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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같은 박근혜, '곰' 같은 노무현

 

 

 

'여우' 같은 박근혜, '곰' 같은 노무현
[세금 논쟁] 80년대 '레이거노믹스'의 교훈을 기억하라
텍스트만보기   윤종훈(ydh001) 기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감세와 증세, 국민 선택 받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정면으로 승부를 걸었다. '감세냐 증세냐'만 놓고 따지면, 누가 보아도 감세 쪽이 유리하다. 세금 더 내라고 해서 좋아할 사람 별로 없고, 세금 깎아준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아서는 일단 박근혜 대표가 유리한 지점에 선 것으로 보인다. 감세를 이야기한 박근혜 대표는 여우, 증세를 이야기한 노무현 대통령은 곰 같은 인상이다.

한나라당의 논리 "마음대로 먹고 게을러도 살 뺄 수 있다!"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은 2004년 총선 직후부터 본격화되었다. 아마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공약으로 2004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결과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2005년 하반기에 들어서 감세정책에 대하여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다(열린우리당이 과연 감세정책에 대하여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하여는 다음에 확실히 이야기 하겠다).

열린우리당의 감세정책에 대한 비판의 기조는 감세는 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소득세 2%P 인하에 대한 결과를 2003년 귀속 국세청 통계를 통하여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저소득층인 하위 50%는 전혀 혜택이 없으며, 상위 5%는 자영업자의 경우 150만원, 근로자의 경우 60만원의 혜택을 본다. 중간층으로 분류되는 상위 45~50%는 껌값 밖에 안되는 4000원 정도의 혜택을 본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감세는 부자만 혜택을 준다는 비판은 맞지만 2% 부족하다.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혜택을 못 받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증세의 경우에도 서민에게 '증세가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지?'라는 의문에 답을 주지 않으면 호응을 얻기 어렵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오른쪽의 그림은 국민은 정부에게 세금을 내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통하여 국민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①세금과 ②재정지출은 연동한다. 세금이 많으면 공적 서비스의 여력이 커지고 세금이 적으면 공적 서비스의 여력이 작아진다.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①과 ②를 분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세금은 깎아주고 복지는 늘리겠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먹고 게을러도 살을 뺄 수 있다.' '공부 안 하고 마음껏 놀아도 1등할 수 있다.' 이게 한나라당의 기본 전략이다.

반면, 대통령과 여당은 ③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③은 비용을 지불해야 이익이 생긴다는 단순한 진리에 불과하다. 세금이 어떻게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 '비용 없이 이익을 보장한다'는 사이비 장사꾼의 선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필자가 2004년도에 스웨덴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인구가 7만명 정도인 어느 자치시의 양로원을 답사했다. 그 양로원에서는 치매 노인 한 명을 위해 국가로부터 매월 약 6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한다. 600만원이 엄청난 돈이기는 하지만, 치매노인 한 사람으로 인해 몇 가족이 고통을 받고 경제활동에 집중하지 못해 생기는 사회적 손실에 비하면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로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자치시 정부와 세무서(tax office)가 있었다. 그 순간 머리에 그림이 그려졌다. '저 세무서에서 거둔 세금이 저 양로원으로 가는구나!' 그 치매 노인은 그 자치시 주민 중 누군가의 어머니고 할머니이다. 그 자치시 주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지금 이웃집 어머니를 위해 쓰여지고 있으며 언젠가 나도 그러한 혜택을 받을 것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 국민에게 ③은 뚜렷하다.

③을 뺀 세금논쟁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추상화이다. 그저 낙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자기들끼리 의미를 부여하고 싸우고 난리다. 이상하게 생긴 낙서가 달이면 어떻고 해이면 무슨 상관이랴!

'양극화 해소', '복지확대'와 같이 추상적 단어만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정부여당은 지금 당장 ③을 그려낼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진실이 분명치 않으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 목소리 높여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이 분명 유리하다.

80년대 미국은 왜 쌍둥이 적자에 허덕였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감세는 달콤한 독약이다. 달콤한 무엇인가가 독약인지 보약인지 알게 하는 방법은 한번 먹어본 사람을 보여주는게 최선의 방법이다.

감세정책을 전면화시킨 한나라당의 조세정책 문건을 보면, 서두에 1980년대 미국의 조세정책이 최장기간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인 감세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이 레이거노믹스를 본 딴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레이거노믹스의 감세정책이 미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1980년대 후반의 미국 할리웃 영화를 보면, 일본자본이 미국의 특정 도시나 특정 분야를 지배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자본이 미국의 주요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현상을 미국언론은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미국의 경제 암흑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감세는 투자를 활성화 시킨다', '재정은 세출 삭감을 통하여 균형을 맞춘다', '감세로 투자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증대된다(래퍼 효과)' - 이것이 당시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내용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감세 주장과 같다.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감세는 확실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재정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재정지출 삭감은 증세 만큼이나 저항이 거세다. 그래서 원래 약속한대로 '감세-재정지출 삭감'이 아니라,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만 골라 '감세-재정지출 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증대시키는 소위 '래퍼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나라당 역시 예산 낭비만 방지해도 감세를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답은 없다. 주장만 있고 답이 없는 경우 그 실행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산 낭비는 어느 나라에서나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항상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다른 정책과 대체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다. 밥 먹을 때 밥풀 몇 개 흘렸다고 해서 그걸로 다음 끼니를 때우라거나 먹은 것 토해내라고 하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닌가?)

세금 외에 재정적자를 메꾸는 유일한 방법은 국채발행이다. 막대한 국채발행은 민간부문의 자금을 고갈시킴으로써 고금리를 초래했다. 고금리는 한편으로는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초래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가치의 상승으로 미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다. 이게 바로 '재정적자-경상수지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감세의 포퓰리즘으로 장기 집권한 권력자는 행복했지만 국민은 불행했다.

무차별적인 감세정책의 심각성을 깨달은 미국의회는 1990년도에 예산집행법에 수입지출연동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감세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감세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정지출 절약 방안을 동시에 내놓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무책임하고 인기영합적인 감세 공약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의도인 것이다. 감세정책 10년 만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뭔가 깨달은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992년 클린턴이 집권하자마자 소득세를 인상했다. 이 조치는 재정적자 감소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이자율을 하락시켰고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이로써 1990년대 중반 컴퓨터 및 IT 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기반이 조성되었으며 미국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여당이여, '감세는 달콤한 독약'임을 증명하지 못하니...

최근 미국은 다시 쌍둥이 적자로 인해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2001년 미국의 재정 흑자는 3740억 달러이었는데, 2004년에는 재정적자를 3972억 달러 기록하였다. 이는 부시정권의 '감세정책-국방비지출 증대'의 결과일 것이다. 부시는 집권하자마자 상속세 폐지를 비롯하여 감세정책을 천명하였다. 이에 보수주의자와 한나라당은 '그것 봐라'라며 흥분하며 우리도 감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달콤한 독약은 '달콤함'과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두가지를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숨기고 달콤함만 강조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일부만 달콤한 맛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라도 달콤함을 맛보는 게 전혀 맛보지 못하는 것보다 낫잖아?' 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감세(減稅)가 독약임을 증명하지 못하니 지금의 증세(增稅)가 보약이 될 수 있다는건 더 더욱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참여정부 들어서서 노 대통령에 대하여 계속 실망감을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겁 많은 아마추어들 데리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려니 얼마나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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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

 

 

 

전영혁씨의 "퀸에 대한 디스코그라피"

http://blog.naver.com/mdeth

 

[펌]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 Philip Lynott (필 리노트) |방구소리 2005/05/25
-------------------------------------------------------------------------------- 아일랜드(부)와 브라질(모)의 혼혈아로 태어난('51.8.20-'86.1.14)...
[펌]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 Roy Buchanan (로이 부캐넌)|방구소리 2005/05/25
☆ 1939.9.23-'88.8.14 (Age: 48/Hanged Self) 아칸소에서 태어나 버지니아에서 타계. 15세 때 Dale Hawkins가 리드하는 밴드 The Hawks에 가입. 이스트코스트...
[펌]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 -9 (에릭 클랩튼)|방구소리 2005/05/25
... 예상을 깨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낸 에릭 클랩튼은 `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 -9 (에릭 클랩튼) Ⅰ'의 마지막에 소개한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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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맞은 <전영혁의 음악세계> 디스크자키 전영혁

 

 

 

20주년 맞은 <전영혁의 음악세계> 디스크자키 전영혁

 

