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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30
    남성, 그들만의 세계를 엿보다(2)
    미갱
  2. 2004/09/30
    2002년 광주비엔날레 감상기(2)
    미갱
  3. 2004/09/29
    ILLUSION_한혜연
    미갱
  4. 2004/09/29
    붉은방_마티스 작
    미갱
  5. 2004/09/28
    The Past, the Present, the Future_오노레 도미에(2)
    미갱
  6. 2004/09/26
    새삼 가족이 조아~(1)
    미갱
  7. 2004/09/23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 작
    미갱
  8. 2004/09/23
    새벽녁 택시기사 아저씨는...(1)
    미갱
  9. 2004/09/22
    우왕~~(2)
    미갱
  10. 2004/09/22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_Cyndy Sherman
    미갱

남성, 그들만의 세계를 엿보다

남성, 그들만의 세계를 엿보다

 

한가위 관련한 가사노동사례들을 보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서 웃음이 빙그레…
나이들수록 남성은 여성호르몬이, 여성에겐 남성호르몬의 분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사님두분과 상품기획팀장과 술한잔 걸치던 날..
술을 마시게 된 계기는 상기팀과 울팀의 불미스런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소프트웨어그룹장이신 이이사님이 나와 상기팀장을 위한 화해?의 장을 마련한거였다.(고마워요~이사님~)
이유가 어쨌건 그 술자리는 나에게 그들만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었던 아주아주 잼나는 기회였다. 이사님중 한분은 대학교수님이신데 일년동안의 안식년을 울회사에서 보내고 계신 아주 능력좋은? 교수님이셨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혼이었고 어쩌다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대한 토로로 대화의 주제가 번져가고 있었다. 교수님이 그러셨다. “내 이상형은 절대 지금의 마누라가 아니야!” 나이가 들수록 사모님은 드세지고 자신은 점점 여성화되고 있다고…자기는 여자갔다고…싸움은 언제나 자신의 패배로 돌아오고 2년동안 섹스한번 안하셨다고 조용히 말씀하신다…허? 내가 있다는걸 까먹으신건가? 아님 내가 넘 편하셨던걸까? 난 모른척하면서 속으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수야 없지..귀를 쫑긋하며 술잔을 들고 술만 마시는 척하고 있었다. ㅎㅎ
후회하고 계시다구..젊은 시절 구미공단의 연구소에서 일했고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친걸 후회하신다..그게 뭐냐면..구미공단 여공(이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식의 표현으로 얘기가진행된지라..흐흠..)중에는 아주 예쁘고 참한 여자들이 많았고 그들과의 섬씽도 가끔 있어서 맘만 먹으면 결혼까지 골인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구. 그 좋은 기회를 놓친걸 후회한다구..그게 무슨 소리냐면 여공은 대부분 고등학교 갓 졸업하구 사회로 진출한 10대후반의 꽃다운 청춘이었으며 얼굴들도 예쁘기 그지 없었고 그렇다면 대학졸업자이며 연구소직원인 자신과의 결혼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는 것이고 그런 여성들은 자신을 하늘과 같이 떠받들어 줄꺼라는 환상을 갖고 계신 거였다. 쉰이 다 되어가시는 교수님의 여성에 대한 환상은 자신의 말을 신처럼 떠받들어 주고 자신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여성이었던 거였다. 그런 여성이 있을까마는…그래서 교수님이 더 측은하게 보였다. 아직도 그런 허황한? 꿈을 꾸고 계시다니…정신차리세요! 한마디 던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고마웠다.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는 것에….^^

