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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미터》

category 영화나 드라마 2021/09/0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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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와’는 두 집 살림을 하는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이자, 가장이다. 하루 겨우 2시간 잠을 자며 일하고, 아이 셋을 돌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주기적으로 거대한 장벽을 너머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엔 남편 ‘무스타파’가 산다. 무스타파의 삶 역시 쉽지 않다. 두 집의 직선거리는 200미터에 불과하지만 무스타파는 살와처럼 장벽의 군사검문소를 쉽게 통과할 수 없다.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군대의 허가가 필요할까? 무스타파가 ‘테러범’이라서? 물론 아니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하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 누구나 이스라엘군의 허가 없이는 장벽을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무스타파가, 이스라엘이 장벽의 구실로 내세운 ‘테러범’이었다면 애초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 허가증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노동 허가증이 있어도, 새벽 군사검문소에서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무스타파는 통행증 기간 만료란 이유로 장벽 통과를 허가받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점령 정책에 따라(장벽은 이미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불법이라 결정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은 하루하루 침식된다. 출근을 못하고, 약속을 못 지키고, 하루하루가 예측불가능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의 주된 플롯은 아들 ‘마지드’의 입원 소식을 접한 무스타파가 병원에 가는 여정을 좇는다. 아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모른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200미터 거리를 온종일 돌고 돌아가며 마주치는 사건마다 군사점령의 현실이 드러난다.

보면서 궁금했다. 관객들은 이걸 영화적 과장이라고 생각할까? 실제로 저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할까? 지구 한 쪽에선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드물게 겪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살와’와 아이들은 어떻게 장벽 너머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걸까? 이스라엘은 1948년 원래 팔레스타인이었던 땅 위에 들어섰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해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학살/추방하는 대규모 인종청소를 저질렀지만 다 죽이고 내쫓지는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인구의 20%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즉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고, 살와는 그 중 한 명이다.

장벽은 땅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가른다. 이스라엘 쪽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 마지드는 
‘더러운 서안지구놈’이라며 팔레스타인 아이들로부터 학교 폭력을 겪는다. 자식들 교육 문제를 가지고 살와와 무스타파는 계속 갈등한다. 아픈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하려 들면서도 막상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어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 무스타파에게 살와는, 그리고 자신과 상의 없이 이스라엘 유소년 축구 캠프에 마지드를 보내겠다는 살와에게 무스타파는, 실망하고 화낸다. 기본 플롯이 무스타파의 여정이라서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단편적 장면만으로도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어떤 시간을 통과했을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이스라엘 시민권자들은 서안지구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아마 살와는 서안지구의 대학에서 무스타파를 만나지 않았을까? 학생 시절 점령자에 비타협적이던 매력적인 모습이, 함께 삶을 나누며 이젠 고집불통으로 여겨지진 않을까? 그러면서도 그게 옳으니까 전면적으로 설득할 수도 없고.. 생각을 같이 하는 부분이 생활에서 빛바래고 퇴색할까 두렵지 않을까? 등장인물의 전사가 그려진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이 뿐 아니라 영화는 어떤 과장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잘 그려냈다. 예컨대 무스타파가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건너가, 당연하다는 듯이 히브리어로 자기 할 말만 하는 이스라엘인의 집을 지어주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라는 점도 그렇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경제구조를 조직적으로 무너뜨렸고, 점령자의 집을 지어주는 것이 다른 취업 자리를 찾기 어려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선호도 높은 직업이 되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4시간 동안 군사검문소에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무스타파의 여정에 들어있는 한 ‘외국인’을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하다. 스포라서 쓸 순 없지만, 일단 외국인도 팔레스타인 가면 정말 흔히 보이는 전형적인 서양인 스타일 찰떡이라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 존엄을 지키는 무스타파에게서 내가 아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결국 무스타파는 여정에서 만난 동료들을 챙기며 가족들에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만다. 무스타파가 처한 군사점령의 부당한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그래서 살와와의 갈등 또한 완화될 조건 자체가 없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즉 존재가 저항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외침이 또다시 와닿는다.

무스타파처럼 팔레스타인 민중은 종국에는 해방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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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15:11 2021/09/0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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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category 자연미인 본좌하르 2021/07/18 23:15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이토 세이코
플레이타임, 2021

 

아무런 연상 작용 없이 어느날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수많은 식물을 죽인 건 내가 못 배워먹어서였다고. 항상 화분에 동봉된 물 주는 법을 꼼꼼히 읽고 적혀 있는대로 주기에 맞춰서 물을 줘도 모두 시들어 죽었다. 키우기 쉽다는 산세베리아도 선인장도 몇 번이나 다 죽였다. 식물 키우는 법, 아니 식물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 한 번 깨닫고 나니 어이가 없다.

십여 년 전 산세베리아가 죽었을 때 나는 생물을 돌보는 데 재능이 없다고 포기했다.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산세베리아에 배희만이라고 이름도 붙이고, 어디선가 식물도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읽고 노래도 불러주고(선곡이 마음에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나름 정성을 다해 애정을 쏟았는데 죽었다. 온전히 내 책임으로 뭘 키운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시든 잎을 보는 게 정말로 시체를 보는 것처럼 무서웠다. 언니한테 SOS 쳐서 몇 번 고비를 넘겼는데도 결국 죽였다는 충격에, 나는 뭘 키울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 짓고 다시는 식물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지랑 달리 식물을 몇 번 선물받았고, 노력했지만 다시 다 죽였다. 마지막으로 선물받은 건 작년 생일 친구에게 받은 "너를 닮아서 사봤"다는 수국이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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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오기 전 그는 아름답고 싱싱했다..