[씨네21 2006-01-23 09:00]    

 


전영혁은 과묵한 DJ다. 인사말조차 변주에 인색하다. 한결같이 “<전영혁의 음악세계>입니다”로 새벽 2시를 열고, “디스크자키 전영혁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로 3시를 고한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처럼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그가 날마다 반복하는 오프닝과 끝인사는 성경의 “태초에…”와 “아멘”처럼 들릴 지경이다. 그럼 그 사이는? 오직 강 같은 음악의 은총이 넘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살가운 말 한마디 모르는 디스크자키 전영혁의 이름은, 그의 청취자였거나 청취자인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전영혁과 얽힌 기억을 질문받은 사람들의 눈은 순해지고 뺨에는 홍조가 오른다. 음악 때문에 불면의 청춘을 보낸 30대, 40대라면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프로스트식으로 말해 그들에게 DJ 전영혁은 “자작나무를 탔던 한때”의 표상이다. 어쩌면 그들의 서랍 구석에 잠들어 있는 낡은 테이프에는 서툰 녹음 솜씨 탓에 카멜이나 클라투의 음악 끝자락에 묻어난 청년 전영혁의 음성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회고조의 말투는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도 새벽마다 노를 저어 20주년(2006년 4월29일)이라는 푯대에 다가가고 있는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현재를 한낱 후일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냉정한 체하는 디스크자키(전영혁은 가벼운 느낌의 DJ보다 디스크자키라는 또박또박한 호칭을 선호한다)가 20년간 해온 일은 그러니까, 결국 대화였다. 그에겐 말이 아니라 선곡이 곧 청취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엄숙한 비평 행위였다. 전영혁은 지난 연말 손수 돈과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전영혁의 음악세계> 20주년 기념음반’ 1천장을 찍었다. 4장의 CD를 담은 재킷 안쪽에 쓴 글 끝에 전영혁은 ‘새벽의 등대지기’라고 서명했다. 적당한 비유였다. 등대지기와 한번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그 바다를 항해한 이들은 등대의 추억을 공유한다.

전영혁은 김민기, 양희은과 같은 1952년생 용띠다. <월간팝송> 편집장을 거쳐 1986년 KBS 제2FM <25시의 데이트>로 디스크자키 일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간판은 <1시의 데이트> <전영혁의 음악세계>로 바뀌었고, 중도에 시간대 문제로 SBS FM으로 터를 잠시 옮기기도 했지만 전파가 외면한 좋은 음악을 알린다는 원칙엔 미동도 없었다. 공영방송의 관점에서 보나 FM의 본분이라는 관점에서 보나, 귀중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는 방송국 안 누구도 이의가 없으나, 나서서 더 많은 귀가 깨어 있는 시간대로 옮기려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현재다. 마니아를 육성한 마니아 전영혁은 근본적으로 수집가가 아니라 나누는 사람이다. 인터뷰가 결정되자 동료 문석 기자는 <월간팝송> 애독자 시절 잡지에 소개된 데이비드 샌본의 초기 음악이 궁금하다는 엽서를 보냈더니, 전영혁이 공테이프에 샌본의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줬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내가 ‘음악적 자선’이라는 표현을 쓰자 디스크자키는 ‘음악적 YMCA’라는 농담으로 받았다.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생활은 그의 몸에도 흔적을 새겼다. 타고난 예민한 청각과 밤새워 음악을 듣는 습관은 그를 만성적인 불면증 환자로 만들었고 그 불면은 알려진 대로 청취자에게로 감염됐다. 약속 시각 2시간 전, 앞당겨 만나면 일찍 끝낼 수 있지 않겠냐는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나는 그가 녹음 중인 KBS 스튜디오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음악 한곡이 끝나기도 전에 녹아버렸다. 전영혁은 천진하고 뜨거웠다. 동시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 ‘순수하게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앞당겨진 약속을 가리켜)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싫어하시나 봅니다.

=그건 아닌데 제가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봐요. 요즘 유서도 썼어요. 내용은 별것 없고 땅이 부족하면 화장을 하라는 정도. 장기이식은 제 몸이 약해 도움이 안 될 것 같고요. 20년 방송을 했으니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건강도 안 좋아졌고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쫓기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싶은 거죠.

-역시 CD로 일일이 음악을 트시네요. 요즘은 파일로 내보내는 시스템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요?

=아, 그건 바쁜 연예인 DJ들이 쓰는 거죠. 그 사람들은 또 TV에 나가 게임도 하고 그래야 하니까. 나는 아무리 바빠도 절대 파일로 안 해요. 청취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음악 사이에 멘트만 집어넣고 가버리면 그건 도둑이죠.

-한곡씩 트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군요. CD도 방송국 자료가 아니라, 개인 소장 음반이죠?

=방송국 라이브러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안 잘린 거죠. (웃음) 음반 구입 예산은 자료실에 책정돼 있는데, 거기에는 제 프로그램에 소용될 만한 음반은 한장도 없어요. 제가 좋아서 자청한 일이라고 여겨 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지도 모르죠. 별로 슬프게 생각지는 않아요. 원래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슬픈 나라잖아요.

-방송을 하면서 그런 슬픔에 익숙해졌습니까?

=학생이 사회에 나가서 학교에서 배운 거랑 달랐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거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고, 그냥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디까지 왔나 줄곧 헤아리면서 방송하진 않으셨겠지만 언제부터 20주년이라는 지점을 의식하셨나요?

=15주년부터요. 10주년 되던 해 내가 할 일은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고, 15주년 이후로는 안락사 준비를 생각했어요. (웃음) 제가 <나무를 심은 사람>과 <스노우맨>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전영혁의 음악세계>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으면 했어요. 애청자 중에서 한 사람이 제 후계자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FM으로 돌아가려면 돈이 아니라 음악에 미친 사람들이 해야죠. 그런데 우리 애청자는 음악은 많이 알지만 인지도가 없어 방송국에서 과연 캐스팅을 해줄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몇곡이나 전파에 실어 보냈는지 세어보신 적이 혹시 있나요?

=(담담히) 오늘이 1월5일이니까 6181회네요. 곱하기 평균 10곡 하면 대략 맞을 거예요.

-영화 잡지에서 일하다보니, 어쩌다 거금의 액수를 접하면 “그 돈이면 영화 몇편 찍겠다, 몇편 보겠다”고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합니다. 선생님은 시간과 돈을 음반과 음악으로 측정하시겠죠?

=음반 구입비는 한달에 300만원 정도예요. 버는 대로 다 쓰는 거죠. 방송해서 번 돈은 다 음반을 사고 개인 생활비는 원고료로 충당했어요. 1986년부터 1996년까지 5대 메이저 음반사의 해설지를 제가 거의 다 썼거든요. 신문, 잡지의 칼럼도 썼고요. 음반 한장당 10만원쯤 받고 한달에 50장 정도를 썼어요. 그러다 11년째부터 건강에 무리가 와서 원고를 안 썼죠.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한테는 꿈의 라이프 스타일로 들리겠는데요.

=부럽긴 하겠지만, 요즘 애들은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누가 전문가인지 아닌지를 연봉 액수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니까요. 예컨대 박찬호 선수는 LA다저스에 있었으면 엄청난 기록도 세우고 자동으로 더 많은 돈도 받았을 텐데 스콧 보라스라는 매니저를 만나 ‘장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봐요. 진짜 프로는 연봉이 1천만원이라도 잘 던져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제가 한국 최고의 DJ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마 제가 돈은 가장 적게 받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 불만도 없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제 잘못이 아니거든요. 저는 제 잘못이 아닌 것은 신경쓰지 않아요. 전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적은 청취자들에게나마 최고로 인정받으면 성공하는 거예요. 젊은이들에게는 돈은 1억원이면 그것을 목표로 정해놓고 그것이 채워지면 그 다음부터는 벌지 말고 하고픈 일에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인생을 적재적소에 쓰도록 신경쓰는 게 중요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목표를 정했어요. 비틀스가 그때 나왔거든요.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왔지만 그땐 제가 아직 목표를 정하지 않았죠.

 


비틀스 듣고 중1 때 인생의 목표를 정했어요

-확실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인생에 가속도가 붙죠. 그렇다면 최초로 산 음반도 비틀스였나요?

=비틀스의 첫 음반이 제가 처음 산 음반이죠. 수련장, 전과 산다고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사러 갔어요. 비틀스 음악을 듣고 학교 선생님들이 왜 고전음악만 들으라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클래식 아닌 음악도 클래식만큼, 아니 더 좋은 곡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죠.

