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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라면?

그림이 좋아서리 퍼간다.

 

 

최윤정 2006.01.24 19: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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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최고 핀란드, 경쟁력 1위인 까닭

 

 

 

세금논쟁, 제대로 된 싸움 시작됐다
[진단-윤종훈 회계사] 세금 최고 핀란드, 경쟁력 1위인 까닭
텍스트만보기   윤종훈(ydh001) 기자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연설에서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조세제도를 바꿀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며 세금논쟁에 불을 지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불붙은 세금논쟁, 이제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세금논쟁은 민주와 반민주, 지역감정 등에 의해 나뉘었던 과거의 정치구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구도를 만들 것이다. '국보법 폐지'의 구호 아래 하나가 되었던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세금논쟁은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을 던져줄 것이고, 서로에게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확인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98년의 일이다. 당시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은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였는데, 이를 과세사업자로 되돌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전문직이 모두 반발하고 나섰다. 평소에 언론을 통하여 진보주의자로 이름을 떨치던 유명인사들 역시 강하게 반발해 필자가 매우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몇 년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후보의 가장 큰 공약은 변호사를 다시 면세사업자로 돌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몇 달 전 모 노동조합산별연맹의 간부를 대상으로 조세정책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 진보정당의 지지자로서 '조세정의'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주장한 조세정책 중 자신이 속한 산업에 불이익이 되는 부분에 대하여는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의 가치는 자신에게 손해가 나지 않는 한에서 의미가 있다고 믿는 자는 유사 진보주의자일 뿐이다. 세금논쟁이 점차 깊어질수록 이러한 유사 진보주의자들이 구별될 것이다.

지난 1월 18일의 대통령 신년연설은 세금논쟁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대응을 보면 과연 제대로 준비를 하고 화두를 던진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일부 언론에서 대통령의 연설을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자 모두 놀란 토끼눈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을 말던가!

좀 더 제대로 된 세금논쟁을 위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보여줘라

우선, 세금은 걷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걷는 것이다. 외국과 비교하여 조세부담률이 낮으니 세금을 좀 더 거두어야겠다는 식은 백발백중 깨지게 마련이다. 먼저, 세금을 어디다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그림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쓰겠다고 제시하지 않았냐고? 그걸로 됐다고 믿는다면 그야말로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조세부담률을 높이는데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면 중산층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소외계층을 좀 더 도와주어야 한다'는 개념으로서 복지확대나 양극화해소에 대해 심정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이는 '착하게 살자'는 구호만큼 너무도 당연한 도덕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자기의 주머니에서 돈을 좀 더 꺼낼 만큼 적극적 지지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중산층을 움직이려면 세금을 좀 더 거두어 이러한 방향으로 쓰는 것이 성장 동력이 돼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자신에게 도움이 됨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WEF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국가

2005년 순위

2004년 순위

핀란드

1

1

미국

2

2

스웨덴

3

3

덴마크

4

5

타이완

5

4

싱가포르

6

7

아이슬란드

7

10

스위스

8

8

노르웨이

9

6

오스트레일리아

10

14

 

ⓒ (출처 :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
2005년에 발표된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핀란드가 1위, 스웨덴이 3위이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조세부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핀란드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조세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므로 국가의 기능은 가능한 한 축소하고 조세부담률은 낮아야 경제가 좋아 진다. 그런데 조세부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국가경쟁력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다니?

그 이유는 인적 자원에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외국인 지분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세금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핀란드를 떠나지 않는가? 노키아의 기술력을 유지해줄 만큼의 유능한 인력을 공급받는데 핀란드가 최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조세부담률은 높지만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를 함으로써 유능한 인적자원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여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교육을 사적 시장에 맡겨놓고 국가자원은 도로 닦고 공장 세우는데 대부분 소진하였다. 경제 관료와 보수주의자들은 아직도 눈에 보이는 뭘 세워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실제로 골프장 300개만 세우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헛소리도 한다).

진보는 사람을 믿고, 보수는 자본을 믿는다.

"보육과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세금이 학원비를 대신합니다."


무상교육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지만, 공공근로 수준의 몇 만개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실업부조, 직업중개, 직업훈련 및 평생학습, 사회적 일자리 창출, 노동시장 조정정책 등을 총괄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70년대 '수출만이 살길이다' 수준으로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2. 조세부담률을 높이는데 방향과 순서가 있어야

조세부담률을 높이는데 있어서도 확실한 방향성과 이에 따른 순서를 제시해야 한다. 일단, 조세부담률을 높인다고 하면 대부분 기존의 세율이 올라가거나 새로운 세목이 신설될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므로, '지금 거두어야 할 세금은 제대로 거두고 있나?'는 문제제기가 뒤따를 것이다.

