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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 여자

그여자

 

황영선

 

아이고매 고것이 시방 참 말이다요?
쪼깨 찬찬히 말해보시오 통 먼 말인지 못 알아 묵것소이
긍께 저 머시냐 우리 아그들 아부지가 딴 살림을 채랬단 말이지라?
오매 이 일을 워째야 쓴다냐 을매나 됐다고 그럽디오?
머라고라? 칠팔년이면 우리 막둥이 년이 시상에 나오기도 전인디
아니여 아닐 것이여 잘 못 안 걸 것이여 나 눈으로 보기전에는 못 믿것당께
그나저나 요것이 참 말이라면 남의 입살은 고사하고 우리 아그들한테 머라고 한디야?
참 말로 환장허것네이
근디 어떤 년 인지 눈이 삐엇구만
가진 것이라고는 허름한 집구석 하나 뿐인디 멀 보고 덤벼 들었으까?
허기사 남정네가 잘 나면 열 지집도 본다는 우리 할매 말씀이 맞는가도 모르제
이 마당에 나가 할말은 아니지만 우리 서방 폼새 하나는 끝내준께

 

우라질 지금 먼 생각하고 있는겨?
누군지 당장 그 년을 잡아다 머리끄뎅이를 다 뜯어놔야 할거아녀?
아니여 아니여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닌께 생각좀 해봐야 쓰것구만
그러고본께 묵고 사는 것이 다가 아닌가벼?
남 보다 잘 난 서방 따라 살라믄 입술 연지라도 찍어 바르고
정순이 어매처럼 삘건 치마라도 걸치고 댕겼으면 안 그랬을랑가도 모른디
허구헌날 헐렁한 몸빼 벗을 날이 없었응께
이쁘게 채려 입은 각시 보고 눈 안 돌린 사내 있겄어?
아 그라고 막말로 내 서방이고 아그들 아부진디 나가 못 챙긴거 그쪽에서 챙겨 줬응께 고마운 생각도 해야 안 쓰겄어?
맞네 맞아 고것이 정답이여
까짓껏 옛날에는 성님 동서 그럼시롱 한집에서도 살았다고 하덩구만
그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제 암 다행이고 말고

 

근디 요놈의 눈물은 왜 자꾸 나오는 것이여?
가슴에 울홧증이 올라와서 못전디것네
뭣인가 시꺼먼 것들이 눈 앞에 와그르르 무너지고 어질어질 한 것이
필시 땅이 꺼지고 있는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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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아버지의 겨울

아버지의 겨울

 

황영선

 

추우시지요
쩡쩡 울던 메아리 소리 그친지 오래입니다
모진 비바람에 잎 떨군 나무
제 가지 찢어 자리 메김한 흔적 아직 역역한데
굽어진 등 뒤로 썰렁 내려앉은 찬기
뉘라서 데워 드리지요
빈집을 틈 없이 꽉 채워 느긋하기만 하셨던 그 너른 품
힘없이 놓아 버리신 그 크신 무게
아버지, 추우시지요
텅텅 비워진 가슴 단돈 몇 닢으로 채워 드렸던
제 가슴도 아버지를 닮습니다

 

아버지,
겨울이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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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끼세 1탄]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사마르칸트!

아무런 약속도 없었는데... 진짜 벙개로 영준, 정훈, 지현이랑 술을 마셨다.

 

광화문에서 5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사실... 이제 다 뽀개고 없애버렸으니, 역명도 바꿔야 할 것 같지만... -_-;;) 5번 출구로 나와서 먼저 와있던 정훈형의 안내로 난생 처음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가게 되었는데...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의 이름을 딴 식당에 들어가자 특유의 향이 가득 퍼진다.

 

벌써 소주 2병째 드시고 계시던 영준옹은 얼굴이 벌개져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이미 식사때를 놓친 우리는

양고기 꼬치와 양갈비찜으로 배를 채웠다.

 

예전에 삼청동에서 결혼기념일이라고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4만원이 넘는 양고기 스테이크(만화에서 나오는 긴뼈다귀 끝에 양고기가 동그랗게 매달려있는...-_-;;)를 먹고 그 특유의 비릿한 맛에 다 먹지도 못하고 촌티 팍팍 내며 나왔던 적이 있었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집에와서 라면에 밥 말아 먹었던 무좌게 슬픈 기억이...

