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다큐페스티벌과 영화취향

2006/10/23 02:21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으면서도, 현실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게 좋다.

그런데 다큐.... 라면 글쎄 어쩌면 여과없이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촬영기법때문에 현실을

잊게하는 기능은 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때로는 현실이 반갑지 않기 때문에 직시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좀더 따뜻한 방식으로,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를 본다. 즉 환타지물과 헐리웃 스타일의 멜로물을 제외한, 과장됨 없이 담담

하고 조용하게 일상의 애환을 그린것들이 좋다. 추리물이나 스릴러 물도 잘만든것이면 좋다.

어쩌면 내가 좀더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잘 알기위하여 거칠고 마음심란해지

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볼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럴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

주는 그런 영화가 좋다.

 

 

사실은, 거친내용의  다큐를 본다고 해서 꼭 심란해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나말고 이렇게 문제의식을 가져서 다큐를 찍는다는 것, 그리고 5000원이나 주고 그것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다큐속에서 힘들게 역경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 요즘의 나에게는 그닥 심정적으로 힘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파업이나 FTA관련 다큐를 보기보다는 사적영역에서 가장 정치적인

가정안에서의 여성의 삶에 대한 다큐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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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의 효과는

2006/10/22 05:36

실로대단하다.

 

한약 먹은지 하루도 안되어서

 

소화기능은 거의 완전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러다가 한약 예찬론자 되는 것 아닌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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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알았니?

2006/10/22 04:44

내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경멸하는 지를.

옷을 얼마나 세련되게 입느냐로 그 사람의 '자기관리' 를 판단하고

살이 쪘냐 안쪘냐를 따지면서 그 사람의 '경쟁력' 을 판단하고

경멸하다못해 한심하게 생각해서 이제는 별로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으며 살고 있던 차 인것을

근데 넌 내 친구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가학적인 코멘트를

가차없이 날렸지. 그런 얘기들을 내가 싫어한다는 것도 잘 모르고.

'못생긴 여자들은 사실 좀 성격이 안좋다' 라는 말까지도 서슴없이 입에 담으며.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 알고 있었니

모든 학문의 근간이되고, 인간이 근본부터 사고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네가 그런건 쓸데없다고 말했던 그 학문 말야

 

넌 내가 비싼데서 밥먹는거, 생각만큼 썩 즐거워하지 않는것 알고 있었니

우리둘이 함께있으면 갈데가 없어서 같이 가기는했지만

네 지갑과 내 지갑에 부담을 주면서 가는 것은 좀 그랬어

무엇보다 너에게 있어서 내가 '비싼것을 사주는 것이 애정표현이 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 착잡했어.

 

 

너 네가 나한테 사랼라한 미니스커트 사주고 싶다고 부득불우겼을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네가 돈 쓰는 것 미안해서가 아니라는 거 알고있었니

내가 샤랄라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 이유는 단지 불편해서가 아니라

미니스커트를입을 때의 나의 그 마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성에 대한 정치적 해석

유행을 따른다는 것이 나의 주체적인 선택인가

이런것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던것.... 알고 있었니?

 

네가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 이런말을 뉴스보면서 했을때

내가 얼마나 식겁하고 너에대해서 거리감을 느꼈는지 알고 있었니?

네 여자친구는 나중에 그런 노조관련된데서 일할수도 있는데...

넌 그런 나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것이 내 삶에서

행복하게 아이낳고 포근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네 바램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었니?

 

네가 내 지인중에 한명을 두고 좀 이상한 사람인것 같다고

세상모든것에 대해서 아는척을 하고 평가를 하고

'국가보안법' 이 폐지됬는지 안됬는지를 남들이 다 보는 홈피에 관심사인양 써놓는다고

그렇게 말했을때

내가 말했었지

' 나도 그런사람이야'  라고.

그랬더니 네가

 ' 너는 그런사람 아니야!' 라고 부득불 우겼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했고, 나의 지인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지.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를 너와 싸우면서 얘기하는 건 사실 별 의미는 없지..

하지만 네가 내 지인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상

나의 세계에 대해서,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 나는 추측이 가능했어.

그때 좀 슬프더라.

