 등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현행 TV 토론회 방식을 완전히 뜯어고칠 보완책 마련을 위해 정치권과 학계, 언론계 등이 당장 머리를 맞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관람을 마친 뒤 영화를 제작한 이영돈 PD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도 부정선거 음모론… 중앙일보 “정치인 처신이 원인”
29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대선이 시작됐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은 가시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제로 한 영화를 관람해 논란을 빚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7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며 투표관리관을 협박한 혐의로 황교안 후보를 고발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28일 경상남도 창원 유세에서 “우리가 사전 투표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만약에 사전투표에 부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신고하라”고 했다.
▲29일 국민일보 12면 기사 갈무리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사전투표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일보는 12면 <보수단체·유튜버, 사전투표소 현장 촬영에 충돌 우려> 보도에서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는 일부 보수단체와 유튜버들이 사전투표 현장을 감시하겠다고 예고해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들은 선거 부정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고 하지만 투표소 입구에서 유권자를 촬영하고,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투표 방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관계기관이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이번 사전투표가 부정선거 음모론이 제기된 가운데 치러지는 만큼, 선관위가 엄정한 투표관리를 통해 의혹을 사전에 불식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사설 <대선 사전투표 시작…아직도 허황한 음모론이라니>에서 “음모론이 잦아들지 않는 데에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처신도 한 원인”이라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최근 본인도 사전투표를 하겠다며 지지자들에게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당내 경선 당시에는 ‘사전투표제 폐지’를 공약했다가 막상 지지층의 투표율 저하가 우려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부정선거가 없다는) 사법부의 입장은 일관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진영 간 논쟁의 소재가 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며 “(중앙선관위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투표 관리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사설 <오늘·내일 사전투표… 선관위, 신뢰회복 전기 만들어야>에서 “유튜버들은 사전투표 용지를 무단 생성해 가짜 투표용지를 찍어낼 수 있다는 등 각종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현 선거제도에서 당선된 윤석열 전 대통령도 부정선거 미몽에 사로잡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켰다”며 “선관위는 이번에 조직의 명운을 걸고 공명정대한 선거관리에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를 되찾는 길”이라고 했다.
▲29일 한국일보 사설 갈무리
한국일보도 <오늘부터 대선 사전투표… 정책·비전 살펴 신중히 투표해야> 사설을 내고 “지난 대선 사전투표 당시 중앙선관위는 코로나 확진·격리 유권자들의 투표용지를 부실 관리해 ‘소쿠리 투표’라는 오명을 얻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했고 이로 인한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었다”며 “정치권 일각에 불신이 남아 있는 만큼 선관위는 부정 시비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투표 단계부터 엄정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29일 이재명 김문수 후보의 신문 1면 광고
대선후보들은 사전투표를 맞아 일부 신문 1면 광고도 진행했다. 이재명 후보는 경향신문과 한겨레 1면에, 김문수 후보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1면에 광고를 냈다. 이 후보는 광고에서 “내란세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국민의 강력한 의지”라며 “세계주도의 진짜 대한민국을 향한 의지와 희망을 사전투표로 보여달라”고 했다. 김 후보는 “국민이 거짓을 이긴다. 국민이 1당 독재를 이긴다”고 했다.