사실 난 그 자리에서 몇마디도 못하고 듣기만 하는 처지였다.
왜냐…남성들은 얘기의 주제를 자신이 잡지 못하면 상대방에 뒤쳐진다는 이상한 대화의 권력욕?에 대한 강박이 존재하는지 사적인 자리에서도 어떻게든 상대방보다 더 많이 떠든다. 그렇지 않으면 팽당한다. 물론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여성 또한 비슷한 경우가 있지만 30년이상 남성과의 관계에서 느끼며 얻은 결론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이거였다. 그래서 더더욱 남성들과의 자리에서는 의식적으로 대화의 주제를 이끌어가려 노력하거나 아님 어떻게든 대화에서 제외되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을 떄가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상기팀장 왈 대뜸 “마르크스 이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오호라…회사동료들과의 마르크스론이라…혹시나 해서 질문 “지지정당은 어딤까?” “열우당이었는데 지금은 열우당보다 민주노동당이란다. 그래서 또 질문했지 “ 진성당원이시겠네요?” “아뇨! 당원은 아직…” 모 그러고는 또 떠든다. 남의 말은 별로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하는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모 이런 식이다. 마르크스이론과 지지정당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져 그를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에게 마르크스이론은 자신도 한때는 이런 공부했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과시하는 거다..그런 식으로 느껴졌다…그에게 사회과학 이론은 과시용이지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할 만한 이론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그런 인간 젤 싫어한다. 그냥 후까시잡느라 화려한 배경처럼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보고 싶은 모 그런 심보. 먹물들의 자기과시용 지식일 뿐 사회구조적 모순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의지는 별로 엄따. 나혼자 잘먹고 잘살면 되니까… 넘 부정적으로 그를 바라보는건지 몰라도 잠깐동안이나마 느껴지는 그의 모습은 그런거같다. 그런 인간 정말 싫어한다…지금은 회사에서 팀장에서 그룹장으로 승급했는데 목의 기부스가 장난아니라고 한다..크흐흐 어디가겠어…
여튼 그날은 최고였다. 교수님과 상기팀장은 주거니 받거니 둘만 떠든다. 가끔 그룹장이신 이이사님은 맞장구 쳐주고 대충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난 할말이 없다. 끼어들 분위기도 들수도 엄따. 왜? 내 얘긴 안들으니까..또 공감갈만한 주제가 별로 없어서였다. 그러니 그들의 주제에 끼어들지도 못하겠다. 그래서 소리쳤지. 그건 남성들의 역사임돠! 여성들에게는 기회도 없었어요~ 술취했었나보다…그 자리가 넘 갑갑하니까..나두 듣고만 있기에는 그 인간들이 정말 미웠으니까…지들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자신들의 지식을 과시, 치장하냔 말야! 그게 잼있었던지 교수님이 꺼내든 주제가 여성들의 놀이문화와 소통방식에 대한 거였다.
여자들은 남편 회사 보내놓고 자신들만의 수다문화 또는 끼리문화가 있으니 나이들어서도 친구들과 만나 외롭지 않게 산단다. 그런데 중년의 남성은 회사나 경제활동을 그만두게 되면 그때부터 할일이 없어진단다. 하물며 친구들과 만나 산행을 해도 대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 전에서부터 내려오기까지 했던 대화내용이 딱 한마디란다. 아무말도 안하고 산을 다 내려와서는 “잘가라~” 허걱!
충격이었다. 사적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의 비극이었다.
술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떠들어도 자신의 개인적 주제를 가지고 얘기는 거의 하지 못한다고…주로 역사나 사회, 정치, 경제가 주제다. 그건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과시용이다.
나누기 보다는 주로 자신의 견해만 얘기한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나누기보다는 일방적 떠들기 이상 아니다…넘 심한가?…
40대이상의 중년남성들을 생각해보면 측은함이 보인다.
소외된건 여성이라는 생각만 하다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건 최근 다닌 회사의 이이사님을 보면서 느낀거였다.
사오정이라는 사회현상이 보여주듯 그들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적관계에서도 팽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팽당하지 않기 위해 엉덩이 붙이기도 힘들만큼 많은 일들을 소화해내는 그들에게 일없는 자신은 앙코없는 찐빵이 되는거다.
아침9시에 출근해서 밤12시이전에 가면 다행이고 새벽2시3시에 집으로 들어가는 그들은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회사에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스트레스는 약간의 취미생활에(경비행기 운전이 취미셨다..바쁘지 않을땐 한달에 두번정도는 비행하러 가신다고..), 술에, 노래방에, 가끔 단란주점에서 해결하고 아주아주 가끔 2차도 나간다고(요건 여자개발자들에게 살짝 들은 얘기)..
여튼 가족과의 관계라곤 있을 수가 없다. 제발 자식들과 일주일에 한시간만이라도 보내셔야 나이들어서 자식들에게 왕따당하지 않으십니다~라고 해봐야 방법을 모르셔서 못하시겠단다. 그럴맘이 별로 없다…그러다 나이들어 마누라에 자식에 퇴직금 던져주고 나면 힘없고 외로운 중년이 되어있을꺼라는 미래의 자신모습이 보이면서도…그들은 한국산업의 중추역할을 해왔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 어느날 달리기를 멈춤과 동시에 모~~든걸 멈추게 되는 외로운 runner처럼 보였다. 측은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작년 내내 해왔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모..좀 다른 얘기지만…화성남자 금성여자에는 잼나는 내용이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남녀 반응에 대한거다.
남성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여성이 왜 그러느냐 재촉하거나 들추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더더욱 자신만의 동굴 깊숙이 빠져 든단다. 반면 여성은 나누기를 원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나누고 공유하면서 차츰차츰 해결의 방향을 찾고 마음을 다독인단다.
재밌다.

아쉬운 건 남성들이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지지 말고 타인과 나누는걸 배워 좀더 풍성한 노후에 대비하는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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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광주비엔날레 감상기

2002년 지희와 2박3일을 기약하며 광주로 향했다.

묵어있는 미갱의 싸이에서 다시 퍼왔다.^^고기는 폐허가 된 사막같다..ㅋㅋㅋ

올해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광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하면서...

 

 

둘째날, 비엔날레를 보다

Project1 : 멈춤 PAUSE

Project2 : 집행유예 Stay of Execution

Project3 : 저기, 한국의 이산지대 THERE, Sites of Korean Diaspora

Project4 : 접속 Connection

4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다.

 

“길을 찾기 위해 길을 잃는다"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성완경씨가 프로젝트1의 주제 <멈춤PAUSE止>에 대해 가장 간략하고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국제미술이벤트, 또는 관성에 대한 비판적성찰과 대안모색에 대한 긴급한 환기를 위해 이번 주제를 채택했다고 한다.