-그 말씀은 클래식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는 의미겠네요.

=부자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가족 모두 음악을 좋아했어요. 제 첫 오디오는 아버지의 축음기였어요. 아버지는 클래식, 형은 재즈를 좋아했죠.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소개해 히트한 쳇 베이커도 큰형이 제 앞에서 트럼펫 연주를 흉내내던 뮤지션이에요. 음악하면 굶는다고 하던 때라 큰형은 다른 전공으로 고려대에 들어가 연고전 때 브라스밴드로 응원을 했죠. 저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덕에 형이나 누나들과 달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죠. 형과 누나가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제게 음반을 사다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내 음악’으로 적극 발견한 음악은 비틀스가 처음인 셈인가요.

=묘하게도 비틀스는 제 학창 시절과 내내 같이했어요. 비틀스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데뷔해 고2 때 해산했죠. <러브 스토리>에 보면 음대생인 제니퍼가 “난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비틀스를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작가 에릭 시걸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용감한 일이었지만 지금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 중 비틀스를 연주 안 한 오케스트라가 어디 있어요? 클래식은 장르를 불문하고 좋은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보통 한 뮤지션을 좋아하게 되면 그 음악이 다른 음악의 문을 열어주는데요.

=비틀스가 해산했을 때 죽고 싶었어요. 대안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절망했을 때 다행히 나를 구원해준 것이 킹 크림슨이었어요. 가 든 데뷔 음반이 딱 그때 나와 바통을 받은 거예요. 록의 역사가 참 극적이었죠! 저도 웃기는 사람인 것이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3J-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처럼 27살에 죽을 줄 알았죠. 군대 다녀와 백수 생활을 할 무렵인데, 27살의 12월31일 밤 잠도 안 자고 죽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별일없이 28살의 새해가 와서 굉장히 좌절했고, 이후로는 정상인의 생활을 했죠. (웃음) 그때까지는 미친 듯 음악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미친 듯한 생활이 역설적으로 후일 제 자산이 됐죠.

-결정적으로 음악이 구원이나 위안이 된 기억도 있습니까?

=비틀스의 <화이트> 음반이 그랬어요. 지금도 고전음악을 포함한 모든 장르를 통틀어 <화이트>가 최고의 음반이라고 생각해요. 그 음반은 컨셉 자체가 천재적이었어요. 하얀 재킷에 ‘더 비틀스’라고 엠보싱으로 찍어 점자처럼 만져야 알 수 있고요. (동작이 커지고 목소리가 들뜬다.) 게이트폴드식으로 펼치면 네 멤버의 흑백 사진과 곡명이 들어 있고, 비틀스의 사생활에 대한 사진 콜라주와 가사로 이루어진 벽에 붙일 수 있는 종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음반 한장을 안으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또 그때 음악을 그만하기로 결심한 마지막 음반이라서인지 네 사람의 개인기가 다 들어 있어요. 그래서 천재들의 집대성인 동시에 이후에 등장할 후배들- 킹 크림슨의 프로그레시브, 레볼루션 9 같은 전위음악, 헬터 스켈터 같은 헤비메탈 음악까지 제시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음악 정보를 어떻게 구하는지도 선생님에 관한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일 텐데요.

=음악적 정보. 그게 제일 힘들었죠. 실은 정보를 구하느라 진을 빼서 제가 몸이 약해진 것 같아요. (좌중 웃음) 클래식은 음대도 있고 교수도 있으니 맘만 먹으면 되지만, 팝은 학교도 선생님도 없으니 힘들었어요.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다 명동에서 나왔다고들 해요. 무슨 말이냐면, 예전 명동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음반, 잡지가 유통되는 가게가 수십곳 있었어요. 외국을 나가지 않으면 그 길뿐이었죠. 매일 수업이 끝나면 명동으로 출근을 했어요. 다른 데는 용돈을 쓸 여유도 없었고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첫 직장은 태창영화사 수입부였죠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셨고, 영화사가 첫 직장이셨죠?

=고전음악만 다루는 음대에는 애초 뜻이 없었어요. 언제든 배우고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이 많이 남고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과를 찾다가 운이 좋아 응용미술학과에 합격했어요. 저는 한때 음악, 미술, 문학이 제 생활에서 뗄 수 없는 같은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와 <데미안>을 비롯한 헤세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는데, 어려서 작고 약한 사람도 성장해 세상에 나가서는 다른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영화도 너무 좋아해서 시험날은 3편씩 영화를 보는 날이었어요. 첫 직장도 영화를 실컷 보고 싶어 들어간 태창영화사 수입부였죠. 제가 입사할 무렵 홍세미를 캐스팅해 70mm 춘향 영화를 찍은 곳이고 김종원 영화평론가, 이호철 작가가 제 상사였어요.

-당시 직접 수입한 영화 중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으세요?

=<닥터 지바고>요. 흥행 보너스도 많이 받았죠. 우선 음악이 무척 좋았고 제랄딘 채플린과 줄리 크리스티 두 여성의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당시 제가 수입하려던 영화 중에 레드 제플린의 도 있었는데, 군사정권 때라 장발, 퇴폐라고 부결됐죠.

-요즘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자주 영화를 보신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제가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을 무척 좋아해요. 지지난해 부산영화제, 그리고 씨네큐브 앙코르 상영에서 전작을 두번씩 다 봤어요. 특히 최근작 <울부짖는 초원>은 감독의 모든 능력이 응집된 작품 같았어요. 영화를 보면서 음악 정보도 많이 얻어요. 엘레니 카라인드루 음악도 앙겔로풀로스 영화를 보고 소개했고, 왕가위의 <에로스> 음악도 영화보다 먼저 소개했어요. 어렵게 구한 <룩앳미> 음반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제 고등학교 합창단 시험곡이었죠. 반음계가 많아 음치 골라내는 데는 최고거든요.

-좋은 음악이라고 판단할 때와 좋은 영화라고 느낄 때 같은 심미안이 작용하나요?

=비슷해요. 컴포지션, 콘트라스트, 하모니, 앙상블 등 문학과 음악, 미술은 용어도 똑같다고 봐요. 그리고 그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영화가 되고요. 영화도 문학도 음악도 사심없이 미쳐서 만든 것이 역사에 남아요. 앙겔로풀로스 영화도 혹시 나처럼 가슴 저미며 보는 사람이 없나 뒤돌아보면 반은 자요. (웃음) 그러니까 볼 사람만 보라고 만드는 거죠.

-영화사에서 <월간팝송> 편집장으로 이직하셨습니다. 시작은 지인의 제안이었나요?

=51 대 49 정도로 음악을 영화보다 좋아했는데 운명이 다가온 거죠. 영화사 근무 3년 만에 당시 유일한 음악잡지였던 <월간팝송> 편집장이자 동아방송 DJ였던 나형욱씨가 이민 가면서 저를 추천해 서른살에 편집장이 됐어요. 태창영화사 김태수 사장은 흥행 영화를 잘 고르는 저를 내보내기 싫어 엽총으로 위협까지 했었죠. (웃음)

-당시 <월간팝송>이라는 잡지를 이끌어간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추억하십니까?

=일단 지금보다 음악 듣는 사람이 많았어요. 라이선스는 주로 힙합과 댄스만 나오는 요즘보다 좋은 시절이었어요. 게다가 <월간팝송>은 독점지였으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샀죠.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리는 걸 잡지의 기본 방침으로 삼았고, 실제로 마니아를 양산했어요.

-방금 말씀하신 대원칙은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존재 이유와도 다르지 않군요. 뵙기 전에, 선생님이 해설한 옛 LP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잉베이 맘스틴의 <라이징 포스> 뒷면에는 음악을 발견하고 바로 이튿날 방송에 소개했다고 써 있더군요.

=일본의 전문지 에서는 어떤 무식한 사람이 <라이징 포스>에 0점을 줬더군요. 얼 클루 부류만 듣다가 그런 파격적인 기타를 들어서 그런 거죠. 그 음반을 듣고 바로크 음악을 듣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크 메탈’이란 말도 제가 만들어 붙였죠. 성음에서는 자기네 소속 뮤지션인지도 모르고 판도 갖고 있지 않아서 제가 판을 빌려주고 해설을 써서 라이선스가 나왔어요. 메틀리카나 팻 메시니도 마찬가지 경우인데, 그런 뮤지션들이 우리 프로를 통해 인기를 얻고 방한해서 게스트로 출연할 때 보람이 컸죠.