조금 비참하기도 했어.

나잇살이나 먹어서 난 왜 이렇게

주체적이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하고

내 가치관에도 위배되는 남자랑 만나서 고민하고 있을까

소신있게 연애하는 사람이 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연애' 라는 이름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정신적인 소통이나 서로에 대한 인정 같은 것을 사치스러워서 꿈꿀수도 없는

이런 애들같은 '너 좋아, 나좋아' 하는 만남이나 하면서 제자리 걸음하고 있을까

 

 

 

근데.... 너를 나무랄것은 못되.

나도 너에게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했거든.

네가 저런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들을 할 때마다

한번 그런 얘기로 싸우고 나서는

네가 싫어할까봐, 너랑 싸우게 될까봐, 적당히 넘겼거든.

글쎄.... 좀더 우리가 일찍 서로에게 정이 떨어지게 되었더라도

 다 까놓고 얘기하면서 막 싸워야 했을까?

마초같은 네가 버럭버럭 화를 내었더라도

너의 이런 부분은 좀 그런 것 같다고 얘기를 드러내어 해야했을까?

 

 

 

그냥... 네가 아무리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괜찮았는데

네가 화내지않고 서로 터놓고 편하게 대화할 수만 있었다면

우리가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부분까지 타협할 수만 있었다면

(글쎄,공무원 노조 같은 문제는 타협이라기보다는 사실 사상의 전환이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지는 못할지라도

더 오래... 깊이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일찍 헤어져버리고 일찍 잊어버리는 지금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아직 마음에 담고 있어.

오랫동안 담고 있을것 같아.

 

네가 참 좋고, 멋져보이고, 예뻐보이고,

함께 있으면 따뜻하고

잘 해주고 싶었고

네가 고생스럽거나, 슬프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외롭거나, 아무거나 먹는것 같으면

남달리 신경이 쓰였거든.

 

 

네가 아무리 나와 맞지않는 가치관을 갖고 있고

괴물같이 화를내고 막판에는 ㄴ 자 들어가는 욕도 했지만

나는 알아. 네가 순수한 사람인것을.

 

 

그리고

너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어

계속 함께하기 괴로워서 헤어졌을뿐이지

그리고 이건 나도 뭐라고 대답할 수 없는 건데

어쩌면 지금도 소중한 사람일지도 몰라.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소중하다고 얘기하면 기만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너한테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나도 알아.

이것저것 거슬리는 것 많았겠지.

이런 걸 따지는 사람이 너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까.

가치관 문제 빼고도.... 내가 썩 좋은 사람은 못되.

너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실망과 아픔만 남겨줘서...

안그러고 싶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형편없는 인간인지도 몰라

 

 

 

아무튼 요즘은

그냥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

이상적일 수도 없고, 생각대로 된다고 볼 수도 없고

영화처럼 대단할 수도 없고 시시할 수도 있고

기쁨도 눈물도 무미건조함도 있는

그냥 그 자체로 의미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냥 지금처럼 너를 매일 생각하고

슬퍼도하고 밤에 청승떨며 눈물도 흘리고

그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면 그런가보다하면서

시간과 함께 나도 모르게 너를 지워갈께.

 

내가 너를 잊어버리고 네가 나를 잊는다는것이

더 이상 마음아프지 않게 될 그 날까지.

 

 

그리고 다시는 이런 만남은 하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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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이런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네

2006/10/21 01:19

극중 배역에 갇히지 않은 현실의 좌파,
[세계의 사회주의자-18] 제라르 드파르디유
 

 
2002년 4월 대선 1차 투표에서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ront National) 후보가 2위를 차지하며 급부상한 것은 프랑스를 경악에 빠뜨렸다.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의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관행이 정착돼 온 프랑스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나자 양식 있는 프랑스의 가수,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우익 국민전선에 투표하지 말 것을 홍보하는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Gerard Depardieu)가 포함돼 있었다.