尹 물러나자 ‘경향신문 명예훼손 사건’ 불기소한 검찰 “언론 탄압 목적”
경향신문의 윤석열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지난 27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기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한 지 1년7개월 만이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사설 <‘윤석열 명예훼손’ 수사한 검사들, 책임 물어야>에서 검찰이 현직 대통령 심기를 위해 무리하게 수사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정당한 대통령 후보 검증 보도를 ‘대선개입 여론조작’으로 몰았던 수사가 비판 언론 탄압 목적이었음을 방증한다”며 “검찰 내 사조직인 윤석열 사단이 ‘공익의 대변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검찰 출신 대통령만 바라본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겨레는 “수사를 지휘한 검찰 간부는 물론 검사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검찰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며 “대선 이후 들어설 새 정부는 검찰을 제대로 개혁해 ‘국민의 검찰’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29일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경향신문도 사설 <윤석열과 정치검찰, ‘경향신문 초법적 수사’ 책임져야>에서 “검찰은 사건을 예단하고 그에 맞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파고 또 파는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를 거듭했다”며 “윤석열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검찰은 지금도 경향신문을 옥죄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창출을 요구한다!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
(사람일보 / 박해전 / 2025-05-28)
박해전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는 28일 “역사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창출을 요구한다!” 제목의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을 발표했다. 전문을 싣는다. <사람일보 편집자>
역사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창출을 요구한다!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
우리는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주권주의를 관철하는 ‘국민주권정부’ 뜻을 밝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국민주권자들과 제정당사회단체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대단결하여 윤석열 일당의 내란반란을 종식시키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주권을 완전히 실현할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바로세우는 역사적 분수령이다. 국민주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민주헌정을 파괴한 윤석열 일당의 내란반란의 전모를 철저히 밝히고 범죄자들을 엄정하게 단죄함으로써 이 땅에서 되풀이된 악몽 같은 내란반란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헌법의 핵심요구인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완수해야 할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최근 사람일보에서 발간한 『조국통일의 진로』는 윤석열 내란반란의 근원을 밝히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적시한 헌법의 요구에 따라 신을사오적의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과 조국통일을 한국정치의 핵심의제로 제기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세기 외세에 의한 식민과 분단은 우리 민족을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불행에 빠뜨린 국난이며 이에 기생한 사대매국노들의 내란반란의 근원이다.
윤석열 일당의 위헌 위법한 2024년 12.3 비상계엄 내란반란사태는 지난 한 세기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식민과 분단 적폐가 총폭발한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불행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우리 민족이 겪은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주권 침탈과 1945년 외세에 의한 분단의 역사를 반영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라고 명시하여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 자주독립과 조국통일을 이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주권자들은 이러한 헌법 정신에 따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민주헌정을 바로세워 윤석열 내란반란의 근원인 식민과 분단 적폐를 완전히 청산하고 헌법의 핵심요구인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완수함으로써 역사정의와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일제에 나라를 팔아넘긴 사대매국노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 못지않게 한국 현대사에서 식민과 분단 적폐 청산에 역행하여 국민주권의 헌정을 파괴한 적폐 중의 적폐 반민족적인 신을사오적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근혜 윤석열 일당이다.
이승만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혁명으로 대통령 권좌에서 쫓겨났지만, 반인륜적인 국가폭력범죄인 1948년 4월 제주도민 학살과 1953년 10월 1일 한국의 군사주권을 미국에 넘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관련한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절대로 양도할 수 없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원천무효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완용을 비롯한 사대매국노들이 1910년 대한제국의 국가주권을 불법으로 일본에 넘긴 한일합방조약에 비견되는 사대매국조약이다. 이에 근거해 미국은 한국의 군사주권을 지배함으로써 주한미군을 배치하고 천문학적인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해왔다.
이 사대매국조약에 근거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가로막고 핵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한미일 군사동맹과 연합군사훈련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사명으로 하는 국민주권과 헌법을 파괴하는 것으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외세에 의한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 없이 그 원흉들과 군사동맹을 맺고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불러오는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자행하는 사대매국범죄를 국민주권과 헌법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가 미국의 사주 아래 1965년 일본과 체결한 한일기본조약도 불법적인 일제식민지배의 사죄와 정당한 배상 없이 일제식민통치에 면죄부를 준 사대매국조약으로 원천무효이다.
일본 총리 아베는 이 조약을 근거로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무시하고 적반하장의 경제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 사대매국조약을 폐기해야 우리 민족의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심판과 올바른 친일잔재 청산의 길이 열릴 것이다.
