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에 해당되는 글 10건

  1. 북파공작원이었다구? (1) 2006/04/24
  2. 동명이 생일... (4) 2006/04/21
  3. 과기노조 창립 12주년 기념 행사 (3) 2006/04/19
  4. 옥계산장~동해, 경치는... (5) 2006/04/17
  5. 옥계산장~동해, 꽃.. (3) 2006/04/17
  6. 옥계산장~동해, 사람들... (3) 2006/04/17
  7. 애는 혼자 키우냐? (4) 2006/04/17
  8. 뭐하는고? (6) 2006/04/13
  9. 종합반을 다니겠다고??? (6) 2006/04/04
  10. 갑자기 높아진 불안.... (2) 2006/04/04

지난주 일이었구나.

연맹의 이근원 실장이 왠일로 전화를 다했나 했더니,

레디앙에 기사가 났다면서 보란다.

그리고는, 어떤 조치를 취할 계획이긴 한데,

그때 되면 협조나 해 달라는.... 뭐 그런야그..

 

대략 잊어가고 있는데,

들어가서 기사를 들여다 보고선,

또 그때 생각이 난다.

 

하튼 사지를 바짝 들려 끌려 가면서도

그 인간들의 근육질의 팔뚝을 보면서,

꽤나 단련된 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들이 북파공작원들이었다구?

기사를 보고나니까 오히려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45

 

비정규직 파업현장 북파공작원 투입
어느 공작원의 증언 …"군산 KM&I 20명 한때 상주, 공공기관도 이용"

노동자 투쟁현장에 북파공작원이 투입됐다는 한 북파공작원의 증언이 나왔다. 북파공작 특수임무수행자 동지회 ㅈ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지난 해 10월 12일부터 광주지부 소속 20명이 군산공장에 들어갔고, 최근까지 일하고 있다가 잠시 인원을 뺐다. 일이 생기면 또 돌아올 것이다."

최근까지 그들이 들어가 있는 곳은 자동차시트를 만드는 케이엠엔아이(KM&I)라는 회사. ㅈ씨는 그와 가까운 친구인 금속노조 관계자의 부탁을 받고 동지회 지역 지부를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회사가 광주지부와 용역계약을 맺었고, 회원 60∼70명 중에서 직장이 없는 사람들 20여명이 거거기로 나갔다"고 말했다. 

   
 
▲ 2005년 11월 10일 케이엠엔아이 군산공장 앞에 누워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용역경비들이 끌어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일당 16만원 지급 … 회사는 발뺌

조씨는 "사설경비업체는 일당 10만원이면 되는데, 북파 공작원의 경우 처음에는 더 받았을 수도 있는데 장기간 상주하면서 지금은 일당 16만원씩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 쪽은 북파공작원을 고용한 사실에 대해 발뺌을 했다. 지난 4월 6일 금속노조와의 교섭에서 노조 교섭위원인 전송철 부위원장이 북파공작원을 고용 여부를 묻자 회사쪽 관계자는 "왜 우리가 그 사람들하고 계약을 하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파공작원의 지휘를 받은 용역경비들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해 11월 한 달 동안 80명의 노동자들이 용역경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코뼈가 내려앉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를 심하게 다쳤으며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기도 했다. 전치 3주에서 8주 진단을 받은 조합원들이 20명에 이르렀다.

케이엠엔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금속노조와 합의한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상여금을 삭감하자 이에 격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직장폐쇄로 길거리로 쫓겨나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기자.  "제가 서너 차례 군산공장에 내려갔는데 여러 조합원들이 깁스를 한 채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눈뜨고 못 볼 정도였다.".

북파공작원. "그 친구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인데 임무가 떨어지니까 죽기살기로 막은 거겠죠.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회사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쫓겨나고 힘든 가정생활을 하고 계실텐데, 그 사람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길 바라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불상사가 있었는데 다치신 분들의 쾌유를 빌고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내가 생계 책임질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을 여러 차례 표현했다. "광주에 있는 우리 선후배 일부가 거기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들 개인으로 봐서는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가정도 있는데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못하고 먹고는 살아야하는데 돈을 많이 주니까 거기에 눈을 돌린 거죠.  광주에 있는 후배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그런 행동을 하면 되겠냐고 얘기 못합니다. 자기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고, 제가 생계를 책임져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연거푸 소주를 마셨다. "동지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가정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70∼80%가 이혼을 했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20∼3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경찰특공대 같이 공무원으로 채용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ㅈ씨는 현재 서울 삼성동 건설현장에 나가고 있다. "아내와 아이 둘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나이도 있으니까 취업은 안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노가다밖에 없는 거죠. 몸이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다들 어디 다쳐서 병신이거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생계가 보장되면 노동자들 두들겨패는 곳에 누가 가겠습니까?"

