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의 전화번호 저장용량은 2백명이다.

누군가의 전화를 기억시키고 싶어서 저장을 하려면 넣어둘 곳이 없다.

언제나 2백명이 꽉 차 있고, 마구 고민해서 지우면 한두개의 자리가 겨우 빈다.

 

전화번호 한개 넣으려다가 공간 좀 넓혀야겠다고 생각하고서는

전혀 전화를 하지 않았던(앞으로도 할거 같지 않은) 사람들을 빼낸다.

그래도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고 종이에 번호를 따로 남긴다.

버릴 건 팍팍 버려야 하는데, 뭐 그리 아까운게, 미련이 많은지...

 

아마도 2백개의 전화번호 가운데 한번도 전화해 보지 않은(전화가 오지도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전화하지 않을(오지도 않을) 전화번호가

절반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지우려고 하면

그 이름에 그 얼굴이 떠오르고, 그리고는 지우지 못하겠다.

 

겨우 11개를 빼내서 수첩에다 옮겼다.

 

3백개, 5백개를 저장할수 있다 하더라도,

이 부질없는 미련 덕분에 항상

용량은 모자르고,

그래서

별로 달라 지지 않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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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4 12:31 2005/05/2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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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노조..

from 단순한 삶!!! 2005/05/24 12:26

뭔가 약속이 없는 날은 좀 수상스럽다.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예전의 한 위원장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당 지역위원회 정경화 부위원장이다.

"플랜트노조 조합원들 7백명이 잡혀 갔대요!"

"헉..."

"유기수 위원장도 잡혀 갔다는데, 서울경찰청 앞에서 항의집회하는데, 같이  갈 시간이..."

"지금 저녁 먹고 있고, 술도 몇잔 마셨는데.."

"그래도 가시죠, 아무도 갈 사람이 없고..."

"그럴게요.."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가사 깃발과 깃대 챙겨서 전철타고서는 원당역에서 정경화 부위원장 만나서 경찰청 앞으로 가니 9시... 장소를 서울경찰청 앞으로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한참이나 헤메다 온 박석삼 선배를 만나서 함께 쭈그리고 앉았더니 1차 집회는 끝나고...

 

집회하고, 밤새워 투쟁하겠다면서 플랜트 노조원들이 먹을 것이라고 만들었다는 주먹밥을 나눠 주었는데, 저녁 먹었지만, 한 주먹 먹었다. 주먹밥 주인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고, 대신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걱우걱 먹고 있다니...

 

10시가 되어서 다시 투쟁문화제란 이름으로 집회가 시작되었고, 집회에서의 연설이나 노래는 어디가나 별로 다르지 않는 비슷한 메뉴로  진행되고...

참가자들 2-3백명쯤 되는데, 밤새워서 동지들 나올때까지 열심히 투쟁하자는 구호가 계속된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하여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을 향한 욕이 거의 수준급에 달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저렇게 욕하면서,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노무현이나 그의 졸개들과 계속해서 무슨 대화나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지?' 뿐이었다.

 

11시가 넘어서자 졸리기 시작하고, 당연히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뒤틀리고... 12시가 넘어서 낼 출근도 해야 하니까 집으로 가자고 부추겨서 우리 셋은 일산으로 되돌아 왔다.

 

장기간 파업을 벌이고, 전쟁 같은 투쟁을 벌이는 그들에게 나는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회사에 다니면서 내 밥벌이가 급하다는 이유로 한 것이, 그리고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 6백명이 경찰서로 잡혀가고 나서 고작 경찰청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집회에 참석하는게 고작이다. 그마저도 춥다고, 힘들다고 하면서 하룻밤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오고....

 

듣거나 보면 열이 솟고, 답답함이 가슴 가득하다.

그래서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자꾸 닫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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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4 12:26 2005/05/2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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