 

PAUSE 멈_춤 止
Pause keeps you going on. 멈출 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다.
멈_춤은 삶에 대한 불가결한 리듬이다. 멈_춤은 우리 삶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특히 동양문화권의 전통속에서 멈_춤은 오묘한 깊이를 갖는 철학적 화두이자 생활정서의 기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상형글자 _止_는단순한 쉼이나 중단이 아니라 근원에 더 관계된다. 사물의 본질에 회귀하기 위한 추스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성완경 <우리는 멈_춤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중에서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길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까?
새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지혜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큐레이터는 말한다.
그렇다면 새 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일상의 습관적 지속에 제동을 걸고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속도, 다른 현실을 꿈꾸기 위해서 란다. 그것이 가파른 벼랑과 같은 현실이더래도 새로운 사상, 새로운 제도, 새로운 프로세스를 위해서…

넘 추상적이다.

상상계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란다.
프로젝트2와 4는 그러한 주제를 구체화된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젝트2<집행유예>는 518자유공원내 법정, 영창안에 회화, 사진, 영상 등의 설치물로 제작된 작품들로 꾸려져 있었다.
80년 5월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아프게 담긴 518공원이라는 공간안에 주제와 관련된 작품을 설치함으로 주제에 대한 관람객들의 감동을 배가 시키고 역사적의미를 되살린다는 의도가 있는 듯했고 또한 훌륭한 작품들이었다고 볼수 없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잊혀져 가는 버려진 공간을 역사적 공간으로 환기시켰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4<접속>은 도심철도 폐선부지를 새롭게 재조명해내는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려는 목적으로 미술작가들 보다는 건축학과 학생들의 공동작품이나 현업건축가들의 대안적 공간제시물들로 꾸려져 있었다.
도시에 대한 상상, 근대 유적의 보존, 대안적이고 유연한 프로세트로서의 도시 행정, 참여성에 의미를 둔 프로젝트로 지역과 공동체의 의미를 묻고, 지역사회와 도시의 실질적 변화를 위한 유연하고 문화적이며 창조적인 행정과정을 촉진하는 일 등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현실적 힘을 지니는 진정성이 될까?
예술이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수 있는걸까?
그것이 실현가능한 것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는 걸까?

예술이 사회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이 예술 자체로만 얘기되는 작가들을 분명 혐오하지만 예술의 사회참여만이 거대담론으로 얘기되어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형식과 내용.
이건 창작물 제작 시 두 가지를 적절히 균형을 잡고 가져가야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용만을 강조한다면 그건 말뿐인 초라한 생산물이 되는 것이고, 형식에만 방점이 찍힌 작품은 화려한 외양의 껍데기만을 지닌 깡통이 되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하나를 소개할까한다.

모든면이 거울로 구성된 육면체 설치작으로 거울위로 영상과 음악이 흐른다.

그 방을 들어선 순간 끝없이 떨어지는 심연속으로 빠져드는 황홀감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상상해보라. 발밑의 거울은 반복과 반복으로 겹쳐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고 고개를 들면

인간의 내장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영상이 위에서 아래서 떄로는 사방체로...

푸후...지금도 어지럽다....관객이 즉각적 반응을 일으키는 설치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안에

관객이 작품과 상호교감하며 존재하게 유도하는 발상은 설치작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이다.


모토히코 오다니

9번째 방/2002년

 

모든 작품을 온라인상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요기서..

http://www.kwangjubiennale.org/www2002/05_pds/05_f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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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_한혜연


 

한때"ILLUSION"이라는 단어에 한참 얽매어 있었다.
일단 단어의 어감이 넘 좋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이것 말고도 몇개있는데..
empty(이걸 젤루 좋아하지 running on empty 요런 조합도 조아~), Tides turning,

변혁, 투르기....모 또 있나?...

"ILLUSION"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border) 또는 차이(difference)다.
이런 생각을 연상하게 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그건 <트윈픽스>의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2001년작<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였다.
이 영화를 본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 한참 그 생각들이 나를 뒤덮고 있었다.
<매트릭스>는 장자의 나비론을 떠올리게 하고, 환상으로 포장하고 있는 현실이론체계를
비판하고..."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와 차이가 모호해지고...

모 이런 생각들은 풀리지 않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어 있고
얼개지어져 있다.

<일루젼 ILLUSION> .이 만화의 작가는 "ILLUSION"의 의미를 고민하고 그와 연관지어
스토리를 쏟아낸다.
몇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의 "The Heart"이다.
인형이 자신에게 생명과 사랑을 불어넣어준 주인을 위해 살인을 한다는...
인형의 모델이었던 여자가 주인공과 마지막 대면하면서 짓는
은근한 미소는 살인자가 정말 인형이었던가하는 의심을 품게 할정도로 반전을
주는 모티브로 이야기의 전체구조를 다시 생각하게하고 진실이 무엇인지...머리속을

제로로 만들어버리는..그러면서 다시 구축하게 하여 구조화해내는...모든것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흑과 백으로 규정지어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이런 방식은 TV시리즈<엑스파일>에서 자주 사용하는 형식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여운을 남기며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하는 것인데 이런 방식은 잘 짜여진
플롯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이야기 방식이다.
린치의 영화와 ,<엑스파일>,<일루젼 ILLUSION>만화까지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창작물은 흔하지 않다.

