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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주는 게 모야?
교보문고에 들렀다 미술잡지에서 낯잊은 얼굴들 발견.
박서보, 김태호.
거만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그들의 얼굴이 어찌나 거슬리던지…실상을 알고도 그들을 인정하기란 싶지 않은…모 약간은 삐딱하게 약간은 주관적편견일지는 몰겠지만….여튼…
미술잡지의 표지를 대문짝만하게 차지하는 그들을 보며 난 대학이 나에게 무엇이었나 곱씹어본다.
한창 고교등급제로 인해 시끌벅쩍한 지금.
수시모집에서 떨어졌다고 울며불며(물론 고교등급제로 억울해서이기도 하겠지만..쩝) 세상 다 산것 같은 얼굴로 TV인터뷰하는 학생들을 대하니..학벌이 주는 사회적 잇점을 알고 있는 측면에서는 그들이 이해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저건 좀 아닌데’ 라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학문의 전당. 상아탑의 상징..대학.
개혁의 바람이 불어도 언론과 더불어 대학내 부조리와 문제는 여전히 잔존하고…대학교수가 되려면 아직도 손에손에 하나둘씩 무겁게하고 교수에게 인사하러 가야하는 현실.
미대는 대학시절내내 도제시스템이 아주 철저해서 강의하나라도 따거나 그 이전에 조교자리하나라도 맡을라치면 교수들 100호,200호 캔버스를 수십개 짜야만 가능할똥 말똥이었다. 것도 힘있는 남자들의 몫이고 여자들은 돈자랑을 해야한다. 미대생의 부모님의 평균직업은? ‘사’자로 끝나는…변호사, 검사, 의사…사장!(우리학번의 여학생은 유독 그랬다…돈많은 부모생각에 미술하는 자녀는 결혼보내기 좋은 조건이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그러나 여전히 잔존하는 현실^^..)….등등…돈 잘버는 부모님의 능력을 과감하게 발휘해야 하는거다. 에피소드 하나, 과교수의 개인전때 왠만한 작품은 거의 다 사준다는 부모님. 울학번 여자애였는데 그 친구 대학원 졸업 개인전때 과교수 오자말자 하는 말 “우리 부모님은 어디계시나?” 속물성과 위선에 지금도 치가 다 떨린다..흐흐…그 친구 지금 출신대학에서 강의나간다 한다.
요즘엔 취업 잘되는 과가 가장 잘나가듯이 미대에도 회화과나 조소과 순수미술보다는 시각디자인, 산업(공업)디자인 상업미술의 학과경쟁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나 들어갈때만해도 회화과는 출신대의 최고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디자인과가 점령해버렸다.
실기, 내신, 수능성적 등 모든면에서 디자인과가 최고다.
회화과 교수들이 불평하기를 새내기들이 예전같이 똘똘하거나 실력이 대단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고 들었다.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유지되어야 할 예술영역이 있는것이고 그렇담..이렇게까지 대세가 역전될 때까지 학과 교수들은 무얼 했을까?
개인적으로 대학은 나에게 준게 없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말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미술인재들 모아놓고 바보만드는 과라고..
전부는 아니더래도 일정정도는 그렇다.
나보다 잘 그리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학와서 알았고, 괴이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인간들이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는걸 알았을 때 좌절감..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과 경쟁하며 그들과의 협력으로 창조적 감성은 키워지고 진일보해왔던거였다.
거기에 대학은 특히 교수들은 무엇하나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오늘 그들의 작품을 잡지에서 접하며 나의 주관적 평가가 여전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을 뿐, 그들의 작품에 감동하고 그들의 예술관을 존경해마지 않으며 감동에 전율하고..그런건 없다. 슬프게도 말다.
“꼼뽀지션” 이라는 단어하나로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여 자신의 무식함을 과시했던? 교수의 현재 작품은 10년 개인전때 작품과 선하나도 달라진게 없었다. 놀라울 뿐이다.
10년전 그의 개인전을 보고난 후 딱히 할말은 엄꼬 할 수없이 던졌던 말 “벽지하면 딱 좋겠네~”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거였다.
어찌나 똑같은지…
물론 작가의 고유색깔은 쉽게 바껴지지 않는 것이 전형이기는 하다..하지만 그들은 울고먹어도 넘 울고먹는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사안에서의 그들은 형식주의와 매너리즘의 대표주자이다.
19세기 서양의 추상회화에서 맥을 이어온 한국 추상회화의 대들보 박서보.
(그림을 다운받으려 했으나 가능하지 않다..어찌나 세밀한데까지 신경썼는지...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려면..http://www.sejul.com/html/artists_parkseobo2.htm)
일본평론가 “ 흰색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가”라고 극찬을 마지않는다.
하지만 한국 추상회화는 서양의 추상회화의 형식만을 따온 껍데기이다.
서양의 추상회화는 사실적인 기법대신 고유의 형체를 해체하고 원근을 평면화시키는데서부터 출발하였다. 추상회화란 흔히 어떠한 외적 대상도 재현하지 않는 미술을 말한다. 대신 재현의 대상은 인간 내부 심상의 표현으로, 혹은 회화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옮아간다. 인간 내부로 옮겨진 대상은 무의식의 표현으로, 상상력의 표현으로, 기분, 정서의 표현으로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표현을 낳는다.
하지만 한국추상회화는 서양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올 뿐 미학적 내용은 전무하다.
한지로 세겹 네겹 덧칠하며 묘법이 어쩌고 물질과의 치열한 대결이 어쩌고 한다.
“사상 없으면 진정한 예술가 아니다” 까지는 아니더래도 형식에 대한, 재료에 대한 고찰과 행위만 하면 무엇하랴. 그의 그림을 보면 아무런 상상력도 발현되지 않는다. 내가 감성이 모자라서일까? 아니면 너무 주관적 견해만을 주입시켜 예술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일까?
예술이 꼭 이래야만 한다는 정답은 없겠지만 그들에게 예술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고매한 그 무엇이다.
즉 고급예술인 것이다.
돈많은 자들의 실내장식물이자 투자대상이다.
호당(엽서한장 크기) 1000만원도 호가한다고 하니…출신학과 교수들은 모두 부자다! 우와~ ㅠ_ㅠ
그림(예술)의 가치는 무엇으로 매겨지는 걸까?
얘기가 길어지니까…건 논외로 하자.
여튼 그들이 부자건,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거장의 자리를 꽤차건 어쨌든 뭔가를 이바지하긴 했겠지. 인정한다.
하지만 교수로서 그들은 자격미달이다.
이두식이라는 잘 나가는 작가있다. 그의 그림은 고층빌딩로비에서도 심심찮게 보인다.