엉엉 ㅠㅠ

 

 그런 것에 비하면 사마르칸트는 우와 여기 음식은 대부분 5000원에서 7000원이다. 그리고 넓적한 밀가루 빵인 난에 양갈비찜을 싸먹는 맛은 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담백하면서도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뭐.. 여전히 양고기 특유의 향에 아직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소주에 양고기는 괜찮은 음식 궁합이었다... (물론 우리 외에는 어떤 테이블에서도 소주를 시키진 않더만...^^;;)

 

역시 서울 구석 구석 맛집들을 섭렵하고 있는 맛의 달인 정훈형의 탁월한 선택~~

 

담번에 동묘앞에 있는 정통 인도 커리 집을 탐험하기로 했다. 후후~~ 오나전 기대 만빵~~

 

이날 정훈형은 새해들어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눈물나게 감격스럽다며 거의 신기에 가까운 언변을 선보이셨는데...

우리는 모두 정훈형이 오늘 달변 신이 내렸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쨌든 그동안 정훈형과의 술자리에서 제일 웃겼던 날이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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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용됐다 정말~

 

대학원에서 만난 역문 사람들...

2003년, 2004년에 만났으니 벌써 5년 넘게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사람들...

 

며칠 전 미국 유학 중인 종인이 들어왔을 때,

정말 오랜만에 많이들 모였지.

재개발로 곧 사라질 피맛골 골목에 고추장불고기를 연탄불에 구워주는 식당 쪽방에

끼어 앉아서 지난 얘기들도 하고, 요즘 어지러운 시국 얘기도 하고...

다리가 저려오는 걸 자세를 바꿔가면서 한참을 배꼽빠지게... 때로는 진지하게 얘기꽃을 피웠다.

 

그러던 이들이...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학재형이 메일로 쏴주었다.

아마도 엠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하철 안에서였던 것 같다.

ㅎㅎ

 

 

학재 씀 ;

컴터 정리하다가 간만에 봤더니...

정말 가관이네. 정말 다들 용됐다...

저 장면이 이미 미래가 보이는 포스들 아니었나 싶어

 

성민이는 요 사진에 안보이길래 다른데서 모셔왔어

난 별일 없이 잘 다녀올께, 다들 잘 지내고 있어

성민이 오면 성민이랑 잘 놀아주고,

(3월초가 뱅기값이 싸면 ^^ 얼굴보자)

 

종인이도 잘 쉬고 힘든 유학생활 잘 견뎌내고

상길형은 형수님 맛난거 많이 해드리고 올해는 꼭 논문써요

영수도 언능 장학사업 마무리 하고, 아이도 보여주고

채은이도 신중하게 결정 잘 하시고

우성이는.... 집에좀 들어가고.

또 봅시다!

 

--------------

 

우성 씀 ;

 

ㅋㅋㅋㅋ

 

학재형 보안검색대는 무사히 '알몸으로' 통과한겨?

 

참 그리운 마음이고....

나혼 자 '비열하게' 쪼개고 있고

성민이형은.... 무슨 출마하는 사진이네.. ㅎㅎㅎ

 

시절이 수상할 수록

뜻 맞고 마음 맞는 사람들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모양입니다.

 

살아들 있습시다... 건강하게 말이죠...

 

----------------

 

채은 씀;

 

저작권자의 농간이다!!! 학재형만 제대로 안나왔군.. -_-;;
 
저게 도대체 언제적 사진이얌? ^^;;;
 
우성오빠는 완전 샤프한 걸... 저런 시절도 있었다니(느낌표 일곱개)
 
상길 옹은 여전하시고, 영수형은 때아닌 학구열에 불타고 계시고...
 
후하하.. 성민오빠의 저 포스는 뭐지?
성민오빠의 어깨의 올린 손은 누굴까??? ㅋㅋㅋ
곧 만나면 물어봐야징~~
 
여튼 다시 엠티가고 싶다~~
 
학재형 미국 잘 다녀오고~ 춥고 외로운 종인이한테 연락도 하고~ ^^
 
돌아오면 놀 계획 잡아보자궁~~
 
아... 사주 좀 보려했더니,,, 프로그램에 lock이 걸려있나봐. 설치가 잘 안되더라고...
 
담에 한국오면 학재도령 철학관에 찾아가도록 하지~~
 

-----------------

 

성민 씀;

 

ㅋㅋㅋㅋㅋㅋ

작품들이다 정말.

옛날에 왜 클릭하면 귀신튀어나오는 사진 있었잖아.