최근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GDP 대비 약21%에 이른다고 한다. 스웨덴의 경우 3~4%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만약, 투명성을 높여 탈세 규모를 축소시키는 제도 개선 없이 단순히 기존의 제도에 세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방향으로만 진행한다면, 기존의 성실한 납세자에게만 덤터기를 씌우는 꼴이 되어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단순 계산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하경제규모를 선진국 수준으로만 낮추어도 조세부담률이 4% 정도는 올라간다. 투명성을 높여 탈세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①실물거래의 투명성 ②예적금 거래의 투명성 ③유가증권 거래의 투명성 ④부동산 거래의 투명성 을 높이는 제도 개선 방안(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추후에 논의하고자 한다)을 동시에 제시해야 소위 '풍선효과'에 의한 부작용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투명성을 높이는 위의 제도개선 효과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기 위하여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따라서 근본적인 조세개혁 방안을 전면에 내세우되 과도기적인 재원마련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단 그 실효성과 정당성이 의심되는 비과세감면을 대폭 축소하면, 세수증대 효과는 당장 나타나므로 이에 대한 시행이 시급하다. 그리고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 특혜를 준 법인세 및 소득세 인하, 특소세 축소 등의 조치를 원위치 시켜야 한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나서도 세원이 부족할 경우에 비로소 추가적 세율 인상이나 한시적인 목적세 신설 등의 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선거에서는 조세정책이 가장 큰 이슈가 되며, 조세정책이 각 정당의 정체성을 구별하는 가장 큰 잣대가 된다. 재원마련 방안이 없는 장밋빛 공약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진국 국민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이다.

세금논쟁이 출생지 또는 20여년전 청년시절의 경험과 인맥 등과 같이 과거에 의해 갈라놓은 현 정치구도를 미래에 대한 비젼에 따라 재편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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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는 삼풍백화점 붕괴의 정신적 버전"

 

 

 

황우석 사태는 삼풍백화점 붕괴의 정신적 버전"
[인터뷰] <우리시대의 상식론> 낸 서강대 박호성 교수
텍스트만보기   조성일(sicho) 기자   
▲ 팔자에 없는 '국'자가 들어간 매체인 '국정브리핑'에 칼럼을 연재했던 서강대 박호성 교수.
ⓒ 조성일
국정홍보처에서 만드는 <국정 브리핑>(www.news.go.kr)에 들어가면 '박호성의 상식론'이란 칼럼을 만날 수 있다. '서강대 교수'로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 박호성'이 맞다.

'그 박호성'이라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매체에다 글을 쓰느냐"는 핀잔을 들어도 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박호성'은 '진보 지식인'라는 낱말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국정 브리핑>과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박호성'은 2004년부터 2005년 12월까지 <국정 브리핑>에 몇 년 전 안식년을 맞아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캐나다에 머물면서 끼적거리던 '고독한 산보자의 몽상'을 기초로 한 여러 칼럼을 연재했고, 그 글을 모아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란 부제를 단 <우리시대의 상식론>(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이란 책을 펴냈다.

1월17일 오후 서강대에서 박호성(58·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및 공공정책대학원 원장) 교수를 만나 인터뷰 했다.

팔자에 없는 '국'자 들어간 매체에 칼럼 쓰기

"나는 정치학도로서 참으로 무지몽매했다. 4·15총선에서 민노당의 약진이 던지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간략히 분석해 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음에도, '국정 브리핑'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 모른 채, 그저 민노당에 눈이 팔려 대뜸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 <우리들의 상식론> 표지 이미지
ⓒ 랜덤하우스중앙
박호성 교수는 자신과 <국정 브리핑>의 관계를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느꼈던지 <우리시대의 상식론> 앞에 실은 '책장을 열며'에서 <국정 브리핑>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고백해놓았다.

첫 만남 이후 <국정 브리핑>은 그에게 시간, 분량, 주제 등 모든 것에 '마음대로'라는 조건(?)을 달아 연재를 제의해왔고, 그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내 삶의 원칙에 충실하며 이 기회를 균형 잡힌 자중자애의 심성을 배워나가는 흔치 않는 수련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팔자에도 없는 나라 '국(國)'자가 들어간 매체에 글을 쓰기로 하고 자신의 코를 들이밀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상식적인 소재를 상식적인 글 본새로, 상식적으로 따지고, 상식적으로 풀어쓰려고 했습니다. 나 자신 상식에 미치지 못하는 언행을 일삼은 경우가 허다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군중보다 한 발짝 앞에 나가면 지도자가 되고, 두 발짝 앞서 가면 방해꾼이 되며, 세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받는다는 경구를 새기며 책상에 앉아서도, 또한 드러누워서도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상놈의 이웃사촌화'가 진보입니다"

"황우석 사건도 1995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의 정신적 버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붕어빵에 붕어가 없어도 되는 '표리부동'의 정신과 후딱후딱 대충대충 한 건 크게 올리기만 하면 되는 '뻥튀기'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박호성 교수는 '황우석 파동'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인위적 실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온갖 부실과 허위가 속속들이 까발려지고 대중과 언론, 그리고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사례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가격 인하'란 구호론 만족하지 못하고 '가격 파괴' 정도는 돼야 눈길을 끕니다. 겉은 점점 요란해지고 속이 점점 비어가는 거죠. 단적인 예가 담벼락에 철심이 박혀있는 한국의 주택이 담벼락이 없는 미국 주택보다 안방 침입이 용이하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담만 넘고 나면 창문과 방문이 허술하기 때문이죠. 반면 미국 주택은 현관문과 창문이 물샐 틈 없이 방비돼 있어 담이 없어도 안방 침입이 용이치 않습니다."