<아스테릭스 : 미션 클레오파트라>, <비독>, <102 달마시안> 등에 출연한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이 영상물 출연에 이어 그해 6월 총선에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샹송가수 쥘리에트 그레코 등과 함께 대선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공산당에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드파르디유는 1948년 12월27일 프랑스 중부 상트르주 샤토루에서 가난한 금속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12살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해 홍등가에서 매춘부들과 함께 살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을 떠돌며 부랑아 생활을 하며 차를 훔치고 상점에서 물건을 슬쩍해 암시장에 팔아넘기는 등 전형적인 비행청소년 생활을 했던 드파르디유는 연극학원에 다니던 한 친구의 권유로 배우수업을 받게 되면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드파르디유는 17살때인 1965년 단편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텔레비전 연속극에도 출연하고, 단역이지만 자주 영화에 출연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영화 연기는 1970년대 시작됐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1976년작인 <1900년>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작농의 아들 올마역으로 열연한다. 20세기초 노동자, 농민의 저항이 폭발하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드파르디유는 사회주의에 눈을 뜬 후 파시스트와 봉건적 지주와 맞서 싸우는 배역을 수행했다. 드파르디유 특유의 강하고 정열적인 남성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인기배우로 자리를 잡은 그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마지막 지하철>(Le Dernier métro), <이웃집 여인>(La femme à côté)의 주연을 맡았고 <마지막 지하철>로 세자르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82년에는 중세 봉건제가 점차 무너져내리던 16세기 프랑스의 한 농촌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드파르디유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소재로 한 <당통>, <까미유 끌로델>, <시라노> 등에 주연으로 나와 호평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몬트리올, 깐느, 베니스 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전성기를 구가한 드파르디유는 1990년대 들어 헐리우드로 진출해 앤디 맥도웰과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그린카드>, <1492 콜럼버스>, <아빠는 나의 영웅> 등으로 미국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1993년에 드파르디유는 19세기 프랑스 탄광촌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점차 눈을 떠가는 광산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제르미날>에서 파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에밀 졸라의 원작을 클로드 베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860년대 불황에 휩싸인 프랑스 북부의 탄광촌에서 벌어지는 파업투쟁의 비극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이후 DD프로덕션이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영화 연출, 제작에도 손을 댄 그는 지금까지 프랑스는 물론 영국,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1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 제작했다. "세계 영화계에 대한 프랑스의 선물", "프랑스의 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은 드파르디유는 2005년 11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거친 드파르디유는 <1900년>, <당통>, <제르미날> 등 사회성 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이런 극중 캐릭터는 현실에서도 이어져 드파르디유는 프랑스공산당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

 

그는 지난해 극우 정치인 르펜의 결선투표 진출에 대해 "프랑스의 수치"라며 "공화국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르펜을 찍지 말자"라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로베르 위 공산당 대표와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드파르디유는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모터사이클과 포도주를 좋아하는 프랑스의 국민배우 드파르디유는 종종 이브 몽땅과도 비교되고 있다. 이브 몽땅 역시 국민배우로 불렸고 공산당의 당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이들을 사랑하는 것도 이들의 뚜렷한 정치적 신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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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능 is getting better

2006/10/17 22:26

어제 정말 10시에 밥을 먹고나서 새벽 5시까지 소화가 안되어서 한숨도 못잤다.

물론 공부도 하지 못했다. 우기고 우겨서 책상앞에 앉으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더 소화가 안되고  무엇보다 소화 안될때의 그 얹혀있는 기분나쁜 상태로

공부를 한다는 게 넘 괴로워서이다.

 

 

 오늘 죽은듯이 오후 12시쯤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역시 소화가 되지 않은채 조금 괴로워 하다가 끊인밥과 멀건국을 조금 먹고 계속 잤다. 결국 오후 5시쯤 일어나서 끓인밥과 된장을

또 조금 먹은다음, 힘을 내어서 샤워를 한후 모친과 실없는 수다도 떨고 마음의 부담을 던 채 좀 편하게 지냈다.

 

그리고 저녁을 인스턴트 냉면과 인스턴트 짜장면 조금씩을 아주 꼭꼭 씹어먹었다. 아기들에

게 숟가락에 음식 담아 입어 넣어주면 무심한듯 한나절씩 우물우물 씹어대는 그 모양새로 장

장 삼십분에 걸려서 밥을 먹었다.

