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금연에 대한 단상

2006/10/08 02:27

추석연휴의 끝물인 일요일이 시작됬다.

 

추석이 이렇게 빨리 가버리다니.... 왠지 아쉽다.

 

수험생처지에서는 추석기간역시 시험 바로전날처럼 치열하게 보내야 한다는걸 알지만 그렇게 보내지는 못했다. 하루 20페이지정도 읽은게 다 이며 또한 한번밖에 읽지 못했다.이건 하루에 80p정도를 속독+정독 이렇게 두번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한심한 실적이다.

 

역시 아무래도 담배를 핀다는 것은 인생을 깎아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아얘 힘을 못쓰도록 망쳐버리는 모양이다. 내가 호흡기관이 특별히 약한건지, 담배를 하루에 한 댓개피면 몸 전체가 물에 흠뻑젖은 해면처럼 무거워지면서 가슴이 싸하면서 처절해지는 상태가 된다.

그 기분은 만약 내가 예술가처럼 감성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도움이 되는- 마치 전인권이 대마초하면 노래가 잘되다고 했던것처럼- 몽롱하고 싸하면서 우울하기도 하면서 세상의 모든것들이 일시적으로 또렷하게 보이는 기분이지만, 수험생에게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코틴 중독이란 무서워서, 공부하다가 페이지가 안넘어가고 답답해지면 한대 빼어물고 몇페이지라도 더 넘겨보려고 하게 된다. 이런식으로 하면 그날당일은 담배 몇개비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책을 몇십장이라도 더 넘겨보는데 성공하지만, 다음날은 완전 몸이 흐물흐물 식초에 오래담근 오이처럼 되어 한나절동안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서 저녁해가 질 즈음에나 사람꼴을 갖추고 방 밖으로 부슬부슬 기어나올 수 있게 된다.

 

안되겠다 싶어서 마음속으로 오늘은 몇번씩 다짐을 했다.

 

담배를 피는 것은 당장은 답답한 상황에 있는 나에게 쾌락을 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좌절과 실패로 이끌것이라고. 한대만 피워야지, 하고 피는 것도 하면 안된다고. 자기전에 하루씩만 피는 것도 몸에 조금도 이상을 주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면 안된다고. 하루에 한개비라고 해도 일년이면 365개비이니 폐에 조금이라도 흔적을 남길것이라고. 또 조금만 피운다고 해도, 아얘 안피우면 더 말짱하고 또렷한 컨디션으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아침에 가뿐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는데 그 한두대의 쾌락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고. 조금만 피우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을 수 있다고 해도 그 한대만 없으면 아침에 더 가뿐해 질 수 있을테고 담배를 피웠다는 심리적인 죄책감에서 연유하는 신체적 부담의 한조각조차 말끔히 사라질 수 있을텐데 왜 그짓을 하냐고. 또 한대만 피워도 여전히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날수는 없어서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생각이 날테고 또 그 흡연욕구를 견뎌야 하는데 그런 극기와 인내가 더 스트레스가 될거라고.  결론적으로 담배는 한대를 피운다고 해도 내가 최선으로 기분좋게 인생을 사는데 반드시 장애가 될거라고.

 

담배를 끊기위하여 다소 과도할 정도로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저 다짐속의 내용들이 사실 그리 과장된 내용들은 아니다. 담배를 피우기 이전에는, 그니까 예를 들면 고3막판 몇달동안 정신이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할때는 정말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않고 공부해도 체력이 달려서 힘들다는 생각은 썩 들지 않았었다. 물론 집에오면 내쳐 자버려서 하루 10시간씩 자곤했으나, 적어도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잠깐만 책상위에 엎드려서 쉬는 것 빼고는 줄기차게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담배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공부의 지루함을 탈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몸이 힘들다보니 우격다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이지 공부자체가 썩 즐겁지가 않다.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나가는 것이지, 자신을 위한 거시적인 목표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깜찍하게 시도해 본다든지 더욱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새로운 공부방법을 모색해본다든지 수업자료 이외에 참고문헌 등을 찾아보며 남들보다 더 앞서나간다는 짜릿한 희열을 충족시킨다든지 순수하게 삶의 의문에 답하기 위하여 이 책 저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긴다든지 하는 사치스런 행동들은 거의 할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쫓아가기에 바쁘게 되었고, 내 뒤에서 추적해오는 파멸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깽깽이발로 달음질치며 도망가기에만 바쁠뿐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력조차 없게 되었다.