밤새껏 100호 크기의 캔버스를 남학생이 열심히 짜놓으면 새벽에 잠깐 와서 휙휙 몇시간 그리면.. 작품 하나 완성! 그 그림은 몇백, 몇천에 팔린다. 요기서 한가지 비밀누설. 그림을 초벌로 학생이 살짝 그려놓으면 그 위에 몇번 선을 그어놓고 완성시키는 경우도 있다한다.
구라다. 사기다…백남준아저씨가 일찍이 “예술은 사기다” 라고 했다.
내포하는 의미는 다르지만 일정정도 이런 의미에서는 맞아 떨어지는거다.
그들의 추상화는 왜 그렇게 잘 팔리고 잘나가는 걸까?
왜 그들의 그림을 사는 걸까?
좋아서겠지…순진하다.
유명하니까…비싸니까 몬가 뽀대나 보여서겠지.
몰겠다.
그거면 장식품으로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는거니까. 작가 살아생전에 사두고 작가가 죽으면 가격이 몇배씩 점프하는 여느 부동산보다 나은 투기성 자본이니까…
딴길로 샜군. 이두식 교수 얘기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그분 수업의 출석은 무조건 100%가능했다. 왜냐? 교수가 수업에 안들어오니까…
딱한번 본다. 한학기에 채워야 할 작품을 다 채운 다음 교수가 그걸 평가하는데 바로 그날이다.
말도 별로 없다. “음….좋네” 그게다다…
무얼 배워야 하는걸까?
혼자서 그림분량 채우고 주제에 맞게 고민하고 그리고…그러면 그게 끝인데..혼자서 터득하고 알아나가야 한다면 왜 미술대학이 존립하는 걸까? 그때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편하기도 했다. 워낙에 채울 분량이 많아서 밤샘을 죽먹듯이 했었으니까 말다.
대학졸업 후 물감을 살돈도, 작업실을 구할 돈도 뭔가 생산적인 노동을 해야만 가능한건데 한국미술계의 시스템은 젊고 실험적인 작가의 뒤를 봐줄 스폰서역할, 재능있는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는 구조자체가 안되어 있다. 외국을 나가 혼자서라도 뺑이치고 유명해져서 돌아오는 작가들이 넘치는건 작업환경의 토대가 열악하기 때문에서다.
교수들은 자신의 안일을 위해 여전히 그림을 그리며 잘먹고 잘산다.
후배양성을 위해 한국 미술계의 구조적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개선싴키기 보다는 자신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호위호식한다.
그림은 그들에게 부를 축적하는 도구이며, 예술행위는 부를 명맥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쨌든간에…그들은 그냥 잘나가는 작가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똘똘이들을 바보로 만들 권력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변화가능성이 적다.
그들이 키운 학생이 조교가 되고, 미술계의 주류작가가 되고(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대전 모 이런데서 상타는건 줄을 서면 탔다. 교수들이 결과 발표나기전 당사자에게 알려준다, “이번엔 네 차례네? 축하한다”…허거거걱…), 시간강사가 되고, 교수가 된다.
그나마 프랑스에서 재료학을 배우고 돌아온 시간강사였던 선배는 1년있다 쫓겨났다.
줄서기를 안해서라고…
H모 대학이 세계의 미술대학으로는 과연 몇위에 랭크될까?
학부졸업하고 외국나가 똑같은 과의 학부공부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외국에서 국내학부졸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최고라고 하는 대학마저도 외국에서 인정이 안되어 비슷한 교육을 또 돈들이고 4년의 세월을 다시 공들여 공부해야 하다니..아니 새로 공부하는거나 마찬가지일까? 흐흠…
미학책을 한줄이라도 더 읽어 예술적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하고, 재료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며 새로운 형식창조에 밤샘해야 할 때 소위 잘나가는 주류작가들은 교수의 작업실에서 새하얗고 탱탱한 캔버스를 짜주며 그들의 배에 기름칠을 도왔고, 교수들과 토론하기보다는 유명해지는 방법을 벤치마킹하는 속물성 기회주의를 발휘하였다….그러면서 그들은 한국미술 주류계의 명맥을 이어간다. 슬프다.
그런 대학에 가기위해 기업화된 강남의 잘나가는 학원을 다녀야 하고, 왠만한 노동자의 한달치월급을 갖다바쳐가며 특별히 교수의 실기 사사를 받아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이 바뀌어야 할때가 아닐까?
한국의 오늘
21세기 한국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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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電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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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양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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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집회 ‘엄벌’로 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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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이대 등급제 적용 확인
"고교등급제 적용은 조직적 입시부정 사건"
공부로 상류층 진입 ‘바늘구멍’
대학이 이래서는 교육의 미래가 없다
세상은 저앞에 있는데 난 요기..서 헤매고 있는 기분.
그런데 요기가 넘 야만스러워서 조기로 가려했으나 조기도...흐흠...사면초과라...
우리의 오늘, 행복지수는 몇이나 될까?
>>사족
한겨레, 한겨레21, 이코노미21, 오마이뉴스에서만 푼 기사의 제목글들이다.

: 100% 3D로 제작된 타이틀 이미지.
타이틀에서부터 숨이 꽉막힐정도였다.
정말 장난아니게 잘 만드는것을... 이미지의 새로움에, 예술의 경지에 오른 3D기술에,
심오한 음악에..
<이노센스>
: 이미지는 모두 이곳에서 가져옴. 홈피 참 잘 만들었따...
<이노센스>의 미술을 맛뵈기로 느끼고프다면 요기를 먼저 들러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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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는 절대로 쫓아가기 힘든 철학적 대사들, 함축적 의미, 실재와 가상, 예술적경지로의 미술…
오시이 마모루 세계로의 초대는 그만큼 어렵고 어려웠다.
<공각기동대>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노센스>를 한번보고 평을 써내려가기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 이상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리가 하애졌다.
타이틀 화면에서부터 심상치 않음을 예감했지만 철학적 함의를 담은 대사로 인해 스토리조차 제대로 쫓아가고 있는건지 헷갈렸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선 길을 잃어버렸다.
바트와 토그사가 김을 만나러가는 장면에서부터 동일한 장면이 3번 반복되면서는 어떤 게 실재이고 어떤게 가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니까 마지막 바트와 토그사의 장면까지 믿을 수가 없어진다. 토그사의 가정이 진짜 존재하는건지, 토그사의 환상인지 끝까지 알길이 없게 만드는건 마지막 정지된 듯한 바트의 화면전, 토그사의 딸에게 토그사가 선물한 인형의 눈을 응시하는 듯면서 바트로 넘어오는 화면전환때문이었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사이보그이며 누가 인형인지..
사이보그가 꿈을 꾸는 가상현실인건지 아니면 인간이 처한 진짜현실인건지…
딸과 부인이 보고싶다는 토그사에게 바트는 계속 이렇게 대사한다.