박호성 교수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식으로 동물적인 포효를 앞세우다가도 불리하다 싶으면 "인간적으로 처리합시다"를 외치는 우리들에게 그 '인간적으로'의 '인간'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메스를 가한다. 사회적 문제의 근원은 잘못 이해되고 있는 상식에서 비롯된다며 그러한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건전한 상식의 정립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갈파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을 밑천 삼고, "미래를 예언하고 싶다면 과거를 공부하라"는 공자의 말을 좇아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점검을 통해 우리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숱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사회과학적으로 조명하려 했다.

도로 표지판과 식당 안내문의 차이

박호성 교수는 '도로 표지판'과 '식당 안내문'을 통해 공익과 사익의 갈림길을 설명한다.

▲ 박호성 교수
ⓒ 조성일
어떤 곳을 찾아갈 때 도로 표지판에 의지하다보면 낭패 보기 일쑤지만 "오른쪽, 왼쪽, 어느 쪽으로 돌아서 몇m 정도 오면 무슨 식당이 보인다"는 식당안내문을 따라 차를 몰면 거의 틀림이 없다는 것.

"도로 표지판을 만들어 거는 사람은 대부분 그것과 아무런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당 안내판은 그걸 내다 건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국민은 공익과 관련된 일은 무참할 정도로 홀대하지만 사익만은 임전태세 완비 정신으로 하등의 오차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추구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렇지만 그는 "설령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해도, 사람이라면 자기의 조카보다는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며, 자기의 사촌보다는 조카를 더 사랑하고, 모르는 사람보다 사촌을 더 사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마냥 이기주의에만 안주할 수 없으므로 공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공익을 위해 박 교수는 관용(tolerance)의 정신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관용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및 자기규율을 요구하는, 따라서 사회의 문화적 발전수준이 높은 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공적이고 개인적인 덕망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를 더불어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애틋한 화해와 격려, 또 이 공동체가 그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 자연에 대한 숭고한 사랑, 그리고 이러한 인간과 자연을 서로 따스하게 이어주는 푸근한 문화적 공감대를 넓혀나가야 합니다."

신휴머니즘 위한 전통적 진보주의

이 같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박호성 교수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전통적 진보주의를 내세운다.

그래서 그는 헤겔의 변증 철학에서 말하는 '지양'(aufhenben)의 의미를 되새겨보자고 했다. 그것은 단순히 '제거하다' '없애다' 정도의 가벼운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라 '위로 끌어올리며 극복해나간다'고 하는, 보다 심오한 역사적 뜻을 함축한 철학적 개념이란다.

요컨대 '지양'이라 함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부정적인 요소는 제거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은 심화·발전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요청을 담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

따라서 전통이란 스스로를 키워나가려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부인하는 끝없는 진통의 연속. 전통은 이러한 진통을 겪으며 미래에 만개하게 될 꽃망울을 자신의 내면에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 거목도 처음에는 새싹이었다. 즉 전통이란 뿌리이자 동시에 새싹인 셈이다. 그가 말하는 전통적 진보주의란 바로 전통 속에 내재해 있는 병든 뿌리를 잘라내면서 동시에 새싹을 올곧게 키워 거목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진보주의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신휴머니즘'. 이 신휴머니즘이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정신을 말한다.

공동체의식, 위계질서 있어야 공존할 수 있어

박호성 교수는 누구인가

6.25동란이 일어나기 바로 한 주일 전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자갈치 시장에서 부산오뎅과 국밥을 얻어먹으며 자란 박호성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2003년 송두율 교수 귀국에 큰 역할을 했던 그는 늘 우리 사회의 핵심과제인 계급과 민족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발언해왔다.

그의 이런 진보적 실천의지는 학술단체협의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정치연구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했고 또 <한겨레> 창간 직후에는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1991년에는 의사, 법조인, 예술인, 교수 등 전국의 많은 진보지식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월간 사회평론>의 편집인을 맡기도 했다.

그가 1991년에 펴낸 <평등론: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맑스주의의 이론과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평등에 관한 체계적 연구라는 평가를 받아 1996년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또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망> 등의 학술서와 시론집 <수렁의 정치, 수레바퀴의 정치학> 수상록 <인간적인 것과의 재회> 등을 냈다.
박호성 교수는 이론의 상아탑주의를 배격한다고 했다. 대신 이론의 '공설시장화'를 고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가슴 속에 강단의 사상이 아니라 거리의 사상이 채워지길 바라면서 평소 아카데미즘의 경직성과 폐쇄성을 뛰어넘어 사무치는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박호성 교수는 이 책이 '허드렛 벗'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허드렛 벗'은 내세울 게 있다면 질박한 몸가짐과 투박한 말투밖에 없는 사람들, 보살펴줄 사람이 없는 탓에 스스로 보살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항상 무릎을 꿇고 엎드려 무거운 짐을 싣고 뜨거운 모랫길을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어야 하는 '인간낙타'들이다.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주변 동료교수들의 평가처럼 젊은이들, 특히 논술공부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상식이 도움 되길 기대한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상놈의 이웃사촌화'가 진보라고 말하는 그는, 서로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개인의 해방과 해방된 개인 상호간의 인간적 결속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십계명'을 제시했다