 

식사후에는 열아홉 순정인가 하는 뻔한 스토리의 (하지만 은근히 통쾌한 구석도 있는) 일일

드라마를 보며 변비를 생각해서 사과와 배를 도깨비 방망이에 물과 함께 갈아서 조금씩 먹었다.

 

식사후 몇시간이 지난 지금, 어제보다는 그래도 훨씬 속이 편하다. 한 몇주 이렇게 조심하면

나의 이 위의 무기력은 좀 사라질 것같다.

 

내일이면 한약도 다 만들어진다니, 한약 열심히 먹어서 건강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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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문다.

2006/10/16 04:19

가끔 나에게 이를 악물게 하는 생각이 날때가 있다.

 

잊고있는 동안은 괜찮은데, 순간순간 스스로 상기시키게 될때가 가끔있다.

 

그때마다 세상에 대한 신뢰와 기대와 희망이 희미해지고 시니컬해진다.

 

글쎄, 차라리 엄청나게 큰 배신이라든지 하는 사건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꽤 나쁘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홍상수의 영화에서처럼 인간들의 보편적인 비열함이라든지 인격적 한계를 발견하게되면

 

아무리 그 전에 좋게 생각됬던 사람이더라도

 

' 그럼  그렇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사람자체를 멀리하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별 것 아니지만

 

세상에는,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보다 더 낫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기때문에 그 사실이 나의 이를 악물게 하는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때면, 세상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가치기준을 두는 내가 문제인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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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불량

2006/10/15 04:43

소화가 너무 안된다.

 

내 위는 너무 예민하다. 음식물이 너무 잘 얹힌다.

 

공부가 좀 재밌어질라고 할때쯤에 이런일이 생기다니....

 

 

 

또다시 덩어리진 음식들을 멀리하고 묽은죽에 국물들을 먹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하지만 이렇게 난감한 일들이 생겨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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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2006/10/13 01:28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말걸기' 라는 님의 블로그에서 퍼온것이다.

 

내 마음이 가고 있는 것을 너는 알까.

 

그 모든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청승맞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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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케이크와 상한 마음

2006/10/12 21:47

오늘 핫케이크를 해먹었다.

 

사실 핫케이크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가게에서 핫케이크 가루를 사다가 계란을 체에 걸러서 휘저어서 넣은다음, 꿀 한스푼정도 넣

고 우유를 너무 묽지 않게 부어준다음 엷은 갈색이 되도록 보기좋게 구워주기만 하면된다.

 

(단, 여기서 중요한것은 우유를 너무 많이 부어서 묽게 하면 안된다. 핫케잌의 구수한 맛이

나려면 적당히 끈적거리는 된 반죽이 되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얇지 않고 살짝 폭신하고 도톰하게 구워진 핫케잌을 몇장씩 구워내어 접시위에 층층히

쌓아올리는 것은 묘한 성취감을 준다.

 

꼭 내가 당장 먹을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몇장 구워놓으면 집안 식구들이 먹기도 하는데, 그

냥 구워놓아진 모양만 보더라도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그런데 옛날부터 메르헨같은 동화책 보면 핫케잌을 몇십장씩 쌓아놓고 꿀을 발라놓고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왠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 광경이 감칠맛나게 느껴졌다.

 

그리고 노릇하게 갈색으로 동그랗게 구워진 그 모양도 예쁘다. 의외로 그 엷은 갈색으로 구

워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 못하면 군데군데 타버리고 다른 곳은 허옇게 남아있는

모양이 되어버린다.

 

핫케잌과 베이컨+에그, 그리고 우유로 이루어진 단촐한 서양식 아침식사가 왠지 낭만있기

느껴지는 것은 글쎄 뭐랄까...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의 우스운 허영기라고

보면 될것이다. 집에서 책 봐도 좋은데 굳이 옷 차려입고 커피숍에서 다리꼬고 책보고 싶어

지는 마음과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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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핫케잌을 굽고싶어진 이유는 오늘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일도 아니고 매우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또 한번 마음이 쓸쓸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황폐한것을 지금은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그 순간순간을 잊어버려야 할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순간을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러다가 나는 그 어느 누구하고도 마음

 

이 서로 통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지는 인간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쓸쓸한것이

 

다.