“딸과 부인이 실재로 존재하는건지 다시 생각해보라”
...허...

: 배경의 신비로운 색감과 깊이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장면..흐흠..어떻게 저런 색감을
내는건지...정말 천재들이다..천재...
애니메이션의 미술을 예술의 영역으로..
애니메이션을 철학으로…
애니메이션 영역내의 이미지로는 이 이상의 수작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색감의 깊이, 차별화된 각도, 슬로우모션의 시간차 편집, 고딕양식과 동양적 문양의 조합이..
또 음악….음악감독 켄지 가와이.
동양적 음색에서 비롯된 듯하면서도 특정국가의 음색이 드러나지는 않는 그러면서 SF영화와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신비로우면서 몽환적인 사운드때문에라도 애니메이션의 예술적깊이를 더하고 남음이 없다.
제작자처럼 10번 정도는 보고 난후 글을 완성 할 수 있을것인가? 흐흐흐흐...
씨네21의 20자평의 글중 "자막한마디한마디에 밑줄 쫘~악"…푸하하하….
Never follow 오시이!
철학공부하는 맘으로 기회가 허락하면 큰 스크린에서 한번 더 보고 담엔 PDBOX에서 검색다운 받은 뒤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나의 한계는 요기까지...
: 동양적 문화양식의 다국적 혼재. 다양한 동양문화를 절묘하게 혼합한 미래도시의 모습.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 초현실주의적 색채...정말 환상적이다!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과 동양의 문양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건물
양식이 느껴지는 미래형 건축물을 보는 재미와 아치형의 창안에 스테인드글라스와 창살
문양이 짬뽕되어 있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라.
동양과 서양의 미술양식이 이상할 정도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애니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배경을 웹에서 찾고 싶었는데 전경이 들어간 이미지는
없었당.. 대체물로..

: 하나 더 소개~
중세 고딕양식의 가우디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미래도시.

개막작을 상영중인 수영만 요트경기장 :오오옷!..<2046>상영 중~
올해도 부산에 가질 못하다니...푸후~ 한숨만 나온다.
년중 하루종일 영화만 골라 보러다닐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없는 영화들도 드물게 접할 수 있는 황금의 기회.
이 기회를 놓쳐야 한다니...으으으
이번 부산영화제 개막작 왕가위의 <2046>.
이번달에 설서도 개봉한다니 개봉일이 다가오기만 목빠져라 기다릴수바께..
<2046>을 볼 채비 완료!(바탕화면도 <2046>으로 도배 중..흐흐)
기다림의 간절함을 <씨네21>정성일씨의 글로 대신하며....ㅠ_ㅠ
애타게 <2046>를 기다리며 - 왕가위에게 보내는 정성일의 연서(+English)

나는 올해 5월 깐느에 가지 못했다. 그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솔직히 올해 경쟁부문에 초대받은 영화(들)의 명단은 미안하지만 그저 그랬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왕가위의 여덟 번째 영화 <2046>을 보았다는 사실은 나를 몸서리치게 질투에 떨게 만들었다. 진짜다! 나는 그 영화를 5년이나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사무치게 기다렸더니 난데없이 <화양연화>를 먼저 보여주었다. 왕가위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그저 단순하게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 영화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다음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정확하게 28개월을 여기에 매달렸다. 그는 고치고 또 고쳤다. 별별 소문이 들렸다. 잠시 다른 영화의 현장에서 만난 양조위에게 물어보자 “나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무언가 계속 찍고 있는데, 솔직하게 마지막 편집이 끝나기 전에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건 왕가위도 마차가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왕가위는 온전히 자기의 힘으로 이 지옥같은 과정의 연애담을 통과했다. 물론 이 영화는 걸작이다. 국수 통을 들고 골목을 흔들흔들 걸어가는 수리첸의 발걸음에 맞추어 심금을 울리는 저 선율은 거의 보는 이의 영혼을 홀릴 지경이었다. 혹은 앙코르와트에 사연을 담아두고 걸어나오는 장면은 말 그대로 숭고했다. 왕가위에게서 감정은 형상을 드러내고, 감각은 그 자체로 세상의 리듬이 되었다. 아니, 차라리 리듬으로서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이미지가 어떻게 세상과 공명하는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이미지의 박자들, 사운드트랙의 대화, 그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도주선들, 그 안에서 붙들린 세상의 인상들, 넘쳐나는 보이스 오프의 목소리들, 그 목소리에 의해 끌려들어온 기억의 기호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말하는 대신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사람이 존경스럽다기보다는 무섭다.
끝이라고 시작한 곳에서 새로운 길을 낸 사람
왕가위는 매번 볼 때마다 정말 끝까지 왔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제 이 영화적 스타일로서 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보는 사람을 넉 다운시킨다. 그러나 그는 매번 한계라고 생각한 그 계단에서 번번이 한 걸음 더 올라갔다. 나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보면서 왕가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다음에 만든 <해피 투게더>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그 영화의 첫 대사, “보영은 돌아와서 말할 것이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 대사가 왕가위 그 자신에게 한 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피아졸라의 슬프디 슬픈 탱고 선율에 맞추어 허름한 카페를 무대로 춤을 추면서, 혹은 홍콩의 반대편에서 다시 이쪽을 바라보면서, 카메라가 뒤집혀서 홍콩의 거리를 느리게 움직이면서, 그렇게 지구의 끝에 이르는 여행 끝에 다시 타이페이에 돌아와서 전철에 몸을 싣고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들리는 “해피 투게더”의 합창은 1997년 홍콩에 어울리는 작별인사였다. 이건 그의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 반환’ 이전의 홍콩영화의 마지막 걸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거의 넋을 잃었다. 저 나른한 1960년대의 홍콩 뒷골목에서, 아무리 작은 소곤거림도 들릴 만큼 비좁은 문과 문 사이에서, 부딪칠 듯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의 아내와 다른 사람의 남편 사이의 불장난 속의 진심은 쓰디쓰면서도 더 없이 달콤하다. 역사는 추억이 되고, 시간 속에 사라져간 향수의 기억은 앙코르와트 속에 영원히 봉인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화찬란했던 홍콩의 시간은 거기 영원히 남는다. 그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부여한 한계를 뛰어넘었다. 나는 많은 감독들과의 인터뷰와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통해서 이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 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그는 다시 한번 넘어왔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2046>에 매달렸다. 처음에 알려진 것은 세 개의 오페라에서 빌려온 제목을 단 세 개의 에피소드에 관한 영화였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갑자기 발전해서 <화양연화>가 되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타락천사>는 원래 <중경삼림>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아이디어를 곧 버린 것 같다.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알려진 배우들도 점점 늘어갔다. 장쯔이와 공리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명단이다.