"부드러워도 나약하지 않고, 굳세어도 사납지는 않으며, 너그러워도 어리석지는 않고, 신중하되 느슨하지는 않으며, 무심한 것 같지만 냉담하지는 않고, 솔직하지만 거칠지는 않으며, 명랑하지만 들떠 있지는 않고, 잠자코 있지만 어두운 기색은 없으며, 의연하지만 각박하지는 않고, 품위를 지키되 우쭐대지는 않는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 식으로만 살아갈 것이 아니라 '써도 삼키고, 달아도 내뱉은 수 있'어야 하는 역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이고,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라는 좌우명에 충실하고자 애쓴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끝냈고, 내가 내민 책에 이런 글귀를 담아 사인을 해주었다.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남을 사랑하옵고, 가을물처럼 서늘하게 자신을 다스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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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조선일보는 정신병원 수준”

 

 

 

진중권 “조선일보는 정신병원 수준”
포털사이트 댓글 차단한 익사사건, ‘백자평’ 댓글 허용해 이념 갈등 부추겨
입력 :2006-01-24 08:30   이기호 (actsky@dailyseop.com) 기자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24일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가 악의적 댓글을 조장해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조선일보를 ‘정신병동’으로 비유했다.

진 씨는 “처음으로 인터넷 악플러들이 사법처리 된다고 한다”며 “이번에 기소당한 네티즌들은 ‘통일의 꽃’ 임수경 씨 아들의 사망사실을 보도한 기사 밑에 임 씨를 ‘빨갱이’라 부르고, 그의 아들의 죽음을 조롱하는 리플을 달았다”고 이번 사건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악플러들의 처벌에 찬성하는 견해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악플은 법이 아니라 윤리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하지만 윤리적 규제에도 정도가 있다”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조롱하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진 씨는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지적했다. 아예 조선일보의 해당사이트(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07/200507220381.html)를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 조선일보에 들어가 보면 문제의 기사에 딸린 ‘백자평’ 란에 아직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조롱하는 폭력적인 댓글들이 남아 있다”며 “거의 정신병동을 연상시키는 그 미친 글들은 놀랍게도 버젓이 실명으로 올라와 있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범죄의 이념적 성격”이라고 지적한 진 씨는 “거대한 범죄는 위대한 ‘대의’에서 나오는 법”이라며 “네티즌들이 아무리 험해도 자식 잃은 엄마를 조롱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 “디지털 조선일보의 독자들의 비인간성은 그들의 머릿속에 든 위대한 반공의 이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드러난 현상보다 실상이 더 심했다는 점도 거론됐다. 그는 “‘빨갱이’니 ‘인과응보’니 ‘아들이 업보를 짊어졌다’느니 하는 욕은 차마 입에 담아 전하지 못할 욕설들에 비하면 차라리 점잖은 축에 속한다”고 말하고, “그러는 가운에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것은 관리자나 작성자가 삭제한 흔적들”이라며 “삭제를 한 게 그 정도니, 삭제하기 전에는 오죽했겠느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진 씨는 “이념이라는 게 인간을 이렇게 잔인하게 만든다”며 “모든 포털 사이트들이 해당 기사 밑의 댓글란을 차단시켜 놓은 가운데에, 잔혹한 욕글들을 그대로 남겨 놓은 조선일보의 백자평란, 거기가 바로 인터넷 서북청년단의 서식지”라고 비난했다.

진 씨는 실제 방송에서는 이번 칼럼을 읽는 대신 “좌든 우든 편향된 사고가 문제”라며 국민들이 균형감각을 갖춰줄 것을 요구했으며 악플러와 관련된 이번 사건을 소개하는 ‘전망대 옴브즈만’ 진행자의 설명 중 “직접 확인한 내용”이라며 거들기도 했다.

지난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평화통일축제’ 참석을 위해 밀입국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복역했던 ‘통일의 꽃’ 임수경 씨는 지난해 7월 필리핀에서 연수중이던 아들의 익사사고와 관련해 원색적인 욕설과 비방을 한 누리꾼 25명을 모욕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IP 추적을 통해 피고소인들을 소환·조사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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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십자가가 개그 소품이 됐나?&quot;

 

 

 

언제부터 십자가가 개그 소품이 됐나?"
네티즌, 19일 한기총 집회 소품 '바퀴 달린 십자가'에 냉소
텍스트만보기   김영균(gevara) 기자   
▲ 지난 1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최한 '기독교 사학수호를 위한 한국교회 비상구국기도회'에 퍼포먼스용으로 등장한 대형 나무십자가가 네티즌의 냉소를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수님도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나?"

지난 1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주최한 '기독교 사학수호를 위한 한국교회 비상구국기도회'에 퍼포먼스용으로 등장한 대형 나무십자가가 네티즌의 냉소를 받고 있다.

한기총 소속 목사와 신도 3000여 명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저동 영락교회에서 기도회를 연 뒤 서울시청앞 광장까지 도보 행진을 벌였다. 한기총은 이 대열의 맨 앞에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대형 나무십자가를 내세웠다. 예수가 고난의 길을 걸었듯, 한국 교회도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장엄해야 할 그 퍼포먼스는 한순간에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나무십자가에 달린 조그만 '바퀴'가 네티즌의 눈에 포착되면서부터다.