유신독재로 장기집권을 획책한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고 죽었지만, 반민족적인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유신독재에 저항한 무고한 민주인사들을 사법 살해한 반인륜적인 인혁당재건위사건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에 대한 심판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비상계엄에 대한 사법절차는 거쳤지만, 민주공화국을 유린한 반인륜적인 1980년 5월 광주학살과 5공 아람회사건 반국가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에 대한 엄정한 심판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근혜는 부정비리와 국정농단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채택한 6.15공동선언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 정상선언을 짓밟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천추에 씻지 못할 반민족 반통일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았다.
윤석열은 민주헌정을 파괴한 신을사오적의 끝판왕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무장계엄군을 동원해 불법 침탈하고 노상원 수첩에서 드러난 대로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학살극을 모의한 윤석열의 내란반란범죄는 21세기 대한민국 최악참사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윤석열 내란반란수괴는 애초 태어나서는 안될 것이었다. 윤석열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서 손바닥에 쓰인 왕(王)자를 노출하기도 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약속한 남북공동선언을 부정하며 선제타격을 공언했다.
윤석열은 헌법 제66조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에 반하여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의 4.27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을 모조리 파탄내면서 외세와 결탁해 일촉즉발의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불러오고 남북관계를 회복불능의 최악의 상황에 빠뜨렸다.
헌법과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사대매국노예조약을 폐기하지 않고 외세의 간섭과 방해책동을 물리치지 못하면 백년이 가도 우리 민족의 살길인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남북공동선언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남북관계 파국의 위기상황이 알리는 엄중한 교훈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하고 근본적인 내란종식과 민주헌정수호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한 헌법적 요구에 따라 식민과 분단 적폐를 일소하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이정표인 남북공동선언을 완수하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6.15 공동선언이 탄생하고 4반세기가 되도록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을 방치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완수하지 못한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 직무유기와 배임이 더 이상 연장되어서는 안된다.
국민주권자들과 제정당사회단체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헌법과 국민주권을 침해하는 사대매국노예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일기본조약의 폐기하고, 그 대신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한미상호주권존중평화번영우호조약과 한일불법강점식민지배완전청산조약을 맺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 함께 신을사오적의 반민족적 사대매국범죄와 반인륜적 국가폭력범죄 처벌특별법(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법, 독일과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청산처럼 사건 발생 시점부터 완전한 단죄까지 시효 배제)을 제정하여 민주헌정을 유린한 내란반란의 근원을 제거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문을 대혁신하여 사회정의와 역사정의를 바로세우야 할 것이다.
정치권에서 거론한 1980년 5월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과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 논의는, 이와 함께 제폭구민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동학혁명 정신과 우리 민족의 살길인 6.15 공동선언 10.4 선언 판문점선언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방향으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언론개혁을 공약했고, 참여정부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더라도 형법으로 충분하다고 밝혔음에도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한 것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한국정치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폐기하고 언론개혁특별법을 제정하여 일제 식민지배에 부역한 언론과 식민과 분단 적폐청산에 역행하여 민주헌정을 파괴한 신을사오적을 비호한 언론, 부정비리 언론을 청산함으로써 사회적 공기인 언론을 바로세워야 한다.
이와 함께 국어기본법을 정비하여 진정한 문화강국의 길을 열어야 한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상 언어생활에서 프랑스 ‘재화’의 프랑스어 사용의무를 규정한 프랑스 언어정책 못지않게 국어기본법을 강화하여 외국 말글이 마구잡이로 침범하여 잡탕말글로 전락한 우리 말글살이를 온전하게 살려야 한다. 국내용 상품이나 모든 재화를 우리 말글로만 표기하고 사용토록 하여 우수한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문화강국을 실현해야 한다.
국민주권자들과 제정당사회단체는 역사적 대전환기인 올해 6.3 대통령선거에서 내란종식과 국민주권 실현을 위하여 식민과 분단 적폐의 완전한 청산,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청사진인 남북공동선언 완수를 핵심의제로 올리고 대단결함으로써 신을사오적의 식민과 분단 적폐를 일소하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대강령인 남북공동선언을 실현할 국민주권 민주헌정 대통합정권을 세워야 한다.