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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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방_마티스 작



 

Henri Emile Benoit Matisse

red-studio

 

방을 꾸미고 났더니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마티스그림이 떠올라 띄워보았다~

마티스에 대한 설명은 네이버 지식검색이...

그런데 왜 붉은방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생각좀 해봐야 할 듯...흐흠...

 

마티스
Henri Emile Benoit Matisse

스무 살이 넘도록 자신의 천부적 자질을 깨닫지 못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있다. 마티스 역시 그런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유년시절과 청년기를 통해 그는 어떤 형태의 예술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는 1869년 12월 31일 밤 9시 북부 프랑스 르카토캉브레지의 외가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지냈다. 앙리 마르탱 고등학교 시절 그림에 소질을 보였는지는 몰라도 마티스가 미술사가 피에르 쿠르디옹에게 1941년에 토로한 바에 따르면, "그 당시에는 그림이 뭔지도 모르고"그렸다고 한다. 법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간 마티스는 수업을 청강하고 규정된 변호사 시험을 치러 합격한 뒤 변호사 자격증을 받고 1899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이트르 드리외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근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률사무소를 잠시 그만두어야 했다. 마티스는 회복기를 보앵에서 보냈다. 그때 마티스는 어머니가 건네준 물감통을 들고 가서 물방앗간과 마을 어귀의 경치를 담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891년 이제는 앞날을 결정해야 했다.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그는 법률을 포기하고 파리로 가서 에콜 데 보자르에 등록하였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마티스가 주물로 된 고대 조각품을 그리고 있을 때, 학생들의 작품을 검사하고 있던 귀스타브 모로의 주의를 끌게 되어 1895년부터 모로의 화실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모로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게 된 이 시기부터 마티스는 확고부동한 정신적 물질적 안정과 여러 재능있는 젊은 화가들을 만나게 되고 위대한 화가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마티스는 뛰어난 직관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본능적인 충동이나 영감의 원천을 흐려 버리지 않으면서 객관적인 사물을 구상화했다. 그는 부단히 자기의 창작과정을 밝혀나갔으며 자기 예술의 원천, 방법,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비범한 지성을 동원하였다. 마티스는 "예술가는 최선의 자아를 오직 그림 속에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비극일 따름이다. 작가가 분석하고 개발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내용출처 : [인터넷] http://members.tripod.lycos.co.kr/randi/main-fram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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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t, the Present, the Future_오노레 도미에


The Past, the Present, the Future

Daumier, Honore
Plate 349, La Caricature, no. 166, 9 January 1834
Lithograph on heavy white paper; first state of two
21.4 x 19.6 cm
Musee d'Art et d'Histoire, Saint-Denis

 

도미에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긴건 몇년전 태권이를 통해서였다.

미학과 출신의 그친구는 지금 <십자군 이야기_김태 작>라는 역사풍자만화로

유명해진 놈이다.

한때는 둘이서 가을이면 왠만하다는 전시는 같이 나들이하여 그림에 대한 서로의

평을 나눠가며 즐길만큼 문화적 코드가 잘 맞는 친구중의 하나였다. 

여튼 시사만화에 뜻을 둔 그친구가 좋아하는 작가가 도미에였고 그 친구의 영향으로

소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오노레 도미에>를 통해 그의 풍자만화, 풍자화, 캐리커쳐,

판화 등을 좀더 심도있게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시사만화하면 아직도 박재동이다.

박재동의 만화를 보기위해 한겨레를 구독한다던 친구도 있었을만큼 한때 박재동의

시사만화는 그 시대를 읽어내는 하나의 잣대가 될만큼 영향력이 대단했었지.

애니메이션으로 외도한 이후 여전히 날카로운 사회적 풍자와 비판의식은 남아있지만

매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건 아쉬움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가 압축된 언어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시사만화는 만화의 시로 비견된다.

한컷의 이미지와 상징,은유로 함축된 텍스트는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읽어내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도미에는 판화로 유명하지만 19세기 정치와 생활풍자만화로도 유명한 작가이다.

위의 그림은 1834년에 제작된 석판화로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으로

배모양 왕의 얼굴로 모든 변화를 표현한 것이었다.