한기총은 길이 2m가량 되는 나무십자가의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바닥에 닿는 끝부분에 조그만 바퀴를 달았다. 운반자를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로 어깨에 닿는 부분은 흰 붕대로 칭칭 감아놓기까지 했다.

바퀴로 끌고가는 십자가 사진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비난과 냉소를 쏟아내고 있다. 목사들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팔아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안티기독교(praying21)'라는 필명의 네티즌은 <오마이뉴스> 독자 댓글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가는 모습이 돈 보따리 지고 가려 애쓰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라고 비난했다. '강산하(oh0033)'라는 네티즌은 "예수님도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셨느냐"며 "예수를 욕보이지 마라"고 따끔한 충고를 보냈다.

'원숭이엄마(mixiecrat)'라는 네티즌도 "십자가 밑에 바퀴를 달고 예수 흉내만 내겠다는 것인가"라며 "시위하는 꼬락서니가 가증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dlrjcka(daun05)'라는 네티즌은 "언제부터 십자가가 개그 소품이 됐느냐"고 꼬집었다.

'지나다(sankil)'라는 네티즌은 "2000년전 예수는 병든 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들을 위로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에서 피와 눈물을 쏟으며 십자가를 졌는데 2006년 지금은 그의 제자라는 목사들이 배부른 놈, 불의한 놈, 비리로 썩어 문드러진 사학을 위해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고 바퀴벌레처럼 기어간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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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원형은 남근석

 

 

 

돌하르방 원형은 남근석
2006-01-16 11:15 | VIEW : 22,277

북촌 돌하르방 공원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들
지금은 제주의 대표적 상징이 된 돌하르방.
돌하르방이 설립된 정확한 시기와 유래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습니다만, 돌하르방의 ‘기능’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견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성 문 입구에 세워져 ‘수문장’역할을 했다든가,‘주술 종교적’ 기능을 했다든가 하는 게 그것입니다.

돌하르방은 자식을 잉태하기를 바라는 기도의 상징물이자 경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제주에 전해오는 속신에 의하면, 자식을 못 가진 여인이 한밤에 아무도 몰래 돌하르방의 코를 쪼아서 물에 타서 마시면 애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애를 지우고자 하는 경우에도 돌하르방의 코를 쪼아 그 가루를 마시면 ‘효험’을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아들’을 원하는 소위 ‘기자(祈子)신앙’의 대상이 바로 돌하르방이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만, 이러한 속신은 현재도 ‘유효’해서  돌하르방의 콧가루를 채취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촌 돌하르방 공원에 가면, 돌하르방의 이런 기능에 주목해서 만든 작품이 많습니다. 북촌 돌하르방 공원의 이 ‘남근석 돌하르방’을 비롯하여 제주에 산재한 ‘남근석’들을 모아봤습니다.


북촌 돌하르방 공원은 돌하르방의 '기능'에도 주목, 작품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남근석 돌하르방'의 뒷모습입니다.


일전에 도깨비 뉴스에 소개한 바 있는 장공익 명장의 '금능 석물원'에 있는 남근석입니다.


이 남근석들은  북제주군 금능 소재 '제주 돌마을 공원'내에 있는 '수석'입니다.(다음 달에 개관합니다)




'제주 돌마을 공원'에 있는 수석입니다.


천왕사라는 사찰 뒤에 있는 남근석입니다.

그런데 천왕사 신도회에서 이 '나한바위(일명 남근석)'가 20~30년생 상수리나무와 단풍나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무 윗부분을 모두 잘라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연훼손'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 등 작은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제주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산방산'입니다.


산방산 남쪽 중앙부 암벽 식물지대에 솟은 높이 9.9.m의'신선바위'.
  
형태가 마치 남근(男根)처럼 생겼다고 해서 '남근바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관광객들의 사진촬영 대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군요.

DKB 독자 리포터= 송현우

▼도깨비뉴스 관련기사 보기▼
기암괴석이 빚어낸 ‘여근바위, 남근바위’
“헉~ 제주에 이런 망측한 곳이…”
남근석과 여근지
남근석 여근지 진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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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재계는 인권에 관심없다고 고백하라
[기고]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 인권위 'NAP 권고안' 왜 반대하는가
텍스트만보기   오마이뉴스(news)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NAP)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자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현장에서 인권증진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가 재계와 일부 보수언론의 논리를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 경제5단체 회장단을 대표해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고용 억제 등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과 관련, 경제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한마디로 황당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이하 NAP) 권고안을 발표하자, 보수적인 언론과 재계가 똘똘 뭉쳤다.

이들은 '현 국가인권위원회 해체', 'NAP 권고안 전면 재검토', '국가인권위는 무국적 집단이며 교과서만 외우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단', '헌법 파괴적 발상', '인권위 구성은 시민단체 출신이 장악'이라는 말들로 현란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NAP 권고안을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은 아예 NAP권고안을 발표하기도 전에 논란거리를 정리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권단체(?)를 찾기에 바빴다.