또 다시 수많은 소문이 들렸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그 사이에 두 편의 <쓰리>에 참여했으며(진가신의 <고잉 홈>과 프루트 챈의 <만두>), 필립 노이스의 <토끼 울타리>와 <조용한 미국인>, 존 파브르의 <메이드>, 장예모의 <영웅>, 펜 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장위엔의 <녹차>를 찍었다. 양조위는 <무간도> 삼부작 중에서 두 편의 주연을 했으며, 장만옥은 홍콩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영화에 출연했다. 기무라 다쿠야가 한없이 미뤄지는 스케줄로 뒤죽박죽이 된 현장에서 빠지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래도 매년 깐느에 가면 2002년부터 내년에는 <2046>이 온다는 소문이 일종의 괴담(!)처럼 반복되었다. 그리고 아아, 마침내 완성되었다!
나는 행복하게 기다린다, 개막식의 밤을
나를 기쁘게 한 사실. 올해 부산 영화제 개막식에 온 <2046>은 깐느 버전을 다시 편집하고 일부 장면을 더한 버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깐느 버전은 미완성이었다는 뜻이다. (아이, 좋아라!) 물론 이것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4년 전에 깐느에서 <화양연화>도 ‘워크 프린트’ 상태로 상영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미완성이었다. <아비정전>은 영원히 그 절반의 이야기를 남겨둔 ‘전편’이 되었다. 양조위가 짐을 싸는 그 이상한 마지막 장면. (왕가위는 이 마지막 장면을 다시 편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낳은 <동사서독>은 그 자체로 여러 개의 수수께끼를 하나로 만든 플래시백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가 하나의 영화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불가사의라고 생각한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절반의 이야기이다. <해피 투게더>에는 ‘사라진’ 관숙의와 장진의 절반의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왕가위는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를테면 메이킹 필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 ‘영화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미 편집까지 끝낸 장면들에서’ 보여준 저 황홀한 장면들. <화양연화>에서 그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의 ‘사라진’ 불륜은 (찍혀졌지만 ‘여전히’ 편집본에서) 빠진 상태로 남겨져있다.
후 샤오시엔은 왕가위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에 따라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다른 세계를 만들다가, 이번에는 등장인물 자체가 사라지거나 혹은 새롭게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실타래들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는 꿈을 꾸듯이 영화를 창조해낸다. 그것은 어디서 끝날 지 알 수 없는 무아지경의 세계이다. 채워지고, 비워내는 그 한없는 반복. 왕가위는 그 비어있는 여백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이 완전하게 이해되는 것에 대해서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혹은 만들어졌지만 빈칸으로 남은 그 자리, 그러니까 이미 있었지만 비어있는 자리, 도서실 서가에 꽂혀있었으나 지금은 비어있는 그 자리, 그래서 채워 넣어야 할 그 자리의 세계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무수히 열려있는 세계들, 그럼으로써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그 나머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영화 앞에서 상상하고 사유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그 즐거움을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부산의 야외 상영장, 그 오 천명이 넘는 사람들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장 큰 소리로 웃고, 가장 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왕가위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가능세계의 리듬과 형상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다이빙할 것이다. 그 시간을 향하여 우리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자.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영화평론가 정성일
I was not sad when I could not go to the Cannes Film Festival in May this year. However, I was jealous enough and shuddered to think of the fact that others have seen Wong Kar-Wai's eighth film, <2046>, before than me. Honestly, I have waited and waited this film for five years. After a long wait, all of a sudden, he firstly showed the film < In the Mood for Love >(2000). I heard that he put exactly 28 months into the making of this film. When I asked Tony Leung about this film the other day, he told me that even though he was working in this film, he himself would have no idea about it until the last editing was over, and so did the director Wong Kar-Wai.
Of course, the film < In the Mood for Love >(2000) is a masterpiece. The melody that accompanies the scene of Su Li-Zhen's holding a bottle and walking down the street touches the soul. Moreover, the scene where Su Li-Zhen walks out of Angkor Wat after leaving his old memory behind was truly sublime. The emotion in Wong Kar Wai's perspective creates an actual shape, and the sense itself becomes a rhythm of the world. He actually tries to present the whole appearances of the film through rhythm.
After I saw his two films < ChungKing Express >(1994) and < Fallen Angels >(1995), I thought he had finally shown us all the best he could do. However, the film < Happy Together >(1997) was far better, and, moreover, I almost fainted after watching his later film < In the Mood for Love >. This time, he's coming out with a new movie, <2046>. I believe he put his all in this film, and the film starring Tony Leung, Gong Li, Faye Wong, Zhang Ziyi and Takuya Kimura was finally finished. Surprisingly, <2046>, in this Pusan Film Festival, is a new version, which means that the <2046> shown at the Cannes Film Festival was virtually unfinished.
Hou Hsiao-hsien, the director of the famous film < Flowers of Shanghai >(1998) has mentioned that Wong Kar Wai would take the longest time in the world to make a film. He was probably right. Wong creates stories while making his films. Suddenly changing around the whole direction of the film to create another realm, and switching around the characters, he continuously does not seem to give us any space to understand completely about his films. However, in the process of these endless repetitions to create new stories, he invites us to his open world to fill in the space of his film with our imagination.
영문번역=김미진 
하얀궁전
감독 루이스 만도키
주연 수잔 새런든, 제임스 스페이드
신데렐라 뒤집기.
남자는 27세, 여자는 43세이다.
남자는 중산층 지식인이며, 여자는 비정규직 노동자, 웨이트리스이다.
첫만남도 그닥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
White place에서 처음으로 만나다.
비어있는 햄버거를 실수로 팔았던 그녀에게 따지러 하얀궁전에 들른 남자. 실갱이로 첫만남을 가지지만..그들의 인연은 웨이트리스와 손님의 관계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이 사랑이란 걸 과연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육체
그들을 묶을 수 있는 건 “죽음”이었다.
2년전 자동차사고로 어릴때부터 영혼의 짝이었던 부인을 잃은 남자. 17살 아들을 마약과 술에게 뺏겨버린 여자. 아픔을 아는 자만이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걸까?
또 하나…육체적 관계.
2년동안 어떤 여성과도 사랑을 나눌 수 없을만큼 부인의 공백이 컸던 남자였지만 중년여자의 하룻밤 유혹은 그의 무료한 일상을 명쾌하게 깨부셔버릴만큼 커다란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회사에서도 성실하기로 소문난 남자 지각에, 점심시간 1시간 땡떙이…이건 직장상사가 바로 눈치 챌만큼 그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남자는 혼란스럽다.