2004년 12월 '특수임무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일부만 보상이 됐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상을 해주고, 지원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걸고 이 달 안에 집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직이 통합되고 수익사업의 통로가 열려서 생계가 보장되면 이권개입하는 일 안 할 겁니다. 와이프들이 100만원만 벌어도 되니까 남들처럼 출퇴근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노동자들 두들겨패는 그런 곳에 누가 가겠습니까?"

케이엠엔아이의 경우 하루 16만원이면 한 달에 500만원을 받는 건데 회원들이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겠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앞으로는 그런 일 안하게 될 거고 못하게 할 겁니다. 생계문제가 해결되면 이런 일은 없을 거구, 이런 일 생기면 조직 차원에서 방치하면 안되겠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2003년 6월 공공기관이 북파공작원 투입해 노동자 폭행

그는 2004년 4월 포항에 있는 대경이라는 회사에서 북파공작원을 고용했던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소문만 있었던 코오롱에 대해서도 그는 "아마 코오롱에도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직접 투입됐던 사건을 얘기했다.

 "2003년이었을 겁니다. 어떤 회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 끌어내는 일이 있으니까 가자고 해서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습니다. 본사 앞에서 텐트치고 농성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이 가서 순식간에 들고나와 감금시켰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농성하는 사람들은 다 카이스트 출신의 석박사들이었고, 공공기관에서 우리 동지회쪽과 직접 계약을 한 거였습니다."

   
 
▲ 2003년 6월 21일 새벽 4시 30여명의 청년들이 나타나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앞 노동조합 농성장을 부수었다.(사진 공공연맹)
 

그는 몇 번 이름을 되뇌더니 "아마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다. 2003년 6월 21일 새벽 4시.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농성장에 30여명의 괴한이 나타나 천막을 철거하고 당시 농성장에서 자고 있던 곽장영 수석부위원장 등 노조간부 5명이 30여분간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당시 공공연맹과 과기노조는 "30대 건장한 청년들인 용역깡패들은 주로 재개발지역 철거를 담당해온 전문 폭력배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북파공작원이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복직되면 북파공작원도 좋아할 것" 

빈 소주병이 일곱 병을 넘기고 시간이 열한 시를 넘어갔다.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도 하지 않고 북파공작원으로 갔다. 그가 들려준 얘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군사정권이 이들에게 저지른 범죄행위는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끔찍했다. 비보도 요청을 전제로 그가 쏟아놓은 말은, 보도를 하라고 해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얘기들이었다. 그는 "국가가 사기를 쳤다"고 말했다.

그런 국가의 피해자들이 군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싸움을 하고 있다. 기자가 "국가의 피해자와 자본의 피해자와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자 그는 "맞다"며 빨리 이런 모순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빈 소주병은 계속 늘어나고 그가 들이키는 잔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그가 술잔을 입술로 가져가는 횟수보다 더 자주 되풀이한 얘기가 있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직되면 경비하러 가 있는 우리 선후배들도 좋아할 거예요."

2006년 04월 17일 (월) 00:37:33 박점규 현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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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4 13:39 2006/04/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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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 생일...

from 나홀로 가족 2006/04/21 12:50

4월20일 동명이 생일이다. 이제 만으로 16살이 되었네.

어제 아침에 미역국을 주면서 아내가 동명이 생일이라고 해서,

동명이에게 생일빵 안하냐고 했더니,

'전치 몇주야...' 이런다.

그게 뭔소리냐고 했더니,

생일빵 하면 애들이 때린다나, 어쩐다냐..

괜히 다치게 그런지 말라고 하고서는,

저녁에 케이크 사다 촛불이나 켤까 했더니,

별로 반응이 없다.



아내가 케이크 사왔냐고 묻는다.

생각났다가 잊어 버렸다고 했더니,

아침에 그러길래, 아내는 빵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안사고 그냥왔단다.

그러면서,

'그자식이 언제 들어올지 알아야 케잌을 먹든지 말든지 하지...'한다.

 

느지막히 들어온 동명이에게 물었다.

"생일빵 했냐?"

"어, 지금 엄첨 아파."

"어딜 어떻게 맞았는데?"

"팔로 허벅지랑, 팔이랑 이런데 맞았지.."

"그럼 멍들었냐? 한번 봐바"

"멍은 안들었는데, 디게 아파."

"전치 몇주 되겠냐? 병원에 가서 입원하지 그래?"

"그건 아니고..."