음악은 생명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월간팝송>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월간팝송>은 모든 FM 프로그램이 자문을 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운명처럼 존 레넌이 80년 12월에 죽었어요. 이상하게도 제 인생엔 그렇게 일이 맞물려요. 당시 <박원웅과 함께>에 존 레넌 추모방송 요청을 받았고, 그 길로 방송 데뷔를 했어요. 그러니까 비틀스는 저의 구원자죠. 제가 그들을 그토록 좋아한 만큼 제게 돌려준 것 같아요.

-감정이 격하셨을 텐데, 첫 방송이 기억나십니까?

=원고없이 질문하는 대로 존 레넌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 하루에 30분씩 고정 코너를 맡았어요. 그러다가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 <황인용의 영팝스>의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박원웅씨쪽에서 안 된다더군요. 전 구속하는 사람이 싫어서 박원웅씨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황인용씨 프로로 옮겼는데 그때 소개한 주다스 프리스트, 헬로윈, 잉베이 맘스틴, 조지 윈스턴 등이 모두 대박을 터뜨렸어요. 청취율도 <박원웅과 함께>를 눌러 그 공로로 <25시의 데이트>를 맡은 거죠.

-가끔 음악 관련 기사를 보면 신인 밴드들이 선생님 프로그램을 요람으로 언급합니다. ‘오메가3’ 같은 밴드는 본인들의 음악을 아예 “<전영혁의 음악세계>풍”이라고 묘사했더군요.

=음악인들이 우리 프로그램을 듣고 공부했다는 사실이 보람있어요. 고교 때부터 가장 열렬했던 애청자가 신해철인데, 지금 제 프로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하고 있죠. 방송에서 “전영혁 때문에 음악을 하게 됐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서울대 갈 수 있는 머리인데 만날 밤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느라고 서강대 갔다”고 했대요. 음악인은 아니지만 국민 약골 이윤석, 그 친구도 우리 애청자였어요. 연대 간 애들은 다 우리 프로 듣다 서울대 못 간 거고, 서울대 간 애들은 제 프로 안 들은 거죠. (웃음) 김세황, 이현석 같은 기타리스트들도 고교 때 엽서를 보냈고, 블랙홀은 <새벽의 DJ>라는 노래를 제게 헌정했어요.

-1990년대 초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분들에겐 대중음악을 비평의 대상으로 끌어냄으로써 예술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숨은 욕심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까요?

=누가 저더러 대중음악평론가라고 하면 나가라 그래요. 대중이 없는 음악이 어디 있죠? 고전음악도 대중음악이에요. 옳은 용어는 장르 구분 없이 뮤직 크리틱, 아니면 뮤직 큐레이터예요. 가요, 팝, 클래식 한 가지밖에 모르면 평론가가 아니죠. 좋은 음악은 하나고, 오직 잘 만들어진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이 있을 뿐이지요.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선곡 기준은 우선 차트와 무관한 음악, 다른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지 않는 음악인 걸로 압니다. 그런 희소가치 외에 적용되는 선곡 기준은, 오직 방금 말씀하신 ‘좋은 음악, 잘 만든 음악’뿐인가요? 진짜냐 가짜냐는 선생님의 귀로 판가름하는 것이고요?

=그렇죠. 오래 하다보니 음반을 보기만 해도 알아요. 저는 (아는 음반은 이미 소개됐다는 뜻이니) 제가 모르는 음반만 사는데, 재킷에 뮤지션의 자존심이 다 들어 있어요. 아무 정보 없이 재킷 보고 내린 판단이 거의 맞아요. 그리고 곡목을 보면 확신이 서죠. 대개 긴 곡이 좋고요. 10곡 이상 든 음반은 가짜일 확률이 높아요.

-그래도 <전영혁의 음악세계> 나름대로 취향의 변천사가 있지 않나요?

=처음 방송을 시작한 1986년은 하드록, 록, 헤비메탈이 세상을 지배한 시대였어요. 어떤 음악이든 르네상스가 있고 사이클이 있잖아요. 80년대에는 그쪽에서 잘하는 애들이 나왔고, 90년대 들어 댄스뮤직이 득세하면서 헤비메탈이 쇠퇴해 좋은 음악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90년대부터는 ECM 사운드, 크로스오버, 클래시컬한 팝을 중점적으로 소개했죠.

-현재 30대 중·후반들은 선생님 프로그램의 안내로 음악을 발견하고 음반을 구입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 얻는 경로가 넓고 다양한 형태로 음악을 접하는 요즘 세대가 듣기에는 동시대의 음악이 유적도 아닌데 ‘발굴’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이해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서 ‘발굴’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기보다 들을 만한 음악을 골라주는 기능을 뜻하는 것이겠죠?

=그게 가장 중요하죠. 사실 음악평론가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감히 평론할 수 없어요. 음악은 생명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실제로 제 프로를 듣던 재수생들이 자살하려다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은데”라고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들으며 공부해서 대학 간 예들도 있어요. 제가 사람도 많이 살렸죠. (웃음) 음악의 위대함을 알기에 감히 글로 쓰기 힘들어요. 저는 평론가도 디스크자키도 뮤지션이 못 된, 2등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뮤지션을 소중히 여겨야 하죠. 제 임무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도 한번도 방송에 소개 못 된 사람들을 속속들이 찾아서 소개하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철저히 전달자로 남고 판단은 청취자에게 맡깁니다

-음악을 글로 평할 수 없다고 믿으셔서인지 선생님이 쓰신 해설을 보면 음악 해석이나 묘사는 거의 없고 정보로 꽉 채워진 건조한 문체입니다.

=사람들은 음악평론을 한다면서 독후감을 써요. 그 자체가 음악평론을 못 쓴다는 의미죠.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알고 싶은 건 개인의 감정이나 평론가의 취향이 아니에요. 저는 음반을 산 사람이 알고 싶어할 바이오그래피와 디스코그래피를 기본으로 넣었어요. 평론가는 되지 말고 될 수도 없다, 가이드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다른 장르 예술의 비평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평론은 문제가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평론가라기보다 가이드, 큐레이터라는 말이 좋다고 봐요.

-그러니까 선생님에겐 방송을 위한 선곡이 곧 비평이겠습니다.

=음반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친한 후배들이지만 음악이 함량 미달이면 아무리 부탁해도 안 틀어요. 그래서 인간관계는 별로 안 좋아요. (웃음) 반면, 자라는 한국 뮤지션은 꼭 제 돈으로 사서 틀어줘요.

-문체도 문체지만 방송 스타일도 극히 건조하십니다. 신변잡기는 물론 없고 음악에 대한 감정적 찬사도 거의 없습니다. 애청자 모임(www.fm24.org)의 박신영 대표에 의하면, DJ의 감흥이 음악을 물들일까봐 염려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고 하더군요.

=음악을 틀어줄 때 선입관을 강요하면 안 돼요. 어떤 DJ들은 음악을 들려주기 전에 “명곡 중의 명곡”이라며 5분 이상 침이 마르게 칭찬하기도 해요. 만약 음악이 그 해설에 못 미치면 그 프로그램은 권위가 없어지겠죠. 전 먼저 음악을 던지고 각자 느낀 다음 코멘트는 나중에 간단히 합니다. 시낭송도 마찬가지예요. 철저히 전달자로 남고 판단은 청취자에게 맡기자는 지론입니다.

-시 낭송 코너는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음악적인 코너입니다. 어떤 의도로 포함시키셨나요?

=예컨대 광복절에 종일 방송을 들으면 아침부터 밤까지 그 얘기만 하잖아요. 그건 싫고 무슨 멘트는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는 논픽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초대손님은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음악평론을 하시는 송기철씨는 음악적으로는 게스트에게 얻을 도움이 없으니, 일종의 배려라고 표현하시던데요.

=예전에 프로그램이 두 시간이었을 때는 초대손님이 있었어요. 사실 그들이 소개하는 음악이 맘에 들진 않았는데 다 우리 애청자들이니까 배려하는 차원에서…. (웃음)

-애청자들이 방송 시간을 12시로 복원하려는 운동도 열심히 벌였습니다. DJ로서 12시와 2시의 차이는 어떻게 체감하세요?