국민주권자들이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계승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수립에 성공하여 국민주권과 헌법을 침해하는 식민과 분단 적폐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고 한미일연합군사훈련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남북공동선언 완수의 확실한 담보를 마련한다면 우리 민족의 염원인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활로가 새롭게 활짝 열릴 것이다.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 관철을 공약한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제21대 대선에서 국민주권자들과 제정당사회단체가 대단결하여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를 창출할 것을 다시 한번 열렬히 호소한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5월 27일 대전광역시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퇴임 후 첫 공개 강연을 하고 있다. ⓒ 박소희
27일 오후 4시 대전광역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300명 안팎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 좌석은 대부분 꽉 차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었다. 이날 문 전 재판관은 퇴임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섰다. 주제는 '법률가의 길에서 과학자를 만나다.'
그는 처음 강연 요청을 받고 의아했지만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왜 지금 만났나. 이미 오래전에 만나야 했다"며 "헌법 판례를 찾아보니 과학기술이 이미 들어와 있더라"고 입을 열었다. 이후 44분 동안 문 전 재판관은 기후소송 등의 경험을 소개하며 "기본권 제한과 과학기술의 진보, 이게 제가 여기 온 이유"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법률가, 의사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하고 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마지막 한 명이 남아야 한다면 과학자가 남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법률가는 어떤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 수 없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질문이 좀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질문이 많았다.
탄핵 인용론과 기각론 "당연히 둘 다 썼다, 그래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11시 22분 파면되었다. ⓒ 사진공동취재단
주로 카이스트 재학생들이었던 질문자들은 대통령 탄핵심판의 뒷이야기, 문 전 재판관의 소회 등을 궁금해했다. 문 전 재판관도 허심탄회하게 답변을 내놨다. 그는 '대통령 파면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장일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에 놀랐다'는 말에 "기각론은 성립할 수 없다. 인용론만 가능하다. 이게 우리 (재판관들의) 생각이었다"면서도 "그런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설명했다. '설득'을 위해서였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런 사건은 당연히 인용론과 기각론 둘 다 쓴다. 그래서 인용론 입장에서 기각론을 비판하고, 기각론 입장에서 인용론을 비판한다. 그러면 인용론을 계속 수정한다. 기각론도 이렇게 간다. 가다 보면 공통적인 것을 갖고 이견이 해소된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이 오기도 전에 반팔을 입는 사람이 있고,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긴팔을 입는 사람이 있다. 그걸 갖고 '너는 왜 내 속도에 못 맞추냐' 이렇게 할 수 없다.
헌법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틀림없이 한 지점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고, 모였다. 왜냐? 기각론은 성립할 수 없다. 인용론만 가능하다. 이게 우리 (재판관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린 거다. 이게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결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표결이란 건 끝까지 해보고 정말 안될 때, 예를 들면 곧 10초 뒤에 폭파가 일어난다면 결론을 내야될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설득에는 그렇게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게 저는 설득이라고 본다. 짐짓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 며칠 계속 얘기해보면 별로 다른 것도 없다.
기각론은 왜 성립불가였을까. 문 전 재판관은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가 탄핵심판 과정에서 야당의 줄탄핵, 예산 삭감 등을 내세워 비상계엄 선포를 합리화하려 했던 점을 언급하며 "군인을 동원해서 해결할 문제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헌법은 상식"이라며 "아마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이게 정상이다' 생각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라고도 했다. 자신은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란 자막을 보고 "해외토픽"인 줄 알았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쉬운 결정문이 나온 까닭
헌법이라는 상식에서 출발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학생은 그에게 '어떤 노력을 통해 쉬운 말로 된 결정문이 나왔냐'고 질문했다. 문 전 재판관은 "결정문은 TF에 속한 연구관들이 초안을 써왔고, 저희들이 토론하면서 고치는 식으로 됐는데, 선고 시간이 늦어짐으로 해서 수정본이 많아졌다"며 "제가 알기론 인용론은 열 몇 번 수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핵선고가 늦어짐으로 인해서 국민들이 속이 탄 것도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문장이 쉬워졌다. 또는 정확해졌다 생각하고. 그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뭐냐. 많이 나오지 않나. 많이 읽고,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써보는. 그래서 제가 블로그를 계속하지 않나.