여자에게 빠지는 것이 사랑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부인을 사랑하지만 부인보다 더 여자에게 빠지는 걸 여자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서 잠깐…사랑에 있어 정신과 육체 둘중 어떤 게 더 우선할까?
정신 < 육체
>
=
어떤 공식이 맞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두가지를 다 아울러야 오래된 관계유지가 가능해지지 않을는지…몰지..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1년반동안 동료이상의 아무런 감정이 없던 남성이 스킨쉽 이후 “남자”로 와닿는 경험을 했다면..호기심처럼 그런 감정이 무얼까 굉장히 궁금했지만..그냥 덮어버린…ㅎㅎ
계급차와 나이차를 뛰어넘다?
40대와 20대의 간극, 노동계급과 중산계급의 간극.
이들이 이 벽을 넘기란 쉽지 않다. 둘만은 가능할지 몰라도 사회적 인간인지라 주변인들을 의식하지 않는 남녀관계란 가능하지 않는 것인거다.
여성들이 남성의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친구들에게 보여질 때 남친의 모습이 적당히 받쳐?주기를 바라는건? 물론 남성들도 별반 다르지 않지. 성공한 남성의 옆에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이 그 남자의 완벽한 그림을 완성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인 것을….
남자의 세계에 초대받은 그녀는 안절부절이다.
그를 아는 주변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걸 알고, 그녀와 공감할 만한 주제가 없다는 것도 알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오롯이 서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그닥 환상적인, 완벽한 그림일 수 없다는 걸 여자도 알고, 남자도 안다.
중산층 유대인 가족들의 파티는 여자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에서부터 문제가 될만큼 그들만의 규정된, 정형화된 합의가 있는 것이다.
중년남성. 닉슨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그예 자신의 지식과 상식을 화려하게 잘 차려진 음식앞에서도 진행되고 있는데…그녀가 한마디 거든다. “난 노동계급이다. 백악관 주인이 누구든 상관없이 난 최저임금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꺼다!” 일갈하며 위선과 가식의 장소를 떠난다. 물론 그들이 그녀에게 내놓고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여자는 느끼는 것이다. 그녀의 가슴을 힐끗대는 남자의 변호사 친구, 우아하게 실내장식이 어쩌고 일등신랑감을 가질만한 지 여자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슬쩍슬쩍 떠보는 또 다른 여자들….기득권층이면서 자신이 부리는 하녀의 일당이 얼마인지도 그녀의 인생에는 전혀 관심없는 가식과 위선의 지식인…
그들을 뒤로한 체 당당히 그들의 세계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결말의 통쾌함
“너한테 맞는 풋풋한 아가씨를 찾아라”
남자에게 버림받기 전에 남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난 여자. 여전히 웨이트리스를 하고 있는 여자를 찾은 남자에게 여자가 던진 첫마디였다.
“벌써 찾았다. 그리고 풋풋한 건 필요없다! I love nora!”
키스에 이어 레스토랑의 테이블 위를 한손으로 쓸어버리며 여자와 남자가 애정행각을 벌인다.
다음 장면, 노부부가 손을 맞잡으며 흐믓하고 부러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우와~~~박수에 휘파람에 주변 레스토랑 손님(관중?)들 환호의 함성이 퍼진다.
그들의 열린 사고가 부럽다.
상상해보라. 절제되고 예의바른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남녀가 테이블위에서 엉켜있다면..? 우리는 무슨 반응이었을까? ㅋㅋ
남자는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여자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잘나가는 광고회사에서 평범한 교사의 직함을 택한거다. (광고회사직원과 교사의 연봉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라…)
클래식음악에서 “오크릿지 보이스”의 팝으로 선회한 것이다.
왕궁을 던져버리고 민초의 집으로 뛰어 든 것이다.
신데렐라의 왕자는 신데렐라를 궁으로 데리고 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겠지만..신데렐라 과연 으리번쩍한 궁에서 행복했을까? 그녀가 나이든 쭈글쭈글한 나이든 여성이 되었다면 왕자 여전히 그녀만을 떠받드며 오손도손 살았을까? 그럤을지도..
환상을 키우며 신데렐라를 꿈꾸는 많은 여성들은 그랬기를 바랬겠지만..과연 현실이 그런걸까?
물론 이 영화 또한 또다른 환상을 키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강츄강츄!! 넘 잼있땅~~
작업하다 잠시 쉰다고 틀었던 TV. 실수….크흐흐흐…Onchannel에서 새벽 2시경에 이 영화를 보여주니…어쩌겠어? 4번이나 봤던 비됴인데도 또 볼 수밖에..중독이야 중독…좋아하는 영화는 꼭 5번이상은 보는…
40대에도 성적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웨이트리스 역을 100%소화하는 수잔 새런든과 섹스거짓말그리고 비디오테잎에서보다 조금더 젊은 듯하지만 여전히 그 알수없는 눈빛의 제임스 스페이더를 보는 재미 또한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꺼리~
또다시 참지 몬하고 글을 올리는구나. 불질 안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지났다고…미초미초..
누가 나 좀 말려조~~~
이미지는 쫌 야해서 요렇게 아래에..헤헤^^;;(Yahoo.co.kr에서 가져옴)
살려주어요. 미치겠따.
내일오전에 디자인미팅이 있는데 현재시각 새벽2시17분까지 미완성...흐흐흐
그런데 난 아직 요기 있따.
특히 시일이 급한 오늘같은 시기에 왜이리 웃낀거야 다덜!
진보네 블로거들은 모두 책임 있따!! 피해보상이라도 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흑흑흑흑...
오늘 요기서 정신을 못차린 시발점은 달군땜이다!
달군의 <용산에서 여자만나기>의 댓글향연..동참하고 말았다. 안할 수 엄슬만큼
잼나보였으니까..
잠깐 포로샵을 끄적이다...또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다..
neoscrum의 경상도 사투리가 얽힌 글에, 댓글까지..오늘 난 네오땜에 의자에서
몇번이나 쓰러졌다. 배꼽이 빠질 뻔했다. 화장실 들락하면서도 싱크대앞으로 갈때도 실실댔따.
네오가 감기만화를 올릴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이번 감기가 개그능력을 업그레이드
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분맹...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행인님..다중이야..다중이...
~_____________________~
@__@
배꼽빠져라 웃다 눈이 괭해졌다. 뻥뻥뚫린 포로샵그림들을 보면서...
지금도 작업은 안하고 모니터앞에서 계속 실실대고 있다.
넘 잼나서...그러면서 다시 운다..이걸 언제 끝낼것이여~~ㅠ__ㅠ
블로그 중독 1차 시기...이 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나의 영혼이 진보네블로그
이곳저곳을 떠돌것이다...안돼...아~~안~~~돼~~~!
