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미루가 완벽한 자세로 앉긴 앉지만
몸이 흔들흔들한게 불안합니다.
아침에도
기어가다 앉고, 다시 기어가기를 반복했는데
앉아 있으면 온 신경이 미루한테 갑니다.
근데 한번도 뒤로 넘어가진 않습니다.
"으앗~!"
미루가 넘어가는 모습에
주선생님이 비명을 지릅니다.
미루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왼쪽으로 떨어집니다. 머리는 괜찮습니다.
"휴...놀랬다..."
"그러게...깜짝 놀랐다.."
또 다시 뒤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번엔 힘을 잔뜩 줘서 허리를 튕기더니
몸을 앞으로 숙입니다.
주선생님
미루를 아주 믿음직스러워 합니다.
"우리 미루는 역시
뭐든지 다 준비가 된 다음에 하는 것 같애..."
"그런가?"
"뒤집을 때도 그랬고, 지금 앉는 것도
뒤로 안 넘어질 정도로 근육이랑 감각이 발달한 다음에 앉은 거라고 볼 수 있잖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맞장구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러게 말야, 뭐든지 충분히 분위기가 익은 다음에 하는 건
나를 닮은 것 같애..."
"......"
소리가 안 나는 웃음은
싸늘한 법입니다.
"그렇지, 설거지도 그릇이 쌓여서 충분히 익은 다음에 하고
재활용도 쓰레기가 충분히 쌓여서 분위기가 익어야 버리잖아..그런 거 말이지?"
부모님한테
미루 앉은 사진을 보냈더니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 혹시 모르니까 잘 보고 있어..뒤로 넘어가면 큰 일 난다.."
"네..."
적막한 오후가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있고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미루는 여전히
단단하게 앉아 있습니다.
역시 믿음직스럽습니다.
오후 내내
두 번
뒤로 떨어졌습니다.
소리를 들으니까
제대로 떨어졌다 싶습니다.
내내 옆에 있다가
잠깐 딴 짓 할 때 마다 그랬습니다.
많이 후회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미루도 옷 갈아입는 걸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목욕시키려고 옷 벗길 때
목욕시키고 나서 옷 입힐 때
외출하려고 옷 입힐 때
외출하고 들어와서 옷 벗길 때
미루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찹니다.
요새는 힘도 점점 좋아져서
팔에 힘을 꽉 주고 버팁니다.
"잉잉잉...으아아..."
"미루야, 금방 옷 갈아 입혀줄께.."
외출하고 돌아와서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기다가
미루가 깨닫지도 못하는
엄청난 속도로 옷을 벗기면
울 틈도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적절한 순간에 딱 좋은 생각이 납니다.
'상의 아랫부분부터 목 까지를 한 번에 두 손으로 쥐어서
순식간에 확 뒤집듯이 벗기면 되겠군...팔이랑 머리랑 동시에 빼버리는 거야..'
그 동안엔 미루 안 울릴려고
팔 먼저 빼고, 머리 빼고 그랬는데
좀 지나치게 조심조심 하다가
도리어 미루를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미루야~~옷 벗자~!! 아빠가 벗겨줄~~"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저는 옷을 통째로 움켜쥐고 아래서부터
휙 뒤집었습니다.
1초도 안 지나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습니다.
이럴 때 당황하지 않아야 성공합니다.
좀 더 힘을 줘서
힘껏 옷을 위로 올렸습니다.
미루 눈썹이랑 눈이 옷에 끼어서
위로 늘어 올려졌고
팔은 만세 자세에서 멈췄습니다.
얼굴은 벌개져있습니다.
저도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미루야, 미루야...가만히 좀 있어봐.."
미루,
엄청 버둥거립니다.
최후의 시도를 해야 합니다.
있는 힘껏 옷을 당겼습니다.
애가 질질 끌려 올라갑니다.
불쌍한 미루,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제가 세웠던 계획의
부작용이 첫 시도에서
너무 드러났습니다.
옆집에서 빌려온
'손이 나왔네'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이가 옷 입는 과정을
묘사한 장편인데
이걸 제대로 읽어줄 생각입니다.
댓글 목록
관리 메뉴
본문
조금 있으면 아버지대신 집안일이라도 하겠군요-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수유쿠션의 제2의 용도가 발휘될 때네요. 앉아있는 아이 뒤에 수유쿠션을 받쳐두심 조금 안심이 된답니다.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꼭 잘 있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이 벌어지죠.조심, 조심...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미루 고생 많네. 너나나나도 그렇고.이건 완전 딴 얘기(그런가?)인데... 사람은 태어날 때 '천재'로 태어난다고 하잖아. 모든 사람들은 아가일 때 미루처럼 바닥에 머리를 찧음으로써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범상치 않은 재주를 지녔다는 건 저주이지 않겠어?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로부터 멀어지려는, 타고난 습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
에~ 아빠로서 너무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라는... 썰렁한 ㅡㅡa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말걸기님, 진짜 썰렁해요, 풋.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징어땅콩/ 그때가 되면 일을 몽땅 시켜야죠..ㅎㅎ진경맘/ 안 그래도 주샘이 수유쿠션을 받쳐주더라구요..^^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단정/ 꼭 그래요..아주 잠깐 사이에...계속 지켜볼 수 밖에...말걸기/ 흠...
벼루집/ 고마워요. 말걸기의 얘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했는데..너무 적절한 반응입니다.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