탐욕스럽고 오만해보이는 왕의 캐리커쳐는 과거에는 부드러웠으나

현재는 권위주의적이고 미래는 더욱 굳어질 것이다라는 중의적 의미로

풍자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기회되면 좀 더 많은 캐리커쳐와 풍자화를 올려보겠다~

 

YES24 리뷰

오노레 도미에 :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박홍규/소나무출판사

 

이상구 flypaper@yes24.com

시사 만화가이자 사실주의 화가로도 유명한 오노레 도미에의 평전이 미술을 향한 저자의 세 번째 출구. 다소 낯설긴 하지만 사각의 컷에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던 인간 도미에와 그가 만들어 냈던 근대 프랑스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오노레 도미에는 1808년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나 1816년 파리로 온 후 1879년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파리에서의 생활을 계속한다. 7월 혁명, 제2공화정, 파리꼬뮨 등 프랑스 근대사를 뒤흔들었던 격동의 세기를 한 몸으로 관통해 온 그에게 파리 부르조아의 흥청거림과 퇴폐적인 방탕함은 신문만평을 통한 날카로운 비수의 탄생을 짊어지게 한다.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샹플뢰리는 "만화란 평소에는 고양이처럼 잠들었다가 아무리 작은 정치적 동요에도 반응하여 그 푸른 눈을 번쩍 뜬다"고 말했다. 일본 현대만화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데츠카 오사무는 "만화는 어디까지나 아이러니와 풍자, 경고, 비판이 없으면 안된다. 그것이 없는 것은 그냥 그림이지 만화가 아니다"라고 같은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도미에의 작품은 만화다운 만화, 만화의 본질에 충실한 본격 만화의 중심축에 위치한다. 19세기의 격동 속에 움츠린 수많은 고양이 중에서도 가장 멀리 튀고 예민하게 반응한 고양이였으며, 그림이 어떻게 만화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오자무의 견해와 일치한 활동성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도미에의 만화는 단순한 권력비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주체. 도미에의 사각의 흰 종이에서 제 목소리를 냈던 주체는 지식인도, 현자도, 초인도 아닌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을 몸으로 느끼며 고통받아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서민들이 우리가 이 시대의 중심임을 외칠 수 있도록 프레임을 빌려 주었던 것이다.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오노레 도미에』는 도미에의 탄생에서부터 성장기인 10대를 제외하고 6개장으로 분할해, 20대부터 60대까지를 10년의 단위로 기술한다. 저자는 그 시대를 20대의 정치 풍자 만화, 30대의 풍속 풍자 만화, 40대의 혁명화, 50대의 민중화, 60대의 전쟁 풍자 만화로 구분한다. 시대적인 격변과 함께 반응하는 개인의 적나라한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책의 말미를 빌어 도미에 이전과 이후의 만화와 풍자화의 역사를 함께 살핀다. 도미에 이전은 <만화, 그 반역의 역사>라는 부제를 할당하고, 도미에 이후는 <위대한 만화가이자 공화주의자인 오노레도미에 잠들다>라는 다소 제의적인 경건함을 동원해 시사 풍자 만화의 아버지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한 역사를 서술한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책은 소위 전문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가를 위해 쓰지도 않았으며, 도미에가 자신의 만화를 민중을 위해 그렸듯이 나도 민중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도미에나 그 만화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은 일체 생략하고 아주 알기 쉽게 쓰고자 노력했다."

책을 엮는 이들의 대부분이 통과의례처럼 사용하는 눈높이 작업에 대한 발언이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도미에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애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즘을 배제하고 만화가로서 한 시대를 살아온 예술사의 증인으로서, 도미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책. 제 눈으로 삶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보수와 진부한 권위를 향한 작지만 힘찬 발언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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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가족이 조아~

흐흠...고향내려온지 첫째날..

한참 리듬이 깨진 상태라 새벽에 늦게까지 투니버스의 "은하철도999(TV장편용)"보고

20세기소년 만화읽다...조카가 뒤척이는 거에 잠깐 깨다 눈붙이다..그러다가 오전 조카가

아침일찍부터(오전7시) 파워레인저 본다고 TV를 켠다.

참고로 조카방에서 잤지모..내방이 있을리가..ㅋㅋ

그래서 조용한 방으로 이동..그러다 눈을 떴더니 오후12시가 조금넘은 20분깨...흐흐..

오랜만에 유부녀 친구와의 약속도 담날로 Cancel하고....ㅎㅎ

어머님과 언니가 제사 준비에 분주하다.

역시나 내 역할은 그냥 조카들과 놀아주는 것...그건 정말 잘한다^^

가끔 나의 정신연령이 아무래도 10대인것 같아 걱정스러울 때도...회사에서 차장입네, 팀장입네 무게 잡고 있는 내 모습을 조카들은 절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나 또한 가끔 그게 내모습이었을까 환상은 아니었을까 의문을 갖기도 한다. AB형의 전형이다. 현실과 상상계를 잘 구분못한다.ㅋㅋ

 

오랫만에 봤으니 조카들을 현혹시킬 뭔가를 해야한다.

약간의 지출이 필요한 때...흐흐

문구점가자고 도착한 늦은 어제저녁부터 조르던 초등학교1년생과 그의 라이벌관계인 6살 동생, 놀러온 초등생친구까지 대동해서 문구점으로 갔다.

초등생둘은 500원짜리 화약총과 300원짜리 화약 하나씩, 6살짜리는 거금 5000원짜리 다발총을 집어들고 문구점을 룰루랄라~나온다..역시 남자놈들이긴 하다.^^;;

입이 심심하니 군것질꺼리까지 풀서비스로 제공..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ps2겜에, 딱지치기에, 컴퓨터겜에, TV만화에...기타등등 하루 온종일 오락꺼리로 정신없이 보냈다.