* 이 글은 사슴벌레님의 [난 언제 들키게 될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취향를 취향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으로서 닫힌 한국사회를 살아가려면 싸우며 부셔야 할 것들이 항시적으로 존재한다.
대학교3학년 동문회에서 생긴 일이다.(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하~)
고향 친구들과 재경동문회라는 것을 빌미로 남녀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던 시기였다.
그런 모임은 주로 젊은 청춘남여가 동향이라는 또는 다른꺼리의 핑계로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지는 것 이상아니다…모 친목도모라는 건 겉으로 내세우는 형식적 치장일 뿐..여하간…그때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 또한 멋진 선배들을 만나고 귀여운? 동기, 후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으니..^^
대학3학년 여름즈음, 호기심에 담배를 시작했다.
대학1학년 들어왔을 때 실기실 저쪽 귀퉁이에서 2~3명의 재수삼수언니들이(참고로 우리과는 80명정원에 현역반 재수삼,사수생이 반이었다, 최고령은 32살 아저씨~)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내게 충격과 동시에 모든 의식과 사고의 전환이 된 계기였다.
여자도(“가” 아니다. 조사하나는 엄청 차이가 있다) 담배를 피우는구나.. 그게 과연 가능한건가? 얼마나 순진한 대학1년생이었던지…난 경상도에서도 젤루 보수적이라는 도시 안동에서 올라온 순진무구의 모든면에서 무지한 여성일 뿐이었다.
어찌나 꽉 막혔었던지…그렇게 보고 배웠을 뿐이었다.
대학4년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경험이었고,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는 인공의 자궁이었다.
담배를 배우고 한창 맛을 들여가던 시기.
동문회내에서도 동기친구들과의 모임만 따로 가지던 날이었다.
1차, 2차..술의 취기가 약간씩 몸에 배어있던 지라 난 머릿속으로 계산에 들어갔다.
동기에, 술에, 친분정도에..이 정도의 분위기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해야겠다.
그러고는 양쪽의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베어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말자 바로 앞의 친구(당근 남자지) 왈 “아니!! 어떻게 여자가 담배를 피워?” 그러고는 담배를 뺐어버린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당황해하고는…정신차리고..
“내 건강을 위해서라면 이해하겠다.하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내가 여성이어서 담배를 피워선 안된다면 넌 나쁜 놈이다!” 후자란다. 어이가 없어서 할말이 없었다.
논쟁(쌈이었겠지? 흐흐흐)을 한 5분, 아니 10분정도는 했나보다. 우씨..도저히 말이 먹히지 않는다. 분위기 나빠질까봐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를 따라온 친구녀석이 난 이해하니 바래다 주고싶다…누구랑 같이 움직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다. 울었다.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억울하고..밉고…지는 담배피워도 되고 나는 안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래도 어느정도 지적수준에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관념정도는 깨부실만한 아량?정도는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친구가 너무나도 커다랗고 견고한 벽으로 느껴지면서 난 당황하고 한편으로는 슬펐다…그의 옹졸함에..그의 편협함에…그를 이해시킬 방법을 모르겠기에…
그 사건이 있는 1년인가 후에 그녀석은 정중히 나에게 사과를 했다.
여성학이라는 것도 배우고 나름의 의식을 깨쳐가면서 여성이 담배피는 것이 문제될만한 꺼리가 아니란 걸 알았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거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였다.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둘은 웃을 수 있다.
한국여성이 길거리에서 담배피는 것은 경범죄에 속한다고 한다.
지붕이 없는 곳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건 죄라는데…믿거나 말거나…
웃을 뿐이다.
하지만 웃기만 하기에는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아직도 여전히 잔존한다.
호주에 있을 때 자유로움과 물밀듯이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꼈던 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는 거였다. 그들은 실내에서 담배 피는게 오히려 불법이다. 그리고 여성이 거리에서 담배피는 것이 희귀한 풍경이 아닌지라 누구하나 거들떠 볼일이 아니다. 조그마한 동양여성이어서면 몰라도..^^
하지만… 한국의 중심가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며 돌아다닐 수 있는가?
가능하다. 빰을 내놓고는 말다..ㅋㅋ..모르겠따..혹시 경찰이 잡아가진 않을까?
몇 년전 서울역앞에서 노동자대회 시위가 있었다. 시위인파속에 묻혀 서울의 중심가에서 담배를 베어물었을 때(ㅋㅋ 사실 부끄럽지만 시위나갈때마다 길거리행진때는 꼭 담배를 피웠던거 같다. 그때 아니면 길거리서 어찌 감히? 담배를 피겠는가...흐흠..) 저쪽 어딘가에서 시위를 구경하는 중년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다. 순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담배피다 뺨맞았다는 얘기가 머리를 스쳐갔다…그 아저씨와 좀더 떨어지게 멀리 피해 걸어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왜 이래야하는거지? 언제까지?’
미례씨가 댓글로 한가위 가사노동으로 아주버님께 잔소리?를 들으며 “몇 년동안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그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홍대앞 반경1킬로내에서 통쾌한 풍경은 담배피는 여성들을 가끔 만난다는 것이다.(아직도 1킬로라는 벽이 잔존해있지만...)
대학시절 캠퍼스내 벤치에서 여성은 뒤돌아서 담배를 피웠다. 하~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리고 짜릿함을 느낀다. 그녀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흡연은 취향일 뿐이다.
그런데 취향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 사회는 무언가?
언제까지 여성은 이렇게 억울해야 하는건가? 회사를 다니는 여성에게 담배피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인사고과에 마이너스로 반영된다.
외국계회사에서 마켓팅이라는 잘나가는 부서에서 일하는 유부녀친구,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최고의 상업빌딩(? Star tower)으로 이사가면서 회사에서는 담배도 안핀다..못피는걸꺼다..
그나마 그전 회사에서는 화장실에서라도 피웠는데 그 곳에서는 시선이 아무래도 더 부담스럽단
다. 좀더 권위적이고 좀더 잘 갖추어진 권력앞에서는 여자가 더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한국 여성의 현위치인 것이다. 옘병할...그전 글에서도 썼듯이 최근다녔던 20층되는 울빌딩
에서도 드러내놓고 담배피는 여성은 꼴랑3명였다. 담배피는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으으으...
하지만 이런 불평등한 사건, 벽들로부터 머리썩히면 나만 손해다. 나만 바보된다.
가벼운 위트로 웃어 넘겨야 한다....
나 또한 가족에게는 담배에 대한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었다.(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담배를 끊은지 3년째다) 싸우기 싫어서 말다. 싸움이 하루로 끝나는게 아니라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에 말다.
여성은 일상적인 투사가 되어야 한다.
돌처럼 굳어버린 그들의 머리를 어떻게 깨부술까?
딸들의 반란을 꿈꾼다.
