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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미드「범죄의 재구성」, 「워킹 데드 」 보다 시즌4에서 하차한 얘기

연말연초에 두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 재밌으면 다음 편 너무 궁금해서 바로 이어서 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현망진창이 된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피하는데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범죄물 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범죄의 재구성 1화 봤다가 완전 빠져듬 미국식 탄탄한 막장 드라마

범죄의 재구성

로스쿨에서 가장 인기있는 형법 수업의 교수이자 변호사인 주인공이 클래스에서 5명의 인재를 뽑아 자기 사무실 인턴 기회를 준다. 이 6명이 살인 사건에 얽혀서 각자 다른 동기로 사건을 덮으려 거짓말을 지어내지만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다른 범죄를 더 저지르게 만들다가, 결국 또다른 살인을 부른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비밀을 공유한 이들 간에 연대의식이 싹트기도 하고, 또 그 와중에 연애도 크로스 크로스로 오지게 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심리학자인 남편에게 환승연애했던 과거 이력이 있는 주인공은 (남편 유부남이라 불륜이었음) 남편의 또다른 외도 사실을 알고 자기도 맞바람을 피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너무나 카리스마 있어서 적도 오지게 많지만 학생이고 동료고 애인이고간에 주변인 모두 이 사람한테 꼼짝 못한다(벌써 이름 까먹었넹..) 하지만 강력한 외관과 달리 과거에 겪은 여러가지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면서, 또 자기가 남들에게 가하는 자잘못들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그러면서도 자기 합리화하면서,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안으로 썩어들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 내적 갈등을 아는 최측근들이야말로 더더욱 이 사람한테 중독되고 꼼짝을 못 하는데...

주인공은 하나의 재앙 같다. 모두가 매력을 느끼는 재앙. 결국 제자들의 인생도 각자가 가진 이력과 잘못에 더해 같은 재앙 속에 휘말려 들어간다. 시즌 3까지는 각자가 다른 욕망을 가지고도, 그리고 주인공 자장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벗어나지 못 하는 게 설득력 있었는데.. 시즌4부터 그 설득력이 완전 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또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지 실수고 나발이고 아무 설득력이 없고, 그 새 사건 이전에 캐붕이 심했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시청자가 보면서 인물의 서사에 설득되는(옳고 그르고가 아님) 그런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4부터는 다른 사람한테 지들이 지은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게, 그리고 자신들 목숨까지 걸고 가깝지도 않았떤 동료의 복수를 하겠다는 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 목숨을 걸긴 왜 걸어 다 지네들 인생 펴보겠다고 할 수 없이 그동안 사람 죽이고;; 범죄 저질러 온 건데.. 갑자기 정의의 사도인 척 위선 떨면서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려다가 실수로 살인까지 하니까 걍 하차해 버렸다.

특히 이거 편집이 재밌었는데, 마치 유튜브 시작할 때 이번 화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 써머리로 넣어놓듯이, 이후에 나올 극적 장면들이 앞부분에 조금씩 나와서 뭐? 뭔데 뭔데 하고 너무 궁금해서 계속 보게 하고, 이후 뭔지 알게 된 뒤엔 어머나 입틀막 그렇게 된 거였어?! 하고 놀래키는 게 컸는데, 4에서는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고 납득하는 게 아니고 뭐야 저거 말도 안 돼 하도록 그냥 노잼됐다. 아무튼 노잼이어도 조금 참고 보다가  6편인가 까지 보고 미련 없이 하차했다.

보는 동안 하고 싶은 얘기 많았는데 하차해 버려서 이제 다 까먹..

워킹 데드

딱히 좀비물에 호불호가 없다. 아주 옛날에 B급 영화들은 재밌게 본 게 좀 있었는데 장르 자체에 대해선 노관심이었다. 근래 좀비물이 흥행하며 한국 좀비물도 트위터에서 흥하길래 뭔가 봤다가 1화를 참고 끝까지 본 뒤 도저히 긴장감이 없어서 더는 못 보겠다고 하차했다. 아주 별 거 아닌 건데, 아직도 저렇게 찍고 편집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복장이 터짐.. 하나도 긴장 안 돼 주인공들 안 죽고 들어가겠지가 너무나 투리함 아니 그건 대부분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 쫄깃하게 만들어야 재밌지.. 도대체 긴박한 순간을 왜 저렇게 지루하게 늘어지게 보여주는 걸까 지금 이거 쓰는 동안에도 복장 터짐 진짜 답답해;;;; 도저히 눈 뜨고 못 봄

그래서 좀비물로 유명한 워킹 데드는 어떨랑가, 보니까 시즌 1은 6편밖에 안 되길래 현망진창 안 될 수 있겠군, 오해하고 시작했다가 미친듯이 재밌어서 현생 완전 망함..ㅎㅎㅎ후ㅜ