또 행정부를 책임지는 국무총리가 한 재계 단체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권고안 내용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이행계획에 재계의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재계는 전면적인 국가인권위 흔들기에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재계와 일부 언론의 반응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NAP 권고안은 한마디로 국가정책 전반을 인권으로 바로 잡아 나가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일부 언론들은 '그러니까 NAP가 교과서이고 현실을 도외시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NAP는 유엔이 회원국에 대해서 인권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이행계획을 제출할 의무가 있다. 인권정책 이행계획을 수립할 주체인 정부에 대해서 인권전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NAP 권고안을 마련하는데 인권 이상의 잣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국가가 가입·비준·동의한 국제인권규약 내용이 중심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런 상식이 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비판의 핵심은 ‘인권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NAP권고안의 주요 정책에 대한 내용을 곁들이며, 기득권을 누려오고 지금도 사회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천민적인 재계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격렬한 비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권중재 사업장의 파업권 유보 조치를 해소하고 약 84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라는 내용이 재계를 분노(?)케 한 것이다.

재계 주장은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주장

▲ 경제 5단체장은 지난해 4월 22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의견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 원안대로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장, 김재철 무협협회장, 이수영 경총회장, 박용성 대한상의회장, 조건호 전경련 상근부회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기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이상이자 국제적인 합의인 인권을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나라 재계의 저질적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재계는 차라리 "인권에 대한 관심도 없고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고 오로지 경제현실론자(?)임을 고백하든지, "노태우 정권 때 가입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8조를 유보시켜 사실상의 노예노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정당한 보수를 받아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6조와 제8조를 이참에 유보하라고 주장했어야 한다.

유엔은 2000년부터 초국적인 기업과 기업시민단체와 더불어 '지구협약'(글로벌 컴팩트, global compact)을 본격 추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의 10대 원칙에 합의, 전세계 기업 활동에서 이 원칙을 주된 지향으로 삼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공공성이 강한 한국전력과 토지공사만이 작년에 가입했을 뿐이다. 이는 프랑스 374개, 브라질 121개, 캐나다 27개, 영국 59개, 독일 47개, 미국 80개, 인도 101개, 멕시코 19개, 중국 49개, 태국 18개, 러시아 19개, 일본 6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여 인권과 노동 분야의 국제기준 및 국제규약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자율적인 준수를 약속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미 101개 기업이 이 협약에 가입하고 있는 이 때, 경쟁력 운운하며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재계가 과연 현재의 추세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청년실업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협박과 매수 그리고 노동자 파업 때마다 위장폐업 및 업무방해 명목의 고발과 소송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생존권을 짓밟았던 재계가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

70년대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기업들이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잘 지켰다면 생리휴가나 출산휴가 내려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인권단체들이 이렇게 분노했을까!

재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해체하고 이른바 덕망있는 인사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가 말하는 덕망있는 인사는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답해 봐라. 공개 검증을 해 보자! 선동도 이런 선동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호민관으로서 어떠한 외압에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래서 법에도 국가인권위원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사퇴하지 않는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

재계의 주장은 기초적인 상식도 없고 그저 주장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인권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노사관계'에 관여한다고 비판하고, 정치적인 공민으로서 공무원과 교사의 지위를 회복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권고내용을 30년 전과 똑같은 이유인 안보와 질서를 이유로 반대했다.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이것은 '소수의 인권' 또는 '진보세력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어서 '다수의 인권'과 '보수세력의 주장'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퇴행적 기득권 지키고자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 1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에 대해 이견을 표시하는 회견을 열었다. 정강자 상임위원(왼쪽)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인권에는 다수와 소수가 있지 않다.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있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소수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는데 힘이 적거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집단이나 개인이다. 힘으로 사회적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기득권층이 인권을 주장할 때 이것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특권은 인권의 반대편에 있는 논리이다.

말하고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NAP 권고안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기득권만을 주장하는 것이지 국민을 위한 것 혹은 국가발전과는 무관한 것이다.

퇴행적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재계와 일부 언론들의 정치연합을 강화하기 위해 인권을 속죄양으로 만들지 말라. 차라리 "우리는 인권을 모른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잘라 말하라. 제발 인권을 갖고 편가르기 하지 마라. 인권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보장할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어떠한 선진국을 지향할지, 즉 국가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고 인간으로서 존중되느냐 하는 문제를 숙고해야 할 시기다. NAP 권고안은 그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2011년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아직도 천민적 발상으로 경영하겠다는 기업은 퇴출 되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더 엄밀하게 말해서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자신들의 공헌을 선전하고 비난을 모면하려는 꼼수 경영은 이제 없다. 인권이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인 21세기에 기업은 분명하게 인권에 답해야 한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28일 국립소록도병원을 방문, 한센병력자들을 상대로 인권실태 조사에 나섰다.
ⓒ 고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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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5단체 "인권위, 노사문제 간섭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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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의 희한한 주장 “독일, 프랑스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최경환의 희한한 주장 “독일, 프랑스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CBS 라디오서 “좌파정권이 집권했었기에 OECD서 제외”
입력 :2006-01-20 14:22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최경환 의원이 19일 “노동당, 사민당 등 좌파정부가 집권한 경험이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국가가 아니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최 의원은 19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과 비교하면서 우리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주장했는데, 좌파정부가 집권한 경험이 있는 서유럽 국가는 시장경제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OECD 평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적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가 아니니 제외하는 대신 미국, 멕시코 등과 우리의 조세부담률을 비교하는 게 옳다”고 강조해 독일, 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바 있는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은 최 의원의 이러한 발언과 관련, 그의 의견이 ‘궤변’이라고 지적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했다.