간혹 물질적인 것과 친구처럼 놀아주기만 하니 그들에게 난 권위라곤 전혀 부리기 힘든 존재.

날 아주 우습게 본다. 물질의 힘은 그닥 오래가지 않으니..ㅋㅋ 자업자득..

그래도 난 그게 젤루 좋다~

하루가 어찌 이리 짧은 건지~

조카가 하나더 있다.

이제겨우 8개월의 갓난쟁이.

어버버버하는게 웃긴다.

어쩌다 두발걸음 떼는걸 어제 우연히 목도했는데 언니는 난리도 아니다.^^;;

자랑자랑...어찌나 똑똑하다고 칭찬과 자랑이 심한건지..

자식자랑 우리언니도 그렇게 심하게 하게 될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동생커플까지 서울에서 당도하니 제사 거행~

간단하게 치룬 후 삥둘러 앉았다. 밥상이 큰듯했지만 작아보인다. 비좁아서 조카들하고 

자리다툼까지 해야 할 지경. 허허...

동생친구는 다시 고향앞으로 보내고...다시 우리가족까리..늦게 도착한 여동생은 갓난쟁이가

넘 이뿐지 연신 "천사가 따로 없네~넘 이뿌다이뿌나!!"옆에서 엄마는 막내의 기행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시고..형부는 언니에 이어 자식자랑2탄 시작.

"난 첨에 쟤가(6살짜리 조카) 천재인줄 알았어. 어느날 아빠 개미의 종류 대기 놀이하자 

그러길래 야 이놈이 천재구나 가르쳐주지도 않은 개미의 종류까지 알다니..."

참고로 형부와 언니는 둘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덜..그러는사이 조카가 그러드래

"파란개미! 노란개미...아빠는?"그 이후 상황은 안봐도 비됴.

형부를 비롯하여 할머니, 여동생, 나 그자리에서 바닥에 쓰러졌다. 푸하하하하

 

오늘하루를 이렇게 보냈다.

어찌 이리도 잼나는지? 저놈들 천천히 자라주었으면...애들의 성장은 어찌나 빠른지?

벌써 오빠의 조카인 초등1학년 녀석은 내가 목욕시켜주기가 힘들어질 정도가 되는 듯..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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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 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그가 말하는 것은 이중으로 몰아가면서 칼리그람(동어반복)은 가장 완벽한 덮을 설치한다.

이중의 통로에 의해서 그것은 말만이나 그림만으로 불가능한 포획을 확실하게 성공할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공간속에서 서체가 부릴 수 있는 꾀들을 통해 말들에 그들이 지시하는

대상의 모습을 또렷하게 부여함으로써 본래 말들이 결코 이길 수가 없는 그 완간항 부재를 쫓아낸다.

종이위에 교묘하게 배치됨으로써, 기호들은 그것들이 그리는 테두리를 통해서, 지면의 빈공간을

자르며 들어선 그것들의 덩어리를 통해서, 밖으로부터, 그들이 말하는 사물 자체를 부른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여 시각적 형태가 글쓰기를 통해 움푹하게 새겨지는바, 그 안으로부터

그것을 파며 만드는 단어들은 모호하고 이름없는 부동의 현존을 내쫓으면서 그것에 세례명을 주고 그덜을 담론들의 우주안에 가두는 의미화의 망을 솟아나게 한다.

이중의 덫, 빠져나달 수 없는 함정이다.

그러니 이제 새들의 비상, 꽃들의 변화하는 모양,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것들이 어디로

날아갈 수 있단 말인가?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풀린 칼리그람의 조각들로 이뤄진 것같다.

이전의 배치로 돌아가는 듯이 보임으로써, 그것은 칼리그람의 세 기능을 복구시키는데

그러나 그것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그래서 언어와 그림의 모든 전통적 관계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옛날의 표의문자를 복원하기 위해 형상을 ㅣㅁ범했던 텍스트가 여기서는 제자리를

되찾고 있다. 그것은 자기의 자연스러운 자리 밑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림의 지주 노릇을 하는 자리, 그림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설명하고, 그것을 분해하여,

일련의 텍스트들과 책의 페이지들 안에 그것을 끼워넣는 자리로.

그것은 다시 <그림설명>이 된다.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문자와 공간의 공모가 잠시 그것을 거기로부터 내려오게 한 곳으로 모든 담론적 구속에서

벗어나 그것은 다시 생래의 침묵속에서 부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페이지로, 그리고 그것의 낡은 배치원칙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 그럴 뿐이다.

내가 여기 그림 및에서 읽을 수 있는 단어들은 그 자체가 그려진 단어들이다.

화가가 그림밖에 놓은, 그러나 그의 그림의 일반적인(게다가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구역안에 놓은 단어 이미지들이다.

내가 그것들에 대해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칼리그람적 과거로부터 단어들은 자기 그림들이

그림에 속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들의 그림적 성격을 보존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그 자신 위에 포개진 것으로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이것들은 말들을 그린 말들이다.

이 말들은 그림의 표면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말하는 어떤 문자의 반영을 이루고 있다.

그림으로 된 텍스트, 그러나 거꾸로 재현된 파이프는 텍스트의 문자를 그린것과 같은 손과

붓으로 그린 것이다.

