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시

2007/08/03 01:22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그렇지요, 좁기 때문이에요. 높아만 지세요, 온 누리 보일거에요. 잡답(雜踏) 속 있으면 보이는 건 그것뿐이예요. 하늘 푸르러도 넌츨 뿌리 속 헤어나기란 두 눈 먼 개미처럼 어려운 일일 거에요.


   보세요. 이마끼리 맞부딪다 죽어가는 거야요. 여름날 홍수 쓸려 죄없는 백성들은 발버둥쳐 갔어요. 높아만 보세요, 온 역사 보일 거에요. 이 빠진 고목(古木) 몇 그루 거미집 쳐 있을거구요.

   하면 당신 살던 고장은 지저분한 잡초밭, 아랫도리 붙어 살던 쓸쓸한 그늘밭이었음을 눈뜰 거에요.


   그렇지요, 좀만 더 높아 보세요. 쏟아지는 햇빛 검깊은 하늘밭 부딪칠거에요. 하면 영(嶺) 너머 들길 보세요. 전혀 잊혀진 그쪽 황무지에서 노래치며 돋아나고 있을 싹수 좋은 둥구나무 세가들을 발견할 거에요.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늦지 않아요. 이슬 열린 아직 새벽 벌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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