"왜 생일이라고 때리고 그러냐?"

"몰라, 중학교때는 운동장 한복판에 데려놓고 다들 때렸어,"

"선생님이 뭐라 안하냐?"

"그냥 냅두던데..."

 

학교 교실에서 생일 빵이라고 애들한테 얻어맞고,

저녁에는 친구들 모여서 먹고 놀다가 학원 빼먹고 왔단다.

 

엄마한테 당근 한소리 들었지.

"학원 빼먹으면 엄마한테 전화라도 안하냐?.. 으그,,, 저 새끼는.."

"............."

 

대답 안하는게 상책이란 걸 이 놈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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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1 12:50 2006/04/2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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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기념행사를 내장산에서 등산으로 한다고...

아파서 가지 말까 하다가, 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빠질수 없다고

새벽부터 따라 나섯고, 45인승 버스에 겨우 12명인가 13명이

흩어져 앉아서 갔다.

 

내장산은 언젠가 단풍 있을때 들머리에만 와 본 기억이 있을 뿐

산으로 올라가 보기는 첨이다.

 

1시간 반쯤 오르면 등성이에 오르고, 주위가 확 트여 보이고,

빙 돌아서 가는 산등성이를 걷는 것도 좋은 산행코스로 보인다.

겨우 두어시간 시간을 주고서 산행을 하라 했으니,

등성이에 오르자 마자 내려오라는 성화였지만,

30여분을 더 가서 불출봉까지 갔다가는 돌아왔다.

(다음에 꼭 한바퀴 돌아 봐야겟다..)



정읍 원자력연구소로 가서 밥먹고 간단한 기념식하고 끝났다.

 

기념식 하느라고 넋놓고 앉아 있었더니,

모범조합원을 부르는데, 산오리 이름이 들어 있다.

'이런.... 본인한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모범조합원으로 추천했냐?'

모범 조합원 이런거 받기는 좀 쑥쓰러운데...

 

원자력연구소에서 내준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는

날씨가 바람불고 차가워 지는 바람에

황급히 버스로 되돌아 오고 말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많은 친구들에게 반가움을..

그리고 눈물나도록 반갑고 고마운 친구들은

산기평의 안형수, 배성환을 비롯한 강철동지들....

당신들이 있었기에 그 기나긴 세월의 탄압을 버티고 있고,

법원에서도 판판이 이기고 있지 않았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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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13:36 2006/04/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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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산장 위의 계곡물에는 목욕 좀하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에, 날씨 탓에, 그리고 아픈 탓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물에 언제 들어가볼 날이 있을라나 모르겠네....

 

동해를 따라 올라 오는 길에 영해(가 맞나?)의 해맞이 공원에는

수선화를 엄청 심었는데, 그 꽃들도 볼만했고,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도 그런대로..

 

물론 가장 좋았던 것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해의 풍경...

 



어느 조그만 어촌에서 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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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7 16:21 2006/04/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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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꽃이 길을 덮었고,

동해를 넘어올때는 바닷가에 복숭아 꽃이 이쁘게도 피었더랬다.

복숭아꽃 사진은 못찍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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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7 16:17 2006/04/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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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애비는 멋진 유람기라도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딥따 아팠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있을 뿐,

경치고, 사람이고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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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7 16:14 2006/04/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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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불만이 드뎌 폭발했다.

토욜 아픈 몸을 이끌고, 과기노조 창립 기념행사를 하는 내장산으로 갔고,

일산에 오기는 7시쯤에 도착했는데, 친구 모친 칠순이 있어서 다시

중동으로 가야 했다.

친구넘들 술마시는데, 술 안마시면서 앉아 있기 괴로와서

빨리  끝내고 가자 했는데, 이친구들 오랜만에 만나서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아내의 전화가 왔는데,

이미 술 한잔 마신 목소리에다가 금방 집에 갈 거란다.

집에 왔더니, 아무도 없다. 아내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언제 들어왔냐? 동희는 왔냐? 이런 몇마디 뭍고선 곧 집에 간다고 하길래,

그냥 술 많이 마신거 같은데, 그냥 그기서 자고 오라고 했다.

 



그동안 당신한테 하도 열받아서, 오랜만에 작심하고 술 마셨는데,

도대체 당신이 그렇게 얘기할수 있느냐? 로 시작해서는,

말을 안해서 그렇지 당신이 매 주일마다 놀러 다니느라

일요일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본론으로 들어갔고,

"도대체 애는 내 혼자 키우냐?"로 몰아 붙였다.

 

몇마디 대꾸를 해 봤지만, 본전 건지기 어렵게 되었고,

더구나 뭐 할말이 없었다.

