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의 깔깔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그래 내가 지금 투명하다는 것에 감사해야해.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흠..이 시 좋은데요? 써 먹어야겠다. 언제 술 한잔해야죠?
벌써 중국은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요즘 술보다는 조용히 처박혀 있어야 될것 같아요. 발등위에 급한불(?) 좀 끄면 제가 안주 실한 술집으로 모시죠~
알았어요. 시 블로그로 업어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