그것은 글씨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글씨의 결핍을 메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글씨를 연장하고

있다. 파이프는 조그만 망가진 문자들, 조각조각나 그림의 전 표면위의 흩어진 그래픽 기호들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문자표기의 형태로 그려진 그림인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이전의 칼리그람적 조작은 글씨와 그림을 교차시텨 놓았던 것이고, 그리고

마그리트가 사물들을 제자리에 다시 놓았을 때, 그는 형상이 그 속에 글씨의 흔적을 끈기있게

유지하고 텍스트는 여전히 그림으로 그려진 재현이 되도록 배려를 했던 것이다.

 

미셸 푸코<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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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녁 택시기사 아저씨는...

* 이 글은 레이님의 [택시기사 아저씨의 친절. ^^]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새벽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섯병과 들레꽃의 마중을 뒤로하며 손까지 흔들어주고는

아저씨 한남동이요~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서 약간 술냄새도 풍기며그리고는 무심하게 창밖만 바라본다.

그런데 왼쪽 다리가 찝찝하다.

아저씨가 힐끔힐끔 치마입은 다리를 이상한 눈으로 계속 쳐다본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아주 끈적끈적한 그런 눈빛 말이다.

새벽에 과년한 여성이 술마시고 택시를 탄것부터가 그에게는 이상한걸까?

아님 내가 지 타입인가? (으으..)

으음..기분 더럽지만 할 수 없다. 내 생명을 맡기고 가는 차안에서 그것도 3시가 넘은 새벽에 내가 그에게 따지고 들어봤자 득 될 것이 없다. 아니난 불만이 있어도 눈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치거나 무서운 인상 쓸 인간이 못된다..겁나니까..ㅋㅋ

예전 프랭크라는 친구의 글이 생각난다.

밤에는 여성의 인권이 없다!

늦은 밤 과년한 여성이 혼자 다니는 건 어떤 피해를 입어도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1차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식의 논리를 들이미는 황당한 경우가 있다.

 

여하간 순간적으로 약간의 공포와 울컥함을 동시에 느끼며 가시방석으로 앉아있었다.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을.기다리며무슨일이야 있겠냐.기분 나쁜건 둘째치고 말이다.

택시를 타고 집입구까지 도착하려면 택시운전자에게 약간의 지리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아저씨이렇게 저렇게..네 거기서 좌회전..또 좌회전네 여기서 세워주시고 좌회전해서 나가서시면 바로 도로입니다…”

그런데 대뜸 이런곳에서 살아? 흐흠…”

대뜸 반말..그리고 약간의 빈정이해되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10000원을 건네주며 감사합니다.. 난 항상 택시를 내리면서 수고하세요 보다도 안전하게 운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에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내리고 싶은데이 아저씨 돈을 받으려 내미는 손이 약간 수상쩍다. 손을 건드리려는 의도가 다분하고잔돈을 건네는 손이 건내주려는 듯 말려는 듯…’모야? 이 시간에 나랑 장난하자는 심산이야? 오마이 갓.' 최대한 스킨쉽을 하지 않으려고 4등분이 접혀진? 5000원짜리 지폐의 끝부분을 낚아채듯이 잽싸게 뺏고는 뒤도돌아보지 않고 뛰었다집까지 거리가 조금 되는곳에 내렸으므로푸후.

어찌나 간이 떨리는지오바일꺼라고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새벽늦게 돌아다니는 여성이 되어 보지 못한 남성은 모르는 감정이리라..

서대문 사건, 유영철 살인사건등등의 흉흉한 사건들은 집안에서도 문을 꼭꼭 닫아놓게 만드는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하다.

남친을 만들라구? 이게 이것과 무슨 상관인가? 남친을 옆에 꽁꽁 묶고 사회생활 하란 말가?ㅋㅋㅋ

 

여튼 택시를 자주 애용하는 나지만 택시를 타고 10번의 1번은 좋은 경험이 없었던듯.

레이님~ 운좋으셨네요^^ 나두 그런 행운이 자주자주 있기를 기대하겠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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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 이 글은 너부리님의 [아우~~ 깜찍하던 그 시절..]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넘넘 이뿌죠?

싸이월드 "처절한 기타맨씨"의 블로그에서 다운받은 고양이예요*^^*

 

투니버스의 햄토리 주인공을 닮은거 같기도 하고...저 조그마한 발톱들을

보세요^^ 미치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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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_Cyndy Sherman


Untitled #86/1981

 


Untitled #92/1981

 


Untitled #96/1981

 


Untitled #102/1981

 


Untitled #123/1983

 


Untitled #153/1985

 


Untitled #175/1987

 


Untitled/2004

 

Naver.com "신디 셔먼" 지식검색
1954년 미국 뉴저지주 글렌리지에서 출생하였다. 흑백사진이 개념미술에 차용되던 1970년대에 팝문화를 기반으로 대중문화와 매체에 관심을 갖고, 1977년 《무제 사진 스틸》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였다. 1950~1960년대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패러디한 이 시리즈는, 미국적 아이콘인 금발머리의 여배우로 변장한 신디 셔먼(Cindy Sherman)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카메라의 뒷면이라는 관음자적 모더니즘 주체가 아닌, 카메라 앞에 나와서 보여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를 볼 수 있다. 즉, 사진가(관람자)의 시각에 모델(객체)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품의 모델이 되어 시선의 주체와 객체를 모두 담당했다. 이와 같은 독특한 역할은 1970년대 비평을 선도했던 《옥토버 October》지의 주요한 비평의 대상이었다.

