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그녀

2006/11/07 20:58

전화번호를 바꾸고 바뀐번호로 단체메일을 보냈다.

 

몇명에게 답문이 왔다.

 

 

" 웅~ 잘 저장했어~ "

 

 

" 저장했습니다~ 이제는 번호바꿀일 없길바래요~"

 

 

" 누구세요?" (깜박잊고 발신자를 안보내서 -_-;)

 

 

근데 한 후배에게서는

" **  언니에요? *.*"

하는 답변이 왔다.

 

저 ** 언니에요? 옆에 ' *.* ' 라는 표정은 뭐랄까 너무나 반색하는 이모티콘이 아닌가.

잠시 저 이모티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짧은 의문이 들었다.

 

아뭏든, 나는 짧은 답문을 보냈고 그녀는

 " 어머 진짜 반가워요~ 언니 언제 꼭 만나고 싶어요~"

하는 답변을 보냈다.

 

'시간있으면 밥먹어요' 도 아닌

'꼭 만나고 싶어요' 라....

 

그녀와 나는 조모임 같은데서 만나서 조모임을 그럭저럭 즐겁게 잘 하고

학기가 끝난 후에도 한번정도 따로 만나서 보기는 했지만,

그때의 대화가  편안함과 친밀함을 가져왔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이면서도 프라이버시를 비껴가는 약간은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그저 의젓한 선배인 양 끄덕끄덕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상황을 주로 연출했던 것이다.

 

그녀는 경영관련전공이고, 외모나 하고 있는 동아리나 나와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보이는 사람이고, 또 그 세계에서 그냥 사는 것도 아니고 환영받으며 ' 잘 살것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깔끔한 화장에, 짧고 세련된 바바리코트, 늘 세련되게 드라이 되있을것만 같은 짧은 컷머리,

달랑거리는 귀걸이,낭랑한 목소리,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밀감을 주는 적당히 가벼운 수선스

러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화술, 짝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아함에서 진품보다

떨어지지 않는 이름모를 명품가방과 신발. (사실 써놓고 봐도 명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_-;)

 

덧붙여 그녀가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하는 동아리 역시 딱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취향을 겨눈

파티등을 개최하는, 학교이름을 내건 비공식 사이트를 운영하는 곳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하여 친구들끼리 뒷담화를 할 정도로 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

만 거기서 크게 비껴나게 살아갈 정도로 파격적이거나 자신을 망가뜨려본 적이 없는 성실하

면서도 명랑하게 융화를 잘 하는 사람.

 

 

그렇다고 그녀가 나에게 비호감의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썩 괜찮은 성격의

사람인듯 하지만 굳이 나에게 인연이 닿아서 서로 연락하게 되는 사람들과는 좀 많이 다른

친구인 듯 하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그녀가 나를 길가에서 마주치거나 전화로 연락이 닿았을때 왜 굳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그녀에게 좋은 말을 해줄것도 별로 없고, 나와 그녀와 가는 길의 공통분모도 별로 없으

며, 내가 객관적으로 그녀에게 귀감이 될만한 매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가 완전 순진한 새내기라면 몰라도

04학번이면 이제 사람과  인간관계에 대해 결코 본능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나이가

아니고

더군다나 그녀는 결코 무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그 어색했던 만남 이후로 또다시 나에게 만남의 제의를 했다.

 

 

흠......

 

그녀가 하는 뭐시기 동아리에서의 인간관계가 의외로 삭막한걸까?

아님 내가 그냥 부담없이 얘기를 들어주고 편한걸까?

아니면 인간관계를 그냥 넓히고 싶은걸까?

아니면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아도 연락이 닿으면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만남을 제안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는 친구인데 내가 오바하는 건가.

 

아니면 혹시 특이한 종교를 전파하고 싶어한다거나

내가 시험에 붙으면 좋은 인맥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불순하다 못해 어이없는 생각도 0.9505 % 정도 든다.

 

사실 한가한 때라면 그녀가 나를 왜 만나고자 하는지 불문하고

그냥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을텐데

요즘 썩 한가하지가 않고

무엇보다

예전에 있었던, 후배들과의 어색했던 재회 이후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의 만남이 조금 두렵다.

 

아예 선후배의 역할구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친구같은 만남이면 몰라도

마음에 부정적인 동요를 줄 수 있는 만남은 이기적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때 이후로 솔직한 심경이다.

 

 

그래서 그녀가 결코 반갑지 않았던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다

 

 

 

결국 답문을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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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abby 2006/11/08 23:37

    뭔가 공감가는 사고 방식의 패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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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징어땅콩 2006/11/10 18:12

    의외로 이런 사고방식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을듯하네요..흐음.

    perm. |  mod/del. |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