아 사진 보니까 또 가슴이 찢어지네ㅠㅠㅠㅠ 이렇게 예쁜 수국 원래도 수국 좋아해서 정성껏 물을 줬는데.. 물만 줬다.. 햇빛에도 놨는데.. 예상 가능한 결말대로 죽였다. 한 계절도 못 넘기고 죽었다. 나는 쪼그라들어 밑동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수국의 죽음을 지켜봤다.

수국한테 너무 미안해서 빈 화분을 놔뒀다. 집안 잘 보이지도 잘 안 보이지도 않는 데다 빈 화분을 두고 가끔 쳐다보며 내겐 꽃을 키울 자격이 없다고 계속 각인시켰다. 그냥 나는 안 되나보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깨달은 것이다. 그냥 물만 준다고 영양이 다 공급되는 게 아닌데. 물조차도 준다고 다 빨아들이는 것도 아닌데. 식물은 물이랑 햇빛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님?ㅋ 하고 무식하게 정말 무지하게 아무 생각도 노력도 안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돌봄에 재능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던 것도 무책임한 합리화였다. 가까이 아빠가 전에는 화분에, 지금은 옥상에 텃밭을 가꾸면서 약도 치고 비료도 뿌리고 좋은 흙도 가져다 붓고 온갖 노력을 하시는 걸 (쳐다만) 봤었는데 왜 나는 내가 키우는 식물에 그런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단 걸 인식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자책하기만 한 건 아니고, 그래서 아 나중에 원예를 정식으로 배워야겠다, 배워서 나중에 아파트 베란다에 나도 꽃이랑 허브를 키워야겠다 나름 기운 차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는 뭐~ 베란다 생길라면 멀었으니까 그때 닥치면 할라고 ㅎ 그러다 '베란더'(베란다에서 식물 키우는 사람)의 에세이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를 읽었는데(아직 1/3 남음) 우와 ㅋㅋㅋㅋ 식물 키우는 사람들이라고 꼭 항상 식물을 살리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내가 정말 죄인이 맞긴한데(더울 때 물 주면 미지근한 물이 되어 오히려 식물에 안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 읽고 처음 알았음. 얼마나 노생각이었던 거냐..) 이렇게 커다란 애정으로 공들여 관찰하며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정말 많이 실패하는구나. 그리고 화분이라는 조건이 자연에서랑 다를 수밖에 없구나, 왜 반려식물이라고 부르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정말 자연 동식물에 대해 무지하다. 그래선지 소설에 나오는 자연 묘사를 싫어하는 편이다. 거기 써있는 나무, 꽃, 새가 어떤 모습인지 상상도 안 된다. 꽃의 생김은 좋아하는데 장미나 수국 등 몇 개 꽃 빼곤 전부 내겐 '이름 모를 꽃'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은 아무 상상도 안 하고 다음 단락에 도달하기 위해 대충 읽고 마는데, 이 에세이에서 말하는 식물들도 대체로 뭐가 뭔지 모르는 와중에도 혼자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심지어 죽은 화분을 묘사할 때도! 그의 베란다도 상상하게 되는데, 울창하다기보다 어디는 푸릇하고 어디는 거무죽죽한, 전체적으론 어쩐지 황량하면서 가꾸지 않은 것 같은(아마 잡초 내버려 둔대서 그런 듯) 그렇다고 버려진 정원 느낌은 아니고, 뭐 혼자 그런 걸 상상하게 된다. 실제로 본다면 내 상상이랑은 또 전혀 다를 것 같다. 계절이 바뀌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채롭게 매일매일 다를테니 내 상상이랑 다를 것도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책을 읽다가 아주 어릴 때, 아마 숙제로 씨앗을 사다 심어서 식물을 키워봤던 게 떠올랐다. 그때 앞면엔 꽃 사진이, 뒷면엔 키우는 법이 빼곡히 적힌 비닐 포장된 씨앗을 몇 포 사서는, 우리도 이 정도 씨앗은 팔 수 있다고 언니랑 의기투합해서 동네를 다니며 맨드라미랑 무궁화꽃 씨앗을 땄던 게 기억난다. 그걸 연습장 찢어서 호치케스 박아서 씨앗 설명 적어서 ㅋㅋㅋ 포장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판로를 못 구해서 난처했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한 포라도 팔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사진은 빈 수국 화분을 찍어서 올릴라다가, 선물 받은 시점이 기억 안 나서 대화를 찾아봤다가.. 사진을 보곤 첨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ㅠㅠ 미안해..

이 책 진짜 재밌다. 한 편 한 편이 짧고, 저자랑 소통하는 느낌도 든다. 장래 유망 베란더가 되면 꽃 옆에 두고 시시때때로 한 편씩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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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8 23:15 2021/07/1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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