그거 이후로 사진 눌러서 깜짝 놀라보기는 처음이다ㅋㅋ

 

양쪽에서 좋다고 '쪼개고 있는' 두 놈은 아주...ㅋㅋㅋㅋㅋㅋ좋냐.

 

상길이형 저 '잠바' 참 죽도록 입고 다녔는데 ㅋㅋ

 

영수는 저때 과회장(뭐라고 불렀었지?)이었지 아마. ㅋㅋ생각난다.

 

채은아 두껍고 굵은 저 손 보면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니? 만나면 갈쳐줄게. 쫌만 기둘려.

 

종인아, 가서 밥 잘 먹고 잘 지내라.

학재도 너한테 고백했다며. 애쓴다 니가.

 

학재야, 니가 종인이끗발 잘라놓은 바람에 나만 알 됐다. 좋게 책임져라.

그나저나 오바마 취임식 다음날 공항에서 너를 들여보내줄지 의문이다 난...진짜로...

 

우성아....좋냐...

 

성재형 보고 싶소.

 

도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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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길목수퍼

길목수퍼

 

황영선

  

밤 늦은시간

골목 어귀의 길목수퍼에서
잎새주 한 병에 취기 오른 일상을 잠시 접는다
강산이 몇 번을 바뀌도록 골목에 틀어박혀
등 떠밀려 살아온 세월,
해가 지면 서둘러가는 발걸음 돌아앉힌 날들도 있었지
비바람 거센 눈보라에도 시린 뺨 싸안으며 빼꼼이 내민 얼굴
여기는 길목수퍼
원하는 무엇이든 내어주면서
내 필요한 몇가지는 아직 진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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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과 함께 새해 맞이...

매년 반복되는 새해맞이...

뭐 특별한 게 있다고 연말 연초에는 유난을 떨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날짜가 바뀌는 것일 뿐, 달력이 넘어가는 것일 뿐,

그 마저도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오늘 다음 내일일 뿐인데...

 

올해는 새해 인사도 그냥 넘겼다.

안부를 묻기에는 아직 작년의 여진이 그대로 새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MB악법, 언론노조 파업... 그보다 더한 빈곤과 폭력이 지구 구석 구석을 상처내고 있는데...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조차 차마 건낼 수 없는 처참한 상황들이

마음을 더욱 무겁고 쓰리게 한다.

 

그러던 중...

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새해 인사 메일에 씌여진 시 한편이

그래도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법구경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등잔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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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마지막 날... 까페 빵 공연!

애초 계획은 2008년의 마지막을 서울에서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여수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밤새 차를 타고 달려가서 새해 첫 아침을 향일암이든, 만성리든, 오동도에서든...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꼭 봐야지... 보고 소원도 빌어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오늘 액트 편집위원들이랑 아는 칭구들이 빵 연말 공연을 보려 간다는 말에...

 

살짝... 아니 마니 망설이고 있다.  -_-;;

 

 

(5분 고민했다...zzz)

 

 

뭐... 여수는 낼 가도 되지 뭐...  ^^

 

역시 난  절대 계획적일 수 없는 즉흥적 인간이야!!! 

 

뭘 하든 재밌게 놀면 되는 거 아니겠어?!  ^o^//

 

 

까페빵 2008년 12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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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숏버스

2008. 12. 14. 20:10

서울독립영화제 해외초청 특별상영 <숏버스>...

동아리 후배 원혜와 함께 보다...

 

 

 

it's not about sex but about sexuality......

 

숏버스는 아주 위험하고 정치적인 영화이다.

 

제대로 머리박힌 등급심의위원이라면,

성적 노출이 너무 심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정치적 효과 때문에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을 것이다.

 

섹스는 전쟁보다 위험하지 않고, 눈물겹도록 인간적이며, 평화롭다.

 

마지막을 향해가는 영화를 보며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는데...

영화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꼭꼭 묻어두고 지우려했던 상처들을 다시 기억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엔딩곡과 트레일러... 다시 봐도 대단하다...

트레일러는 이 영화의 감독인 존 카메론 미첼이 헤드윅 그 목소리로

숏버스를 얘기한다. 와우~

 

http://rainstory.tistory.com/tag/%EC%88%8F%EB%B2%84%EC%8A%A4%20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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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의 부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5년...

엄마에게는 그 빈자리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였던 남편이었고...

자식의 죽음을 아직도 모르시는 병든 할머니에게는 그리움이 뼛 속에 사무쳐 이제 원망만 남은 못된 자식놈이다. 