=사연이 몇배나 많이 올라와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6시 배철수씨가 방송하는 6시대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했다면 최고의 인기 프로가 됐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프로그램의 가요 일변도 현상도 얼마쯤 막았을 것이고요.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편성이 문제예요. 왜냐하면 사람들 귀는 똑같거든요. 좋은 음악은 알아요. 그게 아니라면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소개한 여러 뮤지션의 음반이 왜 많이 팔렸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KBS 제2FM도 광고를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프라임 타임으로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옮겨진다면 프로그램의 본질을 해칠 압박이 오지 않을까요?

=첫째 편성을 옮겨줄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광고가 안 들어오면 아예 폐지할 수도 있겠죠.


-<전영혁의 음악세계>처럼 인터넷의 ‘다시듣기’가 유용한 프로가 없는데, 지금은 ‘다시듣기’가 폐지됐습니다. ‘다시보기’를 하는 TV쪽 이야기도 들어보면, 요즘은 케이블 재방송, 다시보기, 불법 다운로드까지 시청 경로가 다양해져서 시청률의 의미가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더군요.

=‘다시듣기’를 할 때는 네티즌 사이에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청취율 1위였어요. ‘다시듣기’가 없어져 우리 프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어요. 저작권 단체쪽에서 프로그램당 받던 저작권료를 방송회당으로 요구했고, 이에 방송국은 응하지 않은 것이죠. 청취자들만 피해를 봤어요. 저희 애청자 평균연령이 67년생이에요. 1986년 방송을 시작할 때 고3이었던 애들이죠. 다들 기반 잡고 일하면서 음반을 구매하는 층인데, 듣기 힘든 시간대에 방송을 하니 예약 녹음을 해서 듣는 일이 많아요.

-음악산업에 대한 FM의 영향력도 상당히 약해졌죠?

=FM이 AM화가 됐으니까요. 1시간에 2곡을 트는 프로그램도 있더군요. 무슨 판을 사고 들을지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 <전영혁의 음악세계>밖에 없으니 시장 불황을 부채질하는 비극적 상황이 왔죠.

-음반 매장이 넓어지고 음악을 구하는 경로, 감상이 가능한 공간은 다양해졌는데도 음악 듣는 환경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기는 힘들군요.

=질적으로는 한 30년 후퇴했다고 생각해요. 70년대 초반 LP 시대에는 광화문에서 프라자호텔을 지나 명동으로 가는 지름길에 레코드 가게가 100곳이 넘었어요. 집집마다 주인의 특색이 있어서 한장씩 사면서 걷는 재미가 대단했죠. 지금은 대형매장에 가면 CD 양은 많은데 우리 프로에 소개할 것은 없어요. 저도 90%는 아마존에서 주문하거나 일본에 가서 사와요.

-LP에서 CD, 또 MP3로 음악 듣는 매체도 많이 변했습니다. 선생님이 느끼는 감각적 차이는 뭔가요?

=저는 LP를 권하고 싶어요. 유럽에서도 ‘로맨티시즘으로의 회귀’라고 LP를 다시 찍어요. CD의 장점은 잡음이 없다는 건데 저음이 나쁘고 소리가 차가운 단점이 있어요. LP는 잡음이 있지만 포근한, 인간의 정서에 가장 맞는 소리예요. MP3로 듣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음악은 나중에 LP를 사서 턴테이블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안 들렸던 소리가 들릴 거예요. 또 리모컨만 작동하면 비만의 원인도 되고 사람이 매정해져요. 제가 살이 안 쪘잖아요? (일어서서 실연을 하며) LP는 이렇게 판을 꺼내서 먼지도 닦고 끝난 다음에 집어넣는 자체가 운동이 되니 다이어트도 되면서 훈훈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LP만으로 방송하는 날도 있는데 호응이 더 커요.

-30대 후반이 청취자 평균연령이라면 10대가 주축이던 초기 청취자가 물갈이되지 않고 프로그램과 같이 나이들며 커뮤니티를 형성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15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려고 공간을 빌리는 데도 관계자 중 애청자가 있어 일이 쉬웠다고 들었습니다. 일종의 ‘음악세계’ 서브컬처가 있는 것 같아요. 핵심 애청자들을 ‘수호천사’라고 부르시죠?

=청취자 모임은 유니텔과 네이버, fm25 사이트 세곳에 있어요. 수호천사는 단순한 회원이 아니라 제가 뽑은 30명의 1967년생들이예요. 제 중매로 결혼한 커플도 있죠. ‘수호천사’가 되면 제가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하고 제 라이브러리에서 갖고 싶은 음반을 50장이건 100장이건 뽑아가라고 해요.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정원을 늘려야죠.

 

-선곡 취향의 변화에 반발한 편협한 청취자들이 팬 사이트를 해킹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일이 있죠. “월급 받으면서 왜 그렇게 성의없이 방송하냐. 그만두고 이소라씨가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면 1967년생 애청자들이 교통정리를 해요. “이소라씨가 두분인데 어느 쪽을 말씀하시냐?”고 친절한 댓글도 달고. (폭소)

-훗날 방송을 떠난 뒤에도 음악과 무관하게 사는 일은 상상할 수 없겠죠? 수호천사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공간을 계획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인생에는 택일이 필요한데 전 일하다 죽기를 택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방송국에서 내쫓지 않는 한 계속할 거예요. 수호천사들끼리 2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는데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공간을 자기들이 열겠다고 하더군요. 난 오기만 하면 되니 신경쓰지 말라고요.

-아직도 선생님의 손이 닿지 않은 음악이 세상에 많다고 느끼십니까?

=물론이죠.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살고 있는 거죠. 전문가는 멈추면 안 돼요. 이만하면 많이 안다 싶어서 걸음을 멈추고 가진 걸 퍼내면서 살면 실패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전영혁의 음악세계> 청취자들도 그 점 때문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것이죠.

 

(글) 김혜리

vermeer@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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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ream
Title: Sunshine Of Your Love
Transcribed by: Collin Middleton
Email: stickboy20@hotmail.com

Here's an awesome song with one of the most recognizable riffs in music.  
The verse and chorus to the song are pretty easy, but Clapton has a bitching 
solo in there that's quite tough.  I'm pretty sure this is right, or atleast 
the closest thing to correct I've seen.  E-mail me with any comments or questions.