 

결국 나는 자유롭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서 적응하여 살아가는데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과 효율성의 원리에서 100%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록 취미를 위한 조기축구회 에서도 골 하나를 넣기 위하여는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꼭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근대라는 것이 태동하기 이전의 중세, 원시사회에서도 자연을 정복하여 삶의 토대를 만들기 위하여 인간은 '노력' 과 '에너지' 를 들여야 하지 않았는가?  결국 정도의 차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정도로 과도한 노력의 착취이냐 아니냐의 차이이지, 어떤 시대에서도 즐겁게 에덴동산에서처럼 인생을 ' 향유' 만 하면서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경쟁이라는 것을 너무나 백안시하여 경쟁에 대한 의욕을 갖는것,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하여 다른 원초적인 욕구를 접어야마 하는 것을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았지만, 결국 굴러가는 수레바퀴위에서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려고 하는 시도에 불과했다. 나는 매번 굴러떨어졌고, 아예 내가 수레바퀴에서 내려올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내 삶의 원칙을 수정해야만 나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인간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성질들을 가능한 지켜나가는 한도에서는 이기기 위하여 스스로 파렴치하게 - 물론 겉으로 하는 행동이 파렴치하진 않지만 나 내면에서 타인에게 갖는 마음의 상태가 파렴치하다고 생각될때가 있다-  타인을 이기는 심리를 이용하여 공부하는 것이 적어도 이 수험생활에 있어서는 가장 나를 마음 편하게 해주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험을 위한 공부에서는, 학문에대한 흥미가 뒷받침 되면 가장 좋지만 그것보다는 시험에 붙어야겠다는 도전의식과 한문제라도 더 맞추는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문제라도 더 동그라미가 쳐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유치함에 대한 배척을 가지면 스스로가 하는 짓에 대한 경멸에서 공부를 즐겁게 해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무한대의 경쟁의식은, 수험생활동안만 나 자신에게 허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생자체가 또다시 자신에게 쫓고 쫓기는 사이클이 되버릴 위험이 있다. 주변에 지나친 승부욕과 타인에게 보이는 숫자놀음의 포로가 된 사람들 보면 뭐랄까, 도저히 존경을 가질 수가 없다. 속으로만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고 겉으로는 좀 숨겨주면 좋을텐데 그런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압박하는 초조한 경쟁의식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 지 인생의 계획표를 공개하는가하면 자신의 지인들은 얼마나 잘난사람들이라는 것을 얘기하며 그들과의 친분이라는 딱풀로 자신을 그들과 동류로 붙여버리기 위하여 몇번씩이나 떡칠을 한다. 제발좀... 내가 그렇게 되기는 싫다. 차라리 그들보다 사회에서 덜 인정받고 사는 것이 낫지.  나도 과시욕도 있고  큰 것을 달성하고 싶은 욕망이 분명히 있는 사람이지만, 그런 나의 욕구자체가 썩 자랑할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런것들을 갖고 있다는 걸 거짓으로 숨길 필요는 없지만, 그 욕구들을 바람직하고 좋은 것들로 보이게하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돋보이는 존재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고 있고 물론 그런 개인의 욕망들을 채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욕망들이 어떤 방향을 위하여 쓰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뭏든 나는 담배를 피운다는 것에서 벗어나서, 인생을 더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나가려 한다.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건전한 것이지만, 담배를 끊음으로써 내가 몸에 익히려는 세상의 습성들은 자칫하면 나를 너무나 세상에 익숙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좀 세상에 익숙해질 것을 필요로 하고, 내가 획일적이고 업적중심인 근대적 삶의 원리를 습득해야만 한다면 난 그 원리들을 잘 배우고 익혀서 내가 원하는데에 쓰겠다. 아얘 벗어날 수 없을바에야, 배우고 습득하여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여력을 갖추는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변절과 변절이 아닌것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타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과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사람은 한가지에 타협하기 시작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타협하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어야 할 곳에 선을 잘 긋는 것이 중요하고,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하나하나의 원칙과 단계에서 충실한것이 자신을 더 발전하게 하는- 이건 어떤 이상적인 삶의 모습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목표달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