탄핵 반대 세력이 공격의 빌미로 삼았던 블로그에 관한 문 전 재판관의 작은 '뒤끝'에 청중은 파안대소했다. 다만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언론 인터뷰를 한 적 없다. 그 이유는, 탄핵 결정에 수긍할 수 없는 20% 내외 국민들한테 좀 뭐랄까, 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라며 그들 또한 '국민'임을 짚었다. 여전한 신변 위협으로 강의실 주변에 경찰이 배치된 상태였지만 "이름이 알려지는 게 사라질 때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8대 0이 말하고 싶었던 것
▲문형배 전 재판관이 밝힌, 우리가 '8대 0'을 만든 이유박소희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헌법재판관 8인이 전원일치로 결정문에 꼭 남기고 싶었던 내용은 "관용과 자제"였다. 그는 "우리가 8대 0을 만든 이유"라며 "'비상계엄 사태는 전적으로 대통령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분명 국회에도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비상계엄은 아니다.' 이게 우리 생각이지, 국회는 아무런 잘못 없고 대통령이 느닷없이 어느 날 그런 일을 했다' 이렇게 쓸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관용과 자제를 잃는 순간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것이다.
관용과 자제는 설득의 힘을 키운다. 문 전 재판관은 헌재의 무기 또한 '설득'이라고 했다. 그는 "헌재는 칼도 없고, 지갑도 없다"며 "결국 국민에 대한 설득, 설득 그 하나 가지고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관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문 전 재판관은 '재판관한테 판단할 권리를 누가 줬다고 봐야 하는가'란 물음에 "국민이 헌법을 통해 줬다. 그래서 재판관의 덕목은 겸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사회에서 그런 합의를 했기 때문에 내가 재판하는 거지, 사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재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성적이 좋아서 판사 하는 게 아니다. (법관들이) 그걸 계속 착각하는 것 같다. 저도 그렇고. 이 사회가 우리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예를 들면 '배심 재판을 하라' 이렇게 명한다면 우리 권한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재판권을 주신 건 국민이다. 그러므로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서 재판을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
법관이 정치의 사법화 막는 법
법관은 신이 아니다. 따라서 판결을 비판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문 전 재판관은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니까 저 판결은 못 믿겠다'는 식이면 답이 없다"며 보수 진영의 색깔론도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인종차별을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인종을) 고칠 수가 없어서 아닌가. 고칠 수 있는 걸 갖고 얘기해야 하는 건데, 우리법 출신인데 어쩌라는 것인가"라며 "차라리 내가 제시한 근거 중에 잘못된 것은 비판할 수 있고, 얼마든지 고칠 수 있고 그런 것 아닌가"라고 했다.
법관을 겨눈 과도한 공격은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관련 질문도 여러 차례 나왔다. 문 전 재판관은 "정치의 사법화는 사실 우리(사법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며 "대신 급하고 중요한 사건을 먼저 처리함으로써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제가 볼 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임에도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추천권을 행사했던 사례를 거론했다.
우리가 그걸 미적미적하다 보면 그냥 재판관을 임명해 버린다. 그걸 (재판관) 아홉 명이 만장일치로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지 않나. 정치의 사법화를 막을 방법은 만장일치로, 때를 놓치지 않고 선고하는 것, 저는 그것이라고 본다."