h=hammer-on
p=pull-off
b=bend
~~~~~ = hold note

Song Order: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2
Chorus part 2 x 1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2
Chorus part 2 x 1

Solo

Riff 1 x 6 
Riff 2 x 2
Riff 1 x 2
Chorus x 5
Chorus part 2 x 1

Riff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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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0---12--------------------------------------------------------
------------------------12--11--10------b8------------------------------------
------------------------------------10------10--------------------------------
 It's getting near dawn.....                                                  

Riff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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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0---12--------------------------------------------------------
------------------------12--11--10------b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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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 be with you darling soon....                                           

Ch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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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7-7-7-------------5---------5-----------------------------------------------
--7-7-7-------------3---------5-----------------------------------------------
--5-5-5-----------------------3-----------------------------------------------
        I've been waiting so long.......                                      

Chorus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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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7-7-7----------5---------5------7-7-7-7-7-7-7-7-----------------------------
--7-7-7----------3---------5------7-7-7-7-7-7-7-7-----------------------------
--5-5-5--------------------3------5-5-5-5-5-5-5-5-----------------------------
        In this sunshine of your love............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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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12--b12-------12-b12----b12---12--b12----------b9p7--9--7--b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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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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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7h9--b9---b9----7h9p7-----------b10---b10---b10------------------------
--7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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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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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0----b10----------10--7--b9-----7---------b9------------7h9---b9----------
---------------------------------9--------------------7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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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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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hb9---b9--b9--7--9---7h9--7----------14-----12--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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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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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h11------------b10-------10--b12-----------b12--12--1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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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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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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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h12-10h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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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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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원 고엽제소송 승소 결정에 베트남 찬사

일본이랑은 쫌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법원 고엽제소송 승소 결정에 베트남 찬사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 27일 "정의가 살아 있음 보여준 기념비적 판결"
텍스트만보기   연합뉴스(yonhap)   
(하노이=연합뉴스) 김선한 특파원 = "한국 법원이 정의를 구현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 6795명에 대해 미 제조사 다우케미컬과 몬산토가 63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지난 26일 한국법원의 결정 직후 고엽제 최대 피해국인 베트남이 찬사를 보냈다 .

레 중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공식성명을 통해 한국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제조자들은 고엽제와 이의 주성분인 다이옥신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미국 및 한국의 참전병사와 베트남인 등 피해자들에 대해 법적, 정신적 및 도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고엽제 피해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베트남고엽제피해자협회(VAAA)의 한 소식통도 "한국법원의 이번 결정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내외의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소식통은 이어 "이번 결정은 그동안 베트남측 피해자들이 제조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미 법원에 의해 기각당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앞으로 제기할 유사소송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작년 베트남측 피해자들이 뉴욕 주 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가 고엽제 환자들이 앓고 있는 질환이 다이옥신과 직접 연관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배심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각한 것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고 지적햇다.

그는 그러나 한국 법원의 이번 '용기 있는' 결정이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향후 미 제조사들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쩐 쑤언 투 VAVA 부회장은 작년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전 당시 미국은 20여 가지의 각종 고엽제 8천만ℓ를 무차별 살포했으며, 살포 지역 규모는 베트남 남부 지역의 4분의1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엽제에 직접 노출된 사람 수도 "210만 명에서 480만 명까지"라고 추산했다. 그는 미국이 울창한 밀림을 제거하고 정글을 공산군이 은신지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75년까지 21년 동안에 걸쳐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 당국이 1천개 이상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조사했다고 설명하면서, 이 결과 현존하는 독성물질 가운데 가장 인체에 위험한 다이옥신의 경우 지구상에서 높은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쩐 부회장은 다이옥신이 반감된다 하더라도 인체에 20년 이상 잔류하는 데다 토양의 경우 2m까지 파고들어 오염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암, 유전자체계 불균형, 기형아 출산, 유산, 신경계 파괴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호찌민의 뚜 두 병원의 응웬 티 응옥 푸엉 원장도 고엽제 환자인 여성이 출산한 294명의 어린이 가운데 5.4%가 기형아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 비율은 다이옥신 등 유독물질에 감염되지 않는 여성이 출산한 기형아 평균비율 0.4%를 훨씬 웃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엉 원장은 이와 함께 고엽제에 감염된 임신 여성의 사산아 비율 역시 0.34%로 그렇지 못한 여성의 0.02%를 상회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VAVA측은 또 같은 지역에서 고엽제가 살포된 직후에 태어난 여성의 경우 이전에 태어난 여성보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비율이 1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shkim@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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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박근혜 색깔론’ 이제는 색맹단계”

 

 

 

심상정 “‘박근혜 색깔론’ 이제는 색맹단계”
민노당, ‘박 대표 기자회견 수준미달 정쟁 인사’…민주당 ‘둘 다 똑같아’
입력 :2006-01-26 17:07   권대경 (kwondk@dailyseop.com)기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26일 신년 기자회견 직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은 재정지출개혁과 작은 정부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극소수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밝힌 회견’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노동당은 심상정 원내수석부대표와 박용진 대변인의 잇따른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과 박 대표를 중점적으로 비난했다.

심 수석부대표는 “오늘 박 대표는 한나라당이 극소수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솔직하게 밝혔다. 박 대표 말대로라면 한나라당은 서민을 팔아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부유층의 세금을 더 걷는데 반대하고, 서민을 위한 재정정책을 포기한 작은 정부를 꿈꾸는 정당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더 이상 서민과 민생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정중하게 촉구한다. 이는 한나라당의 과감한 감세정책 수혜자가 중산층과 서민이 아니라 돈 많은 부자들과 잘나가는 수출 대기업이기 때문이다”면서 “얄팍하게 결식아동과 장애인을 언급하며 자신을 숨기지 말고 이제 가면을 벗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무엇보다 심 수석부대표는 박 대표의 ‘작은 정부’ 주장에 날을 세웠다.