 

일욜, 남편 집에 있다고 해서 모처럼 만에 아내는 운동하러 가고

애비가 동희 학원 운전수 노릇을 했다.

10시 반에 집을 나서서 후곡마을의 물리 학원에 실어다 주고,

다시 1시에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들고 가서는 애을 태워서는

행신동의 수학학원으로  1시 반까지 갔고, 가는 동안에

애는 차 안에서 점심을 김밥과 사이다로 때웠다.

다시 집에 들어와서 잠간 텔레비전을 보다가

3시 반까지 백마마을의 영어학원으로 애를 실어다 줬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야 학원 운전수의 역할이 끝났다.

 

애는 6시에 끝나고 집에 들렀다가는

다시 7시까지 화학학원으로 갔다

(이놈의 과목은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아침에 학교 가는 것부터 학원 가는 것을 태워주라고 남편한테

차까지 사 줬는데, 그것도 안하고 맨날 놀러나 다니니까,

혼자서 애를 태워주고 나면 일요일도 잠시 쉴 틈이 없다는 거였다.

 

산오리는 애들 학교든, 학원이든 버스 타고 다니면 될 것을

왜 굳이 태워주려고 하느냐, 그래서 애들 버릇만 더 나빠지는 거 아니냐? 고

맏서서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합의 점이 없었다. 

 

그런데, 학원을 차로 20분 30분이나 걸리는 후곡마을이나, 행신동까지 보내야 하는건

그 물리학원은 시간 맞는게 후곡마을 학원 뿐이고,

수학은 행신동으로 간 선생님이 잘 가르치기 때문에

따라 가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거였다.

후곡마을이나 행신동까지 버스로 다니기에는 두어번씩 갈아타도

그 비는 30분 정도만에 움직일수 없게 짜여 있었다.

그러니

일요일 하루종일 애를 실고 이학원 저학원들

왔다 갔다 했더니, 고스란히 하루가 날라갈 수밖에...

 

큰 놈 시험볼때까지는

일요일이라도 아내에게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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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7 13:14 2006/04/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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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고?

from 단순한 삶!!! 2006/04/13 16:22

지난 포스팅을 한 후에 열흘쯤 지났나 보다.

도체 뭐하고 사는지 모르게 날자도 잘 지나가긴 가나 보다.

 

지난주 초반은 그냥 맘 편하게 몸도 편하게 개기려고

이틀간 집에 가서는 빈둥거렸다.

그리고는 남은 사흘간 서울에서 두 팀의 술 친구들이

일산으로 왔었고, 또 하루는 서울로 나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토욜 새벽에 국선도 하러 갔는데,

마지막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데, 가슴 뒷쪽에 확 불길한 느낌이 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기에도 불편하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기에도 불편한 고통이 심하게 몰아쳤다.

 



그 정도면 아프다고 빠지고도 싶었는데,

또 한 친구가 전날 밤에 산오리한테 전화해서는 같이 가자 했는데,

빠지기도 참 난처했다.

 

황사 몰아치는 날 제천을 들러 영덕으로 갔고,

그날 밤 사람들은 신나게 먹고, 놀고, 밤새워 노래 부르는데,

산오리는 그 난리통에 제대로 드러눕지도 못하는 고통을 안고

깨다말다 하는 잠을 잤다.

(노래방기계까지 갖다 놓고 노는 건 좀 싫었다.)

 

담날 강구를 들러 동해를 따라 올라오면서

여기저기 내려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먹기도 하고..

계속 아프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나으려니 했다.

 

월욜 출근했는데, 토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별로 차이가 없이 아팠고,

화욜날부터 3일간 한의원을 찾아가서 침도 맞고,

너무 아프다고 진통제도 사먹고,

그리고 약간 진정된 채로 있다.

 

한의원 한곳에서는

기록을 들춰 보더니, 지난해 4월 15일날 같은 증세로 찾아 왔었다면서,

별다른 얘기없이 전기치료, 침, 부황.. 이렇게 치료를 해 주었고,

담날은 가까운 한의원에 갔더니,

척추가 휘었다면서 오른쪽 발이 3센티나 짧다면서 추나요법으로 며칠 치료를 받으란다.

병원이고, 한의원이고, 그렇게 쉽게 진단을 내리고,

자신들이 잘 하는(?) 방식으로 쉽게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속는 셈 치고 이틀째 치료를 받았다.

전기치료, 침, 부황, 안마.. 이런건 여느 한의원과 비슷하고,

추나 요법이라고 이상하게 생긴 기계 위에 눕히고는 등뼈와 목에 충격을

주는데, 뭔가 삐꺼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국선도 사부에게는 며칠 빠졌기에 전화했더니,

아프더라도 와서 운동으로 풀어야 하니까 나오란다.