그의 작품은 주제별로 대략 5단계로 나누어진다. 1975~1980년대 초기는 '흑백스틸' 작업 시기로서, 금발의 여배우로 분장한 신디 셔먼이 등장하는 《무제 사진 스틸》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두 번째 시기(1983~1984)는 패션모델을 패러디한 《패션사진》시리즈 제작시기로, 여기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 아닌 추하고 피곤한, 역전된 여성의 모습을 포착한다.

1985~1991년의 작품은 비평가들의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시기이다.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고 하는, 신체와 관계된 액체 분비물·정액·혈흔·토사물 등의 불쾌한 것들로 작품을 만들었다. R.크라우스는 이 작품들을 '재난들과 동화들' '역겨운 사진들' '시민전쟁'이라고 불렀다.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무제 #153》(1985)인데, 텔레비전 드라마 《트윈 픽스》의 한 장면인 강가 모래밭에 길게 누운 젊은 여성의 시체와 똑같이 연출한 장면이다.
 
네 번째 시기(1988~1990)는 '역사 초상화'를 패러디한 시기이다. 고급 모더니즘으로 상징되는 15~19세기 후반 유럽 귀족의 초상화를 가슴을 드러내거나 평범한 여성 등으로 대중화시켜 패러디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마지막 시기인 1992년은 절단된 마네킹의 사지가 등장하는 마네킹과 섹스 사진이 특징이다. 유명한 《무제 #250》(1992)에는 노인의 마네킹이 성기를 노출한 채 임신한 몸을 흉측하게 드러내며 누워 있다.

1997년에는 영화 《오피스 킬러 Office Killer》를 제작하여 할리우드를 선망하는 여성의 허무한 모습, 불혹에 이른 아역배우, 40대 후반의 중산계급과 중년여성 등을 묘사하였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와 머리, 성형수술의 후유증을 상징하는 듯한 플라스틱 인조 가슴, 추한 화장과 의상 등으로 묘사되는 여성의 외적 이미지를 보여주어 삶에 찌든 할리우드의 이면을 드러내었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여성'과 '몸'이다. 신체라는 외부 이미지를 넘어서 여성 신체를 구성하는 내부 이미지를 묘사한 오브젝트 아트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신체는 셔먼 작품의 근원이다. 여기에는 모더니즘과 가부장적 남성 사회가 단지 아름다움으로 규정했던 여성의 신체를 불쾌감을 주는 신체 내부적 요소로 보여줌으로써, 변장 뒤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의 진정한 자아확립과 주체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잡지 발췌

2000년대에 와서 셔먼은 평범한 중년 여성의 초상화를 연출한다. 하지만 과장된 화장과 꾸며진 미소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녀들은 왜 저런 꼴이 되어버린 걸까? 바로 사회가 바라는 미적기준에 맞추려는 중년여성의 안간힘.

남성의 잣대에 스스로의 외모를 맞춰가는 그녀들에게 고정된 자아가 있기나 한 것일까?

사진 속 인물들이 모두 불편하고 답답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시선의 강박 때문일 것이다.

현재 신디셔먼이 발견해낸 최종적인 캐릭터는 '광대'다. 한 프레임에 여러명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물론 모두 그녀 자신이고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이다.

'광대'에 압축된 의미는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며 울고 웃는 나약한 존재이자, 지금껏 수많은 인물들로 스스로를 변장시켜 왔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정체성의 상실

셔먼은 궁극적으로 분장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를 이해하고자 했고, 또 현대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으로 표현된 '나' 속에서 정신분석학적인「에고(ego)」의 적나라한 해부를 시도하였다. 자기이면서도 자기가 아닌 것, 즉 자기 상실의 모습을 기괴하거나 퇴폐적인 영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진정 '나'를 얼마만큼이나 알고 있는가.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얼마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 타인으로 분장된 자신의 모습으로 자기를 표현하고자 한 셔먼의 사진들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셔먼의 사진이 암시하듯이 현대 사진은 더 이상 회화주의의 모방이 아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주장되어온 사진의 기록성, 즉 현실의 묘사도 더 이상 사진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없다. 더우기 사진 장르의 파괴와 함께 메세지의 난해성도 더해지고 있다.

 

위의 글은 모두 퍼온 것들이다.

그녀의 그림들을 모으면서 글로서 표현해보려 했지만 생각이 풀리지 않아 그냥 날라왔다.

매체에 의해 관념화된 여성을 여성의 시각에서 사진으로 재조명, 연출했던 과거작과는 달리

최근작업들은 개인의 문제로 돌아온 듯하다.

 

9월1일부터 11월21일까지 천안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최신작인 그녀의 사진을 만날 수있다.

허거걱...천안까지...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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