"61% 국민이 헌재 신뢰, 가장 보람"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펄럭이는 깃발. ⓒ 권우성
문 전 재판관은 사법 신뢰가 흔들리는 지금, 헌법재판소가 그나마 국민의 믿음을 지켜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는 "다른 기관은 말할 입장은 못되고, 2025년 4월 18일 현재(본인 퇴임일 – 기자 주) 헌재는 신뢰해도 된다"며 "여론조사 결과 61% 국민이 신뢰한다고 말했고, 이는 국가기관 중 1위다. 저는 헌법재판관하고 소장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것이 국민들 중 61%가 헌재를 신뢰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30명가량이 강의실 양쪽에 줄을 서서 질문을 쏟아내느라 당초 오후 5시 30분 종료 예정이던 강연은 6시를 조금 넘기고 나서야 마쳤다. 문 전 재판관은 끝으로 "저의 바람은 (카이스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서) 노벨상 수상연설에 제 이름이 거론되길…"이란 말을 남겼다.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인 그에게 부산 출신 학생이 '올해 롯데가 우승할 것 같냐'고 묻자 "한화(대전 연고)가 못하면 우승할 것 같다"고 답했을 때처럼, 청중은 또 한 번 큰 박수로 응원했다.
28일 오전 9시 30분,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투표로 내란청산! 투표로 사회대개혁!’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주노총
‘이재명이냐, 김문수냐’가 아니라 ‘광장시민이냐, 윤석열이냐’의 선택이다.
대선을 1주일 앞둔 28일, 시민사회는 이번 대선이 광장의 힘으로 만들어 낸 선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내란 청산을 위한 대선을 만들자며 이같이 호소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과 서울 지역 시민단체들은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탄핵으로 만들어진 대선을 내란 청산 선거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행동은 이날 오전 9시 30분,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투표로 내란청산! 투표로 사회대개혁!’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재하 공동의장은 “윤석열 파면 투쟁을 통해 일상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생히 경험했다”며 “이번 대선에서 내란을 종식시키는 압도적 승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란 세력은 이후에도 사회대개혁을 방해하고 기성 정치는 우왕좌왕할 것”이라며 “선거 직후, 광장의 투쟁을 분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공동의장은 “윤석열은 자유로운 몸으로 부정선거 영화를 관람하고, 지지자들의 ‘윤 어게인’ 환호에 파묻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엄을 두둔하고 탄핵을 반대한 내란당이 버젓이 대통령 후보를 내는 아이러니한 대선”이라고 말했다. 또한 “단일화와 지지율 이슈, 혐오 발언과 비방만 난무하는 대선이 아니라 내란을 청산하는 대선으로 만들려면 광장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윤복남 공동의장은 “내란의 우두머리가 아직도 활보하면서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내란 세력 재결집을 도모하고 있다”며 “다시는 위헌·위법한 계엄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압도적이고 단호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10시, 너머서울 등 서울 시민사회가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광장을 지우지마라! 다시, 대선에서 광장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주노총
이어 오전 10시, 너머서울 등 서울 시민사회는 ‘광장을 지우지마라! 다시, 대선에서 광장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해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정작 광장의 목소리는 사라졌다”며 “우리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행동을 광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미애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운영위원은 “12월 3일 계엄 이후, 이 선거는 내란을 종식시키고 광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선거”라고 짚었다. 이어 “건강한 공동체, 불평등과 차별을 혁파하는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광장의 대선’임을 재차 강조했다.
홍명교 체제전환운동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은 “우리는 대통령 하나 끌어내리려고 투쟁한 게 아니다”며 “(그런데) 광장의 투쟁으로 만든 이 대선에서 광장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불평등과 차별 없는 나라를 향한 투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날 전국 곳곳에서 ‘내란청산 유권자 선언’ 캠페인을 진행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광장은 “대선의 본질은 내란 청산. 광장의 힘으로 압도적으로 승리하자”라고 외쳤다.