고개도 움직일수 없는 상태에서 그 운동이 될라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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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3 16:22 2006/04/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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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제빵기능사(?) 필기시험을 보고 온 동명이한테 물었다.

"시험 잘봤냐?"

"아니, 딥따 어려웠어.."

"짜샤, 공부를 안하니까 어렵지.."

"공부 열심히 했단 말이야."

 

학교 끝나면 놀다가 제빵학원가고(가끔은 그마저도 빼먹고), 그리고 친구들 만나서 놀고,

수학여행 간다고 춤연습하고, 수학여행 갔다 오고,

아무리 머리 굴려봐도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냐? 짜샤...(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분석으로도 동명이는 필기시험에 떨어진 거 같다고,

동명이 스스로도 그렇게 판단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빵학원을 계속 돈들여서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란다.

그럼 필기시험부터 봐서 붙고 나서 나중에 학원에 보내라고 했더니,

그놈이 그렇게 할려나 모르겠단다.

 

엊저녁에 아내는,

동명이가 '학원 종합반'에 다니겠다고 얘기했단다.

내신 몇등급을 받아서 대학가겠다면서, 공부하겠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그 생각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다고 한숨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자기가 공부하겠다는데, 학원 보내줘야지."

 

아내의 정해진 결론이다.

 

산오리의 결론은,

 

"친구놈들이 다 학원 가서 놀자고 한 모양이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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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 13:24 2006/04/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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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개편을 한다고 그러길래 '하면 하나 보다'하고 개 닭보듯했다.

어차피 문제가 있다면 사람의 문제이지, 조직을 여기다 붙였다, 저기다 붙였다 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평소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직개편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에서 하도 혁신! 혁신! 하니까, 혁신이라는 이름도 붙이고,

내땅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온갖 부서의 이름을 더 크게, 더 넓게 짓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가나연구부->'국토'가나연구부 이런식으로...) 

그기다 약간의 지원부서 팀 업무 가 바뀌었고, 정책을 강화한다고 했고...



원래 연구관리팀에서 사업관리팀을 분리한지가 1년밖에 안되었는데,

연구관리팀에서 하던 기본사업이란 업무를 사업관리팀으로 넘기고

그 이름도 다시 연구관리팀으로 바꾼다는 거였다.

기본사업을 어디다 붙이든 무슨 상관있으랴...

일 따라 오면 사람도 당연히 따라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업무분장하고 원규 바꾸는네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원규 바꾸고 사람 조정하는데,

그 일을 하던 한사람을 주지 않겠단다.

일만 넘기고 사람은 없다는 거였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도 보고,

우리도 맡은바 일이 많아서 사람이 따라오지 않으면소화하기 어렵다고 얘기했건만,

이미 '높은 분'들은 방침을 정해 놓고 나를 설득(?)하는 절차만 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더 얘기해봐야 소용없겠다...

 

사람은 늘어나지 않고, 고스란히 한사람의 일만 떠 넘어 왔으니 대책이 만무하다.

한 친구는 그전에 두친구가 하던 일을 맡아서 하고 있고,

두 친구는 밖에 출장다니면서 정신이 없고,

또 한 친구는 자기 월급의 두배쯤 되는 일을 소화해 내고 있다.

 

그러고 나면 남는 인간은 팀장이라는 허울좋은 감투를 쓰고 있는 산오리 뿐인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 봐도,

팀원들한테 일을 더 맡아 달라고 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될 거 같다.

 

그럼 결국 방법은 산오리가 그걸 맡는 거 뿐인데,

산오리도 요즘 꽤 바쁜 편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그 업무를 하던 팀에서는 그 업무가 0.5인의 업무분량이라고 했다는데,

자기네들이 할때는 0.5인의 업무를 한명이서 하다가,

다른팀으로 떠넘길때는 0.5인 분량이니까 사람은 줄필요 없다고 선수를 쳤겠지...

드런 인간들...

 

그래서 어제 팀회의서 팀원들한테 얘기했다.


1. 팀장이 무능력한 것을 자학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2. 일이 없어도 야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3. 입에다 바빠 죽겠다는 말을 달고 다니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높은 사람들에게 들고 다니면서 귀찮도록 설명하고, 생색을 내야 한다. 

4. 생색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마이너한 일을 하고 있다는 설움을 느낀다.

 

마음 편하게,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내 월급만큼은 일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직장생활 하려는데, 주위에서 도와 주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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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 13:18 2006/04/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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