그는 “당연히 재정을 알뜰히 지출해야 한다. 이는 작은 정부든 큰 정부든 모두에게 필요하다. 오늘 박 대표가 작은 정부의 모범국가로 꼽은 미국와 영국의 재정규모는 각각 GDP대비 36%와 44%이고 OECD 평균도 41% 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정규모는 고작 27%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심 수석부대표는 이어 “복지국가로 부러움을 사는 스웨덴은 무려 57% 이다. 우리나라 정부 재정은 지금도 서민들 아픔을 해결하기엔 너무 작은 데 더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박 대표가 ‘구시대 사회주의 유물’이라 부분에 대해 심 수석부대표는 “박 대표는 우리가 비교하는 OECD 선진 국가들을 구시대 사회주의의 유물이라 몰아세우고 있다. 색깔론이 지나쳐 이제는 색맹 단계에 이른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심 수석부대표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박 대변인은 “일주일 만에 국가재정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대통령과 수준미달의 정쟁을 신년인사로 건네는 제1야당 대표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찹하기 그지없을 것이다”면서 “한나라당이 자랑스러워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와 고성장의 기억 어디에도 청계천 판자촌과 빈민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없었듯이 분배정의 실천 계획이 없는 경제성장 주장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만을 낳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구태의연한 색깔론과 기업과 가진 자 중심의 경제정책·장외투쟁을 고수하는 고집불통으로 가득한 기자회견에는 감동도 희망도 미래도 없었다”며 “국민들은 박 대표가 지켜가겠다던 ‘대한민국 정체성’에서 유신의 불쾌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강조에서는 반공색깔론의 음습함을, ‘시장경제’를 꽃피우겠다는 다짐에서는 사회 불평등 심화의 어두운 내일을 떠올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김재두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사학법으로 지난 한 달 보름간의 기나긴 장외 투쟁도 모자라 계속적으로 강경 투쟁을 하겠다는 것은 실망스럽다. ‘도 아니면 모’라는 인식으로 국회를 운영한다면 현 정권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김 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하는 동안 각종 민생 현안이 깊은 동면 속에 빠져있고 현 정권의 부패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윤상림게이트’도 효과적으로 파헤치거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평가한 뒤 “장외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복귀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의 6자회담과 관련한 언급에 대해 김 부대변인은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현 상황에서 북한의 위폐문제를 들고 나옴으로 인해 향후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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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박근혜 기자회견, 지나치게 정치화했다” 혹평

일본의 2분1, OECD의 3분의1, 영국의 4분의1 수준 밖에 안 되는 복지재정... 일본도 역시 후진국... 기냥 경제 대국

 

 

진중권 “박근혜 기자회견, 지나치게 정치화했다” 혹평
27일 SBS전망대, IMF로 초래된 사회양극화현상이 현정권 3년의 실정?
입력 :2006-01-27 09:06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한 ‘작은 정부’의 현실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IMF로 초래된 사회양극화현상이 참여정부 3년의 실정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화했다고 지적했다.

진 씨는 27일 오전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를 통해 전날 박 대표의 발언을 소개했다. 박 대표는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 중에서 과연 어느 길이 선진한국으로 가는 올바른 길인지 당당히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며 참여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에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진 씨는 자신의 의중을 바로 드러내기에 앞서 각 당의 반응을 바로 소개했다. “사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책임 있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정치공세화하고 있다”는 열린우리당의 반응과 “새해가 되었어도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무려 30분 동안이나 설명했다”는 민주노동당의 혹평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증세냐 감세냐, 국민의 선택을 받자’는 박 대표의 주장에 대해 그는 “일단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선거의 쟁점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며 “지역색과 색깔론의 소모적 논란이 앞으로 정책대결로 변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단 호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지만 진 씨는 이내 박 대표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는 “박 대표가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을 노무현 정권 3년의 실정으로 돌린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한 것이라는 느낌”이라며 “사회양극화는 IMF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현상이고 또 불황이냐 호황이냐의 순환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자 세계적 추세”라고 지적했다.

특히 ‘작은 정부’ 주장에 대해서는 “복지의 과잉을 걱정하는 선진국에서는 말이 될지 모르나 국민소득 1만 달러의 시점에서 일본의 2분1, OECD의 3분의1, 영국의 4분의1 수준 밖에 안 되는 복지재정을 가지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얘기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또 “엄청난 재정을 요하는 기초연금제의 도입을 주장하며 동시에 축소재정을 얘기하는 것도 모순적”이라고 말해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지적한 내용에 공감을 표하고, “감세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미 법인세를 한 차례 인하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마지막으로 진 씨는 ‘사회양극화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진단과 처방은 다르지만 아무튼 이 문제만큼은 눈앞의 선거가 아니라 머나먼 미래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표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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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기존질서 엎으려는 ‘국제적 저항’

68을 논하지 않고 현대 서구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8운동 기존질서 엎으려는 ‘국제적 저항’
문화혁명이었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이었나
세대반란이었나 카니발이었나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서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되짚어본다
한겨레 오철우 기자
▲ 68운동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들녘코기토 펴냄. 1만2000원
서구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말 가운데 ‘68세대’가 있다. 1968년 절정에 달했던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참여했고 그에 감화받았던 세대다. 세대로 계산하면 벌써 40여년 전 일이니, 어찌보면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아득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68운동’에 대한 분석은 다 끝나지 않는다.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이매뉴얼 월러스틴)라는 평가가 있듯이, 그 거대함은 한 세대의 시간만으로 다 어루만질 수 없기에 말이다.

독일 역사학자 잉그리트 길혀-홀타이(빌레펠트대학 교수)가 쓴 <68운동>은 해일처럼 몰아쳐 서구사회의 정신과 제도를 뒤흔들었던 1968년 운동의 기승전결을 되짚으며 분석한 책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에 68운동의 핵심을 빠르게 정리한 이 책은 68운동이 자양분을 준 지금의 서구 시민사회와 저항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만하다.

68운동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은이 길혀-홀타이 교수가 열거했듯이 ‘학생봉기’, ‘세대반란’, ‘문화혁명’, ‘세계체제 혁명’으로, 또는 ‘카니발’이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으로 이해됐다. 저항하는 젊음의 열병 같은 축제였을까, 정신문명의 새로운 자각이었을까. 한 나라 안의 격동이었을까, 세계 차원의 새 살 움틈이었을까. 평가자들마다 다른 시선들은 그 때마다 다른 이름을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여기에 또하나의 이름을 얹는 것일까.

길혀-훌타이 교수의 분석은 이전의 68운동 분석들과는 다르게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독특함은 68운동이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기존 권위에 대한 전사회적 대항의 기획’이라는 닮은꼴로 일어난 국제적 운동이었을 강조하는 대목에 담겨 있다. 지은이는 각 나라마다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역사비교의 방법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저항의 과제는 어느 나라에서건 언제나 ‘참여 확대’와 ‘의식 개혁’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국제베트남회의, 혁명을 배태

1968년 앞뒤의 시절에 서구사회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책의 첫 장면은 베트남혁명을 지지하여 1968년 2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베트남회의’ 안의 긴장과 활기다. 여기에 참여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의 신좌파 대표들은 구좌파과는 뚜렷히 구분된 새 세대들이었다. 68운동의 중심이었다. 회의 뒤에 1만5천여명이 참여한 다국적 평화행진은 68운동이 바로 이들을 잇는 국제적 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 사건으로 묘사된다.

신좌파 지식인의 새로운 인식은 현실사회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기였다. 무력한 선배 좌파들은 새 세대 좌파들한테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반자본의 목소리에 더해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권위와 관료주의는 배격됐다. 또한 신좌파는 실존주의와 심리분석을 그들의 사상 지평에 과감히 끌어들였고, 집단 해방과 더불어 개인 해방을 부르짖었다. 개인의 생활세계, 가족, 성적 관계는 강조됐다.

▲ 비틀즈의 1967년 새 앨범 <페퍼 상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의 표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앨범은 히피 문화의 영향이 깊게 베인 작품으로,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자들이 벌인 펜타곤 앞 시위의 모습과 닮아 미국 68운동의 시위문화에 종종 인용됐다. 사진 <68운동> 102쪽에서.
신좌파와 대항문화의 새로운 자각엔 여러 요소들이 접합됐다. 체 게바라와 호치민은 영웅으로 떠올랐고, 히피, 록, 비틀즈, 밥 딜런은 이들의 문화가 됐다. 자유분방한 하위문화는 찬양됐다. 사르트르, 마르쿠제, 프란츠 파농의 책들은 이들의 필독서였다. 대학 캠퍼스에선 대학과 교수사회의 권위에 반발하는 자율과 자치, 평의회의 깃발이 점거농성과 시위 속에서 세워졌다.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코뮌 형태의 대안적 집단 생활공동체의 창설이 실험됐다. ‘조직보다 직접행동’을 내세운 그들은 갖가지 깜짝 시위를 동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맹, 독일 사회주의학생연맹, 프랑스 혁명적 공산주의청년 같은 신좌파들이 있었다.

참여와 저항의식, 보물로 남겨

지은이는 68운동의 붕괴 과정에서도 닮은꼴을 발견한다. 조직과 폭력의 문제는 붕괴를 촉진했다. “68운동은 조직문제와 대결하는 가운데, 경쟁하는 집단이나 정당, 분파, 하부문화 속으로 용해된다. 나아가 68운동은 폭력문제와 대결하며 분열되고 지지를 잃는다. 행동의 급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문제가 조직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든 것이다.”(154쪽) 예컨대,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명은 폭력시위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논쟁을 벌이다 분열해 1969~70년 해산했으며 무장투쟁을 주장한 일부 그룹은 지하로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붕괴과정에서 “68운동은 그 신성화나 악마화에 관계없이 공히 일상의 정치투쟁을 위해 도구화됐다.”(175쪽)

68운동은 무엇을 남겼고, 68세대는 무엇으로 남았는가. 68운동이 품은 ‘저항의 구상’은 얼마나 실현됐는지를 따져볼 때,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실패와 부분적인 성공’으로 비쳐질 만하다.

신좌파 그룹은 기존 조직에 복귀해 다시금 개인을 집단에 종속함으로써, 자기 결정과 개인 해방을 목표로 삼은 68운동의 반권위주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또 68운동의 정서는 대안적 대항문화의 환경에서 계속됐지만 동시에 그것은 여러 차례 단순화해 때때로 하부문화의 우상화를 낳기도 했다. 68운동의 후계로 등장한 여성운동과 대안운동, 생태운동 같은 운동은 68운동이 그린 구체적 유토피아와 비교할 때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전 사회적 대항의 구상을 펼쳐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값진 경험은 기억의 공동체에 남았다. 지은이는 68운동의 영향이 조직적으로 계승되진 못했지만 서구사회에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한다. “68운동은 이런 의식 전환이 무관심의 타파와 활발한 사회 ‘참여’, 그리고 상품사회와 소비사회에 대한 비타협과 거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나아가 68운동이 선전한 이행 전략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사회 참여를 통한 개인의 변화가 ‘다른’ 사회를 낳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178쪽) 기존 질서 전체에 맞서는 ‘대항의 구상’을 지닌 것으로는 “최후의 사회운동”이었던 68운동이 남긴 보물은 참여와 저항의 의식이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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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아내 먹이려고 도둑질한 40대 가장” 누리꾼들 울렸다

 

 

 

장애인 아내 먹이려고 도둑질한 40대 가장” 누리꾼들 울렸다
군산경찰서는 사연 알고 불구속입건…일부 악플러들 댓글에 눈쌀
입력 :2006-01-26 21:01   유성호 (bonjourpoem@dailyseop.com)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개의 경우, ‘설’의 이미지는 단란한 가족의 형상으로 다가든다.