이거야말로 저 주인공은 신화적 인물이고 누군가 희생될지언정 내가 감정이입한 선한 저 주인공만큼은 제작진이 해치지 않는다는 걸 철썩 같이 알고 있는데도 미친 심장 떨리고 쫄깃하고 나 죽어 어떡해 무서워~ 하면서 봤다. 캬 역시 명불허전이구나 하고 너무나 미친 완전 재밌게 본 것이다. 주인공 미쳐가는 데까지도 아니 진짜 저런 상황에서 안 미치는 게 이상하잖아;; 너무 재밌었는데 왜 때문에... 무리수를.. 말도 안 되게.. 어쩌라고... 감옥 점거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사회를 얘기하는 리뷰도 좋은 것 되게 많을 것 같은데 이제 흥미가 팍식어서 찾아볼 생각도 없음..

그니까 그 거버너 새끼 개쌔끼 안 뒤진 것까지도 너무 흥미롭고 불안하고 좋았는데 갑자기 이 새끼를 그렇게 훙... 노잼으로... 저게 뭐야... 훙... 갑자기 뭔 한국 드라마야 계속 리얼하게 진행하다가 왜 저럼... 죽은 딸램 왜 좀비 안 됨...? 거버너 부인은 왜 안전하게 딸램 시체 차에 싣고 달려와서 좀비 소굴에 안전하게 들어와 거버너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거임...? 그리고 거버너 방황할 때 진짜 생에의 의지 1도 없어 보이는데 왜 거버너 다니는 데만 좀비 떼가 없었음...? 야생에 좀비떼 존많문이던데? 거버너가 진짜 증오하던, 그리고 실제로 존나 전투력 만렙이라 적으로서도 개위험한 사무라이 인질로 잡고 있을 때 사무라이 말고 아무 힘없는 할배 죽이는 것도... 그냥 말이 안 됨... 둘 중 하나 죽일 거면 무조건 사무라이임.. 나 이제 원한 없어 ㅇㅅㅇ 그러고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고.. 아니 그리고 사무라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다 흩어진 다음에 위험하게 좀비떼들 사이 헤집고 다니는 것도 어이가 없어가지구... 아니 시즌 1부터 좀비 내장 바르면 좀비들이 모른대매여... 그 설정 드라마에서 내내 까먹은 건 알겠는데 그러다가 어느 때는 써먹고 그래도 그냥 소소하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야생에 내몰려 좀비떼 습격 둘워하면서 살면서도 그냥 맨몸으로 다니는 게 말이 안 됨 다 바보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그냥 죽지도 않고 계속 싸우는 건 뭐야 아휴 답답해 다 말도 안 된다고. 하다못해 사무라이처럼 좀비 몰고 다니든가. 아무튼 좀비를 피할 주요 2가지 방법을 이미 인류가 알고 있는데 왜 안 하고 좀비가 무섭니 어쩌느니 바보 같은 소리하고 있냐고 안 뒤질 줄 아니까 저러고 있는 거잖아 아오 팍식 긴장감 1도 없어 그 뭔 워싱턴으로 향하는 군인들이 한국인 왜 쫓아가는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불만 가득 끌어안고.. 진짜 더 보고 싶은데 관뒀다. 환청으로 전화 받는 것도 넘 재밌었는데.. 거버너 만나서 막 설득하려던 것도 넘 이상하고 시즌4 총체적 난국... 어디까지 봤는지도 기억도 안 나네

어째 현망할 정도로 미친듯이 몰입해 보던 드라마 둘 다 4에서 하차해서 참으로 원통하다. 긴장감 돌려내... 당분간 드라마 못 볼 듯 아 요즘 재택하면서 거의 매일 아빠집에서 밥먹고 있어서 저녁마다 7번에서 하는 일일드라마 보는뎈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존나 너무 모든 것이 말이 안 되고 ㅋㅋㅋㅋㅋ 옛날엔 한국 드라마에서 맨날 엿듣는 걸 통해 국면이 전개됐는데 지금은 그냥 대놓고 다 들림ㅋㅋㅋㅋㅋ 시발 중역 집무실도 재벌 서재도 탐정 사무실도 다 방음이 안 돼 다들려 시발ㅋㅋㅋㅋㅋ 맨날 뭐? 누가 어쩌고 저쩌고 했딴 말이야?! 그러면 밖에서 다 들은 사람이 쾅! 하고 들어와서 뭐? 누가 어쩌고 저쩌고 했다고? 그게 사실이야? 이 지랄함ㅋㅋㅋㅋ 개웃겨 말도 안 되는 막장은 말이 안 된다고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데 탄탄하게 진행되는 게 삐끗하면 몰입감 와장창 돼서 못 보겠다 탄탄한 쪽이 리스크가 커 보이는데 나만 이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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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드라마 추천 -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 : 이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가? (O)
희망은 없는가? (X)