>>사족
ㅠ_______________ㅠ
낼까지 나와야 할 작업이 한둘이 아닌데도 난 아직 이곳에 있구나..어쩔꺼나
또하나...트랩백을 걸었을 때 링크된 글의 제목을 고치면 원본글의 제목, 블로그main 포스트
리스트의 제목도 바뀌었으면~~진보네에 바라는 자그마한 희망~가능하지?^^

그리자놀이
사물
그림자
주체
객체
진짜
가짜
진실
거짓
빛에 의해서 그림자 탄생하다.
그러나 그림자의 근원인 사물이 없다면 그림자 존재가능한가?
동전의 양면...원인과 결과...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
200410020232
>>사족
텍스트는 작업을 시작해보려는 강한의지의 발산으로 슬로건같은거다..허허 별걸 다한다..
...그리고 사진은 뭔가 구체화된 형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엉뚱한 욕심때문에 찾아올린건데...
오른쪽귀퉁이.. 어둠속에서 뭔가 보인다.
안경에 비친 상대방의 그림자이다. 왠지 "그림자놀이"와 어울린다....
사실은 술마시다 꼬장 부리는 장면인데..앞뒤 상황들을 잘라버리니
약간의 흥미로운 장면으로 변신.....쩝...보고싶네..저 인간들이...^^

동시변조:감미로움과 숭고함을 위한 디지털 가상실험
백남준&노만 발라드/2000년/로뎅갤러리
백남준 화집을 뒤적이다 오랜만에 감흥이 밀려온다.
그걸 같이 느껴야 한다.
2000년 그의 개인전이 로뎅갤러리와 호암갤러리 두곳에서 동시에 전시되었다.
백남준은 책에서나 봐오던 작가였다.
한국작가로서 유명세를 탄 유일한 미술가..비디오미술가, 로봇TV.. 그 정도의 기본적
지식과 무심함으로 전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전시장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난 그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설치미술이 주류미술로 자리잡아 입체적 작업에 대한 거부감이라든가 생소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당시 설치미술이란 초기 생성기정도였고
나또한 평면이 아닌 입체, 캔버스와 물감이 아닌 다양한 재료들에 매료되어 붓을 꺽고
새로운 재질들을 찾아 실험하던 때었다. 설치미술이 주류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감은 적중했고
난 지금 그 작품들을 감상하는 입장에만 있으니...씁쓸할 따름이다.
여튼...
설치미술, 그 이전에 비디오미술이 있었고 더 이전에 플럭서스, 아방가르드 미술, 다다이즘의
뒤샹이 있었다. 남자변기를 전시하면서 미술계의 파문을 일으켰고...그 이후 독일의
프랑크프르트에서는 몇명의 작당들이 모여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때려부시는 등의
퍼포먼스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작당들 중에는 백남준이 있었다.
과선후배들이 독일로 공부하러 몰려가는 이유중에 하나가 백남준때문이라면?
많았다..지금도 독일에 수두룩 빡빡...^^
TV정원을 보면서 황홀했다.
미디어의 차가움보다는 빛과 칼라의 움직임이 오히려 포근함을 주었다면?
그랬다. 21세기 미디어의 홍수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노스텔지어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면 난 어쩔수없이 미디어에 길들여진
세속인이고 전체화된 기계속의 초라한 너트가 될지언정...황홀했다.
또 맛볼 수 있다면 간이라도 내놓겠구만..ㅎㅎ
백남준미술관 추진위원회가 국내에서 추진중이라 하니 모...기대해야지..
참!! 가끔 빌딩로비에서 백남준 작품을 볼 기회가 있지만 상시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여서 맥빠질떄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전 삼성동 포스코 빌딩앞을 지나는데 건물안에서 반짝반짝하는 무엇이
내눈에 띈것이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이 되니 빛나는 작품들때문이었다.
황홀경에 한참을 서있었다. 기회되면 저녁무렵 포스코앞을 또 서성이고 싶네...^^
글 맨아래는 백남준의 작업실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슴돠~

3원소/2000/로뎅갤러리

3원소
밤이 되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포스코빌딩에 설치된 작품은 요거...큰 그림이 엄따..우씨..
비디오깔데기

프로젝션 스크린/2000/로뎅갤러리
<백남준과 멀티미디어>
정용도/백남준미술관 건립추진팀 학예연구원
들어가는 말
백남준으로 인해 20세기 세계 미술의 역사에서 비디오와 TV가 예술작품의 매체로 편입되었고, 예술작품 창조의 중요한 도구이자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멀티미디어 아트, 뉴미디어 아트 논의의 시발점에 언제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존재한다.
I. 예술작품의 새로운 조건들
백남준은 동경대학교에서 미학과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그의 예술적 경향이 음악에서 시각예술로 변화하는 것은 1958년 콜론(Cologne) 대학에서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고 나서 시작되었다.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무조음악의 창시자 쉔베르그(Arnlold Shoenberg)의 제자인 존 케이지는 1950년대에 동양철학의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우연성(chance; 찰나)의 개념을 그의 음악의 대주제로 도입하였다. 그는 선을 그의 음악이론을 정립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는데, 그에게 음악은 어떤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지워버리는 불교적인 그런 것이 되었다. 결국 존 케이지는 소음일지라도 모든 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백남준이 그의 비디오 작품에서 TV속의 이미지를 조합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즉 백남준 작품의 영상 이미지들은 전통미술에서 볼 수 있는 완성된(defined) 이미지 혹은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영상 작품들의 속성인 완결된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주는 결정적인 인상이 아니라 계속 진행적인 가변적 상황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어떤 고정된 강한 인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과 과정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케이지의 우연성 개념이 백남준에게는 이미지의 우연성과 이미지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백남준 작품의 기반이 되는 미학적 배경과 기술적 발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현대미술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은 3가지 점에서 현대미술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일상 오브제의 도입을 통해 그동안의 예술이 향유하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19세기까지의 전통 미술이 대부분 사회적 권력 계층의 고급 취미(taste)를 대변하는 미술이었다면 뒤샹의 미술은 그런 고급 취미를 거부하며 일반 민중의 일상적 삶에 예술적 상징성과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found object(남성소변기, 부삽, 자전거 바퀴 등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용도 폐기된 물건들)는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내포하는 상징적 지표이기도 하다. 이런 뒤샹의 시도 이후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우리 일반인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의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기술매체는 기술매체들은 20세기 이전의 예술처럼 우리의 존재를 숨막히게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기술은 우리 인간들에게 마치 신화처럼 군림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분리되어 이용되어왔던 매체들이 하나의 매체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이것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용어는 멀티미디어다. 멀티미디어는 그동안 각각 단일 매체에 의해 재현되어(represent) 왔던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의 세 요소가 하드디스크나 다른 기술매체를 통해 하나의 통합된 형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통합과정을 통해 기술은 다시 우리 인간의 삶 속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기계적인 신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아날로그와 기술적인 코드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과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멀티미디어의 범주에서 볼 때 다른 문제가 된다. 백남준의 작품은 멀티미디어 작품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작품이고, 그는 멀티미디어 아트를 통해 이 세계가 예술적으로 하나의 커뮤니티로 재탄생할 수 있는 그런 꿈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의 오브제 작품은 크게 3가지 범주로 묶어볼 수 있다. 우선 초기 60년대 작품에서 그는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60년대 TV-Clock(1963), Moon is the Oldest TV(1965) 등의 작품들에서 백남준은 그동안 미술의 대주제였던 공간적인 구성(composition)의 문제를 시간성(temporality)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즉 그는 이런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대주제를 시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TV-Buddha(1973) 등의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이미지의 문제를 다룬다. 카메라에 의해 TV 속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부처와 TV 속의 부처 이미지와는 어떤 관계가 설정된다. 