김상조 한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너무나 황당한 발언”이라며 “OECD에 시장경제 아닌 나라가 있나”라고 질문했다.

김 교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도 기본 메커니즘을 시장에 둔 자본주의 국가고 다만 정부의 역할을 어느정도 달리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는 것 뿐”이라며 “모든 경제금융 관련 통계를 작성할 때 OECD에서 유럽 대륙 국가를 제외해 작성하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유럽 국가 역시 사실상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정책을 펴 왔고 더구나 지금 좌파 정당이 집권한 나라도 아닌, 과거 좌파 정당의 집권 경험이 있는 나라를 모두 시장경제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것이 최경환 의원의 지식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자본주의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정말 큰 문제”라며 “노동시장 유연성이나 조세부담률에 있어서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주장하고 막상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있어서는 유럽의 사회적 자본주의 모델을 주장하는, 전혀 일관성 없는 논리이며 궤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최 의원이 비교대상으로 미국과 멕시코를 언급한 것에 대해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양극화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만을 우리가 따라야 할 체제로 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시장주의를 지나치게 좁게 보는 정치적 해석에 불과하며, 최경환 의원의 이런 시각은 경제학계에서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희한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고 CBS는 보도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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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2)  
 
기다렸다.
2006-01-20 오후 3:50:00
(199.74.65.*)
  딴나라당은 지금이라도 당장 구라파 선진국 불란서, 영국, 독일, 스웨덴 등과 수교 끝기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 왜? 빨갱이 국가들이니까. 이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딴나라당은 오직 공화당 집권 미국만이 한국과 수교하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당장 수교 단절이다.
 
 
 
아울러
2006-01-20 오후 3:54:00
(199.74.65.*)
  딴나라당은 대한민국의 UN 탈퇴를 강력히 촉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인권위 설립도 애당초 UN 가입 당시 권고에 의한 것이었으며 국가 인권 계획 수립 또한 UN의 권고 사항이다. UN은 빨갱이. 딴나라당은 대한민국의 빨갱이 UN 탈퇴 투쟁을 강력하게 벌여야 한다. 원희룡이 말대로 나와 코드가 다르면 다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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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희대의 명문이로다

 

 

특별기고] 경제계의 인권위 공격은 헌법에 대한 도전
입력 :2006-01-19 21:45   최재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왜 인권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색칠하는가?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헌재 1996.2.29. 93헌마186)” 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경제계는 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립된 국가 기구의 근본적 목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있다. 이 점은 인권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는 이렇게 정한다.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헌법질서와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인권위원회 법의 내용이 이러할진대 기본 계획 권고안 발표가 어떻게 해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참으로 단호하다. “인권위는 헌법 위의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이번 발표를 두고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는 “경제적 현상마저도 이념적 영역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모든 현상을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그것도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고질적 병폐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 현상을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켰다는 경제5단체장의 비판을 그대로 경제계에 돌려주고 싶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은 인권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념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

인권위원회는 입법·사법·행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지위도 독립적이고 업무도 독립적이다. 다른 나라의 인권위도 대부분 그렇다. 도리어 우리나라의 인권위의 독립성이 다른 나라의 인권위보다 취약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경제5단체장은 이렇게도 주장했다.

“인권위의 독선적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기본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차기 인권위 위원의 재구성시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라고도 했다.

그러면 인권위가 무슨 일을 하기를 바라는가? 툭하면 일부 진영에서는 인권위 폐지론이나 기능 재정립론을 물고 늘어진다. 국가보안법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사형제 폐지권고 때도 그랬고, 대체복무제 도입권고 때도 그랬다. 기본적 인권 수준의 향상을 기본 임무로 삼고 있는 인권위가 그러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헌법질서에 충실한 일일까?

툭하면 위원 구성도 문제 삼는다. 인권위 위원은 국회가 선출하는 4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다.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헌법이 특별히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게만 인정한 위원구성방식을 인권위원회에도 인정한 것이다. 더구나 국회가 선출한 위원 중에는 한나라당의 몫도 2인이나 포함되어 있다. 김호준 위원과 신혜수 위원이 바로 그 분들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인권위 구성이 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이것이야말로 좌우에 대한 기본개념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오해

“우리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 1998. 5. 28. 96헌가 4등, 헌재2001.6.28. 2001 헌마132)”

또 다른 헌법재판소 결정이다.

“결국 우리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2002.11.28. 2001헌바50 등 다수)”

늘 느끼는 일이지만 경제계는 우리 헌재의 결정 중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강조하는 부분만 애써 인용한다. 헌재 결정의 뒷부분,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부분이나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결정부분은 철저히 무시한다.