잊지말자 불법 계엄 상기하자 12.3 내란
내란극우세력, 투표로 청산합시다
내란청산을 위해 투표합시다
사회대개혁에 투표합시다
비상행동은 오늘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아침·저녁 캠페인을 통해 마지막까지 광장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28일 오전 9시 30분,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투표로 내란청산! 투표로 사회대개혁!’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주노총
28일 오전 9시 30분,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투표로 내란청산! 투표로 사회대개혁!’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민주노총
28일 오전 10시, 너머서울 등 서울 시민사회가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광장을 지우지마라! 다시, 대선에서 광장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주노총한경준 기자han992002@naver.com
비상행동, 9개 분야 사회변화 방향 공개...대선 후보들 "차별금지, 시민주권 후퇴" 등 우려
기자명 이승현 기자
입력 2025.05.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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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공론장 '천만의연결'을 통해 확인된 광장시민들의 사회변화 방향 [사진-비상행동]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광장에서 윤석열퇴진과 사회대개혁을 외쳐 온 시민들은 '새로운 세상'은 단연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별, 연령, 장애, 성적지향, 인종,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를 꾸준히 제기해 온 광장 시민들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석열 파면 선고 이후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단체 명칭을 바꾼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27일 온라인 공론장인 '천만의연결'(https://talk.bisang1203.net/)을 통해 취합된 시민 요구사항을 정리해 9개 분야에 걸친 사회변화 방향으로 공개했다.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권리 (25.9%)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에 이어 △정치개혁과 민주주의·정치참여(25.8%) "시민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공화국" △노동권과 노동환경 개선 (10%) "일하다 죽지 않고, 누구나 존중받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세상" △언론개혁과 표현의 자유 (8%) "공정한 언론, 진실한 보도, 시민의 표현 자유를 위한 사회" △평화·남북관계·통일 (7.2%) "전쟁과 증오가 아닌 대화와 공존으로, 평화로운 한반도" △사회적 돌봄과 복지 (6.4%)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연대하는 사회" △교육개혁과 평등교육 (5.6%) "모두가 차별 없이 배우고,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교육" △생명·안전·공공보건(3%) "사람과 동물이 함께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기후위기 대응과 환경정책(0.9%) "국가가 책임지는 기후위기없는 세상"이 9개 분야 사회대개혁 방향으로 발표됐다.
지난 2월 10일 개설해 5월 15일까지 운영한 '천만의연결'에 올라온 총 788건의 시민제안(우리가 만들 세상 586건, 사회대핵 과제 202건)을 정리한 이 내용은 비상행동 사회대개혁 특별위원회 11개 소위원회가 정책으로 개발해 '광장 시민과 비상행동이 제안하는 12개 분야 118개 사회대개혁 과제'로 발표하고 각 정당과 정치권의 공약과 정책에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차별금지·성평등·인권·소수자권리 향상을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다양한 가족과 관계의 법적 인정', '여성대상 혐오·폭력 근절, 장애인 이동권 및 접근권 보장, 소수자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정책',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자연, 문화권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권리 담론'이 확인되었다.
진짜 민주공화국을 위해서는 국회, 검찰, 법원, 경찰 등 핵심 권력기관에 대해 민주적 통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두드러졌으며, 국회의원 소환제, 국민발안제 도입 등 시민주권 실현과 직접민주주의 확대요구가 많았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해 권위주의 정치 유산을 철폐해야 한다는 요구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존엄한 삶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불안정 노동 해소, 차별 철폐, 노동권 실현, 제도 개선 등 노동 전반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전쟁과 무력 갈등을 벗어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 제도적 기반 마련과 함께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외교노선과 군사주권 확보가 필요하며, 역사정의 실현 요구도 제기됐다.
비상행동은 "광장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번 대선과정에서 '차별금지'와 '시민주권'을 위한 논의는 후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김문수(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후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노골적으로 반대할 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이에 유보적인 이재명(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비상행동은 남은 대선기간동안 광장을 통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118개 사회대개혁 과제를 더욱 공론화하고, 각 후보와 차기 정부가 광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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