그러나 날로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문제는 어떤 이들에게 명절을 명절답게 지낼 수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26일 연합뉴스에는, 설을 앞두고 임신한 장애인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위해 대형 할인점에서 식료품 등을 훔친 40대 가장이 경찰에 붙잡혔으나 딱한 사정이 인정돼 불구속 입건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26일 전북 군산에서 무직자 김모 씨(41)가 21일 오후 1시께 군산시 경원동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가위로 도난 방지용 라벨을 잘라낸 뒤 우족(牛足)과 생선, 장난감 등 17만원어치를 옷 속에 숨겨 가지고 나오다 적발돼 입건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모씨의 범행 동기는 작년 7월 실직한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수입이 끊기면서 다음 달 출산하는 아내(41.지체장애 2급)와 아들(8)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게 되자 그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만 것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하는 생각에 물건을 훔쳤지만 김씨는 오랜만에 먹는 고기반찬과 새 장난감에 즐거워하는 아내와 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김 씨는 이 할인점에서 25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갈비와 생선, 출산용품 등 150만원어치를 훔쳤으며 이중 일부는 환불해 현금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영수증도 없이 여러 번 물건을 반품하는 김씨를 수상히 여긴 직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경찰에 넘겨진 후,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남의 물건까지 훔치게 돼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일자리를 구해 떳떳하게 돈을 벌도록 노력하겠다”고 눈물로 선처를 호소해, 불구속 입건으로 풀려났다.

이에 대해 군산경찰서 측은 “김 씨를 구속할 경우 거동을 잘 못하는 부인과 아들의 생계가 막막해지는데다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불구속 입건했다”며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앞으로는 올바른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판 장발장 돕자” 누리꾼들 호응 이어져

이 같은 소식이 네이버와 엠파스 등 주요 포털사이트 뉴스 코너에 올려지면서, 누리꾼들은 검찰과 법원에 김 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한편 김 씨를 돕고 싶다면서 계좌번호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댓글을 연이어 올리고 있다.

누리꾼들은 “사흘 굶어 도둑질 안할 사람이 없다는 옛 말이 맞는 것 같다”며 사건의 주인공인 김 씨를 ‘2006년판 장발장’으로 규정했다.

아이디 ‘mafiaking’는 “나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그 분의 마음 십분 이해한다”며, “능력이 안될 때 가장으로 느끼는 비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다한들 딸린 식구가 굶는것 그것만큼 비참한 기분 없겠죠. 힘 내시구요. 조금 힘든 일이라도 그 정성으로 일자리를 구하면 꼭 가정에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행복한 가정 꾸리세요”라고 적었다.

아이디 ‘namekkt’도 “우리나라의 복지환경이 더 발전하여 이제 명절이든 언제든 저런 기사를 안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또 아이디 ‘ran0907’은 “아이 둘 가진 엄마로써 눈물이 난다”며 “한 쪽은 명품 바람에 낭비에 또 낭비 바람인데, 한 쪽에선 굶는 사람, 버려진 아이들, 버려지고 병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있으니 안타깝다”고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양극화 현상을 비판했다.

김 씨와 같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을 비판하는 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아이디 ‘bach00’는 “예산이 남아돈다고 괜히 엄한 가로수를 뽑았다가 다시 심는 뻘짓거리 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적었다. 또 아이디 ‘bokgil82’도 “청계천에 30억 짜리 조형물 설치할 돈으로다가 이런 실업자 도와주면 얼마나 좋아 썩을 놈들”이라고 비판했다.

아이디 ‘hatmaker’는 “가족! 처자식이 뭐길래?”라며 “그도 도둑질로 처자를 먹여 살리고 싶진 않았겠지요? 지금 사회의 바닥에서는 일자리가 고갈되어진지 오래. 그저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 남들은 모두 먼데에서 봄을 만끽하건만 차가운 겨울에 발가벗겨 홀로 남겨진 이들의 쓸쓸함. 오늘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라고 이번 사건의 의미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몇몇 누리꾼들은 이 사건과 별반 연관이 없는 ‘대북 퍼주기 논쟁’과 ‘황우석 사태’에 대한 댓글을 반복적으로 달아 다른 누리꾼들로부터 “검찰에 처벌되어야 할 ‘악플러’들은 바로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라는 빈축을 샀다.

한편 김 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해 불구속 입건을 결정한 군산경찰서 관계자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에 사는 한 독지가가 김 씨를 돕고 싶다는 전화를 걸어오는 등 김씨를 돕겠다는 전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우려한 김 씨가 자신의 범행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어서 도울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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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철학' 정면 충돌

제목이 잘못됐다. 수첩 공주한테 철학은 니미

 

 

'증세'냐, '감세'냐
노무현-박근혜 '경제철학' 정면 충돌
[분석] 신년 회견으로 본 3대 논쟁... 본격적 정책 토론 불가피
텍스트만보기   김종철(jcstar21) 기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색깔은 분명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신년회견 내용을 보면 그렇다.

'세금을 늘릴 것이냐, 말 것이냐'로 시작된 세금 논쟁은 정부 역할과 재정문제, 양극화 해법 등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장 증세 개혁을 포기하긴 했지만 증세를 둘러싼 여야간 논란은 여전하다. 올해 사회경제적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 해법에 대한 인식차도 크다. 재정지출을 통한 복지확충과 사회적 일자리에 대해 대폭적인 정부 구조조정과 규제완화가 맞서고 있다.

이제 공은 국민에게 넘어왔다.

박근혜 대표는 26일 기자회견서 이를 두고 국민의 선택을 받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사회경제적 해법을 둘러싸고 여야간 별다른 차이가 없던 과거와 달리 세금논쟁으로 촉발된 '노무현-박근혜의 경제논쟁'에 국민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관심거리다.

논쟁 1. 증세 - 감세 "늘리진 않겠지만 필요" 대 "과감히 세금 줄여야"

노 대통령은 '당장'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세금을 늘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무리하게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 "세금 올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세금논쟁의 단서가 됐던 지난 18일 신년연설에 대해서도, "우리 재정과 복지 지출 규모에 대해 책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어, 정부의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효율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 대한 탈루소득 과세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지는 남겨놓았다. '현행 세율과 조세체계안의 감면제도 개선'이라든가, '세원 발굴' 등을 언급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세원을 발굴하고, 다른 예산을 깎아도 복지수요를 충족하는데 재정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노력하겠지만 한계가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또 지금은 증세보다 감세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봐야하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의 감세론에 각을 세웠다.

박근혜 대표의 입장은 분명하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집권하면 과감한 감세정책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발상의 전환'을 주장하면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과감한 감세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감세내용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국회때 한나라당이 내놓은 '9조원 감세안'이 큰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조세부담률이 선진국과 비교해 낮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민 우롱', '말장난'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비판했다. 그는 "국가 재정이 국민총생산(GDP)에 차지하는 비율을 선진국과 단순 비교해 세금인상 근거로 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말장난에 불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부처예산 일정비율 일률 삭감과 장차관 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 불필요한 위원회 폐지와 직급 조정을 밝혔다.

논쟁 2. 재정과 정부 역할 "선진국 수준 확대 필요" 대 "잘사는 나라는 작은 정부"

정부의 재정 확대를 둘러싼 정부 역할론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문제 역시 세금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 재정 지출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인식차는 복지문제 해결에 대한 경제철학적 접근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연설에서 "우리의 재정규모는 GDP 대비 27% 수준으로 미국(36%)·일본(37%)·영국(44%)·스웨덴(57%)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의 나라들이 중앙정부 재정의 절반 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는데 우리는 1/4 밖에 되지 않고 정부정책에 의한 소득격차 개선효과도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복지문제 해결 등을 위해 정부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처럼 복지 재정이 낮은 수준에서, 복지과잉으로 경제성장에 지장이 있을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 정부의 '좌파정부' 논란에 대해서도, "결코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재정확대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를 '큰 정부'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는 실패로 끝난 구시대 사회주의 유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매년 재정을 앞당겨 쓰고, 추경예산을 편성했다"면서 "지난 2년은 세입부족사태까지 빚으면서 재정확대를 했지만 경제는 어렵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작은 정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치고 '큰 정부'는 없다고 단언했다. '작은 정부'의 모범으로 미국과 영국을 꼽았다. 이어 한나라당이 제시한 국가건전재정법을 받아들이고, 재정 건전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웨덴을 비롯해, 핀란드 등 서구 유럽 국가들의 재정모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또 재정지출 감소 등 정부 역할을 축소하고, 감세를 통해 중산서민층의 복지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로 남는다.

논쟁 3. 양극화 해법 "사회적 일자리 늘려야" 대 "기업 투자 활성화가 먼저"

올해 사회경제적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랐다. 노 대통령은 "경제 전체를 보면 잘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소득 계층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정규직 비율이 크게 늘면서 일자리도 양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시장이 줄어들어 경제가 장기적으로 저성장으로 들어설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 해법은 일자리 창출이다. 이어 ▲중소기업 활성화 ▲금융·물류 등 고급서비스업 육성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 보호법안 처리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 일자리 이외에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사회보장예산 확대 ▲기초생활보호대상자 확대 ▲긴급복지지원제도 시행 등을 약속했다.

박근혜 대표는 양극화의 주범은 "현 정권이 3년 동안 만들어 놓은 경제 불황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고성장의 길로 다시 나가야 한다"면서 성장제일주의에 중점을 뒀다. 성장 가치를 인정하고,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인정하라고 강조했다.

해법으로 기업의 투자활성화를 꼽았다. 투자 없이 일자리도 없고, 소득과 세금수입도 없다고 밝혔다. 투자를 살리지 않고서는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 대표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노사관계든, 정부규제든 투자 걸림돌을 과감하게 제거해야하며, 기업들의 투자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경제도 살고, 일자리도 창출되고, 양극화도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대표는 아예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를 놓고 국민의 선택을 요구했다. 박 대표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논쟁과 토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선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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