경제5단체장의 성명이 도리어 헌재의 결정에 반하고 우리 헌정질서에 반하는 주장일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인권위는 다른 기관보다도 더더욱 그 목적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간혹 경제5단체장은 시장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스러울 때가 있다. 시장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그 다양성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선택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 이것은 곧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계의 주장도 다양성의 한 형태로 존중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폄하하는 것은 결코 시장경제주의자들의 태도가 아니다. 일정 사안에 대해 재계의 주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는 언론이나 인권의 자유시장에서 평가되고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 의해 선택될 일이다.

그런데 왜 내 주장은 헌정질서에 부합하고 인권위의 발표는 헌정질서에 반한다고 비평하는 것일까?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추구에 있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인권의 보호와 수준 증진에 있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자체를 긍정해야 하는 것처럼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시장에 대한 오해도 문제이지만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장의 개념을 사회 전반에 확대시키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 인권의 영역까지 극단적인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과잉일수 있다.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 후보 리오넬 조스팽은 “시장경제는 좋지만, 시장사회는 거부한다”는 입장이었다. 경제계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에서 ‘성장이냐 인권이냐’ 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경제계

무엇보다도 성명 중 불행한 일은 경제5단체장의 사고가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성명에 깔린 기본 생각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권의 유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의 가치만을 앞세운 개발 우선 또는 경제 우선의 논리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을 위한 인권제한이라는 견해는 경제성장과 인권보장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채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개발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서구의 선진사회 경험은 인권신장과 경제성장이 양자택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속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에 공고한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을 신장하면서도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양가치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성명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는 인권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고 양극화도 인권신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계의 획일적인 흑백논리가 여기에도 드러난 것이다. 경제계는 지금까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흑백논리로 사물을 재단해 왔다. 이번에는 성장이냐 인권이냐 하는 논리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기본계획 발표 자체가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시장에만 세계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세계화도 더더욱 중요하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정부가 발언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인권의 보편적 기준을 근거 삼는다. 왜 그 기준을 우리의 인권에는 들이대지 못하는가?

더구나 인권위가 우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기본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제적 인권 규범과 우리 헌법을 지키는 일이다.

▲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왜냐하면, 먼저 헌법 제6조를 보자.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2001년 5월 UN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에 대해 2006년 6월까지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그 권고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 권고의 근거는 우리가 가입되어 있는, 헌법에 따라 1990년 7월 국회의 동의까지 마친 ‘UN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이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UN인권규약에 가입하지 말라고, 그리고 비준하지 말라고 주장했어야지 지키지도 못할 국제 법규를 왜 받아들이도록 허용했을까?

국제인권법은 우리가 지켜야할 당연한 규범중의 하나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기본 계획은 UN총회에 근거해 178개국이 참석하여 만장일치로 동의한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권고사항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미 기본 계획을 발표했거나 실행중이다. 늘 그렇듯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념적 잣대로 모든 사안을 단순화시켜버리고 마치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그리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제로 울타리 치는 관성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한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2)  
 
천민
2006-01-19 오후 11:45:00
(61.253.138.*)
  천민자본주와 그 앞잡이 월급쟁이들의 지랄병인디 그냥 내비두는 게 국익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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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보여주세요” 항의 40대시민, 아홉달 홀로소송 이겼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항의 40대시민, 아홉달 홀로소송 이겼다
[한겨레 2006-01-19 20:09]    

[한겨레]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지난해 4월13일 밤, 집으로 돌아가던 윤종원(41·회사원)씨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저는 현행범도 아니고 수배자도 아닌데, 왜 보여드려야 합니까?” 곧 다른 경찰관들도 윤씨를 에워쌌다. 그리고 다시금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신분증 제시 의무가 나와 있습니다. 보여주십시오.” “대한민국 국민이면 신분증을 보여줘야죠.” “수배자도 아닌데, 왜 검문에 블응합니까?”

20분쯤 실랑이가 이어졌고, 윤씨는 결국 면허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생각할수록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경찰의 말과 달리 불심검문 규정을 담고 있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시민이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없었다.

화도 난 윤씨는 이틀 동안 혼자 소장을 작성해 법원을 찾아갔다. 한 번도 소송을 해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할지도 몰랐지만,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인권단체에 도움을 구하고, 다른 민원인들에게 물어가며 소송을 진행했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둔 현장 장면도 증거자료로 냈다.

우연히 본 기사가 윤씨가 이렇게 소송까지 하게 된 계기가 됐다. 1997년 시위 현장에서 소지품 검사를 거부한 장아무개씨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기사였다. 그 뒤로 윤씨는 불심검문을 거부해 왔다. 원하지 않는데 신분증을 보여주거나,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가 여태껏 이유 없이 불심검문 당한 것만 100번은 넘는 것 같아요. 그때마다 내가 범죄형처럼 생겼나 싶어서 기분이 나쁘더군요. 검문을 하려면 최소한 흉기를 갖고 있다거나, 수배자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등의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구잡이식 불심검문은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큰 인권 침해입니다.”

19일 서울 남부지법 민사제34단독 왕종옥 판사는 윤씨가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강압적으로 요구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청구 금액 4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보통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송까지 가봤자 지면 자기 손해라는 생각에 체념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홀로 소송해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홉 달에 걸친 법정싸움에서 이긴 윤씨의 말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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