 

정신 없이 바쁘게 살다가 문득 문득 아빠의 기억을 들추는 나와는 달리

엄마와 할머니에게 남편과 자식의 부재는

살 떨리게 아픈 상처고 미련스러울만치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그의 부재

                                                                황영선


화양면 이천리에 가면 햇볕이 잘드는 언덕 위에
사랑으로 담을 쌓은 사랑의 집이 있습니다.
그곳엔 저의 시어머님이 계시고 자식없어 오갈 데 없으신 노인분들께서
풀기없는 눈망울 껌벅이신 채 종일 어두운 귀 열어 놓으시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찾아올 자식도 없지만 오늘은 행여나 내일은 오겠지 하는 맘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님을 모셔놓고 몇 해 동안 잊고 있다
지난 추석무렵에야  그 사랑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님을 뵈면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하나.
이제야 왔다고 내치시지는 않으실까?
그 보다 세상 떠난 애비를 물어보시면 뭐라고 대답해 드리지?
두근거리는 맘으로 어머님 계신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 새 몰라보게 작아지신 어머님,
한참만에야 저를 알아보신 어머님은
"아이고 이게 누구여? 오메 창렬이 엄니 아니여? 반갑네 반가와"
어머님은 제 손을 잡으시고 금방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시상에 자식보다 낫네그려 우리 자식들은 에미가 죽어도 모를것이여.
  창렬이 엄니가 우리 자식들한테 말좀 전해 주소.
  에미가 날마다 지달린다고.  
  그라고 우리 큰 아들 말인디 나가 그놈을 어찌 키운지 창렬이 엄니는 다~알제잉.
  근디 시상에 설을 다섯번이나 쇤는디 여그를 한번도 안 온당께.
  멀리 발령이 났다고 들었는디 징허게 무심한 놈이여."

어머님은 뼈만 앙상해진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나 죽기전에 우리 큰 아들을 꼭 봐야헐건디.
  우리 며느리는 아그들 키우니라고 꼼짝도 못 헐 것이고.
  근디 창렬이 엄니도 인자 많이 늙어부렀네. 각시 때는 영 고왔는디."

어머님은 불효한 이 며느리를 예전에 옆집살던 창렬이 어머니로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 가슴 속에 내내 품고 계신 말씀을 죄다 쏟아 놓으신 게지요.
만약 저를 알아보셨더라면 정작 하시고 싶은 말씀 속에 접고
그간의 원망을 침묵으로 대신 하셨겠지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기어들어간 제 목소리에

"아이고 나보고 어머니라니 창렬이 엄니 노망들었구만.
나 용산떡이여 채은이 할매"
큰 손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 어머님은 정신을 놓으신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님을 뵈면 꼭 알려 드려야할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시고 오년 동안 아니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실 큰 아들의 부재를
이제는 알려드려야겠다고 벼르고 별렀던 오늘이었는데
끝내 못하고 다시 가슴에 담아야 했습니다.

모시지 못한 불효도 큰 데 어머님 가슴에 자식까지 묻으시게 할 순 없어
그냥 옆집 창렬이 어머니인 채로 무거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머님, 천하에 몹쓸 불효를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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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시...

 

몇 년 전부터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 다니면서 시를 쓰기 시작한 엄마...

엄마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고민하는 것을 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항상 새벽녁이나 되어야 가게문을 닫고 들어와 씻지도 못하고 피곤에 지쳐 잠이 들던 엄마였다.

계속 적자 운영을 하던 가게를 어느 날 정리를 하더니...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의 한이었는데...

나는 엄마의 용기와 선택이 정말 기뻤다.

 

엄마는 그 좋아하던 고스톱도 끊었다.

엄마의 침대 머리 밑에는 학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 펼쳐진  노트들과 종이들이 쌓여갔고...

엄마는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가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엄마가 쓴 시를 읽어주겠노라고 한다. 하지만, 딸내미 앞이라 무척 쑥스러운가 보다.

항상 시의 의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단숨에 읽어버리신다.

나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칭찬은 별로 못해드리고... 낭송 못한다는 타박만 한다.

 

엄마가 30년만에 정말 엄마 인생을 살고 계신다.

가난한 농사꾼의 집 맏며느리도, 네 아이의 엄마도, 먼저 하늘로 간 남편의 아내도 아닌 진짜...

엄마의 인생을 만들고 있다.

 

난 딸이 아닌... 같은 여성으로서,

그런 엄마의 새로운 길찾기를 조용히 응원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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