<이어즈 앤 이어즈>는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에 사는 ‘라이언스’ 일가 4남매를 중심으로 한 근미래 가족 드라마다. 드라마가 발표됐던 시점인 2019년 현재부터 2034년까지 16년 동안 각 가족 구성원이 주요 사회적·세계사적 사건을 어떻게 겪고 변화하는지 그려진다. 각 구성원이 헤쳐나가던 서로 상관 없어 보이던 사건들은 ‘난민 수용소’라는 문제로 얽혀들고, 우리 가족이, 영국 사회가, 세계 전체가 마주한 핵심 위기로 수렴한다.

드라마의 다른 한 축은 이 평범한 가족들이 주로 TV를 통해 접하는 극우 정치가 ‘비비언 룩’이다. 첫화는 비비언 룩의 등장을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시청하며 그룹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정치 데뷔 전인 비비언 룩은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팔레스타인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배의 후과를 지금까지 겪는 곳이다. 때문에 영국에서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남의 문제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백년간의 피로가 쌓여서일까? 이제 영국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얘기가 지겹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교양 없어 보인다. 체면치레가 필요한 방송에선 더더욱 그런 얘길 할 수 없다. 그러나 비비언 룩은 속시원하게 말한다. “팔레스타인? 그딴 거 솔직히 좆도 신경 안 써요(I don’t give a fuck)” 정부가 우리 동네 쓰레기나 잘 치워주면 좋겠다는 비비언 룩은 fuck을 검열한 ****에서 따온 4성당(4 Star Party)을 창당하고 따분한 영국 정치계에 새바람을 일으킨다.

정치적/계급적 구성이 다양한 라이언스 가족 중 누군가는 비비언 룩에 열광하고 누군가는 경악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비비언 룩과 가장 반대되는 진보적 성향의 가족들조차 극우 정치가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이 공명하는 부분을 발견한다. 선거 결과를 본 좌파들은 좌절감을 몰래 표출하곤 한다. 자기 계급의 이익과 반대되는 극우 정치가를 뽑는 멍청한 사람들은 선거도 못 하게 해야 돼! 진심이든 아니든 사회가 망가진 책임을 자본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돌린다. 이렇게 ‘우매한 대중’에 의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정서를 좌파 엘리트들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비언 룩은 대놓고 말한다. 아이큐 낮은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세계 도처에서 직접행동을 벌여온 아나키스트마저 비비언 룩에 열광한다. 모두가 데이터에 무차별 노출된 상황에서 6세 아동이 휴대폰으로 포르노를 소비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비비언 룩은 30m 반경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의 온라인 접속을 끊을 수 있는 ‘블링크’라는 장치를 소개한다. 사이버 테러리스트가 만든 무기지만 이를 합법화해서 각 학교와 가정에 배급해 미성년자의 인터넷 접속을 통제하고, 캘리포니아 거대 IT 기업들의 CEO를 여기 맨체스터로 데려와 재판 받게 해서 감옥에 보내 버리겠노라고! 거대 기업의 부정 행위에 맞서 싸워 온 아나키스트는 그래 세상을 뒤집어 버리자며 적극 동조한다. 물론 흑역사로 남게 되지만.

드라마엔 바뀐 기술을 통해 바뀐 삶의 풍경이 자주 묘사된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고, 온라인 상 주요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이 현실의 얼굴에 덧씌워진다. 기존 정치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젊은 세대는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서 사이보그가 되려 한다. 아주 가까운 미래를 그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쓰고 있거나 개발 중인 기술에 기반해 있어 대체로 위화감이 없다. 곧 당면할 문제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 것도 있다. 타고난 몸뚱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트랜스 휴먼’이 되겠다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다. 신체 손상의 연장으로 이해돼서 거부감부터 드는데, 이러다간 신체에 대한 바뀐 통념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지금의 거부감은 오히려 저런 생각을 못 하도록 인터넷을 끊어버리겠다는 부모의 강압적 입장에 더 가까울 정도라서 위기 의식이 든다.

핵폭탄이 터져도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공고화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디스토피아물이다. 하지만 결국 가족구성원 모두가 각자 다른 이해관계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성하고 사회 변화의 능동적 주체로 나아가는 걸 보면 유토피아물(?) 같기도 하다. 그동안 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감당해 왔다. 근미래 영국 중산층들은 세계사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먼저 쓰러져나가는 이들의 보호막 속에 살 수 있었다. 취약한 이들이 모두 쓰러지고, 파국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까지 찾아왔을 때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눈 뜨고 보기 힘들지만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세상을 그리는, 한 순간도 놓치기 힘든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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