 

역시 핫케잌을 몇장 굽고 샤워한다음, 없는 돈 쥐어짜내어 커피숍에가서 딸기주스라도 마시

 

며 기분을 바꾸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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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이에 대한 사과

2006/10/11 00:23

나에게는 연애경험이 두번있다.

 

한번은 2004년 가을쯤에 알게되어 2005년 1학기에 잠깐 사귀었고 또 다시만났다가 금방 헤어진 인연.

 

또 나머지 한번은 바로 얼마전... 한달정도 전에 두달정도 사귀고 헤어진 인연이다.

 

두 사람을 사귄기간은 다 합쳐서 6개월도 되지 않는다.

 

즉 사귀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싶은 기간이다.

 

그러나 내 기억속에는 둘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남아있고, 나에게 둘다 이성을 알아간다는것

 

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매우 실천적인 흔적(?) 을 남겨준 이들이니 분명 사귄건 맞다.

 

 

 

맨처음에 사귄 애인 A와 헤어졌을때는 내가 그만두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헤어짐이 무척 슬펐다. 매일 잠자리에서 눈이 붓도록 울고는 했다.

 

A는 천성은 매우 착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타인에게 관심을 주는데에는 완전 NO 인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무척 함께하기 힘들었다. 나도 처음사귀어서 그런건지, 사귀기 시작한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그 친구에게 상처를 -과실에서인지 미필적고의에서 나온건지- 많이 주었다.  짜증도 많이내고 말도 좀 막했던것 같다. 아무래도 순한 아이앞이어서 그런지... 아마 처음으로 사귀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그것을 충족이 안되어서 실망스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A는 한 1년쯤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본적이 없다.  잘은 모르지만 요즈음 그 친구 블로그의 글들을 가끔 들여다보는데, 각종 집회와 조직활동을 하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A는 도통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타입이고 더욱이 나같은 복잡한 유형의 인간에게는 더욱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실 애인으로서가 아니더라도 그닥 굉장히 친해질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친구는 열심히 운동을 자기 삶에 가져가려는 사람이고, 그 친구의 세계관을 나는 특별히 존중하고 동의하는 부분이있다.  그런면에서 그 친구를 볼때에 기대가 있다.  다행히도 나보다 주변에 그 친구를 좋아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사실 나보다 훨씬 일찍 여자관계로 인한 아픔은 털어버리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글쎄... 수년이 지나서 나도 자리를 잡고, 그 친구도 좀더 한 단계나아가서 새 삶을 살고 있을때 만나서 술한잔이나 하고 싶다.

 

 

A나 B나 나와 좋은 식으로 끝맺음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지금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는 그들을 그래도 좋게 기억하는 편이다. 나라는 인간의 진면목을 알고 좋아한거라기보다는 썩 거슬리지 않는 여성과 대화를 하다보니 좋아하게 된것이겠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해주었고 그들과 함께 한 기억들이 나쁜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꼬치 하나를 나눠먹어도 맛있었던 기억도 있고 손을 꽉 잡을 때에 느낌이 너무나 좋았던 기억도 있다. 나처럼 자기애가 썩 풍부치 못한 사람은 그런 오래 지속되지 못할 애정일지라도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는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자신감 증진에 꽤나 도움이 되었고, 또 그들을 마음에 담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 느낌들도 하나하나... 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갈수록 인간애를 잃어버리고 살아움직이는 조각처럼 변해가는 듯한 나에게는 열정의 석유곤로로 뺨에 얼어붙은 고드름을 녹여버린것처럼  온기가 느껴진 순간이었다.

 

아뭏든 요즘은  솔로로 유유자적 지내고 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또 모든것에 대한 눈을 말갛게 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은 커플이 될 수 없었던 시간이 아니라 커플로 있었던 시간과 대등하게 가치있는 시간이다.

 

또 연애할때는,그런 1:1로 타인에게 배타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다른관계가 의도치않게 부수적으로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을 요즘은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같은 경우에는 나의 감정에, 내가 관심갖는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할 날들에 대해서 포기한건 아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연애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상대를 만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가 좋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라는 인간이 혼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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