그 관계는 부처의 가르침 “空卽是色 色卽是空”의 논리를 응용한다면 이미지의 비존재성과 물리적인(physical) 실제 부처는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이 두 존재 사이에 남는 것은 결국 두 존재가 지향하는 의식의 장(field)일 뿐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삶의 장소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 - 위계적인 질서는 없고 단지 뒤섞여 있을 뿐인 - 의 복합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케이지의 신념처럼 그리고 뒤샹(Marcel Duchamp)의 모든 물건들이 예술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작가적인 행위처럼 백남준에게도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상황 자체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70-80년대 TV 위에 화초를 놓고 그것을 카메라로 비추어 TV화면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한 Real Plant/Live Plant(1978), 한대의 TV에 물고기 어항을 만들고 그 어항을 카메라로 비추어 옆에 놓여있는 TV에 이미지를 나타나게 한 Real Fish/Live Fish(1982) 등의 작품은 TV의 탄생과 관련된 정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보는 예술작품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잃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회화 조각 같은 예술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 이런 ’80년대 작품에서 백남준이 다루는 주제는 모순을 내포한 듯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현대미술의 딜레마인 경제적 가치의 문제와 더불어 의미부여의 가치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가 부여되는 정보는 경제적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이고 다양한 해석과 응용이 가능한 정보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백남준이 그의 작품을 통해 제기한 시간, 이미지, 정보 이 세 가지 화두는 현대 멀티미디어 아트에서 작품의 성격을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틀(framework)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그는 우리에게 앞으로의 미술이 그동안 인간이 창조한 문명의 모든 가치들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화두이자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현재의 우리 삶과 관련하여 더욱 시대를 통찰하고 또한 미래를 관통하는 작품들은 1973년의 Global Groove, 1984년의 Good Morning, Mr. Orwell 등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되었던 영상작품들이다. 그의 전자고속도로 개념을 이처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은 현재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이미지와 사운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상황을 예감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가상현실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상작품은 예술적인 창조물을 물질적인 매체가 아니라 물질적인 기반을 가지지 않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 전달한다. 가상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그것이 물질적인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언어적으로 모순적인 어의(oxymoron)를 가지고 있다. 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실제는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상현실은 가상적인 것이 우리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현실과 전혀 다름없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현실을 모방한 이미지는 가상현실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상현실은 예술작품이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인 것처럼 예술적 창조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글에서 사진의 발명이후 예술작품의 고유성(authenticity)이 사라지고 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성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라(aura)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특히 사진으로 인해 전통적인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던 제의적인 가치(the ritual value)로부터 전시가치(the exhibition value)로 중요성이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상황을 종합해주는 개념을 여론의 형성이 가능해지는 ‘정치성’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매체의 발명은 새로운 개념의 탄생을 가져오거나, 그동안 존재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과의 의미연관적인 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해석될 수 없었던 것들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요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백남준이 창조한 작품들이 우리의 문화에 새로운 미학적 개념들이 가능하게 하고 또한 인간의 미래를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백남준의 오브제 작품, 영상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체계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II. 백남준미술관과 뉴미디어 아트의 예술적 비전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미술관이 설립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나 일생을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예술적 창조성을 끊임없이 발휘해 왔던 한 작가의 예술적 오디세이를 자신의 고향인 한국 땅에서 정리한다는 면에서 예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남준은 1932년 일제 식민지의 한국인으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주요 무대로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시작했고 현재 전 세계 미술사 서적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작가가 되었다. 백남준의 예술적 여정의 특성은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항해로 자신의 개별적인 인간적인 가치들을, 즉 한국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특성을 예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의 언어로 변화시키고 또한 자기 개인의 생각들을 보편적인 예술언어로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그런 것이었다.
백남준의 예술작품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인식론적 지평을 끊임없이 넓히는 그런 작업이었다면, 그가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한 행운이다. 언어와 사고의 일치라는 다분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특히 그의 모국어가 한국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통해 세계의 예술적 언어를 우리 한국의 시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술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 속에서 보고 듣는 수많은 대상들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문화적 상식을 터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이 시각문화의 지평과 개념을 변화시키고 또한 넓혀놓았듯이 엄밀한 의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백남준미술관 설립은 우리 한국 미술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미술관이 단지 그의 주요 작품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수동적 의미의 미술관(Mausoleum)이 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백남준미술관이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로서 그리고 새로운 뉴미디어 아트의 창조가 가능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가들을 위한 전문 예술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장소가 된다면 이는 한국 미술의 미래를 위한 최고의 가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미술관이 미술관의 기능은 물론 새로운 예술작품 창조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첨예하게 창조성의 본질과 예술적 비전을 실험하고 또 실현하고 있는 미국의 “MIT 미디어 랩”, 독일의 “ZKM” 같은 전시와 예술교육,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센터의 발전과정과 경험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나가는 말
백남준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뉴미디어 아트의 연구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미술관의 설립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전문화예술 2003년 3•4월호>

TV시계/2000/로뎅갤러리
백남준 온라인 전시장~
http://www.hoammuseum.org/exhibition/paik2/exb/laser/index.html
사족
예술가의 작업실_백남준
대학재학시 작업실도 모 과히 이곳 풍경과 다르지 않아서 너무나 정겹다.
작업실=공구실. ㅋㅋㅋ
예술이나 회화제작과정에 대해 환상은 버려라. 두들기고, 조이고, 붙이고...
이런곳에서 물론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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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 앞에 있는데 난 요기... 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 와 있는데 세상이 아직도 쪼기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행복지수 이빠이 올라갈지 누가 알겠어요? ㅋㅋ 엇... 이빠이... 이거 우리 말이 아니군... 쩝...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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